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강해

제 1 장 족 보

 

 

(대 지)

 

一. 족보삼강(族譜三綱) 1-17)

 

1. 예언필성(豫言必成)(1)

 

2. 인성변천(人性變遷)(2-11)

 

3. 징악상선(懲惡賞善)(12-17)

 

二. 탄생삼진(誕生三眞)(18)

 

三. 요셉의인(義人)(19-25)

 

 

(본문강해)

 

 

一. 족보삼강(族譜三綱)(1-17)

 

 

1. 예언필성(豫言必成)(1)

 

 

.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에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정식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확실하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어서 의인이 되었고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이다(창15:4-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전에도 아담에게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즉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가 뱀(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겠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죄인에게 최초로 그리스도를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최초의 복음이며 이 복음을 아담이 믿었고, 이 신앙이 아벨과 셋을 통하여 계승되어 내려 왔다.

 

아담의 때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내려오다가 약 2,000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나시겠다\"고 하나님이 정식으로 약속해 주셨다(창15:5-7 참조). 하나님은 이와 같이 먼저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믿는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시켜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기록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경 사람으로 2,000년 전에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이다.

 

다윗의 자손 다윗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주전 1,000년경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다윗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사야 9:7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였다. 또 이사야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 세계(世系)라는 말은 계통 혹은 족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 세대가 변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이 다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신 구원의 약속을 틀림없이 성취시켜 주셨다. 예수님이 나시기 약2,000년 전에는 아브라함에게, 약 1,000 년 전에는 다윗에게, 열 달 전에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를 통하여 약속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도 있고 속히 이루어질 것도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만다. 천지가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는 만능으로 그 말씀들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2. 인성변천(人性變遷)(2-11)

 

 

.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대대로 이어 내려왔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족장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첫째 족장이 되었고, 이삭은 둘째 족장, 야곱은 셋째 족장, 요셉은 넷째 족장이 되었다.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로 특별히 순종의 사람이었다. 이삭이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도 이삭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였다(창22:9-12 참조)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막고 그 곳을 떠나가라고 하였다(창26:12-22 참조). 그 때에 이삭은 그 곳을 양보하고 그랄 골짜기로 가서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그 곳에까지 와서 다투며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삭이 그 우물을 또 양보하고 다른 우물을 팠으나 그들이 또 다투었기 때문에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우물을 파고 살았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물질문제 때문에 싸우고 다투는 사람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성도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대해지고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싸우고 다툰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모든 일이 더욱 잘되어 나갈 것이다.

 

 

. 1:3-4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다말은 이방 여자이며 유다의 며느리이다. 다말이 시부(유다)와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행한 여자이다. 그러나 다말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실 것을 다말이 믿은 것이다 (창49:10 참조). 예언전에도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이삭이 영감으로 아들들에게 말해 주었던 것 같다.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터인데 그 유다 지파의 혈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다말이 시부와 동침한 것이다. 방법은 잘못 되었으나 다말이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며 결코 음란한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다.

 

 

. 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라합과 룻도 이방 여자이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기생노릇을 한 여자이며 룻은 모압여자로서 자기 남편이 죽은 뒤에 자기 시모 나오미를 따라 유대나라로 온 여자이다.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빼앗은 여자이다.

 

예수님 족보에 기록된 네 여자가 도덕적으로 볼 때에는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라합은 기생노릇을 하였고 룻은 모압 족속이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기 딸들과 동침하여 낳은 후손들이다. 대개 이방 여자요 도덕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 여자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것은 첫째, 이방인이나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의 계통에 참여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아무리 이방 사람으로 부도덕하고 더러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할 수가 있다. 누구나 믿으면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자랑 할 것이 없고 형편없이 더러운 죄인들이다. 또 우리들이 이 여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가증한 자요, 이스라엘 밖에서 사는 이방 사람으로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그리스도의 계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자기들을 굉장히 훌륭한 줄로 알고 있으나,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에는 이방 사람도 있고 사람 앞에 내어놓을 수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더러운 죄가 가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겸손해야 된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된다. 또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만 구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에게도 구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한다.

 

셋째, 인성은 변천되어 가는 것을 가르쳐 준다. 사람이 과거에는 라합처럼 기생노릇을 하던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성도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이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정탐군을 숨겨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실 것을 라합이 믿은 것이다. 여리고 성이 죄 값으로 멸망할 것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성취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이 라합에게 있었다. 자신이 여리고 사람이었지만 본토나 친척이나 인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구원반열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숨겨 준 것이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으로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을 영접하고 보호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말씀을 라합이 믿고 자기도 거기에 참여하고자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룻은 모압 여자로 유대 사람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다. 그 후에 시어머니를 따라 모압을 떠나서 이스라엘로 가서 살았다. 나오미가 룻에게 \"소망이 없으니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으나,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겠다\"고 하면서 돌아가지 아니했다.

 

룻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와 아비집과 본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흠모하고 사모하여 고생을 무릅쓰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려면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성도들도 과거의 생활을 돌이켜 보며 날마다 회개하고,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고 주를 따라가야 인격이 점점 변화되는 것이다. 성도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라가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이 음란한 행동이다. 마태복음 12:39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육신에 속하면 인정과 물질에 얽매이고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 룻이 자기 고국(모압)을 떠나는 것처럼 모든 죄악에서 온전히 떠나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대로만 따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 1:7-11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요람과 웃시야왕 사이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사의 세 왕의 이름이 빠져 있다. \"아하시야\"는 모친의 꾀임을 받아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다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다(대하22:7-9 참조).

 

\"요아스\"는 선지자가 자기를 책망할 때에 그 선지자를 성전에서 죽인 악한 왕이다. 그리하여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였다(대하24:20-21 참조).

 

\"아마샤\"는 에돔 사람의 우상을 섬기고 그것 때문에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으나 불순종하고 거역한 왕이다(대하25:14-26 참조).

 

예수님의 족보에서 빠진 이 세 왕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악한 왕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악한 사람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3. 징악상선(懲惡賞善)(12-17)

 

 

. 1:12-16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틀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예수님의 족보에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이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었던 수치스러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을 하게 된 여러 가지 죄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① 우상을 섬긴 죄. ② 안식일을 범한 죄. ③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여 인간의 세력과 물질을 의지하여 살아온 죄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반드시 징계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해방시켜 유대 나라로 돌아오게 하셨다. 우리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죄에서 돌이키면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시며 우리에 대한 심판은 천년을 하루같이 참아 주신다고 하였다(벧후3:8참조). 회개하기를 고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우리 성도가 죄 값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죄를 찾아 회개하도록 힘써야 한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사야 1:5-6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이사야 선지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많이 내려 왔었다. 머리로부터 발꿈치까지 성한 곳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 하였더면 그 상처를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개 선지 때에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많이 내려왔다. 즉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 전대에 넣으나 전대에는 구멍이 뚫렸다고 하였다(학1:6 참조).

 

또 하나님께서 한재를 불러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육축에게와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다고 하였다(학1:11 참조).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받는 징계도 성도 각자가 책임을 지고 회개하여야 한다. 성도가 빛이 되지 못하고,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민족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줄로 알아 회개하여야 한다. 또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도 성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고 회개하여야 한다.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사하겠다고 하셨다(렘5:1 참조). 소돔 고모라에서도 의인 열 명을 찾으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18:32 참조).

 

 

.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열 네 대이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가 열 네 대이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은 열 세 대이다. 열 네 대라는 것은 7의 두 배이다. 7 수는 하나님의 만수이므로 그렇게 기록된 것 같다.

 

여기 마태복음 1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에 있는 족보와는 차이가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차이가 없으나 다윗부터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서로 다른 이름이 많이 나온다. 우선 요셉의 아버지만 보아도 마태복음에는 야곱인데 누가복음에는 헬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① 마태는 요셉의 족보를 기록하고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하였다는 해석이 있다. ② 마태는 계대계승법(양자법)으로 기록하였고 누가는 실조(實祖)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는 예수님이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뜻이다.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하는 것은 헬리가 마리아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것은 실제의 혈통을 기록한 것이다. 즉 예수님이 마리아의 피를 받은 것이지 요셉의 피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아버지를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다. 요셉의 계통이 따로 있고 마리아의 계통이 따로 있다. 그러나 다윗까지 올라가면 한 계통으로 되어 있다.

 

 

二. 탄생삼진(誕生三眞)(18)

 

 

.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세 가지 진리가 있다. 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참 하나님이시다. ② 마리아가 낳았으므로 참 사람이다. ③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속하여 주셨으므로 참 구주(그리스도) 이시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 같은 하나님이시고 사람과 똑 같은 사람이시다(죄만 없으시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름 부어 세우신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가 되신 것이다.

 

 

三. 요셉 의인(義人)(19-25)

 

 

. 1:19-20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다. 요셉이 의로운 것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잉태한 것을 알고도 저를 드러내지 아니한 것과 가만히 끊고자 한 것과 그 일을 생각한 점이다. 의인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기와 약혼한 여자가 잉태한 것을 알고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의로운 일이다. 그 당시에는 처녀에게 잉태된 것이 드러나면 동네 사람이 그 처녀를 돌로 쳐죽이는 시대이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요셉이 인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허물이 있으면 아내로 맞지 않으면 될 것이며 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다. 손해를 입고도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잘 참아야 한다.

 

가만히 끊고자 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는 마음이다. 요셉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므로 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로운 마음이 있었다.

 

불의한 일(죄악)이 나타났을 때 그 불의를 드러낸다고 해서 불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의가 드러나므로 써 오히려 불의가 더 커지고 다른 사람에게 악 영향을 끼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처리하므로 써 회개의 기회를 주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많다. 요셉이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고 한 것은 참으로 의로운 일이었다. 가령 그 여자가 불륜의 관계를 맺어 잉태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 신앙에 손해 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남을 용서해 주고 자기는 자기대로 손해보지 않도록 해결하여 불의한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의로운 방법이다.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사람 홀로 있을 때 가서 죄를 짓지 못하게 권면하고 듣지 않거든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다시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였다(마 18:15-17참조).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중한 태도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생각해 보고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깊이 생각한 것이다. 우리도 무슨 일을 만나면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단순하게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면 안 된다. 자기가 어떤 불의한 일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에도 화풀이를 하거나 성급히 드러내지 말고 성경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상고해 보아야 한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쓸 때에 이사야 7:14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한 말씀이 응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무슨 사건이나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를 살펴서 성경대로 해결하려고 힘써야 한다. 무슨 일을 당할 때에 성도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여 \"너무 억울하다\" \"너무 사람을 멸시한다\"고 분을 내고 홧김에 죄를 짓는 경우가 많다.

 

불의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였더라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으려고 힘을 쓰며, 성경에는 어떻게 말하였는지 깊이 생각하여 성경대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성도가 순종의 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신다. 요셉이 믿음으로 나아가므로 성령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요셉이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그것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깊이 생각할 때에 자기와 모든 백성이 구원 얻는 길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요셉은 두려워함이 없이 잉태된 마리아를 데려왔다. 요셉은 이로 인해 부모나 친척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것이다.

 

다른 사람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오해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람에게 오해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나머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하셔서 자기의 구원도 되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도록 이루어 주신다.

 

 

.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자기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죄에서 건져낸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즉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하며 또한 예수를 믿는 성도가 날마다 예수를 옷 입어 나가므로 인격이 점점 죄에서 벗어져 나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면도 말한다.

 

로마서 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만큼 죄는 멀리 떨어져 나간다. 예수를 영접한 것만큼 죄에서 벗어져 나온다. 그리고 죄에서 나온 것만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자기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로 옷을 입어 나아가야 죄의 세력이 물러간다. 우리 힘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려고 함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러나 빛을 영접하면 어두움이 자연히 물러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물리치려고만 하지 말고 빛을 영접해야 한다. 성도가 영으로서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죄의 세력은 약하여지고 하나님이 심령 속에서 강하게 역사하시게 된다.

 

 

. 1: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야만 되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원죄가 없이 세상에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과 같이 부정모혈(父精母血)로 태어나게 되면 예수님이 원죄가 있게 된다. 육신의 아버지가 없이 성령으로 잉태해서 낳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가 낳아야만 하나님의 새 창조이고 원죄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마리아의 복중에 들어가서 인성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마리아의 복중에 들어가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한 인격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임마누엘이 되신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곧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 1:24-25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아내를 데려왔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고 해도 순종하지 못할 만한 여러 가지 악조건이 많이 있을 수 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요셉을 비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셉은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할까봐 겁내지도 않고 사람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만 나아간 요셉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데려오라고 하였으므로 무조건 데려온 것이고 그 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요셉이 절제 있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예수님이 탄생하자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 이것은 천사가 요셉에게 계시하여 준대로 한 것이다. 자기 족속이나 혈통적으로는 예수라고 할만한 근거가 없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알려 준 말씀을 잘 기억하여 그대로 예수라고 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무조건 지켜 나아가는 순종의 사람이다. 이러한 요셉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요셉을 마리아와 약혼하게 만들고 그에게 그리스도를 맡겨서 잘 기르게 한 것이다.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서 잘 기를 만한 거룩한 성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마리아는 원죄가 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어 부정모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마리아는 보통 우리와 꼭 같은 죄인이고 예수님만이 원죄가 없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유나이티드 신학개학/ 대학원

 

 

 

대강절을 맞고 지내면서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금년도 다 지나가는 12월, 그 월력을 바라보면서

주님은 언제 오실까를 가늠하면서 새로운 해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유나이티드 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