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심는 자와 적게 심는 자 고후 9: 5-12 1. 16. 11
어느 목사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아담이 어느 민족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장로님이나 권사, 집사들은 이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한 부형이 \"아담이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봐 한국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목사님은 \"어째서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만일 아담이 한국 사람이었으면 뱀을 잡아 먹지 선악과를 따먹었겠느냐?\"고 했다.
교회 집사 한 사람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험한 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집사는 \"하나님, 이 다리를 제발 무사히 건너가게 해주시면 이번 주일에 1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고 기도했다. 무사히 다리를 거의 다 건너게 되자 집사가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아무래도 100만원은 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절반으로 해 주시든지 아니면 그냥 눈 감아 주시면 어떻겠는지요?\" 마침 그때 다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깜짝 놀란 집사는 다리 난간을 붙잡고 진땀을 흘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고 하나님, 제가 농담으로 해본 말인데 뭘 그리 노하십니까?\"
한 비행기가 공중에서 고장이나 추락하게 됐다. 기장은 방송으로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 엔진 두 개 중에서 하나에 불이 붙었습니다. 게다가 연기 때문에 조종실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비행기의 승객들은 갑자기 흥분해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때 승객 중에 한 사람이 \"여러분, 저는 목사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제 말을 들으세요. 하나님께 고개 숙여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승객의 대부분은 고개를 숙였는데 모자를 쓴 한 남자만 그냥 서 있었다. 목사가 \"당신은 왜 그냥 서 있느냐?\"고 하자 그는 \"저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자 목사가 \"교회도 한번 안 가봤소? 교회에서 본 대로 하라\"고 했다. 목사가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모자를 벗어들고 통로로 나오더니 헌금을 걷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기독교인 헌금 유머였다.
많이 심는 자와 적게 심는 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며,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심고 거두는 법칙\'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특수철리(特殊哲理)요, 만고불역(萬古不易)의 우주자연법칙이다. 그래서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 7-8) 말씀함으로 씨 뿌림 없이 수확을 기다리는 공짜심리의 어리석음을 책망했고 적게 심고 많은 것을 기다리며 나쁜 씨를 심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인간의 헛된 망상과 어리석음도 책망했다. 씨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공짜심리 때문에 사기꾼들이 생기고 아무 노력 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허황된 자들이 생긴다. 일은 적게 하고 수입은 많이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각종 비리와 착취가 있고 뇌물이 판을 치며 철 밥통 싸움이 만연한 것이다.
바울은 본문(6절)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소종적소수(小種的所收) 다종적다수(多種的多收) 법칙을 선포했다. 그렇다.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이 많이 거둔다. 막상막하의 대등한 실력을 가진 사람 중에서 다섯 시간 노력한 사람과 30시간 노력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인데 하물며 노련한 고단자의 100시간 노력과 미숙한 초년병의 10시간 노력의 차이는 얼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더 많이 심는 자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시고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은 수고의 대가를 주시고 더 많이 무릎 꿇는 자에게 더 많은 지혜와 더 강한 영적권세를 주신다. 영육으로 많이 심어 많이 거두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1. 헌금과 연보의 성경적 의미
우리는 주일마다 성경이 명령한 십일조와 헌물(Tithes and Offerings)을 드린다. 십일조 외에 주일헌금, 감사, 선교헌금, 구제헌금, 건축헌금, 일천번제 예물, 첫 예물, 작정헌금, 절기헌금 등의 모든 헌물을 헌금(獻金)과 연보(捐補)라고 하는데 우리처럼 주일에만 헌금을 드리는 교회가 있고 예배 때마다 연보를 드리는 교회도 있으며 매일 새벽예배에 예물을 드리는 교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가 연보나 헌금종류가 기본적으로 열 가지에서 15가지 정도이지만 헌금종류가 20가지, 30 종류나 되는 교회도 있는데 이것은 교회사정과 목사의 목회방침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연보는 무엇인가? 일곱 가지 의미를 알아보자
①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창 4: 3-5상)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悅納)하셨으나
The Lord had respect(accept) unto Abel and to his offering.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아벨과 그의 제물(His Offering)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치 않으셨다\"는 말씀에서 제물, Offering, 민하란 \"선물\"(膳物, Present, Gift)이란 뜻이고 열납하셨다, Respect, 솨아는 \"주목(注目)하다\", \"존경하다\"란 뜻으로 \'제물을 열납했다\'는 말씀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물이므로 기쁘게 받으셨다\"는 뜻이며 \'열납치 않으셨다\'는 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쳐다보지도 않으셨듯이 오늘도 성도들이 드리는 예물과 헌금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당신의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다. 같은 가격의 선물이라도 주는 사람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예쁘게 포장해서 감사함으로 전하는 선물과 아무렇게 성의 없이 전하는 선물은 품격이 다르다. 주일마다 드리는 당신의 헌금과 연보들이 하나님께 최상의 선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선물이 되기를 축원한다.
② 하나님의 식물(레 22: 25, 민 28: 2)
\"너희는 외방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식물(The bread of your God)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레 22: 25)
\"나의 예물, 나의 식물(食物)되는 화제,
(My bread for My sacrifice; My food for My sacrifice)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제가 6-700번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수많은 강사대접을 받은 중에 부산 순복음교회 집회 때, 해운대 갈비 집에서 왕갈비 34대와 국수 다섯 그릇을 먹어치운 기억(식사 후 집주인이 \'갈비 집 28년 동안에 최고 기록을 세운 분\'이라 인사를 했다)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30여년이 지난 이야기고 그 후에도 부산 집회를 여러 번 갔었지만 그때 강사 대접한 집사님에게서 접대비 많이 썼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못 들었다. 다른 교회 성도인데도 친구 목사를 통해 \'김 목사님 언제 또 모실 수 있느냐\' 물어본다는 말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여러 해 전에 40-50분 거리에서 피자 가게를 하던 교인이 있었다. 2주에 한번 심방을 갈 때마다 피자를 대접 받고 축복기도를 해주었는데 후에 \'목사님이 너무 공짜만 좋아한다. 집사는 힘들게 일하는데 대접을 하더라도 피자를 먹지 말든지 최소한 반값은 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간접적으로 듣고 피자가게 심방을 중단하고 집으로만 심방을 갔던 기억이 있다.
43년 목회하면서 살다보니 이렇게 통 크게 음식 대접하고도 기뻐하는 성도도 많이 만났었고 피자 한판, 생선 튀김과 햄버거 몇 개, 갈비탕 한 그릇 사주고 두고두고 생색내며 구시렁거리는 속 좁은 사람도 만났었다. 그래서 이제 눈치 10단이 된 김 목사는 교인이 싫고 미워서가 아니라 나의 상황판단으로 교인이 죄 짖지 않게 하려고 밥 한두 끼 대접하고 두고두고 가십 만드는 사람하고는 밥 먹을 기회를 피하고 있다.
헌금과 연보는 음식으로 하나님을 대접하는 하나님의 식물, The Bread of God, The Food of God이다. 귀한 손님일수록 예의를 잘 갖춰 음식 대접을 잘하듯 주일마다 당신이 드리는 예물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최상의 식물이 되며 음식을 접대한 후에도 끝까지 품위를 지키는 인격자처럼 헌금 드리고도 신앙 잘 지키는 축복의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③ 감사의 표시(대하 29: 31, 시 50: 14, 23, 56:12, 107: 22, 116:17, 렘 17:26, 33:11, 겔 45: 15, 눅 17: 16)
그렇다. 헌금은 무엇보다도 감사의 표시이고 받은 은혜를 고마워하는 사례의 표시다. 정치가와 사업가의 뇌물성 사과 박스는 사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며 조잡한 사람을 만들지만 진솔하게 받은 사랑을 고마워하는 감사에는 언제나 기쁨이 있다. 우리가 주일날마다 드리는 헌금들이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며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 14-15)는 말씀대로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환난 날에 건짐을 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축복들이 넘치기를 축원한다.
④ 천국 구좌 적금(마 6: 19-34)
며칠 전에 아들과 며느리가 아들 돌잔치 축의금으로 교육저축을 위해 아이, 하높이 은행구좌를 열었다고 한다.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아들 위해 저축하는 지혜가 귀하게 생각돼 늙은 우리 부부도 손자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보려고 한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늘나라 은행구좌가 개설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금이 천국구좌에 빠짐없이 적금된다. 그래서 세상에도 은행에 적금을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이 있듯이 천국에도 보물창고에 많이 저축된 부자가 있고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재산으로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다가 하늘나라에 아무 것도 적금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부자에게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고(눅 12: 20-21)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영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 돈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한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의 헌금은 하늘나라와 이 땅에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후 9: 6)고 했다. 우리의 헌금들이 하늘나라에 모두 적금되고 이 땅에 축복을 씨앗을 파종하는 축복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⑤ 은혜의 증거(고후 8: 1, 6)
바울은 당시 마케도니아에 있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들(행 17: 10-15)이 구제헌금을 모아 큰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을 \'그들의 은혜\'라고 했다. 그렇다. 헌금은 은혜(恩惠) 받은 성도들이 드릴 수 있는 것이기에 은혜이고 헌금이 은혜롭게 사용되기에 은혜이며 헌금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기에 은혜이다.
헌금은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는 것\'이니 은혜의 척도이다. 은혜 받지 못하면 아까워서 헌금을 드리지 못한다. 같은 출석교인 500명 교회라도 은혜 받지 못한 부자 교인 500명 교회와 은혜 충만한 500명 가난한 교인 교회 헌금이 다르다. 그래서 헌금은 은혜 받은 것의 물질적 증거이며 은혜의 척도이다. 그래서 은혜 받은 성도들이 아낌없이 집을 바치고 은행융자로 건축헌금을 바치며 심지어는 자기 몸의 지체를 팔아서라도 헌금을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은혜로 많은 헌금을 드려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⑥ 하나님을 위한 봉사(고후 9: 12)
바울은 구제연보를 봉사의 직무라고 했다. 봉사(Service), 레이투르기아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인 섬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뜻인데 성도들의 구제헌금, 구제연보 행위를 \'봉사\'라고 한 것은 구제(救濟)가 단순히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의 의미를 넘어서 예전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드렸던 구제헌금은 가난한 자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뿐 아니라 그 도움을 받는 성도들이 거룩한 도전을 받아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리게 했다. 오늘도 성도들의 감사헌금, 구제헌금 그리고 십일조 헌금은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가난한 성도, 어려움에서 고통을 겪는 성도들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그 헌금 소식을 듣는 성도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며 도움을 받는 성도들은 자극을 받아 하나님께 헌금을 더 드릴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성도의 헌금은 거룩한 봉사의 직무이다.
⑦ 헌금은 연보(捐補)다(고후 8: 2, 9: 8)
연보(捐補)의 사전적 의미는 \"교회 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을 내는 일\"이란 뜻이지만 바울은 두 가지 의미로 연보를 기록했다.
❶ 소박한 마음,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에서의 연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 2)
당시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식민지였기에 금광이나 은광, 선박용 나무를 베는 권리 등의 수입원들을 모두 로마인들에게 빼앗기는 구조적인 가난을 겪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농업, 광업, 목재 산업이 번성했었기 때문에 \'극한 가난\'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교회가 극한 가난을 겪은 것은 기독교를 적대하는 유대인 난동꾼들의 모함과 공격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는 박해의 결과로 극한 가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주기도문 교회 성도들이 어려움 중에서 풍성한 헌금을 주일마다 드리고 있듯(내 개인적인 고백입니다만 성도들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내 기도를 짧게 하거나 적당히 하고 교회를 떠날 수가 없는데 이것이 성도들의 축복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된다) 마케도니아 교회 성도들은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는 것이다.(고후 8:2) 여기서 바울은 연보를 하플로테토스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소박\", \"단순\", \"순수함\"이란 뜻이다.
그렇다. 헌금의 기본적인 태도는 \'순수한 마음\',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에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복잡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 예수님을 향한 소박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릴 것이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상황이 남을 돕는 구제나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는데 인색함의 동기가 되어선 안 된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과부\'(눅 21: 1-4)처럼 핍박과 박해로 극한 가난에서도 자기들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 구제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의 연보, 소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헌금을 드림으로 주님께 인정받고 축복받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❷ 미리 준비하는 연보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 하였나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 9: 5)
LA에 친구 목사가 자기 후배목사 교회 여선교회 헌신예배 때 경험한 이야기다. 설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자기가 모르는 여자 집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은 헌신예배 강사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아 헌금을 드렸는데 헌금사고가 생겼다. 자기는 20불을 헌금하려고 했는데 지갑에서 돈을 잘못 꺼내 100불짜리를 드렸으니 담임목사께 말씀해서 80불을 거슬러 받게 해 달라, 담임목사님은 \'목회 한지가 얼마 안 돼 잘 모르겠다며 강사님께 물어보라\'고 해서 전화했다는 것이다. 이 여집사 말고도 헌금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가 헌금시간에 다른 주머니의 돈을 잘 못 드리고 시험 드는 교인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헌금은 집에서 미리 기도하고 준비해서 드려야 한다.
아틀란타의 이호웅 장로부부는 매토요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린 후 주일헌금을 준비하는데 헌금을 먼저 얇은 미농지(美濃紙)에 싸고 다시 깨끗한 종이로 싼 다음 봉투에 넣어 식구들마다 연보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몇 년 전 부흥회 인도 차 그들을 방문했던 목사인 내가 은혜를 받았다. 그들은 주일헌금을 그렇게 몇 년 동안 준비했다고 간증하는데 그 결과, 참 연보로 많은 물질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본문은 바울이 제자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 그들이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면한 말씀인데 만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도착한 다음 서두르거나 마지못해 헌금을 하게 되면 마케도니아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권면하면서 그렇게 준비하는 연보라야 참 연보요 억지가 아니며 억지연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보가 아니라고 했다.
본문의 연보(捐補), 율로기안은 \"좋은 말\", \"찬양\", \"후한 선물\", \"축복\"이란 뜻이다. 축복으로서 참 연보는 의무에 의해서나, 체면 때문에, 그리고 자랑이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자신과 받으실 하나님께 축복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연보이다. 교회에 와서 헌금시간에 서둘러 헌금을 준비하지 말고 미리 집에서 기도로 준비하여 드리는 참 연보를 드려 큰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2. 많은 헌금과 적은 헌금
많은 교인들이 헌금의 질보다 양을 보고 \'어느 장로가 헌금을 많이 했다, 어느 집사도 연보를 많이 냈는데 나는 헌금을 적게 했다\'며 남을 판단해 칭찬하거나 자신의 헌금을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연보도 헌금의 양보다 질을 보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들이 종들에게 무거운 동전 자루를 들고 오게 해 헌금을 연보 궤에 넣을 때 동전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는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 거만스럽게 우쭐대는 것과 한 가난한 과부가 1/5 페니의 해당하는 동전 2 렙톤(The smallest copper coin, about one fifth of a coin: 한 렙톤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의 1/128에 해당하는 돈으로 당시 성전규정 상 한 렙톤은 헌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부는 자기 소유를 다 끌어 모아 두 렙톤을 드렸는데 그것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다)을 헌금 통에 넣으며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신 후,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This poor widow put in more than all of them) 부자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연보 궤에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 21: 1-4)고 칭찬하셨다.
부자들의 연보에 과부의 헌금은 비교가 안 될 조족지혈이었지만 과부가 바친 헌금의 질, 연보의 정성이 하나님께 많은 헌금연보로 인정받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헌금뿐 아니라 성도의 모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最善)이다. 우리의 연보와 헌신, 봉사충성이 최고보다 최선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예수님이 성도들의 헌금 정성을 보셨듯이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과 연보 중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연보, 하나님께서 많은 헌금으로 인정하실 헌금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말했다.
① 미리 준비(準備)하는 헌금과 연보(5절)
바울은 미리 준비하는 헌금과 연보만이 참 연보와 헌금이고 억지 헌금이 아니라고 했다.(고전 16: 1-2) 귀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미리 음식을 준비하듯 하나님께 음식을 접대하는 헌금도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미리 준비하는 연보와 헌금은 당신의 정성이 들어간 헌금이고 하나님께서 \'많은 연보\'로 인정하시는 축복의 헌금이다.
② 넘치게 드리는 헌금(6절, 잠 11: 24, 25, 19: 1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6절)
많은 추수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종에 인색하지 않다. 수확은 파종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상승주가 증권에 1,000불 투자한 사람과 10만 불을 투자한 사람의 수입이 같을 수 없고, 1/2 에이커 땅에 포도를 심은 사람과 200에이커 농장에 포도를 심은 사람의 포도수확이 같을 수 없다. 똑같이 미리 준비하는 연보, 정성을 다하는 헌금이라면 많이 드리는 연보, 많이 심는 헌금이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구제와 하나님을 접대하는 헌금과 연보를 많이 심어 많은 축복을 거두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③ 즐겨 내는 헌금과 연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7절)
God loves a cheerful giver.(기분 좋게 내는 자...)
헌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즐겨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연보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요구하는 담임목사나 선교사나 부흥강사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억지헌금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체면과 자기 위치 때문에 헌금을 하고, 자기 직분 때문에 연보를 한다. 이것은 진정한 연보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금이 아니다. 성경을 보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 25: 1-2)
From every man that gives it willingly with his heart,
you shall take My offering.
\'즐거운 마음으로\'(Willingly with his heart, 이드베누 리브: \"기꺼이, 즐거움으로, 자진해서, (이해력, 의지, 계획, 사랑, 기쁨, 두려움)의 전 인격으로\") 예물을 바치고 헌금과 연보를 드리라는 말씀이다.
1970년대 중반, 미국에 처음 와서 미국교회들을 순방할 때,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어느 교회에서는 헌금시간에 교인이 20불짜리를 내고 Usher(안내원, 헌금위원, 접수원)에게 \'5불만 헌금하는 것이니 15불 거슬러 달라\'며 거스름돈을 받는 것을 보았다.
또 어느 교회에서는 헌금시간에 일곱 번이나 헌금을 거두는데 그날의 헌금목표를 작정한 목사는 헌금위원이 수금(收金)할 때마다 회계집사를 통해 헌금총액을 확인하고 목표달성을 위해 두 번, 세 번...그래서 일곱 번까지 수금해서 그날 목표헌금을 채웠다. 그래서 그 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올 때, 아예 헌금을 여러 주머니에 분산시켜 숨겨뒀다가 자기 앞에 헌금체가 올 때마다 각각 다른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물찾기 헌금\'을 한다.
또 어느 교회는 헌금시간에 목사가 \"오늘 이 자리에 10,000불 헌금할 성도 5명, 1,000불 15명, 500불 20명, 100불 30명\"이라 선포하고 일일이 그 액수를 헌금할 교인을 지정해 주는 교회, \"오늘 5천불을 헌금하는 교인은 어떤 병이 나을 것\"이라 선포하는 목사 등 헌금강요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었다.(김 목사는 성령을 통한 예언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하는 지정헌금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나는 생소한 미국의 헌금문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 한국에도 그런 부흥사들이 등장하므로 이젠 교인들에게 상식화됐다.
집을 팔아 드리든, 사업체를 팔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서 봉헌하든, 힘들게 일해 번 돈을 바치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며 여행 한 번 못가고 모아둔 돈을 바치든 헌금과 연보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많이 드리고 많이 심는 연보요 수확을 많이 거둘 수 있는 헌금이다. 당신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연보가 많은 헌금으로 인정받아 많은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한다.
3. 바꿀 수 없는 헌금(獻金)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말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7: 28-29)
교인 중에는 의외로 헌금 때문에 불행한 사고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종종 있다. 남편 모르게 거액의 헌금을 바쳤다가 나중에 남편이 알게 돼 문제가 된 교인, 동업자 모르게 헌금을 드렸다가 알게 돼 문제가 되는 일, 사업자금이나 입학금 병원비를 헌금으로 드리고 어려움을 당하는 교인 등 교회 안에 헌금사고가 많이 있다.
많은 목사들이 교인의 사정을 알아보고 바쳤던 헌금을 하나님께 드린 헌물로 축복한 후 도의적으로 헌금을 되 돌려주므로 헌금사고를 막기도 하지만 어떤 목회자는 하나님께 바친 헌물은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사소한 헌금사고가 대형사고가 되는 일도 있는데 성경대로 엄밀하게 가르친다면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아주 바친 물건: 헤렘: \"저주를 받은 것\", \"없애기 위해 바쳐진 것\"이란 뜻)은 돌려줄 수 없는 성물\'이다. 그래서 연보나 헌금은 아주 바치기 전에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고후 9: 7), 바치기 싫은 것을 아까워하면서 억지로 하거나 대의명분이나 외부압력에 의해 하지 말고 신중히 깊이 생각해서 감사함으로 바치라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속하려면 그것에 오 분의 일(20%)을 더하라\"(If a man wishes to redeem part of his tithe, he shall add to it one-fifth of it; 레 27:31)고 했다.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레 27: 32-33)
축사(畜舍)에서 소나 양, 염소가 문밖으로 나갈 때, 열 번째 짐승은 십일조로서 하나님의 소유인데 만일 그것을 다른 짐승과 바꾸려면 20%(두 마리)을 더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금주에 바칠 십일조를 바치지 못했으면 다음 주 십일조에 합쳐서 바치라는 말씀이고 만일 십일조를 잊고 안 했다면 2할의 이자를 붙여서 드리라는 말씀이니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십일조와 헌물인 연보헌금은 내 맘대로 잊어먹거나 고의적으로 빼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고 그 옆에는 우거진 야자수와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오두막에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물을 길어주고 쉬어가게 했다. 할머니가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물을 줄 때마다 나그네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동전을 주고 갔다. 처음에 할머니는 사막으로 찾아오는 나그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물을 대접하고 야자수 그늘에서 쉬어 가게 하는 것 또한 할머니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동전이 한푼 두푼 늘어나자 할머니의 마음은 인정을 베푸는 것보다 동전 모으는 것이 차차 더 즐거워졌다.
이제 할머니는 으레 것 나그네들에게 물을 주고 동전을 받았다. 이렇게 동전이 점점 늘어나자 할머니에게 걱정이 생기고 말았다. 갑자기 오아시스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이 할머니는 밤낮으로 오아시스를 지키게 됐지만 누군가가 몰래 물을 퍼 간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할머니는 야자수 잎사귀마다 물방울이 흠뻑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야자수가 밤마다 몰래 오아시스 물을 퍼 목욕을 한다고 생각해 도끼로 그 야자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 그러자 사막의 메마른 바람과 내리쬐는 햇볕에 샘물이 곧 말라버렸다. 결국 나그네들은 더 이상 물 없는 오아시스를 찾아오지 않았고 할머니는 뜨거운 햇볕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고 말았다.
할머니의 어리석은 욕심이 자기를 죽였듯이 인간의 조그만 욕심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린다. 살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돈과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것인데도 인간의 작은 욕심,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는 욕심은 우리를 망하게 한다.
고린도 교인들의 너그럽고 후한 구제연보와 헌금은 자신들에게 \'의\'가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겐 큰 유익이 됐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됐고(고후 9: 11-15) 많은 성도들에게 사모함을 받게 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십일조와 헌물을 풍성하게 바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중단되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