복음이란 무엇인가?(갈1:1~5절)
* 유나이티드 신학대학 / 권다니엘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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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부터 주일 설교는 갈라디아서를 강해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제 마음속에 자꾸 떠오르는 성경이 갈라디아서 였습니다.
Ⅰ.갈라디아서의 특징
1.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교리를 기록한 책입니다.
교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윤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다루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윤리는 종말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2.짧은 서신입니다.
사도행전이 1000절이고, 요한복음이 870절, 히브리서가 303절인데 갈라디아서는 149절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찬사는 대단하고, 위대합니다.
종교 개혁가인 루터는 “갈라디아서는 나의 서신이다.
나는 사실상 갈라디아서와 결혼했다.
갈라디아서는 나의 캐터린(루터의 아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그의 생애에 두 번의 갈라디아 주석을 썼습니다.
분량도 로마서의 두배에 해당됩니다.
메릴 테니는 “갈라디아서가 기술 되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란 단지 또 하나의 유대교 분파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며, 서구의 사상은 전적으로 이교도적인 것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했습니다.
콜(R.A. cole)은 갈라디아서는 영적인 다이나마이트와 같다고 했습니다.
월리엄 닐은 그는 열렬한 논쟁가이며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며 진리를 사수하는 데 있어 조금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용사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슨은 종교 개혁의 선전 포고이다.
신교 개혁의 모퉁이 돌이 된 책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라고 했습니다.
3. 직설적이고 솔직함이 묻어 있는 책입니다.
보통 사도 바울이 쓴 책들은 서두에 긍정적이고 칭찬으로 부드럽습니다.
이것은 빌립보서, 로마서, 에베소, 골로새, 데살로니가, 디모데, 디도, 빌레몬서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바로 본론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강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5절은 네 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사도직에 대한 것과 둘째는 교회에 대한 문안
셋째는 복음의 중심. 넷째는 하나님께 대한 송영입니다.
나는 이 네 가지를 약간 변형시켜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Ⅱ.복음이란 무엇인가
1.하나님의 계획이다.
1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인간의 냄새가 안 납니다.
다시 1절을 분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사람들은 복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고, 에게서 라는 말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체나 사상을 말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은 단수입니다.
그러니까 교황이나 감독, 또 그들을 매개로 하여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속고 살아가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내가 오래 교회를 다니면 신령한 성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권력이나 학벌, 명예나 돈이 많으면 축복받고 괜찮은 신앙인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9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내속에 있느냐 없느냐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칼바르트가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찬송가에 있는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이것이 복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시한 존 뉴톤(John Newton)은 1725년 7월 24일 런던에서 지중해 연안을 배경으로 배를 부리던 부유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비국교도로서 신실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늘 어린 뉴톤을 무릎에 누이고 성경을 읽어주곤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목사가 될 것을 기대하며 성경을 읽어주었고 아이작 와츠(Isaac Watts)의 어린이들을 위한 찬송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뉴톤의 나이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2년간 11살이 되기까지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공부하였으나 곧 아버지를 따라 선원이 되었습니다.
1744년 해군 복무중 탈영하였다가 체포되어 15개월간 감옥생활을 한 후 석방되어 노예선의 선원으로 자원하여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이후 1748년 초에 아버지의 친구의 배려로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노예선 선장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싣고 대서양을 지나 런던으로 돌아오던 중 뉴턴은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엄청난 폭풍을 만났습니다.
폭풍우는 열하루동안 계속되었으며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물을 퍼내며 사투하던 새벽 1시, 배가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도록 성난 폭풍 속에서 너무나 지쳐 기둥을 붙잡고 있던 뉴턴은 지난 날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잠언 1:24-33절, 그리고 누가복음 11:13의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것은 1748년 5월 10일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그 날에 주님께서는 기고만장한 나를 끌어내리셨고, 깊은 물속에서 나를 건져내시어 구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뉴톤은 17세 때에 당시 14세였던 메리 캐트렛(Mary Catlett)과 정혼하였었는데, 1750년에 그녀와 결혼합니다. 그녀를 통하여 읽게 된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은 그의 회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톤은 종종 주일 아침예배를 위해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의 친구들과 교인들이 1779년에 280개의 곡 중 68개의 곡을 모아 찬송가(Olney Hymns)를 발간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1760년부터 17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신앙의 회고와 소망\'(Faith\'s Review and Expectation)입니다.
이 곡은 오늘날에 \'Amazing Grace\'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뉴톤은 82세를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았다.
한때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였으나 놀라운 은총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그는 생애 말년 약 2-3년 동안 시력을 상실한 채 쇠약해진 몸으로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나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만은 기억합니다.
하나는 내가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은혜란 말은 공짜란 말이거든요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내가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냥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구원을 돈 받고 팔았다면 하나님은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고, 아마 천국에 들어갈수 없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누구든지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4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박조준 목사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번역에 보면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과시나 영웅주의의 한 예가 아니라 죄에 대한 희생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은 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범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주님이 친히 짊어지신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해석하기를 “이 말씀은 결국 자기 의에 지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내린 뇌성벽력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이 세대의 우리를 구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죽음의 목적은 우리를 이 악한 현세로부터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J. B. 라이트훗 감독은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구한다, 회복한다”라는 동사가 이 서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일종의 회복이며 예속 상태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기독교는 실제로 구원의 종교입니다.
4절에 있는 “우리를 건지시려고”하는 말은 강한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할 때, 베드로를 감옥과 헤롯 왕의 손으로부터 구출할 때 쓰여진 단어이며, 그리고 폭행하려고 역동하는 군중들로부터 바울을 구출하는 데 사용된 단어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이 구절은 구원에 관해서 사용된 유일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전환이란 현세로부터 내세로, 구세대로부터 새세대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내세의 생활을 사는 것입니다(고후 5:17).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하고 그 구원을 성취시키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완전히 화합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갈라디아서의 첫 부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세 단계로 보았습니다.
첫째 단계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이와 같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사도직 임명입니다.
셋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셨고 바울이 증거하신 은혜와 평강은 믿는 사람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은혜로 사역하시는 성부와 성자가 계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역사적으로 그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그 후에 택하신 사도들을 통해서 성경에 알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오늘날 그것을 경험으로 주십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이며 따라서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영광 중의 하나는 역사와 경험의 결합이며 과거와 현재의 결합입니다.
우리가 누리기 원하는 그리스도의 평강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없이는 할 수 없고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행한 증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광은 주님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고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계 1:5~6).
Ⅲ.복음의 권세
인간은 저주의 폭탄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폭탄이 터지면 너와 나 할 것 없이 다 죽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폭탄을 인간에게서 해체를 했습니다.
고통을 기쁨으로,
사망을 영생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실력있고, 강한 사람입니다.
아주 율법과 하나님에 대하여 충성된 사람입니다.
누가 그 사람은 바꿀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뿐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완전히 바꿔게 됩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돌맹이가 날아오고, 핍박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온갖 모함과 비난이 몰려 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의 감격이 그이 가슴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복음의 권세란 죄와 사망, 저주, 심판, 완고함, 인간의 모든 지혜를 다 십자가에서 끝장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한 때 뿐입니다.
미국의 한 호텔에서 37세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한손에 빈 술병을 쥐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움폭 패여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컴퓨터 파일을 압축하는 집(ZIP)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컴퓨터 천재 필립키츠 였습니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고립된 생활과 방탕한 생활로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재산 상태는 파산 지경이었고, 그의 가방 속에는 빚진 카드와 갖가지 성기구들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돈의 권세는 이 땅의 것을 추구하게 하고,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영원한 나라를 볼 수 없게 합니다.
복음의 권세는 영원한 생명에 눈이 열리게 하고,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도 행복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영화를 다 버려도 했습니다.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이 감격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거듭난 신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Ⅳ.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저는 목회의 철학이 무엇인가 묻는 다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성도요, 성자요,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왜 세상 이치를 따지고, 그렇게 잘난 것도 없는데 잘난 것으로 착각하고 사느냐 하면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영국의 웨스트 민스트 교회를 담임했던 데이비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늘 죄를 말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교회에서 휼륭한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 속에 하나님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사모님이 화가 났습니다.
자신이 대대로 믿는 가문의 사람인데 자꾸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니 남을 무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의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하니 참 괴로웠겠죠,
그런데 그분이 정말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전통이나 습관, 어떤 율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나의 모든 것이 다 변화됨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세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1.나의 부르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2.우리의 신앙생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3.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은 종이나 자유자나, 여자나 남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것이 됩니다.(고후5:17절)
(ubtc 대학교회) 설교: 권다니엘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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