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단편을 연결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라

주일설교 - 우연과 단편을 연결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온전한 복음 곧 진리를 따라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애굽의 종에서 자유를 얻어 광야를 거쳐 완전한

자유자로 거듭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구원의 패러다임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도 구원이며,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을 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당연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와 심고

거두는 노동을 통해 수확을 얻는 것도 구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우연처럼

다가온 어떤 표적과 기사에 붙들려 있으면 안 됩니다.

꿈이나 환상이나 짧은 감동이나 감격의

단편적인 체험에 내 맡겨져서도 안 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은혜 아래에 있는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만나와 생수를 얻어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를 받고,

옷이 헤지지 않고 발이 부릍지 않는 보호와 은총을 받습니다.

근데 그게 바로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일 뿐 전 구원과정을

조망할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게 까무러질만한 감동이고 자긍심의 극치이며 선민의 노래를

크게 부를 만한 쇼킹한 사건이지만 희생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영광을 보는 것에 비하면 조무래기와 같은 일들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 아침 우연처럼 찾아 온 어떤 이적이나 기사,

꿈이나 환상 또는 말씀을 듣다가 크게 회개하고 통곡한 단편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아직 길이나 물이나 양식을

스스로 구할 수 없는 광야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은혜의 포도주에 취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피곤하고

지친 인간들을 충분하게 구원하고 도우실 분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리라’(사40:28-29)

그야말로 준비된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그를 찾는 자에게 찾음이 되고 그를

구하는 자에게 구함이 되실 분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능력을 주시고 아니 능력이 되시고 힘이 되어 주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를 찾는 자를 두루 찾으십니다.

우리에게 입을 주신 분이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영혼을 주신 분이 그 영혼에 새 생명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다만 토막신앙 단편신앙에 머물러 젖만 먹으려는 어린 신앙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모든 것을 다 감싸고 때가 될 때까지

그 집행을 유예하지만 진리는 반드시 육신이 심판되는 아픔을

겪어야 하기에 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옷을 갈아입길 싫어하는 아이들처럼 도망을 다닙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사랑을 받는 단계에 진입하려면

고난을 통한 탄식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건망증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 대충 가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는 과연 하나님이 능력이실까? 힘이 되실까?

그렇다면 왜 나를 이렇게 비실비실하도록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이 그 전에 보여주신 것처럼 또 보여 주시면 뭐든지 할께요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일으켜 주신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인정할께요.

이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옛날에는 다 한 가닥을

했노라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신앙의 무용담입니다. 과거 지향입니다. 현재는 없어요. 꽝입니다.

다 듣고 보니 여러분의 이야기 아닙니까?

이제 온전한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을 들으세요.

진리의 말씀 곧 단단한 복음을 듣고 지각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세요.

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의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율법에서 은혜와 진리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마귀에게서 하나님께로,

저주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신 지형지물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한 잔이 되었고,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시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길만도 아니고 진리만도 아니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이 진리의 지형지물을 연결시키고 집중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헌신이 있고 순종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말씀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에게 무엇을 부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청결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가 신앙의

직접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이에 아무런 대용품도 없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해 드린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주님께 나아가서는 큰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생명을 얻고 능력을 얻고 힘을 얻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모든 우연의 기억과 단편적인 은사의 체험을 진리 안에 몰입시키십시오.

받은 은혜의 기억과 단편적인 신앙의 체험을 진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꿰어 보세요. 그리고 연결된 관계를 따라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신앙생활을 믿음으로 얻은 의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만드세요.

거기서 주 예수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새 힘이 되십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한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올라가게 하십니다. 그 연결되고 집중되는 과정에서

주와 연합이 확실해 지고 합성이 되어 그 영과 생명이 내게 흘러들어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영의 융합이

일어나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전환입니다. 바로 인간의 목숨이 갖는 인격이 하나님의

목숨의 인격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만물은 그 생명에 따라 영광이 다릅니다.

사람의 생명의 영광이 있고 짐승의 생명의 영광이 있고

새와 물고기의 생명의 영광이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기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자신의 자격지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내로 그 길을 뚫고 또 뚫어 보십시오.

진리의 지식을 따라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연결하십시오.

거기에 모든 걸 집중하여 올인하십시오.

반드시 주께서 여러분의 새 힘이 되어 주실 겁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

혁신이 일으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당연히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아가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이 이 새롭고 기이한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