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하여
교회의 의미 에베소서 3:1-6
교회의 원초적 속성 사도행전 2:43-47
이상적인 교회 상 사도행전 2:37-47
살아 역사하는 교회 사도행전 11:19-26
계속되는 성령행전 사도행전 11:12-18
교회의 불을 붙여라 출애굽기 3:2, 신명기4:10
축제의 교회를 만드는 사람들 요한복음 2;1-11
교회의 모형 레위기 23:15-21 오순절 성령축제 1
교회의 기초 사도행전 1;1-11 오순절 성령축제 2
교회의 시작 사도행전 2:1-4 오순절 성령축제 3
교회의 열매 로마서 1:8-17 창립주년
교회의 의미 (에베소서 3:1-6)
영국 교회에서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교 의식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항목 가운데 한 질문이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조사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는 대답을 해서 아주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빨간 벽돌교회를 원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성경의 이해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교회, 건물은 필요하지만, 교회의 본질이 건물은 아니지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있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 편지를 옥중에서 쓰고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의 세상은, 한창 로마의 영광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편지에 로마의 영광이 아닌 교회의 영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로마의 지배와 압제를 받고 있었지만, 그러나 로마의 지배 아래
무릎 끓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기대 속에 이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교회란 무엇입니까?
1. 깨달음의 공동체
바울본문에서 두가지 중요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깨달았다"라는 단어입니다. (시 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3장 3절에 보시면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하신 것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4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깨달았다' 고 고백하는 이 비밀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교회입니다.
사실 에베소서의 대 주제는 교회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가리켜서 '깨달음의 공동체' 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와 "쌍둥이 서신"이라고 말하는 골로새서에서도 바울은 비밀 이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은 만세로부터 감취었던 비밀이 드디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골로새서 1장 27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성도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이 비밀의 영광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골로새서 서는 일차적으로 이 비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그러니까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첫 번째로 이 비밀의 의미를 강조할 때,
이 비밀은 여러분과 제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우리가 구세주와 주님으로
우리 안에 영접하여 우리 안에 지금 계신 그리스도, 바로 그리스도가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뜻의 히랍어 단어가 "무스테리온"입니다.
영어의 미스테리(mystery)가 바로 무스테리온에서부터 나왔어요.
이 무스테리온이라는 단어는 그냥 숨겨진 비밀, 계속 숨겨져야 비밀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비밀을 말합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가 내 구주가 되신 것, 내가 구원을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이것이 놀라운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골1:6절을 보시면 '이 복음이 너희에게 도달하매 너희가 이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고
자라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정말 들었다는 그 증거가 뭘까요?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러니까 복음을 들었다는 말은 그냥 설교 한번 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말 복음을 듣고 보니까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 같은 죄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내 인생을 변화 시켜 주셨구나! 하나님의 은혜는 참 놀랍구나!" 하고 고백할 수
있는 거예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 이것이 복음을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 바로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2. 함께 하는 공동체
교회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두 번째 등장하는 단어는 "함께 하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교회는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어떤 단어가 강조되고 있죠? "함께"입니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됩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깨달으면 함께 하나님의 상속한 바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후사가 됩니다.
또 함께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공동체의 지체가 됩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의 그 놀랍고 위대한 약속들에 대해서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사실 유태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이 함께 복음을 듣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거에요.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의 견고한 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한 교회 안에서
같은 지체가 되는 놀라운 사실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에요.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He is our peace)! 그 다음에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엡2:16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하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믿습니까?
여러분께 묻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식구된 것을 느끼세요? 가족 된 것을 느끼세요?
어떻게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정말 함께 하는 공동체, 어떻게 우리가 가족됨을 체험할 수가 있을까요?
예루살렘 교회가 적지 않은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정말 공동체의식,
가족의식을 갖고 정말 서로 사랑하면서 그 시대를 뒤집어엎을 수 있었던 그런
놀라운 생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요즘 세계 교회의 흐름 속에서 건강한 교회를 향한 의지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 소위 셀 교회(Cell Church)운동이에요.
가정교회 운동, 집에서 하는 교회입니다.
Cell Church 전략가들은 초대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가 그토록 정말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두 날개로 날고 있었던 교회다" 두 날개가 뭐냐하면,
한 날개는 성전에서 모이는 큰 모임의 축제(Celebration)예요.
또 하나의 날개는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소그룹을 통한 가정교회, 가정교회 운동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는 점차 Cell Church로 모든 교회 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소그룹에 안 들어가면 우리교회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정말 그런 일들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까?
제가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로 교회 등록을 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가족 의식을 가지려면 분명한 소속이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우리 교회의 작은 모임을 찾으셔야해요.
저희 교회에서는 구역모임을 예수마을 목장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지역중심으로 모입니다.
모든 성도가 이 목장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교회들마다 점차로 기관을 폐쇠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자기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소그룹을 여러분이 찾으셔야 됩니다.
우리도 앞으로는 예수마을 목장모임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수마을 목장교회라고
부르게 될 겁니다.
이 소그룹 안에서 진정한 나눔을 찾아야 됩니다.
여기서 슬픔도 기쁨도 나누고 성공도 실패도 나눕니다,
내 좌절도 고통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를 거기서 경험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깨달음의 공동체요,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원초적 속성(행 2:43-47)
미국에 갈보리처치라고 하는 교회에 와그너(E. Glan Wagner)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그 목사님이 아주 특별한 제목의 책을 쓰셨습니다.
“교회 주식회사로부터의 탈출”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여러분, '교회 주식회사' 어떻게 들려집니까?
이 교회의 속성과 모습이 변해가는 그런 답답함과 괴로움을 이렇게 호소하고
또 일깨워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아침에는 교회의 원초적인 속성이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마16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면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우리가 그 깊은 뜻을 잠시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예수님 자신이 세우시겠다는 것이요, 또 그가 지켜 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교회에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마18장 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 주의 이름을 불러 찬양을 하고 주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내가 .. 있으리라' 주님이 계실 때만 진정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9장 4절에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단순한 사건처럼 보이지마는 이 사건 속에는 엄청난 신학적 의미가 있을뿐더러
역사를 바꾸어 놓는 의식 전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고 또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다메섹 가까이 왔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딱 막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 한마디가 사울을 사도 바울로 만든 것입니다.
그야말로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바울이 핍박한 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였지 예수님을 상대로 핍박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핍박받는 교회를 자기자신과 동일시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교회를 환영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것이며,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 말씀에 깜짝 놀라고 생각을 확 바꿉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 주님을 위해서 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연장선에서 말해줍니다.
이제는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는데, 성령이 강림하셔서 역사하게 될 때 사도들을 통해서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권세가 있고 사도들이 환자에게 손을 얹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그 이적이 실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 이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가 누구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갈릴리어부에 지나지 않지만 저분은 그리스도가 선택한 분이요,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분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입에 함께 하고 있다'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런고로 베드로의 그 인간적인 존재 그가 누구며 그 과거가 어떠냐 묻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혹 교회에 나와서 교역자를 볼 때 교역자의 인물이 어떠냐 키가 어떠냐
학벌이 어떠냐…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그 순간 교회가 아닙니다 .
수원에 있는 어떤 교회인데 참 짓궂은 재정을 맞고 있는 중직자가 있었답니다. 목사님한테 도서비를 지출하고는 드리고 그 다음 날 목사님 서재에 들어와 책 사왔나? 안 사왔나? 확인을 하더랍니다.
그분이 물론 그 노회에서 치리를 받고 나타나지를 않습니다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출입하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서 말씀이 나타나고 성령이 나타납니다.
그리하게 될 때 교회가 교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성경에 보면 원초적인 교회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첫째, 경건 성입니다.
43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교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 경건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경건이 떠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란 말입니다.
요새 어떤 교회를 가보면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댄스홀인지 교회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경건해야됩니다. 신령한 두려움이 있어야합니다
여기는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의 말씀이 계신 곳. 주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내 기도가 응답되는 곳이요. 그런 고로 경건함, 신령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42절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배우는 곳이에요. 알고 보면 사도라는 사람들이 갈릴리 어부입니다.
그로부터 무얼 배운다는 얘기입니까?
학벌이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과거의 부슨 경험 있습니까?
다만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동사 동역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사도들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계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바로 섬김이 있고 예배가 있습니다.
현재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들은 섬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렇게 바꾸어졌습니다.
오직 사도들을 두려워했고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신령한 역사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을 향해서는 죽음도 핍박도 아무 것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초적인 속성입니다.
셋째, 나눔입니다.
45절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저들은 이제
이웃에 대한 필요를 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세상 복잡한 것 같아도 딱 정리해보면 두 가지 세상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빼앗는 세상, 또 하나는 주는 세상입니다.
공산주의는 빼앗는 사회입니다. 공산당이 뭐냐 그러면, 빼앗는 자들입니다.
빼앗기 위해 혁명을 일으킵니다. 못 빼앗기 때문에 죽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사회는 어떻게 다릅니까?
기독교사회라는 것은 베푸는 사회입니다.
사람도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소유 지향적인 사람, (그저 가지고 또 가지려다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가는 사람이에요. 또 언제나 얻는 것을 기뻐하고 소유를 기뻐하고 삽니다.)
또 하나는 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 ( 베푸는 것을 생각하며 베푸는 기쁨으로 삽니다.)
생명도 주고 물질도 주고 뭐든지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받는 것이 얼마고 주는 것은 얼마입니까?
여러분, 교회도 주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요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는 전 예산의 50%를 이상 밖으로 내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50%만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 베푸는 것입니다.
교회는 재고가 많으면 병이 들기 쉽습니다.
얼마나 주느냐, 얼마나 베푸느냐에 따라서 인간도 사회도 교회도 평가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요3:16)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섬겨야한다.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섬길 때 그에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창립30주년을 맞는 우리교회 이제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원초적 속성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경건한 예배의 회복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곳에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주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역사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이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더하사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며 주님이 세운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지키시며 주님이 부흥케 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점점 신령한 두려움을 잃어가고 말씀보다는 다른 것을 찾고
자체적으로 비대하여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다시 한번 불쌍히 여겨주셔서 신령한 두려움 경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 받으며 그리고 이제 주어진 은혜와 축복들을 나누고 베푸는 교회의 원초적인 특성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창립3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00교회가 더욱 성숙하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건강한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이번 주 토요일에는 수재민을 돕고 조선족을 돕기 위한 사랑의 바자회를 하고자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간섭하여주시고 이일을 통하여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는 이 교회를 통하여 더 많은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적인 교회 상 (행2:37-47).
우리가 쓰는 격언에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 좋은 격언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이런 시조가 오히려 좋다고 생각됩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사람은 누구나 이상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상을 품되 바르고 높은 이상을 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이상이 반드시 다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만 꿈만은 커야 합니다.
이상적인 교회 상, 어떤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 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적인 교회 상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오순절 성령강림에 근거하는 교회. 16-17절
노아방주도 교회요 이스라엘 광야성막도 교회요 솔로몬의 성전도 교회를 보여줍니다만 진정한 교회의 실체는 예수님이 세운 교회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이 오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사건이 그 뿌리입니다. 물론 오순절 사건으로 인하여 이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소경이 눈을 뜹니다.
많은 병든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이것은 신체에 나타난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기적은 내면적인 중생의 사건입니다.
속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적 중 가장 큰 이적은 중생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날에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천명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의 사건으로 인하여 삼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전파하여 중생하는
성령의 역사가 날마다 더하는 한양교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교회.43절
전에 두렵던 것이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이나 누구의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런
가운데 경건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하는 이곳에 임재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8:20)“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를 경건이라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러 올 때는 핸드폰도 끄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배드리는 자세가 경건치 못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무서워할 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 주님만을 두려워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참된 교인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이상적인 교회 상은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3.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의 성찬이 있는교회. 42절
성찬 없이는 진정한 교제가 없습니다.
세례와 성찬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교제는 우리의 삶을 더 풍성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음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만이 교제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 밖의 교제는 위험합니다. 해롭습니다.
성령과 말씀이 있고 교제는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맥 금맥으로 묶으면 반드시 자타가 피해를 보고 교회공동체까지 위협적입니다.
칼빈은 말합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고 성도들이 교제하며 말씀으로 훈련받는 곳이다.’ 흔히 교회는 ‘케루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아가페’
즉 선포. 교제. 봉사. 사랑 이 네 가지로 말합니다.
4.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의 교제가 있는교회. 44-45절
성령이 임할 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마음이 열리고 이기심이 사라지고 벽이 무너집니다.
저와 여러분 모주에게 성령으로 부음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웃을 돕는 길 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게 되고
필요를 따라 나눠준다는 것입니다. 나의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분배방식은 능력에 따라 나눠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능력을 따라 나눠주는 것은 투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내일 00공동체와 함께 800여명의 노인들에게 중식을 나눕니다.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모아주신 구제헌금으로 지출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초대교회는 내 것을 갖다 쓰시오 라면 공산주의 당신 것을 내 놓으시오입니다.
일종의 빼앗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없는 자들에게 사랑으로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헌금 내놓으라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나눠주기 위하여 스스로 내놓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빼앗기 위하여 투쟁혁명을 합니다만 교회는 나누기위한 사랑의 혁명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 상은 성령 강림한 오순절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교회가 이러한 아름다운 이상적인 교회가 되기를 성령강림절 아침에 기대해 봅니다.
살아 역사하는 교회 ( 행11:19-26)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두 모델을 소개한다면 그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요,
또 하나는 안디옥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일 아침에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교회 상을 상고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기에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델입니다.
오늘은 본문에 소개된 안디옥 교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지역에 있는 교회라면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이방 땅에 세워진 교회라는데 그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도중심의 교회이지만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중심의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살아 역사하는 교회였나를 잘 보여줍니다.
1. 핍박 가운데 평신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 입니다.(19절 상)
그들은 사도가 아니라도 평신도들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가 이미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이 같이 무서운 박해를 인하여 겁을 먹고 피난 나온 소위 종교적 난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흩어진 평신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들은 고향을 잃었습니다.
집과 일터를 잃었고, 어떤 이는 가족을 잃고 정처 없이 다녀야 합니다.
저들에게는 집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정말 살아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이렇듯 살아 역사하는 교회는 평신도들이 움직여서 세워나가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교회 내부의 문제로 분열하여 교회가 태어납니다.
그것도 비본질적인 것의 차이점으로 갈등을 겪다가 갈라집니다.
안디옥 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유무상통이 이루어집니다. 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납니다. 방언이 있습니다.
의사가 소통이 됩니다. 그런데 무서운 박해가 일어납니다.
그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사마리아, 구브로, 안디옥 까지 내려와 거기서도 평신도들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행전 1: 8 절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00교회도 작지만 살아 역사하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워나가는 살아 역사하는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예수쟁이라는 별명을 들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핍박 가운데 순수한 원색적인 복음만을 전한 교회입니다.(19절-20절)
19절에 저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 만 전파하였습니다.
20절에 보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흩어진 저들이 전도할 때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그랬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겠습니까?
당신이나 잘 믿고 복 받게나! 아마 그럴 것 입니다.
헬라인들에게도 역시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이렇듯 안디옥 교회는 아주 순수한 복음, 순수한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진정 살아 역사하는 안디옥 교회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평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평안을 위하여 하나님을 도입하고 행복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서 라면 행복도 포기할 수 있고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교회가 살아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떻게 변질되었느냐 하면 우리의 행복이라면 누구라도 좋다.
전도지를 보면 기독교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 있습니까?
주님께 나오십시오. 사업에 실패하시고 배고프십니까?
주님께 나오십시오. 못 고칠 질병 속에서 신음하고 있나요?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혼자서 풀지 못할 고독 속에 있나요? 주님께 나오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이 말이 틀린 말입니까?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맞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 해답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습니까?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으십시오.’‘
사람들이 믿는 너를 핍박하여 가두고 죽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말고 담대 하라. 믿음을 끝까지 지키십시오.
주를 사랑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이 평안입니다.
주께 외면을 당하는 것 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쟁입니다. 이런 교회가 살아 역사하는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성령에 의하여 주도되는 교회입니다. (21절 24절 28절 13:2절)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주도하에 살아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21절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습니다.
28절에 아가보라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연보를 하였습니다.
13: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지명하여 최초의 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합니다.
성령이 주도할 때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줍니다.
① 성령주도적인 사람은 많은 사람을 주께로 나오게 됩니다.
② 성령주도적인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를 보게 합니다.
③ 성령주도적인 교회는 선교를 하도록 합니다.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되게 합니다.
4. 하나님의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22절,26절)
안디옥 교회는 평신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그랬더니 안디옥 교회는 더욱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나 일꾼도 필요하지만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사마리아에는 전도자 빌립집사가 전도하여 사마리아 복음화가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가서보고 위하여 성령받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하니 성령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행8:14-17)
안디옥에는 평신도들이 세웠지만 지도자가 필요하여 본부에서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더욱 부흥되는지요. 나중에 바울을 또 불러왔습니다.
이 두 지도자를 모시고 그들의 지도를 따릅니다.
결과적으로 안디옥 교회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전히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저들은 지역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11:26)
우리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그리워합니다.
그 비결은 교회로 교회되게 하면 된다고 깨닫습니다.
그 수가 적더라도 안디옥 교회처럼 .1) 어려운 가운데서도 평신도들이 전도하는
교회 2) 핍박가운데서도 순수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3)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
4)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잘 받고 따르는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계속되는 성령행전 (행 11:12-18)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싸운 대상은 둘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만 카토릭으로 부터 기독교를 개혁했다고 간단하게 생각하기 쉬습니다만 사실
그것만은 아닙니다.
루터가 싸운 종교개혁의 가장 큰 적수는 理性主義와 神秘主義라고 합니다.
理性主義라 함은 스콜라철학을 말합니다.
이것은 啓示와 理性을 混同하며 인간이 세운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의미합니다.
또 神秘主義라고 하는 것은 신비하고 또 다릅니다.
자기의 神秘體驗에 집착해서 主觀的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것도 하나의 人本主義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루터의 신앙은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理性中心으로 생각할 때에는 계시보다 이성을, 신앙보다 지식에 앞세우게 됩니다.
또 한편 神秘主義者들은 자기의 체험을 소중히 여겨 주관적 신앙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감정을 啓示化 하고 자기의 신비체험을 絶對化하는 또 하나의 人本主義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感情을 啓示化 하거나 꿈을 마치 성경처럼 絶對化 시키려하는 것 역시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10장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은 이미 아시는데로 고넬료라는 로마의 백부장이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오순절 성령강림과 다를 바 없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심 같이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처럼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繼續되는 聖靈 行傳의 신비하고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령행전의 특징을 발견합니다.
1. 성령의 행전은 개혁의 연속입니다.(2-3절)
행11장 1-3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할례자들) 베드로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고
“당신이 어찌하여 유대인으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음식을 먹었느냐 그럴 수가 있느냐.
유대인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 고 심각한 반발에 부딪칩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유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고넬료는 이방 사람일 뿐 아니라
게다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는 민족적인 원수인 로마인이요 그것도 일반인도
아닌 군인입니다.
이런 고넬료의 집에 유대인이 들어갔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행전은 이와 같이 외부적인 심각한 반발에 직면하지만 결국 성령의 역사는 기독교를 초월적인 개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율법과 민족과 국경과 전통을 초월합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해명을 하고 있지만 사실 해명이라기보다는 사도행전의 전체를
뜻하는 사도행전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령이 이와 같이 하셨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성령이 이같이 하셨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절대로 사도의 행전이 아니라 성령의 행전이라고 함이 맞다고 봅니다.
2. 성령의 행전은 사로잡힌 자를 통해 계속됩니다.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7절
나는 성령이 시켜서 나는 순종했을 따름입니다.
이 사건은 지금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전통을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지금 기독교로 바뀌고 기독교가 낡은 전통을 무너뜨리고 세계적인 종교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가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이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합리적이냐 불합리하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것이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해로우냐 , 이로우냐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셨다고 할 때는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습니다.
No comment, No Choice입니다.
성령이 하셨다하면 우리는 누구나 어떤 관습이나 규례나 협소한 민족주의도 초월하게 됩니다.
12절에 다시 봅시다.
“성령이 네게 명령하셨다. 나는 다만 순종했을 뿐이다.”의심 말고 가라는 데
어찌 안갈 수 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 그리스도인라면 주님과 한 몸을 이루신 자라면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인도 하시는 데로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롬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세상 적으로 가난해도 세상 적으로 사면초가로
포로가 되어도 그렇게 심령은 평안하고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기쁨과 희열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나를 부르시고 성령이 내게 말씀하시고 성령이 나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이 나로 기도하게 하시고 성령이 나로 찬송하게 하고 성령이 나로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죄와 교만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후회할 것입니다. 결국 절망과 허무에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3.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15절성령은 말씀과 언제나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은 성령이 타고 다니는 수례라.”고 루터는 증언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는데 성령이 고넬료에게 임하였습니다. (행 10:44-46)
이렇듯 성령은 말씀과 동시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요3:5, 벧전1:23)
사도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가 이방인 군인에게도 나타났습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며 기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들을 때 성령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4. 성령의 행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본문의 마지막 18절 말씀을 봅시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예루살렘교회는 베드로가 규례에 맞지 않는 일을 했다고 여론이 분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와 같이 행하셨기에 순종하였노라고 해명하였습니다. 결과는
“이 말을 듣고 잠잠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 하였습니다.
서로 인생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지만 이 말씀을 듣고서는 성령 안에서 마음을 열고 다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역사입니다.
말씀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행전은 계속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의 불을 붙여라!( Church On Fire!)(출3:2, 신4:10)
(출 3: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신 4:10)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불의 발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적인 불 즉 번개로 인한 불 혹은 화산폭발이나 충격이나 마찰을 인한 불이 있었으나 처음에 원시인들은 불을 보고 두려움을 가지고 피하여 도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점차 인간들은 그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발화기까지 만들어 불을 사용할줄 알았고 그 불을 저장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 불을 발견하므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난방으로 사용할줄 알면서부터 거주 이동이 가능하여졌습니다.
열대지역에 집단으로 살던 인류가 열대에서 온대로 한대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은 이렇게 인류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성경은 불을 심판과 진노의 불, 지옥의 유황불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범죄자에게 심판의 불이 임하였고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불은 응답의 불입니다.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이렇듯 똑같은 불이라도 어떤 경우에는 좋은 축복의 불이 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서운 형벌과 심판의 불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신비하고 놀라운 불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모세가 양을 치면서 처가살이 40년을 하여 그의 나이 80 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호렙 산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호렙산 체험은 나라와 민족 공동체와 가정과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1)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에게 엄청난 축복의 전환점을 이루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400년간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향한 행진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전 환점이 되었습니다.
2) 광야에서 양이나 치던 모세 개인에게도 매우 놀라운 사역에로의 소명과 비전의 불이 붙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모두 새로운 사역에로의 비전의 불이 붙여지기를 바랍니다.
3) 그들은 모여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웠습니다.
이번에 우리도 이 새벽에 나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 민족과 교회 가정마다 개인마다 하나님께 큰 복을 받기 바랍니다.
모세가 발견한 그 불은 어떤 불입니까?
1) 이 불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거룩한 임재의 불입니다.
이번 호렙산 축복 40일 특별새벽기도회는 모세의 심장으로 호렙산에 나아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놀라운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이 불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불입니다.
이 불은 가시떨기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불은 꺼지지를 않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입니다.
이번에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심령에 꺼지지 않는 호렙산의 거룩한 불이 타오르기 바랍니다.
3) 이 불은 한곳에 모인 공동체에 임하시는 성령의 불을 상징합니다.
우리교회 공동체에 거룩한 성령의 불이 붙여지기를 기도합시다.
4) 이 불은 가정에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는 말씀의 불입니다.
이 호렙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 하나님의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만일 이 민족과 가정 가운데 여호와의 거룩한 불이 붙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와 내 가슴에 하늘의 거룩한 불이 붙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러운 죄악과 탐욕의 불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진노와 심판의 불이 타오르게 되면 마지막 지옥의 유황불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호렙산 축복 40일 기도회에 나와 가시떨기 나무에 붙은
이 여호와의 불을 가슴에 붙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민족과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이불을 붙여 큰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새벽 참석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한번의 참석으로 세계선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쓸 수 있는
인물을 탄생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호렙 산 축복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의 생애와
운명을 바꾸는 집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이 제 다같이 일어나서 결단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렙산 축복 40일 특새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결단의 기도를 드립시다.
1) 주여, 내가 이번 호렙산 축복 특별새벽기도회에 40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겠습니다.
신속히 달려 나오게 하여 주소서.
2) 주여, 내가 이번 호렙산 축복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민족과 가정과 교회부흥을 위하여 나의 미래를 위하여 기도 하겠습니다.
3) 주여 우리 교회에 이 호렙산의 신비한 불을 붙여 주소서.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영원한 불을 붙여주소서.
우리교회 배가 부흥을 체험하게 하여 주소서.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 신령한 교회 탁월한 교회로 점프하게 하소서.
예배당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 충분한 땅을 주옵소서.
4) 나와서 기도하는 가정과 성도들마다 큰 복을 받게 하소서.
축제의 교회를 만드는 사람들(요2:1-11)
오늘 본문은 갈릴리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기적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 기쁨을 상실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희망 대신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천국은 슬픔도 절망도 불안도 없이 오직 기쁨으로 가득한 낙원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마땅히 기쁨의 잔치 집 같아야 할 교회마저 때로 초상집 같기만 합니다.
어떻게 교회와 가정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잔치 집 같은 축제의 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기뻐해야 할 잔치집이 기쁨을 상실한 김빠진 축제의 위기에서 오히려 더 큰 축제의 기쁨을 경험하는 기적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가정 축제의 교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1. 주님을 모신 사람들
잔치 집에 떡이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봉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잔치에 초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의 모친 마리아까지 초대한 것을 보면 매우 가까운 친척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초청한 것입니다.
미소 속에 천국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마음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가져가시고 기쁨과 평안으로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면 천국과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를 모시면 반드시 천국이 임합니다.
우리교회는 예수가 중심 되는 날에 기쁨이 가득한 천국의 축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나쁜 놈들이 있습니다.
그 나쁜 놈들을 拔本塞源하여 공개처형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놈은 첫째 환경일수가 있습니다. 일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 사람은 남자일 수 있고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기쁨을 빼앗는 자들은 사실 환경보다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파당과 분열, 여인들의 이글거리는 시기와 질투의 더러운 불꽃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서도 안타깝도록 한 것은 교회의 다투는 허영의 여인들 때문입니다.
주님역시 그의 제자들의 치졸한 서열 다툼의 틈에서 피곤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바울 사도는 기쁨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되든지 예수님만 잘되면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게 된다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자기입니다.
자기발견의 오판은 하나님의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에게 오는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제나 어디서든지 당신의 위기를 더 큰 기쁨으로 바꿔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룰 초청하는 일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오후 임직식을 가장 기쁨의 축제로 만들어 가시려면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예수를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모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주님께 사실을 알리는 사람들
어느 가정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문제는 다 있습니다.
어느 교회도 문제는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하셨습니까?
그 다음 그 문제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에게 말했습니까?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셨나요? 아니면 더 악순환으로 만들어 버렸나요?
마리아는 그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수군거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손님들에게 알려서 잔치 집을 망신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의 발견도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 사실을 예수님께 자세히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나 가정이나 문제를 빨리 파악하는 것도 그러나 그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를 가장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께만 말하십시오.”
이러한 사람들이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집에 포도집이 떨어 졌나요?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
주님께 말씀드리세요.
이번에 어떤 분은 기도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좋은 직장으로 새로 입사를 했습니다.
어떤 청년도 직장에 들어갔다고 메일이 왔습니다. 오직 기도만 하시기 바랍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고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하는 자에게 기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요 16: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5절“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미리아는 하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하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귀 뜸 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주님은 그 하인들에게 입을 열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2: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요 2: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포도주의 상징적인의미는 기쁨입니다. Without Wine, There is No JOY
이 기적의 포도주는 얼마나 더 맛있었을까요?
아무도 그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물 떠온 하인만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참 맛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만 알 것입니다.
주님은 그 잔치의 잃었던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 넘치는 축제의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오늘도 교회는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축제의 교회를 만들어갈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주님의 잔치 날입니다. 임직식이 잔치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임직하시는 분들은 축제의 교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의 잔치는 주님을 중심한 얼마나 멋진 축제입니까?
예수님을 초청한 점, 주님께 기도한 점, 주님의 말씀에 그 대로 순종한 점.
이는 기적의 열쇠입니다. 축제의 교회를 만드시는 주인공이고 싶습니까?
아니면 초상집을 만들어가는 트러불 메이커가 되고 싶습니까? 기도합시다.
교회의 모형 레위기 23:15-21
오순절성령축제
레위기 23장은 구약의 절기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레위기 23장은 절기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레23장의 절기는 사람이 만든 기념일이 아닙니다.
[레 23:1-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절기/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절기입니다.
구약의 절기는 처음부터 하나님이계획하시고 제정하시고 그것을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절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절기를 제정하시고 지키라고 명하셨을까요?
히브리서기자는 구약의 모든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하였습니다.(히10:1)
사도바울은 모든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라고 하였습니다.(골2:15-17)
그러므로 절기는 앞으로 올 좋은 일의 그림자로 보여주시고 우리를 교육하시기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오순절 성령축제 첫 주일 아침입니다.
오순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뜻대로 교회를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오순절의 사건은 성령께서 임하신 사건입니다.
누가는 역사적인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행 2:1-2](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사도행전을 통하여 보면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그로인해 드디어 주님이 디자인하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절기가 장래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했는데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절기는 바로 교회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의 모형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을 얻고자합니다.
초실절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이렇게 많은 이름을 가진 오순절의 특징을 가진
오순절을 함께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오순절은 교회시대의 모형입니다.
오순절은 맥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순절은 보리와 밀을 수학하는 계절에 있습니다.
이 바쁜 수확의 계절에 이러한 절기를 두신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합니다.
절기는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모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수확과 관련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농사 잘 지었으니 이때 절기를 세우면 많이 바치겠구나 라고 여러분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오순절하면 가장먼저 들판에 수확을 기다리는 곡식을 먼저 떠올립니다.
예수님은 잃은 영혼을 구원하려는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마 9:35-38](35)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추수는 영혼구원을 상징합니다.
[요 4:34-35](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오순절은 새로운 시대 즉 성령의 강림과 함께 교회시대가 열리며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질 교회시대 구원의 시대 복음의 시대 은혜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 나타내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120명의 성도들이 다락방에서 10일 동안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마침내 오순절 날이 이르매 불같은 성령 바람같은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저들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3천명이상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수확이었고 이것이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아직도 오순절 추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계속 확장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0:1-눅 10:2](1)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2)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영혼추수를 위하여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 영혼추수를 위해 누가 응답하시겠습니까?
2. 오순절은 성령사역의 모형입니다.
오순절 절기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첫 열매의 소제를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가운데 곡식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교절 다음날에 드리는 첫 열매요 또 하나는 오순절에 드리는 첫 열매입니다.
무교절 다음에 드리는 첫 열매와 오순절에 드리는 첫 열매는 그 상징적의미가
다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입니다. 유월절은 우리나라로 3-4월입니다.
유대인은 이때를 한해의 첫 달로 삼았습니다.(출12:2) 1월14일일 유월절입니다.
다음날부터 일주간을 무교절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무교절은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죽으신 주님이 무덤에 장사되셨음을 상징합니다. 무교절 다음 초실 절은 주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하였습니다.(고전15:20) 이 첫 열매는 보리입니다. 오
순절의 첫 열매는 밀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첫 열매로 구원받은 성도들로 세워지는 교회를 모형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사역의 모형입니다.
3. 오순절은 성도와 교회사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이 오순절에 특별히 소제를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오
순절에 소제는 특별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의 사역에 대한 모형입니다.
1) 소제는 곡식의 알갱이로 드렸습니다.
(레 23:16)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 소제의 기본재료는 곡식알갱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곡식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곡
식을 거두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지형적으로 기후적으로 그 땅에서 추수를 한다는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지 않으면 추수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래서 곡식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입니다.
보리와 밀은 그들의 주식입니다.
우로지택을 베푸셔서 곡식을 수확하게 하심은 생명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축복과 생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2) 첫 열매로 소제를 드렸습니다.
(민28:26)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소제를 드리려면 먼저 밀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레23:17)
고운가루를 만들려면 밀을 추수 후 바싹 말려야 합니다.
그리고 장대로 때리고 돌에다 메쳐야합니다.
그리고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해야합니다.
그리고 밀은 맷돌에 넣고 갈아야합니다. 그래서 껍질을 벗겨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고운가루가 나옵니다.
밀알이 소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말리고 때리고 키질하고 갈고 벗기고 터뜨리고
채로 거르고 수없이 반복되어야 고운가루가 나옵니다.
탈무드에는 고운가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11번을 채질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소제물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약의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하는지요.
3) 향기로운 예물은 단에 올리지 않습니다.
(레2:12)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구원받은 성도일지라도 향기로운 냄새는 없습니다.
오히려 누룩을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아직도 부패의 성향이 있음을 상징합니다.
무교절에는 누룩을 넣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떡에는 누룩을 오히려 넣습니다.
(레23:17)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부패의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룩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완전하지도 무결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23:20)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것이 신약시대의 교회와 신앙생활의 모형입니다.
4) 소제로 두 개의 떡을 드렸습니다.
오순절 소제로 두개의 떡을 드리도록 되었습니다.
(23:17)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이 두개의 떡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뜻합니다.
주님은 유대인만아 아니라 이방인을 위해서도 오신 것입니다.
사마리아지역의 수가성의 여인도 가나안여인도 로마의 백부장도 고넬료도 아시아와 유럽인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강림으로 실현되었습니다.(행1:8)
오순절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의 사역인 전도사명을 보여줍니다.
예비신자 초청축제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귀한 교회사역입니다.
4. 오순절은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형입니다.
오순절 절기는 사랑과 나눔의 뜻이 담긴 축제입니다.
오순절 축제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신16:1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오순절은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입니다.
모두 함께 떡을 나눠먹는 절기가 오순절입니다.
이번 맥추감사절에는 마당에다 안흥찜빵이나 술 빵을 쪄서 모든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먹게 하는 절기로 한번 지켜봤으면 좋겠습니다.
오순절 절기에 또 다른 명령이 있습니다.
23:22절에 보면 곡식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베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부와 고아 그리고 객을 위해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야합니다.
[행 2:42-행 2:46](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예루살렘교회가 보여준 레위기23장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오순절 절기를 통하여 을 통하여 보여준 우리교회의 모델입니다.
우리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오순절절기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은 오직 성령께 굴복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한 교회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축제의 교회를
세워 가는데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기초 행1:1-11 오순절성령축제Ⅱ
우리가 사는 현세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술혁명을 가져왔습니다.
꿈같이 여겼던 기술들이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수많은 정보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차안에서 집안에 온도를 조정하고 밥솥에 밥이 끓고 세탁기가 돌아가고 온도가
조정됩니다.
지능로봇이 나타나 인간을 대신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칩니다.
그러나 과학도 정치도 기술혁명도 교회의 진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마16:18)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교회는 고도로 발달된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순절축제 오늘 두 번째 주일 사도행전 1장을 통하여 교회가 결코 흔들릴 수
없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교회의 기초=예수님의 성육신 입니다. 1절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은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확장되었는가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2장에서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며 확장되어 가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1장에서 교회의 왕성한 역사이전에 예수님의 사역을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도래할 교회에 마지막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는 왜 사도행전 서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먼저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사건을 통한 교회의 시작이 예수님의 사역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러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2. 교회의 기초=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3절
누가는 3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증언합니다.
(행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바울사도는 증언합니다.
[고전 15:3-4](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왜 미리정하셨을까요?
1)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고전5: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2) 우리의 죄 값으로 당할 고난을 대신 담당하려고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3) 우리를 구속하려고 속전으로 죽으심
(딤전2:6)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4)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갈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3. 교회의 기초=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은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가장 중대한 사건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보고도 의심하였습니다.
(마28: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막16:14)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눅24:38)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님의 강림이 있은 후 의심하던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던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과 역사성을 강조하였다.
[고전 15:3-8](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40여 일 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믿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우리교회의 기초입니다.
4. 교회의 기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육신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교회의 기초가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다시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소망입니다.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때 주님의 교회는 들림을 받습니다.
천상교회가 이루어집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이 오시면 모두 무덤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교회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언제나 만날 때의 인사가 마라나타였다고 전해집니다.
“주께서 곧 임하시리라.”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소망대문에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세는 초대교회보다도 더 많은 위협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를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가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기반이요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헤드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시작 행 2:1-4 오순절 축제 Ⅲ
한손에 횃불을 치켜든 마지막 주자가 바람을 가르고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타디움으로 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와 열광적인 환호성을 지르고 마지막주자는 성화대를 향하여 계단을 오릅니다. 손을 치켜든 주자는 성화대에 불을 붙입니다.
이것은 올림픽개막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성경에서 접하게 됩니다.
구약에 수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영웅들이 믿음의 릴레이를 경주합니다.
그 마지막 주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복음의 성화는 그가 죽고 부활승천하신 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새로운
주자인 교회에 전달되어 온 세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교회의 탄생. 교회시대의 개막입니다.
1.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 1절
교회는 하나님의 디자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오순절 절기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교회의 기초는 예수그리스도이심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사역의 주체는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강림을 환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 굴복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야합니다.
주님은 저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습니다. 2장 1절을 읽어보십시오.
[행 2:1-2](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오순절 날이 이르며 120문도만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도 모였습니다.
이때 불같은 성령 바람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부어져 온 집에 가득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각기 난 곳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저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선포합니다.(22절)
예수님의 큰 기적과 이사를 통해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선포합니다. (23절)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구주이심을 선언합니다.(24절)
예수님의 승천 보좌에 앉으심을 선포합니다(23)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외쳤습니다.
이에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마음에 찌려 가슴을 치고 회개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들도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 수가 3천명이 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 성령으로 교회는 날마다 태어나야합니다.
2005년 한양교회가 지 교회를 탄생시키는 해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성령 충만한 교회가 낳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힘으로 능으로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2. 능력의 교회. 2절=건강한 교회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2절)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금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는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초대교회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1) 치유하는 능력입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성전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예수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초대교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행512-16)
그러나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날마다 헤아리기 어려운 큰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와서
세례를 받는 놀라운 교회의 성장이 중요한 것입니다.
2)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또 다른 교회의 능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고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동구라파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마지막 북한 공산주의만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무너질 것인데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의 복음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전파된다면 북한 공산당과 무너질 것입니다.
성령의 교회는 능력이 있습니다. 반드시 북한도 무너집니다.
그 땅에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예화) 루마니아 한 가정에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비밀경찰이 엄습하였습니다.
이때 민중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루마니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맙니다.
성령의 불이 바람같이 임한 후에 복음은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온 세상을 변화시켜나갔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변하지 않는다고요 먼저 당신이 변해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당신이 먼저변해야 합니다.
3. 순결한 교회. 3절=신령한 교회
성령으로 시작된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일 뿐 아니라 순결한 교회였습니다.
교회에 임하신 성령의 특징을 불같은 성령입니다.
불은 뜨겁게 하는 열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불이 없으면 제트기가 하늘을 치솟을 수 없습니다.
미사일 로켓트가 불의 힘으로 나갑니다. 불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은 깨끗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불은 소멸하는 불입니다. 초대교회는 깨끗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누룩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그 더러운 것은 정결케 하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거룩해야할 교회에 거짓과 속임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치리하셨습니다.
물론 교회는 죄인이 들어와서 구원받는 곳입니다.
그러나 죄가 정착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거룩함입니다.
교회가 거룩을 상실하면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잃어버린 보석은 거룩함입니다.
목소리나 외형적인 거룩함을 발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삶속에서 세상 속에서 교회는 거룩함을 지녀야합니다.
성령, 거룩한 영으로 시작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이웃의 필요는 나의 거룩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교회당은 작아도 우리 모두 거룩한 교회 즉 신령한 교회 건강한 교회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성령의 충만함으로만 가능할 가로 믿습니다.
4. 열정의 교회. 4절= 성정하는 교회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의 세 번째 나타난 싸인은 열정입니다.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저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곳 방언으로 발하기를 시작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각 방언으로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이들의 열정은 무슨 열정입니까?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열정입니다.
나는 지난 목요일 어느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오빠가 장로고 언니가 인천 모 교회에 전도 왕이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이 권사님도 둔촌 동 초대교회를 다녔는데 분당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 어떤 목사님이 오신후문제가 생겨 400명 모이던 교회가 30명 정도 밖에
안 남고 다 떠났습니다.
이 권사님이 다시 이교회를 분당에서 나옵니다.
지금은 200명 정도로 회복이 되었답니다.
자기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양 시흥에서 오는 분들도 나 둔촌동 초대교회를 나옵니다. 대단합니다. 열정이 대단합니다.
국민학교 밖에 못 나오신 분입니다. 남편도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며칠 전 중앙공원 옆 파크타운 아파트 50평짜리 28층을 9억을 주고 샀는데
요즘 하루에 일억씩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 권사님이 중국교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중국을 간다고 하니까 가시는 교회 전해달라고 금일봉을 그냥주시더군요.
이런 부자는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깨끗한 부자 거룩한 부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어떤 집사님도 요즘 장사도 잘 안될 터인데 태국 가서 산족들에게
필요한 옷을 보내주시고 제가 이번에 북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전해줄 옷을 많이 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전파의 열정이 있습니까?
(한양 대 병원 내과과장이신 최일영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소망교회 장로입니다. 얼마나 복음전파에 열정이 있는지 모릅니다.
8월에 은퇴하신답니다. 마지막 그는 병원에서 전도에 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순결한 교회입니다. 열정이 있는 교회입니다.
오순절은 교회의 시작입니다. 교회시대의 개막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교회, 거룩한 교회,
열정의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의 열매 롬1:8-17 창립주년
지난 주 목요일 저는 고향산천을 방문하였습니다.
오래 만에 어머니 묘소에도 들렸습니다.
묘소 위에는 오래된 밤나무 몇 구루가 있는데 밤송이가 알암이 벌어 떨어지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댁 텃밭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감이 빨갛게 익은 감이 매달려 군침을 돌게 하였습니다.
밤나무는 밤이 감나무는 감이 이 가을에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촌형은 이미 죽었고 홀로된 어머니는 등산을 가고 과년한 32살짜리 딸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느냐 물으니 웃으면서 다닌다고 하기에 너무나 반가워 언제부터 다니니 그랬더니 20일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파 옆에는 성경이 몇 권이 놓여 있어서 교회 다니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너무나 반가워서 손을 잡고 함께 찬송하자고 하였습니다.
20일밖에 되지 않는 이 딸에게 무슨 찬송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184장을 부를
줄 안다고 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노래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손뼉을 치면서 열심히 부릅니다.
들릴 때마다 예수 믿으라고 하였는데 이달의 나이 32살이 되어 열매를 맺다니...
어머니 묘소위에 달린 밤 작은댁 텃밭에 매달린 감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하였지만 이 딸이 예수를 믿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은 나의 영혼이 즐겁고 감사하게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00교회가 설립 32주년을 맞아 하나님께 기념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과연 우리교회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이며 그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1:13)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 사도의 소원이 무엇이며 이루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은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선언할 만큼 바울의 소원은 놀랍게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 그리고 의의 열매를 생각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맺어야 할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열매를 맺으려면
1. 복음신앙에 최우선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8절
오늘 본문 8절은 바울사도의 마음 곧 그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8절을 읽어봅시다.
(8)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첫째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교회를 향한 사도적인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은 언제나 교회와 복음으로 꽉 차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혹 어디를 가든지 그의 생각과 관심은 오로지 교회요,
복음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적인 심정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갖는 제일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출세와 명예와 그리고 돈이 최우선관심으로 들어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최우선의 관심은 우리가 위장하려도 무의식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나타나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무슨 말을 할지 그것이
잠재 된 내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꾸어도 교회, 헛소리를 하여도 예수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 예수를 잘 믿는 할머니 한분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믿는지 그 할머니는 별명이 감사 할머니였습니다.
언제든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무조건 ‘감사 합니다’ 하고 두 손을 모았답니다.
어떤 집에 손자가 병이 들었다고 해도 감사, 입원했다고 해도 감사 심지어 죽었다고 해도 감사 그래서 감사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수요일 예배를 드리고 집 가까이 오는데 할머니가 사는 마을에
불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감사합니다.
뉘 집인가 하고 가까이 와보니 자기 집에 불이 난 것입니다.
이 할머니는 그 순간 자리에 주저앉아 감사는 사라지고 ‘아이쿠 우리 집에 불이 났구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염보살’ 하더랍니다.
그동안 여유가 있었기에 말끝마다 감사를 드렸나봅니다.
바울사도는 철저하게 복음적이었고 교회중심 적이었습니다.
조금 사업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로인해 믿음이 바로설 수 있었다면 좋은 것입니다.
조금 병이 들었다하여도 그로인해 진실하여졌다면 이 역시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복음적 신앙이 제1 생활신조여야 하겠습니다.
바울사도는 첫째가 저들의 복음적인 신앙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최대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여러분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눈치를 보고 압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가치관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엄마 우리아빠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금 학교공부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가 첫째로 관심을 갖는 것이 복음적인 신앙이기를 축원합니다.
2. 쉬지 않고 지속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9-13절
최대의 관심은 쉬지 않고 지속되는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9절과 10절을 읽어봅시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저들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그들에게 가기를 원했을까요?
이는 목사님들이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는 이유와도 매우 흡사합니다.
▶1) 11절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교회를 견고케 함이었습니다.
여기은사는 은혜와 구별합니다. 은사는 각기 다릅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데 매우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한사람이 모든 은사를 다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남의 은사만을 부러워하고 자기은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받은 은사도 귀히 여기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서로 은사를 나누어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2) 12절 바울이 그 교회를 통하여 믿음으로 피차 안위함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사도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를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주기만하고 너희는 항상 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동시에 받기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이 나이 정도 되면 무엇을 배울까하지만 저는 아직도 배우고 배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3) 13절 여러 번 가기를 시도하였던 것은 그 교회 안에서 다른 지역에서처럼
로마 안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방선교의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가서 이방지역에서 어떻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고 확장되는지를 가서
가르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막혀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열어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복음전파의 열매입니다.
(사역을 통한 성숙되어감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감사의 연보를 드리는 것을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가리켜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요4: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1: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롬8: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16:5)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고전16: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3. 복음전파를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태도가 중요합니다.14-17
14-15절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강한 의무감을 말합니다.
의무라는 것은 의무를 아는 자에게만 의무가 있습니다.
간난 어린 아기는 의무가 없습니다. 의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무를 의무로 알 때 비로소 인격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복음을 받았으니 당연히 전파해야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의무만 있고, 교만한 사람은 권리만 있습니다.
늘 신세만 지고 산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평생을 두고도 갚지 못한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빚이라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자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참으로 자유하려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빚을 갚는 것이 공로는 아닙니다.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
바울사도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누구에게 빚진 자라고 합니다.
즉 로마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강한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문화권에나 동일하게 유익합니다.
여기에서 복음전파 곧 전도와 선교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복음전파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존재의 이유요 존재 방식이요 존재의 목적입니다.
우리 00교회는 설립 32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 하나쯤 태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부된 우리교회를 통하여 주님을 꼭 닮은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