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권면

제목:바울의 권면(빌3:17-21)

위대한 전도자 바울은 복음으로 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낳았다. 바울 사도는 이 믿음의 자녀들에게 여러번 권면의 말씀을 하신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분문에 나타난 말씀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신 것으로 보통 권면이 아닌 중대한 권면의 말씀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죄인 아닌 죄수의 모양으로 옥에 같혀 있는 몸으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긴박한 환경에서 이와 같은 눈물의 권면을 하게 되었으니 그 권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는 것은,

(1) 그 권면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를 의미한다.

(2)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지극히 사랑한 것을 알 수 있다.

(3)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애타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4) 그 권면 내용은 중대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권면은 비단 빌립보 교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아들여야겠다. 그러면 그 권면의 내용은,

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3:17)

바울 사도의 첫번째 권면은 자기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은 당시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인이 나타나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까닭에 그들을 따라가지 말고 자기만 따르고 본받으라고 하였다.

바울이 이처럼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이기 때문이었다(고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의 외적인 것과 그의 중심과 인격이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닮아갔다.

1).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본받자(고전1:18, 고전1:22-23, 고전2:2, 갈6:14).

바울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부활에다 중심을 둔 것이다(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상의 말을 보아서 바울 사도는 십자가만 믿고, 알고, 전하고, 자랑한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열렬한 신앙과 그 충성은 십자가 중심의 신앙에서 솟아난 것이다. 오늘 우리 신자들의 가슴 속에 십자가의 신앙이 떠나가면 멸망할 수 밖에 없다.

2).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생활을 본받자(롬14:8, 고전10:3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고전10:31).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얻은 후에 그 은혜에 감격하여 생사간에 자기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임을 알고 남은 생명을 주님만을 위해 사는 거룩하고 충성스러운 생활이었다.

성도는 창조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것이요, 구속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것이니, 성도의 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어야 한다.

3). 자신을 죽이는 것을 본받자.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누구나 날마다 죽어야 할 옛사람의 성품 갖고 있다. 이 잘못된 성품들을 날마다 죽임으로 항상 겸손하고 항상 형제를 귀히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내가 살면 그리스도가 죽고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가 산다는 것이다. 육을 죽여야 영이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골3:5-6, 갈2:20).

4).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딤전1:15, 엡3:8, 마16:24)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부인하고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심은 철저히 자신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결단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마16:24)

바울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부인하였다. 그는 인간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지만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였다. (딤전1:15)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에게” 이것은 자신을 부인한 사람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이다.

5).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을 본받자(빌2:2-3, 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시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시는 삶을 말해 준다. 우리는 진정으로 내 자신을 비어 부인하고 겸손한 삶으로 남을 나 자신보다 낫게 여겨야만 할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빌2:2-3)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형제들을 나보다 낫게 여김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6). 모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전9:19-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높낮음을 가리지 않고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 주시고 불러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고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듯이 바울도 그러하였다.

(고전9:19)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고백하였다.

기독교 윤리는 (나는 나, 너는 너)식의 윤리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이다(롬12:3-5). 그러므로 성도들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성도가 되자.

7). 바울의 충성심을 본받자(딤후4:7-8, 계1:10)

“내가 선한 싸우고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컸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충성이란 시종여일하게 잘 하는 것을 말한다. 변함없이 끝까지 죽도록 죽을 각오를 하고 충성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여 면류관을 받아 쓴다는 자신만만한 개가를 높이 부른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와같은 충성이 아쉽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하신 바울의 눈물의 권면을 따라 우리는 그 신앙과 생활, 그리고 충성된 봉사를 본받아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하겠다.

2. 십자가의 원수를 삼가라(빌3:18-19)

분문에서 십자가의 원수 노릇하는 자들을 삼가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여러번 권면했지만 지금 다시 눈물을 흘리며 권고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번 권면하면서도 눈물로 권면함은 너무 간절한 권면이기 때문이며 또 경계의 대상이 심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빌립보에는 유대주의자 외에도 심히 무서운 복음의 원수가 있었다. 그것은 곧 복음의 자유를 오용하여 육체적인 향락에 기울었던 쾌락주의요, 또 그 주의에 물든 신자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참으로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그 십자가의 원수란 어떤 자들인가?

1).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자(19)

“저희의 신은 배요”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배만 채우고 배만 위해서 일하고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코일리아(배)는 (배, 모래)(마19:12)로 욕심의 근본이다. 식욕, 정욕, 음욕, 물욕이 다 여기서 나온다. 이것을 위주로 살면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된다.

쾌락주의자들은 첫째로 먹는 것을 위주로 한다. 먹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저버린다. 그저 먹기 위하여 산다. 그것이 그들의 생의 전부이다. 이런 식생활이 위주인 자는 배가 곧 저들의 하나님이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고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롬6:18)라고 하였고,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시17:14)라고 하였다.

오늘날도 식생활을 위주로 하여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름지기 삼갈 것인저!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는니라”(히13:9)고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하였다.

2). 부끄러운 일을 영광으로 삼는다(19)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라고 하였다. 부끄러워 해야 할 일들(죄)을 도리어 영광으로 알고 자랑하며 행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 낯이 붉어지는 일들을 예사로이 입에 올리며 자랑할 뿐만 아니라 실행한다. 이는 양심이 마비된 현상이다. 양심이 살아 있으면 죄를 범하고 부끄러워하며 송구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없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기므로 이 세상에 죄의 홍수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개할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임한다.

무서운 죄악 생활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은 반드시 불행하게 되어진다. 타락한 사람이란 어떤 자인가? 타락한 사람이란 가치를 전도시킨 사람이다. 즉 미워하여야 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여야 될 것은 미워하고, 수치로 생각해야 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영광으로 생각해야 될 것은 수치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자란 곧 이러한 타락한 자들인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빌립보 교회 안에 이런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옛날 빕립보 교회만 그렇겠는가? 아니다. 오고 오는 이 세대 모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3). 땅의 일을 생각한다(19)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였다. 즉 이 세상 일에 애착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세상은 천국가는 발판으로만 이용할 뿐이지 거기에 애착하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땅의 일이란 육신을 좇는 자로 육신의 일을 더 좋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롬8:5).

그러나 아무도 땅의 일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땅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 가운데 계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하며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이교도들이나 세속적인 사람들은 완전히 땅의 일에만 몰두하고 또 그것을 위해 산다. 그들은 땅의 일에서 그들의 모든 행복과 영광을 기대한다.

그들은 믿는다 하나 인습적인 그리스도인들이며 물질주의자들이다. 저들의 생각, 저들의 감정, 저들의 관심 전부가 이 세상 사물에 매어 있다. 내세나 영혼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인이었으면서도 땅의 일들만 좋아하고 영적이고 천상적인 일들에 대하여는 좋아아지 않았다. 그들은 땅의 일들에 그들의 사랑과 마음을 쏟는다. 그들은 그것들을 사랑하고 심지어 그것들에 빠져서 그것들을 신뢰하고 거기서 자기 만족을 갖는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음이 마땅한 것이다(골3:1-4). 아직 세상에 연연하고 그것이 탐나고 그것을 취하려고 하면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만다. 어찌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겠는가?

4). 십자가 원수의 종국은 멸망(파멸)이다(19, 요일2:18, 계13:13-14)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라고 하였다. 저희의 마침이란 저희의 운명이란 말과 같다. 십자가의 원수들에게 정해진 운명은 멸망이다.

그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즐거운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는 것이다.

멸망은 결코 멸절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멸망은 그의 존재가 아주 사라려 없어질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영원한 형벌을 의미한다(마25:46).

왜냐하면 이 멸망은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이다(살후1:9). 이 멸망은 현재 생활에서 시작되나 죽은 뒤에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롬8:6)에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고 하였다. 이것은 영원한 형벌인 지옥을 의미한다. 주님의 십자가가 유일의 구원이라면(행4:12) 십자가의 원수의 운명은 당연히 멸망일 것이다.

이 멸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써 말씀해 주셨다(눅16:19-31).

5). 그러므로 거짓 스승을 좇지 말라

여기에 거짓 스승이란 십자가의 원수를 가리킨다. 저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얻는다고 하여 예수님보다 자기들을 따르게 하여 신자들을 미혹하게 하는 이단이었다.

저들이 (자기의 신은 배)라고 한 것은 사욕을 좇는 무리요,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반대를 받아도 영광으로 알아 태연하고, 지상천국과 부귀와 물질을 제일로 하는 땅에 일만 생각하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거짓 스승에 속아 따라가서 패가망신하는 신자들을 향하여 눈물로 권면을 한 것이다.

더우기 이 권면은 말세를 당한 오늘에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임을 알아야 한다. 말세에 이단과 사교운동이 많이 생기는 것을 성경이 경고해 주고 있다(마24:4-5, 24-26, 요일2:18, 계13:13-14). 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가? 조심하여 준비하자.

3. 재림의 주를 기다리라(20-21)

신자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모든 소망과 생활은 천국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14:2에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계22:20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로되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범죄한 우리들은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함 받고 성령 안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다가 재림의 주를 영접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소망인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이 매우 가까왔으매 기름 준비하고, 달란트를 활용하여 남기고, 양이 되어 사랑을 준비해야 한다. 즉 성령, 봉사, 사랑을 준비하라.

시대적인 징조가 주님의 재림을 증거해 주고 있는 이 때에 깨어서 주님 맞을 준비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겠다. 그 이유는

1). 성도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20)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는 하늘에 소망을 둘 뿐만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 행동해야 한다. 하늘에 속한 자가 땅의 것을 위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직 위엣 것을 바라보고 찾고 대망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생은 외국인과 나그네와 행인이다(히11:13, 벧전2:7).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고 하였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고 저 세상이 우리의 집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마음을 두어야 하며, 그곳을 나의 집으로 여겨야 하며, 그곳에 있을 수 있기 위하여 희망을 가져야 한다(골3:1-2).

2). 구원의 주를 기다리는 자이므로(20)

바울은 여기서 환난이 많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의 임금이신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먼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청지기같이(마25:14), 또는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있는 처녀와 같이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마25: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소망은 성결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곧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요일3:3)고 하였다.

배를 신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는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가 없다.

3). 그 날에 변화될 것이므로(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이유 가운데 21절하반절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였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우리의 육체가 변화된다(살전4:16-17, 고전15:42-44). 고전15:42-44의 말씀을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주의 재림 때 우리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여 다시는 썩지 않으며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된다. 또한 그때 우리의 육체는 신령한 생명을 얻어 새 힘을 기른다.

주님 재림 때에는 살아남은 자는 자는 그대로 변화하여 주님을 영접하지만 죽은 자의 육체는 하늘에 있는 영혼과 다시 합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데 그때 부활되는 육체가 육체가 아닌 것이 되고 물질이 비물질이 된다. 그때의 우리의 몸은 최고로 순결하여 밝고 민활하게 된다. 그리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4. 결론

바울 사도의 눈물의 권면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다. 아니 나에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간절한 권면을 듣고 이 권면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자.

1). 그리스도를 본받은 바울의 신앙생활을 본받아 우리도 모범이 되고

2). 거짓 스승 십자가의 원수, 미혹하는 무리를 좇지 말고 오직 주님만 따르고

3). 재림하실 주님을 맞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성실한 교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