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과 아비가일

제목: 나발과 아비가일(삼상25:2-3, 32-42)

마온의 부자 나발과 그 아내 아비가일은 부부이면서도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데, 남편 나발은 우매자의 표상이요 그 아내 아비가일은 현명한 자의 표상이다.

삼상 25장에 나타난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마온)에 거주하는 나발은 그 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산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그때 다윗이 600명의 추종 소년을 거느리고 사울에게 쫓기면서 야인 생활을 하던 중 나발이 양털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10인의 소년을 그에게 보내었다.

나발의 집이 평안하고 그의 업이 융성한 것은 그의 목자들이 다윗의 보호하에 있었기 때문임을 주지시키고 얼마간의 물질적 혜택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말하기를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고 했다.

소년들로부터 이 보고를 받은 다윗은 격분하여 600명 소년 중 200명은 남겨놓고 400명을 거느리고 나발의 있는 곳을 향하여 올라갔다.

한편 일꾼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다윗이 주인에게 모욕을 당한 사실과, 다윗이 나발의 집을 해하기로 결정한 사실에 대하여 알려주며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이에 아비가일은 급히 떡 200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100송이와 무화과 뭉치 200을 취하여 나귀들에 싣고 소년들을 앞서가게 하고 뒤따라 갔다. 물론 이 사실은 나발이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가다가 산 유벽한 곳에서 다윗의 일행과 마주쳤다. 다윗은 나발의 집안을 결단내고자 작심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꿇어 엎드린 다음 간곡하게 탄원했다. 미련한 주인 나발을 개의치 말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돌려주실 것과 피흘려 보수하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시니 이 예물을 거두어 주실 것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으니 그때에 기억하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고 그의 예물을 받아들인 다음 돌아갔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집에 돌아오니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대취하여 혼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아침에야 경과를 죄다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나발이 낙담하여 몸이 돌처럼 굳어져 한 열흘 후에 여호와의 치심으로 죽어버렸다.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손으로 피흘리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새삼 아비가일이 생각나서 사환들을 보내어 구혼한 결과 마침내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나발은 우매자요 아비가일은 현명한 자인 사실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매자 나발과 현명한 자 아비가일의 모습을 추적해 보기로 하자.

1. 우매자의 표상인 나발을 추적해 보자

1). 나발의 이름의 뜻(삼상25:25, 2-3)

나발은 문자적으로 (평평한), (맛없는), (어리석은 자)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이다. 이것은 그의 원래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가 어리석으므로 붙인 별명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3)이 그 이름에 적당함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는 큰 부자로 3,000마리의 양과, 1,000마리의 염소를 기르고 있었다(2).

또한 그는 갈렙의 후손이었지만 갈렙의 덕은 상속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참 사람됨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인정받아서 사느냐 하는 데 있다(눅12:15).

2). 나발은 미련한 사람이다(삼상25:25, 1-4)

삼상 25:25에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이니라)고 했다. (미련하다)는 말은 어리석고 둔하다는 말로서 지혜있다는 말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물에 대한 판단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일컬어 흔히들 미련하다고 한다(예:곰이 주인의 얼굴에 앉은 파리를 일망타진하겠다고 다듬이돌을 내려 누른 사실이나, 주창이 이를 잡다 바위 위에 얹어 놓고 주먹으로 내려친 야화등은 힘이 있으나 미련한 자의 본보기이다).

성경에는 (1)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자를 미련하다고 한다(시14:1). (2) 물질을 쌓아 놓고 육신의 향락만 도모코자 하는 자를 미련하다고 한다(눅12:20). (3) 집을 짓되 모래 위에 건축하는 자를 미련하다고 한다(마7:26).

그러므로 사람이 미련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굉장한 수치교 욕이다. (마5:22)에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했다.

그런데 나발은 미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해득실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현재와 장래에 대한 정당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3). 나발은 배은망덕한 사람이다(25:5-11)

나발의 목자들이 (바란) 광야에서 나발의 양들을 먹일 때에 다윗과 그 부하들이 약탈하는 무리나 맹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으므로 그들은 양 한 마리도 손실하는 일이 없었다(25:15).

나발이 (갈멜)에서 양털깎는 잔칫날에 다윗이 사자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음식을 얻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발은 다윗의 사자들에게 모욕을 주어 빈손으로 보냈다(25:5-11).

다윗은 나발의 배은망덕한 행위에 분개하여 600명 군사 중 400명의 용사들에게 무장을 명령하고 나발과 그 집을 멸하려고 쳐들어 갔던 것이다.

(배은망덕은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1) 은혜를 입고도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2) 은혜를 입고 그것을 원수로 갚는 비열한 사람도 있고

(3) 은혜를 입고 감사 보은의 삶을 사는 고상한 사람들이 있다.

은혜받은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은 학식이 있든 없든 간에 위대한 사람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 부부간의 은혜, 스승의 은혜, 형제의 정, 나아가서 이웃들의 사랑도 잊지 말고 감사 보은하는 고상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발)은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비열하게 갚는 배은망덕자로서 하나님께 버리운 바가 된 타락한 인간인 것이다. 우리는 나발처럼 배은망덕자가 되지 말고 감사 보은하는 자가 되자.

4). 나발은 육심이 많은 사람이다(25:9-11)

나발은 다윗이 자기의 양떼를 지키는 데 울타리가 되어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처럼 다윗이 물질의 사례를 요청했을 때 시치미를 딱 뗀 것은 욕심 때문이었다.

자기 유익은 다 취하고 자기에게서 나가는 것은 절대 금하는, 욕심적이고 이기적인 입장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세상 일에는 주고 받는 것이 원칙이다. 곧 (give and take)인 것이다.

* 갈릴리 호수는 물 근원으로부터 물을 유입하고 요단강을 통하여 사해로 물을 내보낸다. 그 까닭에 항상 그 물이 신선하며 많은 고기들이 그 안에 살고 있다.

반대로 사해는 욕심스럽게 물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절대로 내어 보내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물이 동결된다. 따라서 그 바다는 고기도 살지 못하고 죽은 바다라고 해서 사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하지 않았는가?

나발은 부자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부를, 청지기로 자처하며 그 물질을 바로 쓰지 못함으로 우매자(어리석은 자)가 되고 만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것을 배우기 바란다. 비천에도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 알아 자족하기를 배워 만족된 삶을 누리시기 바란다(빌4:1-14).

5). 나발은 인색한 사람이다(25:36-38).

그는 자기를 위해서는 지극히 탐욕스런 인물이었으나 남을 위해서는 지독한 노랭이었다. 곧 인색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해서는 왕의 잔치같이 벌여놓고 대취하여 기분 좋아했으나 다윗의 일행에게 그의 아내가 집안의 화를 막기 위하여 약간의 식물을 전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낙담하여 몸이 굳어져 버렸고, 그 길로 앓다가 열흘 후에 죽었다. 이 사실은 그의 인색한 성품을 잘 드러내 주는 장면이다(37-38).

눅16장에 나오는 한 부자와 흡사한 점이 많다. 그도 자기는 늘 호화로이 연락하면서 대문간에 있는 나사로의 불행은 외면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향해서나 이웃에 대하여 인색하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다.

고후 9:7에 헌금에 대한 말씀 중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다.

행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인색한 마음을 품어 시험에 듦으로 망했다.

이웃에 대해서도 마 10:42에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주는 자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했다. (잠31:20)에서는 현숙한 여인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민다”고 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후하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 그가 바로 지혜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구두쇠 노랭이 우매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들은 절대로 인색자가 되지 말고 먼저 주는 자가 되자.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였다.

6). 나발은 성격이 불량한 사람이다(삼상25:17, 25, 3)

삼상 25:17에 소년이 아비가일에게 나발에 대하여 말하되 “주인은 성격이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라고 했다. 25절에선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나발에 대하여 말하면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소서”라고 있다. 또 3절에 나발이 완고하고 그 행사가 악한 갈멜 족속이라고 했다.

이를 보건대 나발은 완고하고 악하며 몹쓸 사람이었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미련하면서도 외고집이었고 안하무인의 사람이었다.

여기서 불량한 사람이란 벨리알의 아들 즉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교만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무가치한 자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다(잠21:24, 사23:9, 벧전5:5).

삼상2:12에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나발도 같은 유의 사람이었다. 욥1:1에 나오는 욥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거기에 보면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다. 결국 불량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행자지하며 행악을 일삼고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잠2:13-15에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고 하였다.

7).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나발(36-38)

38절에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이 심판하셨다는 말이다.

나발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범죄 행위가 되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면치 못하고 잔칫날에 몸이 돌처럼 굳기 시작하여 열흘 후에 죽고 말았다.

나발은 악인의 마음이라 자신의 영혼보다 재물을 더 중하게 여겨 이런 슬픈 인생을 끝맺었다. 악인의 욕심은 결국 사망을 초래하고야 만다(38, 약1:15).

2. 현자의 표상인 아비가일을 추적해 보자

1). 아비가일의 이름의 뜻

(아비가일)이란 히브리어로 “아비를 기쁘게 하는 자”라는 뜻으로 기쁨을 주는 자를 의미한다. 여인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16:18) 내조자였다.

그러나 재물과 가문 때문에 딸을 팔아 버린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서 더 이상 (기쁨)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자신의 자녀들을 세상의 재물이라는 쓰레기더미에 던져버리고는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하여 한탄하는 부모들이 허다하다.

2).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3, 33)

본문 3절에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답다”고 했다. 33절에 다윗도 아비가일의 지혜를 칭찬하며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는니라”고 했다.

참으로 아비가일은 아름다우면서도 지혜가 뛰어난 총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발의 집에 닥쳐올 재앙을 지혜로써 막았다. 남편에게 의논해 봐야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고 일은 화급을 다투는 까닭에 먼저 예물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나아갔다.

다음 그는 다윗에게 겸손히 엎드려 간청과 설득을 하였다.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함으로 다윗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장차 왕이 될 그가 일시적 흥분으로 백성의 피를 흘렸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30-31).

이에 다윗도 그녀의 지혜에 감탄하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자기 집에 미칠 재앙을 미리 막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잠31:26에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한다”고 했는데 아비가일이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3). 아비가일은 자비로운 여인이었다(삼상25:15-16, 8, 10-11, 18-19, 23-28, 35)

그녀는 다윗의 무리를 크게 동정했다. 즉각 식물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나아가 그들에게 드렸다. 그녀는 물질에 인색하거나 욕심 때문에 덕성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려움에 처한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모성적 사랑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왕왕 사람들 중에는 지혜가 있으면 덕성을 결하기 쉬우며, 부하면 교만하기 쉬운 법인데 아비가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인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성경에 말씀했다.

아브라함이나 롯은 긍휼을 베풀고 손대접하기를 힘쓴 결과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복을 받았다. 이처럼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같힌 자를 따뜻이 대접하는 자를 주님은 자신이 대접받은 것으로 여기며 칭찬하신다.

아비가일은 탐욕에 젖어 인색한 여성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자비를 베푼 지덕이 겸전한 여인이었다.

4). 아비가일은 다윗의 은혜를 보답하는 여인이었다(삼상25:15-16, 23-28)

나발의 한 목자가 증언하기를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하였다.

이에 다윗이 나발의 양털 깎는 잔칫날에 다윗의 종 10명이 우리에게 은혜를 얻게 하라고 했다. 이에 나발은 다윗의 정당한 이 요구에 대하여 미련하고 완고하게 거절했으며, 배은망덕한 비난의 말까지 하였다(8, 10-11).

그러므로 다윗은 그의 부하들에게 무장을 명령하여 나발의 집을 멸하려고 진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많은 음식을 나귀에 싣고 다윗을 맞으러 갔다(18-19)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과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을 취하여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 남편 나발에게는 고하지 아니하리라”(삼상25:18-19)

아비가일은 중도에서 다윗과 그의 종들을 만나 다윗의 발 앞에 겸손히 엎드려 용서를 구하였다(삼상25:23-28). 그리고 다윗의 은혜를 남편 대신 보답하고 있다. 이에 나발의 죄를 용서하고 아비가일에게서 음식을 받았다(35).

이와같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처신과 자비의 정신으로 은혜를 보답하는 일로 말미암아, 나발의 집에 임할 무서운 화를 돌이키게 하였던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을 주님의 망극하신 은혜를 받고도 주님께 인색하고 배은망덕을 하는 일이 많다. 이런 배은망덕을 하는 일로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섭섭하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나발과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아비가일 같은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우리 죄와 죽음을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몸, 우리의 소유 전부를 주께 드린들 무엇이 아깝겠는가? 우리 몸 우리의 모든 소유도 주님이 원하실 때 주께 드리는, 은혜를 보답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될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것을 주님께 드릴 때에 주님이 더 많은 은혜의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5). 아비가일은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뛰어난 여인이었다(28, 30).

그는 시골에서 가정을 돌보는 주부였으나 임기응변의 지혜도 뛰어났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식견도 갖춘 여인이었다.

그가 다윗에게 한 말은 그가 얼마나 휼륭하고 매혹적인 여성인가를 말해 준다. 그는 근시안적으로 지금만 보지 않고 먼 장래까지 내다보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는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을 지혜로운 판단과 민첩한 행동을 통하여 재빨리 수습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그는 모든 것을 갖춘 훌륭한 여인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식견과 능력의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여성, 곧 평범한 여성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줄 모른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식과 교양, 긴 안목을 가진 여인이었고 아름다움과 지혜와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식견이 있었다. 우리도 아비가일 같은 식견을 가지고 살자.

6). 아비가일은 신앙을 가진 여인이었다(28-30, 26)

그녀는 다윗에게 미련한 나발을 상대하여 피를 흘리지 말라고 간청했다. 여호와께서 반드시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우실 터인데 그 날을 위하여 후회 막급인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 것을 탄원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공경했고 생명을 사랑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비가일이 하나님의 경륜을 감지하고 있는 놀라운 신앙을 엿보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인물이므로 꼭 임금이 될 것인즉 덕을 쌓고, 피를 흘려 원성을 쌓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논지였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다윗을 후대하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이같은 인물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을 상기할 수 있다. 여호수아 2장에 라합은 정탐군 두명을 숨겨 주고 지혜를 써서 그들을 살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하기를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반드시 이땅을 당신들에게 주실 것인즉 그날에 나와 내 가족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 결과 라합과 그 가족은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구원받고,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조상의 할머니가 된 것이다.

언제나 신앙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한다. 미련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아비가일은 신앙의 안목을 가진 인물이었다.

잠30: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7).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25:39-42)

다윗의 은혜를 저버린 나발은 하나님이 결국 심판하셨고 다윗의 은혜를 보답한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나발의 죽음으로 과부가 된 아비가일에게 다윗이 청혼을 하였다. 이에 아비가일은 그 청혼을 매우 정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41-41).

죽은 남편에 대한 미망인의 애곡 기간은 법적으로 7일이면 끝이 났다(삼상31:13, 창50:10).

아비가일이 다윗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고 곧 바로 수락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녀의 결혼생활이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3). 여하튼 그녀가 매사에 지혜롭고 겸손하였기에 다윗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잠15:33, 22:11).

3. 결론

우리는 나발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우매자의 인생관, 세계관, 철학을 가짐으로 자행자지하다가 망하는 자가 되지 말자.

그보다는 아비가일처럼 현명한 인물이 되자. 현명한 자의 인생관, 세계관, 철학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다가 영생하는 자가 되자.

우리 교회 남자 성도들은 나발처럼 우매자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여자 성도들은 모두 아비가일처럼 현명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즉 너희가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