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배의 축복 외 7편

천배의 축복 포함 7편"|주일낮설교
3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현재보다 천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입추가 지난 지금 가을을 맞으면서 결실있는 기도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1. 전해야 할 말씀

성경본문: 계시록 10:1-11

요한은 특별히 남은 재앙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새로운 환상을

체험하게 되는데 예수님 닮은 천사를 보았으며 그 마지막 천사의 나팔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하여 체험할 때 새로운 감각입니다만, 본문은 요

한이 마지막 대환난의 마지막 나팔 재앙을 앞두고 또 새롭게 영감을 배나 충

만히 받으면서 계시를 받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1. 말씀을 받을 때 나타난 환상

먼저 계시하는 천사인, 1-2,''힘센 다른 천사',를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일부 해석자들은 이 천사의 모습이 예수님과 비슷하게 닮아 보인다고 그냥 예

수로 해석하지만 계시록에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표현했습니다. 결코 예수를

천사라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천사는 구름을 입었으나 예수님은 구름을 타며 백마를 타고 오십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

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

리라'.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

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을 때 환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

고 신약에서도 사도들이 하나님의 특수한 지시를 받을 때 예언적인 환상을 보

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 모세는 부름을 받을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주의 사자로부터 계

시를 받았습니다.

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

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

기 있나이다'

#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왕상 19:12 '또 지진 후에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

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바울은,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

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그러나 환상 자체보다 그것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해

하지 못하면 환상 자체는 무의미하고 결국 악령의 유혹으로 신앙만 규모 없어

지고 이상하게 변질될 것입니다.

# 통일교 문선명이가 굴에 들어가서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든가,

# 여러 교주들이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것들이 모두 자기 신성화를 꿈꾸다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 그런 소리를 합니다.

신 13:3'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

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갈 1:8'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 하나님 말씀의 쓴맛

9-11, '갖다 먹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먹으니 천사가 일러 준 말대로 입

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배에서는 쓰더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먹는다 했고,먹을

때 입에는 꿀같이 달다 함은 듣기에는 오묘하고 즐거우나 그것을 실행하기에

는 괴롭다는 의미입니다.특히 쓰다는 표현은 말세에 나타날 심판적 내용이 참

혹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꿀같이 달게 여기기도 하고,그 말씀을 따라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아서 쓴맛을 함께 알아야 참된 말씀의 자녀가 되는 법입

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듣고 쉽게 사는 법을 찾아 헤매고 있

지만 결코 그런 새로운 방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특히 증거되어야 할 예언적 말씀을 들을 때는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 모세가 도망쳐 나온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을 구축하라는 계시라든가

* 이사야, 요나, 호세아 등이 맡은 예언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 사도가 받은 복음이라도, 즉 우리가 받은 복된 소식인 이 복음도 결코 쉬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전할 때 고통이 따른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무조건 복만 받는다고 했다가는 예수 믿는 날부터 시험을 받아서 어려움을 받

아 낙심할 사람도 있고 때로는 엄청난 마귀의 질투를 받아 큰 고충을 얻게 되

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복음 안에는 단맛과 쓴맛의 양면이 있습니다.

듣기엔 좋게 보이나 생활 습관이,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복음의 성질대로

살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또한 마귀가 방해할 것이 분명합니다. 말세에 바

른 말씀을 외치는 자를 오히려 반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악한 영적 세계

의 작동인줄 알아야 합니다.

딤후 4: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3. 전해야 할 말씀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계시록상 바다는 세속,땅은 종교

사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온 세계가 다 들어야 할 하나님의 계시라

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전파하는 종교입니다.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는 종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죽음이란 사실을 전하는 겁니다. 타

종교인들은 꼭 믿으라,믿으라 권유할 게 뭐 있냐고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습니

다. 그게 함정입니다. 내버려두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심방하고 관심하고 물어보고 서로 교제를 깊게 하려면 간섭한다 여깁니다. 자

신들의 영혼이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전하는 말씀, 전하는 말씀의 사람, 전하는 성경,전해져야만 하는 하나님의 생

명의 말씀, 경고의 말씀, 예언입니다. 깨닫기를 축원합니다.전하지 않는 교인,

전하고 싶지 않은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전하지 않는 교회의 모임 내용,전

하고 싶은 충동이 없는 메시지는 참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증거해야 합니다.

11절에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목사가 설교한 내용을 다시, 또 다른 이에게 예언

(설교)하여야 하리라!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받은 진리는 무슨 소승불교도

처럼 혼자 좋아라고 마음에 간직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은 공유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함께, 이 귀한 생명의 도리를 나누자고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말씀이 있고, 말씀을 들은 자는!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전하는 일이 어렵고 쓴맛이 나도 꼭 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도를 닮아, 주의 증거를 아낌없이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더욱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성경 ; 창1:1-2:3, 고후13:11-13, 마28:16-20

인도의 설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파라

문교도 한 사람이 시장에 갔다가 제사에 쓰려고 산양을 한 마

리 사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악인 세 사람이 그 산양을 빼앗아 가지려는 욕심으로

그가 오는 길목에서 각각 떨어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라

문교도가 가까이 오자, 첫 번째 악인이 그 앞에 나타나 “오!

성자여, 당신은 무엇에 쓰려고 그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

까?”하고 말했습니다. 파라문교도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이

메고 가는 것은 산양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조금 후, 두 번째 악당도 첫 번째 악당처럼 “오! 성자여,

당신은 무엇에 쓰려고 그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까?”하고

파라문교도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의아심이

생겨서 메고 가던 산양을 내려놓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산양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갔을 때에, 세 번째 악당을 만나게 되었습니

다. 그 악당도 똑같은 말로 파라문교도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러자, 파라문교도는 자신이 메고 가는 것이 산양이 아니라 정

말 더러운 개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는 산양을 땅바닥에 내버려두고서는 황급히 가버렸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악당들은 좋아라 손뼉을 치면서 기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산양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

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악한 마귀도 이와 같습니다. 온갖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서

죄와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한두 번

유혹하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공략을 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끔 해서 결국은 자

기들의 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마귀의 행태입니다.

마귀는 거짓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캐내는 일에도 아주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래서 마귀

는, 자기 허물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문제 삼는 사람

들을 자기 부하로 삼은 다음, 그들을 앞장세워서 바르게 살려

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거짓말의 명수요, 남의 허물을 캐내는 일에

선수이면서, 또한 거기에다가 무엇이든지 파괴하고 부패케 하

는 일에도 아주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마귀가 가는 곳에는 파괴와 파멸이 계속 발생하고, 부정

과 부패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살아

보려고 결심했다가도, 그만 마귀의 술수와 장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금 타락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무튼, 마귀는 그 무엇이든지 좋게 되거나 잘되는 것을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은혜를 받아서 새롭게 거

듭나고 변화되는 것을 그냥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신앙인을 넘어지게 하거

나, 아니면 변질된 신앙을 갖게끔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것은, 일부 기독교인들

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결국은 마귀가 좋아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결국 마귀의 술수에 넘어가는 일인데…’하면

서도,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누구라도 일부러 마귀의 술수와 장난에 빠져들려

고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마

귀가 좋아하는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은, 우리 속에는 아직도

죄성(罪性)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한편 마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아야 복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

으면서도, 다른 한편 구석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대

하고자 하는 고약한 마음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

을 행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

는 죄입니다(롬7:20)’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계속 죄에 끌려 다니면서 죄의

종노릇을 해야만 하겠습니까? 그러다가 결국은 지옥형벌에 빠

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천국과 지옥에 관한 비밀의 말씀

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몰랐다면 어쩔 수 없

는 일이지만,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으면서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미련하고 바보 같

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은 하나

님 나라의 문 밖에 서서 주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땅을 치면서 통곡하게 될 것이다(눅13:27-28)”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제

입술을 빌려서 들려주시는 이 말씀을 듣고서도, 여전히 마귀

가 좋아하는 일을 행하게 된다면, 장차 머지않은 그날에 땅을

치면서 크게 후회하고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가

참으로 크고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

정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속아서 그 종노릇을 하

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에 있는 말씀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바로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다

(3:8)’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그 손아귀에서 주님의 백성들

을 구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

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천국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보혜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

면, 무사히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마귀

와는 반대되는 성품과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

의 명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그

리고 마귀가 남의 허물을 잘 캐내는 선수인 반면에, 성령은

남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마귀는 파괴하고 파멸시키는 일을 잘한다고 했습니

다. 그러나 성령은 새롭게 건설하고 온전케 하며 고치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온전하게 되며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우리에게 권면하기를 ‘오

직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도록 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

실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간다

면,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짓은 하지 않게 될 것

입니다(5:16)’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

하게 되어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식들이나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럽거나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이며, 그리고 죄를 짓게 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살면, 영원히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학운교회 성도 여러분은 앞으로 마귀의 종

노릇 하는 일이 전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감으로써,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세상에서는 빛과 소금이 되어 사시는, 복되고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살

수 있겠습니까? 초대교회 시절, 오순절 날에 일어났던 성령강

림사건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 한 자리에 모여서 기

도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

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말하자면, 부활의 증인 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

을 사모하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도 성령

의 강림을 기다리기 전에

1.우리 인간의 사명이 무엇인지, 그 사실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온 세상이 아무 형

태도 없이 그저 캄캄하고 무질서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참

으로 쓸쓸하기가 그지없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 만들어진

세상을 보시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마지막 엿새째 되는

날에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들로 하여금, 자연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

습니다. 그런 다음, 일곱째 날에는 일손을 놓고 쉬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

다. 오히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 마귀의 유혹을 받

은 나머지,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최초의 인간들은 불행하게도 그 아름

다운 낙원에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 인간들은 다시금 공허하고 캄캄한 세상에서 땀 흘

리는 수고와 갖가지 질병과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만 했습니

다. 요컨대, 최초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인간의 사명을 망각한 나머지, 사탄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만일 최초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그

리고 그 사명이 무엇인지 잊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엄청 큰 은혜

와 특권을 주셨건만, 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

고 그들은 엉뚱하게도 더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과 욕심을 부

리는 바람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넘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

당해야 할 본분과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

면,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거나 그 술수에 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잊어버리게 될 경우,

우리는 영락없이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의 유혹을 받더라도, 신앙생활에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시험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악

한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집회든지 빠지지 말고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주시는 말씀

을 통해서, 우리는 악한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인간의 본분과 사명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

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애쓰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래서 그 도우심으로 인간의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

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잊어버릴 경우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그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애쓰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또한,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등지고

살면 죄와 어둠 속에서 신음하게 되거니와, 성령으로 충만하

면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성령

안에서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리라 확신합

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살이가 참으로 복

잡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원망과 불평도 생기게 되고 갈등도 일어납니다.

이때, 믿음으로 이 모든 감정들을 잘 다스리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에 계속 얽매이게 될 경우, 그 감정

때문에 우리의 본분과 사명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

다. 그럴 때에 반드시 마귀가 찾아와서 우리를 시험과 올무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항상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

로 무장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

리거나 얽매이지 않고 그 감정을 잘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품성과 본분을 망각하지 않게 되거니와, 다시

금 우리가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

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를 지켜야,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은혜와 특권을

계속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리

를 이탈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죄와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은 사탄마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과연 우

리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지, 항상 자기 자신을 점검해봐

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

도록 해야 합니다. 열심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2.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도

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당부하

기를 ‘언제나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내가 말한 것을 마음에 간직하도록 하십시오. 서

로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지내십시오.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

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힘써야 할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우리의 모든 것이 더욱 온전하게 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태초에 하나님께

서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합

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주셨던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참 행복과 기쁨을 누

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잃어

버렸던 그 낙원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낙원은 돈이나 지식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온전하게 되어 그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잘 감당해야 할 본분과 사명 중에는

주일성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천하 만물을 말씀으

로 창조하신 후에, 엿새째 되는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레가 되는 날에는 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가 되는 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여기셨

다고, 창세기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힘입

어서 진정으로 복된 인생을 살고자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복

을 내리시고 거룩하게 하신 이렛날을, 오늘 우리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여기시고

쉬신 날을, 오늘 우리가 쉬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

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주일 예배를 막기 위해서 일주일을 10일

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산업의 생산량이 40%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때에도, 레닌이 일주일을

8일로 늘려서 실시했더니, 생산량이 30%나 감소하는 바람에

다시 일주일을 6일로 줄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생산량이 30% 감소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레닌은 일주일을 다시금 7일로 되돌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의 7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

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창세기의 안식일에 뿌리를 두

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소중한 삶

의 리듬이 무너진다면, 개인의 건강은 물론, 땅의 축복도 상

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 마지막 부분

에서 이렇게 축원하는 글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

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라고. 주일 낮 예배 때마다, 담임

목사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교인들을 위하여 축도하는 내용

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욱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된 인생이 다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내가 의지하는 것은?

성경본문 : 사3:1-15

오늘은 이사야3:1-15절의 말씀 가운데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제하여 버리신다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과연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고 있었는지 그 결과 어떻게 되고, 그러면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지?

그러면 어떤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의 결과는 어떤지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고 성령을 통하여 은혜 받기를 소원 합니다.

먼저 의뢰와 의지가 가지고 있는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뢰는 컨피던스(Confidence)라는 단어로 믿다, 확신하다, 확신과 안전의 대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의뢰라는 단어의 의미를 지주 또는 버팀목으로 사용하여 받치다, 머물다, 지속하다, 공급하다라는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의지는 스테이 또는 트루스트(Stay,Trust)라는 단어로 의뢰와 같이 믿다, 확신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뢰와 의지를 하는데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신뢰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언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게 하는데 여러 가지방법을 사용합니다. 그 방법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 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먼저 양식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므로 자신들을 의뢰하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의뢰하는 모든 양식

먼저 곧 의뢰하는 모든 양식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흘을 굶으면 도적질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몇 년 전 북한의 실상을 방영되었는데 어린아이들이 길에 떨어진 국수가닥을 주어먹는 것이 방송되었습니다. 인도나 아프카니스탄에서는 8-13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생계유지를 위하여 몸을 파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먹을 것을 준다고 하며 자신을 의뢰하거나 의지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따를 것입니다.

양식을 공급하여 주며 자신을 따르라고 한 사람들이 과연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다음은 금권과 생활환경을 가지고 자신들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 의뢰하는 모든 물

얼마 전 아메리카 깽스터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의하여 블루 매직이라는 이름으로 마약을 싸게 유통 시키므로 도시와 사람들을 황폐화 시키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경찰과 커넥션을 맺고 있는 사람이 한 경찰관의 끈질긴 추적으로 체포되고 결국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경찰들까지 검거한 실제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자신을 의지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더욱 얽매기 위하여 금권과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사용하게 합니다.

2년 전 사우스 다코다라는 곳으로 인디언 단기 선교를 다녀오신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부에서 인디언구역을 정해놓고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하였고 정부에서는 그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사업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였지만 그들 스스로가 외부와의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생활의 대부분은 술과 마약에 절어서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그곳에서는 마약 단속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자신들을 의뢰하고 의지하게 하려는 것은 권력입니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 부장과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 다음에는 권력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의뢰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려는 것이 권력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의지 하려고 밑으로 들어옵니다.

조금 더 힘이 센 것이 어느 것인지를 비교하고 흩어졌다 모이기를 계속합니다. 그러다 의지하던 사람이 권력을 잃으면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안면몰수하고 돌아섭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의뢰하고 의지하게 만드는 것은 모사와 술수입니다.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권력의 마지막에는 모사와 술수가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의지 할 대상이 아니라고 평가 받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모사와 술수를 사용합니다.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에서는 인도에는 힌두교에서 섬기는 부라만 이라는 신외에도 약3천6백만 개의 신이 있다고 하는데 다른 자료에 보면 3억3천만 개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신들이 있어야 합니까?

이모든 것이 자신을 의뢰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경로로 누구를 의뢰하고 의지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얻으셨습니까?

여러분도 유다의 백성들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뢰한 자들에게 행위에 따른 대가를 돌려주시는데 그 결국은 멸망이고 엎드러짐입니다.

사랑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간까지 사람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다른 것들을 의지 하였다면 오늘 이 시간 회개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야 합니까?

1.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창1:27에는 인간은 하나님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시139:13-16에는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라고 다윗은 고백하였습니다.

무한하신 인격체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 하실 때 인격이 없이 자신을 만들어 준 사람을 무조건 따르도록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격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의지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어머니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태를 빌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 어머니는 아기의 필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어머니를 의지합니다. 저희 집 큰 아이는 유아 때 엄마하고 잠시도 떨어져있지 않아 엄마가 고생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신묘막측하게 지으셨지만 자신의 형체가 숨기지 못하고 자신이 태어난 지 하루가 되지 않았어도 자신의 모든 것들이 심지어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도 하나님이 계획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과 바다,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동일한 조건으로 창조하셨는데 사람만큼은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은“우리가 우리의 형질을 따라”라는 말씀입니다.

형질이라는 말은 단순히 외모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는 너의 아버지를 쏙 빼 닮았구나 또는 어머니와 어찌 그렇게 많이 닮았니? 하는 말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닮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질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여야합니다.

열대지방에서 나는 동식물이 날씨가 추운나라에서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열대지방의 동식물이 적용하게 하기위하여 여러 가지 특별조치를 하여야합니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동물원을 북극에 살고 있던 곰을 특별히 수입하였습니다. 북극에서 살고 있는 곰이 날씨가 더워 맥을 못추며 괴로워하자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물속에 큰 얼음덩어리를 넣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해 두고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 땅은 북극곰이 더위를 견디는 것만큼 세상이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로 창조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마 약속하셨던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피를 많이 흘린 사람에게 피를 보충해주기 위하여 수혈 할 때 아무 피나 수혈하는 것이 아닌 같은 형의 혈액의 깨끗한 피를 수혈하여야 하는 것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세상에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은 우리를 기쁨을 누리는 창조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을 하므로 기쁨과 만족을 얻도록 작은 창조자로 만드셨습니다. 작은 창조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창조성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그에게 동물의 이름 짓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새로운 동물과 식물을 발견하고 이름을 짓는일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우리가 작은 창조자가 되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할 때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겠다고 요14:26,요일2:27 약속하셨습니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라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지혜로운 사람인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의 고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적인 일을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셨던 것 이미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 뿐 입니다.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같이 지혜자 솔로몬은

전도서 2: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것들 가운데 알려지 않은것을 우리를 통하여 알게 하시려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므로 오류를 범하는데 그 말씀은

고전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우리의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므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창조적인 존재임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 가운데 사55:8-9의 말씀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상상 할 수 없는 큰 계획을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개미집을 자주 관찰합니다.

어떤 때에는 개미집 앞에 언덕이 있어 개미가 일을 하는데 큰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 그곳을 평평하게 만듭니다. 또 어떤 때는 큰 먹이를 여럿이 운반하는데 힘이 들 것 같아 입구까지 운반해 주기도 합니다.

개미들이 이런 변화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창조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새롭고 유익한 제품을 생산하므로 모두를 유익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의학기술을 개발하여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을 창조하고, 일자리를 공급해 부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쁨을 누리는 창조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는데서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기쁨을 누리는 창조적인 존재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의지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며 의지하여야 할 이유는

4.하나님은 무한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지만 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유한합니다. 시작점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존재가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는 무한하신 분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이지만 처음이 어딘지 나중이 어딘지를 알 수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한 단면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라는 말씀과

전도서 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라 이 얼마나 허망한 말입니까?

그러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의지하겠다고 결심하시면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하기 전 설령 우리가 포기한다 하여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증거는 창세기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는 말씀 속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오심을 통하여 벗겨지고 지금도 하나님의창조적인 계획은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이 의뢰하고 의지하여야 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시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나를 의뢰하고 의지하시는 성도님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이것만은 꼭 피하세요

요한계시록 21장 5~8절

불란서의 2,000년 된 무덤에서 꽃씨를 발견해 그것을 땅에 심었더니 2,000년이나 묵었는데도 땅속에 들어가 죽었다가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나며 꽃이 피더랍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100년 미만 살다가 죽으면 그것이 끝이겠습니까? 죽음 후에 반드시 부활이 있고 부활 후에 심판이 있고 영원한 두 세계,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식물은 생명이 있어 살긴 살았지만 오직 몸(body)만 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으로, 모든 동물 즉 개나 돼지나 원숭이, 이 동물들은 몸이 있을 뿐 아니라 혼 즉 정신(mind)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움직입니다. 어떤 개는 교통신호도 볼 줄 알고, 어떤 짐승은 숫자를 계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몸과 혼이 있을 뿐 아니라 영(spirit)이 있습니다. 영이 있다는 것은 영생하는 존재(eternal being)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숭이는 영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부활이 있거나 영생하는 존재도 아니고, 사람으 로 진화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옛날에만 진화했겠습니까? 지금 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챙이가 개구리 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계란을 껍질과 흰자위와 노른자위로 분류할 수 있듯이 사람은 몸(body)과 혼(mind)과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죽은 후에 장차 부활이 있고 그 후에는 영원한 천국과, 영원히 고통받으며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지옥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영원한 지옥만은 꼭 피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하고 장관을 해도 눈 깜박할 동안에 지나가고 맙니다. 무엇보다도 지옥을 피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부터 해야 합니다. 또 모든 교회는 천국과 지옥을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교회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박건희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최근 은퇴한 Carey Cantabery 대주교는 은퇴하면서 “지옥”을 전해야 한다고 해서 영국 신문에 크게 기사가 게재된 사실이 있습니다.

A.C.Dixon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강단에서 지옥에 관한 설교를 더 많이 했더라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지옥과 같은 현실이 더 적어졌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많고 교인도 많은데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끔찍한 죄가 더 많아지는 것은 지옥의 의미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성도가 늘어나지 않고 진정한 교회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옥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며 지옥이 없는 복음은 복음도 아닙니다. D.L.Moody 선생은 “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 읽을 필요도 없고 성경은 다 불태워버려

야 한다.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없다. 있던 예배당도 오락 장소로 바꾸어 써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꼭 믿을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만 지옥을 피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1. 지옥이 정말 있는가?

반드시 지옥은 존재합니다. 흔히 지옥은 사람들 죄 짓지 말라고 겁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 압니다. 또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 사람들을 집어넣을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애초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을 괴롭히고 퇴락시키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예수님께서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애초에 사람을 위해 만든 곳이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날 지옥에 관한 설교를 했더니 교양있는 여자가 들어와서 “목사님, 20세기에 무슨 지옥 설교를 합니까? 그런 케케묵은 설교는 그만두십시오”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자매님, 사람들이 형무소를 싫어하고 사형집행도 싫어하지만 꼭 형무소를 만들고 때로는 사형집행도 시키는 것은 나라의 질서와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을 괴롭히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면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도 되시고 심판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밤낮 웃고만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는 해도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엄숙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구슬땀을 흘리며 김매고 거름 주며 수고하는 것은 가을 추수 때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불태우는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최후에 평생 지은 죄를 다 드러내놓고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집어던져지는 때가 꼭 있습니다.

◉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이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Franois Marie Arouet de Voltaire 1694-1778)는 “기독교가 건설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지만 불란서의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했고, 또 “100년 안에 성경은 없어진다”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한껏 조롱하면서 무신론 책자를 많이 써냈습니다. 그러나 볼테르에게도 죽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온몸을 흉하게 떨면서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보물의 절반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6주간도 못 삽니다” 하니까 온몸을 뒤틀며 공포에 떨면서 “그러면 나는 지옥에 가는데 당신 나와 좀 같이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죽는 순간에 지옥을 보고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없어진다고 장담하던 성경책은 오늘날도 베스트셀러입니다.

◉ Francis Newport란 무신론자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다던 사람이 임종시에 “아! 나는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나는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구나” 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 Thomas Scott란 무신론자는 그렇게 하나님이 없다던 사람이 죽으면서 “나는 이때까지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이 다 존재하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전능자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하여 멸망으로 들어간다”라고 부르짖으며 운명했습니다.

◉ M.F.Rich란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붙는 난로 위에 100만 년 동안 누워있는 편이 낫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무신론자들의 증언보다 더 확실한 것은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지옥에 대해서 수백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관한 말씀보다 지옥에 관한 말씀이 더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한 번만 기록되었어도 꼭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9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700여 년 전에 꼭 한 번 예언했는데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임마누엘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옥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안 믿는다면 예수님은 구세주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라 거짓말쟁이로 아는 사람입니다. “거기는 불도 꺼지지 아니하고 구더기도 죽지 아니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7~9절에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지옥의 존재를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지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했습니다.

2.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실재하는 장소입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석유불이나 가스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안 뜨거울까봐 염려하지 마십시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심판과 지옥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셔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영국을 무혈혁명으로 구원한 사람입니다. 그는 설교 중에 “네 손가락을 불에다 대고 있어보라. 어떻겠는가? 잠시 동안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온몸이 불에 들어가 영원히 있을 것을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육과 영의 모든 괴로움은 중단이 없다.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밤낮으로 피어오른다…또한 그들의 고난이 극에 달하고 그 고통이 극심하다할지라도 단 한순간도 감소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고, John Smith에게 편지를 쓰는 가운데 “나는 이 무한한 두 대양 사이에 서 있는 동안 내 눈으로 천당과 지옥을 보기 원합니다. 따라서 나는 이성적이고 종교적인 모든 사람들이 천당과 지옥, 이 두 가지를 날마다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씀입니까?

지옥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기억이 그 불을 더 뜨겁게 합니다. 강도는 그가 죽인 사람을 바라보면서 후회하며 고통을 당하고, 투전꾼은 그가 속여먹은 사람을 기억하며 가슴을 치면서 불의 뜨거움을 느끼며 고통당합니다. 예수님 믿을 기회가 있었는데 고집을 부리다가 예수님을 안 믿은 사람은 “예수님 믿어둘 걸” 하며 불의 뜨거움을 더 느끼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죄 지은 만큼 양심의 고통을 더 느끼게 합니다.

①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

영원히 꺼지지 않으며 벌레 한 마리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자살하려고 해도 자살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밤낮 슬피 울며 이를 갈며 고통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 가운데서, 부자는 너무 뜨겁고 목이 타니까 “물 한 방울만 손가락 끝에 떨어뜨려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하고 애원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자는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는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이라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어 전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했지만 “세상에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지옥이 있다고 말을 해도 안 믿을 사람은 안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② 피할 수 없는 곳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서 다시는 나올 수 있는 기회도 없고 나올 수 있는 소망도 없고 도망칠 문도 없습니다.

③ 끝이 없는 곳

천 년, 만 년, 억만 년 후에라도 끝나는 날이 있다면 소망 중에 기다려 볼 수 있지만 지옥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언젠가는 출옥할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리고, 또 대부분 나가게 됩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언젠가는 퇴원하겠지 하고 참다가 더러는 죽지만 대부분 퇴원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영원히 나올 기회가 없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것처럼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Timelessness가 아니라 Endless time입니다. 끝없는 시간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④ 모든 종류의 사람이 섞여 지내는 곳

지옥에는 대통령이나 장군이나 박사나 거지, 강도, 창녀나 다 범벅이 되어 고통당하는 곳입니다.

세상 죄악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하시고 마귀들은 무저갱에 감금한 후에야 없어지고 지상낙원, 천년왕국이 이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3. 지옥을 피하는 길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믿음으로 고백하면 오늘부터라도 구원받고 천국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5. 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성경 ; 잠4:1-9, 딤후1:3-14, 요15:9-17

여러분은 혹시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지요? 아니면‘이처럼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

으면, 도대체 무슨 결과가 있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는지요? 어찌 왜 없겠습니까? 어쩌면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의문과 회의를 가져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 사는지? 그 사는 이유와 목적이 분

명하지 않을 경우, 죽는 날까지 아리송하고 헷갈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도 모

르고 무조건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뭘 사야 할지, 그 목록도 정하지 않고 무조건 장바구

니를 들고서 시장에는 가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는 목적과 이유가 분명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기가 쉽습니다.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여

러 가지 장애물도 간단히 뛰어넘을 수가 있는 것이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영화배우 최민수 씨가 73세 노인을 폭행한 다

음, 그 노인을 자신의 차량에 매달고 질주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뉴스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

을 줄 압니다만,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1일 오후 1시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동산주차장 측이

견인 문제로 도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차가 정체되고 있었습

니다. 이때 마침, 그 길을 가고 있던 최민수 씨가 욕설을 퍼

부으며 거세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

켜보고 있던 그 할아버지가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욕을 하

느냐?”고 하면서 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최민수 씨가 그 할아버지를 밀쳐서 넘어뜨렸

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크게 분노하셔서 최민수

씨의 차를 가로막은 다음,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최민수 씨가 이를 무시한 채 떠나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최민

수 씨 차의 앞부분 본네트에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최

민수 씨는 차를 갓길로 주차하기 위하여 부득이 50m쯤 진행

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할아버지를 매단 채 질주한 것으로

보도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진행이 되자, 최민수 씨는

긴급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최민수

씨는 모든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고 하면서 이렇

게 말했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을 나 역시 용서할 수가 없

다. 나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 나는 죽을 때까지라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사건의 진실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세히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민수 씨는 자기 행동을 무척 후회하

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의 일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과오

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연예활동을 중단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를 개만도 못한 사람이

라고 비난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최민수 씨처럼, 그렇

게 후회해본 적은 없는지요? 그리고 엉뚱한 오해와 억울한 누

명을 뒤집어쓰고서 심히 괴로워한 적은 없는지요? 조금만 참

으면 되는 것을, 그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함으로써,

크게 일을 그르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는지요?

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잘못을 범하고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아마 어쩌면 앞으로도 계

속, 그런 실수와 잘못을 범하게 될지 모릅니다. 물론, 제 마음

은 실수 없이 바르게 잘 살고 싶습니다. 후회할 일은 아예 하

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지만, 저

는 자꾸만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분명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하

게 되는 일도 있고, 때로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내 행동

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

다. 최민수 씨가 말했듯이, 내가 저지른 실수이지만 나 스스

로가 용서할 수 없는, 그래서‘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

나?’하고, 나 자신을 원망한 적도 한두 번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서 점수를 매긴다면, 그 점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낙제 점

수는 면할 수 있겠는지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영 아니다 싶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포기하거나 어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말

씀인 잠언서 4장의 기자는 그 아들에게 ‘착하게 사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이치를 깨

닫고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인생의 목적과 사는 방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

의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9장 10절 말

씀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요, 거룩하

신 분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일러주는 지혜대로 살기만 하면, 그 지

혜는 우리를 애지중지하게 될 것이고, 끝내는 우리를 영화롭

게 하리라고, 잠언서 기자는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

니까, 자기 스스로 그 자신의 삶을 인정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바람직한 인생,

곧 다시 말해서 크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쨌든 성경말씀을 바로 알고 지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수가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 살 경우에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죽도록 애를 쓰게 된다 하더라

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딤후1:3,현대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

면, 실수나 실패가 적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

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C. S. 루이스 교수가 말하기를 ‘하

늘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

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이 인간

자신에게 있으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그 목적이 하늘나라에 있으면,

하늘나라와 그 축복만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있

는 것들을 덤으로 얻게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우리가 욕심으로 무슨 일을 하고자 할

경우,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거니와, 오히

려 죄만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항

상, 인간의 욕심에 따라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과 그

교훈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모를 섬기면, 우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게 되고, 우리 자신도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신명

기 5장 16절에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이것은 너희 하나

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너희 주 하나님이 너희에

게 준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재

산상속을 바라고서 부모를 잘 섬기는 척 하게 될 경우에는 어

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위선(僞

善)이라고 하는 아주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

들과 더불어 갈등과 다툼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1.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삼

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30년이 넘도록 침팬지 사회를 연

구한 세계적인 동물학자 ‘구달’박사의 말에 의하면, 침팬지

사회는 20∼30마리로 구성된 모계사회라고 합니다. 우두머리

는 항상 수컷인데, 모든 암컷의 희망은 그 우두머리 수컷의

새끼를 낳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30년을 관찰한 결과, 침팬지 집단에서 계속 우두머

리를 배출하는 모계가 있었습니다. 그 집안에서는 언제나 늙

은 침팬지의 헌신적인 희생과 엄격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

런 전통이 자손 대대로 이어져온 것입니다.

그 반면, 30년 동안, 한 번도 우두머리를 배출하지 못한 모

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모계는 교육과 질서가 아

주 엉망이었습니다. 요컨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침팬지 세계에서도 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서 많은 씨를 뿌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열심히 씨를 뿌리고 부지런히 가꾸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

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씨를 뿌리는 것이 ‘성공

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많은 시련과 고통도 겪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

로 살고자 할 때에는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

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의 길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여러 분야에서 아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믿음의 방식대로 하

려고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저들과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그런 갈등과 아픔을 잘 극복해

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적당히 타협

하면서 살 경우, 절대로 생명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런고

로, 진정 믿음의 길을 가고자 원한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주

님을 위해서 고난 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면,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보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재미가 있습니

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

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

고 내 짐은 가볍다(마11:28)”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저께, 집사람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서울의 장 집사 내외

가 왔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딸 하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아주 독특했던 가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다솜학교’라고 하는 여름 캠프에 그 딸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룹별로 모임을 갖는 시간에, 지도교

사가 그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무개야, 네 꿈은 뭐니?”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딱 잘라서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지도교사는 그 아이에게 “그렇다면, 너

의 장래 소망은 뭔데?”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는

“놀고먹는 거예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들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

리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춤에 빠지기 시작했습니

다. 어느 댄스그룹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그 춤을 배우고 익

혔습니다. 어떤 때에는 밤이 늦도록 춤추는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춤은 그의 적성에 잘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습

을 해도 다른 아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결

과는, 그 아이의 자존심에 절대로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

다. 그래서 춤추는 시간을 더 늘렸지만, 그래도 따라갈 수 없

게 되자, 어느 날 그 아이는 부모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

다. “엄마 아빠,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은 공부인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공부만 열심히 할래요!”

그 후, 그 아이는 열심히 공부에만 매진하더니, 외국어고등

학교에 진학했고, 지금은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다

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장 집사의 딸은 일찌감치 공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쉽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에, 다른 엉뚱한

길로 가지 않고 정상적인 길을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의 진리를 바로 깨달을 수만

있다면, 세상방식대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고 재미가 있

습니다. 그냥 쉬운 정도가 아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사

람들은 그 어떤 시험과 환난에도 결코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굳건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영생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죽음의 세력과 싸워

서 이기셨다(딤후1:10)’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모든

모욕과 핍박과 조롱, 그리고 십자가라고 하는 극형까지도 끝

까지 잘 감내하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

고로, 오늘 우리도 진리를 깨닫기 전에 겪어야 하는 시험과

환난의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2.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며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단편소설 중에 ‘93’

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다를 항해하고 있던 배가 폭풍을 만나자, 선창에서는 무

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배의 선창에는 대포

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큰 풍파에 시달리는 바람

에,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이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몇 명의 선원들이 선창에 내려가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를 묶어두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 대포를 피하

기 위해서 이리저리 몰려다녀야만 했습니다. 잘못하면, 그 대

포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선원들은 새

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진정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아니라, 바로 배 안에

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배를 인간에다가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고, 사슬이 끊겨 배 안에서 굴러다니는 대포라는 것입니

다. 곧, 그것은 미움과 원한과 분노라고 하는 대포가 우리 자

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대포는 결국 우리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 내 말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마

치,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것

과 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와 같은 기쁨이 너희

에게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너희가 내 말을 지

켜 행하면, 너희 기쁨의 잔이 넘치게 될 것이다(요15:10-1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

가 너희를 택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세

상에 나가서 항상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써, 내 이름

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내 욕심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믿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는, 내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노력

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어서 언제나 나

를 괴롭히던 모든 원수들을 다 물리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거룩한 일을

맡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고 사십

시오. 그리고 세상의 썩어질 것들 때문에, 우리의 거룩한 사

명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

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6. 천배로 축복하시는 하나님

룻기 4장 13-22절

<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

얼마 전에 개봉한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어느 날,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노인이 한 병실에 있게 됩니다. 한 노인은 백인 재벌 에드워드와 한 노인은 흑인 자동차 정비사 카터입니다. 처음 만남은 어색했지만 둘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에 대해 마음 문을 엽니다.

병실에서 카터는 심심풀이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에 적습니다. 그 메모에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구경하기, 스카이다이빙 하기, 멋지고 장엄한 광경보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의 버킷 리스트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메모를 재벌 에드워드가 발견하고 그 리스트대로 해보자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나씩 지워지면서 인생을 알고, 우정을 알고,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여행을 통해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카터는 재벌인 에드워드에게 친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카터가 그 딸과의 화해를 권하자 에드워드는 카터에게 자신의 삶에 개입하지 말라고 화를 내며 헤어집니다. 그러나 카터의 죽음을 대하고 그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여 에드워드는 딸을 찾아가고 딸과 극적인 화해의 키스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의 키스’라는 리스트도 지워집니다.

이 영화는 참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말해줍니다. 재벌 에드워드는 돈으로는 기쁨과 친구도 얻지 못했지만 이웃을 기쁘게 해주면서 참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참 기쁨은 내가 기쁘게 살면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사람에게 가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고 가족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면 그것이 더욱 실감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현재의 가정을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도 그런 최선의 사랑을 펼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다니게 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제 나름대로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적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일어났던 일에 대해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후회되는 일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일’입니다.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빈틈을 채워주겠다는 큰 꿈을 꾸십시오.

세상적으로 잘 사는 것에 대한 지나친 미련도 버리십시오. 진짜 잘 살았는가 하는 것은 죽은 후에 평가될 것입니다. 그때 누군가 나를 좋게 기억해준다면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한정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곧 우리는 이 땅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좋은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는 ‘큰 축복’을 받고, 그 축복으로 이웃과 선교사를 섬기는 ‘진짜 축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본 후, 나름대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몇 가지 리스트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전체 설교파일 완성하기, 그 절반인 33개의 주제별 설교파일 완성하기, 그 설교파일들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판하기, 사랑칼럼 시리즈 출판하기, 얼라이언스 선교사 훈련학교 만들기, 네트영어 사전 만들기, 전국 각지에 네트 영어 프랜차이즈 어학원 설립하기, 선교지에 갈 때마다 선교사님들에게 만 불을 조건 달지 않고 헌금하기 등등.”

현재까지는 설교파일을 25세트 완성해서 25%의 진척을 이뤘습니다. 그것만 해도 300페이지짜리 책 50권 분량입니다. 나머지 리스트도 착착 진행시켜가고 있습니다. 요새 선교언어 연구원에서 네트영어 강의를 하면서 네트 어학원의 필요성과 네트 영어사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 비전이 이뤄지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요새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떠도는 자금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자금들과도 연결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사람이 좋은 새로운 꿈도 없이 현재 모습대로 사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 앞에는 과거의 가장 찬란했던 삶보다 더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다가 많은 좋은 열매와 영향력을 남기고 이 땅을 떠난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미국에 가면 어떤 학교의 운동장에는 한 복판에 개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 개집에는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의 주인들이 죽으면서 변호사를 통해 개들에게 유산을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가 살아 있는 한 공식적으로 그 유산은 개의 것입니다. 그러다가 개가 죽으면 그 유산이 학교 재단으로 귀속됩니다. 대신에 학교에서는 개가 제 명대로 죽을 때까지 정성스럽게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약정되어 있으니까 재단 이사들은 학교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운동장에 있는 개집을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저 개님들이 금년에는 3마리는 죽어주셔야 하는데...” 개 주인이 복잡하게 유산을 상속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만 그래도 좋은 일입니다. 이미 개 주인은 자기의 전 재산을 좋은 일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헌납시기를 조금 유보해서 자기가 아끼던 개를 돌보도록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어차피 이 땅을 떠날 때 물질은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에 연연하며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땀을 흘려 물질세계를 정복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 물질로 영혼을 살리고, 좋은 일을 마음껏 하고, 이 땅을 떠날 때 기쁘게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도 살려주시고, 그의 가정과 자손도 천 대, 만 대까지 이르러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 >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모압 족속 출신 룻을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표현합니다. 룻은 이방인 출신 며느리였지만 베들레헴에 사는 많은 여인들로부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라고 불렸습니다. 어떻게 룻이 그런 복된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까?

1. 바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사사기 때, 약속된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잘 믿어도 삶에 흉년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흉년 때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 흉년의 때에 믿음을 버립니다. 룻기 1장 1절에 나오는 엘리멜렉도 흉년을 핑계 삼아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처음에 갈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를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결국 그 가정은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도 다 죽습니다. 결국 그 가정에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행을 당하고 나오미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두 며느리들에게 고향 집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때 오르바는 새 삶을 찾아 떠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시머어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면 꼼짝 없이 수십 년 과부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룻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고생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기에 그녀는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되고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21-22절).

인생은 선택입니다. 복된 선택을 해야 복된 길이 펼쳐집니다. 특별한 축복을 받으려면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넓은 길로 가면서 특별한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머리가 되는 축복을 받으려면 앞쪽 머리 편에 서야지 뒤쪽 꼬리 편에 서면 안 됩니다. 서기는 꼬리 편에 서면서 축복은 머리의 축복을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환상입니다.

선택할 때는 앞에 선 선택을 하십시오. 개척자의 길은 힘든 길이지만 가장 복된 길입니다.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면 미래는 불편하게 될 것이고, 불편한 길도 가려고 할 때 미래는 편하게 될 것입니다.

2. 보아스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룻은 베드레헴에 돌아와 먹고살려고 매일 아침 밭에 나가서 추수 꾼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땅의 주인인 보아스가 자기 밭을 시찰하다가 룻을 보고 일꾼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소녀는 누구인가?” 일꾼들이 말했습니다. “모압에서 온 룻이라는 젊은 과부인데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입니다. 얼마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우리 뒤를 좇아 다니면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그날 룻이 보아스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 은혜의 때가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은혜의 때가 되면 좋은 사람도 만나고, 분에 넘치는 은혜도 주어집니다. 그때는 왜 그런 은혜가 주어지는지 이유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은혜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날 점심 식사 후에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을 위해 많은 곡식 단을 떨어뜨려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룻은 자기 앞에 떨어진 곡식 단을 줍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생을 사투하며 살 필요가 없게 되었고, 더 이상 서러움을 당할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때가 우리에게도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만간 우리에게 어떤 사람을 보내서 축복의 단을 떨어뜨려 놓으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미 그 축복이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의 때가 되면 커튼을 열고 예비하신 축복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날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현재의 처지에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그 축복의 열매들이 언젠가 곧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다른 일꾼들은 일한 대가만 얻었지만 룻은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종종 그런 넘치는 은혜를 대하면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하나님! 제가 과연 이런 은혜를 받을만한 존재입니까?” 아무리 봐도 그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죄송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은혜 받고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은혜를 받으면 사람들은 우리의 축복을 보며 질투심을 가지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에게 십자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축복 받는 것도 동시에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받고 혼자만 누리는 기복주의가 아니라면 축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축복 많이 받고 그 축복을 잘 쓰면 됩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아이디어와 창조성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축복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는 것을 죄송해하지 말고 더 많이 구하고 더 많이 좋은 일에 사용하십시오.

3. 보아스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아스의 은혜로 룻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룻에게 주어진 은혜는 일꾼들을 좇아 다니면서 곡식 단을 줍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결국 본문 13절에서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밭에서 많은 곡식 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밭의 소유주가 되었고, 아들을 얻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란 칭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지금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더 행복한 가정을 구하시고, 더 나은 지위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꿈과 비전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기를 꿈꾸십시오.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을 이해하고 더욱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물론 축복만 구하는 기복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한 것처럼 하나님을 먼저 품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품고, 범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은혜와 축복이 우리를 추적하고 우리를 품에 안을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꿈과 비전의 성취도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제 더 큰 비전을 가지십시오. “이제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면 때가 되어 한 아름의 새로운 축복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도 만나게 하시고, 지혜와 통찰력도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마련해 놓은 놀라운 축복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장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현재보다 천배나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천배의 축복은 어떤 축복일까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배의 기쁨과 지혜와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씨를 뿌리면 언젠가 반드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열매를 얻지 못하면 우리 자녀가 열매를 얻을 것이고, 천국 보상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넘치는 축복을 받는 분들을 보면 그의 부모나 조부모가 하나님께 헌신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뿌린 기도와 헌신의 씨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너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산을 받고 출발부터 한참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납니다. 그래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자신부터 좋은 가정과 좋은 가문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룻의 가문을 보십시오. 그녀는 이방신을 모시는 모압 집안 출신이었지만 하나님을 붙잡고 가장 복된 메시야 가문의 일원이 되었고, 신약 마태복음 1장에서 이방 여인으로서 찬란하게 그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 축복이 우리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주일성수를 하며,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추구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시련 중에도 인내하면 누구나 복된 가문의 창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

어느 주일날, 교회를 잘 다니던 한 부부가 교회 가기 전에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예배드릴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골프채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데 그날 갑자기 천둥 번개가 쳤습니다. 그때 골프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한번만 더 치겠다고 하다가 골프채에 벼락을 맞아서 이 남편이 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잘 믿는 아내는 병원에 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보! 많이 아팠지요.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 그러면 남편도 좋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잘못이오. 내가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그 아내는 병원에 와서 대뜸 말했습니다. “당신, 주일날 예배는 안 드리고 골프장에 가니까 벌 받은 거예요.” 언뜻 들으면 아주 신앙이 좋아서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그 찌르는 말을 듣고 정신 차리고 회개하는 남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방정입니다. 잘 믿는 것은 좋은데 방정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 방정 때문에 오히려 전도를 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방정맞은 말이 진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그런 어려움은 사실상 필요한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데 인생이 잘 되는 것은 오히려 저주입니다. 그러면 회개할 기회도 없고, 정신 차릴 기회도 없고, 자신의 높아진 마음을 꺾을 기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지 않고 축복만 바라는 기복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복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까지 축복의 밑거름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면서 과거의 일에 대해 계속 후회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과거의 그 사건보다 미래의 인생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이너마이트가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노벨의 동생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이 실수해서 자신이 죽은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노벨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그대로 죽으면 자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로만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는 제 2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출연해 노벨상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자신의 미래는 새롭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어떻습니까? 그는 사람을 죽이는 다이너마이트 발명가보다는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최고의 노벨상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처럼 언제나 제 2의 기회와 제 2의 삶은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부터 결단하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요새 이건희 회장이 과거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제 2의 기회를 찾고 제 2의 삶을 살면 그의 미래는 크게 바뀔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존경받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치명적인 병이 들기 53세 이전까지는 악덕기업주로 소문났지만 그가 인생 후반기에 참회하고 남을 위해 사는 제 2의 인생을 살았기에 악덕기업주라는 초창기 이미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지금 록펠러 재단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합니까? 그처럼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고, 과거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미래와 인생은 지금 새롭게 결단함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꾸밀 수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실패와 후회스런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그 실패가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 사람들은 외면하고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그때 하나님을 진심으로 맞이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역사는 지금부터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런 새로운 축복이 없어도 실패를 통해 조금 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다면 그 실패는 유익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조금 더 깊게 만나십시오. 그 만남의 깊이가 축복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천배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이웃에게 넘쳐흐르게 하십시오. 지금보다 천배의 지혜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지금보다 천배의 평안으로 수많은 낙심한 사람들을 일으키십시오. 항상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진짜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7. 기도의 감각을 살리자

성경본문: 눅18:1-8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일도 쉽게 포기를 잘 하는 것을 아시고

1절에,‘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에게 한 과부가 원한을 풀기 위해 재판관이 업무를 감당할 수 없

을 정도로 자주 가서 소원하니 너무 번거롭게 하므로 그원한을 들어 주

었다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본문 7-8절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기도의 감각이 무디어서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기도가 열렬하지 못할까요? 기도의 감각을 살리자는 제

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왜 기도의 응답이 없는가?

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응답이 없습니다

약 4:2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기도를 하면 회개도 되고 기도하므로 기도해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되고

기도하면 기도가 좋은 걸 압니다. 그런데 기도의 감각이 없어지면 기도

가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2. 기도의 감각을 어떻게 살리는가?

계속적인 기도가 안 되는 것은 기도의 감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떻

게 기도의 감각을 살릴 수 있습니까?

원한같은 간절한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본장, 눅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과부로서 원한을 품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런 심정으로 기도할 내용

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심정이 됩니까?

(1)성경을 읽으면 도전을 받습니다

딤후 3:15...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

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 읽는 생활과 기도하는 생활이 거의 정비례합니다.

(2)다른 사람의 위대한 신앙을 보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간증도 듣고 책을 통해서도 보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알아보고,

잘 믿는다 소문난 분들을 연구해서 그런 신앙과 축복이 내게도 일어나

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 돌다리 밑에 거지가 동네 불이 났는데, 아들 왈, ‘아버지 우리는 집

이 없어서 좋다...’ 이런 경우는 발전이 없습니다.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 사도적 신앙이 뭡니까? 사도들처럼 사는 것이고 능력을 채워 일하는

것입니다.

3.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최고 좋은 기도 방법입니다

5절 ‘번거롭게 하니’, kovpon(코폰)는 ‘수고, 노력한 것’의 뜻으로

다른 일을 못할 정도의 지장을 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으므로 세상 것은 다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

니하시겠느뇨’

하루에 얼마나 기도를 하십니까?

#루터는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그 날은 마귀가 이기는 날

이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

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

즉’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눅 18:6-7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

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

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불의한 재판관이라 하셨습니다. 그에 상대적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위치에 계십니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

라 하시니라’

본문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시고 말씀의 약속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열심히 구체적으로 기도하시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