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의 축복

“대강절(待降節, The Advent)의 축복”

이사야55:3-5

 

 

가슴 설레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롭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축복의 기간이 대강절기간입니다. 이번 대강절에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축복된 기간이 되기를 소망하십시다.

대강절(Advent)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하며, 한때 이말은 성탄절에만 국한되어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주님의 탄생을 미리 기대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성탄절 전 네 주일을 포함한 절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강절의 또다른 명칭으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절(待臨節), 강림절(降臨節) 등이 있습니다.

교회 절기로서 대강절(待降節)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킵니다. 대림절(待臨節)이라고도 불리는 대강절은 세상에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앞서 그의 오심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어떤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그 축복을 가슴에 새기고 머리에 새기는 은혜로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 성화의 축복입니다.

 

 

대강절 기간에 “빛의 축제”가 전통적으로 행하여졌습니다.

빛의 축제의 기원은 과거 로마인들이 가졌던 그들의 민속 절기의 한 행사인, 농신제(農神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이 축제는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가 지나고 낮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세상에 태양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믿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나무에 촛불을 밝히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역사, 즉 과거 수리아 사람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부정한 것을 제단에 세운 것을 몰아내고 성전 청결 작업을 함으로 그들의 종교적 자유를 다시 찾은 것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행했던 8일간의 빛의 축제, 즉 수전절(修殿節) 행사와 결합되었고, 이는 다시 성탄을 즈음한 대강절에 빛의 축제로 변경되어 합하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 기간에 촛불을 맑혔습니다.

촛불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492년에 겔라시우스 교황은 교회내의 초를 축복하는 날로 성촉일(聖燭日)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에서 거대한 초를 밝히는 풍습이 행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동방 교회에서는 예수의 세례받으심을 기념하며,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를 경배한 기념일로 지키는 주현절(主顯節, 1월 6일)전야까지 밝혀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촛불 대신에 다양한 색전등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탄을 즈음하여 거리거리를 밝히며 어둠을 몰아내는 아름답고 밝은 빛은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스스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 것을 다짐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 우리는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습니다.

우리 안에 온갖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고 환한 삶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충만하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어둠은 고통입니다. 병입니다. 가난입니다. 절망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안에서 밖에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성결의 은혜를 누립니다. 성화의 능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모든 흑암 권세를 내 안에서 몰아내어주시고 속죄와 구원과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것이 바로 대강절에 우리가 누릴 축복인 것입니다. 거룩함의 능력을 입는 기간입니다.

 

2. 재림의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구원사역을 성취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누가 다시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 중에 누가 진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한 사람일까요?

대강절기간은 역사적인 전통 즉 과거의 전통에 서서 보면 사실은 참회의 기간입니다.

특별 참회는 12세기 이후에 생겨난 풍습으로 대강절 절기에 과거의 죄에 대한 참회를 하고 신앙적인 새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사라지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풍습이지만, 바티칸 성당에서는 지금도 12월 13일 다음의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을 특별 참회일로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특별히 참회일을 정해 놓지 않더라도 이 기간 중에 심판주로서 주님이 다시 올 것을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좋은 전통이었는데 개혁교회는 이를 잊어버렸습니다. 강조를 하지 않을 뿐이라고들합니다만 사실상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니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나를 살펴본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만나 신천 신지에서 혼인예식에 들어갈 신부되는 우리는 신혼신을 단장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성결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는 기간이 바로 대강절기간인 것입니다.

 

3.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립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분의 또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예수님을 바로 영접하고 그분이 계실 처소를 나의 중심에 만드는 의지를 가지고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대강절을 의미있게 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성도들은 이 기간에 구유를 만듭니다. 아기 예수님을 모시려는 마음입니다.

구유를 만드는 전통은 성 프렌시스에 유래를 두고 있답니다.

전통적으로 구유 만들기는 특히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아이들은 대강절 기간 동안 구유 모양의 모형에 짚을 조금씩 깔아 놓아 성탄절 이브에 아기 예수가 누울만한 푹신한 자리가 만들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구유를 만드는 풍습은 이탈리아의 성 프랜시스(St. Francis)가 1224년 그레치오 마을에 작은 구유 모양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남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사랑받는 풍습이 되었습니다.

한편 구유는 이탈리아에서의 프레세피오(presepio), 독일에서는 크리퍼(krippe),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예슬릭키(jeslicky) 등으로 불립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동안에 구유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기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그 당시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자리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쓸쓸하고 답답한 탄생이었습니다. 만약 들의 목자들이나, 동방박사들의 출현이 없었다면 문자 그대로 참담한 탄생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세상에 오셔도 영접하는 자가 없었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토록 예언된 메시야였음에도 유태인들은 어느 누구하나 관심을 가진 자가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참으로 쓸쓸한 도시였습니다. 갈곳이 없고 유할 곳이 없고 맞아 주는 이가 하나도 없는 바로 그곳 베들레헴의 마구간 말구유에 태어나신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모실 바로 아름다운 마음의 자리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임마누엘의 은총을 틀림없이 누릴 사람이 되고야말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진정으로 대강절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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