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4:1-23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려면
느4:1-23까지의 말씀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려면 이란 제목으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분이 목회를 늦게 시작했는데 전도서로서 처음 학생회를 맡아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예배에 참석도 잘 안하고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가 어떻게든 아이들을 교회로 나오게 하려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토요일마다 모이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번 주에는 맛있는 것을 만들어 줄테니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먼저 온 학생들과 예배를 드리고 돌려보내고 7시간을 더 기다렸습니다.
먼저 왔다 간 학생들이 가서는 전도사님이 아직도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까
아직 안온 학생들이 7시간만이 오게 돼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다음주에도 안 오면 올 때까지 기다렸더니 나중에는 학생들이 쵸코파이를 사가지고
일찍 오더랍니다.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까 학생들이 포기하고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하는 전도사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 학생들의 가치관이 바뀐 겁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자기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하고 나하고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느껴져야 되고
보여져야 되고 알아져야 될 때까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아니고 교회 나오고, 출석하고,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찬송 드리는 것을 신앙생활로 착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에게 드려지려고 하면 가치관이 올바로 서야 드려집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성벽을 완성해 가는 속에 절반을 건축했다고 나옵니다.
성벽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관을 올바로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는 것은 심령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심령성전만 건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성벽이 쌓아져야 됩니다.
그래야 들어올 것은 들어오게 하고, 못 들어 올 것은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만 건축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성벽이 건축되어야 하는 겁니다.
성벽은 바로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야 내가 올바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느헤미야 때가 역사의 마지막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산발랏, 도비야가 성벽을 못 세우게 계속해서 방해를 하고 조롱을 하고
힘들게 합니다.
유다사람들도 10번이나 느헤미야를 불러서 대적들 때문에 못하겠다고 낙심도 하지만,
한 손에는 칼과 창과 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일을 해서
성벽을 절반의 고를 마쳤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벽을 올바로 세우려고 많은 방해가운데도 절반을 세웠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우리 삶에서 가치관이 올바로 세워지려고 할 때에 많은 방해를 받게 됩니다.
뭐라고 하냐면 \"적당히 믿어\" 그럽니다. 그것도 우리의 방해물입니다.
적당히 믿으라는 것은 세상 말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는 겁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는 것을 믿는 것이지 내 행위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 주님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것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느4:3-5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첫 번째 조롱해도 기도하여 마음을 다해야 올바른 가치관을 세울 수 있습니다.
1절에 산발랏이 분노하며 비웃으며 얘기를 합니다.
\"유다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는가?\" 비웃습니다.
그리고 도비야는 \"너희들이 만든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겠다\"고 합니다.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진다고 비웃고 있을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벽을 세울려고 애를 썼더니 4장에서 절반까지 완성합니다.
4:6절에 성벽을 건축하여 고가 절반에 미쳤다고 합니다.
조롱하고 비웃으며 방해할 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 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서
여기가지 왔다는 사실을 관과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려고 하면 정말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너만 하나님 믿냐\" \"꼭 그렇게만 해야 되냐?\" \"적용은 무엇이고 해석은 무엇이냐?\"
\"그냥 살면 되지. 그냥 믿으면 되지\"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아직 신앙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앙은 연수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방해가 있을 때 하나님을 붙들고 가느냐입니다.
느헤미야도 여러 방해가 있을 때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서 앞으로 갔더니
절반을 이루었다는 겁니다.
신4:29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만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가치관이 올바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아주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 왔을 때 편지를 줘서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 안에 올라가서
성전 안에 펴놓고 하나님께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고 보시라고
온 힘을 다해서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바로 응답하셔서 185,000명이 되는 군사를 일시에 다 죽이고
산헤립은 자기나라로 가서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큰일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계속해서 방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랍사게를 통해서 쳐들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조롱하고 비웃어도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한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누가 조롱을 해도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느4:12-14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으나
두 번째 낙심해도 무장하여 방비를 잘해야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 방비를 하는데 유다 사람이 \"힘이 쇠약해 졌다\" 자꾸 방해를 하니까 못하겠다고 합니다.
11절에도 대적들이 \"우리가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겠다\"고 얘기를 합니다.
또 변두리에 있는 유다 사람들도 열 번이나 느헤미야를 불러서
\"대적이 죽이려 하니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면서 성벽을 못쌓겠다고 낙심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세요.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그럽니다.
절반은 일을 하고 절반은 방비를 하게 해서 대처를 했습니다.
14절을 보면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싸우라\"고
느헤미야가 얘기했습니다.
낙심돼도 무장하여 방비를 잘하라고 느헤미야가 얘기를 해서
성벽을 하나 하나 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 뜨러 갈 때도 무기를 가지고 가고, 안에서 일하면 몇 사람은 지키면서 했다는 겁니다.
사람이 자꾸 방해를 하면 낙심이 됩니다.
왜냐면 자기만 보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못 만나서 낙심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낙심을 했다가도 금방 일어납니다.
저는 \"이는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마침내 복 주려고 그런거야\"라는 말씀이 딱 오면
가치관이 딱 서요.
그러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마침내\'가 딱 서서 문제를 쉽게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 속에 실제로 만나 경험이 있어야
문제에 낙심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벧전5:8-9
8 근신하리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돌아다니니까 대적하라고 그랬습니다.
드보라는 여자 사사였습니다.
드보라는 바락과 같이 일을 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쳐들어 왔을 때 시스라가 군대 장관이었는데 바로 이 드보라가 바락과 같이 단단히 무장을 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전쟁을 해서 이기게 되어
사사기 5장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드보라는 올바른 가치관을 세운 사람입니다.
우리도 어떤 환경, 물질, 조건, 말에 낙심하지 말고 영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이겨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은 안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실제 된 말씀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3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아주 어려울 때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몇 개 있습니까? 1개만 있어도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드보라도 하나님에 의해서 전쟁을 승리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낙심돼도 방비를 잘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느4:18-20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세 번째는 방해해도 진행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올바를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도비야가 성벽을 건축하는데 방해 할 때
한 손에 무기 들고, 한 손에 연장을 들고 일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그때 19절에 뭐라고 하냐면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이게 이 역사는 크고 넓다.
우리가 성에서 거리가 머니까 너희가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들으면 다 모여라.
그리고 우리에게 나아 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라고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다고 힘을 주며 말을 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오라고 합니다.
23절에 보면 잘 때도 옷을 안 벗었다고 합니다.
군인같으면 5분 대기조였다는 겁니다.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싸울 수 있는 그런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를 방해해도 우리는 계속 진행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워진다는 것은 신앙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고 넓게 가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끝이 느헤미야입니다.
이것은 성벽건축이 역사의 끝이란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끝은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욥5:8-11
8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 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
지금 엘리바스가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니
하나님의 주권에 순응하라고 욥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방해가 있어도 우리는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 가는 일은 계속 진행해 가야 합니다.
\"이것 틀린 것 아닌가? 잘못 가고 있는 건가?\"하지 말라는 겁니다.
계속해서 진행해갈 때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시는 섭리를 믿어야 됩니다.
이스라엘의 끝이 느헤미야와 말라기로 끝이듯이
우리의 끝도 가치관이 바로 세워져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으로 마무리를 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얼마나 인정을 하고
심령성전으로 얼마나 지어지고, 내 가치관이 올바로 세워졌느냐가
우리 신앙의 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4장까지는 성벽을 절반에 미쳤다고 얘기합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끝마치고 느헤미야 6장에 가면 성벽이 완전히 세워집니다.
방해가 있을 때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진행을 시켰고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심을 믿으면서 했습니다.
역사서는 \'에스더\'서가 제일 마지막인데
그것은 \'에스라\'서 6-7장 사이에 있는 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가 왜 역사서의 제일 마무리에 있느냐면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성전도 건축된 사람이고, 성벽도 건축된 사람이라고
역사서 마지막에 있는 겁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많은 방해를 있었지만 하나님이 섭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가서 얘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데서 구원할 것이라고 하니까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잖아요.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가치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첫 번째는 조롱해도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려고 애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낙심돼도 무장해서 방비를 잘하고 또 나를 잘 지켜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세 번째는 방해를 해도 계속해서 나가야 합니다.
나가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것을 언제가 이루실 것을 믿고 나갈 때
올바른 가치관이 세워질 줄 믿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방해하고 협박하고 힘들게 해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마음을 다하고, 무장하고, 방비를 잘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진행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