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구영신 예배 설교 5 편 모음
“위대한 전진”
본문:여호수아 3: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할 때에 이전에 지나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야 했듯이 오늘 우리도 새 해를 맞이하여 그 누구도 걸어보지 아니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위대한 전진의 대열에서 낙오되거나 후퇴하거나 좌절하거나 중단하는 자가 되지 않고 끝까지 전진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이 한 해 동안 믿음의 행군이 잘 진행되어 아름다운 일들만 있게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위대한 전진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3절) 그 많은 무리들 중에 특별히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하나님 의 언약궤를 멜 때에 그 뒤를 좇아가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참으로 귀히 여기면서 충성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충성할 때에 다른 일들이 형통하게 되어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행위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요 4:23).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중에 임하여 계십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나라와 그 지역은 평화와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철수하는 곳에는 천재와 인재, 한재, 풍재 뿐 아니라 그곳에는 평화가 없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곳에 성령이 임재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천군 천사가 함께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답답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예배드리고, 기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에도 예배드리며, 위험한 일이 있을 때에도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민족이 제단을 쌓으면 민족이 살게 되고, 가정 제단을 쌓으면 가정이 살게 되고, 교회의 제단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축복을 받았고, 엘리야는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갈멜산 꼭대기에서 제단을 쌓음으로 승리했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종교,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도덕성, 윤리성 등 여러 가지로 혼란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엎드려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유행성과 변화가 많은 이 시대에 어떤 삶의 형태에서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영원히 세워지는 그곳에 주께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항상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다른 일 때문에 예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금년 한 해 동안 예배에 충성을 하여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 받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반드시 언약궤를 앞세워야 합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왜 이 언약궤를 앞세우게 했을까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길을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시편 119:105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한 해 동안에 여러분의 길을 밝게 비춰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의 영혼의 양식으로서 능력있고 생동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적과 권능으로 주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치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좌절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 신앙은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워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오늘도 여러분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밤새도록 고민하는 사람과 아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루 밤을 새우며 기도하는 사람과는 그 다음날 상황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른 막대기에 싹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믿음 속에서 이 한 해 동안 위대한 전진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광야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곡식을 심고 거둘 수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보장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서남북의 어디를 바라보아도 저들의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땅에서 솟아나는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저들이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에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삶의 모습과 방법을 한 번 바꾸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기회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집중해서 그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생활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있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약궤를 앞세우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장이 있었습니다.
셋째,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기사를 행하기 위해서 먼저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들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레 11:45). 인간이 천사같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성결케 되기를 위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생활할 수 있도록 반드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이 부패되었으니까 나도 할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어두움에 사로잡힌 생각입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서 더 아름답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행로에 어두움이 깔려 있고, 전후좌우에 부패와 타락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만은 절대로 성결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생각과 은혜로운 말을 하면서 빛의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성결한 생활을 요구했습니까? 출애굽기 15:13에 보면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성결한 처소로 저들을 들어가게 하시려고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옷을 입을 때는 먼저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담을 때도 먼저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담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는 먼저 우리의 성결을 요구하십니다. 환경도 오염되고 도덕 윤리도 부패되고 있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성결한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 한 해 동안 우리가 거룩하고 성결된 일을 좋아하고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10절) 이 행군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는 두령이나 족장이나 법궤를 멘 제사장이나 백성들이나 이런 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사시는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셨던 것입니다.
홀로 가는 길에는 위험도 있고, 실패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곳에는 반드시 승리만이 있게 됩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 \'주여, 함께 해주옵소서.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기를 위해 늘 기도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가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하신 가장 큰 약속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혼자 외롭게 신앙생활을 하거나 실패와 절망 중에 있는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병들었을 때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가난 중에 있을 때 함께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주님은 모든 것의 소유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에게 생명과 기쁨, 물질이 있게 되고, 모든 것의 보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과 저는 이전에 지나보지 않았던 길을 출발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예배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스스로 성결한 삶을 살고, 오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위대한 신앙의 전진이 있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 ”
본문:전 3:1~13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세상만사 되어지는 일들이 이해되는 것들 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별히 좋지 않은 일들이 의롭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생기고, 좋은 일들이 그것에 적합하지 않은 악한 사람, 불의한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좀더 의롭게,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게 되고, 희망을 상실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수없이 경험해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드릴 수 없어 생을 포기하기도 하고, 아예 냉소적으로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 경험하는 생의 모순들이 오늘에만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아주 오랜 옛날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어왔습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지혜자는 일찍이 그러한 생의 모순들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지혜자는 그러한 생의 모순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고 고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혜자가 이 세상에서 범사에 되어지는 일들 가운데 그러한 상반되는 일들을 일일이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은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찾아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룰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사람들이 범사에 되어지는 일들로 인해 혼란, 갈등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상반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의롭게, 곧바르게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그 반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면서 사는 사람은 건강하게 사고없이 장수 합니다.
땀흘려 정직하게 정성스럽게 잘 마련해 놓은 삶의 터전이 갑자기 재난으로 또는 천재지변으로 하루 아침에 다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죽을 사람인데도 버젓이 살아서 대낮에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진정 살아야 할 사람은 죽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범사에 일어나는 이러한 상반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은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깊은 비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일어나는 일들이 자기들의 기대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도록 장수 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생의 어느 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돈을 열심히 버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돈이 항상 따라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 돈이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일시에 다 그의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불의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까지도 돈이 언제나 자기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의로운 사람은 잘되고 장수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독교 전통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일수록 그러한 신념이 강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지혜자는 범사에 이렇게 상반되는 일들을 보면서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범사에 일어나는 상반되는 일들이 그냥 무의미 하게 무절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다 적절한 때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젊은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너무 귀여운 옥동자 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너무 컸습니다. 그런데 청년기를 마지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천청벽력 같은 일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 아들이 제때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입장에서 그 아들은 잘 자라 공부 많이 하고 성공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 유익한 일을 하다가 노년기에 세상을 떠나야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지혜자의 관점에서 볼 때 여인의 아들이 청년기를 마지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 죽음이 알맞은 때에 죽은 것입니다. 지혜자의 관점에서 알맞는 때는 \'나이\'가 아닙니다. 시간의 길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지혜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불가피한 시간\" \"더 이상 의미와 가치가 부여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 시절, 소년기, 노년기등 그 어느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의 이면에는 인간이 미쳐 볼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9,10)고 했습니다.
지혜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
레브 쉬므엘 벤 요세프(Reb Shmuel ben Yosef)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범사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은 모순, 의문, 갈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한번도 시원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리속에는 \'왜?\'(Why) \'어떻게?\'(How)라는 질문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만나 그가 갖고 있는 모든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들판 길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반가워 엘리야에게 인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의 의문점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함께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뜻을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동행한다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행 하기로 결심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가난한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부부가 가진 유일한 소유는 소 한마리었습니다. 가난한 부부는 두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이른 아침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집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소 가 죽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집을 떠나 여행 길에 올랐습니다. 레브 쉬므엘은 매우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호의를 베푼 가난한 부부의 전 재산인 소가 죽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않고, 그대로 유유히 그 집을 떠나온 엘리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다시 날이 저물어 어느 부자집에 들려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두 행인에게 빵 한조각 대접하지 않고 박대 했습니다. 두 사람은 몹시 배가 고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날 밤을 그대로 지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두 사람이 그 집을 떠나려고 집을 나섰을 때 그 집 앞마당에 큰 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려져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나무를 보자 곧 일으켜 세워 그 자리에 묻어 주었습니다. 쉬므엘은 엘리야의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에게 물었습니다.
\"선지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착하고 가난한 사람의 소는 죽게하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먹을 것을 주지 않은 부자를 위해서는 좋은 일을 하십니까?\"
엘리야는 거기에 대해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어느 마을에 들려 그 마을에 있는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회당안에 있는 의자는 모두 은과 금으로 되어있었는데,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다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여행객들을 바라보기만하고 누구하나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었지만 누구하나 자기 집으로 그들을 초대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회당에서 밤을 새고 그 이튿날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회당 문 입구에 서서 \"그 동네 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 모두는 지도자여라.\"고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두 사람은 아주 작은 공동체를 방문 했습니다. 그 공동체 사람들은 다 가난 했음에도, 두 사람을 너무 친절하게 맞아주고, 대접했습니다. 다음날 엘리야는 그 공동체 사람들을 향해 \"너희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이여라.\"고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엘리야와 동행하고 있는 쉬므엘은 엘리야의 행동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박대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지도자가 되라고 축복하고, 그들을 환영했던 사람들에게는 \"너희 지도자는 오직 한 사람만이라.\" 고 축복하는 것이 너무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엘리야는 그와 동행한 쉬므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쉬므엘 자네는 나와 동행하면서 나의 행동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나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첫 번째 우리가 마음씨 착한 가난한 부부 집에 들렸을 때 그 집 소가 죽은 것을 자네는 기억하는가? 그 날에 그 집 아내가 죽기로 되어있었던 날인데,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해서 그 부인 대신 소가 죽게 했네.
그 다음 욕심쟁이 부자집에 들렸을 때 그 집 마당에 쓰러진 큰 나무를 내가 세워준 것은 바로 그 나무 뿌리가 뽑힌 자리에 황금 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욕심쟁이 부자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나무를 다시 세웠네.
그리고 우리를 박대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모두 지도자가 되라고 한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 일세, 지도자가 많으면 의견이 통일 되지 않아 망하는 법이네.
마지막으로 가난한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의 지도자가 나오도록 기도한 것은, 현명한 한 사람의 지도자가 그 공동체를 인도해야 그들이 잘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축복한 것일세.
엘리야는 쉬므엘을 떠나기 전에
\"나는 자네에게 그 어떤 유익한 충고도 주기를 원치 않네, 나의 친구여, 그러나 자네가 사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거든 분명히 그의 사악함이 궁극적으로 그에게 불행한 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기억해 두게, 그리고 의로운 사람이 인내하며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어떤 불행한 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그리고 더 이상 의문을 품지 말게, 아무도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네.\"
그리고 엘리야는 쉬므엘을 떠났습니다. 쉬므엘은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놀라움과 기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을 때가 있고, 놓을 때가 있습니다.
돈을 모을 때가 있고, 모은 돈이 빠져 나갈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잡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놓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잡았을 때 선을 행하고, 놓아야 할 때 미련없이 놓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 (표준 번역)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도 우리의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잊지 않아야할 것은 그러한 일들이 다 알맞는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알맞은 때라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때입니다.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픈 일도, 전쟁도, 평화도 다 알맞는 때에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범사에 모든 일들이 알맞는 때에 일어날 때 거기에 담겨진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해야할 것 회개하고,그만두어야할 것 그만두고, 버려야할 것 버리고, 아파해야 할 것 아파하고, 취해야 할 것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때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되돌아본 한해”
이사야55장6~13절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
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연말이 되면 사업하는 사람들은 연말결산을 하고 재고정리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가
오는 새해에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
다. 지난 일년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삶을 정리해야 다가오는 새해에 주님과 함께 비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서서 한해를 돌이켜 보고 무엇을 점검해 보아
야 할까요?
1.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했는가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
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바쁜 삶에 쫓겨 먼저 구할
것을 나중에 구하고, 나중 구할 것을 먼저 구하는 혼돈을 가져온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
야 합니다. 성경에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누가복음 17장 21절). 심령천
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에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
에 세상나라가 들어와 있습니다. 세상나라가 들어와 있는 사람은 마귀가 임금으로 앉아 있
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임금으로 앉아있는 세상나라 사람들은 일분 일초라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생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이며,
물질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으로 살아갑니다. 세상나라가 마음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음
란과 방탕함이 개인과 가정과 생활에 홍수처럼 밀려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마음 보좌에 임금으로
앉아 계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신본주의적이고, 하나님 말씀 중심주의적이며, 신령한 삶을
좇고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신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혼합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온전히 천국을
구하지 않고 세상나라와 적당히 혼합하여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먼저 구하고 난 다음에 하
늘나라도 구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다음으로 교회천국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하늘나라입니다. 교회는 세상 나라
와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가 세우시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성령님
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요, 하늘나라의 권세
와 위엄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세상나라와 혼돈해서 세상적인 민
주주의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이 교회의 주권자입
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에 불과합니다. 종이 주인을 바라봄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
보고 그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조종하려면 안됩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로 22절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
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에 하나님 아
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
해서 교회천국을 먼저 구하는 사람은 주일을 지켜 예배에 충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를 드려 교회의 발전과 선교에 뒷받침하는 것이 그 나라를 구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리
고 교회의 여러 가지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전도에 힘을 쓰는 이러한 것이 바로 그
나라를 구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영원천국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신천신지 영원무궁세계
가 우리의 미래에 다가올 하늘나라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다가오
는 미래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상의 부귀·영화·공명과 쾌락을
추구하고 거기에 마음이 잡혀 있으면 그 몸이 아무리 교회에 왔다 가더라도 그는 그 나라
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로 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
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
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
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
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영원한 본향에 관심
을 두고 거기에 희망과 기쁨을 두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충분히 깨닫고 믿고 감사하고 살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되지 않
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8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
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
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
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
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
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예
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고난을 마음깊이 음미하고 그 고난
의 의미를 우리마음 속에 받아 들이는 것이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늘 생각하고 그것을 마
음속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
게 주신 용서를 생각하고 감사하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함을 생각하고 감사
하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심신의 치료를 인하여 감사하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
게 주신 저주와 가난에서의 해방을 감사하고,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복락을 감
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10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
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
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과연 하나
님의 자녀로 빛의 자녀들처럼 살았는가, 이 땅에 살면서 착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진실하
게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고,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
입니다.
2. 복음 증거에 힘을 썼는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치우쳐 복음 증거는 잊
어버리고 살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최대의 관심사는 그
아들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십자가 고난을 믿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의 최대 관심사도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믿게 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최대의 관심사도 복음증거여야 합니다.
관심이 다르면 서로 떨어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관심이 같아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절대적인 관심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
게 됩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늘 복음증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의 말씀을 접해야 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
어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관심있게 받아들이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으로 무장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과연 기도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되고 오
직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할때 전
도할 힘을 얻고,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늘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로 19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
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
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모든 기회를 복음 증거의 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에서 2절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전도
의 열정이 식었다면 그 영혼은 잠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에 다시 분발해서 전도
하는 성도, 전도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면 전도하고 죽으면 천
당가자는 우리 최자실 목사님의 외치는 음성을 우리 마음속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성령은 우
리를 사랑하사 24시간 보혜사로 같이 계십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
운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 따라야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
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앙의 의식과 형식만 갖추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
니다. 율법만 가지고 나 혼자 착하게 살면 된다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만 있다는 신앙도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고
난 당하는 이웃을 돌봐 주고 그와 함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내 중심으로만 산다면 이것
은 이기주의의 극치인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을 가져야 되고, 아내도 남편에게 관
심을 가져야 되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관심이 있어야 되고, 또 이웃 사람에
게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상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19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교회도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매년 심장병 어린이들을 무료로 수
술해주고 있는데 그 수가 3천명을 넘어섰습니다. 3백여 곳의 농어촌미자립교회를 지원하
고 있으며,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도 진행하였습니다.
또 사랑의 헌혈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사랑의 옷나누기를 실시하여 앙골라에 6천 박스
의 의류를 전달하였습니다. 또 NGO 기구인 「선한사람들」을 조직하여 탈북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 의식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선한 사
마리아인 같이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4. 긍정적인 삶을 살았는가
부정적인 사람은 항상 부족한 것, 못난 것, 잘못된 것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확대하여 불
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참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면서 거의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형용사는 ‘없다’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세계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에게서 예수님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은 이
여자가 간음했으니 모세의 율법대로 돌에 쳐죽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 여자의 귀한 생
명을 보았습니다. 그 여자가 언제든지 회개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
니다. 주님은 생명의 귀중함을 보았기 때문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능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우리도 정죄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봅니
다. 수가성 우물 곁에서 예수님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여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
습니다. 예수님은 이 수가성 우물가 여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가서 네 남편
을 불러오라’고 간접적으로 말했습니다. 긍정적으로 그를 전도했습니다.
긍정적인 삶이란 것은 항상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귀중한 것, 잘난 것, 희망적인 것에 초점
을 두고 그것을 강조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긍정적인 삶을 주는 십
자가를 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절대절망에서 절대희망을 주는 영원
한 긍정적인 삶을 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심신에 병든 자는 위로와 치료를 주시고, 가난과 저주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
통을 주시고, 죽는 자에게는 부활과 영생을 주시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어두움이 없고
부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으며, 골로새서 2장 15절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
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의 은혜로 절대소망을 가진 긍정적
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건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해 동안 얽힌 실타래를 풀고, 회개와 삶의 정리를 통하여 다가오는 새해를
성공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새해를 효과적으로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우리는 마음에 손을 얹고 정말 이런 심령천국, 교회천국, 영원천국에 궁
극적 관심을 주고 그 나라와 그 의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 영광을 먼저 찾고 살았는가, 하나
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최대의 관심사인 복음 증거에 동참하고 살았는가, 우리의 삶 속에
참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가,
삶 속에 긍정적인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았는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주님을 찬미하며 변화를 가져오는 삶을 살았는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곳에는 천국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정
말로 주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한해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무엇
보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늘 부정적이 되어서 남을 할키고 참소하고 모함하고 잘난 체하고 고개를
흔드는 잘못된 삶을 가지고 살지 않았는지도 살폈습니다. 만약 그러한 일이 있다면 가슴
에 손을 얹고 성령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회개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금년 한 해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
고전2:13-14 금년 한 해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사람의 눈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물을 보는 육신의 눈이고 둘째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의 눈 즉 혜안이 있다. 그리고 셋째는 영적인 일들을 보고 깨닫는 영의 눈 즉 영안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먼저 사물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산다. 모든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똑같이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사물의 현상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각자가 다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느끼는 것이 다르고 상황 판단을 하는 것이 다르며 대처하는 것도 전혀 다르다.
이러한 사물과 상황을 보면서 느끼고 깨닫고 판단하는 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이것을 혜안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 지혜의 눈이 열려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지혜가 없으면 사는 것이 참 답답하고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사람의 육신의 안목과 이성과 지혜의 안목만 가지고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는가? 이것만 가지고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영혼이 있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의 안목이 있어야 한다.
본 론
오늘 본문에 보면 온전한 자들이 깨닫고 있는 지혜가 있다고 한다. 이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고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고 한다. 즉 세상의 지혜가 있고 영적인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고 하신다.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지혜가 있다고 하신다. 즉 영적인 지혜다.
육안으로 보고 사는 것은 일차원에서 사람이 사는 것이다. 지혜의 눈으로 보고 사는 사람은 이차원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영안으로 보고 사는 사람은 3차원에서 사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 가면서도, 같은 상황속에서 살면서도 사는 자세, 방법, 목적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안이 열려야한다. 이 영안이 열려야 우리의 삶의 자세가 바로 잡히고 올바른 방법이 나오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이 영안이 열려야
1.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고 산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사람은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산다. 사물을 보고, 상황을 보면서 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지혜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각기 다른 판단과 결정을 하여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일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삶에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물과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서 짐승처럼 갖은 고생을 당하면서도 그 형들을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했다.
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이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을 때 형들을 향해 근심하고 한탄하며 두려워 말라고 하면서 형들이 나를 노예로 판 것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이 기근 가운데서 구원을 하시려고 나를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이라고 말한다.
영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보고 사는 것이다.
육안으로 보면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배신하여 죽이려 했고 결국은 노예로 팔아치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이다.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 앞에 있는 상황에서는 보란 듯이 앙갚음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분노하고 원망하며 불평하는 일들과 미워하고 시기하며 한을 품고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보면 대부분 영안으로 보지 못하고 현실을 현실대로 보는 육안으로 보고 사는 결과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영적인 안목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워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자. 한 해를 살면서 육안으로 현실만 보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지혜의 안목을 가짐으로 지혜롭게 세상을 살수있기를 기도하자.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영의 눈이 열려 영적인 세계를 보고 사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자.
한 해를 살면서 현실만 보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하자.
상황만 보는 자들이 아니라 이 상황속에서 어떤 뜻을 이루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사는 영적인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자.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엡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행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2. 삶에 감사가 있고 형통이 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빌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영안이 열린 성도는 현실을 그대로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반응하는 성도가 아니라 그 현실속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깨닫고 사는 자이기에 그에게는 감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안다. 넉넉히 이김도 안다.
오늘도 주님안에 은혜를 받고 사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감을 알고 산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이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역사하심으로 나와 함께 하심을 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성도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보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 생각하며 느끼며 행동하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서도 현실만 보고 울고 웃고 행복해하다가 불행해하고, 감사하다가 원망하는 일들이 없을 것이다.
도리어 벧전4:12-1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처럼 시련과 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즉 영안이 어두운 자들은 현실만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이 주실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고 만다.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던 12명의 정탐군들이 보고를 보면 똑같은 곳을 똑같은 시기에 함께 정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보고는 달랐다. 한편의 무리는 그곳에 가면 다 죽겠더라는 것이었고 한편의 사람들은 그곳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것이라고 했다.
영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현실은 우리가 점령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영안이 어두운 사람들은 그곳에 가면 우리가 다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게 된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금년 한해는 영안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보고 살자.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능력과 그의 말씀을 보고 살자. 깨닫고 살자.
한 사람이라도 이 은혜를 받지 못해 똑같은 상황속에서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대적하다가 가나안의 축복을 상실하는 아픔이 없는 한해를 만들자.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주의 은혜를 구하자.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오늘도 영적인 사람이 되어 금년 한해를 살면서 원망과 불평과 짜증으로 받을 복을 빼앗기고 불행하게 사는 한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는 복된 한해가 되도록 기도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을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성령님이 아니고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살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재능이 있고 지혜가 있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라 할지라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오히려 어리석은 것으로 보고 비웃게 되어있다.
눅11:0-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두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구하고 찾고 열심히 두드리는 삶이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데 임하는 은혜가 아니다. 우리는 금년 한해를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고 살기 위하여 성령님의 임재를 열심히 구하고 찾자.
결 론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금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지혜를 갖고 많은 노력을 해도 육안과 지혜의 혜안만을 가지고는 살 수 없음을 깨닫자.
그리고 이제 영안이 열림으로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과 섭리하심을 깨닫고 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고 사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자.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가 없이는 영안이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성령의 은혜을 받아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금년 한해 열심히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한해가 되자.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 되자.
그 결과 영적인 사람에게 임하는 감사와 기쁨과 형통이 있는 복된 한해를 살자.
“하나님의 축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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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은 점점 혼란해 지며 어려워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확실한 약속입니다. 제가 지난 12월에 금년의 전망을 생각하며 심히 근심에 싸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경기가 나빠져서 성도들의 살림이 더 곤고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양을 생각하는 목자의 심정으로 내년을 염려하며 깊이 근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얘야 무엇을 걱정하느냐 성도들을 축복하거라\"라고, 마치 아들 옆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것처럼 자상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기쁜지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근심 걱정이 순식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소망과 기대가 제 마음 속에 넘쳐났습니다. 금년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은 없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금년은 그 어느 해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칩니다. 신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기사와 기적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월 한 달 내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한 말씀을 드릴 계획이며, 오늘은 \'하나님의 축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축도의 시작
\'축도\'란 축복을 비는 기도를 줄인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축도의 시작도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의 시작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우주를 만드신 후, 다섯째 되는 날에 새와 물고기를 만드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22절) 그리고 여섯째 되는 날에 짐승과 육축과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들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28절)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바로 이 축복을 해 주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명령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있고, \"궁창이 있으라\"하면 궁창이 생겼습니다. \"땅 위에 식물이 있으라\", \"저 하늘에 달과 별이 있으라\"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됐습니다.
어느 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에는 능력과 권세가 동시에 작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는 모든 것이 순종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창조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들을 지으시고, 생명주시고 태어나자마자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 받으라\"하시면 우리는 그냥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복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2.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종류와 내용
1) 천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1) 사람을 축복해 주심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축복해 주셨는데, 물고기와 새에게 축복하신 것과 사람에게 축복하신 것이 다릅니다.
물고기와 새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3가지 기본적인 것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3가지 축복 위에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통치권의 축복을 더해 주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새와 물고기와 온갖 동물들을 만드신 후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 중에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축복 이외에 통치권을 주셨기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사람이 가장 존귀하고 거룩하며 지혜로운 것입니다.
(2) 일곱째 날(안식일 → 주일)을 축복하심
창세기 2:3절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그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곱째 되는 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데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의아해 하시는 분도 계실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날이 주일이기에 이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 우주만물을 인간이 죄 때문에 망가뜨렸고, 그 죄의 결과로 저주와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류를 구원할 문을 열어 놓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부활한다는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그 새로운 세계의 날을 기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지키던 것이 \'주일\'로 바뀌었을 뿐, 의미는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일 날 교회에 나와서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헌신하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을 하나님이 복 주셨기 때문입니다.
2)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9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으로 가득한 이 땅을 물로 심판하셨지만, 그 심판 가운데서도 보호하시고 지키신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살펴보면, 아담과 이브에게 한 축복에서 약간 변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축복(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과 함께 다른 생물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무서워하리니 이들을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이런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홍수 이후에 이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물 사이에 적대감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식의 변화도 와서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과일과 채소만 먹었는데, 이제는 동물들도 먹게 되었습니다.
3) 족장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족장\'이라고 함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의미하는데, 이때에는 하나님이 축복을 다양하게 그리고 자주 많이 해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
창세기 12: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라고 아브람에게 축복해 주셨는데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신 내용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도 축복해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도 저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일체가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축복의 특징은 계약적 관계에 의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축복은 무조건적이며, 하나님의 일방적인 축복이었지만, 이 아브라함의 축복부터는 언약을 통한 상호 계약적인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다. 먼저 섬길 조건이 따릅니다. \"네가 내가 지시한대로 행하면 축복해 주겠다. 그러나 내가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도 취소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무조건적인 축복이 계약적 축복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축복해 주시니까 인간이 그 축복을 감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이 구해준 노아의 후손들조차도 축복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이 점점 하나님의 축복과 어긋나는 다른 길로 감으로서 하나님이 인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주시던 축복을 철회하시고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면 복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계약적 조건의 축복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먼저 복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복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성도들이 되시어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축복을 넉넉히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땅의 축복; 창세기 13장 14-17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며 축복해 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축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임한 축복과 같이 눈으로 보고, 발로 밟는 것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자녀의 축복;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90세가 되도록 아직 자녀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아내의 몸종에게서 얻은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그는 언약의 자녀가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언약 안에 있을 때에만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자(無子)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고,(창1:1-5),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100세 되던 해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라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면, 미래에 속한 것일지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에게 마지막 시험이자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는데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복 받고, 가정이 복 받고, 그로 인하여 한 민족이 태어나고, 그 민족을 통하여 메시야가 올 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2) 이삭에게 주신 축복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그대로 받았기에 성경에는 많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수확을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창세기 26:12-14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야곱에게 주신 축복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은 후,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던 중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라고 하나님이 스스로 나타나셔서 일방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20년 후에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밤새도록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는 내용이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간구하는 기도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시고 축복해 주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두 가지 축복 즉,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받으시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기 원하시는 축복도 간절히 구하여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야곱으로 말미암아 그의 가족 70여명이 애굽으로 옮겨와 400년 동안 살면서 200만∼300만 명의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 그를 모르는 왕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살이 시켰으며, 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모세를 통하여 그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시내산에 부르셔서 하나님이 그 민족 위에 직접 임재하셨습니다. 불 가운데 연기가 떠오르며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호와께서 친히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한 개인 앞에만 나타나셨는데, 오직 이때만 이스라엘 전 백성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야할 율법을 선포하셨습니다.(출19-24장) 이것이 \'시내산 언약\'입니다.
신명기 28:1-14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면 이스라엘민족을 세계 최고의 민족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면 하나님의 은총이 끊어진다는 저주의 말씀이 15절부터 열거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30:15) 하나님은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동시에 놓으셨습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생명과 복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망과 화를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생명과 복을 택하시고, 사망과 저주는 여러분의 근처에도 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점정리 : 축도의 변화
축도의 내용
기본적인 축복 → 개인, 자손, 땅, 민족, 기업을 보호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128:2)라는 말씀처럼 사람이 수고한 대로 복 받아 누린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축도의 성격
무조건적 축복 → 계약적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완전한 계약적 축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축도의 대상
개인 → 족장 → 민족 →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으로 세계를 복음화하는 하나님의 축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법도대로 행하는 자는 성경에 나와 있는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주시고 곧 바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축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가 먹고, 눈이 멀고, 마음이 완악하여 이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 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 깨달으시니 얼마나 복되십니까?
진정 복 받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에 약속된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느냐 성도들을 축복해라\" 얼마나 적절하고 합당한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계속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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