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역사

[주님의시선] 일일예화말씀묵상 2010년 11월 18일 (목) - 복음의 역사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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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스미스가 에버딘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어떤 손이 그의 코트를 잡아당기더라는 것이다. 스미스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다보니 옷차림이 몹시 남루한 한 작은 스코틀랜드 소녀가 손에 무엇인가 종이로 싼 물건을 꽉 쥐고 서 있었다. 스미스 목사는 헐떡거리고 서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얘 아가. 왜 그러니.\"

소녀는 종이에 싼 뭉치를 그에게 불쑥 내밀면서

\"선생님. 이것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게 뭔데 그러지.\"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온 캔디예요.\"소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였다.

\"오. 캔디. 무슨 캔딘데.\"

\"선생님 저는 새 아빠를 가지게 되었어요.\"

\"선생님. 우리 아빠는 지난 토요일까지는 한 번도 술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 이상하게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오셨지 뭐예요. 이상하다. 오늘은 아빠가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으셨을까.하고 생각했는데 그 토요일 이후 아빠는 언제나 맨송 맨송한 맑은 정신으로 계시면서 늘 얼굴이 환히 밝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제는 제가 여쭤 보았지요. 그랬더니 아빠는 지난 토요일 선생님의 집회에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올바르게 살겠대요.\"

그 말을 들은 스미스 목사는 너무도 반가웠고 용기백배하였다.

스미스 목사는 나중에 당시의 감격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일생에 그처럼 귀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내 일생이 그 한 순간을 위해 지어졌던 것같이 느껴져요.

주님을 위한 봉사의 대가로서의 그 적은 캔디. 그것이 이 다음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알게 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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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위한 누군가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이 땅위에는 이런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당신의 사역속에서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

 

[골 1:28-29]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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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활력을 얻은 사람 / 요 4:39-42

 

오늘 말씀은 사마리아 수가성 한 우물가에서 생긴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던 중입니다. 도중에 사마리아를 지나게 되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수가성 야곱의 우물에 이르러 목도 마르고 피곤하여 그곳에서 좀 쉬기로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고, 그때 사마리아에 사는 어떤 여인이 물을 길러 그곳에 왔습니다. 그 여인은 누구의 딸인지, 나이는 얼마나 되었느지, 교육수준은 어느정도인지...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어느날 물길러 나왔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곤비하였고, 문자그대로 가물어 메마른 땅에 시들어가는 풀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이시간 우리는 수가성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하였는데, 그 여인을 그렇게 변화시킨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도 함께 은혜 받고저하는 것입니다.

 

1.우리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과 그 여인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시니까, 그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대화는 여자로선 가장 아픈 상처인 과거를 들춰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 과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다녔고, 사람 접촉을 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외출이 뜸한 한 낮을 골라 물을 길러 왔던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은 그 여인의 과거를 끄집어 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부인하지 않고 시인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사람, 주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없으면 어떻고, 과거가 드러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숨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벧후3:10절하반절에 보면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 그날 예수님을 만나 다섯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러면 일생 어두운 그늘에 묻혀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과거를 들추고 상처를 건드린 것은 상처를 주고 아품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거운 과거를 청산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 부위를 치료할 때 보면 부쳐놓은 거즈를 떼낸 후 소독약으로 상처를 딱아냅니다. 그때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주일이나 열흘씩 거즈를 떼내지 않고, 딱아내지도 않고, 약도 바르지 않고 싸매어둔다면 환부는 썩어 고름이 생기고 고통은 더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들춰내서 멸시 천대하며 고통을 주고 또 그것을 악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과거를 말함은 과거를 치유하기 위해서이며, 주께서 상처를 건드리심은 그 상처에 모든 독소를 제거하고 고쳐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주님 앞에 내 모습 그대로 내어놓을 때 우리 주님을 바로 만날 수 있고 또한 모든 문제가 다 해되는 것입니다.

 

2.영생의 복과 참 만족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아서 그 여인의 과거를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보았고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보아서 그 여인의 생활이 얼마나 복잡하고 지저분 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만신창이 되어버린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보고 지금 여섯번째 다른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 여인의 갈한 심령을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움과 고통은 더해갔습니다.

그 여인의 간구 처럼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갈급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프랭크린은 ‘만족은 가난한 사람을 부하게 만들고 불만은 부한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일지기 사도 바울은 딤전6:17절에서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은 먹어도, 먹어도 또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들로 우리를 만족케 할 수는 없으며 갈한 심령이 영원히 시원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참 만족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오는 자마다 참된 평안과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예배의 주인이신 예수이십니다.

23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래 예배(라트뤼오)라는 말의 뜻은 ‘고용된 하인’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봉사하다’, ‘섬기다’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편지, 전화, 화상통신...등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만나는 방법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최상의 만남은 집접 얽굴을 대하고 손을 잡는 것입니다. 오늘날 라디오 예배, 텔레비젼 영상예배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예배는 직접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화가 있고, 컴퓨터가 있고, 사진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귀찮게 만나야 합니까? 사람은 서로 서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배도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디오나 TV영상을 통해서 교육은 할 수 있지만 예배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왜 주님은 우물 가의 여인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가르쳤을 까요?

진정한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껏해야 남자나 바라보고 웃고 우는 그녀의 저급한 삶을 영원하신 하나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복된 삶으로 끌어올려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섬기고, 남자섬기고, 그것도 제님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에게 시달리며 살던 그녀에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섬기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위대한 삶의 전환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변화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매달리고, 사람에게 매달리고, 돈에 매달리며 살던 사람이 그것들을 떨쳐버리고 복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된 것이 참 변화입니다.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진 것이 참 변화입니다. 드디어 그 여인은 사람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4.그 여인은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8절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물동이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물동이는 생활수단의 하나입니다. 물동이가 없으면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것을 버렸습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래퍼서 밥만들고, 풀입짤라 반찬 만드는 소꼽장난이 끝나고 진짜 밥먹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모래밭에 그것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갑니다. 그 밥상을 가지고 들어가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까지 죄에 파묻혀 살면서 여러 남자를 바꾸어가며 소꼽장난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너무도 고독하고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났습니다.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물동이는 그의 지나간 과거였고 어두운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버려야 할 것과 버려서는 않될 것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것, 귀한 것, 가치있는 것은 버려서는 않됩니다. 그러나 해로운 것, 유익하지 않은 것, 나쁜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찬송가에 가사처럼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라는 기쁨과 환희의 노래가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발걸음은 가벼웠을 것이고, 어깨는 덩실거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감격의 이슬이 맺혔을 것입니다.

우물가 여인의 이야기는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은 내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삶의 활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9절에 보면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거듭나고, 변화되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활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잘 만나야 합니다. 사기꾼을 만나면 사기꾼이 됩니다.

깡패 만나 사귀면 깡패가 됩니다. 허랑방탕한 사람과 만나 사귀면 주색잡기가 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 만나 사귀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 만나 사귀면 그런 사람의 인품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강을 소유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식하고 줏대없는 어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능력있는 시몬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남의 등처먹던 세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죽어가는 심령을 살리는 복음의 유능한 일군 마태가 되었습니다.

성격이 불같아서 우뢰라는 별명을 듣던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랑의 사도 요한이 되었습니다.

그뿐만아니라 해적단들인 바이킹족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오늘의 신사의 나라 영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야만민족이었던 게르만족이 예수를 만났을 때에 변하여 문화문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 날도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등 모든 분야에서 큰 역사를 이룬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9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했고, 41-42절에 보면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평소 그녀를 아는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변화된 태도와 용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소개하고 전파하는 그 확신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 때문에 사마리아 동네에 예수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내 놓을 것도 없는 한 여인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은 빌립 같은, 바울 같은 전도자도 아닙니다. 사람 만나기 두렵고, 쑥쓰러운 과거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해냈습니다. 그 여인의 삶 속에는 새 힘과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입을 열어 주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모양일까? 왜 이꼴입니까? 왜 그 여인만큼 감동도 없고, 감격도 없고, 복음도 없습니까? 우리도 그 여인 처럼 예수님을 바로 만나고 바로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새로운 삶의 놀라운 활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 여인 처럼 주님을 만난 사람들로써 그 놀라운 체험을 간증하며 그 활력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뻐하며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는 생명수가 되시며, 복의 근원이 되시며,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보화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세상의 얽매인 것들을 버리고 이 기쁜 소식을 넓리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물가의 여인처럼 주님을 바로 만나고 교제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처량하게 세상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