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슴 떨리는 은혜의 추억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처음 성탄을 만났던 사람들의 경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현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어떤 마음으로 모습으로 성탄의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해야할지를
새롭게 정립하고 나아가는 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목 : 성탄을 맞이한 세가지 사람
본문 ; 마태복음 2: 1 -12 ,눅 2:11-14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본문 마태복음 2장 1절 -12절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 성탄을 맞이하는 세가지 사람의 자세” 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매우 다양하고 다채로왔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아주 경건하게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혹 어떤 사람들을 성탄절을 맞이하면 공연히 마음이 들떠가지고 자기의 기분과 감정에 초점을 맟추어 현식과 의식을 따라 무의미하게 맞이하는 사람들도 많이있습니다.
금번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진리와 같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하시를 바랍니다. 왜야하면 우리들의 죄와 죽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꼐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하늘 영광 보좌를 더나 인간역사 현장에 찿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하여 나타나는 세가지 사람의 형편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헤롯왕이 나타납니다.
여기 헤롯왕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그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들은 사람입니다.
1) 이 소식을 전달해 준 사람은 동방의 박사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동방의 박사들은 메데파사 나라에서 점성술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로서 저희들은 하늘의 이상한 별빛을 따라 예루살렘 헤롯의 왕궁을 찿아와서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 ” 라고 문의를 했습니다.
2) 이 소식을 들은 헤롯왕의 자세를 정리해 봅니다.
a 먼저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가 즉 메시야가 어디서 탄생하였느냐 ? 고 질문을 했습니다 . 이때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옜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 유대땅 베들레헴 ” 이라고 미가서 5장 2절말씀에 있는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b 다음으로 헤롯 왕은 다시 동방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희 알아보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자기도 아기 예수님께 경배 하겠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물론 이 고백은 진심에서 울어난 고백이 아니고 예수님을 찿아 죽이기 위한 흉악한 마음의 표현이 였습니다.
c 다음 헤롯왕은 예수님을 찿아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경안에 있는 사내 아이들을 두살부터 그 아래 어린아기를 몽땅 잡아 죽이게 되였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촉군의 잔안한 행동이였습니다.
여기 헤롯왕이 이와 같이 잔인한 행동을 퓌하게 된 그 배경을 알아봅니다.
첯째; 자기의 왕위를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 입나다.
둘째; 시기와 질투심의 발로입니다.
새째; 욕심과 증오심의 발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경배하려고 하면 이 세가지 요소를 제거해애 됩니다.
3 제사장과 서기관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헤롯왕을 통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기쁜소식을 두번째로 들은 사람들입나다. 헤롯왕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동방의 박사들이 나를 찿아와서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대관절 어디에 탄생하겠느냐 ? 고 질문을 합니다. 이때 저희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언을따라서 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고 밝혀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께서 탄생 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고 전파하고 아기 예수님께 먼저가서 경배를 드렸드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먼저가서 예수님께 경배를 드려야할 사람들이 경배 하지도 아니하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밖아 죽이는 일에 앞장섯던 사람들 입니다.
이 역시 종교적 지도자들로 자기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기의 권위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주경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첯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외식자 들이라고 합니다.
둘째; 남은 가르치면서도 자기를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째; 남에게는 전파하면서도 자기들은 실천실행하지 않는 위선자 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형식주의 , 외식주의 , 위선을 제거하고 바른 경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찿아와서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돌아간 배경을 말씀드립니다.
1) 세가지 계시를 따라 예수님을 찿아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a 자연 계시입니다. 이말은 자연계에 나타난 별빛의 안내와 인도를 받았다는 말씀닙니다.
B 특별 계시입니다. 이말은 성경의 인내와 인도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C 성령의 계시입니다. 이 말은 꿈에 헤롯에게로 가지말고 딴길로 즉 새길로 돌아가라고 했씁니다.
여기서 깊은 의미와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2) 여기서 헤롯에게로 가지말고 딴길 새길로 가야할 이유를 말씀 드립니다.
A 먼저 헤롯에게로 가면 예수님의 생명도 위태롭고 자기들의 생명도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악마와 같은 헤롯에게로 가면 않됩니다.
b 다음 딴길로 즉 새길로 가라는 말씀은 예수님께 경배드린 참 신앙인은 과거에 예수님을 믿기전에 행동하던 죄를 범하던 옛길을 떠나 진리와 신앙의 새로운 생명의 길 . 즉 천국의길로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 탄생하실 당시에 있었던 세가지 사람을 상고해 봣습니다 .
성탄의 기쁜소식을 들은 우리 성도들은 본문의 세 인물중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
헤롯왕 과같이 시기질투하고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이없어여 합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같이 알면서도 행하지안는 외식과 형식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모두 동방박사들과같이 예수님계 찿아와경배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제 목 : 세 사람의 성탄경험
구 절 : 눅2:25-35 눅3:15-18
우리들은 성탄절이 되면 수없이 많은 성탄의 멧세지를 듣는다.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 목자들의 이야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 이야기등을 통해 많은 은혜와 진리를 깨닫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하였
다.
그러나 예수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그를 그리스도로 발견하고, 그
에게서 인류구원의 미래를 통찰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하였다.
인류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들을 거의 지나쳐 버렸거나 모
르고 버려 두었던 사실들을 다시 찾아 성탄의 뜻과 감격을 더해 갈 필요가
있다.
첫번째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시므온\"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
을 기다리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성령이 항상 임
재해 계셨다. 성령께서는 마침내 그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도하여 아기
예수를 만나게 하셨다.
의롭고 경건하게 가족과 겨레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성령께
서 늘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는 그 사람으로 하여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의 실체를 만나게 하신다.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의롭고 경건하
게 가족과 겨레의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 밖의 것은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탈이 없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의롭고 경건하게 가족과 겨레의 구원을 갈구하는
사람과 동행하신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구원의 진리, 구원의 실체이
신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시므온\"의 경우를 통해 우리
가 배우는 성탄의 첫번째 멧세지이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만나자 자기 팔에 안고 그 감격을 견디지 못
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편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주의 백성 이스
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누가 2:29-32)\"시므온\"이 만난 예수, 인류의 구
원은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미치는 구원이었다. 하나님의 선민과 버
림받은 백성 모두에게 미치는 구원이었다. 예수의 탄생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차별이 폐기되고 그들은 다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것이
\"시므온\"이 경험한 성탄사건이었다.
두번째 사람은 세례 요한이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누가 3:3)이라
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미 알려진 그 소리였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누가 3:4-5)세례 요한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은 모두가 회개하고 세례받는데서 이루어지는 구원이었다.
그것은 굽은 길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에 오는 구원이었
다.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이 고르게 되는 날에 오는 구원이었다. 산과 골짜
기의 차별이 없어지는 날의 구원이었다.
세례 요한은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 사람들은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
라고 촉구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누가 3:9)이라고 경고했다. 세례 요한
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 성탄사건은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갈라 놓는
구원이요 성탄사건이었다.
\"시므온\"이 경험한 성탄 사건은 신분의 차별, 인종의 차별, 문화의 차
별을 폐기하는 하나님의 구원이요 성탄사건이었으나, 세례 요한이 경험한
성탄사건은 좋은 열매, 나쁜 열매를 갈라 놓는 하나님의 구원이었다. 그래
서 세례 요한은 감히 예언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멀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
실 분이 오신다. ------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
이 가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
이다\" (누가 3:16-17)
세번째 사람은 예수 자신이다.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 예수 자신은 자신의 존재이유, 성탄사건을 어떻게 이해하셨
을까?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강론을 행하셨다.
이사야서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구
원 - 성탄사건을 해석해 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주가 4:18-19)예수가 경험한 하
나님의 구원 - 성탄사건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구원이었다.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 주는 구원이었다. 눈먼 사람들에게 빛을 주는
구원이었다.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구원이었다. 예수가 이 세상
에 태어난 이유가 바로 이런 소외지대에 하나님의 구원을 알려 주는 데 있
었다.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힘쓰는 성탄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 아 멘 -
제목:여관집 주인과 목자들
성경:눅2:1-13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헤롯의 태도이다.그는 예수님을 미움과 증오로 대했다.심지어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실 구원자인 것을 알지 못했다.여기서 그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난다.
둘째는 동방박사 세 사람과 목자들의 태도였다.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찬양했고,또 그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다.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셋째로 여관집 주인의 태도이다.여관집 주인에게 일생일대에 가장 놀라운 행운이 찾아왔다.메시야가 그의 집에서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어떤 사람은 동방박사처럼 그 먼 거리를 걸어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그 메시야를,그는 가만히 앉아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런데 그는 그 기뢰를 잃고 말았다.
1.왜 여관집 주인은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가?
첫째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사람은 어떤 면에서 바빠야 한다. 세상에 할일없는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광의 바벨탑을 쌓기 위해서 너무 바쁘게 일하고 있다.바로 이 여관집 주인이 그렇가.사람은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과연 나는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하고 항상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우리는 생업에 얽매여서 ‘바쁘다 바뻐’하면서 보다 중요한 일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주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해야 한다.그런데 이 여관집 주인은 그러지를 못했다 여기서 그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지 아니한가?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는가?
둘째로 최소한의 인심마저도 베풀지 않았다.여관을 당시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만원이 될 수 있고 나중에 온 사람에게 방을 주지 못할 수가 있다.그러나 여관집 주인은 요셉과 마리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어도 최소한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만삭이 된 산모에게 방을 줄 수 있었어야 했다.그런데 그 기회마저 잃고 만 것이다.
손님을 열심히 대접하다가 불식간에 천사들을 대접한 경우를 우리는 성경에서 뿐아니라 현대에도 많이 알고 있다.그런데 이 여관집 주인은 메시야께 자기 방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우리 신자는 항상 사랑을 베풀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작은 자를 돕는 일을 기쁨으로 실천해야 한다.부지불식간에 천사를 대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하셨기 때문이다.
셋째로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자기 방은 못내주어도 최소한 자기의 이부자리는 내어줄 수 있어야 했다.여관집이니 그 정도의 여유가 없었을리 없다.그런데 그 여관집 주인은 무관심했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만것이다.무관심 이것이 문제이다.종교에 대한 무관심,하늘나라에 대한 무관심,위엣 것에 대한 무관심,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된다.자녀에 대한 무관심이 자녀를 문제아로 만들고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이 사회를 불의한 사회로 만든다.교회에 대한 무관심이 교회를 병들게 만든다.무관심은 바로 사랑이 없는 증거이다.무관심이 그 사람을 지배할 때 그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요한계시록 3장에 사데교회를 가르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했는데 이런 교회는 바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는 교회를 말한다.그런 교회는 전도도 없고,기도도 없고,뜨거운 교제도 없다.형식만 무성하다.쓸데없는 전통만 주자한다.없는 권위만 내세운다.혹시나 우리는 이런 죽은 신자,죽은 교회가 아닌가? 성탄절을 맞아 반성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2.성탄절을 맞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목자들처럼 천사의 말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한다.동방박사처럼 별을 보고 먼 길을 달려 찾아오지는 못할지라도 천사가 나타나서 말할 때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목자는 24시간 눈코 뜰새없이 바쁜 직업니다.더구나 밤에는 피곤하고 졸립고 그래서 힘들다.그런데 밤에 이 목자들은 천사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그것은 기쁨의 좋은 소식(Good News=God News)이었다.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었다.당시 목자라는 직업은 세리와 마찬가지로 무시당하고 죄인시 당하던 때이다.이런 소외계층에 천사의 음성이 나타난 것이다.이들은 종교에 대해서도 깊이 모르는 사람들이다.그들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편견이 없었다는 점이다.우리가 천사들의 음성을 들을려면 무엇보다도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둘째로 목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순종하여야 한다.15절에 보니까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빨리 가서”라고 했다.세상에는 빨리 할 것과 천천히 할 일이 있다.그런데 사람들은 천천히 할 일은 빨리 하고 빨리 할 일은 천천히 한다.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인간의 지시나 생각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천천히 일해서 잘못이 없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빨리 가서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16절에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라고 했다.바로 이것이 중요하다.우리는 교회에 와서 아기 예수님은 못보고 목사님만 보고 갈 때가 종종 있다.이것이 문제이다.목사님도 물론 보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기 예수님을 보고 가야한다.예수님을 보기까지는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났는가? 만나기까지는 집에 갈 생각 말라.아기 예수님을 만나 그를 찬양하고 대화를 나누어라.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다 해결된다.
넷째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큰 소식을 전해야 한다.목자들은 빨리 가서 고했다.예수님을 보는 것으로 그들의 사명은 끝난 것이 아니다.“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전도 생활까지 해야 모든 일은 끝난다.여러분이여! 목자처럼 행복한 사람,영원히 남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가? 그러려면 목자들처럼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고해야 한다.생명의 소식,복된 소식을 전해야 한다.땅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