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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시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전역,온두라스 일대에 퍼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대에 형성시켰던 찬란한 문명을 우리는 마야 문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안목을 가지고 보아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이 고대의 문명은 A.D850-950년경에 별다른 이유없이 갑자기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후세 사가들은 마야문명을 대하면서 신비스러운 의혹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침입을 받은 흔적도 없고 자기들끼리 싸운 흔적도 없이 일시에 사람들이 증발해 버림으로 끝나버린 마야문명의 신비는 도데체 무엇일까? 역사학자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마야문명의 소멸 원인을 규명하고자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요성이 있는 연구로 이런 것이 있다. 마야문명은 지도계층의 각종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그 도시로부터 하나 둘 씩 또는 집단으로 도망을 하므로서 소멸했다는 학설이다. 즉, 무거운 세금, 각양각색의 추징금, 그리고 군인과 마야신의 횡포, 이런 것들에 피를 빨린 어진 백성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무조건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즉 마야문명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을 이끈 폭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자기의 삶의 터전을 버리지는 않는다.
중국의 고전 [예기]라는 책을 보면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갈 때라고 한다. 한 여인이 무덤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공자가 그 연유를 묻자 여인은 대답했다. 우리는 이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남편이 그랬고, 오늘은 내 아들이 호환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가 그렇다면 왜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그 연인은 대답했다. 비록 호랑이 때문에 무서운 곳이기는 하나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기에 주저앉아 있었다고 한다. 공자는 돌아와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일렀다.
강자로서 약자를 수탈한다는 것은 자기의 이기적인 삶에 유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약자가 살 수 없는 사회는 마침내 강자도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태복음 19:19에서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소외된자들이 들어서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쇠퇴의 길을 걸어갈 징조는 아닌지....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마 18: 5-10
소자들에 대한 사랑
1. 실족케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1)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하면
5-10절까지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을 실족케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기 실족케 한다는 말은 원문에 ‘스칸달리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의 스캔들(scandal)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스캔들이 많다고 하면 남녀관계를 많이 생각하지만 스캔들의 본래의 뜻은 남을 넘어지게하고 거리끼게 하고 거침돌이 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스캔들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관계의 의미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 재정적인 관계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금을 유용했다든지 하면 스캔들에 빠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린아이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주의 말씀으로 잘 훈계하고 가르쳐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어린아이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지옥에 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넘어지게 하는 자, 실족케 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실족케 하는 자들에 대해서 아주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연자맷돌이란 어떤 것입니까?
맷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여자들이 집에서 흔히 콩을 갈때 사용하는 맷돌은 가볍습니다.
그러나 연자맷돌은 소나 나귀가 끄는 아주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사기에 보면 삼손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최후에 드릴라의 간교한 계획에 빠져 범죄하고 완전히 양쪽 눈을 뽑히우고 나서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연자맷돌입니다.
그런데 연자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우는 것이 낫다는 것은 일종의 사형법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사형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가장 흔한 유대인들의 사형법은 죄인을 가운데 놓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돌을 하나씩 던져서 돌무덤을 만들어 사형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로마사람들의 사형방법 가운데 아주 무서운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사형을 시키는 방법으로 국가를 반역했다든지 아니면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경우 십자가형에 처합니다. 그리고 연자맷돌을 이용한 사형법이 있는데 부모를 죽였다든지 혹은 사회의 도덕을 문란케 하는 사람들은 연자맷돌을 목에 메워 물에 넣고는 수장을 시킵니다. 그런데 차라리 그게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넘어뜨리는 자, 실족케 하는 자는 지옥불에 던지우기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실족케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를 하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소자들을 무시하지 말라
7절 이하에 보면 너희들이 어린아이들을 실족케한다든지, 혹은 손이나 발이 실족케 하거든 차라리 그것을 찍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눈으로 범죄하고 죄옥에 가느니 차라리 빼버리는 것이 낫다, 손으로 자꾸 죄를 지으니 손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자꾸 가니까 차라리 발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 그래서 이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셔서 잘라버리지는 마세요. 눈으로 범죄했다고 해서 눈을 뽑고, 팔로 범죄했다고 해서 팔을 자르고, 가지 말아야 할 곳, 죄짓는 곳으로 갔다고 발을 잘라버리면 우리 가운데서 양쪽 눈을 안뽑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양쪽 팔을 안자를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양쪽 발을 안자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아주 단호한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라는 것은 너무너무 무서운 것이다, 그러니 인정에 끌리지 말고 단호하게 결단을 해야할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10절에서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삼가 이 소자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소자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소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여러분, 이 소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앞에 보면 어린아이들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분명히 이 세상의 나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뒤에 와서는 소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소자들, 이 단어는 나이만 어린 사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소자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기 스스로 혼자 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너무 가난해서 혼자 설 수 없는 사람들,
육체적으로 장애자이기 때문에 혼자 설수 없는 사람들,
혹은 질병으로 인해서 혼자 설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다 소자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이가 어려서 혼자 설 수 없는 사람들이나 나이는 비록 많지만 장애가 있거나 질병에 걸렸거나 너무 가난해서 혼자 설수 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