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2 째 주일 설교

대강절 2째 주일 설교
권 다니엘 목사
2010/12/04 18:13

제목 ;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성경 ; 사61:10-62:3, 갈4:4-7, 눅2:22-40.

 

  유나이티드 신대  권다니엘 총장

 

우리는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만 갖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르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의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메시야를 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시므온이 그런 계시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원래부터 바르고 경건한 사람으로서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나뵙는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또 한 사람, 아기 예수를 뵙는 영광을 누렸던 사람이 있습니다. 홀로 살아가던 여든 네 살의 ‘안나’라는 하는 여 예언자입니다. 그녀는 늘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안나는 아주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시므온’이나 ‘안나’는 평소에 메시야를 뵙게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경건하고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주님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뵙고자 원한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의 은혜 안에서 진정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주께서 일러주신 대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참 자유를 주셨고, 우리를 자녀 삼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까지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시므온이나 안나처럼 진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바르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며, 다시 오실 주님도 만나뵙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1.영원하신 주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이 과연 얼마나 간절한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고 가슴이 뛴다(61:10)’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사야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까지 쉬지 않고 부르짖겠다(62:1)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열심히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①생명의 주가 되시는 주님을 얼마나 그리워하면서 열심히 찾고 있습니까?

 

아주 급한 일이 있거나 아쉬울 때에만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정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은 적이 얼마나 되던가요? 혹시, 왜 주님을 그토록 간절하게 찾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마, 그런 사람이 우리 중에도 분명히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주님 뵙기를 원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 게 아닐까요? 기도하는데 무슨 이유와 핑계가 있겠습니까?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떤 악조건 속에서라도 주님을 열심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도와주실 때까지 쉬지 않고 부르짖겠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주님을 찾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주님을 가까이하면서 그 뜻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②성령을 배척하면서 악령의 지시를 따르게 마련인 것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는 시므온에게 메시야를 보게 되리라는 계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전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나뵙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4-35 말씀에서,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님의 부모에게 축복할 때에 ‘장차 예수를 배척할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 때문에 큰 기쁨을 누릴 사람도 있으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시므온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주님을 만나뵙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며, 악령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를 배척하면서 거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멀리하게 된다면 경건생활을 온전하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기쁘고 가슴이 뛴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에 따라 정의롭게 살 때에 영광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성령을 무시하고 주를 멀리하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을 포기할 경우,

 

③모든 일이 소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만족을 모르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요행수를 바라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복권이나 증권 같은 것을 사서 한 순간에 많은 돈을 얻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땀흘리는 수고나 노력은 하지 않고 밤낮 없이 용꿈이나 꾸게 되리라 기대하고 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요즘 세상에는 소위 대박이 터지기를 기대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박을 하거나 증권, 또는 경마를 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대박을 터뜨려 행운을 잡기 위해서는 999명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이 큰 피해를 입거나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사야가 노래한 것처럼 ‘땀흘려 일하고 정의롭게 살아서 승리하는 인생(62:2)’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은 운수대통해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바르게 살아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것은 내 멋대로 살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는 맘 내킬 때마다 가끔 교회를 나오게 되더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언제나 우리를 항상 지켜 보호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악을 심으면 악의 열매를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혹 노력하지 않고 거두게 되는 열매도 있을지라도, 그런 열매는 우리에게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의 신앙상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금 주의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에 알맞은 상태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게 되어 있는지,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좀더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주의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의 햇빛을 듬뿍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복된 한 해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늘 가까이 만나뵐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 35절 말씀에, ‘주님을 배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배척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가 큰 기쁨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2.주님을 늘 만나뵙기를 소원하면서 경건하게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눅 2: 35 말씀에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생각들을 드러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속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믿는 척만 해서는 도무지 주님을 만나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①그야말로, 우리는 주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노래하기를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하다(130:6)’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되, 시므온과 안나처럼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경건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결혼해야 할 처녀총각들은 좋은 배우자 만나기를 소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부터 먼저 좋은 배우자감이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자신은 그런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 만나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천치가 틀림없습니다.

 

교인들은 먼저 자신이 좋은 성도가 되기를 힘쓰면서 좋은 목회자를 원해야 할 것이고,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훌륭한 목회자가 되고자 힘쓸 때에 교인들도 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각자가 먼저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뵐 때까지, 우리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면서 거듭나야 합니다. 신랑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의 성품과 신앙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 주님을 뵙게 된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②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웬만큼 교회를 다니게 되면, 우리는 성령과 악령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한 것입니다.

 

요 16:13 말씀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기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진리의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계신 주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누리게 될 뿐만 아니라,

 

③그 주님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얻게 되는 기쁨과 만족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손해를 끼치면서 누리게 되지만,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족은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과 만족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족은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모두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해 분투 노력합시다. 진리가 아니면 아예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가지도 맙시다. 내 감정과 이익에 따라 행하는 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적극 배척하면서 주의 뜻에 따라 살도록 노력합시다.

 

새해에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뵙는 생활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제목 ; 어둠 속에서 비추는 생명의 빛이시라!

 

성경 ; 사52:7-10, 히1:1-4(5-12), 요1:1-14.

 

 

 

요즘 ‘자살 사이트’가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살 사이트’란, 자살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살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입니다. 그러니까, 자살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를 죽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줍니다. 그리고, 혼자 죽기가 두려워 동반자살을 원하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살 사이트’가 얼마나 되는지 그 숫자를 다 알 수 없지만, 그 대부분은 자살을 유도하기보다는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이트가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악용되는 예가 많다고 하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쯤은 자살을 꿈꾼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 중에서도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하게 되었을 때에, 그래서 도무지 살아갈 용기가 없거나 살 의미를 잃어버렸을 경우, 우리는 자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만으로도 인생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어둡고 캄캄한 시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거기에다가 거센 풍랑까지 있을 경우에는, 참으로 그 인생은 위태롭고 암담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칠흑같이 어둔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 한 척이 산더미 같은 파도를 만나게 된다고 합시다. 그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그 절망적인 상태가 계속되어 심히 고통스러울 때에는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멀리서 비치는 한 줄기의 등대 불빛을 발견했다고 합시다. 그 순간,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절망이나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쁨으로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불빛을 향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절망과 비탄의 한숨만 짓던 그 입에서는 노랫소리도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죽음의 바다에서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헤매던 우리 인류에게 한줄기 생명의 빛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이 땅에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죽음의 바다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그 인생의 진로와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셨습니다.

 

일제의 암흑기를 살았던 김활란 박사는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하고 노래했습니다. 일제의 회유와 압박을 견뎌내자니, 참으로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 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울린다 기도 울린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찬송 461장 1, 3절)’

 

매춘여성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우물가선교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 회장인 최재하 목사님이 룸살롱의 웨이터로 위장취업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거짓웃음과 몸을 팔아 생명을 연장하는 불우한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고충을 헤아려 잘 보살펴줬습니다. 짓궂은 손님 때문에 울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위로하고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 목사님도 그들 인생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최 목사님은 생일 초대장을 만들어 웨이터와 호스테스에게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지만, 최 목사님은 웃음으로만 답했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손님들은 모두 가고, 짝짓기에서 제외된 아가씨들과 웨이터만 남았습니다. 최 목사님은 전등을 끄고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마담이 다시 누구 생일이냐고 묻자, 최 목사님은 조용히 입을 열어 예수님의 생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가 어떤 사람에게 제일 깊은 관심을 가졌고 어떻게 사셨는지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엄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가씨들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최 목사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쌍한 죄인들을 가슴에 품어주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 받던 그들과 그들의 공간이 거룩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 최 목사님과 그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소리쳐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그들은 최 목사님께 예수님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룸살롱에서는 자연스레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그 룸살롱이 문을 닫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룸살롱의 주인이 신앙을 이유로 전업했기 때문입니다.

 

최재하 목사님이 어둠 속에 있던 그들에게 예수를 소개함으로써, 그들도 광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요1:12 말씀처럼, 그들도 하나님 의 아들인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귀한 신분을 버리고 이 낮은 곳에 내려오셨습니다. 마치 최 목사님이 목사라는 신분을 버리고 웨이터가 되어 룸살롱에 들어갔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헛되고 썩어질 것에 목을 매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인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셨건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인격과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히1:3)’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게 하신 후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까지 부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처럼 그 인격과 행함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말씀의 잔치’ 때에 강사님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는 그 인격과 성품이 거듭나고 변화되어 성화의 단계까지 다다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1.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지요?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고,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어떤 성경에서는 특권 또는 권위라 번역했습니다. 권위는 지위나 신분만 갖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언행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목사요 장로이니까, 사람들이 무조건 존경하며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는 모습이 여느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존경하며 따르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특권을 누릴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언행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김홍기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는 말씀에 따라 행함으로써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그 행함으로 보여주고 있는지요?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아직도 옛 성품을 다 버리지 못하여,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때가 많습니다.

 

①그 이유는 죄악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께서 우리를 어둠 속에서 빛 가운데로 건져내셨건만, 우리는 여전히 어둠의 행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아무개 집사요 권사인데, 그 언행은 옛날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만 빛의 자녀이지, 그 행위는 여전히 어둠의 자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 인격과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주의 자녀라면, 그 얼굴에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주님을 굳건히 의지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깃들게 되거니와, 그 현상이 얼굴에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만 주의 자녀이고, 아직도 어둠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얼굴 또한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얼굴이 항상 일그러져 있거나 짜증 섞인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성탄절에 다시 한 번,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장하실 수 있도록 거듭나고 새로워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주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써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어 가도록 합시다.

 

 

주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모습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선 그 인격과 행함에 있어서, 그 자신이 하나님이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결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화롭게 되어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온전하게 살 수 없지만, 주님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태양이라면, 우리는 달처럼 태양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우선 주를 기쁨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꽉 붙들고 있는 어둠의 사상들을 다 버리고, 주님의 말씀과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더러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분노와 원망과 다툼, 교만과 혈기를 버려야 합니다.

 

②주님의 진리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자꾸 내 생각을 앞세우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어둠에 속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은 듯 하더라도, 우선 말씀을 비춰서 냉정하게 자기 생각을 잘 판단해봐야 합니다.

 

그 이전에,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진실하게 살려고 애쓸 때에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생활이 진실하게 될 때,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③그 마음과 얼굴에 기쁨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즉, 빛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이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삶으로 성숙하게 될 때, 우리 인생은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열심히 닮아감으로써 그 인생이 영화롭고 아름답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참빛이신 예수를 언제나 바라보고 살자!

 

성경 ; 사61:1- 4, 8-11, 살전5:16-24, 요1:6-8, 19-28.

 

 

어저께 신문에는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종 승리가 확인 된 부시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미국의 밝은 미래를 내다보았습니다.

 

한편, 고어도 아주 인상 깊은 패배선언을 해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만물상’은 고어의 연설을 ‘너무나 멋진 연설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그 연설문 중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법에 따르겠다’고 한 부분을, 특히 눈에 띠는 내용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고어가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애썼으나, 이제는 결론이 났으므로,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도 참 많으나, 그래도 아직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더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부시와 고어의 언행을 통해서, 미국은 아직도 기독교 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으나, 결코 교만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겸손히 주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부시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미국만 아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부시 당선자보다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참빛이 되어 오신 예수이십니다. 이사야가 증언하기를 주님은 ‘아주 높은 보좌’에 앉아 계셨습니다. 하건만, 그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은 ‘너희의 영과 혼과 몸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지켜주시기를 빈다(살전5:23)’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미 2천년 전에 오셨던 그 예수님의 탄생을 기릴 뿐만 아니라, 그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틀림없이 나타나실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금번 성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를 모범으로 보여주신 그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정의롭고 거룩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탄생의 참된 의미를 망각한 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축제행사로만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목적을 되새기는 게 아니라, 성탄절 분위기에 휩싸여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1.우리는 빛으로 오신 예수를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절 말씀에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도 직접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옳은 것을 받아들여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도 ‘어떤 일이든지, 그것이 참으로 옳은 것인가를 확인해 보고, 만일 옳은 일이거든 받아들여야 한다(살전5:21)’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라고 하시면서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 신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마5:16)』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참빛이신 주님만을 열심히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그 빛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둔 세상만 바라보고 살면, 그 어둠이 내 얼굴을 가려서, 우리 자신의 얼굴도 어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①혹시 거룩하신 주님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그 관심이 온통 세상에 쏠려있는 까닭에, 자신이 주의 제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를 처음 믿게 되었을 때에는 구원과 영생이 참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받은 그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땅의 썩어질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될 때에는 불법과 부정도 행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손해가 된다거나 기분이 나쁠 때에는 그 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탁구 여왕이었던 양영자 선수를 모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 이전에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탁구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는, 그 운 동하는 목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탁구의 재능을 갖게 된 것은 내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또한, 세계 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탁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하기를 ‘예수만이 나의 소망이고 기쁨이다. 이제 나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라, 천국의 면류관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목표도 양영자 선수와 동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의 제자 된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②빛이 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인생 목표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쁨과 감사도 없고, 항상 불평 불만을 품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목표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그런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이 잘 되어도 더 크게 이루지 못해서 불만인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할 우리가 그런 생활태도를 보인다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올바른 생활을 하지 못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바로 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 받기 원하네. 어떤 이는 고통과 근심 걱정 많으니, 사랑 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 하도다. 사랑 없는 까닭에×3, 저들 실망하도다(찬송373장)’

 

예수 믿는 우리가 바로 살기를 포기한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소망이 없습니다. 하건만, 우리는 자신의 등불이 꺼진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등불 꺼진 것만 탓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이들이 더 타락했다고 아우성인데, 우리는 서로 남의 흉보고 탓하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욕하고 흉보는 것은 기쁘게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끼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끼리 싸우거나 다투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더욱 우습게 알거니와,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의 등불 꺼진 것을 가지고 말할 게 아니라, 자신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나 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참빛이신 주님만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빛을 밝게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저는 그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가 정치를 훌륭하게 잘해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나오는 모습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목회를 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저나 김 목사님이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면서 열심히 뒷받침을 잘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사의 뜻을 거역하거나 방해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여러분 자신에게도 큰 손해가 되며 창피스런 일이 될 것입니다.

 

교인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서로 예수의 빛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교우들 중에서 누가 칭찬 받을 일을 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도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성도의 허물을 들춰내어 소문내거나 비난하는 일을 삼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짓은, 우리 모두 함께 창피 당하는, 아주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3.우리 모두 주님의 참빛을 받아서 빛 된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세상 등지고 주님만 보네, ― ,

 

―,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을 바라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거짓과 부정과 불법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좌절하거나 절망을 한다면, 그 사이에 우리 자신도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또한 하나님과 이웃에게 실망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①우리는 예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8절에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었고, 다만 그 빛을 증거하러 왔음 따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장로나 권사가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바라봐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어둔 세상 바라보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올바르지 못한 교인을 바라보고 낙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또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에 열을 올리지 마십시오. 각자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빛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②참빛이신 주님을 본받아서 빛 된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에, 과연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옳은 일이면 받아들여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되고 악한 것은 멀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아무리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줄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일이면 목숨을 내놓고 거절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 있다(살전5:18)’고 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며, 언제나 기도에 힘쓰고,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는 불평 불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빛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기쁨과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모셔 사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며 그 말씀을 되새기는 기도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③이렇게 사는 성도가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정의와 말씀을 사랑하며 사는 주의 백성과 그 후손은, 세계 만민에게 알려져 존경을 받고 여호와께 복 받은 백성이라는 칭찬을 받으리라(61:9)’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참빛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정의롭게 살아감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주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라!

 

성경 ; 사40:1-11, 막1:1-8, 벧후3:8-15

 

 

저는 지난 시간에 ‘인생은 기다림’이라 정의한 후에, 우리 기독교인은 공통적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이 지켜 행해야 할 본분을 잊지 않고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명의식을 잘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입니다. 막연하나마 좋은 미래가 열렸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살지만, 그 좋은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의 본분을 망각하고 살면서 천국에만 가려는 몰염치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사막을 여행하던 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그는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사막 한 가운데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마침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넥타이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는 “넥타이 하나 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뭐라고요? 당신 지금 제 정신입니까? 목말라 죽게 된 사람에게 넥타이를 사라니?”하면서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사나이에게 “넥타이가 당신에게 꼭 필요할 겁니다. 넥타이를 하나 사십시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나이는 화가 나서 “집어치워요! 그리고 당장 꺼져버리시오! 지금 나에겐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이 최고야! 내게 지금 넥타이는 아무 소용없어!”하고 소리쳤습니다. 넥타이 장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다음의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후회하게 될 텐데…”

 

그는 갈증을 참으며 앞으로 더 걸어갔습니다. 저녁나절에 되었을 때쯤, 그는 커다란 식당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주차장에는 고급 승용차가 죽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사나이는 급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제게 우선 마실 물 좀 주십시오. 그리고,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먹을 음식도 좀 주십시오!”

 

그러나, 사나이는 영문도 모른 채 종업원들에게 쫓겨나야 했습니다. 사나이는 항변했습니다. “아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종업원들은 말없이 식당 문밖에 세워둔 팻말을 가리켰습니다. ‘정장 차림이 아닌 분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그 사나이는 결국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식당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넥타이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라!’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막에서 넥타이를 사라’는 것처럼 아주 쓸데없고 무익한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지, 주께서 언제 오신다고 그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인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우리에게 ‘항상 깨어 기도하라’니, 무슨 정신 없는 소리인가! 이렇게 항변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이사야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는 ‘모든 인간은 풀 포기처럼 허무하고, 인간의 모든 영화와 권세도 들의 꽃과 다른 게 없다(사40:6)’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처럼 ‘한 포기 풀과 같은 인생은 곧 마르고 시들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영원하다(8)’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지금 갖가지 일들로 인해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죽게 된 운명인 것입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 그리고 멋 부리고 뽐내며 출세하는 일 등, 이런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래를 바로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설계(設計)가 되어 있어야, 오늘을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바른 전망(비전)을 가져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바로 알고 바로 선택을 하며, 그 결과로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문제에 급급해하거나 안주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 어느 정도는 짐작하면서도,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자신에게 닥쳐올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길을 외면한 채 세상 길로만 빠져들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인생을 가리켜 ‘거친 사막’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이 사는 세상도 ‘거친 사막’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 살길인지, 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과 그런 사람들에게는 ‘항상 깨어있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합니다. 그야말로, ‘광야에서 넥타이를 사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1.그런 사람들이 주님께서 찾아오실 길을 예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세례 받고자 온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께서 가실 길을 광야에 뚫어놔라. 거친 사막을 평평하게 다듬어, 주께서 통과하실 큰길을 닦아라(막1:3)’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고 세례 받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세례 요한은 ‘아무런 준비 없이 주님을 맞이할 수 없다. 그러니,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기 생각과 세상 욕심에 묶여 살았던, 그 옳지 못한 생활태도를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고 있는지요?

 

①거칠고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고집스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살다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한참동안 고난 당하면서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사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니, 주님 맞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늦게나마 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과거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하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만 원망하던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까닭에 고향에 돌아갈 꿈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타향에서 종살이하다가 이국에서 한 줌의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서도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꿈을 저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그냥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 믿기 이전과 다름없이 원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기보다는 자기 고집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 의(義)가 강해서 타인의 말은 잘 듣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려먹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은 특히 자신의 허물을 거의 발견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무슨 잘못을 범할 때에 그걸 잘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늘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항상 불평불만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거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타협적이고 비협조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③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속한 세상도 자연히 사막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허물과 잘못을 범하게 마련인데, 그걸 용납하지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이 있을 곳은 이 세상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런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 틀려먹은 세상인 것입니다.

 

그처럼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인의 잘못을 문제삼으며 세상 탓만 하다가, 바로 자기 자신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오셔서 이루시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하나님께 그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게 될 경우, 그런 사람은 남의 허물을 좀처럼 들춰내거나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려고 애쓰면서, 그 부족한 점을 고쳐 살고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 제 역할을 잘 감당치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은 자신만 불완전한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 때문에 나 자신이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스승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주 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①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 핑계 댈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면,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악인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정작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주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다수의 의인들이 보이지 않게 선한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이 세상은 존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이 바로 살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한다고 해서 분개하거나 불평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내 속에 있는 거칠고 고집스런 마음을 제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성실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라’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일없이

 

②주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첫째 단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항상 나를 앞세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앞서 진행하기 전까지,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앞서 가시면 우리는 겸손히 그의 뒤만 따라가야 합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이 죄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자기를 항상 돌아봐야 합니다. 남이 잘못하는 것 가지고 문제삼으려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 허물과 잘못을 고쳐 가는 일에만 전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타인이 잘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 번째 단계는 이웃과 평화롭게 사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될 때에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주장을 버리고, 말씀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다 보면, 천국은 이미 우리 가운데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가운데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뵙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의 오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주님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③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고집에 따라 살 경우에는 실패와 허무만이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주님의 뜻에 따라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 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0장 11절 말씀에 ‘목자가 자기 양떼를 돌보듯이,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그 품에 안아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믿고 주님을 따르게 된다면, 어찌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먼저 이런 천국이 되도록 합시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가정이 이런 천국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 마음에 이런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우리 모두가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제목 ; 기쁘게 의를 행하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하자!

 

성경 ; 사64:1-9, 막13:32-37, 고전1:3-9

 

 

 

인생을 가리켜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고해(苦海)’라고 말했습니다. 욥기5:7말씀을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인생은 허무한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시편89:47에서, 시인은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노래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나그네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는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들이다(2:11)’라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인생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인생은 기다림이다’라 풀이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뭔가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영원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혼의 젊은이들은 좋은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분들은 그 형편이 나아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공통적인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우리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게 된다(벧전5:4)’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계20:6)’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어서, 우리는 그 집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후5:1)’고 했으니, 어찌 그 날이 기다려지지 않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그 날이 되어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면, 눈물과 고통이 없고 서로 헤어지거나 나뉘는 일도 없이, 오직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밧모섬’에 있는 요한 사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 사도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거나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주의 오심을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의 원자탄’ 주인공이신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의 쇠사슬에서 신음하던 중에 이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우리는 이 노래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은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막13:32)』고 하셨습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으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열심히 지켜 살아야 합니다. 고전1:7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의 선물과 능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주께서 일러주신 진리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맞을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설마, 금방 오시려나? 다음에 오시겠지!’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잠이나 자고 있다고 합시다. 그 때에 갑자기 주께서 오신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이들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문밖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해달라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일을 하셨다(64:4)’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쁘게 의를 행하고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5)’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든 시대 상황을 볼 때에 마지막 때가 가깝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과연 얼마나 주님 맞을 준비를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느 신학교에서 한 젊은이가 교수에게 찾아가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사람이 죽기 얼마 전쯤이면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야 몇 시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교수는 쉬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그거 참 좋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자기 앞에 놓여진 수십 년의 세월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수실을 막 나가려 할 때 그 교수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언제쯤 죽을 것인지 알고 있나?” “그거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젊은이는 마음내키지 않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죽게 될는지, 그 때와 그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기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속셈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알려주시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내일이라도 당장 주님께서 오시면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만반 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①‘항상 깨어 있어라’는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서 심판을 받게 되리라(요5:29)』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20:13의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우리는 불의와 죄악으로 더러워졌다(64:6)’고 하면서, ‘죄악에 찌든 우리는 심판의 폭풍에 휘말리어 사라지고 있다’고 멸망을 앞둔 동족을 바라보면서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해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없고, 스스로 뉘우치면서 주님께 매달리는 이도 없다(7)’고 통탄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사야 선지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②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정신 없이 잠만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사야 선지자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요?

 

주님 맞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씀하겠습니까? 아니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까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외면한 채, 육신의 안일과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을 보고, 그는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옛날 아담과 하와처럼 변명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지 않고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주님 맞을 준비를 소홀히 했던 사람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어두운 곳에서 땅을 치고 통곡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한 소년이 자동차에 치였습니다. 운전사는 피 흘리는 소년을 놔둔 채 뺑소니쳤습니다. 다행히 뺑소니 차량번호를 본 사람이 있어서, 그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그 차량번호를 추적하여 그 날로 범인을 검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범인은 피해자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운전 기사는 피해자가 자기 아들인 줄도 모르고 사고를 낸 후 뺑소니쳤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고 도망쳤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심판 날에 이르렀을 때에야 그런 도피가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간 올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양심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있건만, 우리가 그 양심을 버리고 도망칠 경우, 그 비양심이 우리를 심판하는 도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2.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다(고전1: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노라고 핑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불참하는 게 아닙니다. 심판 날이 가깝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 형편과 의지에 따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임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깨어 있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①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행수를 바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마침 깨어 있을 때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유심히 바라보듯이, 하나님은 그가 일러주신 대로 바르게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만 면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고, 주의 뜻대로 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시키니까 억지로 행하는 자녀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녀가, 부모 된 입장에서 볼 때에 훨씬 더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성도 된 본분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서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스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②‘깨어 있는 삶’이란, 주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주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 주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내 뜻과 감정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을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을 느끼게 되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잠을 자면서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는 주님 맞을 자격이 없습니다. 편안히 예수 믿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감나무 밑에 서 있다가 감이 저절로 떨어져 입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맞을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③그럴 때에,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주님 맞을 준비를 부지런히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제목 ; 너희가 진정 하나님나라 백성인가?

 

성경 ; 삼하23:1-7, 계1:4-8, 요18:33-37

 

 

김진홍 목사님이 청계천 빈민가에서 활빈교회를 개척할 당시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루는 교회 근처 가정집에서 굿을 했습니다. 시끄러워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목사님도 굿하는 데를 갔습니다. 목사님이 먼 발치에서 굿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무당이 굿하다가 말고 목사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목사님이 이곳에 계셔서 더 이상 굿을 할 수 없으니 이곳을 떠나주십시오” 하더라는 것입니다.

 

굿은 며칠 째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굿판을 벌였던 그 가정의 일곱 식구가 모조리 교회에 출석한 것입니다. 예배 후에 그 사연을 물어보니, 무당이 보내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굿을 해서는 도저히 병을 고칠 수 없으니, 교회에 나가보도록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무당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길에서 그 무당을 만나게 되어 “지난번에는 참 고마웠습니다”라고 사례했습니다. 그러자, 그 무당은 “별 말씀 다하십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목사나 무당이 같은 종류의 직업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도 어이가 없었지만, 신세를 진 마당에 더 이상 따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당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도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쨌든, 모든 신들 중에서 예수님이 최고의 신이라는 것을 웬만한 무당들은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강절을 앞둔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진리와 정의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리고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그 사실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1:5에서『예수님은 땅 위의 어떤 왕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늘 사랑하신다’고, 사도 요한은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예수를 바로 알고 믿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 요한은『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계시해주셨다(계1:5)』고 말했습니다. 요18:37에서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에 진리를 가지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내 제자들이다(3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리란 또 무엇일까요? 요14:6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곧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에 관한 성경 말씀이 진리가 되고, 그의 가르침과 삶이 또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며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예수를 바로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바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무당이 섬기는 신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같은 종류의 신으로 취급하면 안됩니다. 무당들은 무병장수와 치병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를 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만왕의 왕이시고 진리의 근본이 되시는 예수를 얼마나 잘 믿고 있습니까? 무당이 잡신을 섬기는 모습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비교해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여타 하급 종교를 믿는 자들과 비교할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고상하고 차원 높은 모습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많은 분들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를 바로 믿고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까닭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렵사리 번 돈을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는 분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적지 않은 오해와 손해를 감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 예수를 믿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당들도 인정하고 있는, 만왕의 왕이신 그 예수를 신중하게 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진리와 정의의 왕이신 예수를 점점 멀리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백성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 제사장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구름 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①그런데, 그 예수를 잘 모르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척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진리를 찾기 위해서 오랫동안 순례의 길을 걷다가 한 수도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수도자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수도자는 그 젊은이를 연못으로 가까이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는 물에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수도자는 계속 이 젊은이를 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수도자는 그를 끌어 내놓고 물었습니다. “물 속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던가?”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숨쉬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요.” 그러자, 수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갈급한 마음으로 노력해본 적이 있던가? 진리는 그처럼 간절하게 찾는 자만이 얻게 되는 것이라네!”

 

우리는 어떻습니까? 진리이신 예수를 바로 알기 위하여 그런 노력을 기울인 적이 얼마나 되던가요? 우리는 예수를 아주 쉽게 믿으려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실 진리 안에서 바로 살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과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대충 예수를 믿어서는 재림 예수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②진리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없는 고로 주의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18:37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내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요컨대, 진리 안에서 살지 못할 때에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진리를 가지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우리 중에는 예수님에게서 엉뚱한 것들을 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떠나 불의와 타협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양심으로는 무엇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백성이 취해서는 안 될 잘못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뜻을 거역하면서 죄를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합니다. 금방은 그렇게 하는 것이 손해도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 뜻을 거스른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하나님나라 백성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그 공로를 무효화시키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자꾸 내리면, 자신만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교인들까지도 불행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당신의 몸을 던져 구원한 주님의 백성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다시 죄를 지으며 멸망에 빠지게 될 때, 그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혼자 사는 집사님에게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이 어느 날 행방불명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천지사방으로 딸을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도무지 그 딸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쯤 되었을 때에야 진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진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딸은 어느 여관에서 몸을 팔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마자 쥐어뜯고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딸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방바닥을 뒹굴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어머니는 그 딸에게 호소했습니다. ‘제발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 품안에서 그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혹시, 집을 나간 딸처럼,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시면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는 불의한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가 올바른 길을 가면서 바른 인생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만을 바라보고 바른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우리는 주님의 제자답게 진리 안에서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삼하 23:5에서 『내가 주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면, 주님은 항상 내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마음에 들도록 살고자 애쓴다면, 주님은 이미 내 곁에 계셔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변덕을 부리거나 변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①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예수가 진리와 정의의 왕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밖에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만이 가장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과 제자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눈앞에 빤히 진리가 보이는데, 우리가 불의를 택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믿는 자의 도리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그렇게 살기가 고달프다고 해서 다른 길로 간다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정의롭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②주님 예수의 제자답게 진리와 정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18:36)』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나라가 아니라, 진리와 정의가 가득한 천국이 바로 우리가 속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는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주의 백성이라 하면서 거짓말쟁이 사탄을 따른다면, 그처럼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진리를 따른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내 뜻과 감정을 버리고 주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③주의 뜻에 따라 살기가 힘들지만, 그 길을 열심히 갈 때에, 주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참 제자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천국 백성답게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자!

 

성경 ; 욜2:21-27, 딤전2:1-7, 막6:25-33

 

 

‘오 주여, 나에게 진정한 삶을 주소서.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주소서!’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즉,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감사\'를 ‘그락토스\'라고 하는데, ‘당신의 도움으로 내 인생이 향상되었으니, 그 은혜를 내 마음 속에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돌봐주신 하나님과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바로 감사(感謝)라 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분들은 감사절의 유래를 다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말씀드릴까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에서는 밀 수확기에 빵을 만들어 바치는 맥추절과 가을에 수확한 모든 소산물을 드리는 수장절, 이 두 번의 감사절을 지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감사절은 미국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청교도들이 그들의 정착지인 ‘플리머드’에서 1621년 가을에 첫 감사절을 지키게 되었는데, 그 추수감사절이 교회의 감사절기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먼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일 나중에 자신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 제물로 드렸습니다. 우리나라는 1904년에 처음 감사절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로 보건대, 감사절 예배는 여유가 있어서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언제나 함께 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바로 감사절 예배인 것입니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하도 호화롭게 살기에 무엇이 행복인지 알 수 없어서, 하루는 신하들에게 ‘행복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혜로운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전국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아내어, 임금님께서 그의 속옷을 빌려 입으십시오. 그러면,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그 신하의 말대로 행복한 사람 찾기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를 다 뒤져도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목동 하나가 나타나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그가 입고 있는 누더기 옷들을 벗도록 지시했습니다. 임금님은 과연 그의 속옷을 입으면 행복을 알 수 있게 될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목동은 옷을 다 벗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는 아무런 속옷도 입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목동이 과연 행복했는지, 그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예화는 행복의 관건이 그 주변환경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갖기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우리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주어진 인생을 참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이 무슨 감사할 일이 그리 많다고,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땀흘려 가꿔 거둬들인 소산물로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을까요? 그들이 거둬들인 곡식으로는 그 해 겨울도 지내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요엘서 2장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각종 짐승과 새들이 뛰놀며 생활할 수 있는 푸른 초장과 우거진 숲들도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것이고, 햇빛과 비를 주셔서 온갖 식물이 자랄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망가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역을 벗어나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법도 안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만 인간은 그 법도를 어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동산도 인간 때문에 저주받아 황폐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도록 고생을 해야 했고,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다시금 ‘아름다운 동산’ 곧 천국을 소유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의 기회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감사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본래 그 모습대로 다 회복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요엘서 2장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너희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라(21)』고, 요엘 선지자는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연 대지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이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황폐해진 대지를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비와 가을비를 전처럼 내려주시고 모든 해충들도 사라지게 하셔서, 온갖 곡식이 넘쳐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매를 맞지 않으며 고통을 겪지 않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 중에 있다는 것과, 나 여호와만이 너희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이 다시는 이 같은 매를 맞지 않을 것이다.』요엘서 2장 2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새롭게 허락하신 그 구원의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참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옛 조상들이 행한 그대로 죄를 짓고 있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고마우신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1.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고(三重苦)의 헬렌 켈러 여사가 세계 최고의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 기적을 이룬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 중에서 최대의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정상이 아녀도 큰 불행으로 여기는데, 그녀는 세 가지 모두 정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걸 온전케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만 깨닫는다면 모든 것이 다 온전케 될 것입니다.

 

①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망각하고 살 때가 더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나고 훌륭해서 한 일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잔뜩 교만에 차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예수를 믿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듯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불평불만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②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돌리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만일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될 때에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감사가 그 마음에서 사라지게 되면 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참으로 불만불평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옳지 못한 사람들뿐이고, 나만 바르게 사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를 더욱 깊이 알게 되면서부터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평만 일삼던 내 과거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문제만 끄집어내면서 불평하는 내 모습이, 주님이 보실 때에 어떠했겠습니까?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한 존재였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살면

 

③하나님의 징계를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만 징계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못살게 합니다. 먼저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아야, 자신은 물론이요 타인에게도 은혜를 끼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그 죄의 결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마음이 불안하고, 그 가정도 또한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가 속한 교회가 평안치 못합니다. 불평하는 자 하나만 있어도, 교회 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불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감사와 찬양이 그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혹 불만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말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조용히 기도해야 합니다.

 

 

2.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205장)’

 

‘묘한 세상 주시고 아름다운 하늘과 많은 사랑 베풀어 우리 길러 주시니, 우리 주님 예수께 감사 찬송합니다(312장)’

 

곽선희 목사님이 몇 해 전 북한에 갔을 때라고 합니다. 나진 선봉에 있는 북한 지도자들이 ‘식량도 없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하면서 걱정했습니다. 고기떼가 몰려와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왜 그럴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이 있었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참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회복해주실 것입니다.

 

①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그 다스릴 권한을 우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시고, 때때로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언제나 주의 그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②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참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깊어집니다.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주님을 찬양하는 마음을 지닌 자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혹 육신은 고달플지라도, 그 마음만은 평안을 누립니다. 때로는,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더라도, 주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주께서 주신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돌봐주실 줄 믿고 감사드리고 있는데, 어찌 평안을 빼앗길 수 있겠습니까?

 

아무쪼록, 날마다 주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고, 진실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구원받은 자의 도리를 다하라!

 

성경 ; 룻3:1-5,4:13-17, 히9:24-28, 막12:38-44

 

 

 

미국에서는 지금 고부간의 싸움이 한창 입니다. 고어와 부시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고부간의 갈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은 아주 심각합니다. 전체 득표수는 고어가 더 많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부시가 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시가 당선된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 재개표 결과에 따라 당락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옛날엔 패자가 승자에게 축전을 보내고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한 분이 먼저 깨끗이 패배를 시인하고 상대편의 손을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보다 양보한 사람이 더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두 분은 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누구든지 먼저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먼저 양보의 미덕을 보여준다면, 다음 번 대통령은 거의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 이 아닌가 봅니다. 두 분은 우리네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인격과 성품을 지녔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 그야말로 십자가 지듯이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더욱 아름답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처럼 아름답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복을 베풀어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룻기 본문은 더욱 진한 감동과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정든 고향 땅과 부모형제를 버려두고 시어머니를 따라온 며느리 룻을, 나오미는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가 봅니다. 나오미는 룻의 신랑감을 사방팔방으로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만큼, 나오미는 며느리 룻이 예쁘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자기 고향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되신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며느리 룻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기도원을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뭐든지 심거나 뿌리지 않고 거둘 수는 없다는 것과, 열심히 가꾸지 않고 많이 거둘 수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저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성실한 농부는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가꿉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성도는 젊었을 때에 희생과 봉사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합니다. 그렇게 살 때, 노년에 가서 거둘 것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젊어 힘이 넘칠 때, 그 남는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지런히 뿌려야, 노년에는 그 열매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야, 죽어 저 세상에 갔을 때에 거둘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징벌이 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냥 우연히 룻을 만나서 효도를 받게 된 게 아닙니다.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룻처럼 훌륭한 며느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룻 또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게 되었고, 그 결과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심은 대로 거두었던 것입니다.

 

희생과 헌신에는 뒷말이 없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뒷말이 있으면, 그것은 마치 열심히 뿌려놓은 씨를 흩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를 뿌렸으면 가을이 되기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겸손한 자세로 자기 행위를 감추게 될 때, 그 희생과 헌신은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영생을 얻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때에 하늘의 복을 누리리라 믿고,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복이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리라(9:28)』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구원의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예수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어떤 예수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셔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 예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를 거두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또한 주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의 기본적인 생활은 희생과 헌신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나오미처럼 아랫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 보살펴줘야 합니다. 그리고, 룻처럼 윗사람의 말에 순종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천국에 들어가 심판을 받는다면, 상급과 징벌 중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만일 상급을 받는다면, 과연 어떤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9:27)』고 했습니다. 교회만 그럭저럭 다니다 보면 천국에 들어가리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심은 대로 거두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믿는 자의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져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십자가를 피하거나 외면한다면, 하늘에서 상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서운 책망과 함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위협이나 공갈이 아닙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은, 늙었을 때에 존경과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산 사람들은, 그 말년이 아주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아 알고 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안위와 우환질고를 면하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일이 기 때문에, 그분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무를 소홀히 한 채 십자가 지는 일을 자꾸 외면할 경우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믿는 자의 도리를 다하고 있습니까?

 

 

전쟁에 나갔던 한 병사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뢰가 터지면서 두 눈이 빠져버린 것입니다. 의사가 수술하면서 말해주었습니다. “수술은 하겠지만, 눈을 크게 다쳤으므로 당신은 장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병사는 ‘장님이 된다면 살아서 뭐하겠느냐?’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달래면서, 의사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붕대를 풀게 되었을 때에, 의사는 그 병사에게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분명히 장님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누군가가 안구 하나를 제공해 주어서 한쪽 눈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병사는 ‘애꾸눈으로 살아서 뭣하나?’고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때, 의사가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봐요, 당신을 위해서 멀쩡한 사람이 애꾸눈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하면서 붕대를 풀었습니다. 병사가 눈을 뜨고 보니, 앞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눈 하나가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눈 하나를 빼주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청년은 그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건만, 우리는 불만 불평이 많습니다. 그 죗값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기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 명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려고 이런저런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깊은 관심과 사랑을 외면하면서, 우리 고집대로 살게끔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앙탈 부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고집대로 산다면, 그 길은 실패하고 멸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고집을 깨우쳐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원받은 자의 길로 가려 하지 아니하고 세상 길로만 자꾸 빠져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죄와 싸워 이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현재 안락하게 사는 것을 선호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고통을 나눠지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나오미와 룻의 교훈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꿔야 가을에 거두게 된다’는, 그 뻔한 이치를 우습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노년에 고통 당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살아감으로써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오미와 룻처럼 우리도 서로 상대방의 상처를 싸매 줘야 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의 입장과 형편을 헤아려, 그를 위해 남편감을 구하려고 애썼듯이, 오늘 우리도 서로의 입장과 형편을 헤아려야 합니다. 목사는 교인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고자 힘쓰고, 교인들은 목사가 겪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①주님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삽시다.

 

그런데, 이기심이 이 길을 방해합니다. 이 악한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이런 죄와 싸우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내 것과 내 몸을 아끼면서 예수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내 것은 모두 주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이런 믿음생활에 전력투구할 때, 우리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오미와 룻처럼 살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요컨대,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을 먼저 헤아려 살게 될 때,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③그리고, 그렇게 산 사람에게는 그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과 생명과 권위를 지키려다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손들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 정신에 따라 실천하게 된다면, 자신의 생명과 권위도 지킬 수 있고, 자손들과 이웃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는 사람답게 구원받은 자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참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주님과 동행하여 천국에까지

 

성경 ; 룻1:1-18, 막12:28-34, 히9:11-14

 

 

그 유명한 ‘팡세’의 저자인 파스칼이 말하기를 ‘인간의 가슴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공허하고 고독한 마음을 채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잘 믿어야 고독이라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어느 목사님이 조사한 결과, 문제가 있어서 그 목사님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의 99%가 그 원인이 고독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잡지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0%가 ‘나는 외롭다’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고독은 인간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함께 동행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同志)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참된 동지를 얻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베들레헴 지역에 흉년이 들자, 그녀의 가족은 모압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어 없어진 것만 해도 못 견딜 일인데, 두 아들마저 죽었으니, 그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는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을 것입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혼자 되었으니, 그 고독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며느리가 있지만, 자녀 없이 혼자가 된 그들이니, 언제든지 때가 되면 떠날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고국 유다 땅에서는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자기 뜻을 전하면서 각기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와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아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큰며느리는 못이기는 척 나오미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한사코 시어미와 동행하겠노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녀의 굳은 결심을 밝혔습니다.

 

정말 고독했던 나오미로서는 룻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오미와 룻은 함께 살았지만, 이제 정말 나오미 곁에는 룻이라는 참된 동반자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맘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더러 있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외롭고 허전한 맘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주님을 우리 맘에 모셔들이거나 어떤 동지를 얻기 위해선, 그 주님과 동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룻이라는 좋은 동행자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영원한 본향인 천국 가는 길에는 함께 동행할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의 주께서 우리 손을 잡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지만, 믿음 안에서 서로 마음과 뜻을 함께 하면서 고락을 함께 나눌 진정한 친구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오미나 룻은 서로 참된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의 입장과 형편을 잘 이해하고 각기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배려했습니다. 나오미가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악독한 여자였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입장보다는 타인의 형편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배려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룻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는 성군 다윗의 증조모가 될만한 덕목과 성품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타향살이가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지 시어머니를 보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외롭고 힘든 길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극구 만류했는데도, 그녀는 시어머님과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었습니다.

 

왜, 그런 결단을 했을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보다 시어머니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고향에 돌아가게 된 시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착한 그녀로서는 시어머니께서 혼자 고향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그 선한 마음이 다윗에게 유전되었고, 나아가서 예수께로 그 피가 흘러 내렸으리라 믿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이 그 죄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음을 보시고, 주님은 당신 몸을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악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되십니다. 어디든지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버릴지라도, 예수님만은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교회를 등지고 구인사로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는지, 저의 발길을 종종 그 들의 집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고 헐뜯던 사람들에게도, 주님은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참 좋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찬송가 97장 1절입니다.

 

친구간의 사랑은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물론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주님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주님과의 우정도 계속되거나 끊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깊고 따뜻한 사랑을 계속 베풀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별스럽지 않거나 형식적일 경우, 주님과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듯이, 우리 또한 주님을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우리도 이웃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1.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어머님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 여자였지만,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즉, 시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신도 섬기겠노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까? 과연 누구를 위해 믿음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보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서로 용기와 믿음을 북돋워주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처럼, 서로의 형편과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언제나 내 입장과 형편에서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주님의 희생 정신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란, 주님의 십자가 희생 정신을 본받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막8:34)』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국 가는 길에서 믿음의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마7:13)』고 하셨습니다. 또한,『그 길은 좁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7:14)』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믿는 형제의 참된 동반자가 되려면,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예수를 믿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정성스러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어느 순교자 이야기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이 순교자는 최후까지 ‘종교를 버린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회유를 받았습니다. 집행관은 이 사람에게 “생각해봐라! 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너무 고통스럽지 않는가?”하면서 신앙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순교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올 죽음은 더욱 쓰라리고 괴로울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인생은 더욱 즐거울 것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장차 나타날 영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장차 누릴 천국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생각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와의 동행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 결과, 위대한 성군 다윗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괴롭고 고달픈 일일지라도,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계속할 경우, 우리 후손 중에서 위대한 인물이 배출되리라 믿습니다.

 

 

2.주님의 희생을 본받아서 기쁨으로 이웃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창5:24에『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에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을 『일생 동안 하나님 뜻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와 동행한다는 말은 ‘주의 뜻에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①우리는 주님을 본받아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자랑과 명예를 얻기 위해 주의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진정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몸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도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②그런고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과 이웃을 섬겨 살아야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 마음을 다 꿰뚫어보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인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심(邪心)을 버리고 주님과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의 길은 거칠고 험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잠깐동안의 세상 즐거움과 명예 때문에 주님과의 동행을 포기해선 안 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내 입장과 내 주장보다는 상대방 형편이나 생각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갈 때에

 

③우리는 그토록 사모하는 천국에 더욱 가까이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고통 당하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짐을 나눠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삽시다. ♥

 

 

제목 ; 하나님, 제가 잘못되었습니다.

 

성경 ; 욥42:1-6,10-17, 히7:23-28, 막10:46-52

 

 

얼마 전에 제 오토바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동도 잘 안 걸리고, 혹 시동이 걸려도 얼마 안 가서 멈추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토바이 가게를 한 적이 있다는 김 권사에게 말했더니, 에어 클리너가 문제라고 하면서 그 부분을 뜯어 수리했습니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 가게의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카 부레이타’가 고장이라면서 그걸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괜찮은 듯 하더니, 매양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금 오토바이 가게 사장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름저장탱크가 문제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새것으로 바꿨습니다. 드디어, 오토바이는 아무 문제없이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바로 알아야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바로 진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알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를 바로 알고 있더라도,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일이 참 많습니다.

 

인생살이를 할 때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바로 알아서 쉽게 해결할 때도 있고, 때로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많은 고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바로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자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문제의 원인을 바로 알고자 하는 일에 힘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도움도 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서는, 그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처럼 어리석게 말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해답을 얻지 못하고, 계속 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가 멸망에 이르기 전에 여러 방법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그 주변 사람을 치기도 하고, 본인에게 연달아 질병이나 사고가 생기게 해서 잘못을 깨닫게 하십니다.

 

욥은 그런 하나님의 연단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42장 2절에서 “이제는 알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잘 알지 못하면서 주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3)”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배당 건축이 사람의 뜻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일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누가 그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괜스레 그 뜻을 거역하다가 꾸중듣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뜻에 순응함으로써 주님의 은혜를 입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해서 함부로 떠들고 다녔습니다(3)”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3)”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은 자신이 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 해결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겠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그가 고난 당하기 이전보다 훨씬 더 큰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살 경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 넘치게 베풀어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또한 그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바로 깨닫고 믿음의 방법에 따라 해결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실수와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뭘 안다고 떠들어대거나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짓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잘못을 번번이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겸손하게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것처럼 건방지게 말하거나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1.우리는 이런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그 문제로 인해서 오랫동안 고민해왔을 것이고 많은 고통도 겪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지, 그는 백방으로 찾아 헤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야단쳤지만, 그는 더 큰소리로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는 체면을 가리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느냐?(51)』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저없이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하고 요청했습니다. 주께서는 그에게『좋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경 바디매오는 평생 소원이었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그가 고침 받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를 낫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주의 능력을 믿고 도움을 청한 까닭에 고침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ㄱ.그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ㄴ.그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그는 예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리라 믿었습니다.

 

ㄷ.그는 주님께 자신의 문제 해결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ㄹ.그 결과, 그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눈뿐이겠습니까? 그는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믿었기에, 그의 영안이 먼저 열렸던 것입니다.

 

①오늘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말기 암환자가 자신의 병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입니다.

 

욥도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만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질병에 걸려 신음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자신이 옳다는 것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의(義)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②하나님의 뜻을 따를 리가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문제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불신앙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걱정거리가 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맘을 먹게 되면,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걱정이 사라집니다. 감정과 이익에 얽매여 사는 까닭에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에 『주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의 뜻을 따르기로 맘을 먹게 된다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나 나라 탓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내가 감정과 욕심을 버리면, 모든 근심 걱정은 끝입니다. 죽음도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까지도 주께 맡겨 산다면, 우리가 내일 당장 죽게 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기에, 욥은 ‘하나님, 제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신앙태도가 옳지 못했다는 것을 털어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잘못된 생각과 그릇된 신앙태도를 지니고 구원받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주장대로만 살겠다고 하면서 어찌 문제 해결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 잘못된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 죄의 열매를 거둬들여야 합니다. 그 악한 생각과 그릇된 생활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그로 인하여 쓰디쓴 맛을 계속 맛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눈을 떠서 자기 잘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제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주님께 온전하게 되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2.주님의 도우심으로 온전케 되어 바른 인생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마5:48)』고 하셨습니다. 우리 목표는 예수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순물(악한 생각과 나쁜 습관)들을 제거하고 주님처럼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문제를 날마다 조금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①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제 오토바이가 그동안 시동이 잘 안 걸리고, 시동이 걸려도 자주 멈춘 것은, 그 오토바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거울삼아야 합니다. 맘에 걱정근심이 많고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고 자꾸 불만이 많아지는 것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속히 깨닫고, 그 문제 치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을 경우에는, 주께 나아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가 많아 걱정’이라고 푸념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②그럴 때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실 텐데, 우리는 그 지혜와 능력으로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고장난 오토바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의 능력으로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내 힘과 의지만 갖고서는 온전케 될 수 없으니, 주의 능력을 힘입어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병든 영혼은 치료받아 건강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만 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법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③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다시금 망가질 염려가 많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제정한 사용법에 따라, 우리 심신을 바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사용법이 바로 진리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은혜 안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주님처럼 섬기며 살리라!

 

성경 ; 욥38:1-7,34-41, 히5:1-10, 막10:35-45

 

 

 

가을걷이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모내기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수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 그동안 농부들이 흘린 땀과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봄과 여름 내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김매기 하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가을에 거두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힘씁니다. 그렇지만, 웃자랄 때에는 잘라 내주기도 합니다. 벼가 너무 잘되어 키가 아주 클 경우에는 벼의 위 부분을 적당하게 잘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벼이삭이 나와도 잘 여물지 않거나 강한 바람에 그만 넘어질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욥의 시련이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도 인정하실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교만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으로 하여금 환난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진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겪으면서 자기 실체를 바로 깨닫고 자중하도록 그런 조치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기에, 한 번 교만에 빠지면 멸망할 때까지 헤어나 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이 교만해져 멸망하기 전에, 농부가 웃자란 벼를 잘라내듯이 하나님께서 미리 손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때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지만, 시련이 쉽게 끝나지 않자,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무슨 까닭에 이런 환난과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요컨대,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지혜를 의심하는가?’하고 욥을 책망하시면서 ‘네가 어찌 내 깊은 뜻과 사랑을 다 알 수 있겠느냐?’고 따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이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비를 내리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의 그 누가 티끌을 모아 흙덩이가 되게 할 수 있는가?’하고 욥에게 따져 물으셨습니다.

 

그제야, 욥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은 말하기를 “제가 잘 깨닫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댔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습니다”라고 고백한 후, 그는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미워해서 환난을 당하게 하신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한 깊은 사랑과 뜻을 가지고 행하신 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대학입니다. 그리고, 그 대학 중에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곳은 미국의 하버드입니다. 그런데, 그 하버드 대학은 다음과 같은 학생 강령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①모든 학생은, 자신의 삶과 학업의 주된 목적이 영생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②모든 학생은, 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심하면서 은밀한 곳에서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③모든 학생은 하루에 두 번 성서를 읽음으로써, 성서의 용어와 사상뿐만 아니라, 영적 진리들에 대해서도 언제라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습니까?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가 이러할진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교만하게 굴 수 있겠습니까? 조금 더 지능지수가 높다고 해서 잘난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살아야 가장 지혜로운 삶인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본받아 살아감으로써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복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주셨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막10:4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왔다(45)』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섬김의 도(道)를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높은 곳에 계셔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낮춰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섬겨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처럼 산다는 말은, 자신을 낮춰서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섬겨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처럼 이웃을 섬겨 살고 있습니까?

 

 

1.주의 뒤를 잘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주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제자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그 야고보와 요한이 하루는 주님께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주께서 영광 받으실 때, 우리가 주님 다음의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두 제자가 이런 부탁을 하자, 다른 제자들이 두 제자에게 화를 냈습니다.

 

두 제자는 ‘우리 형제가 주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훌륭한 제자다. 그래서, 주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 그러니, 장차 주님께서 왕이 되시면, 우리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생각하고 그런 부탁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시기심이 생겨서 그들에게 화를 냈던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께서는 ‘섬기는 종’이 되어 십자가를 지려 하고 있는데, 두 제자들은 장차 주께서 왕이 되리라 생각하고 그런 어리석은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까닭에, 두 제자에게 그처럼 화를 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과 무슨 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까? 좀더 귀한 직분을 얻어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한 것은 아니겠지요? 주님 예수 덕분에 이 세상에서 무병장수하고 평안히 잘 살다가 죽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려는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면, 주의 제자답게 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처럼 섬기는 종이 되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교회를 다니면,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주의 뒤를 온전히 따를 수 있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주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과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2.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죽기 바로 일년 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공연을 위해, 작곡가 하이든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늙고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는 휠체어로 그 공연장에 입장했습니다. 그의 등장은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온 힘을 다해 공연을 마치자, 박수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습니다. 이 반응에 감동하여 늙은 음악가는 일어서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그 ‘천지창조’의 작곡가인 하이든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욥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뵙기 전에는, 자신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많았기에,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뵙고 난 후에는,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뒤를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①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우리는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낼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우대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를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어떤 때는 아주 훌륭한 어른인 체 뽐내다가도, 아주 작은 일로 화를 벌컥 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큰소리를 뻥뻥 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압니다. 별것도 아닌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소리치고 으스대는 것입니다. 속이 꽉 찬 사람은 자신이 떠들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알고 인정해주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자신을 낮춰 사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들려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높여 교만하면 멸망에 빠지지만, 자신을 낮춰 주님처럼 겸손하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②우리는 주님처럼 겸손하게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일이 참 많습니다. 불행히도 IMF를 겪게 되어, 그가 잘한 것까지도 무시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는 죽었노라’하고 조용히 계셨더라면, 세월이 가면서 그의 공로가 차츰 드러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당신 스스로가 자신의 치적을 떠들어대기 때문에, 별로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더라도,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처럼,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서 주님만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주님을 본받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참으로 힘든 과제이지만, 이 일이 우리기독교인이 감당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명인 줄로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과 감정, 이익을 물리치고, 우선 주의 뜻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겸손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부름 받았습니다. 내가 잘 살고 영광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③이런 자세로 열심히 살 때에, 우리는 영원한 구원과 영광을 얻게 됩니다.

 

주의 뒤를 충실히 따를 때에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영광도 얻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분이 되셨다”고 주님을 소개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제목 ;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성경 ; 욥23:1-9, 16-17, 히4:12-16, 막10:17-31.

 

 

세계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라고 합니다. 남태평양에서 3년 간의 복무를 마친 어느 미국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 병사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가 탄 기차는 시카고를 향해 빠르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기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습니까?” 병사가 차장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은 선로가 양호해서 시속 150마일 정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차장이 이렇게 대답하자, 그 병사는 재차 물었습니다. “시카고까지는 얼마나 남았지요?” 차장이 대답했습니다. “백 마일은 조금 더 될 겁니다.”

 

그 병사는 머리 위에서 배낭과 짐 보따리를 꺼내들고 ‘이 기차에서 제일 먼저 내려야지’하고 혼자 말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보고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를 기다리고 있을 애인이 간절하게 보고싶었습니다.

 

그 객차에는 또 다른 병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불꺼진 등처럼 어두웠습니다. 그는 수갑을 찬 상태로 헌병에게 감시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자신이 지은 범죄에 대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질 때쯤이면, 우리는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갈 곳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갈 곳이 준비되지 못한 영혼들은 낙엽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갈곳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열심히 배워 행함으로써 천국의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을 잘 참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 가는 기차에 타고 있던 그 병사는,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와 애인을 생각하면서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복무를 마치고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비로소 그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이미 모든 두려움과 걱정에서 해방된 사람들 입니다. 늘 우리를 괴롭히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받았으므로, 지은 죄로 인한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천국 가는 소망과 기쁨 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가 친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내일 밤 자정에 죽는다면 그동안 뭘 하겠습니까?” 존 웨슬리 목사는 대답하기를, “지금까지 늘 하던 것을 계속하지요. 즉 오늘저녁에는 ‘글로스터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투게소베리교회’에서 설교하고, 저녁에는 ‘마틴’씨 집을 방문한 후, 집에 돌아와서 주님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다가 아침에 천국에서 깨어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늘 하던 일을 열심히 한 후에 주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다가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존 웨슬리는 이웃집에 심방 가듯이 천국에도 가리라는 소망을 갖고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하고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던진 사람도 천국에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가 봅니다. 그러기에, 그는 계명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명의 중요한 알맹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빈 껍데기만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그 알맹이를 알려주셨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 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21)』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게 되거니와, 그곳에서 보화를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자를 돕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부자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 욕심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자가 겉보기에는 계명을 잘 지키는 신앙인이었을지 모르나, 실상 그 마음에는 하나님 대신에 물질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주께서 간파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큰 부자였던 고로 근심된 얼굴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재물을 믿고 사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막10: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십니까? 아니면, 재물을 더 의지하십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할 경우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믿느냐고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기자 는 말하기를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이다(4:13)』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물질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거짓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척 해도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언젠가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진정 천국 가기를 소망한다면, 재물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그 지시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1.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부족합니다.

 

 

농부가 땅거미가 질 때까지 들녘에서 맘놓고 일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둔 밤일지라도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그 맘이 평안합니다. 그러나, 갈 집이 없는 나그네는 해가 지기 전에 벌써 ‘오늘은 어디서 하룻밤을 묵어갈 것인가?’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영혼이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엽이 떨어져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서도 그리 슬퍼하지 않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예비 되지 않은 영혼 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죽기 전에 친척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서 문상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 할머니는 천당 갔을 게야!”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자였지만, 그도 14세까지는 예수를 믿었기에, 그 마음으로는 천국의 존재를 어렴풋이 나마 믿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국을 믿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를 믿는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천국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답지 않게 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①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만을 의지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욥은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말할 수 없는 시련을 겪은 다음에야 그 한계를 철저하게 깨닫고, 그는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중에는 욥만큼 시련을 당하지 않은 까닭에 그런지 몰라도,

 

②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주의 뜻을 물리치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바르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야, 신앙양심을 지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어둠이 내 눈을 가려도, 나는 하나님만 두려워한다(23:16,17)』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서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천국 가기를 원한다면, 자기 능력이나 세상 물질에 대한 의지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을 때에, 하늘나라에서는 그 버린 것의 백 배를 돌려 받게 된다고, 막10:30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자 청년처럼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2.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물론, 재물도 필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갈 때에는 재물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수고와 노력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는 돈을 벌기 위한 노력보다 천국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마6:33)』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천국에 대한 확신과 그 의를 이루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들마다 형통케 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①우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확실히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절대적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 그 믿음생활에 변동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②세상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님의 뒤를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세상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천국 쪽으로 그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천국을 향하여 가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놋의 아내처럼, 우리가 자꾸 세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면 멸망당할 염려가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게 될 것이며

 

③저곳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은 내 손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잡아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인공위성과 로켓을 이용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힘입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대강절을 맞고 지내면서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금년도 다 지나가는 12월, 그 월력을 바라보면서

주님은 언제 오실까를 가늠하면서 새로운 해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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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 2째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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