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강해
제 1장:폭풍의 장
제목:하나님의 명령과 요나의 불순종(욘1:1-17)
*. 요나는 주전 790년경 나사렛의 북방 3마일에 있는 가드헤벨이란 동네에서 아밋대의 아들로 출생한 사람으로, 장성했을 때 여로보암 임금 밑에서 정치가로 일했으며 선지자로 활약하였다{B.C.786-746년경 여로보암 2세}.
*. 본장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불순종한 요나가 도망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신 일에 대해 어떠한 인간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
*. 오늘날 하나님께 사명을 부여받은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손길은 영원하시다{욥10:7, 행20:24}.
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나{욘1:1-2}.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말씀하고자 하신다. 그 분은 당신에게 말씀을 주고자 하신다.
지나간 역사의 한 시점에서 요나라는 한 개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서 오늘의 나에게도 임하기를 원하신다. 문제는 나에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귀가 열려져 있는 가에 달려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 열려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요나는 분명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1).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이다. 요나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결정적이다{신28:1-14}.
신명기 28:1-14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반대로 {신28:15} 이하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요나서를 대할 때 {내가 요나다} 하는 심정으로 받아야 한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고 이 말씀대로 순종하지 하니하면 요나처럼 징계를 받을 것이다.
2). 아밋대의 아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요나서는 한 비유요, 요나는 사실 인물이 아니고 그 비유에 등장한 가상 인물이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히 {왕하14:25}에도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라고 한 것을 보면 지리와 혈통이 나오고 아버지의 이름이 나와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므로 이것은 분명히 글자 그대로 있었던 사건이고, 살았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눅11:29}에는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보아 의심없는 역사적인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3). 요나에게 임하니라{비둘기}
요나는 하나님 앞에 선지자로서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이름대로 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다. 요나는 선지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라는 이름은 있으나 거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있으나 그리스도의 영이 그 마음에 없고, 세례교인이란 이름은 있으나 아직도 죄를 씻지 못했고, 집사란 이름은 가졌으나 잡사가 되었고, 권사, 장로란 이름은 있으나 교회의 어른 노릇을 못하고, 목사란 이름은 있으나 목사가 아닌 삯군인지 사업가인지 심지어 폭력배인지 알 수 없는 자가 간혹 있는 것을 보면 심히 슬픈 일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고 또는 신용하지 않는 것이다. 속담에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과 같이 이름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4).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곳에 가서 전도하라{2절}
2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세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 단어는 {일어나라} {가서} (외치라)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주신 전도의 지상 명령을 가장 실감있게 묘사해 주고 있는 단어이다.
(1). 전도자{너는-요나}2절
하나님의 계시가 요나에게 임할 때 명령문에 {너는}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은 강요하는 표현으로, 요나 네가 꼭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전도자의 자세{너는 일어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에게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사명을 주실 때마다 ‘일어나라’고 명령하신다.
안일한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은 선교의 명령 앞에 복종할 수 없다. 또한 안일한 자리에 안주하기를 원하는 교회들도 선교의 명령 앞에 복종할 수 없다.
{창13:7}의 아브라함에게, {수1:2}의 여호수아에게, {단10:11}의 다니엘에게, {행8:26}의 빌립집사에게, {행9:10}의 아나니아에게, {행10:2}의 베드로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다.
{엡5:14}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성도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임할 때 우리는 즉시 일어나서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도하러 나가야 된다.
(3). 전도의 장소{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성경대로 말씀을 드리면 3일길에 즉, 성 주위를 한 바퀴 돌려면 3일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 도시 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면 좌우를 분별 못하는 어린애가 12만명이 된다는 큰 도시이다{욘4:11}.
사람의 하룻길이 약 32킬로미터인 것에 비추어 니느웨는 둘레가 96킬로미터 정도나 되는 거대한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욘3:3}.
아직 어머니 품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젖먹이 애들이 12만명이라고 했으니까 연세 높으신 분들까지 계산을 하면 400만명 정도로 예상된다 할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요나에게 이방 전도의 사명이 임한 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 벌써 전 인류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즉 복음이 전 세계에 증거되어야 한다는 복음 증거의 섭리적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벧후3:9, 창1:1, 14:19, 사49:6}.
니느웨성은 앗수르의 서울이요, 앗수르는 히브리인에게는 민족의 원수나라이다. 유대를 괴롭혔고 착취하는 원수의 나라이다. 그러나 편협한 유대인의 사상을 떠나서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에게 가서 전도를 하라고 요나에게 명령하신다{마6:44-46}.
{저 큰 성 니느웨로 가서}라는 말은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마28:19} “땅끝까지 이르러”(행1:8)라고 하신 주의 말씀과 같다.
오늘날에는 세계를 향하여 가라는 말이다. 우리는 어디든지 복음을 들고 가야 될 것이다.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쳤다.
(4). 전도의 방법{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주님께서 중요한 선교의 명령을 주시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일어나라}는 이 동작이 나타나고 있다.
그 다음에 주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가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현대교회의 잘못된 타성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흩어지는 일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찾아가야 한다.
외치라고 했는데, 내 철학이나 내 생각으로 외치라는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이 주신 말씀만 외쳐야 한다.
외치되 사랑의 말씀이 아니고 심판의 말씀을 하라는 뜻이다. 니느웨에 가서 타협을 하지 말고 죄를 책망하여 경고하라는 말이다.
니느웨성은 요나가 미리 겁을 먹을 만큼 악독이 관영하였으니 거기 갔다가 자기가 매맞아 즉을지 모르고 보통으로 말해서는 안들을 것이니 타협하지 말고 아예 죄를 책망하라는 말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지 못하면 주를 영접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에는 반드시 죄를 쳐야 한다. 그래야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손들고 온다.
죄인을 회개시키려고 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너는 죄인이다}라는 것으로 이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인줄 깨닫지 못하면 주를 한 분의 성자로, 도덕군자로, 존경할만한 스승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인줄 알 때에 (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회개하게 된다.
(5). 전도할 이유{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니느웨성은 얼마나 죄악이 관영한 도성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니느웨성의 악독한 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고야 말았으니 그러므로 저들에게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니느웨 백성의 악독이란?
(1). 니느웨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며{호10:6, 나1:14}.
(2). 전쟁 중에 매우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는 등 그 죄악이 극에 달하였음을 가리킨다{호11:5-6}.
(3). 유대 주석가의 말을 빌리면 본래 니느웨성의 창건자 니므롯{창10:10}은 “인류의 행복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번영에 있다”고 주장한 유물론자이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요, 적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4). 니므롯주의의 생활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관념을 빼버린 무신론 사상이어서 니므롯주의에 지배되는 니느웨성은 우상과 음란과 질투의 악이 지배하는 생활을 하였다.
2. 불순종하여 도망하는 요나{욘1:3}
그러나 요나는 어떻게 응답했는가? 요나서 1:3에 보면 {그러나 요나가}라고 응답하고 있다.
우리는 주일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경을 펼칠 때마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당신은 ‘그러나’라고 응답하지 않는가? 여기에 요나의 비극이 있다.
1). 불순종의 원인{그러나의 자기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을 통하여 배워온 상식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조건 {예}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답고 하나님 백성다운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의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이 {그러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지만 그러나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나는 원수 나라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라고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요나처럼 {그러나}의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장로, 권사 집사의 사명을 주시고 교회학학교 교사, 성가대원의 사명을 주셨지만, {그러나 나는 시간이 없어서 또는 기분이 안나서 충성치 못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적인 생활을 명령하셨지만 그러나 거짓말 안하고 돈을 벌 수 없으므로 나는 할 수 없이 때때로 양심을 속여야 하겠습니다 하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많은 신자들은 {그러나}의 함정에 빠져서 원치 않은 불순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 여러분은 {그러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매우 힘을 쓰기 바란다.
2). 불순종의 장본인{요나}
누가 불순종의 장본인인가? 요나이다. 요나의 이름은 히브리 말로 {비둘리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나는 그 이름의 뜻과 성품이 달랐다.
요나의 직분의 이름은 선지자이다.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도 아니하고 고집만 부리면서 그의 이름대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지를 못하였다.
마땅히 순종해야 할 성도이고 주의 종인데 왜 그렇게 순종치 못했다는 말인가? 성도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삼상15:22}.
3). 불순종 태도{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3절}
(1).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려는 것은 불순종한 죄인들의 태도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서 죄를 지은 후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동산 나무 속에서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그 몸을 숨겨 여호와의 낯을 피하였다{창3:7}.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낯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을 구하지만{시4:6}, 죄 아래 있는 사람은 항상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도리어 하나님의 얼굴을 멀리하고 피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간다고 한들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저 별들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라(욥1:4) 하셨다. 저 바다 밑에 들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시139:7-8}.
(2). 다시스로 도망하려 한다.
당시 다시스는 이스라엘 서쪽에 있는 도시로 처음으로 금속의 해상무역을 발전시킨 상업 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보면 요나는 다시스로 가려고 생각한 의도가 전혀 엉뚱한 데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젠 선지자의 사명같은 것은 그만두고 금이 많은 다시스로 가서 돈이나 벌어 보자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런 생각을 했다면 이것은 불순종이 아니라 배반이요, 타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딤후4:9-11}.
니느웨는 유대 동쪽이고 다시스는 유대 서쪽{오늘날 서반아 해안}이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도망하려고 하였다.
불순종하여 범죄한 인간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근성이 생긴다{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러므로 요나가 도망한 것은 모든 범죄한 사람이 천국을 등지고 지옥을 향하여 도망가는 걸음의 대표이다.
(3). 욥바로 내려간다.
요나는 긍휼을 베푸는 전도의 사명을 띠고 올라가기 보다는 그 임무를 피해서 서둘러 항구인 욥바로 내려갔다.
불순종의 죄는 언제나 내리막길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그때부터 낮아지며 떨어졌다.
5절에는 요나가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라고 하였다.
15절에는 요나가 바다 속에 던짐이 되어 내려갔다.
17절에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떨어졌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도피한 것은 우리 인생들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싫어하는 성질을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이런 성질은 요나처럼 낮아지며 떨어지며 환란을 당한 후에 시정되는 경우가 많다.
4). 불순종의 기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3절}
이 다시스라고 하는 곳은 옛날에 땅끝이다. 옛날에 도망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갔던 곳이다. 지금도 지도를 보면 다시스라고 하는 곳이 스페인 남쪽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이 맞닿으려는 장소의 맨 끝부분에 있다. 옛날 소아시아와 유럽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지중해 밖은 땅끝이 되는 줄로만 알고 다시스 이상은 무서워서 안 나갔다. 그래도 도망가는 사람이 가장 먼 땅끝에 간다고 가는 곳이 다시스였다.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땅끝 다시스로 도망가려는 마음을 먹고 항구에 나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불순종의 기회는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도망하려는 자 때문에 하나님이 허용하신 마귀의 장난이다. 그러므로 불순종 할 마음을 가진 자에게 범죄할 기회는 얼마든지 오는 것이다.
*. 마귀의 유혹과 시험의 기회는 그 사람의 약점을 잘 알아 가지고 오는 것이다.
(1). 배고플 때에는 돌로 떡 만들 것을 가져오고
(2). 삼손에게는 들릴라를
(3). 다윗에게는 밧세바를
(4). 가룟유다에게는 금전을 가지고 불순종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마귀는 요나에게도 마침내 다시스로 가는 배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불순종의 기회를 잡으려고 순종의 기회를 놓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본문의 {마침}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 할 때에 안성마춤으로 사탄이 배를 준비하여 우리를 기다리며 아주 힘써 우리를 돕는 척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할 때에도 모든 책임은 자기가 다 져줄듯이 다가서서 유혹하였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할 때도 그의 남편은 마침 일선에 가고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다윗이 밧세바를 얼마나 범죄하기 좋았겠는가? {마침}이 범죄할 기회이다.
우리 성도는 불순종하는 데도 무슨 일이 잘 되면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데도 일이 잘 된다. {야 그참 희한하지!} 그런데 그것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말고 저주로 생각하자.
왜냐하면 우리 성도가 불순종하였을 때 모든 일이 잘 안되어 회개할 기회가 있어야지, 계속 그대로 잘 된다고 하면 불순종을 하는 그 사람은 점점 예수를 멀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순종 할 때에는 매를 맞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다{히12:6-8}.
5). 불순종하기 위한 대가{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3절}
요나는 불순종하기 위하여 자기를 죽음에 내어줄 배인데도 돈을 주고 탄다.
사람이 불순종하여 망할 때는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눈이 어두워지면 자기가 죽을 배인데도 돈까지 주고 올라탄다.
하나님을 반역하면 항상 돈을 주면서 죽는 길을 간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자기가 희생을 하고도 벌을 받는다.
*. 마귀의 배를 타려고 하면 선가를 내야 태워준다. 마귀는 공짜로 태워 주지를 않는다.
(1). 아담은 불순종의 배를 타고 에던동산에서 쫓겨 났으며,
(2). 삼손도 불순종의 배를 탔음으로 두 눈을 뽑히우고,
(3). 다윗은 불순종의 배를 타고 자녀에게 무한한 고통을 당함.
(4). 사울은 불순종의 배를 타고 왕국을 잃고 마지막에 자살.
(5). 가륫유다는 불순종의 배를 타고 배가 터져 죽음.
(6). 아나니아오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우리 주위에서 불순종의 배를 타고 병에 걸리고, 사업이 망하고, 자식이 죽고, 명예가 훼손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불순종의 대가는 크다{롬6:23}.
6). 불순종한 동기
(1). 두려움 때문에{사람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바른 말을 하다가 무지하고 포악한 니느웨성 사람들에게 핍박과 수치 당할까 무서워서 불순종함.
성경에 보면 바른 말하다가 핍박받은 선지자가 많다. 유대임금 시드기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른 말을 하였다. 이띠 시드기야 임금은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핍박했다{대하36:10-23}.
신약성경에 나오는 세계 요한이나 스데반도 역시 바른 말을 하다가 순교의 죽음을 당했다.
이 세상에서 볼 때 바른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바른 말을 싫어한다. 자기를 위해 바른 말을 하는데도 오히려 미워하고 욕하며 나쁜 감정을 품는다.
우리는 바른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겠다. 바른 말을 용감하게 할 수 있어야 된다 . 바른 말을 할 때는 미움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만고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핍박과 순교를 각오하고 거침없이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딤후4:1-5}.
역대의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다가 칼이나 돌, 불속에 들어가 죽음을 당했었다.
요나에게는 이런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다가 니느웨성 사람들에게 잡혀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말씀을 불순종하게 된 것이다.
(2). 유대인의 자존심 때문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자기네들의 하나님으로만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이방인을 멸시하고 개나 돼지처럼 취급을 했다. 그래서 이방인과는 음식을 같이 먹지도 않고 좌석도 같이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요나에게도 이런 사상이 있어서 내가 어찌 저 이방인 니느웨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느냐 하는 자존심 때문에 불순종하게 되었다.
자존심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여러가지 악을 산출하는 온상이다.
*. 그러면 자존심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1). 교만함:내가 제일 높다는 생각이 자존심에서 나온다. 남을 멸시 천대하는 생각도 자존심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2). 고집함:내 뜻대로 내 주장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자존심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3). 시기 질투: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대우받고 인정받을 때 자존심은 곧 시기 질투로 작용를 한다.
(4). 복수심:남에게 멸시를 받고 망신을 당했을 때 자기 자존심의 상처를 채우기 위해서 곧 복수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5). 반항심:남이 나를 대적하거나 시기할 때 지기 싫으니 반항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6). 외식함:남에게 잘 보여야 하겠으니 체면을 찾게 되고 외식을 하게 된다.
(7). 허엉심:남에게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아야 하겠으니 분수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존심을 잘 다스리자.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 되고, 온유한 사람이 되고 양
보하는 사람이 되고,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을 잘 순종할 수 있다.
(3). 이방인에 대한 증오 때문이다{적개심의 까닭이다}
일찍부터 앗수르는 유대인의 원수 나라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 감정을 품고 있었다. 마치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민족적 감정을 가진 것과 같다. 사람은 감정이 폭발할 때 이성을 잃게 된다. 경우도 무시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대단치 않게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우리는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여 본의 아니게 범죄하는 일이 많다. 사람의 감정은 여러가지 실수를 가져오게 된다. 蕑
(1). 감정이 있으면 혈기를 내게 된다.
감정이 밖으로 나타날 때에 사람은 부드러운 말을 못하고 신경질을 내며 큰 소리를 지르게 된다.
(2). 감정이 있으면 매사에 오해를 하게 된다.
감정을 품고 있으니 상대방 하는 일이 모두 좋게 보일리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감정을 품고 있는 이상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오해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3). 감정이 있으면 분쟁하게 된다.
좋지 못한 말이 오고 가므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싸움이 일어나면 가정도 파괴되고 교회도 시끄러워진다.
(4). 감정이 있으면 이간질을 하게 된다.
아무리 다정한 사람이라도 서로가 감정이 있는 이상 가까워질 수가 없다. 서로간의 사랑은 깨지고 마는 것이다.
(5). 감정이 있으면 적개심을 가지고 복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화풀이를 하고 어떤 때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 이상과 같이 감정은 여러가지 실수를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있는 한 결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악인인가?
감정을 처리할 줄 모를 때 악인이 된다. 반면에 감정을 잘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감정을 잘 처리할 줄 알때 성취되어진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면서 자기 감정을 잘 처리하는데 힘썼다.
7). 불순종의 이유
(1). 베드로같이 의심했기 때문이다{행10:17}.
(2). 사명을 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행20:24}.
(3).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심을 모르기 때문이다{수1:7-9}.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하여 마음 깊이 며심하여야 한다{시139}.
이것이 성도의 경건 생활의 열쇠가 된다.
3. 징계를 당하는 요나{욘1:4-17}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고 도망하는 요나를 징계하시기 위하여 태풍을 바다위에 내리시니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파선 위기에 도달하였다.
사공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청하고, 있는 기술을 총동원하여 배를 가볍게 하려고 실었던 물건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졌으나 풍랑은 더욱 극심었하여 갔다.
*. 여기 폭풍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자{시104:4},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고에 넣어 두었던(시135:7), 강하고 맹렬한 폭풍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바다 위에 태풍을 내리셨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시는 바람을 보내어 요나의 길을 막게 하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로 생활해야 할 성도들이 당신의 말씀에 거역하여 다른 길로 간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더라도 그 길을 막으실 것이다{삼상2:15, 시68:6}.
1). 징계의 원인{불순종한 까닭이다}
본문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요나가 징계를 받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불순종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축복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때로는 징계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때 축복하시고 어느 때 징계하시는가?
순종할 때 축복하신다고 했다{신28:17}.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도록 되어져 있다{삼하7:14}.
우리가 범죄할 때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하겠다. 순종하면 복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여 손종하기를 힘쓸 것이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신8:5}.
2). 징계의 시기{불순종 행동을 시작하자마자 받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 형통에 방심하고 있을 때 받는 것이다}.
요나가 징계를 받은 시기는 불순종의 행동을 시작하자마자 받은 것이 아니다. 일시적 형통에 방심하고 있을 때 받은 것이다.
요나는 다시스행 배를 타려고 욥바로 내려갔다. 다시스행 여객선을 타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나는 마침 다스시스행 배를 탈 수 있었다. 또한 요나가 탄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아무일 없이 잘 달려가고 있었다. 이때 요나는 자기 계획대로 일이 잘 된다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가 탄 배는 급작스럽게 풍랑을 만나게 됐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나가 징계를 받은 것은 불순종하자마자 받은 것이 아니라 일시적 형통에 마음놓고 있을 때 받은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 점이 많다. 목적대로 일이 잘 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일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중에 잘 되는 일이라야 하나님의 축복이다.
3). 징계의 도구{4절}“여호와께서 태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징계의 도구는 태풍, 큰 바람, 폭풍, 아주 센 바람이었다. 난데없는 큰 태풍으로 태산같이 거센 파도는 요나를 실은 배에 여지없이 부딪치게 된다. 휘몰아치는 폭풍, 거세게 부딪치는 파도! 하늘에서 오는 징계를 누가 감히 막겠는가? 배는 거의 깨어져 파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바람은 징계의 바람이다. 불순종의 길에 보이신 주님의 징계의 도구이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자는 제아무리 좋은 배를 타고 좋은 기회에 도망하여도 큰 풍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선박이 아무리 강하고 그 계획이 아무리 면밀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실 때 그 장소는 요나를 위해 좋을 리가 없다.
*. 우리가 만일 요나와 같이 불순종의 길을 걷는다면 그 길에는 반드시 징계의 폭풍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질병의 폭풍
(2). 물질 손해의 폭풍.
(3). 사업상 실패를 당하는 폭풍
(4).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방해하는 폭풍
(5). 갑자기 슬픈 일을 당하는 폭풍
(6). 양심의 고통의 폭풍 등
(7). 내외적으로 반드시 폭풍이 닥쳐오는 것이다.
4). 징계의 해결책{욘1:4-17}
간단히 요약하면 죄인 요나를 발견하여 바다에 던져 버려야 하는 것이다.
(1). 잘못된 해결 방법
A. 이교도의 기도로도 안된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부처를 부르고, 산신령, 바다용왕을 부르고, 아무리 부르짖어 봐야 그것은 하나님의 노를 더하게 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우상, 잡신, 마귀를 찾는 것은 더 노를 격동시키는 일이며 참 신인 하나님을 찾을 때 살 수 있는 것이다.
참 기도의 대상은 한나가 기도한 것처럼(삼상2:1-10},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밖에 없는 것이다.
B. 인본주의적 수단으로 아무리 힘써도 안된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 것은 인위적인 인본주의 처사이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풍랑을 만난 사람들은 죄를 버리지 않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다.
물건은 인간이 평소에 귀중히 여기던 짐짝이다. 유물주의자들은 물질제일주의를 부르짖지만 징계의 풍랑을 만나면 물질도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 만사를 믿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C. 타락한 신앙으로 해결할 수 없다.
타락한 신앙이란?
요나는 일어나 도망감{He, rose up to flee}
요나는 욥바로 갔다{He, went to Joppa}
그는 배를 발견했다{He, found a ship}
그는 선가{표}를 샀다{He, paid the fare}
그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He, went down to it}
그는 배 안에서 잠을 잤다.
이렇게 잠자며 사명을 망각한 요나의 신앙으로는 이 풍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2). 근본적인 해결책
죄인 요나를 발견하여 바다에 던져 버려야 한다.
A. 잠자는 요나가 일어나야 한다{잠에서 깨어나라}.
풍랑 속에서 요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6절}. 아니 양심이 괴로워서 어떻게 잠이 들수 있다는 말인가?
요나가 그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자기의 양심을 무마하고 마비시키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는 배에 처음 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여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의 마음은 진정되어 갔을 것이다. 자기의 양심을 마비시켜 놓고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평안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평안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와 주의 종들이 자장가를 불러야 하는가? 나팔을 불어야 한다. 우리는 설교를 듣는 자세가 어떤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가?
내가 어찌할꼬 회개하는 반응을 나타내기 바란다.
B.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발견되어져야 한다{욘1:7}
모든 풍랑의 원인은 죄악이다. 재난에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그 원인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
풍랑의 원인인 죄인을 찾는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하여 죄인을 골라내자는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 사울왕을 선거할 때 제비를 뽑음{삼상10:24}.
*. 아간도 제비로 뽑아 그 죄를 멸하였다{수7:18-24}.
*. 맛디아를 제비로 뽑아 사도로 택하였다{행1:26}.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풍랑의 원인이 이제야 발견된 것이다. 요나의 불순종의 죄가 이제 모든 사람에게 적발되는 순간이 왔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죄의 비밀은 영원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범죄해 놓은 것이 그저 영원히 가리워지리라 생각해서는 안된다{시90:8}.
C. 회개하는 요나가 되어야 한다{욘1:11-17}.
요나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똑똑하고 명백하게 밝히고, 자기를 소개하고, 자기가 불순종한 죄를 고백할 때에 자연히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 증거하게 되었다.
요나가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였음에도 풍랑이 더욱 흉용하매 요나는 자진하여 범죄자인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구원받기를 바랐다.
이런 일의 발단 동기는 자기의 범죄 결과라고 고백하였다. 무리들이 처음에는 주저하였으나 드디어 결단을 내려 요나를 바다에 던졌더니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욘1:8-9}.
그 결과 그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벌써 하나님을 전도한 결과가 나타났다.
*. 믿음과 비행의 고백
{1}. 신앙고백
그는 히브리 사람이요...이는 요나의 의무와 권리를 가리킨다. 동시에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었다...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겨야 할 자였다.
그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출6:2-8, 롬3:1-2}.
{2}. 죄의 고백
그는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는 그의 잘못을 담대히 고백했다.
그는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모험적인(죽음을 각오함} 고백을 했다{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죄값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희생 제물을 드렸다.
4. 결론:큰 이적이 일어남{욘1:17}
1). 이방인의 개종
배안에 있는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음. 하나님께 서원하고 기도함.
2). 큰 고기를 예비하심.
(1). 큰 물고기:원어의 뜻을 살려 해석하면 바다의 괴물이라는 뜻인데 고래가 아닐까 추측한다.
(2).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물고기
{예비}라는 말에는 {너 거기 가서 요나를 잡아 먹어라}하는 선택적인 예비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예비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렘12:3}.
여러분이 사명을 회피하고 돈이나 벌고 쓸데없는 데 돌아다닐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고 징계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주위 사방에 준비되어 있는 징계의 물건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17절}
불순종한 요나의 길은 하나님께 버림 받고, 사람게 버림을 받아, 물속에 들어가 징계의 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이렇게 죄의 값은 사망이다.
(4). 삼일삼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삼일삼야는 하나님의 이적이다. 삼일삼야라는 말 가운데 장차 나타나실 메시야의{주님이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실 복음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마12:39-46}.
3). 건짐받음 --- 하나님의 구원함
순종의 길인가 --- 불순종의 길인가?
결론
오늘 이 시간 요나 바로 자신을 찾자.
요나를 찾되 어떤 요나를 찾아야 할까?
(1). 명실부동의 요나
(2). 사명을 망각하는 요나
(3).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요나
(4). 적개심을 품고 있는 요나
(5). 잠자고 있는 요나
(6). 환난당하고 있는 요나
(7). 회개하는 요나를 찾아보자.
제 2장 기도장
제목:요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구원(욘2:1-10)
요나는 본래 선지자인데, 잠시 영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도망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받고 회개하게 되었다.
그는 풍랑을 만나 제비가 뽑혔을 때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진인책{引責}하여 바다에 던짐을 자원하였다.
1. 기도의 대상{욘2:1}:하나님 여호와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1절}라고 했는데 그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시작했다.
*.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주의 기도의 대상이다.
{1}. 애굽 사람은 나일강에게 기도함
{2}.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신에게 빔
{3}. 요나는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 여호와는 약속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이와같이 기도는 이루어 주실 대상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확실한 대상이 되셔서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또 능력이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헛된 것, 죽은 것, 능력이 없는 것 등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 전재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도라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
*. 요나는 한 때 불순종의 길을 밟았으나 이제는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다. 요나의 신관은{1:9-4:2}
{1}.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욘1:9)를 믿으며,
{2}.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며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으니다라 하였다{욘4:2}.
이러한 신관을 가진 요나는 그 타락의 길에서 스스로 낙망하지 않고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그 하나님을 믿고 주께 얼굴을 돌려 기도하게 되었다.
2. 기도의 장소{욘2:1}:“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하였다. 오늘 우리 신자들의 기도할 장소는 어디든지 있는 것이다.
*.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였던 장소를 볼 수 있다.
(1). 주님은 어디서 기도하였는가? -산이나 들에서도 기도함.
(2). 나다나엘은 어디서 기도하였는가? -무화과 나무 아래서 기도함.
(3). 베드로는 지붕 위에서 기도함.
(4).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함.
(5).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기도함.
이와같이 우리의 기도는 그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길을 가면서도, 사무원은 그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주부는 가정에서, 농민들은 밭과 논에서 언제 어디서나 기도는 할 수 있다.
요나는 아주 숨이 막히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였다. 고기 뱃속에서 기도한다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음부와 같이 어둡고 지옥같이 기막히는 거기서 요나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머리 위에 노도가 물렁이며, 무릎 아래는 끝모르는 해저(바다밑), 전후 좌우는 고기 창자와 함께 창자벽과 위액으로 둘러 싸여 살이 녹아드는 빛 한 점이 없이 캄캄한 곳, 흉악한 냄새가 나고, 숨통이 꽉 막히는 곳이다.
이렇게 사람이 거할 곳이 못되는 스올{무덤}의 뱃속이 요나의 기도처였다.
*. 요나는 주님 앞에 부름받은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기도하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 있을 때 기도하지 않았다. 요나는 기도생활에 메말라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사명을 저버리고 도망쳤던 것이다.
때문에 요나는 캄캄한 환란의 밤, 절망의 위기를 만나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기도하게 되었다. 사람의 기도처로서 그 유례가 없는 험한 고기 뱃속이 요나의 기도처가 되었던 것이다.
3. 기도의 원인{동기} “고난을 인하여”(2절)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하였다.
또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였다{시50:15}.
*. 요나의 기도의 동기가 무엇이냐? 고난 때문이다.
요나가 받은 고난을 살펴보면,
{1}. 스올의 뱃속에서 당하는 고난{욘2:2}
스올의 뱃속 고난은 무덤과 같은 고난이란 뜻이다.
{2}. 깊은 바닷속 한 가운데 던짐을 당하는 고난{욘2:3}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누르는 것 같은 고난
{3}. 큰 물결이 내 위에 넘치는 고난{욘2:3}
깊은 시험의 고난
{4}. 물이 나를 둘러 영혼까지 둘러 싸이는 고난{욘2:5}
헤어나올 수 없는 장애물이 많은 고난. 저대로 이대로 끌리는 끈질긴 고난.
{5}. 내가 산 뿌리까지 내려가는 고난{욘2:6}
인생 막장까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6}.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는 고난{욘2:6}
살 소망까지 끊어버린 고난, 아무리 죽을래야 죽을 수 없으니 아주 땅이 빗장으로 잠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을 당하는 고난(욘2:7)
육신은 고사하고 영혼이 피곤할 때, 영혼이 피곤하다고 하는 것은 다 죽게 되었다는 말이다.
*.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고난은 기도하라는 신호이다{약5:13}.
{1}. 가정에 복잡한 일이 생기고,
{2}. 사업의 실패가 오고,
{3}. 질병을 당하고,
{4}. 신앙생활에 위기가 오는 것은 기도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요나는 자기가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이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요, 섭리인 줄 알고 기도하게 된 것이다.
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셨으니 그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고난이 해결되기 때문인 것이다.
요나는 자기가 바다에 던져진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알았다. 파도와 큰 물결이 내게 덮쳐오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었다. 요나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나는 환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욱 매달려 기도하였다.
어떤 신자는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이구 하나님 맙소사} {예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없다}고 낙심한다.
요나는 원망하지도 않고 낙심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롬8:28}. 고난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서원하며 기도할 때 요나는 다시 사는 구원의 길을 얻은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사건이 하나라도 주님의 섭리와 간섭이 없이 우연히 된 것은 없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고 하셨다면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임하는 모든 일을 어찌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는가?
곤고할 때 생각하고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되, 이 두 가지 일을 하나님은 병행해 주므로 능히 장래 일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살게 만든 하나님의 섭리이다{전7:14}.
4. 기도의 방법
1). 말씀에 근거를 두었다{욘2:2-9}
{욘2:2-9}은 전부 요나의 기도이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매절마다 시편의 성구가 인용되었다.
요나가 한 기도는 전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잘고 그 말씀을 근거로 하여 그 말씀 위에 서서 기도하였다.
{1}. 2절은 {시120:1}에서
{2}. 3절은 {시42:7, 88:6}에서
{3}. 4절은 {시31:22}에서
{4}. 5절은 {시69:1}에서
{5}. 6절은 {시103:4}에서
{6}. 7절은 {시143:7, 142:3}에서
{7}. 8절은 {시31:6}에서
{8}. 9절은 {시50:14, 3:4}에서
이렇게 2-9절까지 모든 내용이 시편에서 나왔다. 그러니 요나는 적어도 시편을 다 외우고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 요나는 자기의 인위적인 형편에서 인간적인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를 구원해 달라 하니 하나님은 그 말씀의 약속대로 구원하신 것이다{요6:36, 살전2:13, 요14:14, 15:7}.
아무리 {믿습니다} 한다고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말씀}을 붙잡고 {믿습니다} 할 때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1}. 죄인을 중생시킴{벧전1:23}
{2}.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함{행2:37}
{3}. 믿음을 주심{롬10:7-10}
{4}. 기도의 응답을 받는 요건{요14:14}
*. 요나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을 잘 아는 사람도 요나처럼 불순종하고 범죄할 수 있다.
*. 그러나 성경 말씀은 범죄했을 때에 회개의 촉진제가 되며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할 때 좋은 자료가 되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힘을 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쁘게 응답하시는 것이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2). 부르짖었삽더니{2절}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절}
그는 기도하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는데 여기 부르짖는 기도는,
{1}. 간구하는 기도{렘33:1-3}
{2}. 강청하는 기도{눅11:5-13}
{3}. 원한 맺힌 과부의 기도{눅18:1-8}
{4}.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마7:7-9}
강청하는 기도{눅11:5-13}
{1}. 강청이란 헬라원어로 {아나이데이아 αναιδεια}인데 {철면피처럼 악착같이 염치 불구하고 구하라}는 뜻이다.
{2}. 새 번역에는 {간곡히 조르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좇다)라고 되어 있으며
{3}. 현대인의 성경에는 {끈질기게 졸라대다}로 번역되어 있으며
{4}. 영어 성경에는 {임포튜니티:Importunity}인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악착같이 집요하게 구한다는 뜻이다.
요나가 고난을 인하여 기도하였기에 부르짖지 아니하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에 붙잡혀, 간절히, 간곡히, 조르며 부르짖는 야곱 같은 기도가 되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이다.
3). 응답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2절, 6-9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요나는 사력을 다해 자기가 떠나온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런 기도는 창파를 뚫고 하늘의 성전으로 비상한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에 대답하셨으며{2절}, 그의 음성을 들으셨다{2절}.
그런 응답을 요나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미 구한 것을 받은 줄로 알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2-24}.
5. 기도의 내용{욘2:4-7}
1).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4절}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4절}
4절에 요나의 유명한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4절은 2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절이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낱말은 {다시}라는 낱말이다.
그는 지금까지 얼마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요나의 고백,
{1}.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 보겠습니다.
{2}. 주님 다시 성경을 펼치겠습니다.
{3}. 다시 엎드려 기도하겠습니다.
{4}. 다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5}.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겠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요나의 기도의 내용과 같이 다시 회복되는 삶이 되자.
요즘의 현대인은 자기가 앉아있는 권력의 보좌에서 침몰하기 전까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배우지 못하는 현대의 {요나}들이 많다.
그가 경영하는 사업이 한순간에 풍지박산이 나기 전까지 기도의 중요성을 모른다. 하나님의 교제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한다. 숨을 쉴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 스올의 뱃속에 내려가기 전까지 기도할 줄 모르는 현대의 요나들이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아니 스올의 뱃속에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원망 불평 절망에 짜져 있는 한심한 요나들이 얼마나 많은가?
빨리 깨달아서 빨리 주의 성전을 바라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2). 여호와를 생각하였다{7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절}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요나는 여호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나는 오로지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인 것만 기억하고서 입에서 그저 주여! 오 주여! 주여! 머리에서도 하나님 밖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평안할 때 자주 하나님을 망각한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곳이 물고기 뱃속이라고 생각해 보자.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절박한 상황에 던져졌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기도가 어떻겠는가?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드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당신이 지금 드리는 그 기도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생각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기도를 배우자. 그리고 기도를 하자. 기도할 때 지금 드리는 이 기도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하자.
그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절박해지겠는가? 그는 원색적인 기도를 했을 것이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한번만 봐 주십시오. 정신 똑똑히 차리고 다시 출발하겠으니 한번만 더 내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요}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님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기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지워 버지려고 했던 요나가 이제 물고기의 뱃속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3). 요나는 자기가 진정한 종교를 가졌음을 고백하였다{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8}
다윗은 기도할 때에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시31:6}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지만 모든 우상들은 허탄한 거짓이다. 다윗은 이런 우상숭배자들을 미워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의 영혼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 행위를 미워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였다{롬1:23}.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니라”{롬1:25}.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벌레로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고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실상이다. 본래 우상 숭배에는 반드시 도덕적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요나는 자기가 오직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참된 종교, 참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6. 기도의 결과{욘2:9}
1). 감사하는 목소리
우리 성도들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감사는 정신적으로 감사하는 목소기리가 있어야 하고 그 감사는 하나님 앞에 물질로도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였다{고후9:15}.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연보를 명목상으로 나누어 보면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이 모든 연보는 명목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하는 목소리}이다.
받은 은혜를 깨닫고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죄많은 여인은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고 옥합의 향유를 주께 드렸으니 이것이 그의 {감사하는 목소리}요.
어떤 과부는 받은 은혜가 망극하여 생활할 엽전 두닢을 연보하고 주님의 칭찬을 들으니 이 과부의 {감사하는 목소리}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은 많은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여리고의 열문둥이가 다 깨끗함을 받았지만 주님께 {감사하는 목소리}로 나타난 사람은 오직 사마리아인 한사람 뿐이었던 것처럼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치하는 데는 수십만원, 수백만원씩 쓰면서도 하나님께 바치는 데는 인색하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만큼이라도 “내가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는 심정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롬1:21}.
2). 주께 제사를 드리며 서원함
이것은 완전한 헌신의 기도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먼저 몸을 주께 드리고”라고 하였다{고후8:5}.
우리는 먼저 우리 몸을 주께 드려야 할 것이다.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 몸을 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잠깐 떠돌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은 세상에 몸을 드리다가 무참히 쓰러지고 마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썩지 아니하고 영생할 것을 위해 산제사로 우리의 몸을 드리자{갈6:6-7, 고전15:58}.
몸을 드린다는 말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는 말이다{롬1:1-2}.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 양이나 염소같은 짐승을 잡아 드렸는데 흠없는 것을 전제로 해서 드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도 흠이 없는 우리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산 제사라는 말은 우리가 현재 살아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죽은듯이 이 몸과 맘을 맡겨 버리는 행위를 말함이요, 흠이 없는 몸은 곧 회개하여 죄를 없이하는 것을 말한다.
3). 구원은 여호와께로
이 말씀은 진실로 기독교 구원의 근본적 사상이라 하겠다.
사람은 자기의 선한 행위로나 또는 자기의 공로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속했다는 요나의 기도는 비록 간단한 말이나 구약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한 구절로 보여진다.
유력한 지도자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요, 유력한 교파에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는 신비한 은사 즉 방언, 입신, 환상 등에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다{행4:12}.
7. 기도의 응답{욘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0절}. 물고기는 {삼키라} {토하라}고 하신 대로 순종을 잘 하였으며 그것은 결국 기도의 응답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매우 명령하시자 그 물고기가 요나를 해변으로 토해내었다.
이러한 사실 곧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이 보존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3일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있었던 사실이나 물고기가 요나를 정확히 해안에 토해낸 사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예표하고 있다{마12:40}.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음부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시16:10},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일어나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셨다{롬6:4}.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자. 깨어 기도하자. 기도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무기이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쉬지 말고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않고 주님처럼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