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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느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 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용서는 하나님 때문에 해야하고 용서 받아야 할 너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용서하며 사는 생활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는 나의 약하고 모난 부분, 내가 싫어하고 깊이 가려두었던 부분을 찾아 그것을 나의 진짜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마 7: 3-5]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빼리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성경 : 눅15:1-10. 제목 : 서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살자
인간은, 일평생 사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가깝고 좋은 관계도 있고, 가까이 살지만 나쁜 관계 도 있습니다. 반면에, 멀리 있으나, 늘 곁에 있는 사람처럼 친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좋은 관계는, 서로 깊은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요구할 수 있는 관계, 또한 상대방이 달라고 하기 전에, 그 필요를 알고 채워줄 수 있는 관계가, 정말 좋은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엇이든지 자꾸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며 산다는 그 자체가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랑을 베풀고 싶은 사람, 기도해 주고 싶은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그런 관심과 사랑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그와 반대 방법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타인이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알리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 하나가 예배 시간에 커다란 태양모를 쓴 채 참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하는 집사님이 그 청년에게 찾아가서, \"예배 시간에는 모자를 벗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엉뚱하게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거듭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이 그 청년에게, 큰 모자를 쓰고 예배에 참석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저는 교회 나온 지 4개월 되는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 모자를 쓰고 나오면 말을 걸어 주리라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모자를 벗으라고 말해 주는 분이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해괴한 행동을 해서라도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의 청소년들이 유별나게 튀는 행동을 하거나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바로 그런 의도에서 하는 짓입니다.
이런 행동은, 어른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행위가, 복장이나 어떤 우스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돈과 명예를 내세워서, 자기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하고 헐뜯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 10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 당시 사람들이 멀리하던, 세리와 소문난 죄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까이 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며 따르는 분이라면, 적어도 자기들과 함께 지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들이 싫어하는 천민들과 어울리셨으니, 그 점이 아주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눈치를 채신 주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를 그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정 어떤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시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바울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참말(딤전1:15)』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대상은 바로 죄인입니다. 나와 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신분의 높고 낮음, 남자와 여자, 전라도와 경상도, 내국인과 외국인, 노인과 젊은이. 이런 세상적인 기준으로, 죄인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는 다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 곧 죄인의 형편은 어떻겠습니까? 1.서로 무관심한 채, 삭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밖에 모릅니다. 자식 사랑이 이웃 사랑의 전부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울타리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그들은 모두, 내 뜻을 알지 못하여, 마치 깨닫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다(렘4:22)』고 했습니다. 『그들은 악한 짓 할 줄은 알지만, 선한 일 할 줄을 전혀 모른다』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이 사는 세상은, 사막처럼 삭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런 사막을 만들어놓고,
① 그 사막 가운데서 헤매는 것입니다. 죄인의 모습은 \'사막의 미아(迷兒)\'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는 자는, 그 영혼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하기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찬송 470장 후렴〉하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죄인의 영혼은 늘 불안합니다. 그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서 마음의 위로를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자신의 빈 구석을 감추면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②타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심합니다. 바로 그런 예(例)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속에는 온갖 더러운 죄가 가득하면서도, 가장 거룩한 자들인 양 위장한 채, 예수께서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다고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죄인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이었다(딤전1:16)』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크나큰 관용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다(딤전1:16)』고 말했습니다.
이런 믿음과 태도를, 우리가 갖고 산다면, 우리가 누구를 향하여 비난하고 흉을 볼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은 그보다 더 큰 허물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 타인의 죄를 따지게 되면, 그야말로 그 마음은 사막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일지라도, 자꾸 타인의 문제를 따지려 들 경우에는
③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과 원수도 친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이웃도 원수로 변하는〉지옥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웃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꾸만 정죄하는 바람에, 이 세상은 사막과 지옥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자칭 의인보다는 죄인을 더 가까이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원의 진리를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멀리하시고, 세리와 소문난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강아지를 파는 가게에, 한 어린 소녀가 찾아와서 강아지의 값을 물었습니다. 그 소녀가 가리킨 강아지는 다리를 저는 강아지였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왜, 하필이면 다리 저는 개를 사려고 하니?\"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녀가 하는 말이 \"저도 다리를 다쳐서 절거든요. 이 강아지에게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불구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 보통 힘드는 것이 아니거든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 개를 그 소녀에게 거저 주었습니다. 그 소녀가 그 강아지를 가장 잘 보살펴 줄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죄인의 아픔을 알고서, 죄인인 세상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확실히 믿고 깨달은 자라야, 그래서 그 기쁨과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야, 죄 중에서 헤매는 영혼들을 진정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전에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 죄에서 구원받아, 그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듯이, 우리 또한 2.서로 깊은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당신이 먼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내가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고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제불능이라고 치부하면, 그 사람도 나를 구제불능이라고 치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우리는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잃어버린 돈 한 푼을 찾기 위하여, 등불을 켜들고 방구석을 뒤졌다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많은 돈도 아니고 \'한 푼\'이라고 했습니다. 그 한 푼을 찾기 위하여 방구석을 다 뒤졌다는 말씀을, 저는 이웃에게서 찾아봐야 할 \'작은 칭찬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귀중합니다. 그 작은 칭찬과 존중이 사람 관계를 달라지게 합니다. 그 칭찬과 존중은 증폭되고 확대되어서, 더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한 가정과 교회, 그리고 밝고 명랑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①죄인인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용서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 죄까지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은혜의 주님을 배반하거나 마음 아프게 한 일이 한두 번 아니건만, 주님은 계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벌써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말았을 텐데,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②그러므로, 그 주님의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면, 우리가 서로 깊은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지, 멸시와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가 죽을 죄인이라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이 목표를 정해놓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웃의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지위와 형편은 변합니다. 변하는 것에 관심 두지 말고, 그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서로가 기도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③아직도 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사랑이나 선물은 없습니다. 예수를 알고 진리를 알아야, 서로의 관심과 그 대상이 같아집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 그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취득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천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서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