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으로 사역하라

본 문 : 빌립보서 01:12-21
★제 목 : 열정적으로 사역하라.


히말라야 칸첸중가(8586m) 등정 의혹에 휩싸인 오은선(44)씨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오씨는 26일 대한산악연맹이 자신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힌데 대해
<그것은 그들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연맹은 이날 오후 엄홍길 대장 등 칸첸중가
등정을 공인받은 6명의 산악인을 소집해 회의를 가진 뒤 오씨의 사진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칸첸중가 정상에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오씨는 “등정 사진은 이미 스페인 잡지와 인터뷰할 때도 정상아래서 찍었다고
얘기를 해서 인정을 받았다”며 “내 정상사진이 의심스럽다는데,
나도 그분들의 정상사진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대한산악연맹이 얼마나 공신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국내에는 한국산악회도 있고 히말라얀 클럽도 있고 대학산악연맹도 있고.
이런 문제는 공동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씨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완등했다고 했으나,
10번째로 올랐다는 칸첸중가의 정상에 서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그의 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것입니다. (사진)
오은선 씨의 열정은 히말라야 8000급 이상 14봉 완등이 분명한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이며 그 일들을 통하여 기쁨과 축복을 얻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고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 어려움과 시험은 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환경과 사람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봉사하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갑자기 멈춥니다.
그래서 살펴보면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람들 때문입니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행동, 의견의 불일치, 감정의 대립, 생각의 차이, 일하는 방법들의
충돌로 인하여 환경과 사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성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고 하던 일을 멈추는 사람도 참 믿음이 없습니다.
즉 환경과 사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열정적 사역자가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빌립보 성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벽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일하다가 넘어지고 / 더 이상 다른 영적 세계를 맛보지 못하고 /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고,
또 그 생활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잠시 뜨거워졌다가 급히 식어지는 영적 습관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을 \'냄비신앙\'이라고 합니다. \'무쇠 솥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는 아직 사역의 열정, 사역의 열의, 사역의 열망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든 주의 사역자들은 제자이든, 사도이든, 목사이든, 교사이든, 집사이든, 권사이든
열정이 넘쳐야하는 것입니다.
불타는 열정이 없는 것은?
믿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해답이 주님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왜 세상에 왔으며 / 누가 보낸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열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체험 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분명이 알았습니다.
부름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어떤 열정을 소유한 사람입니까?

1. 복음전파로 타오르는 열정입니다. (12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표준새번역-<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 그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울은 주의 사역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주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교회를 세우는 것이나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씀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직분을 받았는데 그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의 특권도 있지만 / 고통의 십자가를 져야할 특권도 있습니다.
사역의 길이 쉽지 않은 길이지만 즐겁게 가는 것이 사역자의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상황이 최악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복음을 위하여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 아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어려운 상황이나 극도로 위험한 상태가 되면 사역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해버립니다.
문제가 없고 / 아프지 않고 / 시험이 없고 / 모든 것이 잘 풀리고 / 생각하는 길이 열리면
그 때 주의 뜻으로 알고 주의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데 / 그 문제가 급한 데 - 무슨 사역이냐는 것입니다.
아프고 시험도 많은데 - 지금 무슨 사역을 감당 하냐는 것입니다.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고 - 되는 일도 없는데 무슨 주의 일을 하냐고 반문합니다.

언제쯤 문제가 없을까요? 언제쯤 시험이 지나갈까요? 언제쯤 일이 잘 풀릴까요?
이것은 사도 바울과 정반대의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다(12절)고 고백합니다.
그는 잘못해서 로마감옥에 갇혀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죄를 저질러서 투옥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변명도 할 수 있고
자기 합리화를 시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당한 모든 일들을 복음전파의 진전(진행, 발전)으로 보았습니다.
감옥에 온 것도 복음 전파의 진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절대로 필요한 사역개념입니다. / <강조> 현대교회의 약점이 이것입니다.
편하고 행복하고 잘되어야 주의 길을 가고, 교회 일을 하겠다는 의식들이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횟수가 극도로 줄어들고, 봉사하는 영역이 축소되고,
힘들고 어려운 봉사는 피하려고 하는 것은 복음전파의 열정 있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제는 바꾸어야합니다.
여러분이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이 놀러오는 기분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찬양하는 것이 유행가 부르는 느낌이면 곤란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 남의 일처럼 생각되면 안 됩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라고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를 향한 환경이나 상황은 복음 전파의 진전을 위한 것임을 고백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때 지난 과거의 상황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8-10절입니다.
8절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

9 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그가 당한 환난은 힘으로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살 소망이 끊어지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과거에도 건지셨고 현재도 건지시고
앞으로도 건지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난이 왔으니 사역을 멈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열정입니다. - 고난을 이기는 것이 이런 열정입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변명하지 마세요. 절망스런 표정을 하지 마세요.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상황을 겪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이든 교회적이든 어려움이 오면
지금이 복음을 전파해야할 진전을 이룰 때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이제부터 나의 상황을 복음전파의 기회로 여기십시오.
나의 매임이 복음 전파의 진전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2.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대한 열정입니다. (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이 말은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왔고 장차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몸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는 재판 결과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 살게 되면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되면
주님계신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대와 소망의 열정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요즘 주의 재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재림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오전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주님께서 오실지 모른다.
내가 오후 예배를 드리고 기도회를 인도하는 중 예수님이 오실지 모른다. 
매일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기다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만듭니다.

사람은 미래지향적일 때 열정이 있습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절망적입니다.
기독교는 오늘의 종교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훈련시킨 것이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향하도록 하는 의식입니다. --- 그것이 ‘가나안 의식’입니다.
애굽에서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하게 훈련하셨습니다.
매일 앞으로 나가도록 언약궤를 앞세웠습니다. 언약궤는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도록 한 말씀의 역할보다 앞으로 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수3: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향을 아셨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본능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들을
미래를 향하여 가도록 방향지시형 좌표를 세우고 그것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다시 애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기대하고 그곳에 소망을 두고 가도록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단절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땅만 바라보고 살면 안 됩니다. 땅은 소망이 없습니다. 심판만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저 높은 곳은 우리가 갈 곳입니다.
오늘도 본문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방향과 / 앞으로 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주신 것은 미래를 향하도록 목적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이끄십니다.
성경에서 무서운 경고는 과거에 메여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앞을 보지 않았고, 위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라져버릴 것,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동경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소금기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기대와 소망이란 앞을 보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계시록에 등장하는 최후의 성도들에게 부탁하는 말씀의 공통점은
바로 기대와 소망입니다.
베드로후서 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사도 바울은 사는 것이나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없이
담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에 필요한 열정은 미래를 보는 기대와 소망입니다.
기대와 소망은 같은 의미입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역을 할 때 모두가 품어야할 마음은 서로가 미래에 이루질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것은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열정이 식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면 밝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교회는 기대감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부족함이나 나약함을 보는 마음을 고쳐야합니다.
예배에 기대를 갖고 / 교회에 기대를 갖고 / 사람에게 기대를 갖고
미래에 기대를 갖고 나아갑시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사람을 열정 있게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하든지 기대와 소망으로 하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주인공은 열정의 사람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일꾼은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전도의 열정, 기도의 열정, 예배의 열정, 헌신의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미래의 열정으로 사역할 때 뜨겁고 열기가 가득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열정! 그것은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캐릭터입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열정으로 일하십시오.
첫째, 모든 동기가 복음전파의 열정이 되게 하십시오.
둘째, 간절한 기대와 소망의 열정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직분과 일에 대해 마지막 이루어지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는 자랑스러운 일꾼들이 되어야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유는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된 일꾼으로 세워져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와 자신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