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하는 자세

제목:충성하는 자세(계2:8-11)

바람직한 임원은 충성하는 임원이다. 그런데 충성하는 자세가 문제이다. 충성하는 자세가 바로 되지 못했으면 올바른 충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임원의 올바른 충성을 위하여 충성하는 자세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1. 충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1). 헬라 원어로 (피스토스)인데

(1). 믿을 만한(trustworthy)

(2). 신실한(faithful)

(3). 신뢰할 만한(deperdable)

2). 한문 풀이로 충성(忠誠)이란

중심(中心)으로 말씀을 성취해 가는 뜻이라고 한다.

3). 국어 사전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한마디로 충성이라고하는 말은 거짓없는 것, 또는 의를 다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보겠다.

4). 박윤선 박사는 그의 주석에서 충성의 뜻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1). 진리를 알고 그대로 지킴이고

(2). 직책 파수에 힘을 다하는 것이고

(3). 절개를 지킴이라 했다.

기독교의 충성은 동양적 충성과 다르다. 동양적 충성은 진리 본위가 아니고 맹목적 수구주의에 치우친다. 그러나 기독교적 충성은 진리를 본위로 한다. 또 기독교적 충성은 성실을 생명으로 하는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충성하는 신자는 성경 진리대로 사는 것이고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고 순교적 정신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2. 충성할 사람과 대상

과연 충성할 사람은 누구이며 충성할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1). 하나님의 자녀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할진대 하나님 말씀을 전폭 지지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자의 불순종 생활은 하나님께 대할 불충성의 죄악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일꾼들이 하나님 사업에 충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직분자들을 의미한다.

주님의 교회는 세속 단체가 아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신성한 단체요 권위있는 단체이다.

주님의 교회가 담당하는 사업들은 하나님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받드는 일은 이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도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소명된 일꾼들의 충성에 의해서 그 존재 의의가 좌우되는 것이고 교회가 감당할 하나님 사업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교회 직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갖는 책임은 매우 크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은 종들이 있는가 하면 책망받은 종들도 있다.

3. 충성의 분량(죽도록 충성하라)

1). 일할 때 목숨을 걸고 충성하라

무슨 일이나 열심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라.

2). 시간적으로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

젊었을 때만 아니라 늙어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

3). 환경적으로 무슨 일을 만나도 충성하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충성하라

4. 충성자가 받을 상급은 무엇인가?

1). 충성자가 받을 상급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게 되는 것이다.

(마25:21)에 보면 충성한 종이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칭찬의 소리를 들은즉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충성자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음과 함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2). 충성자가 받을 상급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눅19:17)에 보면 주인의 것에 충성한 종에게 많은 것을 준 것을 볼 수 있다.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했다.

한 므나에 충성하여 열 므나를 남겼더니 열 고을 권세를 얻게 된 것이다.

주님의 일에 충성한 만큼 복을 주시는 것이다. 적게 충성한 자에게는 적게, 많이 충성하는 자에게는 많이 주시는 것이다.

3). 충성하는 자가 받을 상급은 크게 쓰여지는 것이다.

(딤전3:13)에 “집사의 직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고 했다.

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는 말은 더 큰 직분을 의미한다. 즉 크게 쓰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시고 더 큰 직분을 주시는 것이다.

4). 충성하는 자가 받을 상급은 영적 성장이다.

(딤전3:13)을 다시 소개하면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했다.

여기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한 것은 영업적 성장을 뜻한다. 직분자는 주의 일에 충성하는 것만큼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의 자리로 향상하는 것이다.

5). 충성하는 자가 받을 상급은 화를 면하는 것이다.

(마25:26)을 보면 불충성한 종이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바울은 복음전파에 충성한 사도인데 전하지 아니하면 화를 받게 될 것이 두려워서 더욱 충성했다.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화를 면치 못할 것이 두려워서 충성하는 것도 매우 지혜로운 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 일에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져야 한다. 주의 일에 충성함으로 칭찬받고 복을 받고 크게 쓰여지고 믿음의 담력을 얻는 자가 되자.

5. 어떻게 충성할 것인가?

1). 믿음으로 충성할 것이다 (벧전4:11, 히11:6)

(벧전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했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충성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이다.

믿음으로 충성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무식한 사람도 충성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충성할 수 있고 병자도 충성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충성할 수 있고 불구자도 충성할 수 있고 병자도 충성할 수 있다. 믿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충성할 수가 있다.

돈이나 지식만 가지고 일하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충성이 아니다. 돈에 앞서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지식에 앞서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의 일을 내가 한다든지 하는 식의 충성은 인본주의이니 이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은 주의 일을 해놓고도 시험에 빠지는데 이것은 인본주의로 충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믿음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충성할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2).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1). 무슨 대가를 바라보고 충성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해 놓고도 무슨 대가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2). 사람들에게 자랑하려 하거나 칭찬을 들으려고 충성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런 충성은 사람 중심의 충성이다. 사람 중심의 충성자는 사람들에게 인기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3).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동기가 순수하지 않고 무슨 대가를 바라보고 충성하거나 사람 중심으로 충성하게 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주의 일을 하면서 불평하거나 원망심을 품게 되는 이유는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빨리 축복이 오지 않는다고 십일조 생활을 중단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직분 감당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욕하고 방해한다고 해서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주의 일을 하되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사람이야 알아주든지 오해를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가) 대가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나) 오직 하나님께만 보이려는 중심으로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충성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우리의 충성은 동기가 순수해야 되는 것이다.

3). 화평하면서 충성해야 한다(롬12:18, 히12:14).

주님의 일을 할 때 언쟁을 하거나 다투거나 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주님의 일은 화평케 하면서 해야 한다. 서로 섬기는 정신으로 서로 양보하는 정신으로 일을 하면 화평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화평하면서 주의 일을 하면 서로가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화평하면서 주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회의를 하다가 혈기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서로서로 인격을 존중하면서 주의 일을 하기 바란다.

4). 협동하면서 충성해야 한다(막2:1-10, 출18:13-27).

주님의 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럿이 협동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협동해서 일을 하면 일이 쉽고 더 많은 일,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출8:18)에 “그대는 혼자 할 수 없으리라”고 했다.

(1). 그것은 선하지 못한 방법라고 하였다(출18:17)

(선하지 못하다)는 말은 좋지 않다, 아름답지 않다는 뜻으로, 사역의 경우 비효과적이고 비능률적이란 뜻이다.

(2). 혼자는 피차 기력이 쇠하여지기 때문이다(출18:18).

여기 (기력이 쇠하다)는 말은 (쓰러질 것이다)는 뜻으로 일의 성사를 보지 못할 것을 가르친다.

(출18:22) 중에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고 하였다.

(가) 대신관계: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제일주의자(18:21)

(나) 대인관계:진실한 사람 진리의 사람(18:21).

(다) 대물관계: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라고 함(18:21)

우리 속담에 (혼자 먹으면 통째로 삼키다가 목이 막혀 죽는다)는 말이 있다. (독불장군 없다)는 말도 있다. 권력을 혼자 누리고자 하는 자의 말로는 독재자의 운명을 맞이했다. 재물을 혼자 누리고자 하는 자는 예외없이 부정축재자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우리 교회는 모두 함께하는 공감대의 역사이다.

5).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충성해야 한다(롬12:3-17)

어느 단체이고 질서가 있다. 교회도 역시 유기적 조직체인 고로 질서가 있다. 위계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교회가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주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꼭 담임목사의 결재를 받아서 일을 해야 한다. 어느 교회든지 담임목사에게는 목회상이 있고 목회 전략이 있다.

적어도 상식있는 일꾼들은 담임목사의 의중을 살펴가며 담임목사의 목회계획에 어긋남이 없도록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가장 당황하는 때가 있다. 담임목사도 모르게 무슨 엉뚱한 일이 하부조직에서 일어나는 경우이다. 그것도 담임목사의 뜻과 정반대 방향의 일이 전개됐을 경우는 더욱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위계질서를 지켜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6). 겸손하게 충성해야 한다(요13:1-11, 빌2:5-8)

상대방을 무시하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무지한 일이다. 상대방을 높이면서 주의 일을 해야만 성공 확률이 높은 것이다.

교회 생활에 가장 무서운 적은 교만심이다. 지식이 있는 것으로 무식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물질이 있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학벌이 있는 것으로 학벌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하는 것은 교만심의 행패이다. 이런 자세로 주의 일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항상 주님의 일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파괴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주님의 일은 겸손하게 해야 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상대방의 발언을 무시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섬기는 정신으로, 양보의 정신으로 겸손하게 낮아져서 조심조심하면서 주의 일을 할 것이다.

7).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잘 하는 것이 충성(눅16:10-12)

주님께서는 5달란트, 2달란트 남겨온 종을 향하여 칭찬하는 말씀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나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하신 것을 볼 때 주님께서 보시는 충성이란 작은 일을 잘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큰 일을 중요시하고 잘 하려고 하지만 작은 일은 경시하고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충성은 작은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실상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큰 일에는 더욱 충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눅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하는 자는 쿤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만고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인 줄 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일을 잘 하였다. 끝까지 잘하는 것, 시종일관하여 일하는 것이 충성인 것이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혼인 때까지 2대를 거쳐 일평생을 드려 충복으로 충성했으며, 안나는 과부된지 84년만에 예수를 만나기까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봉사한 것은 대망자로서 충성한 것이다.

벳세메스로 가는 암소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새끼의 울음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하여 수레를 불사르고 자기 몸은 각을 떠서 제물이 되었으니 죽기까지 하는 충성이었다.

우리 민족의 최대의 결함은 용두사미로, 시작은 잘 하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폐단이 많이 있다. 충성된 자는 끝까지 잘해야 하는 것이다.

(계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약속하였다.

5. 결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말씀은 죽음의 최후 순간까지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라는 뜻이다.

주의 일은 편안하고 쉽게 감당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만 감당되는 것이다. 주의 일을 할 때 몫의 태인 십자가를 죽음의 최후 순간까지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