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목요일(2월3일)은 우리 민족의 대대로 내려오는 설날입니다. 아마도 이번 설날에도 수백만의 발걸음들이 고향을 찾아 내려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대부분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설날에 고향을 떠나서 멀리 떨어져 있던 자녀들이 부모님과 친지들을 찾아뵙고 평소에 다하지 못한 효를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추석은 효와 믿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성경은 육신의 어버이께 효성을 다하는 것이 축복의 근거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3, 출 20:12 ) 육신의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는 자녀는 결코 하늘의 아버지를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살아계신 어버이뿐이 아니라 죽은 조상들까지도 효를 행하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한 제사에 지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버이에 대한 효를 가르치고 강조하면서도 돌아가신 조상을 예배하거나 경배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엄격히 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신자들마저도 전통적인 제사의식 문제에 부딪혀서 갈등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설날을 양정의 성도들이 주님안에 보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설날 가족 예배를 드릴 때 주의점 ◆
① 음식 준비 / 음식은 조상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제사상으로 차리면 안됩니다. 그러나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감사예배후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② 영정과 촛불 / 고인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은 좋으나 향이나 촛불을 켜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닙니다.
③ 절하는 문제 / 고인의 사진이나 영정 또는 음식물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금한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죄가 되므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 계실 때 최선을 다해서 해야하고 살아계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죄가 되지 않습니다.
④ 불신 가정에서의 문제 / 가족 전체가 불신 가정으로 제사를 드려야하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절하는 대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이 때 분명하게 신앙상의 이유로 절은 할 수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다고 가족 앞에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⑤ 산소에 성묘갔을 때 /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다든지 묘지에 술을 붓는 행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기도하고 묘에 묻힌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묘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불신 가정일 경우에는 다른 가족이 절할 때에 함께 서서 기도하고 가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⑥ 기타 / 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들처럼 육신은 한줌의 흙이 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깨달아야 하며, 조상들이 볼 때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해야 하고, 형제 자매들 간에 더없는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결심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조상들이 남겨 놓고 가신 훌륭한 뜻을 받들어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설날가정감사예배자료 (2011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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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을
주안에서 가족과 함께.....
손자가 예수믿는 것을 반대하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손자가 계속해서 열심으로 예수 믿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 손자의 목에 칼을 대고 말하였다.
“너 이래도 계속 예수 믿을 거냐?” 그랬더니 손자가 하는 말이 “저는 할아버지가 죽인다해도 예수님을 버릴수는 없어요”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손자의 뺨을 때리면서 “이 고얀 녀석아 네가 그렇게 생명까지 바칠 예수라면 왜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느냐?“ 라고 호통을 쳤다.
그후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붙잡고 교회에 출석하였다.
얼마 든지 예수 믿을 사람인데 내가 먼저 “저 사람은 전도해도 예수 안 믿을 거야” 라는 식으로 단언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설날을 가족 전도의 기회로 .....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새생명축복교회
담임목사 임 평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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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설날 감사 예배 순서 |
◆ 시작하는말
오늘은 우리 민족이 조상 대대로 지켜온 설날입니다. 지난 한해도 우리 나라와 가족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다같이 묵상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 묵상기도 / 가족들은 묵상으로 기도하고 사회자가 낭독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찬 송 : 301
◆ 성시교독 : 1번(시편1장) <다같이 사회자와 교독한다>
사회자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회 중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사회자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회 중 /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사회자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회 중 /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사회자 /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회 중 /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사회자 /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다같이 /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 신앙고백 : 사도 신경을 외우므로
◆ 대표기도 : 가족중에서
◆ 성경봉독 : 누가복음 16:19-26
◆ 말씀제목 : 플러스 인생을 위하여....
◆ 설 교 : 인도자가 설교문을 참고로 하여 간단히 한다.
◆ 기 도 : 설교자.
◆ 가훈설명
연장자 또는 가족중에 제일 어른이 가문의 전통이나 조상들의 훌륭한 일들과 가훈등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교훈 한다.
◆ 찬 송 : 390
◆ 폐 회 : 주님이 가르친 기도를 다함께 드리고 마친다.
◆ 다과와식사 / 또는 가족 기념사진 촬영
추모예배에 참석한 가족들과 음식을 나누며 자유스럽게 대화하고 가족들이 기념으로 사진을 촬영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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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우리를 거느리시면 즐겁고 평안합니다. 주야에 자고 깨는 것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괴로움 만나고 때로는 기쁜 일을 만나도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거느려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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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인생을 위하여.... |
수학공식에서 괄호 안의 숫자는 아무리 많아도 괄호 앞에 어떤 기호가 붙어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괄호 안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괄호 앞에 붙어있는 것이 마이너스이면 그 전체가 마이너스가 되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기 인생 길을 가면서 아무리 몸부림 쳐도 하나님께서 내가 쳐놓은 인생의 괄호 앞에 마이너스 표시하나 딱 붙여놓으면 그 인생 전체가 마이너스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인생의 모든 것에 마이너스가 붙어 있어도 하나님이 내 인생의 괄호 즉 테두리 앞에 플러스를 붙여 놓으면 모든 것이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플러스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사는 부자가 바로 마이너스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에서는 호와 호식하며 부자로 살았지만 죽어서는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 유황 불 속에 떨어져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부귀영화가 물거품이 됐고 세상에서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비록 거지였지만 그는 플러스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마이너스 인생처럼 보잘것없고 비참해 보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플러스 인생이였습니다. 그는 죽어서 낙원에 들어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플러스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①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구원받고 천국 가는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행4:12절에 보면 예수 이름외에는 인간 구원을 위해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공도, 선행도, 물질도 권세도 명예도 예수 안믿으면 아무 의미없습니다. 우리 육신 죽을 때 그것들도 다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것도 헛되지 않고 상과 복을 받습니다. 부자는 믿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죽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한 것을 보아 그가 생전에 주를 믿는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야합니다. 그래야 플러스 인생이 됩니다.
②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부자는 자기만 알았습니다. 진수성찬 가득해도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사고 방식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집 대문간에 배고파 쓰러져 쓰레기통을 뒤져 주린배를 채우고자하는 불쌍한 이웃이 있어도 그는 베풀줄 몰랐습니다. 오직 잔치를 베풀고 배부른 사람들끼리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배고픈 개들에게 인정을 베풀었습니다. 쓰레기 통에서 주운 음식을 누가 먹겠습니까? 그러나 배고픈 개들은 먹었기에 개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는 베풀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그의 인생 앞에 플러스 표를 주었습니다.
③ 자기 뜻대로 살면 안됩니다.
2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는 자기 좋을 대로 살았습니다. 제멋대로 산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돈이 없고 병들었으니까 사는 것이 고난이었겠지만 이 말에는 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딤후4:2절에서 디모데에게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한 고난을 말합니다.
내뜻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내 뜻 버리고 주님 뜻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의 길은 주님이 인정하시는 플러스 인생이 되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일로 인해 고난받고 손해보고 핍박을 받은 자들을 결코 모른척 하지 않으십니다. 최소한 100배를 갚아주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주신다고 막10:3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헛된 인생이 아니라 플러스 인생이 되려면 예수 잘믿어야 합니다. 베풀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금년에도 이말씀을 대로 살아서 백배의 복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