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나는 병든 양이 아닌가(계14:4-5)
병이 든 사람이 자신이 병에 걸려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병으로 인하여,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이상이 있으면 곧 진찰을 받아서 병을 고쳐야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시간 양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들의 영육의 병이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방법으로 양이 병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까?
1. 병든 양이란?
1). 먹지 아니한다.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입맛이 떨어져 먹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몸집이 크고 털이 좋고 목소리가 좋은 양이라도 병이 들면 입맛이 떨어져 먹기 싫어한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먹기 싫은 증상이 나타나면 병이 든 징조이다.
교회 나오기 싫고, 성경 읽기 싫고, 설교 듣기 싫고, 기도하기 싫고, 헌금하기 싫고, 전도하기 싫고, 봉사하기 싫다면, 이는 병든 양이 입맛이 떨어져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세상 잡념 때문에 드리는 둥 마는 둥 하고, 헌금을 바치기는 하나 감사한 마음이 아닌 형식적으로 바치고, 기도를 해도 입으로만 하고 마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성경을 배워도 신앙성장을 위해서 배우지 아니하고 상식적으로 알아두기 위하여 배우고, 교회 봉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체면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 병이 들어 입맛이 떨어진 신앙생활 상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상 말씀드린 조건에 해당이 없으면 건강한 양이며 지만 해당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속히 치료할 필요가 있다.
병든 상태로 입맛없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건전한 상태에서 맛있게 먹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억지로 예배참석, 억지로 성경공부,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자진하여 하고 싶어서 하고, 먹고 싶어서 먹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다윗은 주의 말씀이 꿀보다 달다고 하였다. 이는 말씀을 맛있게 먹는 상태를 말한다. 병이 든 상태에서는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맛을 알지 못한다.
건강한 신자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는 신앙의 양식으로 달게 받아먹는다. 그러나 말씀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맛이 있다 없다 하는 신자는 신앙의 병이 있다고 보아야 하겠고 또한 신앙이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건강한 양들이 되어 꼴을 잘 뜯어 먹어야 하겠다.
2).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입맛이 없어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고생을 한다. 신앙이 건강하지 못한 신자는 말씀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예가 있다.
믿음에 병이 든 신자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긍정적이 아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지식이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아니한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신자의 자세는 언제나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소화불량이 된다. 말씀을 받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를 지적하여 보자.
(1). 말씀을 비판하지 말라(비판)
성경을 읽고 나서 비판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비판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아니하며 설교를 비판적으로 들으면 신앙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 어떻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와 경륜과 그 깊은 사랑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받고 소화불량이 되는 것이다.
(2).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의심)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아니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설교 말씀도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말씀을 의심으로 받기 시작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천지가 말씀 한 마디로 되었을까, 예수님이 어떻게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 하나에서 열까지 성경을 의심하려 한다면 모두 의심할 조건들이다.
이 많은 조건들을 의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차차 이해가 되고 믿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믿음 안에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말씀을 지식으로 해석하지 말라(지식)
하나님의 높은 경륜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피조물인 인간의 지식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개껍질로 퍼서 없애려는 것과 같이 무모한 행위이다.
말씀은 말씀으로만 해석이 되고 성령의 도움으로 올바른 해석이 된다. 성령의 도움이 없는 성경해석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자기 좋은 지식으로 해석하려다 할 수 없어서 소화불량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병든 신앙을 가지게 되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마음 속에서 고민하다가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3). 자라지 아니한다.
양이 입맛이 좋아 좋은 풀을 열심히 뜯어 먹으면 무럭무럭 잘 자란다. 그러나 입맛이 없어 억지로 풀을 뜯어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잘 자랄 수가 없다. 사람도 어렸을 때 젖을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는 어린아이라야 잘 자라는 법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잘 먹어야 자라는 법이다.
신앙의 양식, 영혼의 양식은 먹지 많고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고 앉아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너무 열심히 돈을 버느라고 고단하여 신앙의 양식을 못먹고, 먹기 싢어서 안 먹고, 게을러서 못 먹고, 놀러 다니느라 못 먹고,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영의 양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신앙이 자랄 수가 없다.
이 시간에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여 보자. 현재 나의 신앙이 자라는 중에 있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면 내가 영의 양식을 잘 먹고 있는 증거이고 나의 신앙이 자라지 않고 밤낮 제자리에 있다면 신앙이 병든 증거이다.
신앙의 성장은 말씀을 많이 먹고 소화시킬 수 있으면 잘 성장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뚱뚱하면 좋아하지 않아 억지로 다이어트를 하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영혼은 다이어트가 필요없다. 얼마든지 영양있는 양식을 먹어 살이 찔 수 있는 데까지 쪄야 한다.
오늘의 많은 신자들의 영혼과 신앙이 먹지 못해서 시들고 있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또한 못 먹을 독초를 먹어서 믿음과 심령이 앓고 있다.
그러므로 먹지 못해서 또는 잘못 먹어서 병든 양들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좋은 꼴을 많이 먹고 잘 자라는 양들이 되어야 한다.
(히5:12)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4). 자주 앓는 소리를 한다.
양이 평상시에 목자와 같이 있으면서 동료들과 같이 꼴을 뜯어 먹으며 소리를 내는 것은 기분이 좋은 노랫소리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의 소리는 목자와 동료를 찾는 걱정의 소리이며 병이 들었을 때에 내는 소리는 앓는 소리이다.
신자들이 은혜받고 기뻐서 찬송부르는 소리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 소리이며 아름다운 소리이겠는가?
혹시 잘못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소리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을 찾는 기도 소리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가?
그러나 심령에, 신앙에 병이 든 신자는 앓는 소리를 한다.
(1). 불평의 소리
(2). 원망의 소리
(3). 싸우는 소리
(4). 흉보는 소리
(5). 쓸데없는 소리
(6). 잔소리
(7). 모략의 소리
(8). 저주의 소리
(9). 곰살스러운 소리
(10). 욕 등은 병든 신자가 하는 앓는 소리이다.
건강한 심령과 신앙을 가진 신자는 앓는 소리를 하지 아니한다. 건강한 신자에게는
(1).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소리와
(2). 하나님께 호소하는 소리, 회개하는 소리와
(3). 타인을 축복하는 소리와
(4). 타인을 위로하는 소리
(5). 타인을 칭찬하는 아름다운 소리만을 한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리, 긍정의 소리,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교회를 자랑하고 목사님, 성도님을 자랑하는 소리를 한다.
여러분도 내가 가정에 하는 소리는 병든 양의 앓는 소리가 아닌지, 또 교회에서 교역자, 임원 신자들에게 하는 소리는 병든 소리가 아닌지 모든 대인관계에서 병든 양의 앓는 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한 마리 병든 양의 앓는 소리는 모든 양들에게 큰 불편과 지장을 주게 된다. 병든 한 신자의 앓는 소리는 온 교회에 큰 지장과 손해를 주고 모든 신자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고 있다.
앓는 소리를 함부로 해서 교우들간에 이간을 붙이고 싸움을 하게 하고 기분이 나빠서 교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병든 신자의 앓는 소리 때문에 교회가 깨어지는 경우도 있다.
5). 생산을 하지 못한다.
양에게서 목자는 좋은 털과 가죽과 고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좋은 수입의 자원과 영양의 공급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는 양을 치면서 건강한 양으로 키워서 좋은 털, 좋은 가죽, 좋은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하여 양이 새끼를 많이 낳아주는 것을 바란다.
오늘날의 교회가 많은 신자를 얻고자 하는 목적은 이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할 목적으로 잃어버린 인간을 찾고자 하는 데 있다.
목자가 많은 양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많은 신자를 얻고자 하는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려고 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이 건강한 양이 되어 계속 많은 새끼들을 낳아야 목장이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다.
새끼를 낳지 않으면서 양의 우리가 차지 않는다고 원망하여서는 안된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고 빈자리가 많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성도님들이 많은 양의 새끼를 낳기를 바란다.
*+ 우리가 새끼를 낳지 못하는 이유는 무능하든지 병이 있든지 새끼를 일부러 낳기 싫어 산아제한을 한다든지 등의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새끼 낳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하여 제거하고 새끼 낳는 양이 되어야 하겠다.
6). 병이 자주 나고 잘 넘어진다(독초-버리라, 먹지 말라)
건강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유행성 감기는 유행대로 걸리고 목자를 잘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잘 넘어지고 따라가면서도 짜증을 부리면서 따라간다.
여러분은 마음의 병, 영혼의 병에 잘 걸리지 않는가? 그리고 잘 넘어지지는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은혜, 성령충만으로 건강하여 넘어져도 칠전팔기 일어나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이 되자.
신앙이 어릴 때 잔병을 많이 치르고 잘 넘어져 무릎이 깨어지기도 한다. 주님따라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 영문 밖의 길, 좁은길, 광야의 찬바람이 부는 곳이므로 건강하지 못하면 따라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7). 제물이 될 수 없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마다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제물이 되는 양은 반드시 건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는 양이어야 했다.
만일 병이 들고 흠이 있는 양을 바쳤다가는 당장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다. 그러므로 흠이 있고 병든 양은 절대로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여러분은 흠이 없고 병들지 않은 양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바쳐질 산 제물이 될 수 있다면 훌륭한 신자이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이다.
그러나 병든 양이라면, 흠이 있는 양이라면 어떠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병이 들고 흠이 있는 불완전한 양은 제물로 받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제물로 바쳐지려면 흠이 없고 병이 들지 않은 양들이 되어야 하겠다.
2. 양의 특성(양과 염소의 구별)
1). 양은 염소와 구별된다.
(1). 양은 희고 염소는 검다.
우리의 양심이 희어지면 양이 되고 검어지면 염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2). 양은 뿔이 없고 염소는 뿔이 있다.
뿔은 교만과 반항의 상징이다. 염소는 언제나 반항하고 불순종하나 양은 온순하고 순종한다.
(3). 양은 평야를 좋아하고 염소는 높은 산을 좋아한다.
양 같은 신자는 겸손과 화평을 좋아하고 염소 같은 신자는 분쟁과 권위를 좋아한다.
2). 양은 천기를 구별할 줄 안다.
폭풍이 오려 하면 머리를 위로 올려 흔들고 장마가 오려 할 때는 머리를 내린다고 한다.
주님은 너희는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주님 오실 날 징조를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면서 준비하라고 하셨다.
3). 양은 발바닥이 가장 정결하다고 한다.
행실이 정결한 자의 모형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예수 향기 날리자.
4). 양은 늑대가 지나간 곳이나 용변을 본 곳은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악인의 뒤를 따르지 않는 자의 모습이다. 시편 1:1-6의 복있는 사람의 생활인 것이다.
5). 양은 130KM의 속력을 낼 수 있다.
힘찬 전진과 결단성을 말한다. 롯의 처 처럼 뒤돌아보거나 베드로처럼 멀찍이 따라가거나 이스라엘 백성처럼 머뭇거리지 않는다.
6). 양은 잔인하게 죽어 제물이 된다.
영광없는 희생의 표이다.
7). 양의 털은 옷감으로, 기름은 화장품 재료로 쓰여진다.
이것은 자기는 희생하고 남을 보호하는 표이다(소금).
3.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목장 우리 안에 양된 여러분은 모두가 건강한 양이 되어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자라 많은 새끼를 낳는 양들이 되어 목자의 사랑받는 양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