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의 길

제목:문제 해결의 길(빌4:1-7)

인생을 살다가 보면 여러가지 일들을 당하게 된다. 형통한 일을 만나기도 하고 곤고한 일도 만나게도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게 되는 것이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바울은 본문에서 말해 주고 잇다.

1.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빌4:1-3)

빌립보 교회 안에 여집사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사람이 서로 불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여성도들은 빌립보 교회를 세울 때 바울과 같이 주요 역할을 한 자로서 중요한 지위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아니하고 싸우고 있었다.

바울은 의견 일치가 서로 되지 않으니 갈라서거나 교회를 나와 다른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해결을 위해 빌립보 성도들이 도와주라고 하였다.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이와 같은 말다툼이 있는 후 개인적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예수님은 이와같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함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하신다. 내가 먼저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한다고 해 서 그 사람이 작게 되는 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1). 주 안에 든든히 서라(1)

(주 안에 서라)는 새 번역에(든든히 서라), 구역에는 (굳게 서라)로 번역되었고 영어 성경에는 stand fast(스탠드 훼스트) (견고히 서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헬라어(스테케테)는 (몰아쳐 오는 적군에 직면하여 떨지 말고 크게 서서 대적하라)는 뜻이다(바클레이). 달리 말하면 반석과 같은 부동의 신앙을 가지라는 말이다.

세상에 풍파와 시험 환난에 흔들리지 말고 든든히 서서 신앙의 부동의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서라는 것은 군인의 임전태세의 자세를 뜻하는 말로서 교회 안팎의 원수를 대항하기 위해서는 굳게 서야 한다.

교회는 마귀와 싸우는 전초 기지로, 원수와 싸우려면 자체 내의 단결이 중요하다. 교회 생활은 무엇보다 합심과 협력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원수와 싸울 때 물러서지 않으려면 주 안에 굳게 서야 한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같은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같은 마음을 주 안에서 품으라. 신앙을 떠나서는 화합할 수 없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주 안에서 합심 단결하기를 바랐다. 이것이 편지를 쓰는 동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교회에 내분이 있었다. 내분의 원인은 두 부녀의 충돌이었다. 이들은 다 교회를 열심으로 받드는 일꾼들이다.

오늘날 기독교회에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교회 연합 문제이다.

화평의 비결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같은 형제로서 모든 질투와 악의는 다 물리쳐 버려야 하며 겸손과 자비의 정신으로 서로 이해하고 서로 화친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마음)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마음은 곧 교회의 유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크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피차에 화목하고 피차에 사랑하는 마음이다.

3). 사역자(멍에를 멘 자)를 도우라

(도우라)는 것은 (포섭하라, 붙잡으라, 협조하라)는 뜻이다. 인사 문제가 단체생활에 중요하고 교회생활에는 더욱 중요하다.

교회 안에 열쇠를 쥔 몇 사람이 화목하면 온 교회가 화목하고 단결할 수 있다.

(글레멘드)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 후대 로마의 감독으로 유명한 글레멘드도 있었으나 흔한 이름이라 할 수 없다.

그 밖에도 몇몇 사람이 있었으나 바울은 그 이름들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저들을 불러 (나의 동역자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다.

바울의 동역자는 여럿이 있었는데 그 이름들이 여기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아시고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아시고 생명책에 그 이름을 등록해 주신다(계20:12, 15).

*+ 밭을 가는 두 마리의 소는 한 멍에를 메고 협력함으로 어려운 일을 감당한다. 의견의 대립과 행동의 부조화는 갈등과 시기심으로 나타나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다.

크리스천은 하늘 나라에서 영생을 같이 누릴 자이기에 협력해야 한다. 크리스천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어서 영생을 보장받고 있다.

영생의 보장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분쟁하는 이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2. 어려운 환경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서 (항상)이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항상 기뻐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환경을 초월한 기쁨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주 안에서 가능하다. (주 안에서)란 말이 1, 2, 4절에 나오는데 이는 큰 의미를 주는 말이다.

인간 안에서는 주 안에 굳세게 서기가 어렵지만 (주 안에서)는 가능하며, 인간안에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으나 (주 안에서)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주 안에서)는 인간적인 환경을 초월한, 초인간적인 사랑의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인간과 하나님과를 화해시키셨듯이, 주 안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가능해진다.

우리의 삶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때도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경을 초월한 기쁨을 갖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이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주시므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의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함을 뜻한다.

이렇게 할 때 어려운 환경은 우리의 영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되므로 어려운 문제나 환경 뒤에 계신 주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을 당하게 되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더욱 간절히 기도하므로 육신적인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영적 성숙의 교실이 된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같힌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오히려 복음이 속히 증거되게 하시고 자신이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었으므로 그는 기쁨을 가지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다.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 분은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에게 당한 것이 없고 감당치 못할 때 피할 길을 내어 능히 감당케 하시기 때문이다(고전10:1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분(롬8:20)이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면 내가 쉬게 하리라(마11:28)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쁨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주 안에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기 때문이다.

2). 항상 기뻐하라

크리스천의 생활은 계속해서 기뻐하는 것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의 구별점이다.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할 것 없이 언제나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일이 찬란하면 기쁨이 넘치고 장래가 암담하면 슬퍼한다.

이 기쁨과 슬픔 사이를 헤매이는 이유는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 대신 변하기 쉬운 세상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기쁨은 환경에 따라서 오는 것이 아니며 또한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겉으로 어둡고 불행한 것 같이 보이나 그 안에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고후4:8-10).

바울 자신은 가이사의 재판을 기다리며 생사선을 넘나들며 순교의 쓴 잔이 언제 그를 덮칠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신의 피로는 극도에 갈했고 바울을 비난하고 괴롭히는 자는 한 둘이 아니었으며 그의 주위 환경은 어둠과 압박감에 눌려 있었다.

그런 중에서 바울은 신앙의 기쁨을 얻었고 그 기쁨을 남에게 권면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크리스천들의 이상이요, 특권이다.

3).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

크리스천 서로 간에는 마음을 같이해야 하며, 주를 상대하는 생활 태도는 기쁨이어야 한다. 기쁨은 본서의 기본 단어로 세상의 기쁨은 주색의 기쁨면서 향락의 기쁨, 돈, 권리, 예술, 성공의 기쁨을 말하나 신자의 기쁨은 주 안에서 얻는 신앙적 기쁨이다.

길 잃은 양을 찾는 기쁨이 신자의 기쁨이요, 집 떠난 아들을 찾고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기쁨이 교회의 기쁨이다.

바울을 빌립보 감옥의 착고에 갇히는 환경이었지만 기도하고 찬송하는 영적인 기쁨을 잊지 아니하였기에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었다. 영적인 기쁨을 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부활 후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주님의 평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과 좋은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3. 어려운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는데 어떤 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고 격려를 받아서 여러 가지로 유익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주 성격이 못되어 야비하고 간사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울은 본문에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용서와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대함으로 나쁜 사람도 크리스천의 관용을 알게 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고 말하고 있다.

1). 관용이란

(관용)은 헬라어(에피에이케이아:epieikeia)인데 번역하기에 대단히 힘든 말이다.

(1). 위크맆(Wiclife)은 인내로

(2). 틴달(Tyndale)은 온유로

(3). 크람머(Crammer)는 부드러움으로 번역했다.

이 관용이란

(1). 박해에 대한 온유성

(2). 중상자에 대한 용서

(3). 사무처리에 대한 공정성

(4). 남을 판단함에 대한 공평성

(5). 성격의 친절성

(6). 감정의 절제성이라고 기록했다.

(관용)은 인색하지 않고 공정하며 편벽되지 않고 관후하며 융통성이 있고 고집하지 않으며 친절하고 무례하지 않는 것이다(40-55). 말하자면 크리스천의 성격을 이루는 예절과 품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완고와 경솔의 반대요, 동정과 관대함으로 자기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관용)은 남이 나에게 악감정으로 대할 때 선으로 대해 주며 남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 때 참고 유순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대는 것이 관용이요,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자에게 십 리를 동행하는 것이 관용이다.

2).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라.

이것이 바울의 권면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일는지 모른다. 몇 몇 사람에게 대해서 관대하고 친절하기란 그리 어려울 것 없으나 모든 사람에게 전부 관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항상 관용해야 된다고 한다. 예수님은 항상 관용했고 바리새인들은 항상 편협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넓게 지어 주셨건만 한국 교인들은 좁히고 좁혀서 바늘귀처럼 만들기, 싸우기를 좋아한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관용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반대 입장에서 박해하더라도 누구에게나 관용하여 대인 관계에서 승리하시기 바란다.

3).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러므로 관용하라.

사람의 관용이란 한도가 있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격려로 보충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곧 주의 재림 신앙인 것이다.

이 말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거의 표어와 같이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가 속히 오시리라는 기대는 신자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피차에 사랑을 격려하는데 큰 자극을 주었다.

아무튼 이 재림 신앙이 현대 교인들에게 와서 퍽 희미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느 때이든지 주께서 가까우시다라는 종말사상이 고취되고 기대하는 곳에서라야 관용의 정성을 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다.

4.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바울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이 적어져서 염려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되 특히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은 그 결과가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어려운 일들을 당할 때 우리 크리스천이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인가를 바울이 말해주고 있다.

1).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2).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3).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염려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 안에서 받는 축복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에 염려 대신 기도하라고 바울은 권면했다.

*+ 미국인 의사가 환자들을 조사해 본 결과 40퍼센트는 불필요한 근심, 30퍼센트는 자기 힘으로 불가능한 근심, 12퍼센트는 건강에 대한 근심, 10퍼센트는 안해도 좋은 근심을 한다고 한다. 즉 꼭 필요한 근심은 8퍼센트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근심을 아니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평안보다 고통이 많고 기쁨보다 슬픔이 많다. 인간들의 신음 고통소리가 온 우주에 충만한 듯하다.

사람이 하루를 더 살면 하루의 괴로움이 더하고 일년을 더 살면 일년의 괴로움이 더하여 인생의 욕구와 만족을 얻지 못하므로 “넘을수록 태산이요 갈수록 험로”라고 옛 사람들이 말했다.

이같이 염려가 많고 눈물이 많고 한숨과 슬픔이 많아 이 괴로운 세상길을 걸어가는 인생들에게 바울은 한 마디로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무사태평하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세상 염려 때문에 마음이 착잡해지고 쓸데 없는 걱정이나 근심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그러한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자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물질계를 향할 때 생겨지는 그런 염려는 항상 기뻐하는 생활에 적이기 때문이다(고후7:10).

산상보훈의 물질 생활에 대한 교훈 중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6회나 반복되어 있다(마6:25-34). 염려는 문제 해결에 유익이 없고 도리어 손해를 가져온다.

2).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므로 바울은 염려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기도의 본질을 간단히 설명한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일반적 명칭이요, (간구)는 개인적인 특별한 요구 조건을 들어 청구하는 것이다.

(구할 것)은 구할 것들이다. 기도에 요구 사항이 분명해야 된다. 기도는 막연하게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죄 때문에 괴로울 때는 하나님께 그 죄를 말씀드려야 한다.

가정생활에 근심이 생기면 그것도 구체적으로 아뢰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극히 작은 문제까지도 돌보아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염려와 어려운 문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와 믿음 뿐이다. 기도는 신자의 생활 철학이며 신앙 활력의 원천이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약4:22).

3). 감사함으로 아뢰라

감사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쁨을 표시하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헌신함을 뜻한다.

감사없는 기도는 결국 원망이요 염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환난 중에 건지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5. 예화

파니 그로스비(Funny Crosby)여사

찬송가 가사를 많이 지은 사람들 중에 파니 그로스비 여사가 있다. 그는 1820년 3월 24일 뉴욕주 푸르남 가운티에서 출생했다. 출생한지 겨우 6주일만에 안질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치료한 것이 의사의 잘못으로 소경이 되었다. 철이 들자 그는 비관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머리를 타고난 그는 자살을 여러번 기도했다. 마침내 그는 예수를 믿고 신앙의 길에 들어가 혜를 받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어 기쁨과 감사의 찬송시를 짓기 시작했다. 38세에 맹인 학교 음악 선생과 결혼하여 82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6천 편의 찬송을 지었는데 우리 찬송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십자가로 가까이),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등의 13편이 들어 있다.

그는 말하기를 “지금 그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를 실명케 한 데 대해서 몇 번이고 감사할 것이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잘못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편에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신체적으로는 어두움에서 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더 잘 짓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

6. 결론

평강을 누리게 된다(빌4:7)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 성경이 가르치는 평강은 다르다. 전자는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요, 후자는 죄에서 구원받은 결과이다.

“세상의 평안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요, 신앙의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평강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바클레이는 말했다. 그러므로 이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다.

영국의 성서 신학자 라이트 풋(Light Foot)은 “인간의 모든 계획과 노력으로 하지 못할” 미국의 다사이폴파의 신학자 에메스는 “우리의 모든 사고력에 뛰어난”, 스코틀랜드의 성서 신학자 모팻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평강이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가능과 지식과 이해력을 다 사용해도 그것을 만들거나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평강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전혀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