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로 새로운교회
전도를 위한 새로운 교회구조 전환의 시급성
전통교회의 상황과 전도운동을 위한 새로운 구조전환의 시급성
/ 이창준목사(천안갈릴리교회)
1. 시작; 교회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최근 4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세 통계
2000년도 교회수 5188 목사수 6081 전체교인수 1377954
2001년도 교회수 5262 목사수 6233 전체교인수 1394515
2002년도 교회수 5337 목사수 6455 전체교인수 1408253
2003년도 교회수 5386 목사수 6713 전체교인수 1417213
2. 무엇이 문제인가? - 패러다임의 변화-
교회성장학자들은 교회개척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전도만이 교회성장의 길이다, 교회위치이다, 담임목사의 설교이다 등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한 대답일까? 무엇이 문제인가?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은 그 변화의 속도를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되겠는가?
교회수는 늘고 있지만 교인숫자는 줄고 있다는 이 뼈아픈 보고를 듣고만 있어야 하는가? 여기에는 복합적인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첫째, 교회 담임자의 의식개혁이다. 세계에서 크게 발전하는 새들백교회나 윌로우크릭교회 같은 교회들은 이미 설교자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평신도와 동일하게 설교목사는 두꺼운 가운을 벗고 섬기는 자의 자세로 내려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눈과 자아발전을 위해 노력하는(계속교육) 담임목사의 자질이다. 전통과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 동안 그 지도자는 이미 상품의 질이 떨어지고 경쟁력은 상실되는 것이다.
둘째, 예배의 갱신이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다. 그러나 다른 이론이 있다. 교회는 거룩해지는 곳이다. 교회밖에 있는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교회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예배진행과 내용은 그 목적에 어느정도 부합되는가? 이런 면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며 발전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는가?
셋째, 교회교육 구조이다. 우리의 전통적 교회사역은 주일 예배가 전체이다. 그러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온통 심방인가? 문제가 여기에 있다. 교육 혹은 제자훈련이라고 말하는 신자양육 프로그램은 평일 6일 동안에 진행되어야 한다.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향한 평일 6일 동안의 당신 교회 교육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넷째, 신학교육이다. 당신이 키운 제자들이 목회현장에 나가서 학문과 목회 혹은 신앙과 삶 사이에서 오는 갈등과 충격을 감내하지 못하여 방황하다가 뒤로 나가 떨어져 한숨짓는 모습을 아는가? 전도는 무엇인지? 영성은 무엇인지? 새벽기도는 무엇인지? 성령세례는 무엇인지? 제자들과 무릎꿇고 진지하게 대화해 보고 있는가?
다섯째, 감독과 교단정치이다. 중앙집권적 행정과 며에 지향주의는 이미 전통속에서 증명된 퇴색물이다. 후드의 길이에 대하여 목사의 자리배치 순서에 대하여 싸우고 있는 동안 교인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텅텅비어 빈좌석만 늘어나고 있다. 조직을 관리한다는 용어가 나올때부터 이미 영성이란 말, 거룩이란 용어는 잊어버리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여기에 성공이 있고 성취가 있다고 생각하는 목회 세계의 분위기이다.
여섯째, 일반 평신도 기득권 층이다. 전통과 형식에 습관이 굳어져서 신앙은 마비상태이다. 추섭에 회의 스케줄로 가득하지만 주님 말씀에 대한 풋풋한 애정도 없고 가슴에 눈물이 차올때까지 마룻바닥에 엎드려 드리는 이웃을 위한 기도도 없다. 더욱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변화하고픈 감각을 상실했다. 어지 이것뿐이겠는가? 가슴이 아프다. 중국의 덩 샤오핑은 개혁 개방 정책으로 낙후된 경제구조를 바꾸어 잘사는 중국으로 안내했다. 중세 종교개혁을 개혁주의라고도 말한다.
지금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때이다.
3.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의 연구 - NCD -
1990년대 중반에 NCD의 창립자인 크리스티안 슈바르츠는 세계 실천신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연구하던 과제를 독일 정부의 보조를 얻어 1994년에서 1996년까지 세계 50개국의 7,000 교회들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교회의 원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왔다. 사회과학적 조사 방법에 근거해 설문지를 만들어,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 그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30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다음 그 질문에 응답한 자료를 가지고 성장하는 교회의 원리들을 분석한 것이다. 슈바르츠는 18개의 각각 다른 언어로 420만 개라는 천문학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사회과학자 크리스토프 샤크와 함게 연구 조사하였다.
그 결과로 8가지의 핵심적인 원리들이 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8가지의 핵심적인 원리들은 ①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록, ② 전인적 소그룹, ③ 필요중심적 전도, ④ 영감있는 예배, ⑤ 열정적 영성, ⑥ 기능적 조직, ⑦ 은사중심적 사역, ⑧ 사랑의 관계이다.
슈바르츠는 이런 조사 겨로가들을 토대로 현대교회의 성장이론이 기술적인 방법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냈고 이로 인해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할때 진정한 교회성장이 나타나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성장은 기술적이고 인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생적이고 자연적인 원리에 그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바울이 씨를 뿌리고 아볼로가 물을 주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셨듯이(고전3;6-7),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는 과정만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성장시키신다는 의미이다. 결국 교회가 질적으로 건강하며 성장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슈바르츠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장한 교회의 모델을 찾아 그대로 지역교회에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원리들을 추출하여 그 원리를 지역교회에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회를 움직이는 추진력에 따라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8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이다. 전통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는 모든 일들이 전통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해왔다”고 이야기 한다.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는 언제나 과거를 되풀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교회의 지도자들은 변화를 싫어하며 기존의 체제가 약간만 흔들려도 용납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까지도 전통의 힘에 밀려 부차적인 요소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랄프 네이버는 “셀교회 지침서”에서 그런 교회가 하는 최후의 말은 “우리는 이전에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어”라고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한국교회에서 특히 전통이 교리가 된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전통에 빠져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단지 지켜야 할 법을 지키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법의 정체를 정직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적인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말이다.
둘째,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어떤 한 특정인, 카리스마적인 목회자, 핵심적인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나 교인들의 필요보다는 지도자 자신의 필요에 의해 모든 일이 결정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거나 죽게 되면 교회는 방향성을 잃게 된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쳐 선한 방법들을 찾지 못한채 안타깝게 교회다움을 상실해 버리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 또한 옳지 않다.
셋째, 재정이 교회를 움직이는 경우이다. 재정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의 가장 큰 관심은 “돈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이다. 또한 재정을 쥔 사람에 의해 움직이게 되며, 재정확보를 위해 교회다움을 포기학 된다. 교회가 돈이 나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고 그렇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등을 보인다면 이미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은 돈을 주님의 자리와 비교하면서까지 두 주인을 섬기지 말 것을 경고하셨다. 돈은 그만큼 교회를 위협하는 강한 세력이다.
넷째,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는 모든 에너지가 교회의 프로그램에 집중된다. 좋은 프로그램만 있으면 교회가 성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잘된다 싶은 교회가 어떤 목회 프로그램을 공개하기라도 하면 그곳으로 몰려간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들은 세미나만 열리면 모두 참가하는 세미나병에 걸린 경우가 많다. 그런 교회의 성도들은 목사가 세미나를 간다고 하면 겁부터 낸다. 이번에는 또 어떤 프로그램을 배워와서 우리를 힘들게 하려나 하고 생각하니 성도들에게도 고통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세미나의 효과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세미나의 흥분이 가라앉고 제정신이 들면 현실은 더욱 답답할 뿐이다. 세미나에 참가했을 때에는 무언가 흥분되는 것이 있는데 교회에 돌아와 보면 적용할 수가 없어 의욕이 식어버리는 일명 ‘히로뽕세미나;의 결과이다. 목회는 결코 깜짝쇼로 승부할 수 없을만큼 그 범위와 깊이가 심오하다.
다섯재,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이런 교회에서는 건물을 사거나 건축한 후에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교회 예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윈스터 처칠경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건물의 형태를 만들지만, 후에는 건물이 우리의 형태를 만든다”고 말이다. ryglh는 건물이 아니다. 건물보다 천배 만배 중요한 것이 사람이며 그 영혼의 소생이다. 건물이 한 영혼을 다치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한 것이다.
여섯째,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교회가 하는 일에 분명한 목적도 없이 그냥 바쁘기만 하다. 행사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의 달력을 보면 교회의 목적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ㅇ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출석률을 가지고 교인들의 충성도와 성숙도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행사의 목적이 언제나 양적 성장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행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사의 목적이다. 그 목적이 교회다움을 담보하지 않는 이상 진정한 교회다움은 행사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다.
일곱재,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에서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불신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물론 구도자의 필요와 상처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교회의 모든 계획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 교회 앙ㄴ에서 성도들 사이에 형제애를 가지고 교제를 나누는 일 또한 교회다움을 세상에 증거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일차적으로 그들이 더욱 감동받는 예배를 드려야 하며, 그들을 위해 다양한 신앙 프로그램들이 있어야 한다. 구도자에 대한 사랑이 자칫 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경우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덟번째,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이다. 오늘날 무엇보다 필요로 하는 교회는 다른 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교회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대안으로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곧 비전이 이끌어 가는 교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