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에 대한 사랑

[주님의시선] 일일예화말씀묵상 2010년 11월 6일 (토) - 호랑이 보다 무서운것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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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시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전역,온두라스 일대에 퍼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대에 형성시켰던 찬란한 문명을 우리는 마야 문명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안목을 가지고 보아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이 고대의 문명은 A.D850-950년경에 별다른 이유없이 갑자기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후세 사가들은 마야문명을 대하면서 신비스러운 의혹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외적인 침입을 받은 흔적도 없고 자기들끼리 싸운 흔적도 없이 일시에 사람들이 증발해 버림으로 끝나버린 마야문명의 신비는 도데체 무엇일까?
역사학자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마야문명의 소멸 원인을 규명하고자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요성이 있는 연구로 이런 것이 있다.
마야문명은 지도계층의 각종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그 도시로부터 하나 둘 씩 또는 집단으로 도망을 하므로서 소멸했다는 학설이다.
즉, 무거운 세금, 각양각색의 추징금, 그리고 군인과 마야신의 횡포, 이런 것들에 피를 빨린 어진 백성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무조건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즉 마야문명의 멸망의 원인은 그들을 이끈 폭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자기의 삶의 터전을 버리지는 않는다.

 

중국의 고전 [예기]라는 책을 보면
공자가 태산 옆을 지나갈 때라고 한다. 한 여인이 무덤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공자가 그 연유를 묻자 여인은 대답했다. 우리는 이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남편이 그랬고, 오늘은 내 아들이 호환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가 그렇다면 왜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그 연인은 대답했다.
비록 호랑이 때문에 무서운 곳이기는 하나 가혹한 정치가 없는 곳이기에 주저앉아 있었다고 한다.
공자는 돌아와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일렀다.

강자로서 약자를 수탈한다는 것은 자기의 이기적인 삶에 유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약자가 살 수 없는 사회는 마침내 강자도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행복한 삶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태복음 19:19에서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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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소외된자들이 들어서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쇠퇴의 길을 걸어갈 징조는 아닌지....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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