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② 눅 17: 11-19절 11. 14. 10.

 

요즘 한국에서는 경북대 김두식 교수가 쓴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책이 화제이다. 책의 내용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할 변덕을 부리는 짓인 \'지랄\'의 총량(總量)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인데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는데, 어떻든 사람은 죽기 전까진 변덕 부리는 지랄의 양을 반드시 다 쓰게 돼 있다는 것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성경적으로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는데 우리 주위엔 중고등학생시절에 망나니였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점잖은 청년이 된 사람, 어렸을 땐 수줍음 잘 타고 얌전하여 지랭(至冷: \"지독하게 참하다\")했던 학생이 군대갔다온 후 활발하고 씩씩한 청년이 된 사람, 젊었을 때 지랄쟁이(\"지랄병에 걸린 사람\")처럼 방탕했던 청년처녀가 나이 들어 결혼한 후 가정에 충실한 사람, 젊었을 땐 아내와 자녀들에 충실하고 생활이 지랭해 모범적인 가장이었으나 나이 들어 늦바람이 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예외로 젊어서부터 늙기까지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있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 말씀과 성령으로 은혜 받아 변화된 사람은 \'지랄 법칙\'이 없어야 정상인데 간혹 \'지랄 법칙\'이 찌꺼기로 남아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 \'지랄 총량의 법칙\'은 부조리 투성이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 아빠와 같은 지질이(지질컹이: 무엇에 지질려 잘 되지 못하는 사람이나 물건)로는 살지 않겠다.\"며 당돌하게 선언하고 매사에 부모와 충돌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사춘기 딸의 행동을 보면서 저자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은 책으로 \'예전엔 정숙했는데 나이 들어 늦바람이 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싹수가 없는 자식이 나중에 효도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그럴 수 있을 것\'이란 대답을 내 놓으면서 저자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염두에 두고 문제아가 된 아이들이나 남편, 가끔씩 지랄버릇이 발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기대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사는 지혜를 가지라며 권면한다.

 

\'지랄총량법칙\'과 맥락을 같이하는 한의학(韓醫學) 이론으로 \'원기총량의 법칙\'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평생 쓸 수 있는 양의 타고난 기운인 원기(元氣)를 가지고 태어난다. 원기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는 선천적인 기운으로써 젊은 시절에 무절제한 방탕생활을 한 사람은 쉽게 늙고 병약해지며 수명도 짧아지는데 이것은 원기저장고인 신정(腎精)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고 건강할 때 원기를 잘 관리하고 안배하여 사용하면 백년해로도 하고 원기 충만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원기총량의 법칙이다.

이렇게 지랄총량의 법칙, 원기총량의 법칙을 말하며 사람의 일생을 총량법칙에 적용하려는 사람 중엔 \'행복총량의 법칙\'도 있을 것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그래서 \'일생에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쪼그라들 수도 있고 지금 처량한 신세를 겪어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행복 총량법칙의 운명론을 믿으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운명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축복을 창조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축복창조론(祝福創造論)을 가르친다. 그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Your faith has made you whole)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의 믿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믿음이 어려운 환경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절망에서, 죽음의 고통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정과 사업을 구원하는 기적을 만들기를 축원한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세상과 역사를 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이 새의 눈(Bird\'s-eye View)이라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눈은 벌레의 눈(Worm\'s-eye View)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옮기면 새의 눈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조감도(鳥瞰圖)가 되고 벌레의 눈으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것은 앙시도(仰視圖)가 된다. 서양 속담에 \'새의 눈을 가진 민족은 살고 벌레의 눈을 가진 자는 망(亡)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이것은 새의 눈은 멀고 넓게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서 큰일을 성공할 수 있고 벌레의 눈은 가깝고 좁은 작은 그림만을 보기에 큰일을 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지금 세상과 역사와 사람을 보는 당신의 눈은 새의 눈인가 벌레의 눈인가?

 

전통적으로 천하대세를 보고 대국을 읽는 전략적 사고의 조감도를 중시하던 중국이 최근 G2 경제대국으로 잠깐의 성취에 도취돼 중공군의 6.25참전을 정당방위의 해방전쟁으로 시사(示唆)하는 한국 무시, 북한에 변고가 생기면 내정 간섭하겠다는 북한 무시, 월남과의 영토분쟁, 일본과의 센카쿠 영유권분쟁과 G2에서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선린국가들을 적대국을 만들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천하대국인 중국이 새의 눈에서 벌레의 눈으로 시야가 짧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져 소탐대실의 실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여 염려스럽다.

 

세상과 역사는 새의 눈으로 천하대세를 보고 대국(大局: 대체의 국면)을 읽는 전략적사고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세상과 역사를 보는 새의 눈인 조감도와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벌레의 눈인 앙시도(仰視圖)가 동시에 필요함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의 차이점이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조감도로 보셨던 구원받을 인간의 믿음과 문둥병자로 병 고침을 받은 후 앙시도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고 영광을 돌렸던 사마리아 문둥이의 믿음을 알아본다.

 

1.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 문둥병자 열 사람

 

성경에 문둥병자와 문둥병으로 67회나 언급된 문둥병은 죄를 상징하는 병이다. 예수님이 다른 병은 다 \'고쳐주셨다\'고 했으나 문둥병은 \'깨끗케 하셨다\'고 하신 것은 문둥병이 죄의 상징인 것을 의미한다. 문둥병은 만성 전염병으로 몸속 세균의 활동으로 눈 섶이 빠지고 얼굴이나 코와 귀에 결절이 생기며 병균이 관절들을 녹이므로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게 하고 피부엔 탈색된 반점이 여기저기에 나타나며 가시에 찔리거나 불에 닿아도 환부에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문둥병의 전염성과 난치성, 무감각성이 죄의 성질과 같다고 해서 죄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구약에선 사람에게 생긴 문둥병만이 아니라 옷이나 가죽, 집이나 건물 벽에 곰팡이가 끼어도 그것을 문둥병으로 진단했다.(레 13:47-59, 14:33-57) 문둥병은 전염성 때문에 병에 걸리면 사람들에게 쫓겨나 격리된 곳에서 살아야 했는데 문둥병자들의 처신법(處身法)은 ①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살아야 했다. 히브리인들이 옷을 찢거나 머리를 푸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는데 문둥병자가 자기 옷을 찢어 누더기 옷을 걸치고 머리를 풀고 봉두난발(蓬頭亂髮: 쑥대강이같이 흩어진 머리털이란 뜻으로 봉두돌빈(蓬頭突鬢)이라고도 한다)하며 산 것은 자기 자신을 저주받아 죽은 자로 간주하는 행위였다. ② 극심한 자기비하의 표시로 사람들을 만날 때, 자기 입술을 때리거나 윗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③ 외부 사람을 발견하거나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쳐야 했다. 법적으로 문둥병자와 접촉하면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외인들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발견하면 먼저 \'부정하다\'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④ 이스라엘 진 밖에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천막촌마을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문둥병자같이 부정한 자는 함께 거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문둥병자는 자기 몸에 저주스런 부정한 병, 불치의 병이 걸린 것도 괴롭고 고통스런 일인데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격리수용 당해야하는 수모와 괴로움까지 겪어야했다. 그래서 성경시대의 문둥이들은 한국에서 50여 년 전, 나환자들이 사람들을 피해 문둥이 촌에 따로 모여 살던 것처럼 문둥병자들끼리 모여 촌을 이루며 살았다.

본문은 그러한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같은 시간에 예수님께 병 고침을 모두 받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병 고침 받음을 사례하고 감사하므로 영과 육이 구원받은 것의 기록이다. 열 사람 문둥이의 고침 받음과 그 중에 한명 사마리아 사람만이 감사했다는 본문기록은 4복음서에 누가복음에만 기록됐는데 누가는 이 기록을 통해서 \'이방인의 감사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지구상의 어떤 다른 민족보다 먼저, 많은 은혜를 받았으나 감사하지 않았지만 이방인들은 받은 은혜를 감사했다고 칭찬하여 기록하므로 복음(福音)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지게 됨을 암시했다. 그렇다. 오늘도 구원과 축복의 역사는 감사하는 사람의 몫이다. 감사로 영육이 구원을 받고 자손대대가 복을 받기를 축원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동구 밖 산속 문둥이 촌에 살던 열 사람 문둥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인근 동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부정한 몸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문둥이들은 무리 중에서 자기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동네에 들어온 사람이 누군가를 물었고 몇 사람이 \'예수 선생\'이라고 말해주자 동시에 입을 모아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Jesus, Master, have mercy on us)라고 소리를 질렀다.

 

열 사람이 억박적박하게(억 박자로) 소리 지르면 의사전달이 안될 수도 있으니 아마 열 명이 서로 의논해 동시에 하나 둘 셋...\"이에수 에피스타타, 엘레에손 헤마스\" (Jesus, Master, have mercy on us)라고 큰 음성으로 외쳤을 것이다.

 

\"이에수 에피스타타, 엘레에손 헤마스!\"(예수 선생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열 문둥이의 함성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각자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시거나 썩어가는 문둥병의 환처를 만져서 병을 고쳐 주시지 않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Go and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고 하셨다. 그러자 문둥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들에게 자기 몸을 보이기 위해 성전으로 달려가다가 자기들의 병을 고침 받게 된다. 열 문둥이들은 예수님께 긍휼히 여겨주심을 간구하므로 병 고침을 받았다. 오늘 당신의 구원도 소리 질러서 예수님께 긍휼을 구할 때 받을 수 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가정의 구원을 위해, 생활의 구원과 환경의 구원을 위해 소리 질러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라.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는 당신에게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천상천하(天上天下; 하늘 위와 하늘 아래의 우주 사이)와 상천하지(上天下地: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실 신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삼라만상의 만물과 억조창생의 인간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 밖에 어떤 신(神)도 없다. 그런데 열 문둥이는 사람이신 예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다. 예수의 신분에 대해 무지해 랍비,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문둥이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것이다.

 

그렇다. 나사렛 예수를 철학자로 아는 사람들은 철학적 예수만을 경험한다. 예수님을 심리학자로 아는 사람은 인류최고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로, 정치가와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로 아는 사람은 그 방향에서, 간디처럼 무저항주의자로 아는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구제하고 가난한 자의 친구로 아는 사람은 그 수준에서, 경제가는 경제의 대가로, 종교가는 한 사람의 위대한 종교창시자와 세계 사대성자 중 한 사람으로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로 인정하는 사람은 그 방향과 자기 수준에서 예수님을 경험한다.

 

그래서 비록 자기들 수준이 무식하고 무지해 예수를 랍비선생으로 불렀던 문둥병자 열 사람은 예수를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예수 하나님으로 인정하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었던 것이다. 당신도 예수님을 예수하나님, 성자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긍휼히 여김 받음을 기도하므로 생활 속에서 구원의 기적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2. 말씀에 순종하라

 

열 사람 문둥이들이 고성통성으로 \"이에수 에피스타타 엘레에손 헤마스!\"로 소리 질러 간구하자 예수님은 \"Go and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 하셨다. 그리고 문둥이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병 고침을 다 받았지만 사실 문둥이들이 몇 십리 길 예루살렘을 가는 길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원래 문둥이가 제사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의 병이 다 고침을 받은 후 제사장들에게 마지막 신체검사를 받고 병이 치유됐다고 판결을 받은 후, 제사장들이 우슬초로 비둘기의 피를 찍어서 문둥병자에게 뿌리는 정결의식을 행하고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릴 때 만날 수 있었다. 만일 문둥병이 고침 받지 않은 병자상태에서 제사장을 찾아가면 제사장을 만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열 문둥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장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팔다리가 썩고 몸이 불구인 불편한 상태로 먼 길을 가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은 목숨을 걸어야하는 위험스런 길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의 길 같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일, 홍해와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순종하라 명령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바람이 휘몰아치고 풍랑이 꿈틀거리는 바다 위를 걸으라고 순종을 명령하시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우리가 물에 빠져죽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순종 명령, 예수님의 순종 명령에는 반드시 사는 길, 축복의 길, 기적의 길, 피할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 그래서 오늘 열 문둥이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명령하시고 그들의 순종을 기다리신 것은 오늘도 우리에게 순종의 축복 비밀을 가르쳐 준다. 위험부담을 안고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당신에게 축복의 기적들이 나타나길 축원한다.

 

열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왜 병도 안 고쳐주고 제사장을 만나라고 하는가? 왜 우리를 죽을 수도 있는 위험으로 몰아넣는가? 왜 우리 병은 다른 사람들처럼 안수기도나 명령으로 고쳐주시지 않는가? \"예수님이 우리를 차별하시는가? 왜, Why, For what...의 단서를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둥병자 치료의 기적 외에도 성경에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에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않고 순종했을 때 나타났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기적은 조건을 초월해 순종하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열 사람 문둥병자가 말씀에 순종해 예루살렘을 가는 동안 어떤 사람은 썩어 문드러져 없어졌던 다리가 생겨났고 어떤 문둥이는 손가락이 나왔으며 다른 사람은 없어졌던 귀가 돋아났고 다른 문둥이는 구멍만 남았던 코에 매부리 코 언덕이 생겨났으며 몸이 썩어 피고름이 흐르던 사람은 상처가 나 버렸고 가시에 찔려도 아픔을 모르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아픈 것을 알게 됐다. 문둥병들이 씻은 듯이 다 나았던 것이다. 할렐루야!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If you consent obey. You will eat the best of the land; 사 1:19)고 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는 자들에게 땅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먹게 되는, 내 생애에서 제일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제일 만족한 일이 생기는 축복의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3.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열 사람 문둥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모두 병이 다 나아 정상인이 됐다. 그런데 성경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해 율법의 규례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장들을 찾아갔다는 기록이 없다. 어쩌면 그들은 제사장들을 찾아가 복잡한 율법의 절차를 밟고 여러 날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병들기 전보다 더 완전해진 서로를 보고 이제 다 나았으니 오매불망, 꿈마다 그리던 부모형제와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먼저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 사람, 당시 개와 창녀와 죄인으로 취급당한 사마리아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도 성전제사가 허용되지 않았기에 병이 고쳐졌어도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없는 자기의 처지를 안 사마리아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운 고향에 부모형제 처자식이 보고 싶었지만 자기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감사하기 위해 예수님을 만났던 장소로 달려왔다.

 

다행히 예수님은 그때까지 군중들과 함께 그곳에 계셨다. 어쩌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올 것을 알고 일부러 기다리고 계셨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발견한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Glorifying God with a loud voice) 예수님께 달려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사례한다.

 

불과 몇 시간 전, 병 고쳐주시기를 호소하던 열 문둥이는 한 음성의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를 외쳤었다. 그러나 이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뿐이다.

 

오늘 이 땅에 큰 소리로 문제해결을 부르짖는 사람은 많다. 큰 소리로 자신이나 식구의 병 고침을 호소하고, 큰 소리로 가정문제를 기도하며, 큰 소리로 어려운 사업문제 해결을 기도하고, 큰 소리로 자기의 소원을 부르짖고 은혜 받고 성령 받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교회마다 기도원마다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러나 응답을 받은 후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눈을 씻고 살펴봐도 많지 않다.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던 김목사도 51년 신앙생활과 42년 반의 목회생활에서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 은혜 받기 위해, 성도들의 축복과 병 고침과 성령 받기를 위해 수많은 금식기도와 철야기도, 작정기도, 합심기도, 새벽기도에서 목소리를 아끼지 않고 큰 소리로 기도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응답을 받았지만 기도응답 해주심을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가르치는 내가 사마리아 문둥이만도 못했음을 고백한다.

 

사람은 감격이 클 때 음성이 격앙되고 커진다. 매주 월요일에 메릴랜드 교회 목사님들이 모여 배구를 하는데 동네 배구지만 10년 이상을 하다 보니 이젠 실력이 많이 늘어 공이 떨어지지 않고 양쪽 코트를 오고가는 랠리(Rally)가 계속되는 일이 자주 있는 그러다가 극적으로 점수를 얻게 되면 점잖은 목사님들이 너나없이 함성을 지르고 같은 편끼리 하이-파이프를 하며 큰 소리로 기쁨을 표시하는 것은 득점의 감격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감격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일, 기도하다가 성령 받은 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의 응답 받는 일...하나하나는 당사자 각 사람에게 칠레 탄광 지하갱도에서 46명이 69일 만에 구조되는 극적인 일보다 더 감격스런 일이고 금강산에서 60년 만에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일보다 더 극적인 일이다. 탄광구조와 이산가족의 상봉이 순간적인 감격이라면 우리 죄가 용서 받아 영생을 얻는 일은 영원한 감격이다. 그래서 참으로 구원 받은 성도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313장)

 

문둥이였던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 신앙을 몰랐고 아는 찬송가도 없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우리처럼 찬송을 부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성경에 526회나 기록된 영광, 히브리어의 오라, 하달, 예갈, 카보드, 티파라란 영광의 오묘한 의미도 헬라어의 독사란 영광의 뜻도 알리가 없는 그래서 기껏해야 문둥이 촌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던 야훼신앙의 문외한이던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어쩌면 \'예수 선생님, 내 병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살아있는 하나님이십니다...\'를 소리 지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히 여기심을 감사하는 고백 소리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받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가? 감사기도, 감사예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가 있다. 이웃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증하고 전함으로 영광을 돌릴 수가 있다. 받은 축복과 은혜가 너무 커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영광을 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와 나의 가족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사마리아 문둥이처럼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큰 목소리로 목소리를 다하여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감격이 한국축구의 월드컵의 4강신화보다 크고, 우리 가족이 힘들게 영주권을 받은 것보다 크며, 이산가족이 60년 만에 헤어졌던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보다 클진대 주기도문 교회의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을 높이는 영광이 우렁차고 큰 소리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 예배에서 당신이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저 구만리 장천 너머 하나님의 보좌까지 도달하는 지구촌최고의 영광이 되기를 축원한다.

 

4. 받은 축복과 은혜를 감사하라

사마리아 문둥이 한 사람이 멀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달려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례했다. \'사례(謝禮)했다\', Giving Him thanks(그에게 감사했다)의 헬라어 유카리스테오는 단순한 인사치례의 감사의 말이 아니라 \"깊은 환희와 감격에서 넘쳐 나오는 감사의 말\"을 의미하고 \"너무 감사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예물로 드려서 감사표시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마리아 문둥이는 깊은 환희와 감격에서 예수님께 병 고침을 감사하면서 몇 년 동안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동전 몇 개와 종이 돈 얼마, 만지고 만져서 피고름이 묻고 손때 묻어 닳고 단 몇 푼의 돈, 그러나 자기에겐 목숨만큼 소중해 아끼고 아껴서 언젠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필요할 때 쓰려고 곱쳐 두었던 비상금을 예수님께 내 놓으며 사례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하시면서 당신 발 앞에 엎드려 사례하는 사마리아 문둥이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Arise,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hole)고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과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 아홉 사람까지 기다리고 찾으셨으나 그들은 자기의 길을 가버리므로 더 이상의 축복이 없었고 그 축복을 찬양하며 감사했던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영혼구원의 은혜를 더 하셨다. 마치 열 사람에게 주려던 애정을 아홉 사람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대신해 한 사람에게 다 쏟아 붓듯 예수님은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셨다.

 

그래서 열 사람 모두가 육신의 병은 고침 받았으나 사마리아 사람만 영혼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리 육신 살덩어리는 난치병, 불치병에서 고침을 받아도 50년 100년 안에 다시 죽는다. 그러나 영혼구원은 천년만년이 아니라 영원, 영원토록 죽지 않는 축복이다. 그래서 육신의 병 고침도 귀하지만 영혼의 구원은 그 값이나 가치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마리아 문둥이는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할 병 고침 받음을 감사하다가 영혼까지 구원받는 천국의 알파축복까지 받은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드리는 당연한 감사라도 감사는 육신의 축복과 생활구원에서 영적인 축복, 영혼구원까지 받게 하고 당신의 작은 감사는 더 큰 축복들을 만든다.

 

유명한 목사, 찰스 스펄젼은 작은 것에 감사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반딧불에 감사하면 촛불의 은혜를 주시고 촛불에 감사하면 전등불의 축복을 주시며 전등불에 감사하면 달빛의 은혜를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태양빛의 축복을 주시며 태양빛에 감사하면 영원한 참 빛 예수님을 주신다.\"고 설교했다. 작은 감사로 큰 축복을 만드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어느 가난한 시골교회 주일학생이 억만장자 록펠러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교회는 작고 가난한 시골교회여서 성전 지을 돈이 없습니다. 부자이신 록펠러 사장님이 돈을 보내주시면 교회를 지을 수 있으니 도와주십시오.\" 이 편지를 받은 록펠러는 그 소년에게 1페니를 보냈다. 처음에 소년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실망하여 그 돈을 버릴까도 생각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서 밭에 심었다. 3년 동안 그렇게 옥수수 농사를 늘여서 3년 만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살 수 있었다. 소년은 록펠러에게 \'아저씨가 3년 전에 보내준 돈으로 옥수수를 사 3년 동안 옥수수농사를 지어서 교회 지을 땅을 구입하게 돼 감사하다\'고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소년은 록펠러에게서 교회를 잘 지으라는 격려편지를 받았는데 편지 안에는 1만 불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당시 일만 달러는 교회를 짓고도 남을 거액의 돈이었다. 작은 일에 감사가 큰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엘리야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고 비 오기를 일곱 번이나 간구할 때, 손바닥만 한 구름만을 응답해 주었어도 그것에 감사하자 큰 비의 축복을 주셨듯이 작은 응답, 작은 축복에 불평치 않고 감사하므로 큰 축복 만들어 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작은 역사에도 감사하고 큰 축복에도 감사하자. 잘될 때도 감사하고 더 잘 될 때 더 감사하며 안 될 때도 감사하고 더 안 될 때는 더 감사하자. 감사로 시험들을 이기자. 힘들 때 일수록 더욱 감사하고 일이 꼬일 때에 억지로라도 감사하자. 감사는 더 큰 감사조건을 낳고 감사는 더 큰 축복과 기적을 만든다. 감사로 축복을 만드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2003년, 우리가 ❶ 하나님의 물질소유권 인정하고 ❷ 진정한 감사와 천국적금을 증액하며 ❸ 가족과 개인의 축복을 높이고 ❹ 교회가 부요해지는 축복을 만들자는 추수감사 캠페인으로 \'하루 1불 감사\'로 계산해 일 년 365일 \'365 감사\', 한 개인이나 가족 당 \'365불 추수감사 예물\' 드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째이다. 그해에 9,229불 감사절 예물을 드린 후 해마다 365감사예물을 드리고 있는데 다음 해인 2004년에 주기도문 교회가 성전을 구입한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365감사\' 때문에 당시 2-3가족이 시험받아 흔들렸으나 대부분이 다 드리므로 가족마다 많은 축복을 받았는데(우리들이 받은 많은 축복 중에 오늘 교회 주차장에 세워진 차의 90% 정도가 새 차인 것도 축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 교회의 \'365 감사\'소식을 듣고 새하늘 교회 어느 성도가 돈을 꾸어다가 혼자 365감사를 자기 교회에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믿음으로 5% 보증금을 주고 힘들게 집을 구입했는데 갑자기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2년 만에 15만 불 이상을 벌게 됐다는 간증은 누구라도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성도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여러분의 금년 365감사가 하늘의 보물창고에 축복을 쌓는 역사가 일어나고 필요할 때마다 물질축복을 받게 되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하나님께 큰 소리로 영광을 돌리는 믿음과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는 언어감사와 물질로 감사하는 예물감사의 믿음은 육신과 영혼이 구원받는 축복 외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10가지의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10 faith promises)하셨다. ① 못할 것이 없는 축복(Nothing impossible; 마 17:20)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하여도 옮겨지는 Nothing shall be impossible to you(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의 축복이다. ② All things are possible(모든 것이 가능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축복; 마 21:21) ③ Whatever you say(입으로 말하고 기도하는 무엇이든 다 받는 축복; 막 11:22-24) ④ Salvation(구원(救援)의 축복-각종 질병을 고침 받는 육신의 구원에서 죄 사함과 영생의 영혼구원과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의 날에 휴거와 지상 재림의 날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구원까지를 모두 받는 축복; 행 4:12, 벧전 1:5-13) ⑤ Daily necessities(매일의 필요를 공급 받는 축복; 마 6장, 눅 12:28) ⑥ Victory in Christian living(기독교인적 삶의 승리; 롬 ㅣ: 17)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 승리할 수 있게 한다. ⑦ Access to God(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삶의 축복; 롬 5:2)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삶의 축복이다. ⑧ Holy Spirit(성령; 갈 3:14) 성령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세상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성령 받을 자격이나 약속이 없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축복이다 ⑨ Promises fulfilled(약속 성취의 축복; 히 6:12) 성경에 기록된 절대적인 약속들과 개인적으로 받는 약속들이 성취되는 축복이다. 세상 사람들의 약속은 환경 따라 변하고 기분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고 거짓이 없다 ⑩ Bodily healing(병 고침의 축복; 약 5:14-16)

 

이렇게 믿음에는 많은 축복들이 약속돼 있다. 그래서 믿음은 위대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열 사람 문둥병이가 같은 시간에 똑같이 고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예수님의 선언은 너무나 엄청난 축복선언인 것이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찾아와 사례하며 감사했던 짧은 시간의 믿음의 행동이 이런 엄청난 축복의 차이를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Were there not ten cleansed?)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But where are the nine?)\'

 

지금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신다. 그리고 그 아홉을 기다리신다. 열 가지 믿음의 축복을 더 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문둥이들이 병 고쳐 달라고 소리치던 그 자리, 주인공이 없어진 그 자리를 응시하고 계신다. 3-40년, 5-60년 후면 죽어 없어질 육신과 잠간 동안 즐거운 세상일에 빠져서 사람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시고 주시고자 손에 들고 계신 구원들을 바라보시며 쓸쓸히 서 계신다. 그러나 세상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적고 감사로 은혜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해야 할 은혜 받은 사람들이 잠잠히 있기에 돌 같은 우리들로 소리 질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하시는 것이다(눅 19:40) 그래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입으로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하는 성도를 발견하시면 사랑에 굶주렸던 사람이 사랑할 대상을 만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져 몰두해버리듯 하나님은 그런 성도에게 애정을 쏟아 부어주시는 것이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 입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물질로 예수님께 감사하며 마음으로 성령님께 감사하는 감사믿음의 사람이 되어 그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과 열 가지 믿음의 축복들을 다 받아 누리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자유로의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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