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12월 신설교.)
제목:장성한 성도(고전 13:8-13)
예수님이 마 18:3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좋다는 의미인데, 본문에서 바울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렀노라”라고 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서는 좋지 않다는 뜻의 말을 하였다. 얼른 보기에는 두 곳의 말씀이 상반되는 것 같으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신앙이 교만하지 말고 어린아이들 같이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의 말씀이고, 사도 바울이 말한 장성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초보적인 신앙에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신앙은 후회나 정지 상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자라야 한다.
신앙의 초보시에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이 지났지만 본문에서 말한 대로 장성한 사람, 즉 장성한 신앙인이 되었을 때는 어린아이 본래의 신앙을 버려야 할 것이다.
1. 장성한 성도는 어떤 신앙을 소유한 자인가?
1). 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는 모든 일에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남은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갓 나서는 부모를 의지하고, 자라면서는 스승의 도움으로 배운다. 경제적으로도 수입이 없으므로 부모님한테 돈을 타서 다른 것을 사기 때문에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도 자립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겠다. 이 말은 자립했으니 교회도 안 나가고 목사의 지도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신앙의 자세가 쉽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건히 설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산과 같은 믿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믿음은 곧 자립적인 믿음이다.
2). 환경을 극복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추워도 못 참고 더워도 잘 못참는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 때 참지 못하던 것을 참을 수 있게 된다.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참을 수 있는 의지가 부딪쳐 오는 환경을 저항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장성한 사람의 모습이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에 영향을 받기는 어려워도 나쁜 것에 영향을 받기는 쉬운 것이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장성한 신앙인의 태도로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신앙이 그 환경을 요리해 가는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3).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앙이다.
어릴 때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나 해결은 못한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도 해결 못한다. 부모를 비롯하여 양육자들이 먹여주고 입혀 주어야 한다.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을 깨기도 한다. 시계를 부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나 다른 양육자들이 치료해 주고 고쳐도 주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을키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이라서 그러하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세 가지 분류의 신자가 있는데
(1). 밤낮 문제를 일으키는 소위 문제 인물의 신자이다.
(2). 무문제의 신자이다.
즉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신자이다.
(3). 문제해결의 신자이다.
성도간의 어려운 문제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신자이다.
4). 드리는 신앙이요 바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달라는 것으로만 일관하는 신앙이다. 어린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님께 받아서 살아간다. “엄마 밥줘, 신발 사줘, 책 사줘, 연필 사줘” 그러나 이 아이가 자라서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머니 뭘 사드릴까요, 필요한 것 없습니까?”라고 한다. 장성한 사람 같이 철이든 신앙은 곧 “무엇을 바치오리까”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앙을 받는 신앙에서 주는 장성한 신앙으로 변화를 받자.
5). 무엇이든지 섭취를 잘하는 신앙이다(히 5:13)
어린아이들은 매운 것이든지 뜨거운 것이든지 딱딱한 음식을 싫어하여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편식을 한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무엇이나 먹는다. 매운 것이나 뜨거운 것이나 다 먹을 수 있다. 신앙이 장성한 사람은 말씀을 다 섭취한다. 위로나 권면만이 아니라 책망도 소화한다. 이것이 신앙의 장성함을 의미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젖이나 먹고 우유나 마시는 어린아이였다. 이제는 딱딱한 말씀도 먹어야 하겠다.
6).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신앙이다(행 3:1-10)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알아 하는 일이 없다. 부모님이 시켜야 하고 선생님이 시켜야 한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대로 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장성한 신앙은 끌려 다니지 아니하고 전언에 따라 움직이지 아니하고 스스로 신앙을 지키며 스스로 교회에 출석하고 스스로 봉사활동하는 것이 장성한 신앙이다.
7). 어린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분별력이 생긴다(빌 1:10)
자기의 소유물과 타인의 소유물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최소한도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은 일곱가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1)주일날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거룩한 주일은 내 날이 아니다. 내 멋대로 창경원에 놀러가고 영화구경 하라고 생긴 날이 아니고 주의 날이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나아서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안식하는 날로 지내야 한다.
(2)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물질 축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온전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십일조 생활과 주일성수로 장성한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3)거짓 선지자와 참 목자를 분별하라(마 7:20-22).
(4)하나님의 뜻인지 육적인 뜻인지 분별하라(롬 12:1, 마 26:26).
(5)위험한 것인지 안전한 것인지 분별하라(계 2장-3장)
(6)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분별하라(마 6:33)
(7)어떤 것이 더 중한 것인지를 분별할(요삼서2)
2. 결론
어린아이 때의 신앙을 버린 것이 장성한 신앙이다.
어린아이 때의 일이란 어린아이의 행위를 뜻한다. 그것은 의존성이요 피동성이요 놀기를 일삼는, 기분에 좌우되는 신앙 등이다. 이러한 유치한 습성을 버려야 한다.
제목:장성한 성도(고전13:8-13) 김정국 목사
(서론)
예수님이 마 18:3에서"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좋다는 의미인데, 본문에서 바울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고 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서는 좋지 않다는 뜻의 말을 하였다. 얼른 보기에는 두 곳의 말씀이 상반되는 것 같으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신앙이 교만하지 말고 어린아이들 같이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의 말씀이고, 사도 바울이 말한 장성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초보적인 신앙에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신앙은 후퇴나 정지 상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자라야 한다. 신앙의 초 보시에는 철없는 어린아이 같이 지났지만 본문에서 말한 대로 장성한 사람, 즉 장성한 신앙 인이 되었을 때는 어린아이 본래의 신앙을 버려야 할 것이다.
1.장성한 성도는 어떤 신앙을 소유한 자인가?
1)스스로 자립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는 모든 일에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없으므로 남은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갓 나서는 부모를 의지하고, 자라 면서는 스승의 도움으로 배운다. 경제적으로도 수입이 없으므로 부모님한테 돈을 타서 다른 것을 사기 때문에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도 자립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겠다. 이 말은 자립했으니 교회도 안 나가고 목사의 지도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신앙의 자세가 쉽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건히 설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산과 같은 믿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믿음은 곧 자립적인 믿음이다.
2)환경을 극복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추워도 못 참고 더워도 잘 못 참는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 때 참지 못하던 것을 참을 수 있게된다.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참을 수 있는 의지가 부딪쳐 오는 환경을 저항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장성한 사람의 모습이다.
어린아이들은 좋은 것에 영향을 받기는 어려워도 나쁜 것에 영향을 받기는 쉬운 것이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내가 비 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장성한 신앙인의 태도로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신앙이 그 환경을 요리해 가는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3)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앙이다.
어릴 때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나 해결은 못한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도 해결 못한다. 부모를 비롯하여 양육 자들이 먹여주고 입혀 주어야 한다.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을 깨기도 한다. 시계를 부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나 다른 양육 자들이 치료해 주고 고쳐도 주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이라서 그러하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세 가지 분류의 신자가 있는데
(1)밤낮 문제를 일으키는 소위 문제 인물의 신자이다.
(2)무 문제의 신자이다. 즉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신자이다.
(3)문제해결의 신자이다. 성도간의 어려운 문제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신자이다.
4)드리는 신앙이요 바치는 신앙이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달라는 것으로만 일관하는 신앙이다. 어린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님께 받아서 살아간다. "엄마 밥줘, 신발 사줘, 책 사줘, 연필 사줘" 그러나 이 아이가 자라서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머니 뭘 사드릴까요?, 필요한 것 없습니까?" 라고 한다. 장성한 사람 같이 철이든 신앙은 곧 "무엇을 바치오리까?"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앙을 받는 신앙에서 주는 장성한 신앙으로 변화를 받자.
5)무엇이든지 섭취를 잘하는 신앙이다(히5:13)
어린아이들은 매운 것이든지 뜨거운 것이든지 딱딱한 음식을 싫어하여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편식을 한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무엇이나 먹는다. 매운 것이나 뜨거운 것이나 다 먹을 수 있다.
신앙이 장성한 사람은 말씀을 다 섭취한다. 위로나 권면 만이 아니라 책망도 소화한다. 이것이 신앙의 장성함을 의미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젖이나 먹고 우유나 마시는 어린아이였다. 이제는 딱딱한 말씀도 먹어야 하겠다.
6)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신앙이다(행 3:1-10)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알아하는 일이 없다. 부모님이 시켜야 하고 선생님이 시켜야 한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대로 놀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장성한 신앙은 끌려 다니지 아니하고 환경이나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아니하고 스스로 신앙을 지키며 스스로 교회에 출석하고 스스로 봉사활동 하는 것이 장성한 신앙이다.
7)어린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분별력이 생긴다(빌 1:10)
자기의 소유물과 타인의 소유물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최소한도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은 일곱 가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1)주일날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거룩한 주일은 내 날이 아니다. 내 멋대로 창경원에 놀러가고 영화구경 하라고 생긴 날이 아니고 주의 날이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나아서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안식하는 날로 지내야 한다.
(2)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물질 축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온전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십일조 생활과 주일성수로 장성한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3)거짓 선지자와 참 목자를 분별하라(마 7:20-22).
(4)하나님의 뜻인지 육적인 뜻인지 분별하라(롬 12:1, 마 26:26).
(5)위험한 것인지 안전한 것인지 분별하라(계 2장-3장)
(6)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분별하라(마 6:33)
(7)어떤 것이 더 중한 것인지를 분별할(요삼서2)
2.결론
어린아이 때의 신앙을 버린 것이 장성한 신앙이다. 어린아이 때의 일이란 어린아이의 행위를 뜻한다. 그것은 의존성이요 피동성이요 놀기를 일삼는, 기분에 좌우되는 신앙 등이다. 이러한 유치한 습성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