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만난자를 구원하라

제목: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하라(눅10:25-37)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향하여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소지품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빈사상태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제사장 레위인은 그를 보고 모르는 척 지나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구원하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에서 전도자의 정신과 전도의 방법을 배우자.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

 

1. 강도를 만난 원인

1)예루살렘을 떠났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1)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곳이요,

(2)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시온소이고,

(3)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거룩한 곳이다.

2)여리고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여리고는 비옥한 도시로서 산물이 풍성하여 인생들이 사치하고 방탕하며, 음란한 죄악으로 타락한 세속 도시라고 하였다.

3)불만족, 불순종, 불신함으로

강도 만난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불만족하여 더 나은 세상의 욕망에 끌려갔기 때문이다{딤후4:10, 행1:1-4}.

그러므로 이 사람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유혹 때문에}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불신하여 여리고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2. 강도를 만난 자{결과}{요10:10, 눅10:30}.

1)육신의 강도를 만난자-{때려 거반 죽게 함}

육신이 병든자는 강도 만난 자이다.

2)물질의 강도 만난자-{있는 것 다 빼앗기다}.

결핍상태에 있는 자{사업실패 등}

3)영적인 강도 만난 자-{가장 불쌍한 자다}

평안을 상실하고 불안과 공포에 떠는 자

 

3. 강도 만난 자를 구원하라{눅10:33-37}.

1)그를 보고 {영안이 열려야-기도}{행16:6-10}

전도의 첫단계는 기도하는 가운데 영안이 열려 그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강도를 만나 그만 죽게 된 상태를 바라볼 때 우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빌리그레함}은 {그리스도 없이 죽어가는 많은 생명을 보라!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인생들이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빨리빨리 구해 달라는 재촉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2)불쌍히 여겨{긍휼-목자의 심정-사랑}{눅15:1-10, 행16:16-18}

그러므로 우리는 강도 만난 자를 바로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전도하자. 하나님도 이 세상을 사랑하였고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요3:16}.

3)가까이 가서{접촉-사람낚는 어부-대화}{마4:19, 눅10:2-3, 행1:8, 출19:8-9, 20:25, 출40:34, 히1:1, 요1:14, 요14:16-17, 요14:1-6}

전도자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전도자는 동적인 사람이다. 생명력 넘치는 영혼의 소유자로 전도자는 가야하는 것이다. 결코 앉아서 찾아보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눅10:2-3, 행1:8, 마4:19}.

4)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성령+보혈=치료}

여기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고, 기름은 성령의 은사를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강도같은 마귀에게 봉변당하여 죽게 된 인생에게 전도자는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기름으로 치료하고 살펴야 한다.

5)싸매고{치료-사랑-위로}{요3:16, 행16:31, 마11:28}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전도자도 강도 만난 자를 성령과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한 후 더 완전히 완쾌되도록 싸매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가난에서 부요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싸매는 소망과 위로를 주어야 한다.

6)자기 짐승에 태워{수고-희생}{막2:1-10}.

옛날에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에는 짐승을 타고 다녔는데 자기가 타야할 짐승 위에 강도 만난 자를 태우고 자기는 걸어갔다고 했다. 이는 전도자의 수고와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강도 만난 자는 스스로 움직일수 없다 그러므로 누가 저들을 이끌어 주지 아니하면

교회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7)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교회-관심}{마28:20}

우리 교회는 신령한 주막집 같은 교회가 되어

(1)성령의 새술에 취하여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하고

(2)안식과 평안을 주는 것처럼 참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주고

(3)새 힘을 얻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겠다.

8)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인에게 주어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책임성-양육을 맡김-주막 주인}{딤후3:14}

전도하여 세례받게 했다고 내 책임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주막 주신{목사}에게 돌보아 주라는 양육을 맡겨 계속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저들을 가르쳐 지키게 교육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배우고 {지} 확신{정}하고 일에 거하게 {의}해야 할 것이다.

9)부비가 더 들면 갚으리라{전도비-계속 후원}{빌4:18}.

강도 만난 자를 주막 주인에게 맡긴 후에 내가 다시올 때 부비가 더 들면 갚으리라고 했다. 이것은 전도비{선교비}인 것이다. 더 들면 더 내어놓겠다는 것은 전도자의 정신인 것이다.

 

4. 누가 참된 이웃인가?

1)주막{교회}의 주막 주인{교역자}이다.

강도 만난 자는 주막 교회로 나아가야 하고 주막 주인의 보호와 사랑으로 양육받을 수 있다.

2)사랑없는 종교는 형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자기 희생이 뒤따른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기 나름대로 율법과 직분에 충성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기에 형식적인 종교가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자기 희생부터 시작되는 것이다{한 알의 밀처럼}.

3)나의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자가 이웃이다.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없는 자는 다 강도 만난 자이다. 그들은 마귀의 봉변으 도움을 갈구하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겠는가? 우리 모두 그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이 되자.

 

결 론

오늘 우리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성숙한 사랑을 나타낼뿐 아니라 율법의 테두리를 훨씬 넘어서서 편견없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을 가지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바져야 한다. 오늘도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교회안에서 한 없이 많이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