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 4: 4-7 11. 21. 10
지난 10월 21일 한국에서 열세(13) 살 중학생이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부모와 여동생과 할머니를 숨지게 하는 어이없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년은 사진촬영과 춤을 좋아해 예능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아버지가 판검사가 돼야 한다며 공부를 강요하면서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폭행까지 한 것에 앙심을 품고 아버지만 없으면 남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다고 한다.
중학생 방화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후 케이블 티브이 방송 엠넷이 실시한 \'수퍼스타 K2\'에서 허각이라는 청년이 100만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하므로 떠오는 별, 새로운 아이돌이 됐는데 이 청년은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인간승리의 감동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는 열네(14) 살 때, 노래자랑 대회에 처음 출전한 후 노래가 좋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가수의 꿈을 키웠는데 또래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과외공부로 책과 씨름할 때, 그는 \'가요 톱 10\'을 보면서 가수가 되는 \'영재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한 소년은 자신의 꿈과 재능을 말살해 버린 아버지께 대한 반감으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고 다른 소년은 많은 부모들이 원하는 공부의 길을 접고 10년을 하루같이 자신이 택한 음악에 도전해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다비드 상과 피에타 상을 조각한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여러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겸손하게 \"내가 조각을 하려는 대리석 안에는 원래부터 존재한 형상이 있었고, 나는 그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유명한 대답을 했다. 미켈란젤로 자신은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대리석 안에 존재했던 물체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한 사람일뿐이라는 대 조각가다운 대답이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I am crucified with Christ)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It is no longer I who live)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But Christ lives in me)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위대한 조각가는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 돌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꺼내오는 사람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위대한 사도, 위대한 목사, 위대한 성도는 자신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고 자신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사람, 이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 참 기독교인인 것이다.
자기 집을 불태워 모두를 죽인 불행한 열세 살 소년이나 자기 꿈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 정상에 오른 성공한 사람이나 이미 존재한 것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거나 없는 것을 만들어 내므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를 성공시키거나 실패시키는 사람이지만 참 기독교인들은 성공이나 실패에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만 믿는 사람,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사람인 것이다. 항상 당신 속에 계신 예수님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성도들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밀, 네 가지를 권면했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 내 속에 계신 예수님이 나타나는 성공적 신앙의 삶, 참 믿음의 사람이 살아가는 네 가지 삶을 알아본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쓴 책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 빌레몬서와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등 일곱 권이 되는데 그 중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는 젊은 목사 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를 가르친 책으로 목회서신이라 부르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The Prison Epistles 또는 The Epistles of the Captivity(옥중서신)이라고 부른다. 열한 권의 옥중서신(獄中書信) 중에 에베소서는 교회론(敎會論, Doctrine of the Church))을 다룬 책으로 유명하고 골로새서는 기독론을 다룬 교리책으로 바울의 심오한 신학사상이 들어 있으며 빌립보서와 빌레몬서는 바울의 개인 인격과 신앙적 체험이 들어 있는 일종의 윤리 책이며 간증 책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어렵게 되자 바울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빌립보 교인들은 헌금을 모아 에바브라디도(Epaphroditus) 집사 편에 보내면서 바울 곁에서 그를 봉사하게 했다.(빌 2:25)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온지 얼마 안 돼 병에 걸려 중태에 빠지게 된다. 바울을 위로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병이 들어 바울의 짐이 되자 교회는 교회대로, 바울은 바울대로 큰 근심이 됐다.(빌 2: 26-27) 그러나 얼마 후 하나님의 은혜로 에바브로디도가 회복되므로 바울이 그를 빌립보 교회로 보내면서 감옥에 있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해 준 것을 감사하여 써 보낸 편지가 빌립보서인 것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오늘 설교제목처럼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이다. 바울은 총 4장에 104절로 된 짧은 편지, 빌립보서에서 \'기쁨\'이란 말을 무려 13번 이상 언급했다.(1:4, 18, 25, 2:17-18, 3:1, 4:4, 4, 10, 18)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노라.\"
\"너희를 통해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그 방법이야 어떻든 전파되는 것은 예수님이니
그것을 기뻐하고 기뻐하노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제물로 드려진다하여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너희도 나와 함께 기뻐하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Finally, my brethren, rejoice in the Lord.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Rejoice in the Lord always. Again I will say, rejoice!
이처럼 바울은 기쁨의 사람이었다. 마치 손만 대거나 말만해도 전등불이 켜지고, 손바닥을 치거나 휘파람만 불어도 새가 노래하는 장난감처럼, 그리고 배만 만져도 꿀을 토해내는 동화속의 꿀 강아지처럼 바울은 어떤 것이 닿기만 해도, 어떤 것에 자극만 받아도 \'할렐루야, 아멘, 예수님, 하나님...\'의 기쁨이 철철 흘러 넘쳤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바울 한 사람만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기쁨이라는 것이다.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기독교는 슬픔의 종교가 아니라 기쁨의 종교, 기뻐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비관의 종교가 아니라 낙관의 종교며 현실도피의 종교가 아니라 현실참여의 종교며 의기저상의 종교가 아니라 의기충천의 종교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은 항상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으며 평안이 있다. 그래서 교회는 기쁨공동체이고 즐김 공동체이다.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를 믿어 기쁘다. 죄를 지었어도 회개와 죄 용서가 있어서 기쁘다. 하나님의 징계가 있어도 상처를 싸매주시고 문제해결이 있어서 기쁘다. 세상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축복이 있어서 기쁘고 우리 생명이 세상에서 끝나도 영생이 있기에 기쁘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고 교회는 기쁨공동체며 성도는 항상 기뻐하므로 얼굴에 주름이나 비애의 계곡이 없어야 할 축복의 사람들이다.
세상은 환경 따라 기쁨의 기상도가 바뀐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입이 벌려 함박얼굴이 됐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망한 공장 문 닫듯 입이 닫혀 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생글생글 이고 기분이 나쁠 때는 멋도 맛도 볼품까지도 없어진다. 배부를 땐 \'하하하\'였다가 배고플 때는 \'못 살겠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삶의 환경 따라 기쁨의 기상도가 바뀌는 저급종교(低級宗敎)가 아니다. 기독교의 기쁨은 조건적 기쁨, 제한적 자유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절대적 기쁨과 절대 자유이다. 예수님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노라\"(요 14:27)고 말씀하신대로 환경을 초월한 예수님의 평안과 기쁨을 소유한 사람이 크리스천인 것이다.
그러기에 두 손이 쇠사슬에 매이고 두 발에 쇠고랑에 묶이며 목에 착고가 채워진 채 감옥에 갇혔던 바울은 기뻐했고 감옥 밖에서 자기를 염려하는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중병환자가 자기를 문안 온 건강한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말하듯 바울이 고통스런 감옥에서 감옥 밖의 성도들에게 \'나와 함께 기뻐하자\" 권면한 것은 바울 속에 예수님을 통한 절대자유, 절대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포함한 유다의 멸망과 하나님이 다시 유다를 회복시킬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선지자 하박국의 기쁨선언을 보자(합 3: 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①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해도 기뻐했다. 팔레스타인의 무화과는 사시사철 잎이 푸르고 무성하며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인데 그 나무가 무성치 못하다 해도 기뻐한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으므로 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해도 기뻐한다는 고백이다. ②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기뻐했다.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지 못하면 집을 짓는 목재로도, 땔 수 있는 화목으로도...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나무이다. 포도열매가 없어도 기뻐한다는 말은 내가 많은 수고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도(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하며 수고와 투자를 많이 했는데도), 그 수고의 대가가 없어도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③ 감람나무 소출이 없어도 기뻐했다. 감람나무 열매나 기름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Olive 열매는 일용양식으로도 중요하고 감람기름은 음식의 맛을 내거나 등불을 켜는 기름으로, 아픈 상처에 발라 병을 고치는데 중요한 약재료이다. 감람나무 소출이 없어도 기뻐한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메말라 가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을 가리킨다. ④ 밭에 식물이 없어도 기뻐했다. 일용할 양식이 없을 때, 내일 일이 걱정될 때, 내일의 일거리가 없어 암담할 때도 감사했다는 말이다. ⑤ 우리에 양이 없을 때도 감사했다. 유대인들에게 양(洋)의 젖은 훌륭한 양식이 되고 깎는 털은 의복이 되며 양의 고기는 식물이 되고 양가죽은 여러 가지 생필품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이다. \'우리에 양이 없어도 기뻐하는 것\'은 삶이 막막한 환경이 되고, 교회에 성도가 없는 환경에서도, 가게에 손님이 없는 상태에서도 기뻐한다는 말씀이다. ⑥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기뻐했다.
반세기 전, 농사로 살았던 우리 집은 항상 한두 마리 소가 있었다. 사랑채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나는 사랑방과 붙어있던 외양간의 소가 가끔씩 뿔로 방벽을 받아 구멍을 뚫어서 잠을 못자기도 하고 똥오줌 때문에 모여드는 쇠파리와 모기, 등아 등 온갖 벌레와 지독한 냄새가 구멍을 통해 들어와 방을 옮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도 겨울 농한기에 소를 팔아 외양간에 소가 없을 땐 허전하고 빈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농부에게는 외양간에 소가 있어야 집안에 부기(富氣)가 있고 안정감이 돈다. 그래서 똥오줌과 썩는 퇴비 냄새가 진동해도 외양간에 소가 있어야 하듯 말썽 피우는 자식이 집을 가출해 행방을 모르는 것보다는 망나니라도 집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남편이 가출해 없는 것보다는 집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감람나무와 밭에 열매들이 없고 소출이 없으며, 양 우리와 소 외양간이 텅 비었다는 것은 생존권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현실적인 위기를 가리킨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기뻐했다는 하박국의 신앙고백은 이스라엘이 총체적으로 당면한 황폐한 경제현실 앞에서 하박국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숭고함을 가리킨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I will joy in the God of my salvation)
그렇다. 하박국의 기쁨은 In the Lord, In the God(여호와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의 기뻐함이었다. 오늘 우리의 기쁨, 당신과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이며 하나님과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환경을 뛰어넘어 기뻐해야 한다. 하박국이 생존권박탈의 위기상황에서 기뻐했을 때,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The Lord God is my strength)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He will make my feet like hinds\' feet)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He will make me to walk upon my high place)
그렇다. 오늘도 하나님은 내가 생존권의 위기상황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야훼로 인하여 기뻐하면 나의 발을 사슴 같게 하시고 나로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는 축복을 주신다. 어떤 짐승보다 산양과의 사슴은 발의 힘이 좋아 가파르고 위험한 돌산이나 높고 험준한 절벽도 자유자재로 뛰어 달린다.
얼마 전, 중국의 어느 댐 벽에 수십 마리 사슴들이 개미떼처럼 붙어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려졌다. 댐의 벽은 70-80도 경사진 수백 미터의 까마득한 벽으로 돌과 시멘트로 쌓여진 위험스런 벽이었는데 사슴들은 시멘트 틈에서 자라는 풀을 뜯어 먹으려고 기어 올라갔다고 하는데 스파이더맨이 100층 건물 유리벽을 타고 올라가듯 수많은 사슴들이 개미 떼처럼 댐 벽을 자유스럽게 걸어 다니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 \'댐 벽의 사슴\' 사진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하박국에게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이란 말씀을 생각했었다.
그렇다. 극단적인 위기의 상황, 견디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어려움의 환경에서 한숨 쉬거나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성도들에게 위난(危難)을 이기는 축복,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축복, 시시하게 살지 않는 축복, 성공자로 살게 하시는 축복, 꿈의 성취자로 살게 하시는 축복, 고상한 품격의 삶을 살 수 있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자!
그러면 기뻐하는 사람의 삶은 어떠한가? 기뻐하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이 기쁠 때 그 기쁨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는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나의 기쁨을 표시할 수 있는가? 예수 믿고 사는 모든 날 동안 성도들이 기뻐하며 사는 방법은?
① 즐거워하며 찬송한다.(대하 29:30, 시 9:2,28:7,68:3,사 49:13,61:10, 슥 9:9)
기뻐하는 성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성도의 삶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 찬송을 즐겁게 한다.
② 악기를 연주하며 즐겁게 노래한다(창 31: 27, 삼상 18:6)
③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영접(迎接)한다(요 6: 20)
편안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영접하며 살갑게 사람들을 맞는다.
④ 고통 가운데서도 근심하지 않고 기뻐한다(욥 6:10, 고후 6:10, 벧전 1:6)
⑤ 즐겁게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베푼다(대상 29:22, 에 8:17, 행 16:34)
월드컵 축구 때마다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세계 여러 나라와 한국에서 자기 나라가 16강이나 8강 4강 결승까지 가면 공짜로 맥주를 나눠 주거나 갈비탕이나 삼겹살이나 뜨거운 소머리국밥을 해장국으로 공짜 대접하 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킨 사람들이 있다. 너무 기쁘고 신이 나니까 공짜로라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줘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잔치를 베 푸는 것이다. 주를 믿는 성도들도 이렇게 이웃과 기쁨을 나누며 잔치를 베풀 어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는 더더욱 예수잔치를 자주해야 한다.
⑥ 여호와를 기뻐한다(시 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항상 기뻐하는 성도는 무엇보다 여호와를 기뻐한다. \'기뻐한다\'의 아나그는 \"여호와로 인하 여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기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로 인하여, 하나 님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기뻐하는 것이다.
⑦ 풍성한 연보를 한다.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진지라\"(대하 24:10)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⑧ 기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서울대에 합격한 아들이 고맙고 기뻐서 논밭전지 다 팔아 학비를 대듯, 사랑 하는 사람에게 구혼 프러포즈를 하기위해 다른 것 다 팔아 다이아 반지를 사 듯 기뻐하는 것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고 포기한다.
⑨ 춤을 춘다(삼하 6:15-16, 행 3:8-10)
다윗은 법궤를 모실 수 있는 기쁨에 옷이 벗어지는 줄 모르도록 춤추며 찬양 했고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미문 앞 거지는 병 고침 받음에 기뻐 뛰며 춤추면 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다.
⑩ 재물에서 자신까지 허비(虛費)한다.(고후 12: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자신까지 허비하리라\"
허비한다는 다파네소는 \"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정력과 사랑을 모두 희생하 고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은 이웃의 영혼을 구원 하기 위해 돈 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기꺼이 희생하고 그 희생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 안에서 기뻐함으로 많은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축원한다.
2.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절)
Let your moderation be known to all men.(너의 관용과 온화함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예수 믿는 성도로서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이다. 관용(寬容, 토 에피에이케스)는 \"손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쉽게 동요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키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가리키며, \"사소한 문제 때문에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것(목사님이 나를 무시하니 수요, 금요예배 안 나가겠다...), 악의와 고집을 피하는 것, 서로에 대하여 자비하게 판단하는 것\", \"중상 모략하는 자에 대하여 용서하는 마음\", \"박해에 대한 온유한 마음\", \"사무 처리를 공정하게 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것\", \"남의 성격이나 행동을 비판함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 \"세상적인 쾌락에 대한 절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일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우에는 손해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에 양보의 태도를 취하는 정신이고 그 일이 신앙원리에 대한 경우에는 반석같이 굳은 믿음 위에 서서 양보하지 않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목사님은 도량이 넓은 분, 그 권사는 아량이 많은 분, 그 집사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게 되라는 말씀이며 \'그 장로, 권사님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신앙만큼은 절대 양보나 타협이 없는 분\'이라는 칭찬을 들어야 한다.
성도들이 관용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에\" (The Lord is at hand; The Lord is near), 호 퀴리오스 엥귀스이다. 호 퀴리오스 엥귀스란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소원하여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마라나 타\"(\"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 22:20의 변형 구절)를 인사했듯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는 것을 믿기에 모든 핍박을 인내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며 살라고 권면한 것이다.(약 5:7-9)
모든 것이 부족한 목사며 도량이나 아량이 다른 분들보다 좁은 김목사, 그래서 목사 중에 가장 작은 목사지만 나를 대신해 다른 목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거나 내가 할 일을 다른 분이 하므로(뺏음?)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으로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축복을 빌 수 있는 것은 다시 오실 주님이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남녀선교회장이고 장로 권사 집사인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교회를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았으면, 내가 맡은 잔디 깎는 일을 내 대신 누가 했거든, 내가 하려던 목수 일을 다른 사람이 해 놓았으면, 내가 공들여 전도해놓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 교회에 데리고 왔다면, 내가 맡은 꽃꽂이를 내 허락도 없이 누가 해 놓았다면, 기분을 상하거나 불쾌한 마음을 갖는 대신 그 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함으로 나의 관용(寬容)을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기를 축원한다.
사단(Satan)이 화가 잔뜩 났다. \'아직도 그 목사를 잡지 못했는가?\' 새끼 마귀는 대장 마귀에게 야단을 되게 맞았다. 그래서 새끼 마귀는 평소 불평불만이 많은 K집사를 찾아가 말한다. \"목사가 K집사가 사준 구두를 신지 않고 B집사가 사준 구두만 매주 신고오고 당신이 사준 넥타이는 매지 않고 P집사가 사준 넥타이만 매지 않느냐? 목사가 분명히 너보다 B집사와 P집사를 더 사랑한다.\" 마귀의 충동질을 받은 K집사는 질투와 미움과 분쟁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러자 마귀는 \"내가 가르쳐주지. 네가 세 가지를 지켜 행하면 목사는 반드시 교회에서 쫓겨난다. 첫째, 항상 비판하라. 둘째, 쉬지 말고 헐뜯어라. 셋째, 범사에 불평하라\" 마귀는 거듭거듭 목청을 높여 강조하였다. \"목사를 잡으려면 항상 기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해서도 안 되고 범사에 감사해서는 결코 당신 계획을 성공할 수가 없다.\"
그때부터 K집사는 항상 목사님의 설교를 비판하고 교회행정과 목회치리 등등 사사선건 비평하고 불만을 토한다. 그리고 목사님의 언행심사를 비판하고 헐뜯었다. K집사의 지방방송은 전화로 밤낮없이 교인가정에 방송됐다. \'목사(牧師)가 돈에 욕심이 많다. 목사가 독재를 한다. 목사가 은혜가 없다. 목사가 기도를 안 한다. 목사가 사랑이 없다. 목사가 심방을 안 한다. 목사가 인간차별 한다. 목사가 잔소리가 많다. 목사가 성격이 급하고 성질을 잘 부린다. 목사가 게으르다. 목사가 잠이 많다. 목사가 사치한다. 목사가 불친절하다. 목사가 고집이 세다. 목사가 명예만 안다. 목사가 누구하고만 친하다...\' 마침내 얼마 안가 교회는 시끄러워지고 두 패, 세 패로 갈라지니 마귀는 춤추고 K집사는 득의하여 더욱 목사를 괴롭혔다.
P목사는 울면서 교회를 떠났고 후임 목사도 6개월 만에 떠났으며 세 번째 후임도 일 년도 못돼 교회를 떠났다. 4년 동안에 다섯 사람의 목사가 교회를 지나갔는데 더 이상 문제교회를 오겠다는 목사가 없다. 남아 있던 성도들이 교회를 개척했다가 떠난 P목사를 찾아와 목양을 부탁하므로 여섯 번째 담임목사로 다시 오게 됐는데 그 동안에 K집사는 하나님의 징계로 중병을 앓고 있었다. P목사의 병문안을 끝으로 K집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몇 년 후 교회는 다시 일어나 크게 부흥됐다는 간증이다.
당신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귀한 신앙의 사람들, 큰 그릇의 성도, 마음 넓은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6상)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Be careful for nothing!(메덴 메림나테), \"모든 염려를 중단하라\", \"생명의 궁핍과 곤란 때문에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마음이 동요(動搖)되지 말라\"는 말씀이다.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현재 명령법의 말씀이다. 모든 염려는 두려움에서 온다. 두려움은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있는 두려움과 아무 대상이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데 두려워할 대상이 없는 두려움은 불안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있는 두려움은 공포와 염려이다.
종업원이 냉동실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주인이 냉동실 문을 잠가버리고 퇴근을 했다. 그 다음날 주인이 와서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종업원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냉동실에 벽에 \"나는 이 냉동실 안에서 얼어 죽어가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냉동실은 기계가 고장이 나 있었기 때문에 기계작동이 되지 않았었다. 종업원은 \'냉동 칸에 갇혀있으니 분명히 얼어 죽을 것\'이란 심리적 불안과 염려 공포로 밖의 온도와 같은 상황에서 얼어 죽은 것이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죽은 사람보다 전쟁에 나간 아들과 남편 걱정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염려와 공포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두려움, 염려, 불안, 초조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보다 더 무서운 살인무기이다. 마귀는 이렇게 사람을 염려와 불안으로 파멸시킨다.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Be anxious about nothing!-\"어떤 것도 염려나 근심하지 말라\"; Do not tolerate anxiety or worry-\"염려, 불안, 근심, 걱정과 애태움과 안달, 고민을 너그럽게 봐주지 말라, 허락하지 말라, 묵인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다\"(딤후 1:7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If God is for us, who is against us?; 롬 8:31)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You are Mine!)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 1하-2)
한국 사람들의 말 중에 아주 잘못된 말이 있다. 목사님이나 아는 사람이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업은 좀 어떤가요?\" 그러면 \"...염려덕분에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과연 목사님이 염려해줘서, 부모나 친구가 염려해줘서 당신이 잘 지내는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고 \'염려와 걱정 리스트\'를 만들어서 밤낮 쉴 새 없이 여러분을 위해 염려와 걱정을 할 것이다. \"목사님의 기도덕분에 사업이 잘 됩니다!\" \"목사님 기도덕분에 가정이 평안하고 아이들이 잘 자랍니다.\"
목사가 염려한다고 당신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 부모와 형제가 염려한다고 당신 가정이 행복해 지지 않는다. 당신이 염려한다고 작은 키가 고무줄 늘어나듯 커지지 않고 빠져버린 머리칼이 다시 나거나 희어진 팥 뿌리의 머리가 먹물 같은 검은 머리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 우리 인생, 수많은 모양으로 내게 다가오는 내일들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와 근심 대신 기도와 찬송으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19세기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1809-1847)이 어느 예배당에서 값비싼 전자 오르간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연주해 보고 싶어서 그 예배당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때 한 젊은 연주자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멘델스존은 기회를 보아 젊은이에게 오르간 연주를 부탁했지만 젊은이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경험도 없는 당신이 감히 이 값비싼 오르간을 연주하려느냐?\"며 두 번씩이나 핀잔을 주며 치지 못하게 했다. 세 번째 연주해볼 것을 요청하자 젊은이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예배당을 나가 버린다. 그때 멘델스존은 오르간을 조용히, 장엄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예배당 문을 나가려던 젊은이는 그 음악에 반해 황급히 오르간 있는 곳으로 돌아와 멘델스존을 우러러보며 물었다. \"선생님이 누구신지 말씀해주십시오\". \"제 이름은 멘델스존입니다\". \"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선생님이 누구신줄 모르고 너무 큰 실수를 했습니다. 감히 제가 음악의 대가이신 선생님께서 제 자리에 앉아 저의 악기를 연주하시지 못하게 하다니요\"
오늘 우리는 인생이라는 건반을 건반에 무지한 자신들이 조작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은 지금 \"나로 하여금 네 건반을 만지게 해다오. 그리하면 너에게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해 주겠노라\"...말씀하신다. 나보다 눈 밝고 나보다 귀 밝으시며 나보다 손 정확하시고 나보다 발 빠르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염려를 맡기시므로 복된 사람을 살아가길 축원한다.
4.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절)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다. 기도하되 길가에 걸인이나 홈리스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한 푼 적선을 구하듯 동정을 구하는 구걸기도가 아니고 돌이나 나무 우상 앞에 백번 천 번 절하면서 소원을 비는 동냥기도가 아니라 아들이 부자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한 혈통이요, 아버지의 소유가 아들의 소유인 부자동등법칙(父子同等法則)의 요구기도이다. 그래서 주인에게 아양 떨고 꼬리쳐야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는 개처럼 기도에 하나님께 잘 보이려는 감언이설이나 교언영색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필요치 않다.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는 청산유수의 말 잘하는 유식한 기도가 아니다. 아들과 딸이 아버지 호의에 감사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듯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기도와 간구를 하는 것이다.
기도와 간구(Prayer and Supplication; \"기도와 탄원\") 프로슈카스와 데에세이스.
기도(祈禱, Prayer, 프로슈카스)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나 헌신에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가리키고 간구(懇求, Supplication, 데에세이스)는 \"개인적으로 긴박한 상황에서 특별한 문제해결을 위한 애원이나 탄원\"을 가리킨다.(엡 6:18, 빌 4:6, 딤전 2:1, 5:5) 이러한 일반적인 기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의 일반적인 모든 기도에서와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기도, 긴박한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하는 간구에서 반드시 해야 할 기도의 조건은 감사라는 말씀이다. 어떤 요리에서도 소금이 있어야만 그 맛을 내듯 모든 기도와 간구에 감사가 있어야 응답된다는 말씀이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感謝)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In every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그렇다. 예배를 위한 짧은 목회기도에도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의 긴 기도에도,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심기도와 통성간구에서도 감사가 빠지면 안 된다.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기쁜 감정이고, 하나님을 전폭으로 믿는다는 신뢰감정의 표시이다. 그래서 감사 없는 기도는 원망이며 염려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열납(悅納)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감사간구들이 응답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나사로 무덤 앞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보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Jesus lifted up His eyes, and said)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Father, I thank Thee that Thou hast heard Me)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예수님의 기도는 지금까지 모든 기도를 들어주심에 감사기도였고 지금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의 감사며 지금 이후에도 기도를 들어주실 것에 감사이다. 나사로 무덤 앞에서의 예수님의 감사는 응답전의 감사이다. 그렇다. 기도응답에 감사도 위대한 기도이지만 응답전의 감사는 더 위대한 기도이다.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한 예수님의 기도처럼 응답전감사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듯 하나님의 도움들이 당신의 삶속에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우리가 모든 일에 염려하는 대신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아뢸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7절) \"지키시리라\"(Shall keep), 프루레세이란 로마군대의 수비대가 보초를 서듯 \"호위(護衛)한다\"는 군대용어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파수꾼처럼 기도하는 성도들 마음과 생각을 호위할 것이란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평강(The peace of God), 하나님에게서 내려와 내 마음에 깃들이는 평화, 성도의 마음에 성령의 열매로 임하는 평강, 모든 염려의 해독제인 평화, 모든 기쁨의 반려자인 평강이 우리 애정의 보금자리인 마음, 나의 뜻과 감정과 지각의 내 중심과 우리 이지의 출처인 생각과 마음에서 나오는 불안한 판단과 잘못된 계획을 하나님의 평강이 지배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평화가 임한다는 말씀이다. 그 평강은 우리를 어려움을 당하여 죄짓는 데서 그리고 죄 아래로 떨어지는데서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감정의 불안을 없애주며 내적만족을 부여할 것이며 우리를 평온하고 침착하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으로 기쁨의 삶, 감사의 삶, 성공적인 신앙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