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소명

제목:모세의 소명(출3:1-12)

성서학자들은 출애굽기 3장을 모세의 소명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모세의 일생을 3기로 나누어 그의 삶의 의미를 풀이해 볼 수 있다.

(1) 제 1기는 애굽에서 40년간 공주의 아들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2) 제 2기는 미디안에서 40년간 이드로의 목자로서 시련의 생활을 영위하였다.

(3) 제 3기는 광야에서 40년간 자기 동족들과 함께 고락과 운명을 같이 해오다 120세를 일기로 이세상을 떠나가고 말았다.

*+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그의 인생을 통해 알아보면

(1) 40년간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알았다.

(2) 40년간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알았다.

(3) 40년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는 것을 알았다(히11:22-29).

1.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심(부름받은 모세) (3:1-12)

1). 소명의 시기

누구에게나 소명의 시기가 있다. 여기 모세는 80세에 부름받았으니 인생 3분의 2에 이른 노경에 부름을 받았다.

모세는 80년 동안 훈련을 받고 40년 일하다가 간 인물이다. 사무엘이나 예레미야, 다니엘 같은 선지자는 어릴 때에 부름받은 선지자들이다.

우리는 일찍 소명받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 또한 늦게 부름받은 자라도 포도원에 늦게 부른 일꾼처럼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줄 알고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겠다.

*+ 소명에는

(1) 구원하기 위해 부르는 소명과

(2) 구원받은 자에게 사명을 주기 위한 소명

(3) 마지막 천국의 영원한 부르심의 소명이 있다.

2). 소명의 장소

모세는 미디안 광야 호렙산상에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 산이야말로 모세에게는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유서깊은 산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산은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어진 산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부름받기도 하고 병상의 자리나 실패하여 좌절한 자리에서 부름받기도 한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축복 속에 부름받은 것을 감사하고 사무엘처럼 신앙생활하는 중에 부름받은 것을 감사하고 다윗같이 시골 촌놈이지만 불러주심을 감사하자.

*+ 엘리사(농사꾼), 다윗(목동), 베드로(어부), 누가(의사), 마태(세리), 사무엘(성전에서), 나다나엘(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아모스(드고아의 한 촌 뽕나무 밑에서), 예레미야 (솥에 물이 끓는 가마 부엌에서 ), 기드온(타작마당)에서 부름받았던 것이다.

3). 소명의 목적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목적이 있었다. 본문 7-10절에 애굽에서 고통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고 구원하여 가나안에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성취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소명자에게는 그 소명의 환경도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불렀나? 나를 구원하고 가정, 민족, 세계를 구원하라고 먼저 불러 주셨으므로 예수의 증인이 되자(행1:8).

2. 소명 앞에서의 모세의 변명(변명하는 모세) (3:11-4:17)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능한 가장 큰 영예를 안겨 주셨다.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 및 해방자로 삼으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이미 40년 전에 모세가 원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대하고 보니 모세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모세의 4가지 변명을 유의해 보고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 겨 주실 때에 그 일이 너무 큰 것처럼 생각하여 회피하려고 할 때 우리가 하는 바로 그 변명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자.

1). 첫번째 변명(내가 누구관대)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2). 두번째 변명(내가 무엇이라고) (3:13)

너희 조상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라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의 대답은 (3:14)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 세번째 변명(그들이 불신하리라) (4:1)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의 역사 (4:30-31)에 “이적을 행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숙여 경배하였더라

4). 네번째 변명(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함)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나님의 답변 (4:12)에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나님은 항상 인간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신다(약5:20, 고후5:20). 그러나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 즐거움을 알 때까지는 가장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3. 호렙산에서 받은 은혜(은혜를 체험한 모세)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의 생애는 죽을 때까지 능력의 생애였으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애였다.

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능력의 종이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그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1). 어떻게 은혜를 받게 되었나?

(1). 실의자(실패자, 낙오자, 살인자)를 불러(출3:1) 주심으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3:4)하신 말씀을 보면 실의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 때에 모세는 벌써 백발이 성성한 80의 고령이었다. 애굽에서의 준비 40년, 광야에서 실의의 40년은 인간 편에서는 체념이요, 절망의 시기였다.

40년간 모세의 하루 일과는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40에서 80세까지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이것으로 되풀이한 것뿐이다.

(고전1:26)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성별케 하심으로(출3:5)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3:5). 하나님이 인간을 쓰시고 은혜를 주심에 선행되는 것은 성별케 하심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는 종도 거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나 죄인 그대로 쓰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리라고 하셨다.

(사59:1-2)에는 너희에게 은혜 주기를 원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 죄악의 담이 있기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회개하고 깨끗이 성별되면 성령은 물붓듯 쏟아 주실 것이다.

특히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것을 보고서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라고 고백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죄악이 드러나 죽을 수밖에 없음을 탄식한 신앙고백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얼굴을 가리웠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본능적 행위이다. 엘리야도 똑같은 동작을 취했으며(왕상19:13), 하나님의 보좌 앞에 둘러선 거룩한 천사들도 그러했던 것이다(사6:2).

(3).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다.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가) 인간의 관념이나 방법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자기 인본주의의 경험이나 지식, 방법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나) 과거의 역사,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이다.

신은 이력이나 과거의 역사를 가리킴인데 모세의 과거의 역사는 살인죄이다. 물론 개인 감정이 아니라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소명 전의 과거를 벗어버려야 하겠다. 바울은 이것을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표현하였다(엡4:22).

(다) 자기가 종처럼 미천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노예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맨발로 다니는 것이 관례였는데(눅15:22), 이는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고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내세울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단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지로 더럽혀진 신을 벗듯이 우리의 죄를 벗어 하나님 앞에 서야 은혜와 능력을 받는다.

(라) 종으로서의 절대 복종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뜻은 종으로서의 절대 복종을 가리킴이니 종은 신을 벗고 주인을 위해 봉사하기 때문이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종들을 부르신다. 소명에 응할 자는 누구인가?

2). 호렙산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1). 그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나그네 인생)

그는 바로의 궁에서 40년은 왕자로 살았으나 하루 아침에 목동의 신세가 되었다. 그는 인생은 나그네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은 것임을 알았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공의 길은 빠른 법이다.

출2:22에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고 했다. 게르솜은 (타국의 나그네)라는 뜻이다.

모세는 나그네의 고충생활을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다”(시90:10)라고 술회하였다.

야곱은 바로에게 자기의 인생관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라고 술회하였다. 세상은 험악한 황야요, 인생은 가시밭을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 나그네 인생이란?(벧전1:17-21)

{1} 기독신자들의 집은 하늘에 있고 땅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빌3:20, 요14:1-6).

{2} 그리고 세상은 잠깐이어서 하룻 밤에 유숙함같이 짧다는 것이다(히11:13, 시90:9-10, 엡5:15-21).

{3} 모든 것이 불편하고 괴로우며 늘 고향을 그리워한다.

{4} 아버지 집에 가기 전에는 참 평안이 없고 만족이 없다.

{5} 나그네 생활에서 뜻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6) 나그네 생활에서 짐이 가벼워야 한다.

{7} 나그네 생활은 언젠가 끝이 나고 고향에 간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을 향하여 외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였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였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았다(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능히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모세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씩이나 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게 되고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를 계시하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인데 “나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12)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상의 완전한 보장은 없다. 출애굽 사역의 주역자는 하나님이시다. 모세가 아니다. 따라서 주역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이 말씀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없는 것이다.

*+ 모세가 만난 하나님이란?

{1} 공의로우신 하나님(불꽃) (출3:2, 신4:24, 히12:29)

{2} 거룩하신 하나님 (출4:5, 히12:28-29)

{3} 열조의 하나님(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출3:6)

{4}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출3:7)

{5} 구원하시는 하나님 (출3:8)

{6} 스스로계시는 하나님 (출3:14)

{7} 함께하시는 하나님 (출3:12)

(3).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의 무능함을 알고 실의에 빠져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엄청난 사명을 주셨다.

이 세상에 사명이 없는 존재는 한 사람도 없다. 조그만 들꽃, 참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사명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을진대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인 것이다.

여러분들에게는 가정의 인가기도의 사명, 전도의 사명, 기도의 사명, 물질 봉사의 사명 등 갖가지 사명이 있다. 모세처럼 잘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기를 바란다.

사명의 목적이 있었다. 본문 7-10절에 애굽에서 고통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고 구원하여 가나안에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성취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고전4:2)에 “오직 맡은 자에게서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했고 (계2:10)에도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20세기의 호렙산이 되고,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소명의 소리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은 20세기의 모세가 되어

(1) 가정을 구원하고

(2) 민족을 구원하고

(3) 세계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란다.

4. 소명 앞에 복종한 모세(사명자의 가는 길) (4:18-31)

“너는 애굽으로 돌아가라”(19). 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지닌 모세를 향하여 발하신 여호와의 명이시다.

이제까지 연거푸 4번이나 사명받기를 거부해 오던 모세이지만 호랍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상 애굽으로 가서 백성을 구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사명자에 대한 파송사(19-21)

모세를 보내시는 여호와의 파송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다.

(1). 애굽으로 돌아가라(19)

사명자 모세를 향한 파송사의 첫째는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즉 그의 사명을 수행할 선교지에 대한 지시를 다시 한 번 밝혀 주시는 것이었다.

이집트! 이곳이 바로 그가 가야 할 임지이며 바로왕이 곧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그곳이 자기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이 억류된 고장이다.

애굽이야 말로 세상 나라를 상징하며 바로왕은 악마의 화신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거기 억류된 이스라엘 백성은 마귀에게 포로되어 있는 택한 자로 비유됨은 설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고 말하였지만 애굽이야말로 모세의 교구이며 선교지였음은 사실이다.

성도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없고, 세상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은 모두가 현대의 애굽인 것이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아직도 마귀의 종이 되어 아우성치는 무리들로 꽉 차있다.

(이제 너는 애굽으로 가라) 오늘도 미디안에서 망설이며 선교의 사명이 없는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준엄하게 경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각자는 자각해야 할 것이다.

(2). 이적을 행하라(21)

미개한 백성과 강포한 왕을 설득시킴에는 이적을 행하는 길이 최상의 방법이다.

더구나 당시 애굽의 술사들이 자기들의 술법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으니만큼 이적으로 애굽의 술사를 제압해야만 했었기에 이적을 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23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룩할 열 재앙의 이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적을 행하라) 하시고 이를 예시해 주시는 것이다.

유월절이 암시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며 이는 곧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구령이 되는 기독교 교리상 가장 중요한 암시이며 또한 놀라운 이적이며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오늘에 있어서도 우리가 경이할 만한 놀라운 이적은 역시 (나와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사실인 것이다.

2). 사명자의 성결(24-26)

본분 31절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사명을 받고 임지로 떠나는 모세를 (길의 숙소에서 여호와께서 만나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다(24).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모세를 죽이려 했는가는 알 수 없을 뿐더러 어떠한 방법으로 죽이려 했는가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기는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길의 숙소에서 중병에 걸린 것으로 추측하며 그 이유는 그의 부정한 요소를 제거함으로 성결케 하기 위함이라고 풀이한다.

(1). 할례를 행하라(창17:9-14)

사명자가 임지로 가는 여정의 숙소에서 뜻밖에도 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 그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절단하여 모세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한 사실로 미루어 이제까지 모세는 아들 게르솜에 대한 할례의 의무를 이행치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25).

이제 막상 사명자로 행하려는 (길의 숙소)에서, 이스라엘의 장자 즉 할례받은 백성들을 구원하러 가는 길목에서 “바로가 만일 이스라엘의 해방을 방해할 경우 장자를 죽이라”(23)는 엄숙한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오늘에 있어서 아직 할례받지 않는 아들 게르솜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모세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그러므로 할례받지 못한 게르솜이 먼저 죽어야 할 뿐더러 이 의무를 태만히 한 아버지로서의 모세부터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타당한 일이며 또한 이는 극히 엄중한 논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에 남편에게 임하는 사망의 선고를 듣고 당황한 십보라는 돌칼을 들고 대들어 아들 게르솜의 양피를 절단하여 모세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애굽인의 죽음과 이스라엘인의 구원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성이 죽고 의에 사는 산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 가정에서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라(딤전5:8, 벧전3:1-8)

이는 성도의 가정에서의 신성한 의무 이행에 태만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케 되어야 한다는 필수적 조건의 이행을 촉구해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성결해야 할 성도의 가정은 아직도 육정에 끌려서 우리들의 자녀들은 세례 없는 자들이 되고 우리들의 남편은 아직도 (참으로 피 남편)이 못되고 있어 큰 일을 계획할 때마다 방해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에 대하여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욱 악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딤전5:8).

3). 사명자의 동역자(27-31)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모세는 여호와의 주선으로 자기를 찾아오는 형 아론을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만나게 되었다. 실로 40년만의 형제 회우의 감회가 사뭇 컸을 것으로, 피차의 다정한 입맞춤으로 인사를 교환하였다.

(1). 우리는 이 사실에서 친척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제가 복음전선에서 같이 일한다는 사실은 매우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세야말로 하나님의 산에서 여호와를 만났고(3:2) 또한 동역자로서의 형 아론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하나님의 사업의 동역자를 또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과 협동으로 사명을 위해 출발하였지만 그후 40년의 광야생활에서 동역자로서의 상호간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는 아론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협조자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방해자가 되기도 하였다(출32:4, 민12:10).

그 후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모세가 여호와의 주선으로 이번에는 호르산에서 아론을 만나게 되지만 그때는 형 아론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몸에서 제사장의 옷을 벗기며 그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모세는 그 당시 가나안에 문턱까지 와서 죽는 형 아론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명을 어긴 형 아론의 최후에서 동기간으로서 또는 동역자로서의 비감을 느껴야만 했으며

불원간 그를 뒤따라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역시 죽어야 할 자신의 아쉬운 모습을 그려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에게 있어서 형 아론과의 상봉과 사명지에로 동행케 됨이야말로 여간 흐뭇하고 대견스런 일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이런 의미에서 복음전선에서 뜻을 같이 할 동역자를 만난다는 것이야말말로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각각 형제간에, 빌립과 나다나엘은 친구간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간에,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부부간에 각각 동역자로서 아름다운 면모들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모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론의 입장에서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이 못 하지만 사명자란 오직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5. 사명자와 충성(3:1-2, 5-6, 계2:10, 고전4:2)

1).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히3:5-6)

히브리 기자는 모세의 충성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히3:1-2)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히3:5-6)라고 하였다.

2). 사명자란 다른 조건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오직 주를 향한 일편단심의 충성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직 주께만 충성하고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기를 바란다.

*+ 충성이란 무엇인가?

{1} 헬라 원어로 피스토스인데

믿음을만한, 신실한, 신뢰할 만한

{2} 한문 풀이로 충성(忠誠)이란

中心으로 말씀을 성취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3} 국어사전에서는 참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인데

거짓없는 또는 성의를 다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4} 박윤선 목사 주석에서는 충성의 듯을 세 가지로 정의했는데 진리를 알고 그대로 지킴이고, 직책파수에 힘을 다하는 것이며, 절개를 지킴이다(변하지 않는 것).

5. 결론

오늘 우리들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명에 복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