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선 순위를 정하라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

성경: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크고 작은 일을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결정짓고

삽니다. 그러나 순서를 어기면 삶이 무질서해지고 정리 정돈이 안되고 하루종일 어수선해

집니다. 그렇다면 새해를 살아갈 때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가면 좋을까요?

 

1.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우리는 새해에 가장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

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

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서를 올바르게 하면 삶의 다른 모든 필요한 것은 자연적으

로 이루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우면 끝까지 올바르게 단추가 끼워

지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넣으면 끝까지 옷이 비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순서를 잘 정

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만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이시

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 우주의 주재자이시고 중심이 되

시고 역사의 지배자 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버지를 먼저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사야 44장 24절에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

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대 주권자요,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일은 마

땅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시요,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주실 분이기에 섬

겨야 합니다. 우리의 위로자되신 하나님을 먼저 섬겨야 우리가 어려울 때 위로받을 수도 있

고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먼

저 섬겨야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바랄 수 있습니다.

시편 33편 20절에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방패가 되시기 때문

에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먼저 섬겨야 될 것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야 될 곳이기 때문입니

다. 사람은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

다. 그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죽음 저 건너편에 갈 곳이 어디입니

까?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본향은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인

하늘나라가 본향입니다. 내 본향집을 사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3

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

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까요? 우리는 일주일의 첫날인 주일을 거룩하게 드려야 됩니

다. 예수님이 이날에 부활하셨고 예수님이 이날에 제자들을 찾아 오셨고 이 날에 하나님이

하늘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교회를 탄생케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엿새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쉬

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내어서 수요일에 교회에서 성경공부하고 하나님을 예

배하며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셀모임에 출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4

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는 주를 따라서 삽니다. 주를 따라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주와 함께 거할 것이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또 물질을 드리며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빈손으로 섬기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정성을 하나님께 보

여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섬기는 곳에 정성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로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

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으로서 십일조를 우

리가 횡령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너희와 너의 모든 산업이 저주

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 망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흥하게 되

는데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도둑질하면 너희와 너의 산업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3장 9절로 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길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길은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길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창고가 가득히 차고 즙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

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길에는 우리의 물질적인 헌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

장 10절로 11절에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도 뜨겁게 하고 서로 섬기는 것도 주를 섬기듯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삶의 가

장 공경할 자로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받으시고 감동하셔서 복을 내려 주

십니다. 욥기 22장 21절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안이 있어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전쟁상태에 있으면 우리에게 평안이 있을 수도 없고 복이 있을 수도 없는 것입

니다.

 

2. 가정과 가족

 

오늘날 ‘나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가정이나 가족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바쁩니까? 무엇 때문에 직장에 나가고 무엇 때문에 사업을 합니까? 가

정과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적과 방편이 서로 뒤바뀌

면 안됩니다 우리 삶의 뿌리는 가정입니다. 가정 없이 홀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

니다.

그런데 가정이 불안하면 삶 전체가 불안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기름진 음식을 먹

으며 호의호식한다 해도 가정이 평안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부부와 자녀뿐 아니라 직장의 업무효율과 육체적인 정신적인 건강과

재정상태, 수면까지도 파괴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화

평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와 화평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부부간에도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화목과 평안을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

니다. 에베소서 5장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부간에 불화하면 마음에 큰 폭풍우가

불어옵니다. 가정이 화기애애하고 부부간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화목하면

마음에 평안이 있고 화평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평화로

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 행복은 입과 귀가 좌우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부 관계라는 것은 남남끼리

모여 사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 이해를 하려고 하고 동정을 하고 사랑하고 화목하

고 평안할 뿐 아니라 늘 칭찬을 해야 됩니다. 칭찬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장

점을 들어 칭찬하고 아내도 남편의 장점을 들어 칭찬해야 됩니다.

한방울의 꿀이 한말의 쓸개보다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훈계와 교훈

과 꾸짖음이 부부간에 절대로 사랑과 화목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마디의 칭찬이

남편의 마음을 녹여 놓고 아내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놓고 둘이서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여러분 부부간에는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화목과 평안을 위해서 늘 입과 귀를 사용

하고 그리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는 자녀들과 대화를 하고 친밀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가까운

골육친지가 자식 아닙니까? 자식하고 불화하면 자식도 불행하고 부모도 불행하지 않습니

까? 가장 가까운 것이 자식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중 22%가 가정에서 아버지와 하루에 단 1분도 대화하지 않는다고 했습니

다. 낳아만 주면 자식이 아닙니다. 자식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때문에 우선적으로 하나

님을 섬겼으면 둘째는 가정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3. 건강에 관심을 가져라

 

올해에는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

으면 절반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어떤 부인 모임에 강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파서 드러누우면 누가

제일 싫어합니까?’라고 하자 모두 조용한 말로 일시에 ‘남편이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부인이 아파 드러누워 있는데 좋아할 남편이 결코 없지요. 남편이 앓아 드러누워 있으면 그

시중드는 부인이 얼마나 고생스럽습니까?

삶의 성공과 행복의 기초가 건강입니다. 그러나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병들고 난 다음에 건강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세계 장수촌에 가보고 그 특징 세가지를 발견했는데 첫째 소식(小食)을 하는 것입니다. 둘

째 부지런히 일합니다. 셋째 화목한 가족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장수하는 사

람들의 전반적인 비결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새해에는 건강을 얻기 위해서 절제하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은 술, 담배를 멀리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지 말아야 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음주량은 세계 2위입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화끈해서 큰일입니다. 좋은 것도 화끈

하지만 잘못하는 것도 화끈합니다. 술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고 폭탄주를 만들어 마신다고

하는데 이것을 몸이 어떻게 견뎌냅니까? 작년의 통계를 보면 국민 1인당 음주량이 7.1ℓ나

됩니다. 그래서 간이 가장 많이 손상되고 신경장애가 일어나고 암에 걸려서 나중에는 고통

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는 담배피지 말라는 구절이 없는데 왜 자꾸 담배피지 말라고 하느냐?’

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담배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구절이 없는 것입니다. 담배

속에는 니코틴이라는 맹독성 발암물질이 있는데 담배 한 개피 분량의 니코틴을 개구리에

게 주사했더니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는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그런 맹독을 담배

를 통해서 간이나 폐에 자꾸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습니다. 담배를 피

는 사람은 스스로 자원해서 자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폐암의 90%, 후두암의 95%가 흡연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합니다. 흡연은 인간수명을 7년이나 단축시키며 흡연 여성의 경우

11%가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됩니

다. 술, 담배, 무질서한 삶을 버려야 됩니다.

오늘날 도덕적인 방종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편만하게 퍼져 있습니다. TV 드라마 영화

는 거의 불륜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혼율은 10쌍 중 4쌍입니다. OECD 국가 중 3 위인 반면에 출산율은 1.3%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정이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

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의롭고 진실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건강은 그냥 있는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먼

저 올바른 식생활을 해야 됩니다. 과식하지 말고, 채식도 많이 하고 소식해야 합니다. 아침

에 늦잠 자고 저녁에 늦게까지 술마시고 노는 등 무질서한 삶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육체

의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까? 올바른 식생활과 적당한 운동과 청결한 삶, 이런 노력이 있어

야 우리가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도 마음도 몸도 온전히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 때문에 새해에는 과도한 스트

레스나 과로나 과욕을 피하십시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는 과

로하게 되고 5분 빨리 가려다가 영원히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십시오. 마음에 평안을 흔들어 놓는 것이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워하고 시기해도 상대는 해를 받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사람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여러 가지 해로운 호르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하

면 내 마음에 상처가 오지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 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 이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 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유해산소, 혹은 나쁜 호르몬이 뼈를 마르게 합니다. 뼈가 마르면 뼈에서 만들어지는 피도 말라요. 피가 마르면 사람이 죽지요. 이렇듯 마음의 평안이 건강을 가져오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까? 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나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께 맡기고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사나운 동물일수록 수명이 짧지만 온순한 동물은 수명이 아주 깁니다. 분노와 증오를 가지

는 것은 자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입니다. 내몸에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때문에 새해에는 마음에 평안을 늘 가지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4. 직업과 사업

 

우리들은 청지기라는 마음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업을 주시는 것

인데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장과 직업이란 청지기 사업인 것입니

다. 직업이란 단지 생계의 방편만은 아닙니다. 물론 직업을 통해서 우리가 먹고살지요. 데

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직업은 약 6천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컴퓨터나 정보화기기의 발달로 새 직종

이 출연하고 지금 5살짜리 어린이가 성인이 될 때쯤 되면 현재 직업의 90%가 사라지고 한

사람이 전혀 다른 6개 내지 7개의 직업으로 바꾸어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에 충실해야 됩니다. 그리고 직장이란

미래의 꿈을 가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업을 통해서 내 꿈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

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직업을 통해서 성취할 때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각자에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능력과 직업이나 직장을 통해서 축복을 해주실 것

입니다. 하늘나라에 방금 도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이곳저

곳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다가 큰 방에 들어가 보니까 선반 위에 많은 보따리들이 쌓여 있

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대체 이 많은 보따리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천사는

‘이 보따리들은 모두 하나님이 각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결코 구하

지 않고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던 능력과 축복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

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

업도 구하고 직장도 구하고 능력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꼭 응답하셔서 우리들이 생

계도 이어갈 수 있고 미래의 꿈도 가꾸고 자기 성취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직업이 있어야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명함을 내밉니다. 그러나 내가 직장을 잃으면 줄 명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존재를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상대방을 만나서

명함을 줄 때 자기의 신분이 확실해지고 자기의 존재가 확실해집니다. 그러나 퇴직을 당하

거나 직장을 잃고 난 다음에는 내놓을 명함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성을 잃어버

리고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직업이나 직장이라는 것은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자기의 존재를 확인시

켜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설 곳을 확인해 주기 때문에 우리

에게 직업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골로새서 3장 23절로 24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직장을 통해서 주님을 섬긴다고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우리가 능력에 맞도록 직업과 직장을 하나님께 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5. 취미와 여가

 

새해에는 취미와 여가를 즐기면서 살아야 됩니다. 취미와 여가는 제일 마지막이지만 이것

도 꼭 있어야 됩니다. 개인적인 취미는 삶에 기름칠을 합니다.

그런데 TV 시청이나 인터넷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TV나

인터넷 중독은 취미가 아니라 병입니다. 인터넷 중독 및 후유증은 현재 61.8%로 부부간의

불화의 원인으로 떠오르면서 청소년까지 위협하는 가정파괴범이 되어 있습니다. 초등학

교 자녀를 둔 부모들은 82%가 음란 및 폭력사이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

다. 그것은 취미가 아닙니다.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취미라는 것은 자기뿐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음악도 같이 하고, 그

림도 그리고, 여행도 하는 등 다양한 취미가 있지 않습니까? 내 생애에 기름을 부을 수 있

고 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족이 가지는 여가는 레크리에이션이

참 좋습니다. 삶을 재충만시키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3절로 24절에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

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을 누려야 됩니다. 자기 개인도 특별한 낙을 누릴 수 있고 가족들과 함께 합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생애를 황홀하게 하고 재충만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밤낮 쳐다보는 부부, 밤낮 지나가는 부모자식 그 가운데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취

미와 여가인 것입니다. 시간 관리의 지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가를 통해서 재충만해

야 일도 잘됩니다.

나뭇꾼 두 사람이 산에가서 나무를 하는데 한 사람은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죽으라고

나무를 팹니다. 그런데 다른 나뭇꾼은 나무를 패다가는 앉아서 있고 또 나무를 패다가 앉

아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나무를 패다가 쉬고 나무를 패다가 휘파람을 불고 앉아

서 쉰 사람이 나무를 훨씬 많이 해놨어요. 그래서 이쪽에서 죽도록 나무를 팼던 나무꾼이

물었습니다. ‘아니 내가 보니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면서 나무를 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많이 나무를 했습니까?’ 그러자 그 나무꾼은 ‘나는 나무를 패다가 쉬는 시간에 휘파람도 불고 여유도 찾고 도끼를 갈았습니다. 당신은 날이 무딘 도끼로 때리니까 나무가 잘 안찍혔지만 나는 날이 날카로운 도끼로 나무를 해서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가를 가지고 쉬는 것은 삶의 도끼를 날카롭게 하는 것입니다. 무딘 도끼로 아무리 두들

겨 봤자 일이 안되잖아요? 하지만 날카로운 도끼로 때리면 나무가 훨씬 쉽게 잘라집니다.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것이 바로 레크리에이션이며 휴가요, 여가를 즐기는 것이요, 삶에 기

름을 칠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삶의 우선순위의 표본을 여러분께 보여 드린 것입니다. 첫째로, 그 나

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둘째로, 가정과 가족을 생각하라. 셋째, 건강에 관심을 가져라.

넷째, 직업과 사업에 종사하라. 다섯째, 취미와 여가를 즐기라고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

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행복하게 살

기 위해서는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놓아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 우선순위를 읽고 삶

의 순위를 따라서 살고 있는지를 살펴서 자기를 체크하면서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본 문 : 딤전 6:8-4

 

새해는 우리 모두에게 소망의 해인줄 압니다.

새 일 을 마땅히 행하여야 할 해인줄 믿습니다.

따라서 금년 교회표어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사 43:19).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 첫 달 첫 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요? 본문 7절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 시간 말씀의 주제

요, 또 한 해를 살아갈 때 이 말씀을 성도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았으면 싶습니다. 여기 연

습이라는 단어는 운동선수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가령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려면 몇 달

전부터서 체중조절을 위해서 먹고 싶은 것 먹지 아니하고, 몸이 가볍기를 위해서 줄넘기를 한다든지, 팔에 힘이 생기기 위하여 아령을 한다든지, 몸이 빠르기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 든지, 이렇게 땀 흘리고 진액을 빼는 연습을 하지 않습니까? 연습하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가 없어요. 꼭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최소한 이 선수들 처럼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말은 경건에 이르기를 위해 영적 훈련을 쌓으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을 보십시오. 새벽제단을 쌓았든지, 금식기도를 한다든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경건의 훈련을 쌓은 성도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주일학교 교사가 영적 훈련을 쌓지 못했다면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 경건이 무엇인가요? 답을 찾기 위해서 술을 안 마시고, 담배를 안 피우고,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 이러한 것들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영어로 \"godliness\"라고 되어있는데 \'God\' 곧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말입니 다. 다시 말하면 경건을 하나님의 품성과 인격을 닮는 삶을 뜻합니다. 때문에 경건은 성

도의 간판이요, 성도의 얼굴이며, 성도의 밑천이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은 신자와 불

신자를 구별하는 열쇠이기도 해요,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실은 경건해야 합니

다. 그리고 언어는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은 성도들의 특징이요, 모습인 것을 잊지 말아

야 할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 꼬마가 물었어요, \"선생님, 도대체 어떤 분이세요?\" 선생

님은 대답이 궁했어요, 그러나 궁리하다가 \"하나님은 말이야, 우리를 돌보시는 마치 아버지

와 같으신 분이야\" 그랬더니 이 꼬마가 대답을 듣자마자 울기를 시작했어요. 왜 그러느냐고

묻자 꼬마는 답합니다. \"우리 아빠가 매일밤 술이 잔뜩 취해, 늦게 들어와서는 엄마를 때

리고 살림살이를 마구 부수어요.\" 선생님이 비유를 좀 잘못 든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

은 어떠한 분이실까요. 그 선생님께서 \'하나님은 예수님 같으신 분이야\'했더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사실 경건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라는 책이 있지요, 한번 읽어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송이 무엇인

가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어떠한 것들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일까요? 성장하는 어린이 모습에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 음식 잘먹는 연습입니다.

 

여기 음식은 말씀을 뜻합니다. 어린아이의 음식이 무엇인가요? 젖입니다. 성경은 하나

님의 말씀을 젖으로 비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경건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

거한 믿음생활을 뜻합니다. 가정에서 어떤 자녀가 효성스러운 자녀이던가요? 부모의 말씀

잘 듣고, 부모의 말씀을 순종 잘하는 자녀가 효성스러운 자녀입니다. 마찬가지지요, 교회

에서 어떤 성도가 효성스러운 성도인가요? \"가라\"하시면 아브라함처럼, 에녹처럼, 노아처

럼,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순종하고, \"말라\"하시면 손해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장세

워 하던 일도 중단하는 성도가 효자성도요, 효녀성도가 아닐까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

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

여 믿음을 키우고, 사랑을 키우고, 소망을 키우는 자가 성도 아닙니까! 로마서 10장 17절

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어요. 그

렇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다른 길이 없어요. 철학으로 안돼요, 교육

학으로 안돼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는 성도입니다. 주일예배 한 시간 참석하는 것

으로 믿음이 온전해질 수 없지요, 주일 밤예배, 삼일밤, 뿐만 아니라 성경공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믿음이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노래

불러야 돼요! 꿈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해야 되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

을 먹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성도가 성숙한 믿음 지닌 성도요, 하나님

의 예비하신 축복을 받아내기에 부끄러움 없는 성도란 말입니다. 젖도 먹지 않고 우유도

먹지 않고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어린아이 본 일 있습니까? 먹긴 하되 편식하고, 또 설사하

는 어린아이가 건강한 것을 본 일 있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믿음을 지니기 위해

서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고루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먹는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단 말입니까? 첫째, 읽어야 합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입니다. 하루 석장씩 읽으면 일년이면

통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되, 날마다 읽고 편식하는 것같이 읽지 않고, 차

례대로 읽어야 하고, 그리고 읽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기도하면서 읽고 찬송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둘째는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지 않았습니까? 또 들어야 깨달음이 생겨나요. 듣고 깨

닫고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 이라고 찬송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셋째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

로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먹는 일입니다. 계시록 1장 3절이 무엇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

니\"했어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 중요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중요합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은 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내 생활하곤 관계없어\', 행치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산상보훈

에서 말씀하셨지요.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자와 같으니라\" 사랑하는 성도여,

이제 2010년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아니

한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먹고 살았던 2009년은 아니었는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바탕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뿌리가 되는 새해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것들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일까요?

 

둘째, 호흡을 잘 하는 연습입니다.

 

여기 호흡은 기도를 뜻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신령한 호흡에 비유하고 있어요, 호흡이

고르지 못한 어린이는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말하는 적신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호흡이 고르지 못한 성도는 마치 영적 불면증에 걸린 성도와 같아요. 기도는 심령 속에 있

는 죄의 탄산가스를 품어내고 성령의 깨끗한 산소를 들이마시는 영적 호흡입니다. 성도의

영적 신진대사는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기도를 해야만 심령이 깨끗해지고, 기도

를 해야만 힘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이적도 생겨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그 심령은

닫혀진 창문이요, 그 가슴은 옹졸한 가슴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홍해가 갈라지지 아니

하고, 여리고성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영적 생명이 부풀어나고 하늘 창고에 보화

를 공급받을 수가 있어요.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능력 받고, 축복 받고, 죄씻음 받기를 원

하는 것이 망상일 뿐입니다.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고, 나만의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바디

매오의 이적도 만날 수 없어요. 사랑하는 성도여, 2003년은, 특별히 1월이 무슨 달입니

까? 기도의 달이지요, 30일 기도를 선포한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성할 인생 없어요, 기도하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아니할 인생 없어요, 하

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한해가 되길 원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가 기도를 했지요. 그 동안 기도 없는 산 아래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겨났어요.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간청했으나, 제자들은 병을 고칠 수가 없었어

요. 병을 고쳐보려고 병자를 어루만지기도 하고, 등을 두들기기도 하고 귀신아 물러가라

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헛수고했습니다. 망신당할뻔 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

려오셔서 그 귀신을 쫓아내 주셨지요.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신 다음에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선생님,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를 못했을까요?\"했을 때에 주님 말씀하셨습니

다. \"믿음이 적은 연고라,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있을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기

도는 믿음을 성장시키는 능력이요, 기도는 우리 삶 속에 있을 수 있는 귀신을 몰아내는 능

력이란 말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이 능력을 주시옵소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입시다. 기도는 경건에 이르는 디딤돌입니다.

기도는 연습 중에 가장 경건한 연습입니다. 기도할 때에 조심할 것 있어요,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시니까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던지우리라, 하나님은 그렇게 하

실 분인 것을 믿고 기도를 하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서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믿고 구하면 다 받을 것을 약속해 주시고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

도 믿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부도 내실 분 같습니까? 아니지요, 왜 구하여도 얻지 못합니

까? 하나님 뜻대로 구하지 아니하고 내 뜻대로 구하기 때문이요, 또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요, 그러나 그 기도가 응답 없는 기도를 할 때가 있다

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위대한 선교사 윌리엄 캐리의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해요,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고 했어

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바퀴를 돌리지 아니하면 자전거 넘어져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

는 사람이 바퀴를 돌리지도 아니하면서 \"주님, 시간이 모자라요. 5분내에 목적지에 도달하

게 해주세요\". 얼마나 좋은 기도입니까? 그런데 발판을 돌리지 아니하고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열심히 바퀴를 돌리면서 주여, 주여, 5분 안에 도착케 해주

시옵소서. 이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노동과 기도, 기도와 노동, 칼빈이 강조한 내용인 것

입니다. 기도를 할만큼 우리의 행실이 선해야 합니다. 기도를 했던 것만큼 내 삶의 모습

이 달라져야 합니다. 주님에게 기도한 것만큼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한 해를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것들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일까요?

 

셋째, 운동 잘하는 연습입니다.

 

여기 운동은 전도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보챌지라도 두 팔, 두 다리를 그냥 놀려야 합

니다. 이것이 어린아이가 건강해지고 잘 성장하는 비결입니다. 마찬가지지요, 성도의 믿

음이 성장하려면 영적 운동을 잘 해야 합니다. 성도의 영적 운동이 무엇입니까? 열 가지

아니에요, 한 가지입니다. 전도입니다. 성도 중에는 날마다 전도하고 때를 얻던지 못 얻

던지 전도하는 성도가 있어요, 이것이 무엇인가요? 경건에 이르는 연습입니다. 전도 잘하

는 성도치고 믿음 부족한 성도 없어요, 칭찬 듣지 아니하는 성도 없어요. 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셨는가요? 왜 예수님께서 새성전 입당을 이렇게 허락하시는가요?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나 같은 죄인을 세워주셨는가요?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불교는 자각

하는 종교요, 유교는 명상하는 종료라면, 기독교는 전파하는 종교입니다. 물건은 수레를

통해서 운반되고, 꽃가루는 벌, 나비를 통해서 운반되듯이 피묻은 십자가 복음은 전도자를

통해서 운반되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

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여기 \'어찌 들으리요\' 이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감방에 있는 죄수가 어찌 들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병원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환자들이 어찌 들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미신과 빈곤과 무

지 속에서 허덕이는 농촌과 산촌과 어촌의 불쌍한 영혼들이 어찌 들으리요, 그러니까 선교

사를 파송하고. 미자립교회를 돕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요, 때를 얻던지 못 얻던

지 2003년에는 전도에 열심을 품으십시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 세 가지를 증거했습니다.

말씀 잘 먹는 연습을 하십시다. 기도 잘하는 연습을 하십시다. 전도 잘하는 연습을 하십

시다. 뿐만 아닙니다. 헌금생활도 연습해야 합니다. 헌금을 습관적으로 하는 성도가 헌

금을 잘해요, 헌금 잘 안 하는 성도는 헌금 소리만 해도 짜증부터 부립니다. 봉사생활도

연습해야 합니다. 봉사가 몸에 베인 성도라야 봉사를 잘해요, 봉사하고 거리가 먼 성도는

아예 부엌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습관도 연습해야 합니다. 누가 이웃을 헐

뜯습니까? 누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합니까? 헐뜯고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성도가 항

상 헐뜯고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누가 좋은 말을 하고 누가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말을 하

던가요? 좋은 말을 자주하고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말을 자주 하는 성도가 항상 그렇게 합

니다. 타고났어요. 사랑하는 성도여!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지속하십시다. 주일 성수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입니다. 주일 밤예배, 수요 밤예배 개근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일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요, 찬송하

고 구제하고 격려하는 일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금년 한해를 살 때에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통하여,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래로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귀한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

성경: 빌립보서 2:11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또 한 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한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설계하면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갖습니다. 우리가 새해 첫 주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이 비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표에 대한 꿈과 희망과 미래의 설계를 가슴속에 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져야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이 설레도록 심어주시는 그 꿈의 환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삶이 희망차고, 미래에 대한 소원들이 날마다 성취되면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1.비전을 가지라

 

예수님께서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에 품었던 비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일관되게 그 마음속에 가졌던 소원이 있었으며, 그 마음속에 잠시도 떠나지 않는 의식이 있었으며, 그리고 그가 꿈으로 보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자나깨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과 핵심적인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한해를 출발하면서 1년 동안 어떻게 사업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어떻게 모든 일을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가치개념이 필요합니다. 목적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없이는 성공을 해도 실패가 됩니다. 무엇인가를 크게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무한 것이 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 목적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헛되지 않고 목적에 맞는 삶이 되도록, 오늘 이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계시하십니다.

 

2.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그 해답을 주십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할 때 이 마음은 곧 무슨 마음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저 사람은 참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은 참 착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여러분!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좋은 마음입니다. 보통은 남들에게 좀 친절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평가 기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 기준은 달라야합니다. 주님께서 보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마음이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마음속에 이것이 있어야만 좋은 마음인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에게 조금 다정하게 하면 “아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 줄도 모르면서 무조건 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남에게 말을 다정하게 하면 “아 그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단정을 합니다. 이런 일은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사랑이 뭡니까?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도와주고 것이 사랑입니다. 내는 죽고 이웃을 살리는 그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친절은 지극히 작은 하나의 사랑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남에게 친절하면서도 인색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로는 남을 칭찬하면서 속은 자기 욕심만 차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사랑으로 살았는지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깨닫게 됩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분명하고도 좋은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하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늘도, 땅도, 천하도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빌 2:5).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나실 때 허다한 천군이 천사와 더불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양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가면서 일관된 한가지 목적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할 때에도 그것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 직전에도 이렇게 간구하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영광스럽게 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직전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서 십자가를 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한마디로 말하면 시작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죽으심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영광”을 헬라어로는 ‘dovxa’라고 말합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현현,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임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명백한 고백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이 “거하신다”는 말은 구약에서는 성막이나 성전을 뜻합니다. 이 뜻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영광이 독생자의 영광인데, 하나님의 영광은 독생자를 통해 나타난 영광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인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이 우리의 생애 가운데 재현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3.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

 

우리는 사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누군가가 왜 사는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도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누군가가 “왜 찬양하는가? 왜 공부하는가?” 죽을 때에도 “왜 죽는가?”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 존재를 성공적인 삶, 위대한 삶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해주는 그 영광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인도할 때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겸손히 자기를 비워 낮아졌고, 섬기는 종이 되었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관되게 가져야 할 세 가지 삶의 자세입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삶이 가능합니까? 자기를 비워야 됩니다.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목적이 잘못되면 성공도 실패요, 목적이 잘된 것은 실패도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이러한 삶의 자세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로마서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라고 증언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자기가 잘되면 성공이고 자기가 잘못되면 실패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영광을 돌리는데는 성공이나 실패가 상관이 없습니다. 실패해서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실패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성공에서 영광이 안된다면 성공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런 가치관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새 마음이고, 이런 마음이 복된 마음이고, 이 마음이야말로 참되고 가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의 목적이 변화된 사람을 가리켜서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가령 똑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왜 술을 끊었는가?”라고 물었더니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끊었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왜 자네는 그런 나쁜 도박의 습관을 버렸는가?”라고 물었을 때 “예, 그것을 즐기다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살아보려고 끊었습니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끊었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끊었습니다.” 이러한 대답이야말로 목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머릿속에 설레이는 확고한 환상, 비전을 가지고 한해가 출발되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영광은 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고, 내게는 무슨 큰 고난이나 역경이나 시련이 되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예수의 정신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생각할 때만 그 영광이 내 영광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요 13:31) 자기가 영광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하기 전에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도 주님은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나 자신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참 영특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좋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가정예배를 마치고 그 딸에게 묻습니다. “딸아, 사람의 사는 목적이 뭐지?” “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뭐지?” 그때 딸이 정색하면서 “아버지! 사람을 영광스럽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네가 바른 신앙을 가졌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자세가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도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서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주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낮추고, 섬기고, 죽고, 희생하는 삶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예수를 높입니다. 그것도 영화롭게 높이십니다. 빛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주인으로 세워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도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이 나를 높여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5.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

 

어느 집사님이 열심히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주일도 없이 돈을 억척스럽게 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내가 주일도 지키지 않고 돈만 벌어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애쓰지’. 사실 이 집사님은 돈 버느라고 바빠서 돈을 쓸 시간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친구의 보증을 서줬다가 벌어놓았던 돈마저 모두 잃습니다. 그가 가진 것을 잃고 예배를 드릴 때 회개한 것이 있습니다. ‘아, 내가 산 것이 헛것이구나! 주일도 없이 돈 벌어 가지고 얻은 것이 결국 이것이구나’. 그는 주일에 가게문을 닫고 완전히 주일날 쉬었습니다. 그런데 순장 한 분이 그 사람을 데리고 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이 집사님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무슨 손해를 봅니까?” “주일날 장사가 잘되는 날인데 장사를 안하고 닫아버렸어요. 그러니까 엄청난 손해를 보는거죠.”

 

여러분,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게문을 닫고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차라리 가서 장사를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손해입니까? 주일에 예배드리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 장사로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를 맛보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고, 말로다 할 수 없는 감격과 은혜를 받고 있는데 이게 손해입니까? 아닙니다. 엄청난 유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잘 모르고 돈의 가치로 보니까 손해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가치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돈의 가치로 얘기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손해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치로 삼고 사는 이들입니다. 예수 가치로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가치 개념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으려면 올바른 가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설악산 오색 약수터에 가면 주일날 문닫는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관광지는 대개 주일 장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가게의 주인은 주일이 되면 장사를 안하고 설악동에 있는 교회에 나갑니다. 다음날 가게문이 열려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집사님이십니까?” “예, 집사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관광지에서 문 닫고 장사를 하십니까?” “나야 예수로 살려고 나선 몸 아닙니까? 장사가 되면 되는 대로 살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삽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나는 예수로 사는 사람이니까 예수로 만족합니다.” 감동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년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표를 세울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많이 바치는 목표를 세우시기바랍니다. 사업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목표라서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십일조를 많이 바치기 원합니다.” 라고 간구한다면 십일조를 많이 바치기 위해서 사업이 잘될 것 아닙니까? 방향이 다릅니다.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그 말보다 십일조를 많이 바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수입이 많이 올라갈 것 아닙니까?

 

또한 1년의 목표를 세워야 됩니다. 목표를 세우십시오. 저희 교회 피택 장로님 중에 한 분도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년에 몇 개의 교회를 돕고, 신학생을 돕고, 그리고 평생에 몇 개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그렇게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축복하십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할 때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행실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여러분! 우리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영광이 됩니다.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교회에 부흥회를 갔는데 그곳에는 한 달에 300만원의 십일조를 바치는데도 부모에게 불효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한 푼도 보태드리지 않고, 부모님이 움막에 사는데도 돌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며느리가 얼마나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그 마음이 강팍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분에게 권면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그 돈 갖다가 어머니 드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린다고 그 십일조를 무조건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질은 교회에 바칠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십일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하고 화목한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십일조를 내면 목사가 굉장히 기뻐할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 인격이 필요하고,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식들이 뭘 바친다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까닭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모님의 얼굴이 확 펴지도록 얼른 갖다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7-8)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친히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건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직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한해동안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고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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