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우리 애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예수님은 당시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많은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면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등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 또한 능력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자기들의 자녀가 안수 받는 것을 요구하던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많은 남자들이 아이들 돌보는 것에 서툴다.

그래서 아이들은 여자들이 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도 있다.

아마 제자들도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안수를 요구할 때에 아이들의 접근을 물리쳤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이들에게 안수하셨을 때에 여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해보라.

 

오늘날도 많은 자녀상담의 요구가 많지만 그 당시에도 자녀들을 양육하는 여성들로서는 예수님의 축복과 아울러 자녀문제에 대한 상담과 치유를 요구했을 것이다.

 

이 여성들에게는 자녀의 문제가 자신의 삶 속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요구였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은 이런 요구에 맞추어 축복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훈계와 아울러 사랑과 관심,

그리고 인생의 목표설정에 대한 도전을 제시하였을지도 모른다.


치유사역을 하다보면 남성들을 치유하는 것과 여성들을 치유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들은 대개가 이성적이고, 원리원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 많고, 간혹 이기적이고,

강한 열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남성들은 목표 지향적이다.

 

그래서 상담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 내에서 상담을 해줄 때에 자신이 믿고 있는 원칙적인 틀에 맞추어서 강하게 어필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상담이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데보라 테넌의 저서에 보면, 이런 주제의 글이 있다.

 

 “여자들은 위로를, 남자들은 해결을!” 즉 남성들은 업무 중심적이고 해결중심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상담 중 많은 부분이 ‘이해와 위로’를 원하는 것이다.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사역자들은 여성들의 문제에 충분한 이해와 관심, 위로를 하지 않고  “무엇 문제죠?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고 해결중심으로 급하게 뛰어든다.

그리고는 여성들이 자신이 처방한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아이들에 대한 자신들의 고충과 노고를 이해해주고, 축복하는 예수님이 얼마나 좋았을까?

인기있는 상담자, 치유자가 되려하면 예수님처럼 ‘이해와 위로자’가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의 내적치유사역을 보면 내적치유의 은사와 도구들은 준비가 되어있지만, 내적치유의 기본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 사랑’이 결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내적치유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와 회개’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미운 상대, 때로는 상처를 준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해 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해주고 위로하는 시간과 노력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내적치유는 사역자도 충분치 못하고, 사역자들은 너무나 바빠서 그들의 상처와 상황을 미처 알기도 전에 “용서하세요, 회개하세요!,

그리고 강하게 영적전쟁을 해서 당신의 상처 안에 숨어있는 귀신을 쫓아내세요!” 소리치며, 벌써 승리했다고 예언적인 선포를 해버리고 가버린다.

 

그러나 다른 사역자를 찾아서 다시 치유받기를 원하는 것이 내적치유사역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내적치유는 20세기에 재발견된 하나님의 은총이며, 전력적인 사단의 견고한 진을 깨뜨리는 위대한 사역이라는 확신이 있다.

 

영적인 분야와 잊어버린 기억치유와 상처치유, 그리고 축사를 포함하여 하는 내적치유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아름다운 장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