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례와 감사

제목:성례와 감사(고전11:23-34)

성례란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상징으로 신자에게 베푸는 거룩한 의식이다. 신약교회에서 거행하는 성례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세례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죄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를 받는 것이며, 둘째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인데 세례를 받은 자가 살을 대신하는 떡을 그리고 피를 대신하는 잔을 들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죽으심을 새롭게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1. 말씀과 성례의 관계

기독교는 선포된 말씀에 우위성을 둔다. 말씀은 만민에게 전파하나 성례는 신앙고백자에 한하여 시행하며, 말씀이 영혼의 변화와 성화를 위함이면 성례는 은혜에 속한 자를 교화하기 위함이고, 말씀이 성도를 낳기 위함이라면 성례는 그 교통을 유지강화케 함이다.

말하자면 말씀은 구원에 꼭 필요하나 성례는 필수적 요소가 아니며, 말씀은 음성을 통하여 대부분 전달되나 성례는 시각, 청각, 촉각으로 표현되므로, 전자가 귀에 들리는 복음이라면 후자는 눈에 보이는 복음이라 할 수 있어서 필요성과 적용성, 그리고 표현의 방법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말씀과 성례의 창시자의 그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며, 둘 다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또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같이 말씀은 성례가 없이도 온전히 존재하고 효력이 있으나, 말씀 없는 성례는 무의미하며 무가치하게 된다.

또 성례란 보이는 물질을 사용하여 행하여 짐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의 전체적 권고로 선포하나 성례는 구속을 그림같이 나타낼 뿐이다.

2. 성례의 의미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후, 낙원을 잃고 저주 아래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사 열어주신 구원 방도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성례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확신하는 자에게 인치는 하나님의 표로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정하신 은혜 언약의 거룩한 표와 인침이다(창17:7-14, 롬4:11).

이것은 구약 때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을 표시하였고(출12:22-23),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인 성례로써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을 제시하며 여기에 참석함으로 은혜를 받고, 성령의 감화 감동을 체험하고, 주의 사랑을 더욱 깨닫고, 믿음의 장성함을 얻게 된다.

성례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게 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자라므로 즐거움이 증가하며, 주를 향한 소망이 한층 새로워지며, 은사가 풍성히 임하므로 주 안에 있는 성도에게 신령한 유익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성례에 참여하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임을 분명히 외부에 공포하게 되며, 또 교회에 속한 자가 되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의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봉사할 수 있는 자격자로 인정받게 된다.

3. 성례의 효력

성례에는 항상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 참석자에게 은혜가 되도록 동반하신다. 그러나 성례가 합법적으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성례 안에 어떤 권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며, 성례 때 사용되는 말씀에 그 효력이 있으므로, 성령님의 가르침에 복종하고 은혜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믿으며, 순종하여 은혜의 약속을 깨닫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성례는 그리스도로부터 합법적으로 임직된 말씀의 사자인 목사에 의하여 거행될 수 있으며, 치리장로나 평신도는 결코 집례할 수 없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다”(히5:4).

4. 성례의 종류와 성질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뿐이다(마28:19). 구약의 할례와 성례들도 신약과 본질상 동일한 것이다(골2:11-12). 천주교는 7성례로서 주님이 세우신 성례 외에 견진성사, 고해성사, 종부성사, 신품성사, 혼배성사를 주장하나 주님이 성례로 제정하신 것이 아니다.

5. 성례란 무엇이기에 필요한가?

대요리 162는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 안에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인데 이 규례는 은혜의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1) 주의 중보의 혜택을 표시하시고 인지시고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며

(2) 그들의 신앙과 다른 모든 은혜들을 강화하고 더 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3) 그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기 위한 것이며

(4) 그들의 상호간에 사랑과 교훈을 증거하고 소중히 가르쳐 그들을 은혜의 언약 밖에 있는 자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므로 필요하다 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제 27장 1은 “성례는 은혜 계약의 거룩한 표와 인침으로서 하나님이 직접 제정해 주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나타내고 그 안에 있는 우리의 관심을 견고케 하며 교회에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을 뚜렷하게 구별시키며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엄숙하게 섬기도록 하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므로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동 4항은 복음에는 오직 두 가지 성례만 있다고 했다.

5. 세례에 대하여(롬6:1-11)

1). 세례의 기원

아브라함 때 할례를 행함으로부터(창17:9-14)

2). 세례란 무엇인가?

대요리 165에 “세례란 그리스도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씻음을 정하신 신약의 성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접붙힘이고 그의 피로 사함받고 그의 영으로 거듭나고 양자가 되어 영생에 이르는 부활의 표와 인침이라. 이로서 세례받은 당사자들은 엄숙히 유형적 교회에 가입하게 되고 전적으로 오직 주께만 속한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고백함으로 맺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1). 수세자를 유형교회에 가입시키는 예식이다(행2:41, 10:47)

유형교회의 일에 참여하여 발언하고 중직을 지고 봉사할 수 있도록 교회는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푼다.

(2). 수세자를 은혜 언약에 참여케 하는 표이다(롬4:11, 갈3:29).

(3). 그리스도에게 접붙이는 일의 표와 인호이다(갈3:27, 롬6:3-4).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냄이 되고 그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4). 세례는 중생하고(딛3:5), 죄 용서를 받은 표와 인호이다(막1:4, 행2:38).

세례는 죄 씻음 받는 표이다. 다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외적 증거에 의거하여 세례를 베푸나, 세례가 구원에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세례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함).

(5).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하나님께 드려 새 생명으로 행하는 일에 표와 인호가 되는 것이다(롬6:3-4). 그러므로 수세자는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함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주님을 위하여 살 것을 서원할 것이다.

3). 세례의 방법

세례는 합법적인 복음의 사역자인 목사에 의하여(고전4:1) 정결한 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마28:19). 세례란 담근다는 의미의 침례보다 씻어 정결케 한다는 의미로, 뿌리는 것이 더 적합하므로 물을 뿌려 약식으로 시행한다.

성경과 예수님은 어떤 세례 양식을 규정하시지 않았다. 또한 성령의 세례는 침수의 방법으로 받지 않았으나 영적 갱신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켤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겔36:25, 히10:22)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셨다. 이로 보건대 물을 뿌리는 예식은 영적 갱신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1). 세례에 사용될 물질은 물이다. 그 물은 정결한 물이면 된다.

(2). 세례는 합법적으로 성직에 부름받은 복음의 사역자(목사)에 의해서 베풀어진다(고전4:1, 히5:10).

(3).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진다(마28:19, 행10:47, 8:36-38, 엡4:11-13).

(4). 수세자를 반드시 물에 담그는 것(침례)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뿌리는 것으로 세례를 베풀 수 있다(막7:4, 행1:5, 2:3-4, 17, 11:15-16, 히9:19-21).

(5). 참고(빌코프 기독교신학개론 P270참조)

가. 세례는 죄를 씻는다는 관념이 물을 뿌리는 의식에서 표현된다.

나. 예수님이 세례의 양식을 규정하지 않았다.

다. 성경도 어떤 특별한 양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라. 세례라는 말(Baptism)은 필연적으로 (담근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씻어 정결케 한다)를 의미한다.

마. 고대로부터 세례는 물을 뿌리든지 또는 붓든지 하여 집행한 바가 있다(민8:17, 19:13-20, 시51:7, 겔36:25).

바. 성령의 세례는 침수에 의해서 취하시던 것은 아니다.

사. 영적 갱신은 물을 뿌림으로써 되어졌다고 아라의 성구는 말해준다(겔36:25, 히10:22).

4). 세례의 대상

(1). 그리스도에게 신앙과 순종을 고백하는 장년에게 베푼다(마28:19, 막16:16, 행2:41, 8:38). 수제자의 자격은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

(2). 신자의 양친이나 일친의 유아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요리문답166). 침례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반대하나 감리교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하여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3). 영아세례의 성경적 근거

가. 구약시대에 난 지 8일된 남아에게 베풀어진 할례는 영적 언약의 표요, 인이었다(롬4:1-18, 히8:10, 11:9-13, 신10:16, 30:6, 렘4:4, 9:25-26).

나.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언약은 아직도 유효하여 그것은 새 언약과 본질적으로 같다(롬4:13-18, 갈3:15-18). 신약의 신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과 마찬가지로 언약의 상속자들이다(히6:13-18).

다. 어린아이들은 언약의 혜택에 참예하였다(대하20:30, 수8:35, 행2:3-9).

라. 신약에 있어서 세례는 은혜 언약에 들어가는 표요, 인으로서 대치되어 할례는 폐지되었다(행15:1-2, 행21:21, 갈2:3-5, 5:2-6, 골2:11-12).

마. 사도시대에 아이들이 가끔 그들의 부모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믿을만한 성구가 있다(행16:15-34).

5). 세례의 효과

(1). 세례가 은혜의 방편이요, 구원의 확증은 주나 세례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중생하지 못하거나 구원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롬4:11, 눅23:40-43, 행10:45-47).

(2). 세례받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다 중생되었다고 할 수 없다(눅7:30, 창17:40).

(3). 세례의 효력은 장구히 계속되어 약속된 은혜를 받게 하고 그 은혜가 성령에 의해 표시된다.

(4).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성례를 계속할 것이나(마28:19-20) 어떤 사람에게든지 오직 한번만 베풀 것이다(딛3:5).

물 세례를 받은 자라도 반드시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짐과 함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충성하도록 되어야 한다.

6). 왜 세례를 받는가?(마3:5-19)

(1). 회개케 하기 위함(마3:11)

회개(메타노니아:μετανοια)는 (마음의 변화들로 돌아섬)을 뜻하며 “회개케 하기 위하여”(에이스 메타노이안:εις μετανοιαν)은 회개에로 돌아가는 상태로서 아직 회개하지 않으나 세례를 받음으로 개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2). 죄사함을 받기 위함(행2:38)

사하다(아피에미:αφιημι)는 (포기한다, 탕감하다, 취소한다, 용서한다)는 말이며 “죄사함 얻으라”(에이스 아페시우:εις αφτιυ)는 (탕감받기 위하여)이다. 이는 용서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라는 뜻이다.

(3). 구원을 얻기 위함(막16:16)

세례를 받는다(밥티스테이스:Βαπτισθεις)는 세례준다(밥티조:Βαπτιζω)의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서 (세례받은 후에)이며

구원을 얻을 것이요(소데세타이:σωθησεται)는 구원한다(소조:σωζω)의 미래 수동태로서 세례를 받은 다음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둘 다 수동태로서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객관적 은총임을 나타낸다.

(4). 예수와 함께 죽기 위함(롬6:3)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에이스 톤 다나톤 아우투:εις τον θανατον αυτου)는 “그의 그 죽음 안으로 향하여”로서 세례받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 계속 들어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는 입문이다.

(5). 예수의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롬6:4)

“새 생명 가운데서”(엔 카이노 테티 조에스:εν καινο τητι ζωης)는 질적으로 새로운 생명 가운데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는 예수의 새 생명 가운데에서의 동적인 삶을 의미한다.

(6). 예수를 나타내기 위함(요1:31)

“나타내려 함이라”(히나 파네로테:ινα φανερωθη)는 세례받은 자는 예수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필연적인 사명임을 보여 준다.

7). 세례받은 후의 생활은

교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받은 신자는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기 때문이다. 교인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만 향하여 살아야 한다(골3:1)

(2). 도의 젖(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벧전2:1-3)

(3). 항상 기뻐해야 한다(살전5:16)

(4).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살전5:17)

(5).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살전5:18)

(6). 봉사 생활을 해야 한다(마2:25)

(7). 진실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롬12:1-2, 요4:24)

(8). 하나님께 바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말3:8, 고후9:6-9)

(9). 주를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행1:8, 딤후4:2)

(10).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마5:13-14)

7. 성찬에 대하여

1). 성찬의 기원

(1). 유월절(출12:27)에서 유래되었다.

(2).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베푸심이 그 시작이다(마26:28)

(3). 오늘 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은 주님의 분부하심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고전11:23)

(4). 이 성례는 그의 교회에서 세상 끝날까지 지킬 예식이다(고전11:26).

2). 성만찬의 의미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 받음으로써 그의 죽음을 보여주는 신약의 성례이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적 양식이 되고 은혜로 자라는 것이며 주님과의 연합과 사귐이 확고하여지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서약과 한 신비로운 몸의 지체로 서로 사랑과 교제를 증거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주의 살과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흘리신 피를 영구히 기념하자 하심이다(고전11:24, 눅22:19)

(2).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든 은택을 신자들에게 인치는 것이다(요6:53-55).

(3).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의무를 더 잘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다(고전12:13).

(4).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양육하고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마26:26-29)

(5).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신체의 지체인 신자들이 그리스도와의 교통과 신자 상호간의 교통이 보증되게 하기 위함이다(고전12:13, 10:16-17)

3). 성만찬에 대한 견해

(1). 성만찬의 여러 견해들

가. 화체설:카톨릭 교회는 떡과 포도주가 성찬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는 주장이다. 제 9세기경에 파스카시우스라는 교부는 이적으로써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실제의 육과 피로 변화하였으므로 이를 먹는 것은 구원의 유일한 방도라고 하였다.

나. 기념설:프로테스탄트는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받으면서 주의 살과 피, 즉 대속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기념설을 주장한다. 종교개혁 때 쯔빙글리가 주장한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정설이 되었다.

다. 동체 현재설(공제설):마틴 루터는 화체설을 배척하고 예수님은 육체로 성찬에 동참하신다는 동체 현재설을 주장한다.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으나 그리스도의 전인격 곧 몸과 피는 그 떡과 포도주 안에, 아래, 그것과 함께 임재한다는 것이다.

라. 영적임재설: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의 힘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주어진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주장하여 신자가 영적 양식을 먹으면 성령의 역사로 수찬자에게 실제로 전달된다고 믿었다.

(2). 주의 만찬에 그릇된 주장

가. 이 성례에서 그리스도가 신자와 죽은 자의 죄사함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바쳐진다는 것은 잘못이다(히9:25-28).

나. 이 성례에서 어떤 실제적인 제사가 드려진다고 생각함도 잘못이다(눅22:19-20).

다. 교황주의적(천주교의) 미사의 제사가 신자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것으로 생각됨은 잘못이다(히10:11-14).

라. 성찬에 쓰여지는 떡과 포도즙이 사제(신부)의 축복이나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고 하는 교리(화체설)는 잘못이다(고전11:24-26, 눅22:19-20).

4). 성만찬의 집행

(1). 주님의 분부하심에 따라 교역자는 성례 제정의 말씀과 그 뜻을 성도들에게 선언하고

(2). 우리를 죄와 파멸에서 구속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려야 한다.

(3). 그리고 떡과 포도즙 잔을 거룩한 사용으로 선별하여

(4). 스찬자들에게 기도한 후 떡을 나누어 주고 다시 기도한 후 잔을 분배한다.

(5). 주요품를 세례교인 이상과 거리낌이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주요품을 예배하는 것이나 숭경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옮겨지거나 보존하는 것을 금한다.

(6). 마친 후 주님처럼 찬미하고(마26:30) 기도로 마친다.

(7). 성찬에 사용된 떡과 포도즙이 남았을 때에는 그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좋다.

5). 성찬의 효과의 은혜

(1). 합당한 수찬자는 이 성례에서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으심의 모든 은택을 받아누린다(고전10:16).

(2). 합당한 수찬자는 이 성례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영적으로 신자들의 신앙에 대하여 임재한다(요6:53-58).

(3). 성찬을 통해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셔서 죄를 대적하게 하며 모든 고난에서 저희들을 견고하게 하신다. 저희들을 장려하고 격발하여 책임을 감당하게 하며 사랑과 열심으로 저희들을 감화하며 믿음과 거룩한 주의를 일으키게 하며 양심에 평안함과 영생의 소망을 확실하게 하는 데 무한한 유익이 된다.

6). 성찬에 참가할 수 있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신앙하고 죄를 자백한 후 세례를 받은 자라야 한다(고전11:29)

(2). 복음의 도리를 학습하고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온전한 지식이 있는 자라야 한다(고전11:27-19)

(3).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자 작정하는 자라야 한다(고전10:21, 5:5-7, 마7:6, 고전11:27).

7).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고전11:23-34)

세례는 예수님의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죄를 씻는 표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자는 죄를 원통히 여기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여야 한다. 그리고 성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사죄와 영생, 그리고 평안과 기쁨의 구원 축복을 그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예식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에 참예하는 자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까?

(1). 속죄의 신앙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본문 11:24 말씀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마26:28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신 말씀으로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떡과 잔을 들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에 참여하는 자는 반드시 나를 위해서, 아니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주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떡과 잔을 들어야 한다.

(2). 영생의 신앙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요6:54 말씀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속죄만이 아닌 영생도 함께 포함되는 죽으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례에 참여하는 우리는 속죄의 신앙뿐만 아니라 영생의 신앙까지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영생이 무엇인가? 나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믿음이 바로 영생이다. 요 5:24 말씀에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3). 예수님과 영적으로 한몸된 신앙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요6:56 말씀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속죄의 주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믿는 자의 영적 생명이 연합됨으로 한몸이 된다는 말씀이다. 이는 마치 밥을 먹으면 그 밥이 위로 들어가 살이 되고 뼈가 됨으로 한몸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성례에 참여하는 자는 예수님과 한몸이 된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고 참여해야 하겠다.

8. 결론

거룩하신 주님! 성찬의 성례를 허락하시며 날 위하여 흘리신 피를 기념하며 믿어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마다 새롭게 되어 이 새 언약 속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옷 입고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