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을 맞이하는 자세

\"대강절을 맞이하는 자세\"|대강절
 

“대강절”

성탄일로부터 4주 전에 시작되는 대강절은 초대 교회 때부터 엄격하게 지켜왔던 절기입니다. 이 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탄절에 오신 과거적 사건과 새롭게 주님을 영접한 현재적 의미, 그리고 세상의 끝 날에 예고없이 오실 주님을 영접할 미래적 소망을 다짐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대강절과 행사를 주일별과 일반적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Ⅰ. 대강절의 주일날 행사

 

1. 대강절 첫째 주일

흔히 대강 주일이라고 불리는 대강절 첫째 주일은 교회의 신년이며 11월 30일 성안들레 기념일이나 거기서 제일 가가운 주일입니다. 이것은 11월 27일에서 12월 3일 사이에 옵니다. 특정 예식문은 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내어다보는 것으로 기대에 차 있습니다. 루터교 의식과 로마교 의식에 다같이 시25:4이 나와있습니다. 특별 기도문은 대강절에 사용되는 세 걔의 자극적 기도문 중 첫째 것입니다. 이 기도문은 그레고리 예전서에서 오며 로마교 의식과 동일합니다. 영국 교인들은 에드워드6세의 제일 기도서를 위하여 1549년에 쓰여진 기도문을 사용하여 1662년 이후 대강절 기간에 매일 반복됩니다. 로마서에서 가져오는 서간문은 영어로 \'그리고…때를 알며\'로 시작되기에 늘 어려웠습니다. 교회에서 역대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형제여 그대는 때를 압니다…\'라고 의식서에 나오는 소개문이 훨씬 더 명확합니다. 서간문은 루터교나 로마교 의식이 동일합니다. 영국 교인들은 8절부터 시작하나 롬13:8은 루터 교회에서 현현절 우 넷째 주일 서간문으로 사용됩니다.

 

2. 대강절 둘째 주일

대강절 첫째 주일의 중심 사상이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이었던 것과 같이 둘째 주일의 중심 사상은 마지막 날에 올 그의 둘째 개선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서는 옛날 것으로 루터교와 영국 교회 의식에서 다 사용합니다. 서간문과 복음서는 세계 성서 주일에 지키는 일과 부합합니다. 이 주일은 12월 둘째 주일인데 흔히 대강절 둘째 주일에 옵니다. 이 주일은 역시 더 오래된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3. 대강절 셋째 주일

이 주일에는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소개되며 서신은 다음과 같은 권고에서 재림에 대한 지난 주일의 특색을 계속 나타냅니다. 곧 \'너는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아무 것도 심판하지 말라. 그는 암흑 속에 숨겨진 것들을 드러낼 것이며 마음 속의 계획도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에 대한 언급도 12월의 특별 참회 기간에 오는 이 주일이 안수식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4. 대강절 넷째 주일

대강절 넷째이며 마지막 주일은 오랫동안 그 본래의 특색에 있어서의 \'고아\'와 같습니다. 현대 미국에서는 흔히 \'크리스마스 주일\'이라고 불리웁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 의식을 크리스마스에서 분리시키고 이런 의식을 그 전 주일로 옮김으로 만족하려고 한 청교도 배경의 비의식 교회로부터의 침해입니다. 따라서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이 주일이 기대에 찬 절기 중 절정의 주일로 마땅히 있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잃고, 크리스마스 \'메시지\'와 장식 및 음악으로 미리 점령을 당해 버리고 맙니다. 유의식 교회까지도 크리스마스를 물리고 대강절 마지막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Ⅱ. 대강절의 일반적 행사

 

1. 대강절 화환

교회와 때로는 가정에서 \'대강절 트리\'나 \'대강절 화환\'을 만드는 관습은 북부 유럽에서 유행하였으며 오늘날에는 많은 곳에서 점점 더 성행하고 있습니다. 대강절 트리는 화분에 심어 대강절 첫째 주일부터 매일 혹 매주일 새 불을 하나씩 달아 장식하는 작은 전나무나 가문비나무입니다. 새 불을 달 때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구약 예언을 읽고 카드에 베낀 후 새 불 옆에 놓습니다. 새 불이 켜질 때마다 이미 달아놓은 불들도 다 같이 켭니다. 이리하여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나무가 온통 불로 가득찹니다. 대강절 화환은 교회나 가정에 매다는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로 된 화환입니다. 대강절 첫째 주일은 붉은 초 하나를 화환에 달고 불을 켭니다. 주일마다 다른 초를 하나씩 켜고 때로는 한편에 구약 예언을 기록하고 다른 편에 신약의 성취를 기록한 종이별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대강절 화환의 사용은 한때 영국에 유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세기 교회 장식품 목록에는 \'둥근테\'가 수록되어 있어 현대 영국 교직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이 둥근 테는 초가 꽂혀 있는 동그라미였습니다.

 

2. 특별 참회일

12월 13일 다음의 수요일, 금요일 및 토요일은 로마 교회와 영국 교회의 \'특별 참회일\'이며 토요일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안수식이 있습니다. 특별 참회일은 16C에 많은 루터교 예배 순서에 나와 있으나 점차로 다른 참회의 날과 교리에 대한 강의로 바뀌어졌습니다. 참회의 날은 때때로 통치자들이 선포하였으나 수난절과 대강절을 그 자체가 참회 절기였기 때문에 이런 것을 지키는데 좋은 시기였습니다. 1533년 윗텐벨크 예배 순서는 대강절과 수난절의 처음 두 주간과 다른 때 두 번의 교리 강좌로 특별 참회일을 대체시켰습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및 금요일에 하루 두 번씩 강좌로 하였습니다. 다른 루터교 예배 순서들은 원래 같은 의식을 따랐습니다. 오늘날에는 참회와 교리 강좌의 날인 특별 참회일이 루터교에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위에서 대강절의 행사를 살펴본 이유는 행사의 각 주일에 맞추어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함을 되새기기 위함이며 이때는 엄숙함과 진지함의 자세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는 자세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새 생명의 기쁨을 주신 성탄절을 뒤에 두고 우리는 대강절 절기를 맞게 됩니다. 앞으로 맞게 될 4번의 주일은 대강절(강림절)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해 기쁨으로 대망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은 상업화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가 세속화되어,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대망과 기쁨은 크리스마스의 캐롤과 화려한 장식 등 요란한 행사의 복잡한 분위기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기 예수를 맞이하기 전에 인간이 걸어온 과거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반성과 명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흑암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렸고, 하나님은 인간의 간구를 저버리시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하며, 현재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마지막 날 다시 강림하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Ⅰ. 대강절의 의미

 

1. 강림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대단원이요 절정입니다. 예수님의 강림을 누가복음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했고, 요한복음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강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신 모든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요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①자유를 주시려고(눅4:19),②복음을 전파하시려고(눅4:18),③율법을 완전케 하시려고(마5:17),④죄인을 부르시려고(마9:13),⑤세상에 검을 주시려고(마10:34),⑥섬김과 대속의 제물이 되시려고(마20:28),⑦더욱 풍성한 복과 생명을 주시려고(요10:10) 이 세상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2. 강림의 의미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53:4)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나와의 관계이지 너와의 관계는 아닙니다.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진정한 대강절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Ⅱ. 맞이하는 자세

 

1. 주를 영접하는 대강절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속 제물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이며 그때에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자세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속에서의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씻겨 주시기를 원하고 그에게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섬기려 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맡기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2. 주와 함께 하는 대강절

인간들의 오락과 향유에 치우치는 성탄절 준비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대강절 화환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함이 없이 하나의 관습적으로 되어버렸고 오히려 기독교인들보다도 일반인들이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호화로운 연회를 배설하고 취하는 모습들은 결코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무분별한 상 행위와 유흥 업소들의 요란스러운 퇴폐 풍조로 인해 청소년들이 범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뜻을 바로 깨닫고 기도로 준비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탄절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Ⅲ. 강림절을 준비하는 자세

 

1. 강림의 준비

이사야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미리 닦고 준비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은 메우어야 할 낮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절망과 실망의 어두운 계곡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우리 중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허무의 계곡에서 있습니다. 그러나 대강절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의 생활 속으로 오셨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의미깊게 맞이하려면 이 대강절을 맞이하여 겸손한 마음 자세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 스스로를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교만한 마음에서 건져내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교만의 산과 이기심의 언덕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 거만한 태도를 가지고서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교만한 마음을 없이 하고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한 세리와 같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이웃과 온 가족 그리고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