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가봇이냐 에벤에셀이냐(삼상4:1-22, 7:3-11)
이가봇:(영광이 없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는 의미이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그의 아들 비느하느의 아내)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과 시부와 남편의 사망 소식과 특히 하나님의 언약궤가 원수에게 빼앗겼음을 듣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몸을 구부리며 해산했을 때 여인들이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지만 거기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죽어가면서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고 하였다.
에벤에셀:(도움의 돌),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의미이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해방되기를 염원해 오던 중 사무엘이 지도자로 등장하여 미스바로 백성들을 모이게 해서 변변한 무기도 없이 블레셋과 전투하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승리를 그들에게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한 그곳에 돌기둥을 세워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 이가봇(삼상4:1-22)
1). 이가봇의 원인(이스라엘이 패전하게 된 원인)
(1). 엘리 제사장 가정의 타락이 그 대표적 원인이다(삼상2:12-17, 마23:13).
지도자 한 사람의 선정 여하에 따라서 큰 차이가 생겨진다. 다윗의 전성으로 그 국민이 태평을 누렸고, 아합왕의 타락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헤매이게 되었음을 생각해 보자.
엘리 제사장은 자신도 노쇠하여 영력이 감소되었거니와 더구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더러운 죄를 짓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금하지 못하여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수 차에 걸친 여호와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그 마음이 바로처럼 강팍케 됨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제사장 직분을 내놓지 않으니 마치 천국문을 막고 자기도 안들어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셈이다(마23:13)
이러한 영적 타락은 결구 적을 불러오는 것이매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엘리 제사장 가정타락-->여호와의 제사 멸시(삼상2:17)-->도덕적 타락(삼상2:22)-->자녀들을 책망치 않는 부모-->전쟁이 일어남
(2).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하였던 것이 원인이다(삼상3:1, 암8:11, 대하26:4-5, 딤후4:3-5, 렘17:5-11).
엘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은 것은 마치 눈이 어두워진 엘리 제사장과도 같이 영적으로 소경의 상태 곧 영적인 암흑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사모하며 갈급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살피려는 진지한 마음이 없다(롬12:1-2).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죄와 타락으로 어두워진 심령들이 깨닫지 못하며 나아가서는 순종하지 않는다.
아모스 선지자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때가 오리라고 예언하였다(암8:11).
(3). 하나님을 이용하려는데 그 원인이 있다(삼상4:1, 3-11, 대하26:4-5).
처음부터 법궤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니고 자기들 지혜와 능력으로 싸우다가 군사 4천명이 죽으니까(삼상4:2) 다시 법궤를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줄 알고 가져다 싸우다가 이스라엘 보병 삼만 명이 죽었고(삼상4:10) 법궤까지 블레셋 나라에 빼앗기고 말았다.
더구나 범죄하여 그 몸이 더러워진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룩한 법궤를 메고 진중에 왔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 노릇인가? 그러므로 예수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마귀를 물리쳤고 십계명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다.
(4).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에 패전하였다(삼상4:5-11, 삼상17:47).
그 당시 법궤가 전쟁 마당인 히브리전에 임할 때 땅이 진동하고 큰 소리가 나므로 블레셋 진중의 군인들은 벌벌 떨었다.
그러나 범죄한 이스라엘을 직접 치시지 않고 반드시 이방을 들어 치셨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삼상17:47) 법궤를 메고 나온 이스라엘군이 오히려 패전하고 법궤까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었다.
비극 중의 비극이요, 수치 중의 수치일 뿐이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뜻함인데 그 법궤가 이방나라에 넘어갔으니 얼마나 회개할 일인가?
2). 이가봇의 비극
(1). 엘리의 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삼상4:11)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보병이 3만 명이나 엎드러졌고 당일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본래 제사장의 아들들로서 귀중한 직분을 더럽혀 회막에서 음행을 자행하던 자인지라 그 죄값에 죽었다고 할 수 있으나 여하튼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 엘리 제사장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삼상4:17-18)
이스라엘의 패망 소식이 어떤 베냐민 사람에 의하여 전해졌다(16-17). 그 사람은 옷을 찢고 티끌을 온 몸에 끼얹고 와서 비통한 보고를 하였다.
“3만명의 병사가 쓰러졌고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하였으며 법궤까지 빼앗겼나이다”라고 하자 이 때 엘리 제사장 나이가 98세의 고령인고로, 받은 충격으로 인해 의자에 걸터 앉아 있다가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것이지만(히9:27), 너무 비참하게 죽었고 너무 불행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3). 엘리의 며느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삼상4:20)
전쟁의 비보, 남편의 전사 비보, 그리고 시부의 참사 소식을 듣자 비느하스의 처인 엘리의 자부가 해산하다가 비명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가 해산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외친 것은 그의 죽음이 사실인즉 법궤가 빼앗긴 때문이라고 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의 죽음의 간접적인 요인은 그 시부의 불찰과 남편의 죄악에 기인했다고 함이 매우 타당할 것이다. 그는 신앙의 여성으로 불신앙의 가정적 제물이 된 셈이다.
(4). 국가적인 이가봇(삼상4:22)
본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별하신 택한 민족이었는데 하나님을 진실하게 심기지 않고 우상 숭배에 치우쳤고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결국 나라까지 패망하는 자리에 이르른 것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전하였으며 하나님의 법궤마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겼다.
엘리 제사장의 시대-->여호와의 제사를 멸지(삼상2:17)-->도덕적으로 타락함(삼상2:22)-->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이 희귀함(삼상3:1)-->형식주의, 의식주의에 치우침(삼상4:1)-->하나님의 영광이 떠남(이가봇)
2. 에벤에셀(삼상7:3-12)
“여기까지 도우셨다”, “도움의 돌”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벤에셀은 (고전15:10)과 그 의미가 상통하는데,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다.
1). 에벤에셀의 동기
엘리 제사장 시대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고 어찌해서 사무엘 시대에 이르러 도와주시게 되었는가? 그 동기를 살펴보자.
(1). 여호와를 사모하여 찾아 돌아왔기 때문에(2-3).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전황과 신앙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대하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였다.
전심으로 주를 향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승리한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시42:1-2, 히12:1-2, 사40:30).
(2). 이방 우상을 철폐한 데 있다(3-4).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은 도적질이나 간음이나 살인죄 보다도 우상숭배 죄를 더욱 미워하신다고 하였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대상은 모두 우상이다. 더 무서워하는 것도, 더 의지하는 것도, 더 자랑하고 높이는 것도 다 우상이다. 이를 철폐해 버리고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이에게 승리하게 하신다.
(수24:15-16)에 “너희는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3). 미스바에 모여 진정한 회개를 먼저 했다(5-6).
사무엘 선지는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말하면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며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범국민적 회개를 하였다.
이렇게 물을 붓는 의식은 혹자는 여호와 앞에서 마음을 쏟아 회개하고 정결함을 받는 상징적 행위라고 본다. 마음을 주님 앞에 물 쏟듯이(애2:19, 시12:8)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잘 도와주시지 않는다(사59:1-2, 잠28:12). 매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없도록 회개하는 삶을 살 때 에벤에셀의 축복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4).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부르짖는 기도를 했다(8-9).
이스라엘 민족들이 무너졌던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제사와 제물을 드리면서 온 이스라엘의 기도운동과 신앙운동을 일으키자,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수립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게 되었다고 했다.
(번제)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나는 주의 것”(사43:1)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다 맡기는 우리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바른 헌신을 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탄식하시며 그들이 위기를 당하여도 도와주시지 않는다.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없어야만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신다(롬12:1-2, 14:17-18).
급하고 위기를 만났을 때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시50:15).
(5). 나가서 싸웠다(10절)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은 도와주시지 않는다(살후3:10, 롬12:11-12).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
회개하고 헌신하고 노력하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놀라운 응답을 하셨다. 그들은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고 감사하는 찬양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앞에 나아가 싸워도 내 힘으로 이기게 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닛시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의 기념비를 세울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엡3:20, 요16:33, 고전10:13).
2). 에벤에셀의 결과(내용)
(1). 블레셋 군대가 항복하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11-13).
(삼상7:13)에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산성과 방패가 되어 주신 데 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실패자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하신다.
(2). 잃었던 영토(땅)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14)
(삼상7:14)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승리의 두번째 결과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이 되심을 밝혀 준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잃었던 신령한 힘을 다시 찾아야 된다. 사람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에서 다스리고 정복하는 권리를 다시 찾아야 된다.
(3),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14).
(삼상7:14)에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하였다.
사방이 원수들로 둘러 쌓여 전쟁만 계속되었던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 왔다. 평화는 이 백성이 가장 안타깝게 소원하던 문제였다.
소망하던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 사회국가의 평화 이것을 얻어야 하겠다.
(4).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 항상 함께 하였고 하나님의 보호의 손이 또한 항상 함께 하였다(13, 16).
사무엘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로 40년 동안 블레셋의 침입이 없었다. 오히려 블레셋과의 제 3차 전쟁에서 승리하여 에그론, 가드 두 곳 주요 도시의 변경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후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는 다시 블레셋 나라의 침입이 있었다.
(5).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9-10, 17).
사무엘이 전승한 후 자기 집(라마)에서도 참된 제단을 하나님께 쌓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우리가 축복받기 전 소원을 이루기 전 응답을 받기 전에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나, 승리하고 축복받은 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아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워 후세대가 하나님께 영광을 계속 돌리기 원했고 자기는 자기 집 라마에서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3. 결론
과연 나는 이가봇인가 에벤에셀인가를 진단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에벤에셀이 될지언정 이가봇은 되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이 되면,
(1) 하나님의 사랑이 떠난 상태는 증오요,
(2) 하나님의 축복이 나를 떠나버린 상태는 저주요,
(3)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떠나간 상태는 무기력이요,
(4)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간 상태는 고독이요,
(5) 하나님께 대한 일체 소망이 끊어져 버린 상태는 절대 절망이 되고 마는 것이다(히13:1-8).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에벤에셀의 기념돌이 항상 같이 하시기 바란다.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돌이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시고 승리와 영광, 확장과 회복과 발전, 안정과 평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과 하나님께 영광이 계속 더하는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