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 나아만

제목:문둥병자 나아만(왕하5:1-17)

아람나라의 국방부 장관인 나아만은 전쟁에 능한 자로 아람나라에서 최고의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그의 권세 또한 당당하였다. 그러나 영광도 권세도 모두 소용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돈으로도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문둥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계집종의 전도를 받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은 큰 은혜를 받았다. 나아만 장군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하여 보물을 수레에 싣고 가서 받아 주시기를 요구한 사실이 본문의 내용이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의미를, 성도들이 돈으로도 권세로도 명예나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죄의 병에 걸려 영원히 멸망할 것을 예수께서 대속제물로 오셔서 돌아가심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1. 나아만의 신분

1). 긍정적인 면(1절)“크고 존귀한 자”

(1). 지위:군대장관

최고의 지휘자 명성의 사닥다리 꼭대기에 있었던 자이다. 최고의 자리에 앉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2). 권력:큰 자

군대장군의 직위 뿐 아니라 큰 자라는 권세와 인기와 큰 영향력을 가지 있었다. 3군을 통솔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3). 공력:아람을 구원하여 승리케 한 자이다.

그는 일찌기 이게 사용되어 조국 아람을 적에게서 구원하였음으로 공훈이 혁혁한 구국 공신이었다. 최고의 공을 세운 자이다.

(4). 성격:존귀한 자, 큰 용사였다.

존귀한이란 교양이 있고 품위가 있고 세련된 신사라는 말이요, 큰 용사라는 말에서는 용기있는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볼 수 있다.

즉, 싸움에 두려움이 없이 용감하게 싸우는 자였다.

2). 부정적인면 “문둥병자였더라”

(1). 그는 격리되어 살았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서 격리되지 않으면 안될 신세가 되고 보니 그 지위 그 영화는 곧 구름이요 그 심신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동시에 가정과 국가의 무용지물이 되고 말었다.

(2). 부정하게 했다(레13:14, 민12:12)

문둥병은 성경에서 부정한 병이요 썩는 병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아름다운 면이 문둥병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정하게 보여졌다. 부정하니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었다.

(3). 치료할 수 없었다(불치병)

문둥병은 천륜병이라 하여 인간의 의학이나 과학으로 고칠 수 없는 인간의 불치병이다. 얼마나 비참한 병인가?

(4). 산 송장이다(사59:1-2, 64:6, 시14:2-3, 렘17:9, 2:22, 롬6:23, 겔18:4).

살기는 살았으나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으로 죽은 송장이었다. 오늘도 육적으로는 너무 화려하지만 영적으로 산 송장이 된 자가 많고 외적으로 나타나기는 화려하나 내적으론 고통당하며 죽은 송장 같은 자가 많이 있다.

2. 나아만에게 주어진 기회(2-5)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사랑하셔서 이스라엘의 한 소녀를 그 집에 보내어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듣게 한 것이다.

루터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소낙비와 같아서 빨리 서둘지 않으면 지나가 버리고 만다”고 하였다.

은혜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고후6:1), 놓치고 나면 슬픈 후회가 있을 뿐이다.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강도는 기회를 악용하였고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기회를 도피하였으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를 선용하여 불쌍한 이웃을 도왔던 것이다.

1). 작은 계집아이를 사로 잡았다(2)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신앙의 소녀를, 그중에도 엘리사 선생을 아는 소녀를 잡아온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2).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을 들었더라(2)(나아만의 아내가 소녀를 샀다)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고침받는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 소녀를 나아만의 아내가 사게 하고 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종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홰개할 기회, 충성할 기회, 은혜받을 기회를 준다. 우리는 이럴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용하는 지혜자가 되자.

3). 그 소녀의 복된 소식(3-4)

(5:3)에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뭉병을 고치신다”라고 말했다. 절망의 그늘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찬 소식이 그에게 들려온 것이다.

나아만은 히브리 소녀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히브리 소녀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이름없는 소녀였지만 나아만의 집에서 선교사의 역할을 했다.

우리도 신분이나 처지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선교사 역할을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불신의 가정에 출가를 했다거나 신앙 생활과 맞지 않는 직장에 다닌다 해도 굳게 참고 기다려 나의 선교사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비극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복음을 전하고 듣는 데에 있다. 롬10:14에는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했다. 즉 들은 바 없는 예수를 어찌 믿겠으며 믿지 않는 예수를 어찌 부르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도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써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나아만 장군은 소녀를 통해 들려오는 복음의 기쁜 소식에 귀를 기울여 듣고 믿어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 문둥병의 비참함에서 구원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4). 사모하여 달려갔다(5)

(5:5)에는 나아만이 곧 “떠날새”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아만 장군은 하녀의 말을 무시해 버리지 않고 곧 이스라엘로 떠났다.

나아만은 복된 소식을 들은 후 즉시 행동으로 옮겨 왕의 친서를 받고 은 십달란트와, 금 육 천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아람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로 먼 여행길을 떠나간 것이다.

이때 나아만이 가지고 간 예물은 달러로 팔만 불, 우리나라 돈으로 칠천오백만 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어느 주석가는 밝히고 있다.

(시107:9)에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18:10)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했다.

나아만은 큰 은혜를 받고자 국경을 넘어섰으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주의 종을 찾아갔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혜를 갈망하여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3. 나아만의 실수

1). 사람을 잘못 찾아갔다(3, 6-7)

그러나 나아만은 잘못 찾아갔다. 계집종의 말대로 이스라엘 땅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5:3) 앞으로 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 앞으로 가버렸다(5:7)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친서를 받아 읽고 그 앞에서 옷을 찢으면서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나. 분명 이것은 이것을 미끼로 이스라엘과 시비하려 함이로다”하고 야단을 피웠다(5).

이때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내게로 오라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5:8).

사람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했다.

2). 내 생각대로 행동한 것(9-11)

드디어 나아만과 그를 호위한 말들과 병사들은 엘리사에게 향했다. 그리고 엘리사의 집문에 섰다(5-9).

이때 엘리사는 그에게 복음을 주었다.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5:10)고 하였다.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하고 깨끗한 복음이다. 이것은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던 나아만에게 희망과 복음이었다.

이 복음을 들었던 나아만은 즉시 분노를 발했다. 그리고 몸을 돌이켜 물러갔다(5:11).

참으로 뜻밖의 일이요 분노요 행동이 아닌가? 병이 낫겠다고 하는 마음 설레이는 복음을 들었는데 왜 노를 발하고 물러가게 되는가? (5:11)중에 “내 생각에는---” 하는 이유이다.

나아만의 생각이다. 어떤 생각인가?

(1). 저가 내게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5:11).

(2). 그에게 정중한 예를 표할 줄 알았다. “서서”(5:11)라고 했다.

(3). 어떤 종교적 의식 절차를 취할 줄로 여겼다. “---그 하나님 여호와 이름을 부르고”(5:11)라고 하였다.

(4).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생각했다. 즉, 어떤 안수, 안찰 종교적 무술행위(?)를 할 줄로 생각했다(11).

바로 이런 내용들이 내 생각 곧 육신의 생각이요, 내 생각은 엘리사의 생각 곧 하나님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은혜를 받으려면 자기의 선입관,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깨뜨려야 하고 버려야 한다. 내 생각은 자기복음, 내가복음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복음이요 축복의 복음이다.

3). 복음의 진수를 바로 알지 못하므로(5:12)

나아만은 또 실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복음에 대한 참뜻(진의)을 잘 모른 것이다. 그는 요단강물 자체에 문둥병을 고치는 어떤 약의 효소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말하기를 (5:12)에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냐”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착각이요 실수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요단강물에 일곱번 잠그면 그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을 따름이지 결코 요단강물 자체에 문둥병을 고치는 약의 효소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엘리사의 명령에 나아만이 노하고 물러서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복음도 인간의 육신의 생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순종하면 축복이요 구원이요 능력이 된다(고전1:18).

4). 분노하여 물러가며(11) 불순종한 것이 실수(12)

나아만의 실수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는 이기심과 인본주의로 분노하며 뒤로 물러선 것이 큰 실수요(11), 또한 나아만이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라”하였으니 이는 불순종이다.

이 불순종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조상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롬5:19)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하여 가나안에 못들어갔고(히13:18) 사울왕은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았다(삼상13:13, 15:22).

오늘 우리들도 내 생각 자기 지식으로 해석하고 판단함으로 분노하여 뒤로 물러서는 롯의 처처럼, 영생에 실패한 한 청년처럼 어리석은 행동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4. 나아만의 태도(13-14)

그러나 병거의 말 고삐를 잡은 그의 종들에게 믿음이 있었다. “그 종들이 나와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다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5:13)라고 권유했다.

이에 나아만은 치료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첫번째 단계는 내려가는 것이다(5:14). 말 위에서 땅으로, 땅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강물속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겸손을 의미한다. 두번째 단계는 벗는 일이다. 겉옷을 벗고 속옷을 벗는 일이다. 베일을 벗는 것이다(5:14). 세번째 단계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잠그는 일이었다(5:14). 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났다.

1). 겸손하라(14)

14절에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라고 말했다. 이는 겸손을 볼 수 있고 참된 겸손은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데 있다.

나아만은 마침내 자신의 분노를 버리고 권면하는 하인들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요단강물에 자기 몸을 7번 잠그기로 결정했다.

만일 나아만 장군이 자기 집 하녀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 부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들, 그리고 주의 종의 말을 끝내 거역하고 하일들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던들 그의 삶은 문둥병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겸손한 심정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종의 말에 따르고 하인들의 권유에 따르기로 했다. (벧전5:5)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다.

2). 말씀에 순종하라(14)

나아만은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했다. 그는 기고만장했던 교만과 자기 주관을 버리고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했다.

요단강물에 7번 몸을 잠그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물)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상징하고 (7번 잠그라)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완전히 복종하고 순종하라는 뜻도 된다.

군대장관으로 삼군을 통솔하던 그가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마침내 기적은 생기고 말았다.

고후1:18에는 예수의 생애도 (예)만 있는 생활이었다고 했다.

3). 확신을 가지라(14)

14절에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라고 말했다. 나아만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셍각을 하나하나 벗어놓고 그릇된 사상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확신의 믿음이 없으면 깊은 은혜를 받을 수 없다.

확신의 믿음이 없는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운명이 바꾸어질 수도 없다.

나아만 장군은 불행한 문둥병자였지만 종의 말을 듣고 믿고 요단강물에 7번 목욕하면 몸이 깨끗해질 줄 확신하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았다.

5. 나아만의 치료의 결과

1). 어린 아이 살같이 되었다(새사람이 됨)(14하)

어린이 살결같이 되었다는 것은 새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겸손하게 심중에 잠재한 죄악을 고백하고(요일1:8-9) 속죄의 보혈을 믿음으로 죄악의 부패성에서 완전히 청결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사1:18).

2). 겸손한 자가 되었다(15)

나아만이 처음에는 엘리사가 내 앞에 나와 서서 고쳐 주리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으나, 은혜받은 후에는 (당신의 종)이라 하였으니, 이에서 그가 겸손한 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곡식이 성숙할수록 고개를 숙임과 같이 참 신자는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하게 된다. 교만한 자, 아직까지 그는 깊은 은혜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자이다(고전15:9, 딤전1:15, 엡3:8).

3). 감사가 충만하다(15:16)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 있을 때는 세상 모든 영화가 시들어 떨어진 꽃과 같이 되고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만 했으며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으니, 모든 인간이 걸려 있는 죄의 병이다. 문둥병은 육신만 멸망하나, 죄의 병은 영육간의 영원한 멸망이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보내 주신 독생자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음으로,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워져 죄사함을 얻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받은 구원의 은혜이다.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나아만 장군과 같이, 받아주시기를 요구하며 귀한 예물을 드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예물을 드려도 구원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지만 썩어질 물질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썩지 않는 축복을 받게 된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온 성도들은 하나님이 예물을 받아주시기를 간청하며 무엇이든지 바칠 때에 만족을 누리게 된다.

4). 신본주의자가 되었다(17)

나아만은 상처를 손으로 만져서 고쳐주리라고 생각하였으니 이는 자기 본위 자기 제일주의 사상이었으나, 요단강에서 깨끗함을 받은 후에는 말하기를 “내가 이제는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사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하였으니 이는 완전히 신본주의, 하나님 중심, 하나님 제일주의로 돌아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예수의 구원을 받아 신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5).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요구함(17)

그 흙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지를 나아만은 말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용도를 비평가들은 제시한다.

(1). 어떤 이들은 그가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자기의 희생물을 드리려고 했다고 추측한다.

(2). 일반적인 견해는 그가 그 흙을 아람 땅 일부분에 뿌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곳을 예배드리는 목적으로 성역화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유대인 자신이 그와 유사하게 행동했음이 알려져 있다. 그들은 바벨론에 성전을 짓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벨론에 흙을 날랐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생각은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그것은 꼭 모든 신은 그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서만 그가 온당히 예배받을 수 있다는 (타신론적 미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곳에 “거룩한 땅”(출3:5), 평범한 보통 사람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더 적합한 땅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곳저곳으로 운반할 가치가 있는 땅과 같은 무엇이 있다는 의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6).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7하)

나아만은 이제까지 다신론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람의 종교에 대해서는 별로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추측키로는 그것은 일종의 협의의 다신교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은혜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만 섬기고 살겠다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은혜받은 성도들의 심령은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다(요4:24). 진정으로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은 자는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7). 섬김의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18)

나아만 장군은 왕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사람이었다. 왕에게는 림몬 신당이 있었다. 왕을 섬기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왕에게 들어가려면 먼저 신당에 절을 하고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나아만 장군은 왕의 신당에도 절하는 것에 대한 사죄를 요청했다.

이는 구원은 받았으나 섬김의 대상은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미리 사죄를 구한 것이다. 엘리사는 이는 제 일계명을 범하는 것이므로 이를 금하였으며 섬김의 대상신을 바꾸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나아만이 신앙을 고백했으나 은혜 체험이 약했다는 것과 말씀으로 더 성장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도 역시 신을 바꾸고 내 마음의 주인을 바꾸어야 한다. 악함에 속하였던 생활을 정리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로, 육신에 속한 자가 영혼에 속한 자로 소속관을 바꾸어서, 곧 섬기는 대상을 바꾸어 나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살 것을 요구하며 사는 자들이 곧 은혜를 받은 자들의 생활 방법이요 목적이다.

5. 결론

게하시의 불성실을 경계하라(20-27)

탐욕(19-23), 은닉(24-25), 인지(27), 결과(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