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제목:요단강을 건너야한다(수3:1-17)

요단강은 영적으로 어떤 뜻이며 어떻게 건너갔는가? 역사적 지리적 가나안 탐구에서 우리에게 주는 영적 지도를 받고자 한다.

1. 요단강을 건너는 의의

1). 애굽에서 가나안을 향해 가는 성도는 강 두개를 건너야 한다.

(1). 홍해(고전10:2)-물세례

요단강(마3:11)-불세례

(2). 홍해-하나님의 은혜로 전적으로 구출

요단강-성도의 믿음으로 구출

(3). 구약의 약속의 땅은 가나안(축복의 땅)

신약의 약속된 곳 예루살렘(오순절 성령)

유월절:십자가 죽으심과 구속

홍해:물세례를 통해서 중생

요단강:불을 통한 능력

2). 홍해를 건넜을 때 가나안이 아니고 광야였다.

(1). 물세례만 받아 가지고는 천국(축복)이 아니고 광야 교회가 된다. 중생하여 성령을 받아야 광야를 통과하여 주님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2). 성령세례 받아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광야의 연단과 시험이 따르게 된다.

(3). 그러나 광야에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인도하시나 조심해야 할 것은

(가) 뒤(애굽=세상)를 돌아보지 말라.

(나). 원망, 불평하지 말라.

(다). 불순종하지 말라.

3).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안이 된다.

(1). 중생하여 성령충만을 받아야 천국 생활이요 신령한 생활이다.

(2). 요단강 이전의 교인은 가짜 신자이다. 아직 성지에 서 있지 아니하는 신자, 아직 사막에 서 있는 교인!

(3). 속불을 받기 전의 교인은 이름만 가졌을 뿐 사막 행동으로 영광만 가리운다. 성령받지 못했는데 신자 노릇 하려는가! 그에게서는 깨진 소리만 나는 것이다.

2.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수3:1-3, 말4, 5, 8, 13-15)

1). 싯딤에서 떠나라(최선을 다하라) (1절)

(1). 역청의 구덩이가 많은 곳(창14:8-12)

아브라함 당시에 엘람왕이 소돔왕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사로잡아간 곳으로, 역청 구덩이가 많아 소돔과 고모라의 군사들이 빠져 패전한 곳이기도 하다(창14:10).

참으로 이세상은 싯딤의 역청 구덩이 같이 육적으로 빠져 들어갈 함정이 너무도 많다(약1:15). 이러한 곳을 빨리 떠나야 승리의 강을 건널 수가 있다.

(2). 이스라엘이 모압 여자와 간음한 장소(민25:1)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왕 발락의 계교에 빠져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과 간음을 행하고 또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염병으로 2만 4천명이나 죽었다(민25:9).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행위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약4:4).

(3). 이스라엘의 최후의 진지(수2:1)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체류한 곳이었으며(수2:1) 모압 평원에 위치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두 정탐꾼을 파송하였다. 3:3에서는 너희 곳을 떠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거처의 분리를 뜻한다.

하나님의 법궤를 따르려면 자신들의 거처에서 떠나야 한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52:11)

2). 기도하여라(3:1-2, 에4:16, 행1:14, 4:31)

(1). 요단을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 3일 유숙하니 3일 동안 무엇했는가? 기도를 했다. 밤낮 삼일을 나와 같이 금식한 후 규례를 어기고 왕께 가리니(에4:16) 에스더가 생명을 걸고 왕께 나가기 전에 먼저 3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나아갔다.

(2).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3일간 기도를 했다. 어떻게 요단강이 갈라졌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3일간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어떻게 할 때 성령이 임하는가? 기도할 때

전혀 기도에 힘쓰더니 120명 오순절의 불을 받음(행1:14). 저희가 다 성령충만을 받음(행2:4).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였다 함(행4:31).

3). 회개하여라(수3:5)

(1). (수3:5)에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라 내일 여호와가 기사를 행하시리라” 이스라엘은 3일 동안 조용히 기도를 하고 나서는 요단강물에 목욕을 했다. 남녀노소 한결같이 깨끗이 씻었다. 가난안 땅에 들어갈 몸이기 때문에 40년 묵은 때를 깨끗이 닦았다.

(2). 언제 성령이 힘하느냐? 회개할 때

(행2:37)에 “어찌할꼬” 할 때 41절에 은혜받은 자가 3,000명이 되었다.

(렘5:25)에는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사59:1)에 “손이 짧아 잡지 못하고 귀가 둔하여 들리지 못함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죄의 장벽 때문이라”고 함.

(3). 요단강물에 몸을 씻어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

회개해야 축복을 받고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4). 그 뒤를 쫓으라(따를 때) (3:3)

(1). 오직 순종(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행5:32)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2). 법궤를 앞지르지 말며(궤를 메고 백성 앞에 나가고) (수3:6)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백성은 결코 법궤를 앞서지 못했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고(고전4:6) 예수님보다 앞서지 말고 목사님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3).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뒤를 좇으라(2-3)

신앙전진에 있어서 제일 첫째 명령은 유사들이 백성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 명령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거든 그 뒤를 좇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었는데 길이가 2규빗 반 넓이가 1규빗 반 높이가 1규빗 반인 장방형 모양인데 안팎을 모두 정금으로 싸고 사면예 고리 넷을 만들어 채를 꿰어 제사장들이 메고 다니도록 하였다(출25:10-16).

그 언약궤 안에는 아주 소중한 세 가지가 들어 있는데

(1) 돌비에 새긴 십계명, (2) 만나, (3) 아론의 싹난 지팡이다. 이 세 가지는 성삼위 하나님의 임재를 뜻한다.

십계명(하나님의 말씀), 만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성령의 권능의 상징이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에 언제나 승리가 있고 가장 안전한 보호가 있다.

(가). 뒤를 좇아가야 하는 이유(4절):“백성들이 이전에 이 길을 한번도 지나보지 못한 평생 처음인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좇아가면 그들이 행한 길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 좇아가는 방법:(이천 규빗 상거를 두라)

(A).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이것은 하나님의 궤를 멀리서 쳐다보기 위한 거리이니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의 모습이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멀리서 하나님의 언약궤만 바라보면서 백성들이 전진하듯 우리의 삶의 목표와 방향은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B). 너무 멀리 하지 말라---너무 멀리 거리를 두면 법궤가 아주 보이지 않고 만다. (마26:58)에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가다가 예수를 저주하게 된다.

(C). 늘 알맞는 거리를 유지하라.

앞지르지도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늘 주님과 동행하여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 (456장 찬송가 참조)

5). 믿음으로 밟아라(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3:13, 15)

(1). 믿을 때(믿은 후 갈라짐)

물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밟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말한다. 밟으면 그 뒤에 반드시 갈라지리라! 하고 믿었던 것이다.

요단강 물 속으로 믿음으로 들어설 때 물이 목에 차기 전에 갈라졌다. 믿으면 갈라진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믿으면 나타난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안식에 든 자들이다. 언제 성령을 받느냐? 믿을 때, 막11:24에는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받으리라.

이적-믿음(홍해) 믿음-이적(요단강)

(2). 실천할 때(수3:15)

믿음=행함(실천), 진리+믿음=아멘(순종), 언제 강이 갈라졌느냐? 밟을때(실천할 때).

약2:18에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삼상2:3에 행동을 저울로 달아보신다(단5:27).

약2:22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믿음+실천=능력(성령)

요일1:19에 “말과 혀로만 사랑치 말고 행함과 진실로 하자”

(3). 일사각오(15)

요단강 물이 아직 흐르고 있는데도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일사각오로 했던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성령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에스더처럼, 다니엘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일사각오가 있어야 한다.

6).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의존하라(3:8-9)

(렘42:6)에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1). 그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만 쳐다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으로 하는 자는 그의 말씀에 절대 의존하는 자이다. 그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순종함을 뜻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지 못하고 그 말씀을 에누리하여 듣고, 행할 때에도 에누리하여 자기 마음에 맞는 것만 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에누리하다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저주를 받았다(창2:16-17, 3:2-3).

(2). 먼저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군인의 행진에 있어서 상관의 명령이 먼저 시달되어야 하듯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뜻(말씀)을 물어보아야 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9절) 하였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아뢰서 말씀대로 행할 때 실패가 없고 만사가 승리하게 된다. 더구나 평생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위험한 전진을 행할 때 더욱 그러하다.

(3).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 또한 그 말씀대로 완전히 행하지 못하고 반신반의하는 때가 너무도 많다.

히브리 기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니 그 들은 바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히4:2).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화합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할 때 유효되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요단강 물에 들어설 때 강물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는 다만 그의 명령대로 100% 순종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평탄하게 될 것이다.

3. 요단강이 갈라지는 모양

1). 요단강물이 갈라질 때에 어떻게 나타났는가?(3:16)

16절에 “위에서부터 흘러오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일어나 쌓이고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홍해 때는 물벽이 두 개로 섰었다. 그런데 요단강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북쪽 오른쪽에는 물벽이 섰고 남쪽 왼쪽에는 물이 쓸어가고 말았다.

출14:21-25:홍해---좌우에 벽이 되니

(1). 좌편 물벽(남쪽)이 없어졌다는 것은 성령을 받으면 정죄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은혜로 북쪽을 막고 있으므로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하는 축복이다.

(3).홍해에서는 은혜(사랑) 정죄(심판)의 예수가, 요단강에 와서는 심판을 뚝 떼버리고 말았다(요8:15, 12:47).

(4). 성령을 받으면 용서하게 되고 화평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잠기자 물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십자가는 완전한 죄의 종식이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으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진 것과 같이(13),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상에 돌아가실 때 아담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모든 죄(정죄)는 종식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맥 거두는 시기는 언제나 요단강물이 범람하여 언덕에까지 넘친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월절은 인류의 죄악의 절정이었다.

그날 물줄기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뀐 것과 같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부터 인류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된 것이다.

사망이 지배하던 역사가 이제부터 생명이 지배하는 신기원의 조류를 이루어 가난은 부요함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저주는 축복으로, 정죄는 사유로, 지옥은 천국으로 방향이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4. 증거(수4:9, 20)

1). 제사장들이 궤를 메고 섰던 자리에 돌 12개를 (길르앗) 땅에서 주워서 요단강 가운데 세우고=제사장들이 메고 섰던 그 자리에서 물돌 12개를 또 주워서 강 건너 편 (길갈)에 탑을 쌓았다.

이로써 돌 12개가 물속에 잠기게 되었고 돌 12개가 바깥 세상에 세워지게 됐다. 이것은 내증과 외증이다.

훗날에 요단강 물속에 있는 돌 12개를 보고 언젠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넌 때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썰물 되었을 때 그자리에 바로 제사장들이 서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길갈의 돌 12개 탑을 볼 때마다 오가는 행인들이 한 때 물속의 돌이었는데 요단물이 갈라졌을 때 그 속에서 끌어내어온 물돌(수중돌)이라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2). 이 돌과(육지의 돌과) 물의 돌(수중 돌)들은 롬6:1-11에서 주석되는 돌들로서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1). 수중에 세운 열두 돌(9절)

수중의 돌은 주님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것이다. 한 생명이 죽지 아니하고는 새생명의 싹은 움트지 아니한다.

수중의 돌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아니하나 후손들의 입에서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돌 때문에 요단강에서 매장되지 않고 살아 나왔다)라고 오래 오래 역사가 있는 한 전설같이 널리 전파될 것이다.

수중의 12돌은 이스라엘의 표상인 동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원히 기념할 돌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석에서 돌이 아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죽은 내 몸이니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연상케 한다.

(2). 길갈(육지)에 세운 열두 돌(20)

열두 돌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돌이다. 이 열두 돌은 먼저

(가). 요단 가운데 세자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취하였다(3).

(나). 그리고 돌 한 개씩 각 지파가 어깨에 메고

(다). 자기들의 유숙할 곳에 가져다가(8) 거기 두었다가

(라). 길갈에 세운 것이다(20)

취하고, 메고, 가져다가 세웠다. 예수는 먼저 속죄양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백성들은 그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었다. 그러나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 돌을 가져다가 길갈에 세운 것처럼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생명 가운데 다시 살게 된 것이다(마28:5-6).

(3). 이 돌을 영원히 기념하는 이유(4:24).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하심을 알게 하며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3). 생활의 증거를 삼으라

(1). 물속으로 들어간 수중의 돌

(가). 내증(내적 증거 4:9)

요7:38에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리라” 요4:14에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증-물 속에 잠긴 돌--> 마음 속에 불,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 예수의 말씀들을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바울이 다메섹 도상의 이야기를 자주 하고 또 하는 모습을 본다. 왜? 내증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체험이요 간증이기 때문이다(행 22:7, 26:13, 9:1-10)

(나). 수장(옛사람이 십자가에 함께 못박힘으로 장사지낸 바 되어야 한다)(롬6:4).

(수4:9)에 제사장들이 섰던 자리에 돌들을 세우니 요단강물이 갈라진 다음 제사장들이 그 강 가운데 서 있었는데 그 섰던 자리에다 길르앗 땅의 12개의 돌을 옮겨 세워 놓았다.

그 후 강물이 덮이니까 그 돌들은 그만 강물 속에 깊이 잠기고 말았다. 즉 수장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옛사람의 수장을 뜻한다.

애굽에 살 때의 종살이의 습관, 불순종의 습관, 원망 불평의 옛사람을 매장시켜야 한다.

(롬6:6)에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못박혔으니 골 3:9의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엡4:22에는 새사람을 입으라고 함.

(2). 물속에서 꺼내온 육지의 돌

(가). 외증(외적 증거)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넜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 가나안 건너편 언덕 길갈에 돌 12개로 높이 탑을 세웠으며 이 돌들은 물 속에서 가지고 나온 돌들이었다.

그래서 왕래인들이 그 돌탑을 보고서 한때 요단강물이 빠져 육지같이 됐던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단강을 건넜으면 건넜다는 외증이 있어야 한다. 요3:8에 “바람이 불어도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지 못하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아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아니라”

(나). 회개했으면 회개한 증거(마3:8)가 있어야 하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야 한다(사4:21). 성령받았으면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갈5:22).

약2:18에는 네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라고 했다. 분명한 성도로서 생활의 증거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막2:1-10).

(갈2:20)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가 내 속에서 사는 것이니라”. (롬7:6)에서는 옛사람은 죽었으니 이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5. 결론

제사장들이 육지를 밟는 동시에 강물은 다시 넘쳤다(말4:18).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요단강을 반드시 건너야 한다. 천국으로 가는 길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길 뿐이다(행4:12, 요14:6).

하나님의 법궤가 요단강 가운데 있음으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기적적으로 열려졌다. 법궤의 속은 조각목이요 겉은 순금으로 입혔다. 나무는 썪을 수 있으나 순금은 썩지 아니한다. 예수의 인성(나무)은 무덤에 장사지낼 수 있으나 신성(금)은 매장할 수 없다. 속죄소는 양의 피가 뿌려져 있으니 곧 우리의 속죄를 뜻한다.

백성들이 모두 육지에 오르기까지 제사장은 죽음의 요단강에서 있어야 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은 자신이 죽고 사는 체험이 있어야 하고 백성을 위한 대속적 희생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백성들이 육지에 다 오른 후 제사장들이 물에서 올라와 육지를 밟을 때 강물은 다시 넘쳐 흘렸다. 이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의 은혜의 시한을 보여 주신다.

그러기에 법궤를 멘 제사장들은 백성이 다 도강하기까지 물 속에서 발이 시리고 춥지만 인내로써 참고 견디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죽음의 요단강물을 발로 밟아야 한다. 그리고 은혜의 기회가 다 지나가기 전에 빨리 백성들을 도강시켜야 한다(고후6:1-2).

똑같은 강물인데도 물 가운데 법궤의 유무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