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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로서 작중 인물을 배역하다보면 묘한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한다. 선한 얼굴에 악역을 맡기고 싶고, 반대로 악한 분위기의 얼굴에 선한 역을 맡기고 샆어진다는 것이다. 특징은 잘 생긴 얼굴에 악한 역을 맡겼을 때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고 못생긴 얼굴이 선한 역을 했을 때 그 선함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그 생동감이 더한다는 것이다. 얼굴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결국은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한다.
얼굴은 환경에 의해서 즉, 교육과 지위 그리고 부의 정도 등에 따라 달라지며 실제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그사람의 얼굴의 생김새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기 보다는 환경이 그 사람의 얼굴을 결정하고 운명까지 결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성형 수술이 횡행하고 있는 요즘은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마저 서구 문화와 상업주의로 조작되고 있어서 누가 정말 아름다운 얼굴인지 어떤 얼굴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얼굴인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아름다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하고 갈등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다운 얼굴에 추함이 있고, 못생긴 얼굴에 아름다움이 있으며 또한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같은 얼굴도 신분에 따라, 지위와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아무리 보기에 따라 주관적이고 계기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긴 해도 그것이 도덕성에 기초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의 본질은 쉽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장품 모델의 얼굴이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고 해도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삶의 진실이나 도덕성과는 무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영화 역시 아무리 완성도가 높더라도 도덕성을 결여하면 감동과는 무관하게 마련이며 오히려 보는 이에게 고통을 주기까지 한다. 요즘 정치인들의 얼굴이 더없이 공허해 보이고 때로는 보기에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매스꺼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삶의 진실한 목적과 도덕성의 결여, 나라를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나라사랑하는 마음의 결여 때문일 것이다.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은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대변인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얼굴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행복함이 보여지고 있습니까?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잠 15:13-33 마음의 즐거움
예수를 믿는 사람의 가장 첫째되는 증거는 마음의 평안함이다. 다시 말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의 마음이 즐거운 삶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1.근심을 없이해야 마음이 즐겁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본문 13절에 보면 <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랬다.
--근심은 두종류가 있다. 1)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를 이루게 함. 2)세상 근심 -- 심령을 상하게 함.
그래서 고린도후서 7: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계속해서 바울은 11절에서 말씀한다. <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근심을 몰아내야 한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가 왜 근심하는가? 우리가 근심하므로 우리의 염려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가? 편안히 살자. 왜 세상근심 다 짊어진 사람처럼 살려고 하는가? -- 어느 분은 만나기만 하면 죽는다는 소리만 해서 사실은 만나기가 겁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또 무슨 소리를 할까? 하고 지레 걱정이 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되든지 안되든지 하나님께 맡겨 보자. 그리고 기도해 보자. 그래야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근심을 몰아내는 삶이 되시기를 바란다.
2.마음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참된 진리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14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의 진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의 참된 즐거움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신앙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생활 속에서 항상 즐거움이 넘치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편 119:98-100...<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하나님을 바라자. 그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자.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살자.
3.선하게 사는 사람이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다
본문 15절...<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이말을 다시 번역하면 < 고난받는 자들의 모든 날들은 험악하나, 마음이 선한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라는 말이다.
선하게 살면 마음이 즐거운 법이다. < 매맞고 들어온 사람은 두 다리를 뻗고 자지만, 때리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잘 수 없는 것이다.> 이 선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의 재산이다. 우리 신앙인의 책임이고 사명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1)근심하지 말자. 2)진리를 구하자. 즉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자. 3)선하게 살아가자.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예수 안에서 참된 즐거움을 누리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