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있는 신앙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설교 한눈에 보기
간추린 내용
신앙인은 생활 속에서 늘 감사해야 한다. 감사가 있는 신앙은 힘이 있다.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그들이 누린 풍성함에 대한 감사라기보다,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에 대해 믿음에서 비롯된 예배였다. 삶 속에서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는가? 믿음의 눈과 귀로 삶을 살피면 우리 삶 가운데 무한 감사가 일어날 것이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훈련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더욱 풍성한 믿음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설교의 목적
성도들로 하여금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신앙인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생활 속의 감사’일 것입니다. 감사가 있는 신앙은 아름답습니다. 감사가 있는 신앙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신앙의 본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사지수가 높은 신앙인의 삶은 행복지수도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도의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마음속에 우리의 감사를 크게 여기시고 귀 기울이시며 좋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또 인간관계에서도 감사는 매우 중요한 삶의 양식입니다. 건강한 인격은 틀림없이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들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혹자는 이 말의 빈도수와 국민 GNP는 정비례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나한테 잘하고 신에게 복 받으시오”라는 생각을 가진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단결심도 낮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사과농장을 하는 친구의 초청을 받아 아이 둘을 앞세워 시골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주인은 아주 탐스런 맛있는 사과를 꺼내 놓고 엄마와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사과에 눈이 팔려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말했습니다. “애들아 이런 때는 한마디 해야지…. 다섯 자 있잖아?”엄마의 핀잔을 들은 큰아이가 불쑥하는 말, 사과를 주인에게 내밀며“깎아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당황한 엄마가 둘째를 바라 봤더니 의기양양해서 하는 말 “뭘 이런걸. 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지만 자녀들은 감사를 쉽게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감사지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정신, 감사신앙을 어떻게 숫자로 표시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감사는 우리의 신앙을 알아보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청교도들에 의한 최초의 감사절은 풍성함에 대한 감사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동행과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예배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을 감사해야할지 스스로 감사를 찾지 못해서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과 귀로 삶을 살피면 하나님께 대한 무한 감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무관심이 그 감사를 잊고 살게 할 뿐입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그러했고 다니엘의 감사가 그러했습니다. 하박국은 세상이 너무 불합리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했었던 어느 날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이 거세게 일어나서 하나님께 항의했으나 곧 놀라운 경지의 감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다니엘은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현장에서도 늘 하던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였습니다.
바울 사도의 감사가 생각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 말씀에서 자족하는 삶의 비결을 배웠다고 기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바울은 감옥에 갇힌 사형수이며, 건강을 잃은 상태였으며, 인간관계 역시 무척 어렵게 꼬여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삼중고에도 불구하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과 감사지수가 비례한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저도 지난 주간에 감사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부정맥이 있어서 약을 먹고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앞 차와 충돌했습니다. 잠시 후 사고수습을 하고 흉하게 망가진 차를 보낸 후 한숨을 돌리며 저를 픽업할 차를 기다리는 길가에 앉아 있는 동안 감사가 가슴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접촉사고이지만 대형사고가 될 뻔한 일을 치르고 난후 잠시 회상하는 동안 가을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길에서 휘파람 찬송이 나오더라고요…. 휘파람을 불며 차를 기다리는 저를 누가 봤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제 마음 속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사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신비라고 여겨집니다.
정범진, 그는 미국교포입니다. 교통사고로 평생 전신마비로 살았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브루클린 검찰청의 부장검사까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단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숙연해지는 말이 아닙니까? 건강한 저와 여러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무런 의미 없이 드나드는 화장실인데 말입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말할 수도 없었던 삼중고의 여인 헬렌 켈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의 이 소박한 바람을 늘 누리면서도 감사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의 저자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지금 매우 의미 깊은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함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어쩌면 그들도 우리들처럼 기뻐하지만 항상은 아닌 것 같고, 감사하지만 모든 일에는 아니며, 기도하지만 계속적인 기도생활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삶의 모든 정황에 대한 감사로 보는 관점은 신앙훈련이 없이는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 범사라는 말인 헬라어‘앤 판티’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수식어가 붙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못을 박았을까요?
그것은 감정적인 상태에서가 아니고 체질화하고 규칙화하고 습관화하고 그것을 늘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범사의 감사를 이 가을에는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감사의 경험입니다.
미국의 설교가 죠지 트루엣은 말하기를 “최선의 지식, 가장 중요한 지식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최선의 성취는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차원의 감사생활이 이루어져야합니다.
감사와 기뻐함과 기도는 위의 것을 생각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위에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5-8)
그러므로 성도의 기쁨과 감사와 기도는 신앙의 DNA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삶의 성공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의 척도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죽을 수 있느냐?”입니다. 감사는 성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성공이다.” 여기 작자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감사 시가 있습니다. ‘감사하면 행복하리’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리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님의 숨결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습니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감사하기 힘들 적에도 주문을 외듯이
시를 읊듯이 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 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사계절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산책을 나갈 수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숲길에서 고요히 기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모든 것을 은총의 선물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신앙 안에서 절망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선택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나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가족 친지 이웃 얼굴과 목소리와 성격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어 감사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준 웃음 칭찬 격려
그리고 눈물 비난 충고
모두 삶의 양식이 되고
나의 성숙에 보탬이 되었음을 새롭게 깨달아 행복합니다.
이름 없는 이 감사자의 아름다운 신앙을 보십시오.
그의 신앙은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까?
감사하며 이 예배에 나왔습니까?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당신의 신앙의 성공적인 모습입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이 감사를 깨닫고 감사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끝으로 M. J. 라이언의 「Thanks」라는 책에서 강조하는, 감사가 주는 선물을 소개하며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가 주는 선물이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친다.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유된다.
감사하면 건강해진다.
감사하면 걱정 근심이 없어진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감사하면 고통과 분노가 사라진다.
감사하면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다.
감사하면 지금 이순간이 소중하다.
감사하면 상처받더라도 사랑한다.
감사하면 무엇이든지 나누어 주고 싶다.
감사하면 모든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다.
감사하면 평범한 일상도 은총으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