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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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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대 실업가 한 사람이 그의 생애의 황금 기간들을 거대한 방직회사를 이루는데 보냈다. 그러나 그는 치료불능의 병에 걸려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되었다. 제일 먼저 사업걱정이 컸다. 누가 이 거대한 사업을 맡아 경영해 주겠는가? 아들 셋 중 어느 녀석에게 이걸 물려 줄까? 세 아들을 불렀다. 세 아들 각자에게 10센트씩을 나누어 주면서 \"너희들은 시장에 나가 이 빈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을 사오너라. 내가 준 10센트 이상은 결코 써서는 안 된다.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너라.\" 고 했다. 석양이 임할 때쯤, 맏아들이 건초 한 짐을 끌고 왔다. 그 짐을 풀어보니 방의 두 벽을 채울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크게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았다. 둘째 아들은 솜 두 포대를 사왔다. 그걸 풀었을 때, 방의 세 벽을 채울 수 있었다. \"수고했구나.\" 아버지는 약간 칭찬해 주었다. 셋째 아들을 돌아보고 \"너는 무엇을 가지고 왔니?\" 하고 물었다. \"아버지.\" 매우 작은 소리였다. \"아버지께서 주신 10센트로 돈이 없어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빵을 사주고, 교회에 조금 헌금하고 나니 겨우 1센트가 남았습니다. 그 돈으로 이 양초를 샀습니다.\" 막내아들은 작은 촛불을 밝혔다. 빛이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주님의 생명된 복음의 빛으로 모자람이 없이 이 세상을 밝힐 수는 있지 않을까?
마 5:14 마 5:15 마 5:16
인디언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가 어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컴컴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해에게 흑암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해가 있는 곳에 어둠은 전혀 없습니다. 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해 자체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햇빛이 가려지는 곳에 어둠이 깃들일 뿐입니다. 해가 지면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오지만, 밤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곧 또다시 아침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고 환한 낮이 되는 것입니다. 겨울에는 낮보다 밤이 더 길지만 그렇다고 어둠이 본질적인 것이고 빛이 부차적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밤이 길어도 그것은 곧 낮에 의해서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깜깜한 밤에도 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는 반대편에서 계속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에 뜨는 달을 보면서 우리는 밤에도 해가 빛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원리는 곧바로 영적인 원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빛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요, 빛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은 곧 이해가 됩니다. 따라서 그가 계신 곳에는 언제나 빛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 분이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에 빛이 충만하여 있는 것입니다. 다만 잠시 그 빛을 가리는 것들이 있어서 거기에 어둠이 깃들이지만, 그 어둠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가리는 것들이 치워지는 순간 곧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둠이 빛보다 우세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빛은 언제나 빛나고 있는 것이며, 결코 어둠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빛은 영원하지만 어둠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의 역사는 영원하지만 그것을 가리는 악의 어둠의 훼방은 일시적이며, 결국은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우리의 세계관으로 삼을 때, 우리는 이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우리의 인생관으로 삼을 때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 역시 빛의 근원이 되신 분입니다. 빛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 되신 하나님이심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빛은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어둠도 이 빛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 1:5 그러므로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어두운 세상에 들어오시므로 세상의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 빛을 비추시므로 그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나라를 만드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가 오시지 않아도 이미 빛으로 창조된 세계인데, 어째서 다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악마가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어둠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세상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캄캄한 밤과 같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세상\'이란 단어가 78회 나오는데, 대체로 모두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며, 따라서 어둠으로 덮여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세상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그를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세상은 온갖 범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본래 빛으로 창조된 세상이기 때문에 빛을 받지 않으면 그 세상이 병들고 시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햇빛을 전혀 보지 못한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사람들도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겨울이 긴 캐나다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많이 걸리게 되는 것이 바로 해가 짧기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자주 햇볕에 벌거벗고 누워 햇볕을 쪼이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입니다. 특히 북유럽의 경우 흐린 날이 많고 해가 짧기 때문에 개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썬팅을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건강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하면 병들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래 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랑 대신 미움으로 살게 되며, 감사와 기쁨 대신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 차게 되며, 화해와 관용과 용서 대신에 분쟁과 갈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으며, 정의와 평화는 사라지고 불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치며, 불평등과 착취와 억압이 일상화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의 열매인 선(善)과 의(義)와 진실(眞實)은 없고 악과 불의와 거짓만이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감사함과 기쁨과 사랑 대신 짜증과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갈 때는 하나님의 빛이 필요한 때입니다. 서구 사람들이 윗통을 벗고 햇볕을 쪼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위선과 체면의 꺼풀들을 벗어 던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그의 빛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면서 우리 속에 자리 잡았던 모든 어둠의 요소들을 몰아내실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어둠과 대결하시어 그 어둠의 세력들을 꺾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안에 우리가 거하게 되면, 우리 속에서 모든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참 빛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그 죽음을 통해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셨으며, 부활을 통해 그의 승리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초가 자신을 태워 빛을 만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 빛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의 일들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사람은 어둠의 세력에 눌리지 않으며, 그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시편 27편 말씀에 보면 다음과 같은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구나.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원수들이 나를 친다 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시 27:1-3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지금 어떤 위협, 어떤 난관, 어떤 역경이 온다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어둠의 세력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다 물러간 것이요, 흡수된 것이기에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시련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 16:33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둠의 세력이 계속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을 만나고 시련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해가 있어도 밤이 오는 것과 같고, 혹은 해가 떠도 짙은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은 잠시이며, 그 환난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내하며 그 어둠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며, 환난을 믿음으로 뚫고 나가면, 거기에 새로운 길이 나타나며, 오히려 환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은 우리에게는 어둠의 위협이나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긍정적인 요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빛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밤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밤은 휴식의 시간이며, 재창조의 시간들이 되기에 밤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어둠과 밤은 빛과 분리되었었지만,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 안에 통합되어 부정적이고 악의 상징에서 긍정적이며 선한 것으로 그 이미지가 바뀐 것입니다.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을 믿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오히려 휴식의 때이며, 새로운 창조를 위한 준비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울수록 그 겨울이 지난 봄에는 더욱 화사하게 꽃이 피게 마련입니다.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그 어둠과 밤, 그 겨울은 생명을 시들게 만드는 무섭고 혹독한 시련이며 독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것을 지배하던 사탄이 물러감으로 이제는 더 이상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며, 겨울도 은총의 계절로 변화된 것입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사회가 경제 위기를 통하여 시련을 겪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볼 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사실만은 아닙니다. 우리를 각성시키는 겨울의 계절이며, 자신의 무성하였던 잎을 떨구고 조용히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위하여 준비하는 추운 겨울이라고 생각하면, 이 겨울은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한 것이며, 우리가 잘 참고 견디기만 한다면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 주시므로 만들어 내신 빛으로 어두웠던 세상을 이제 환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며, 혼돈은 더 이상 무질서가 아니며,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진 그 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과 혼돈과 죽음은 모두가 생명의 빛 속으로 흡수되어 그 속에 지녔던 독소들은 빠져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깃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안에 모십시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나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빛 가운데 거하면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인 선함과 정의와 진실함을 이룩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항상 빛 가운데 거하여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