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

제목:사명자(딤후2:3-6)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러스킨이 이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각각 사명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누구든지 나에게 맡겨진 특별한 일을 대신하여 줄 사람은 없다. 나는 나의 사명을 실행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라고 말하였듯이 실로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깨달아 완수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사명자)라고 할 수 있다.

*+ 사명자란(Misson)?

(1) 하나님의 사절단

(2) 성령의 파견자

(3)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자

(4) 지명을 받은 자(Appointed)

(5) 하나님의 명령이 임한 자

(6) 한님의 뜻이 임한 자 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1. 사명자란 어떤 자인가 ?

1). 사명자의 세 가지 모습(딤후2:3-6)

본문은 성도에 대하여

(1) 싸우는 군사와

(2) 달리는 선수와

(3) 씨뿌리는 농부 세 가지로 비유하고 있다.

군사가 고난을 겪지 아니하면 승리할 수가 없고 경주자가 인내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쓸 수가 없으며 농부가 땀을 흘리지 아니하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본문은 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내면 승리가 올 것이고 기쁨이 도래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군인에게는 승리의 기쁨, 경주자에게는 면류관의 상급, 농부에게는 곡식의 수확이 그것이다.

(1). 싸우는 군사(딤후2:3-6, 엡6:10)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전쟁터와 같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이라고 하는 전쟁터에 출전한 병사들이다.

더욱 믿는 자들을 쓰러뜨리려는 사탄의 유혹이 많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사탄과의 사움에서 이겨야 할 십자가 정병이다.

따라서 우리는 죄악을 이겨야 한다. 유혹도 이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겨낼 힘이 없다. 세상을 이길 이김은 오직 믿음 뿐이다(요일5:4).

우리는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

(2). 경주자(운동선수)(딤후2:3-6, 히12:1)

이세상은 경주장 같은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자 인생이다.

이 거리는 짧지만은 않다. 일생을 두고 달려야 할 거리이다. 그러므로 꾸준히 달려야 한다. 땀이 나고 다리가 아파도 달려야 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경주자 인생들의 유일한 푯대이다(빌3:14). 그리스도를 목표하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자는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일하는 농부(딤후2:3-6, 마20:1-16)

인간이 포도원 같은 세상에 태어날 때에 빈등빈둥 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포도원 같은 세상에서 노동자처럼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게 된다(고후9: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더욱 열심을 품어야 한다.

또 포도원 같은 세상에서 열심히 씨를 뿌려야 한다. 씨를 뿌릴 때에 눈물을 흘리면서 뿌리면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올 것이다(시126:5-6).

2). 사명자의 특징(딤후4:7)

본문 7-8절 말씀은 사도 바울 선생의 승리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이러한 간증과 고백을 남겨놓고 주님 앞에 서기를 소원한다.

성경학자들은 이 바울의 고백이 사람에게 인정을 받거나 또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거나 또는 훌륭한 생활과 업적을 기념해 주었으면 하는 의도에서가 아니고 고달픈 싸움이 종막을 내리게 된 통쾌감에서이고, 또한 동역자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해서이며, 우리 전체 기독신자에게 승리를 고무시키기 위한 간증이요 고백이라고 한다.

실패자에게는 부자유와 고통과 사망이 뒤따라오거니와 승리자에게는 자유와 환희와 영광이 수반되는 법이다.

기독 신자는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고 진리로 불의를 이겨야 한다.

(1). 싸웠노라(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이세상은 전쟁터요 인생은 싸우는 군병이라고 했다(욥7:1).

우리는 지금도 질병과 가난과 불의와 더불어 싸우고 있다. 바울은 자기의 활동, 그의 걸어온 삶을 싸움으로 비유하였다.

이 싸움은 육의 싸움이 아니요, 신령한 싸움이요, 선한 싸움이다. 우리 성도들의 삶은 군사와 같이 싸우고 전투하는 것이다. 생이 끝나는 날까지 싸우되 마귀와 죄와 세상과 또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바울은 딤전6:12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다(딤후2:1-4, 딤전1:18, 고후10:4, 고전9:26, 엡6:13-17).

우리는 힘써 싸우자. 싸워 승리하는 자가 되자. 싸워 이기려면 전신갑주를 취해야 한다(엡6:11-18)

(가) 바울이 싸운 선한 싸움이란?

(A) 깨끗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B) 정당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C) 법대로 한 싸움이라는 뜻이다.

(D) 아름다운 싸움이라는 뜻이다.

(E)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싸움이라는 뜻이다.

(나) 싸움의 대상(딤전6:9-10, 엡6:12)

(A) 자기 자신과 더불어 싸웠다(요일2:15).

(B) 이세상과 더불어 싸웠다(히12:4, 약4:4)

(C) 율법주의와 더불어 싸웠다(요2서1:10, 요일5:4)

(D) 마귀(사탄)와 싸웠다(벧전5:9, 약4:7).

(다) 선한 싸움의 무기(엡6:17)

(A)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으로 무장함으로(롬1:16, 히4:12, 마4:3-4, 5-7, 8-10, 엡6:17).

(B)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무장하고 싸웠다(고전1:18).

(C) 영적무장-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으로(엡6:10-17).

(D) 백절불굴의 믿음으로(히11:30-32).

(2). 달렸노라(나의 갈려갈 길을 마쳤다.

성도의 삶은 경주장에서의 경주자와 같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 그는 목적지에 골인하여 과거를 회개하고 잘 달렸다는 느낌을 표했다.

바울은 경기 중에서도 특히 이목을 집중하는 도보 경주인 달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는 법(규율)을 따라 달려야 한다. 또한 다른 선수를 시기하거나 방해하지 아니하고 꼭 자기 코스를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선수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연습하고 준비하는 동안에 음식을 조절하고 수면과 운동을 규칙있게 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 말은 선수가 목적한 곳에 도달하여 외치는 감격에 벅찬 만세 소리와 같은 것이다.

*+ 마라톤 경주와 같은 장거리 경주에서 보면 처음 출발할 때에는 앞길이 묘연하다.

마라톤 경주의 코스는 26마일 385야드 곧 42.195KM로 우리말로 105리가 조금 넘는 거리이다. 긴 코스를 달려가는 시간은 현재 세계 기록이 2시간 7분대이다. 그러면 한 시간에 평균 40리를 달려가야 되는 셈이다.

(가) 달려갈 길을 다 갔다는 의미

(A) 정당한 길로 갔다는 뜻이다.

(B) 정단한 길에서 이탈하지 아니했다는 뜻이다.

(C) 낙오자가 되지 아니했다는 말이다.

(D) 끝까지 갔다는 말이다.

(나) 바로 달려간 비결

(A) 방향 목표를 설정하라(히12:1-2, 고전9:26, 빌3:14).

(B)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히12:1, 빌3:13)

(C) 뒤돌아보지 말라(뒤엣 것 잊어버리고)(눅9:62)

(D) 앞을 향해 계속 전진하는 것(사40:31).

(다) 달려간 목적(바로 달려가는 이유)

(A) 장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인정받기 위하여(갈6:8)

(B)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해(딤후4:8)

(C)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D)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3). 지켰노라(나의 믿음을 지켰으니)

농부가 종자를 내년에 심기 위해 비록 지금 굶주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 씨만큼은 먹지 않고 놔두는 것이다. 성도는 다른 것은 다 잃어도 믿음만큼은 지켜야 한다(믿음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니).

싸움에는 적극적인 공격전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소극적인 방위전도 필요하다. 방위를 잘못하면 공격전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일평생 동안 승리의 길을 걷게 된 원동력은 그의 믿음이었다.

환난을 당할 때 믿고, 시험을 당할 때 믿고, 해상에서도 믿고, 옥중에서도 믿고, 로마시의 단두대상에서도 믿었다. 그의 생애는 진실로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마쳤다. 끝까지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이다.

우리는 믿는 자이니 순경에서나 역경에서나 남풍이 불거나 북풍이 불거나 믿어야 한다. 최후일각까지 굳게 믿음을 지키자.

교회에 침투하는 이단사설과 개인의 심령을 파고드는 잡된 죄악의 생각에서 내 믿음을 잘 파수하여야 지옥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농부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가뭄과 병충해 속에서 지키듯 파수꾼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경종을 울려야 한다.

(가) 무엇을 지켜야 하나

(A) 믿음을 지켜야 한다(벧전1:7, 딤전1:7).

(B) 생각(마음-양심)을 지켜야 한다.

(C) 행동(언행심사)을 지켜야 한다.

(D) 말씀을 지켜야 한다.

(나) 지켰으니의 뜻

믿을 지켰으니(텐 피스틴 테테레카:την πιστιν τετηρηκα)는 (그 믿음을 간직했으니, 붙들었으니, 준행했으니)라는 뜻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 순수한 믿음을 그대로 간직한 것을 뜻하며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든 것을 뜻하고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 살고 증거한 것을 의미한다.

주여! 저희들로 하여금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하옵소서

(A)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B) 기도와 간구로

(C) 충성과 봉사로

(D) 일사각오로

(다) 지켜야 할 이유

(A) 믿음은 구원을 얻는 단 하나의 방편이 되기에(엡2:8)

(B) 믿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므로(히11:6).

(C) 하나님과 영의 세계는 믿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D) 믿음은 자신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방편이기에(요일5:4).

(E) 믿음은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에(막9:23, 빌4:13, 눅18:27).

(F)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눅5:7).

(G)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여러 가지 축복을 받기 때문에(마8:13, 9:22, 15:28, 요20:29)

(a)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이 됨(히11:4, 롬4:5)

(b)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얻음(요3:16, 5:24, 벧전1:19)

(c)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요1:12, 히11:11)

(d) 믿음으로 천국과 영원한 천국을 믿음(히11:6, 요14:23)

(e) 믿음으로 병고침을 받음(약5:14-16)

(f) 믿음으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음(엡3:12, 히4:16)

(g) 생수를 얻음(요4:10)

*+ 어떤 믿음을 지켜야 하나

{1} 순종하는 믿음(노아)

{2} 사랑(요한)

{3} 소망(스데반)

{4} 기도(엘리야)

{5} 인내(욥)

{6} 믿음(아브라함)

{7} 감사(하박국)

3). 사명자의 본받을 점

(1). 군사-->선전승리

군인이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후에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인이 싸움에서 실수나 실패함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본받을 점은 군사처럼 싸움에는 목숨을 거는 일사각오와 순교 결사적 신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훈련 때 땀을 많이 흘리는 자는 전쟁시 피를 적게 흘린다는 사실을 알고 훈련을 잘 받아 좋은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 바란다.

(가) 고난을 받아야 한다(딤후2:1-6, 빌1:29)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하였다.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지 고난이 없이는 성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군인생활은 고난 중에도 격심한 고난을 겪는다.

특히 바울의 신령한 전투생활은 참혹한 전쟁마당과 같았고 고난이 극심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주님을 위해 그의 적에 대항하여 싸우며 그 싸움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고난을 받을 것을 예기하고 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재난이 왔을 때 그것을 참으며 자신을 고난에 숙달시키고 견디며 고난에 의해 충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빌1:29)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은 다만 그를 믿고, 그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나)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아니한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미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고 하였다. 자기 개인이나 가정 생활에 얽매이지 못하는 것이 군인생활의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자신을 바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세상에 사는 동안 생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분을 한 쪽으로 밀어버려서는(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다) 모집한 자(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근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대장(예수 그리스도)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이다. 이것이 모든 신자의 제일되는 본분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에 의하면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2}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고전10:31, 롬11:36, 시37:24-26, 요17:22-24)이라고 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히11:6), 회개(눅15장), 순종(삼상22:25)이다.

(2). 경주지-->사명완수

경기자에 대해서 바울이 특별히 흥미를 느껴 설교 예화로 사용하기를 좋아하였다(고전9:24-27, 빌2:16, 3:14, 딤전6:12, 딤후2:5, 4:7-8, 히10:35, 12:1등).

경주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기 코스에서 다음 코스까지 바톤을 넘겨주는 것이고 골인 지점까지 달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는 달리는 운동 선수와 같으므로 면류관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사명자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사명자를 찾고 계시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마지막까지 사명을 완수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5)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법대로 경기한다는 것은 성도 생활의 ABC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시다(고전14:33-40). 그리고 법대로 한다는 것은 경기자의 생명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부패를 극복하고 법(규칙)을 잘 지켜야겠다.

우리는 법을 잘 지키지 않는한 상받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날 가로질러가는 불법자가 많다(마7:22).

남의 양을 도적질, 약탈, 탈취하며 해괴한 방법 등을 동원하는 등 불법을 행하는 자가 많다. 그들은 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법대로 경기하는 자란,

{1} 자기 훈련

{2} 그리스도의 생활과 가르침이 보여주는 규칙들에 따른다는 뜻이다.

{3}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버리라는 일이다(히12:1-2).

여기에서 (얽매이기 쉬운 것)이란 죄의 짐을 의미한다(히12:1-2). 경주자 인생이 면류관을 얻으려면 얽매이기 쉬운 정욕의 짐, 물욕의 짐, 오만의 짐 등을 벗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무거운 것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를 얽매고 있어 경주할 수 없게 하는 모든 죄악을 말한다.

천로역정의 기독도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은 다음에 천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갔다.

너무 기초적인, 상식적인 것을 신앙인들은 흔히 무시하기 때문에 결국 신앙의 경주에서 실패하거나 도중에 탈락하는 자를 보게 된다.

현대의 스포츠를 보자. 특별히 기록경기인 수영 경기에서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거리끼는 것이라면 피해 보고자 수영선수들은 그렇게 아끼던 머리털이라도 깎아버리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아닌가?

(라) 인내하며 절제해야 한다(히12:2-3, 약5:7)

달음질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막히고 땀이 흐르고 목도 마른다. 견디기가 어려우므로 가다가 그만둘 생각이 간절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중도에서 그만두면 실패다. 그러므로 괴로워도 끝까지 견디며 나가야 한다. 만사가 중단되면 안된다. 특히 신앙의 경주에는 더욱 그런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여러 가지 참기 어려운 일에 부딪히기도 하며 마음이 괴롭고 답답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고 견디어야 한다.

(히12:2-3)을 보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다(약5:7-8 참고).

(3) 농부-->신앙 수호

농부가 씨나 나무를 심고 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충해를 막아야 하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하고 추위 더위 등에 잘 지켜 보호해야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도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게 해야 하고 100배, 60배, 30배 이상 결실을 맺도록 땀을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 추수의 원칙(심고-가꾸고-거두고)

(A) 심어야 한다(좋은 씨를--좋은 밭에)

(B) 양대로 거둔다(심는 대로 거둔다).

(C) 종자보다 많이 거둔다(30-60-100배)

(D) 때가 되면 거둔다(길이 참아야 한다. 약5:7)

(나) 수고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롬12:11).

(A)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는 신분

(B) 육적인 일에도 신령한 영적인 일에도 최선을 다하라.

(C) 성도는 삼액체가 흘러야 한다(땀, 눈물, 피).

(D) 주 안에서의 수고는 헛되지 아니한다(고전15:5-8).

(E)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한다.

(다) 곡식을 먼저 취할 권리는 수고한 농부에게 있다.

게으르지 않고 힘쓴 자는 상 받을 자의 첫머리에 설 것이다.

칼빈은 이 구절을 (농부가 곡식을 받기 전에 먼저 수고해야 된다)라고 번역하고, 영어 흠정역문은 이것을 (먼저 곡식을 나누는 자가 되리라)고 역술해서 수고 전에 먼저 상을 받을 것을 말한 뜻이라고 했다.

이런 뜻보다도 본절의 요긴한 뜻은 (봉사에 수고를 많이 한 자가 수상자의 머리에 선다)는 것이다.

4). 사명자의 결과(공통점)

(1). 군사-->승리

영광-->승진-->자유

(2). 운동선수-->금메달

영광-->상금-->명예

3. 사명자의 목적과 사명자의 마음 가짐(막3:13-14, 골3:15-17)

1). 예수께서 제자들을(사명자) 세우신 목적(막3:13-14)

(1).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훈련)

예수 자신에게 봉사하게 하며 또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일정한 훈련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도들이 독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다. 예수님과 함께 계셔서 그에게서 진리를 교훈받고 인격을 배우고 본받으며 천국건설의 일꾼으로 훈련을 받는다.

주님과 동거동식하며 그 제자로서의 훈련을 받고 나아가 주님을 대행하는 일들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다.

(2). 또 보내사 전도하자 하시며(증인 사명)

사도들을 부르진 둘째 목적은 일정한 훈련이 끝난 후에는 그들을 내어 보내사 전도하게 하셨다. 이것이 제자들의 사명의 중심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훈련을 그 후에도 계속하였다. 예수님은 이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여 각기 활동하시되 양을 이리 중에 들여보낸 것과 같이 조심스러우나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고 지혜는 뱀같이 하라고 하셨으며 최후의 분부로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 노릇을 하라(행1:8)고 하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다(마28:20).

하나님은 우리를 택해서 보내신 것이다. 복음을 들고 불신자를 향해서 타락한 자를 향해서 실망에서 허덕이는 자를 향해서 보내신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보내기 위함)이다. 메시지를 갖고 가도록 보내신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다.

(3). 귀신을 추방시키기 위함에서이다(표적)

원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었으나(막1:26) 이제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부여하신 것이다.

이 권세는 복음전도에 쓰여지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이 구절에 (또 병을 고치시며)가 첨가된 것이니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신 것은 그리스도의 표적인 동시에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영권의 특징이시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능력을 주어 악령을 쫓아내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워 악령을 쫓아내는 큰 역사가 일어나게 한 것이다.

*+ 복음이 이르는 곳에 흑암의 악령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능력을 주신 것이다.

{1} 귀신들린 자는 소리를 지르며 물러나오게 되었고

{2} 질병에서 놓여나게 된 것이며

{3} 죄악에서 해방되게 된 것이다.

2). 사명자의 마음 가짐(골3:15-17, 삼상16:7)

(1). 그리스도의 강이 그 마음을 주장해야 한다(15)

과연 사명자의 마음에 평강이 없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다고 한다면 이는 주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마음상태이다. 주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마음 가짐은 평강이다.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곤고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든지 그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주장하여 주심을 받는 마음이야말로 사명자의 마음인 것이다.

빌4:6-7 말씀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다.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올지라도 사명자의 마음은 그 무엇이 그 마음을 주장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오직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주장하심을 받을 때 주께서 역사하신다.

*+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케 한다(사26:3)

{1} 옥토가 된 심령 상태(마13:23)

{2} 뿌리를 강변에 뻗치었다(시1:3).

{3} 주만 의지하는 심령(렘17:7)

(2).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야 한다(15하)

감사하는 마음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생활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명을 받고 주의 일을 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일을 한다고 하면 외식하는 자요 삯꾼이 될 수 밖에 없다.

(딤전1:12)에 “나를 능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였다(고후3:6참고).

*+ 마20:1-16을 보면 아침부터 와서 일을 한 사람은 삯을 위하여 일한 사람이요 오후에 와서 일을 한 사람은 포도원의 일꾼으로 쓰여짐이 너무 감사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할 때 하루 품값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곧 사명자의 마음 가짐이다. 과거나 현재나 앞으로나 위대한 일을 할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엡5:20참고).

*+ 원망치 않고 감사하는 사람(빌4:6-11)

{1} 마음으로 몸으로 감사(롬12:1-2, 빌4:6-11)

{2} 생활로 감사(고전10:31)

{3} 물질로감사(빌4:16-19)

(3). 말씀이 풍성히 거해야 한다(16)

과연 사명자라는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치 못하면 그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말씀은 곧 능력이고 생명이며 또한 무기이므로 그런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풍성히 거할 때에 모든 움직이는 전체가 말씀 안에서 움직이게 되므로 말씀대로 움직이는 역사가 함께하는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므로 말씀대로 역사하시므로 그 말씀이 풍성한 종은 자동적으로 말씀대로 역사하는 종이 되는 것이다.

*+ 주의 말씀이 풍성한 사명자

{1} 말씀은 원수를 몰아낸다(마4:4).

{2} 말씀은 능력이다(히4:12).

{3} 말씀은 치료한다(히4:12, 말4:2).

(4). 무엇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여야 한다(17)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받을 권리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얼마든지 하나님께 받을 특권이 있는 것이다(요14:14). 그러므로 나 자신의 명예나 주권은 모두 버리고 예수 이름으로만 행하는 인격이 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받게 되므로 예수의 이름의 권세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늘 위에나 땅 위의 모든 일에는 예수의 이름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니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은 백전백승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시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상달되고 주님 이름으로 대접한 냉수 한 잔도 상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은

{1} 나라는 의를 세우지 않고 주의 의만 자랑하는 것이다.

{2} 자기의 영광을 바라거나 구하지 않고 주의 영광만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라야만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3} 자기의 일을 생각지 않고 주님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3). 사명자를 위한 주님의 약속(막16:20)

(1). 주께서 함께 역사하시며(마28:20)

사명자에게는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사명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강하고 담대하게 주의 일을 용기있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2). 그 따르는 표적으로(막16:17-20)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는 데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고 뱀을 집기도 한다고 하였다.

사명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나타나는 표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표적이 많이 일어나기 바란다.

(3).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표적의 결과는 말씀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는 것이고 말씀을 확실히 믿게 하는 소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나에게 표적이 없으면 말씀으로 확신을 가지게 되므로 그것은 필요없는 것이다. 말씀의 효과를 위해서 이런 표적이 필요한 것이다.

4). 사명자가 받을 축복(막10:29-30)

(1). 막10:29-30에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

(2). (마28:18-20)에 모든 권세를 주고--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는 복

(3). 행1:8, 왕하2:1-12에 권능(영권, 인권, 물권)

4. 사명자(바울)의 신앙사상(행20:17-24)

기독교는 예수로 시작하여 바울을 통하여 계승해 왔다. 예수께서 뿌린 복음의 종자는 바울을 인하여 성장 발육하였다.

바울은 성경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사명자로서 가장 뚜렷한 인물이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일 것이다.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었는지 그의 신앙의 헌신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겸손한 신앙(겸손한 사람)(행20:19상)

바울이 예수 안에 있기 전에는 대단히 교만한 사람이었다(빌3:5-6). 그의 입장이 교만할 수 밖에 없었다(빌3:7-8).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당시 최고 엘리트요 로마 시민권 소유자, 대제사장 공문장을 받을 정도의 위치.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은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간증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1). 엡3:8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다”

(2). 고전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다 내가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노라”

(3). 딤전1:15에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4). 고전15:10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의 겸손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복음의 거성이 되게 했다. 잠18:12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2). 눈물의 신앙(눈물의 사람)(행20:19중)

예수를 만나기 전 바울은 포악하고 잔인했다.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바울은 현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길 정도로 잔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남녀를 결박할) 정도로 포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빌3:18에는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고후2:8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행20장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눈물이란 동정과 사랑을 나타낸다.

*+ 행20:30에서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하였다.

*+ 사도 바울은 전도생활에서 처음부터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겠는가?

(1). 자기 죄에 대한 통회의 눈물일 것이다.

과거에 예수를 믿기 전 스데반을 죽였던 일, 교회를 핍박했던 일을 회고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 회개하였던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죄인 중의 죄인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더욱 더 놀라운 사랑으로 붙들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바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새 없이 흘렀던 것이다.

(3). 동정의 눈물이다.

죄악 중에 동포들이 방황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멸망을 보고 한없는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우리도 내 믿지 않는 식구, 형제, 친척, 이웃을 위해 울어보자.

3). 시험을 참는 신앙(시험을 참는 사람)(행20:19하)

유대인의 간계로 바울이 당한 고통은 형언할 수가 없다. 수많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옥 속에서도 찬송하고 감사하였고 바다에서 풍랑을 만날 때도 낙심치 아니하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으면서도 참았다.

*+ 시험을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약1:12)

야고보의 시험관을 보면 시험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다. 그 이유는

(1).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2). 부족함이 없게 하고

(3). 옳다 인정하여

(4).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자기의 제자 중 (브트나)를 서방 나라에 전도하러 보낼 때 (욕을 먹어도 참아라, 때려도 참아라, 죽여도 참아라)라는 세 가지 훈계를 주었다고 한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제자된 사명자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역사하는 중 여러 가지 시험을 참았다. 매를 맞아도 참았고 태장을 맞아도 참았고 돌에 맞아도 옥에 같혀도 위험한 일을 만나도 참았고 굶주리기도 하였고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이겼다. 바울은 현재의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모든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

4). 주를 섬기는 신앙(주를 섬기는 사람)(행20:19하)

그는 주님께 충성하고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섬긴다는 것은 종의 위치에서 받드는 것을 말하며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했다. 자신이 종임을 자처했다. 종으로서 주인을 섬겼던 것이다.

(롬12:11)에서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

부지런하라는 말씀은 주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고,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은 주를 섬기는 일을 형식화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열심을 품으라는 말씀은 열정적으로 주를 섬기라는 뜻이다.

*+ 섬김이란

(1).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라트류오:λατρευω)

이와같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섬김은 예배이며 최대의 봉사도 예배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워쉽:worship)는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와 영광을 돌리는 섬김과 봉사이기 때문이다(롬12:1).

(2). 자기 직분대로 섬기는 것(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

이는 자기의 직분과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봉사이며 무엇이 섬김인가? 자기의 직분을 따라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롬12:6).

(3). 자신을 드리는 것(라트류오:λατρευω)

(종이 되다, 섬기다, 예배드리다, 제물을 드리다)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봉사하고 섬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을 뜻한다(롬12:1).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 앞에서 가장 올바른 봉사는 자기의 전인격을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종과 노예가 되는 것이다(돌류오:δολευω)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섬긴다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종과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있지 못한 자는 하나님께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섬김의 자리에 있지 못한 자이다.

(5). 하나님의 일을 돌보는 것이다(디아코네오:διακονεω)

봉사는 자기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진정한 섬김과 봉사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며 병든 자를 치유하는 것이며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며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 위로하는 것이다.

(6). 자신을 굽히는 것이다.

실로 진실한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며 사람에게도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교회에서 진실한 봉사를 할 수 없는가? 그것은 자기를 높이고 낮추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은 섬김과 봉사의 방편이고 봉사 그 자체이다.

때문에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봉사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좋은 섬김과 봉사는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여지는 것이다(빌2:3).

5). 복음전도 결심(전파에 열정의 사람)(20)

바울처럼 전도를 많이 한 사람도 없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세계 도처에 복음을 전했다.

유익한 것이 있으면 공중 앞에서나 개인 앞에서나 전하여 가르친다고 하였다. 전파하는 일을 쉴 수 없는 복음의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의 중심은 과거에도 현재도 매래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고전9:16, 19-22, 23). 우리도 사도 바울의 신앙을 배워 전도열을 가지고 복음전파에 앞장서는 사명자들이 되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였다.

과거의 신앙생활을 회고하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전도를 중시하고 최후의 결심을 한 바울과 같이 우리도 선배들의 신앙생활을 본받아 매진할 수 있기를 원한다.

사명자의 자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하는 것이고”(딤후4:2)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는 것이다.

6). 생명 희생의 결심(희생의 사람)(행20:23-24)

생의 욕망은 모든 사람에게서 절대적인 욕망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려서부터 늙어 죽는 날까지 노력하는 것은 오직 생을 위해서 좀더 빛나게 좀더 아름답게 좀더 의미있게 생활하여 보자는 것으로 인간생활의 중심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희생해서라도 전도의 길을 걸어가려고 결심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태도인가? 이것은 동족의 영적 구원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희생이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했다. 우리도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민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했는데 다 희생하는 직분을 의미한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우는 희생으로 방안을 밝게 해 주는 것이다.

7). 사명에 충성하는 신앙(사명완수의 사람)(행20:23-24)

주께 받은 사명인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 최선을 다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바울은

(1). 결박과 환난을 두려워 하지 아니함(23하)

바울은 결박당하고 환난을 당하는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요셉이 감옥을 피하지 아니하고 다니엘이 사자굴을 피하지 아니했듯이 바울도 결박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을 자신이 결박하고자 의기양양했던 사람이었는데(행8:3, 9:1) 이제는 자신이 결박을 당하는 모습을 본다.

(2).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다.

바울은 죽든지 살든지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사명 완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

(롬14:7-8)에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3). 순교로 사명을 완수(딤후4:5-8)

행 20장에 사도 바울은 순교할 그의 달려갈 길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여러 해 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기의 순교의 날이 가까와옴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딤후4:7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분명히 보고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그는 순교로 마지막 자기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사명자는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되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5. 결론

이 세상에 사명이 없는 존재는 한 사람도 없다. 조그만 들꽃, 참새 한마리에 이르기까지 사명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을진대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인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는 가정의 인가기도의 사명, 전도의 사명, 기도의 사명, 물질봉사의 갖가지 사명이 있다. 바울처럼 잘 감당하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명자로서 맡겨진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고전4:2에 “오직 맡은 자에게서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했고, 계12:5에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했다. 우리도 참된 사명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