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와 봉사의 은사(2)

 성령의 은사와 성도의 봉사 2
47. 성령께서 교회에게 말씀을 하신다.
성령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성경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예) 한국교회의 성령운동 - 성경을 일단 집어던지고, 신비주의로 가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령을 하시는 일 중에 성경을 기록한 것과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요한계시록 2:2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2:11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승리하는 자는 두 번째 죽음으로 말미암아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3:6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3:13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3: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그 말씀을 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자 예수님 말씀이요, 성령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항상 성경말씀이 함께 역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 말씀 없이 성령의 역사만 있다
성경을 용납하지 않고 성령 가르칠 사람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지 못한다.
성경말씀과 성경말씀을 바르게 선포할 사람이 필수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한 오해도 많이 있다.
은사를 말은 교회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은사란? 사전적 의미로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값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어떤 사람을 기뻐서 주시는 선물이다.
\'카리스마\' - 권위가 있다는 것처럼 뤼양스를 품기는데 전혀 잘못된 말이다.
은사가 카리스마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카리스마 은사를 주시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능률적으로 더 완전하게 본인의 타고난 재주를 넘어서서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한 재능을 주셔서 어떤 일을 잘하게 하는 것이 카리스마이다.
권위가 카리스마가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성령의 도우심,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

  구약시대에서 보여주는 은사
1. 기술(예술)의 은사 - 브살렐과 오홀리압
성막 지을 때 성령으로 지혜가 충만해서 공교한 것을 만들고 보석을 깍아 만들고 세공하는 것
2. 능력의 은사 - 삼손, 엘리야, 엘리사, 모세
3. 음악의 은사 - 성령이 충만해 주시면서 음악적 재능이 탁월해지면서 / 다윗, 고라 자손, 아삽 자손
다윗은 작곡, 작사, 연주, 가창력까지 대단했던 사람이다.
스스로 자기를 노래잘하는 자로 말함
고라자손, 아삽자손 - 성가대 찬양대처럼 봉사한 사람
4. 믿음의 은사 -아브라함, 여호수아, 다윗, 갈렙
일반사람들이 믿을 수없는 것을 믿는것
5. 지혜의 은사 - 솔로몬, 에스라
6. 지식의 은사(학문적 은사) - 에스라 - 가말리엘, 바울
일할사람인지 공부할 사람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7. 해몽의 은사 - 요셉, 다니엘 : 꿈을 잘 해석하는 사람
계시적 꿈을 꿨을 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해몽의 은사, 비밀을 풀어내는 은사
  신약시대의 여러 은사
1.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 -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지식의 은사, 지혜 말씀의 은사를 말함
교회의 성장, 부흥, 발전의 승패는 그 교역자와 교사가 말씀에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능통하냐? 얼마나 은사가 충만 하느냐?에 따라 현저히 차이가 난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설교, 강의를 하면 어렵게 해도 쉽게 전달된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없는 사람들이 설교하면 알던 것도 더 어렵게 만들어버린다.
교회에서 제일 일차적으로 필요한 은사 -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
교역자, 교사는 다른 은사를 구하기보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주님께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그러나 자칫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지식은 교만을 하게하고,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은사를 사용할 때도 늘 교만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항상 사랑으로 활용되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2. 믿음의 은사 - 모든지 일을 겁을 내지 않는다.
하면 됩니다. 되는 길을 찾아내고, 될 일을 발견하고, 되는 방법을 찾아서 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갈렙은 대단한 믿음이다.
목사가 너무 꿈과 비젼이 너무 커서 교인들이 못 쫓아오는 경우도 있다.
3. 예언의 은사
구약의 예언서, 예언자가 있지만 예언자가 미래를 점치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예언자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 전에 미리 와서 이야기 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예언이란 말을 오해하지 마라.
예언자가 문제 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항상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다.
만약의 이 권고의 말씀을 듣고도 정신 차리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나가면 하나님이 혼을 낼 것이다.
어떤 예언이 있었는가? 절망가운데 있을 때, 나라가 망할 때, 예루살렘이 황무지가 되어 있을 때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정도이다. 개인적인 것을 가지고 미래를 점치고 하는 것이 아니다.
4. 병을 고치는 은사
지금도 있으나, 의사를 내신분도 하나님, 약사를 내신분도 하나님이시다.
일단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라, 병원은 애프터서비스 센터이다.
바울이 왜 누가라는 의사와 동행했는가? 바울이 병 고치는 은사도 있지만 의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 끝까지 가지 않고 하나님이 고쳐주나 안 고쳐주나? 시험하며 끝가지 버티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기도로 낫기도 하지만, 약으로 낫기도 한다.
  야고보서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약을 쓰는 것이다)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밥도 약이다. 배고플 때 먹는 약이다. 밥에 상당한 영양이 있다. 영양이 떨어졌는데도 기도만 하면 안된다. 예수님도 안 먹으면 배고픈데 기도하면서 먹으면서 약을 써야한다.
예) 디모데가 병이 났을 때 - 바울이 네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좀 쓰라고 말한다.
바울이 워낙 건강이 않 좋으니까 주치의 누가가 함께 하였다.
5. 영들 분별의 은사 - 중요한 은사
서구의 신학자(유럽, 미국)들은 귀신을 잘 모르니, 성령도 잘 모른다.
귀신을 성령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귀신이 사람 속에 있는 줄 모르고, 그 사람 속에 상처받은 자기 영혼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있다.
내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다. 그런 경우가 불러내보면 울고 있는게 내가 아니고 어린아이 귀신들이다.
어린아이 귀신들이 많다. - 나가라고 하면 나간다. 어린아이 귀신은 제일 잘 나간다.
영들을 분별 못하니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데, 귀신을 달래고 위로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들어보면 -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인지? 그 속에 귀신이 들어있는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
정신분열증 - 인격합병증이다. 한 육체 안에 악한 인격과 두인격이 있다. 두 영혼이 있다.
폴투니어 학자 - 책) 인간 치유의 길
수많은 질병들이 귀신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정신병들이 악령들이었다.
6. 능력 행함의 은사
7. 각종 방언의 은사
8.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
9. 상담과 위로의 은사 - 예수님이 최고, 바나바(위로의 아들이란 별명, 본명은 요셉)
카운슬링해서 믿음과 용기를 불일듯하게 일으켜 세우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교회 권사님들은 위로 상담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상담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
은사를 받아도 공부를 해야 한다. 은사를 한 달란트짜리를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로 남겨야 한다.
신비주의 - 성경 공부하라면 안하고 직통계시를 받겠다고 하는데 위험한 일이다.
10. 조직, 행정의 은사
11. 인도와 전도의 은사 - 최고의 은사
교회로 사람들을 잘 모셔오는 것, 착하고, 선하고, 사랑을 베풀고, 친절하고, 사랑하고 온갖 은사를 다 가지고 있어야 전도하고 인도한다.
일평생에 만 명 이상을 전도한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는 달란트이다. 성령으로 은사가 나타난다. 예수님 믿고 성령으로 은사가 나타나니깐
교회 성장이 목사님의 능력과 덕망과 은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여러 가지 은사가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은사가 너무 성령을 좁게 만든다. 다양한 은사가 주어질 수 있는데 꼭 방언의 은사만 받겠다고 하는 것은 참 좁은 생각이다.
방언은 모든 은사가 들어오는 통로다 잘못된 말이다. 성령의 모든 은사의 통로이다.
고린도교회 형편을 보면 그 교회를 제일 힘들게 한 은사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다.
아볼로라는 사역자는 지혜,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다. 아볼로가 가는 곳마다 유대인과 변론을 하면 항상 다 이긴다. 복음에 대해서 탁월하지 못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배우는 데도 불구하고 지혜와 지식의 은사가 탁월했다.
고린도 교회를 사임을 하고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건너오게 된다.
고린도에서 아볼로가 사역할 때 애먹이는 여자들 즉 바울파, 신령파, 방언파
여자는 잠잠하라. 지금도 유럽을 가서 보면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 남구라파쪽은 여자들이 드세다.
딸을 나면 좋아한다. 남자를 나면 시무룩해서 의사가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다. 신도 여신을 섬긴다.
여자가 큰소리를 치고 모계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깐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앞세운다.
아볼로가 설교하면 몇 몇 여자가 방언으로 방해를 하니깐
바울이 편지를 하면서 방언을 하면 교회에는 덕이 안된다. 개인에게 유익하지만 교회에는 유익하지 않다.
통역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방언을 하고 교회에서는 방언하지 말라.
방언은 설교하는, 예언하는 방언이 아니다. 고린도 교회 나타난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언이다.
설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에 나온다. 고린도교회 나타난 방언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은 다르다.
88~92년까지 다미선교회- 주님오실날짜를 정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했던 선교회이다.
모든 사람이 가면 그날부터 모두 방언을 했다 - 악령의  방언이다. 귀신을 미혹하는 귀신의 수법이다.
방언으로 설교하고 방언으로 통역을 한다. 신비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악령이다.
다미선교회를 이끌어가던 지도자 : 이장림 - 책) 92년도 열풍 - 내용 중 90%의 방언이 가짜다 라고 썼다
믿음도 없고, 사명도, 진리도 은혜도 없는 것은 무질서한 집회에서 방언이 터졌다고 하면 그것을 악령이다. 방언으로 설교하는 것은 100% 거짓말이다. 악령이다.
사도행전의 각기 다른 방언으로 설교를 했는데 자기 난 곳 방언으로 알아들었다.
  사도행전2:1~4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성경은 비인격적으로 바라지도 않는데 하는 방언은 귀신이 하는 것이다.
통역하는 은사가 있지만 통역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고린도교회에서 다른 은사를 말썽을 부릴 것이 없지만, 잘못 방언 받은 사람들이 말썽을 부린다.
성령이 주신 방언이라면 교회에 말썽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한다.
  고린도전서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방언을 하려면 지도자가 질서를 잡아가지고 지식에 따라서 불과 2~3사람만 방언하고, 나머지는 분별하고,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언하라. 그러나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 방언하지 말라.
고린도교회가 은사가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은사가 있는 것이다.
은사 나열할 때 지혜와 지식, 말씀의 은사, 믿음, 예언, 믿음, 병을 고치는 은사, 영들 분별, 능력을 행하는 은사,.......각종 방언하는 것들과...... 방언의 은사를 제일 뒤에 배열하고 있다.
예수님은 아무 방언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도 방언해서 믿음의 아비가 된 것이 아니다.
세례요한(날 때부터 성령 충만한 사람)도 방언으로 설교 했다는 말이 없다.
우리 한국교회가 성령이 주셔서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그 방언으로 영혼으로 기도한다 할지라도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니깐 
믿음의 약하고 고집이 세니깐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이다.
하도 안 믿고 애를 먹이니 표적을 주어 기독교의 진리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셨다.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신비운동을 해야 한다.
표가 나는 것은 방언의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이다.
지식 지혜의 은사는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인식을 잘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표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게 되면서 일을 하는 가운데 은사가 나타난다.
이런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풍성하게 충만케 하는데 있다.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봉사하는 자세는 굉장히 중요한데 
모든 지체가 존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


  봉사하는 자세 
1.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모든 일
그리스도를 경외하면서 피차 복종하는 사람
그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람을 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삼가 업신여기지 말라.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을 생각할 때 지극히 작은 자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거나, 은사를 받았거나, 능력을 받았거나 해도 주장하면 안 된다.
2.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며, 머리가 아니고 지체이다.
목사지만 종이기에 주장하지 않는다. 주장은 주인만 한다. 주인은 하나님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밖에 없다. 우리는 지체이기 때문에 주장할 수 없다.

서로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 - 손이 발보고 쓸 때 없다 할 수 없다.
서로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한 그리스도 몸 안에서 소중한 존재이다.
성경은 장로들도 주장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라.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고, 성도라 할 수 없다.
맨 기본이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은 누가 나와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주장하지 않으면 교회가 편안하다. 예수님만 주장해야 한다. 성도가 주장하면 곤란하다.
주인은 예수님인데 성도가 주장하면 교회가 시끄럽다.
교회를 봉사하는 기본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자세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목적이나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방법과 수단도 바루어야 한다.
3.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덕을 세우지 못한다.
항상 덕을 세운다.
한자로 큰 덕, 교회를 세우는 덕 - 헬) 오이코도메
집을 세워지게 하는 것, 덕망 있게 한다. 집을 헐지 말고, 교회 흠집을 내려 하지 말라.
요즘 교회의 추구하는 방향을 보면 교회덕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도 덕을 세우지 못하고 사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니 사회에서 욕을 먹고 있다.
덕이 되지 않고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집회가 너무 많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혐오하기 까지 하게 된 것이 신비주의 운동이 표출되고부터 기도원 문화가 극단적 신비주의가 영상을 통해 밖으로 표출되면서 질서도 없고,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로 비춰지면서 덕이 안 된다.
항상 주장하지 말고 덕을 세워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는 교회밖에 사람들이 칭송을 했다. 우리교회를 다른 사람들이 칭송하게 하고 있으면 그럼 성령이 함께 하신다. 계속적으로 욕을 먹게 하고 지탄을 받게 하는 것은 성령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극단적 신비주의는 성령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예) 손 만 되면 쓰러지는 것 - 쓰러져서 회개하고 일어나면 좋은데 2~3시간 동안 깔깔되고 웃는 것이 무슨 성령의 역사인가?
사람은 하나님이 형상이다. 비인격적으로 쓰러뜨려 놓고, 비인격적으로, 비이성적으로, 깔깔대고 웃는 것은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성령이 보시면 피눈물 흐리면, 한심해하고, 탄식하며, 근심하신다.  
뭐가 성령이 좋아 깔깔되고 웃겠는가?
성령은 인격적으로 하신다.
아무 영적인 분별력 없는 사람들이 교회를 잘못 이끌고 가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양선, 오래 참음, 절제, 자비, 충성 이것을 금할 법이 없다.
만약 성령의 은사가 집사를 쓰러뜨리는 것과 데굴데굴 구르는 것과 깔깔대고 웃는 것이라고
어디 성령의 은사라 하겠는가?
무질서와 난장판이 성령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리의 말씀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거짓 이적과 표적을 가지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을 미혹하려 한다.
  데살로니가 후서 2:7~12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한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하심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잘못된 사람을 현저하게 잘못된 길로 가게 해서 심판받게 하려 하신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 이단 사이비에 빠지게 하려고 거짓 이적과 표적을 나타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교회는 장난처럼 해 볼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걸려있는 진리를 가지고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이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와 은사는 나타나지 않고,
비윤리적, 비상식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서 사람들은 또 분별력이 없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희귀할 것이고,
거짓 이적과 표적을 사단의 역사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그런 때이다.
교회에서 성도들, 중직자들은 사모하고 갈구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지혜와 명철과 총명과 참과 거짓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은사와 분별할 수 있는 척도 - 척도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 그 외에 어떤 것도 분별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
그런 능력과 은사를 바르게 사용할 줄 알도록 말씀을 알아야 한다.
능력의 은사를 받으면 단 줄 알지만
능력의 은사를 받은 삼손
모태로부터 바치운 거룩한 나실인이지만 그능력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니
사용하는 율법을 알지 못하니 눈알이 뽑혀 끔찍한 일을 당하는
연좌 맷돌 돌리는 모습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드온도 아들 70명 하루아침에 한 방석에 다 죽었다.
솔로몬도 지혜의 은사를 바르게 쓸 수 있는 율법을 모르니 비참하게 타락하게 된 것이다.
12사도의 사람들도 직분을 바르게 감당하지 못하니깐 배신자의 대명사 가룟유다가 나왔다.
일곱 집사 니골라도 이단의 괴수가 되었다.
직분도 기준이 아니다. 능력도 은사도 기준이 아니다.
오직 성경말씀만이 척도이다.
반드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씀을 성실히 공부하고 묵상해야 한다.

 

 

 

  사명과 계명 1부
사명과 계명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사도행전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 - 신구약을 통 털어서 한번만 나오는 단어이다.
구약시대는 사명의 그런 뜻으로 쓰인 말이 많지 않다.
신약에서는 사명(디아코니아)이란? /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무
그 중요성은 사명(디아코니아)은 생명을 바쳐서 이루어야 할 일
성령이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를 당하니깐 사도 바울을 말리게 된다.
그때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도행전20:24
그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생명이란 말이 나오고 사명이란 말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최대의 가치는 생명이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사람을 무엇을 주고 자기 생명과 바꾸겠는가?
그러나 사도바울은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다.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루어 내야할 일 이것이 바로 사명이 이다.
사명이라는 것을 목회자, 선교자가 된다는 것만으로 생각을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종교 개혁 신학자 - 칼빈의 \'자기의 직업이 곧 사명이다\'라고 할 때
농사를 짓든, 제조업을 하든지, 사람을 가르치든지, 일생동안 하는 직업 자체가 사명이라고 한다.
사명에 대한 정의를 확대해석했다.
그 칼빈의 이론 \'직업이 곧 사명\'이라는 것이 정착되는 곳마다.
기독교를 소중히 여기고 산업이 발달, 과학도 발달하게 된 것이다.
사명 - 좁은 의미에서 말 할 때는 하나님께 직접 소명을 받아 사명을 받은 것을 사명이라고 하지만,
칼빈처럼 생각을 넓히면 사람이 일생동안 바쳐서 하는 모든 일이 사명이다.
여성들은 조금 다르다. 여성의 경우 대개 성경적 사고에서는 따로 특별사명을 받는 것은 많지 않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을 동참하고 내조하고 돕는 경우이다.
혼자 사명을 찾아 꿈꾸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먼저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사명을 같이 찾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적 질서는 모든 여자들이 남편도 안 만나보고 자기 사명을 찾는 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명의 시조 - 아담할아버지 같은 경우 사명은
  창세기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이다.
땅을 정복해 나가는 것도 사명이고, 바다의 고기와 새와 모든 생물을 다스려 나가는 것도 사명이다.
다스린다 - 라다 카바쉬 / 그 정신이 지키고, 보호하고, 사랑하라
* 아담할아버지가 하나님께로 위탁받은 사명은
                생명있는 모든 것을 지키고, 보호하고, 다스리고, 질서를 잡아나가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나 아담이 자기 사명도 체 인식도 못한 체 타락을 해 버렸다.
타락을 하고 나니깐 모든 만물들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한 가지는 한 것 같다. 생육하고 번성한 것
복을 주시면서 하실 일이 사명이다.
우리 한국교회의 기복적인 신앙은 복 받은 것에 상당히 관심이 있는데,
받은 복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쪽은 좀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복 받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복을 왜 주시는가? 사명을 감당하라고
어려서부터 ~ 청소년부터 사명을 찾는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살피고, 그리고 아이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가르치고, 지도하고, 사랑해야 한다.
어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늘 갈등하고 고민하고 살아가는데......
                           아이들이 잘못할 때 반드시 초달하고 징계하면서 키워야 한다.
잘못하면 반드시 권징을 해야 한다.
엄마가 갈팡질팡하지 않고 확실히 엄마의 자리를 지키니 결국은 아이들이 엄마를 따른다.
교육학적으로 그냥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 잘못된 교육이 아이들을 잘못되게 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이들은 반드시 초달해야 한다.
자기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항상 갈등하고 살아가는데 목회자가 확실히 아이들을 초달하라는 말에
그렇게 교육할 때 아이들이 질서가 잡힌다.
자녀를 기를 때 부단히 계명과 사명을 일깨워가면서 또 이 아이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는가?를
찾아가면서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무조건 점수 더 따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가고, 좀 더 많은 보수를 받아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겨우 그리스도인들이 자녀 키우는 철학이 이정도면 곤란하다.
예)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장차 이아이가 어떻게 될꼬?\' \'지금 이 아이는 무슨 일을 하려고 태어났는가?\'를 부단히 관심을 갖고 찾아보아야 한다.
* 아이들이 어설프게 조금 잘하는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함부로 칭찬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을 자기의 사명인줄로 착각하게 된다.
  그 전에 그 아이에게 어떤 적성이 있는지, 어떤 탤런트가 있는지? 신중히 관찰해야 보아야 한다.
  학생시절에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방학 때마다 시간을 내서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도록 한다.
  학교의 결석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많은 세상을 보도록 한다.

아담과 하와 같은 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한다는 것보다 땅을 잘 지켜가야 하는데
이런 것을 잘 못하셔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던 땅이 이제는 사람보기에도 심히 너무 타락하고 너무 많이 오염되고 파괴된 ㄱ것을 본다.
이것은 인류의 공통적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을 가르치지 못하고, 인식을 못해서 그런 것이다.
사람에게서의 사명은 아주 참 중요한 건데

  사람의 사명
1.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2. 바르게 산다는 것은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맞게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바르게 산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
3. 인류와 민족과 국가, 가문, 개인에 주어진 사명이 있다.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도 있다. 시대적 사명도 있다.
이런 것을 최우선적으로, 항상 사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본정신이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교회가 구원받은 것과 그 다음은 복 받는 것에 이런 것에 너무 익숙해 왔다.
너무 우리가 사명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고 낯설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제대로 관리되려면, 맨 기초가 사람이 탄생했을 때 그 근본이 흙으로부터 왔는데,
흙이라는 토양에 발을 딛고 사는데 토양관리부터, 기본적으로 땅을 관리하는데 그 땅이 정상적인 토양이 이라고 할 때 그 토양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생태계의 기초가 되는 땅이 오염되고 파괴되기 때문에 심각하다.


식물들은 62가지의 원소들로서 식물체가 이루어지는데,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이런 것들은 대부분 거의 공기 중에서 공급된다. 탄소동화작용을 통해서 공급된다.
다른 성분들은 상당부분이 뿌리를 통해서 토양에서 흡수된다.
지구상에 식물들이 일 년에 필요로 하는 질소량이 2억5천만톤~3억만톤 (10톤 트럭으로 3천만 대 정도)
그중에 가만히 나두어도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질소(유리 질소)78%, 산소21%의 비율로 있다.
공기 중에서 식물의 탄소동화작용, 식물의 호흡작용에 의해 95%를 스스로 충당한다.
농사를 제대로 지으면 질소질비료를 안 해도 된다.
질소질비료를 하니깐 작물이 약해지고 병에 아주 약해진다.
95%스스로 식물이 흡수하고, 인간이 5~10%를 공급한다.
이것을 하나님이 공기 중에 다 떠돌아다니게 하시니 참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남자들은 20세에 자기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무슨 일을 위해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을 하다가 죽을것인가?를 40세에는 불혹의 나이에 흔듦이 없어야 한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이 사명이라는 단어가 아주 낯설게 되었다.

  노아의 사명
방주를 만들어 생명을 보존하는 것과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명을 받았다.
홍수심판이후의 가족들의 생명의 보존하는 것과 다시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명을 받았다.
  창세기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사도행전22:7~10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사도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인데
다메섹에 다가갔을 때 태양보다 더 강렬한 어떤 빛에 압도되어 길바닥에 나둥그러지면서
엉겁결에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1. 예수님이 누구신지? 2.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질문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질문이고, 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 번을 꼭 결정적으로
물어보아야 한다. 1. 예수님이 누구신지? 2.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에서 지식이 풍부하고, 박사학위를 50개쯤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지식은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지식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지식이야 말로 가장 고상하고, 고차원적이고,
                   인간이 도달한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이다.
예수님이 12제자를 3년을 가르치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지금 현재 이스라엘 바니야스) 졸업여행을 갔는데 졸업 시험 치듯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딱 한 가지 질문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누구로 아느냐?\' 물어보신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인생의 절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3년 가르치시고 \'내가 누구냐\' 문제를 낸 것이고,
사도 바울이 대단한 학자로서 위기를 만나서 나둥그러지면서 지금 자기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워낙 공부를 한 사람이니깐 질문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주여 뉘시니이까\'
일평생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세상 지식, 철학도 배설물로 여겼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독론이다. 조직신학 중에 1. 신론 / 2. 인론 / 3. 기독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난 후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인생을 살면 곤란하다.
예) 시장에 와서 무엇을 사러 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모르면 이상한 사람이다.
하물며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 하러 왔는지?를 모르면 아무리 지식이 있고, 학식이 있고, 기술, 재주가 있다할지라도 자기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는지를 모르면 곤란하다.
교회교육이 너무 세속화 되었다. 전부 세상 사람처럼 똑같이
좀 더 좋은 대학, 좀 더 좋은 직장, 좀 더 편안하게....... 밖에 없다. 자녀를 기르면서 이 아이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찾아줄려고 하는 노력이 안 보이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성도 탓이 아니라 목회자의 잘못 가르친 탓이다.
아이를 날 때부터 출산 심방, 그 태중에 임산 중에 산모를 교육해야 한다.
아이를 기를 때 자기 사명을 찾도록, 자기 사명을 깨달을 때 까지
                                                      바르게 지도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기본이다.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없이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명을 바치면서 사명이라는 것에 무관심한 것을 다시 한 번 교회학교에서부터 시작하라.
사도바울이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 바로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시겠죠!
예수님께서 일을 시키실 것이니 바로 대답해 주실 수 있지만 그러나 직접 대답해주시기 않으시고
\'가던 길로 다메섹으로 가라\'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사도바울을 위해서 정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을 위해서 정한 바의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이다.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 - 이것이 사명이다.
성경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명을 일깨우고, 계명을 가르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말씀을 가르치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아름다운, 가치있는, 소중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각자에게 정한 바를 찾아야 한다.
이 일이야말로 내 생명을 바칠만한 일이다.
내가 이일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위대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질문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에서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인 것이다.
그 사람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질문이 그 생각이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규정짓는다고 본다.
위대한 질문 \'주여 뉘시니이까?\'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의 사명으로 달려간 것이다. 자기의 정한바 사명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즉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는 것을 위해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도행전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자기 하는 일이 생명을 바치는 일이라는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그 뒤에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데 반드시 계명을 쫒아서 감당해야 한다.
계명을 따지 않고 사명을 감당해봤자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일단은 자기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중에 나는 보통사람, 나는 평신도라고 생각해서 그냥 사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각자에게 다 사명이 있다. 찾지 못하거나, 일부러 외면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