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룻기서 (1:-2:)
제 1장
서 론
베들레험에 살고 있던 한 가정. 아버지는 엘리멜렉{이 뜻은 My God My King:여호와는 나의 왕}, 나오미{기쁨, 쾌락}, 말론(병고}, 기룐{낭비}, 오르바{완고함}, 룻{친구 동료}이 모압땅에 이사하여 살게 되었다.
베들레헴의 기근으로 인하여 모압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떠나가는 이 가정은 모압에 가서 10년 동안 살면서 그곳에 사는 여인을 자부로 얻어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 엘리멜렉이 죽고 뒤를 따라 두 아들마저 죽었던 것이다.
나오미는 절망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두 며느리들을 불러 놓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나가고 룻은 강한 결심으로 시어머니를 따라 나선다. 그리하여 베들레험에 다시 올라온 나오미와 룻은 보아스를 만나 기업이 회복되고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다윗의 조상과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불과 4장이지만 1장은 귀주 생활, 2장은 은혜 생활, 3장은 신부 생활, 4장은 구속 생활로 분류된다.
1. 룻기{Ruth} 이름에 대하여
본서의 이름은 여기에 나오는 주요 인물{룻}이라는 여인의 이름에서 기인된 것인데 룻의 히브리어는 {여성친구}란 뜻이다.
2. 룻기{Ruth}의 저자와 연대에 대하여
탈무드{Talmud}는 저자를 사무엘로 말하나 특별한 근거자료는 없다. 저자와 저작연대는 미상이나 쓴 때를 보통 주전 1,100년 경으로 본다.
3. 룻기의 기록 목적
1). 이방인 모압 여자 가운데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즉 룻은 그리스도에로 그 혈연관계를 이어주는 열쇠고리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2). 또한 룻의 시모에 대한 효도와 경건의 교훈을 주는 것으로 의의가 크다. 더욱이 남편이 죽은 후에도 시어머니를 정성껏 섬겼다는 사실은 인류의 아름다운 덕을 길이 빛내주고 있다.
3). 룻기의 큰 의의는 참 하나님 참 종교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세계적인 것이요, 결코 한 국가나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한 점이다.
4. 룻기의 내용분해{4장 85절}
1). 1장 귀주 생활{신앙의 타락과 회복된 생활}
2). 2장 은혜 생활{은혜받는 비결과 생활과 결과}
3). 3장 신부 생활{신부 준비(자격)생활과 기다림}
4). 4장 구속 생활{구속의 회의와 증거와 축복과 혈통}
제 2장
신앙의 타락과 회복의 비결 (룻1:1-22}
타락은 회개의 반대로 하나님을 등지고 이방인에게로, 이스라엘을 등지고 모압{이방나라:세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등지고 육신의 안락을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I. 엘리멜렉 가정의 타락된 삶 {룻1:1-5}
1. 타락의 원인{1:1-5}
1). 기근 때문에{창12:10, 26:1, 암8:11, 사2:11, 룻1:1}
(1). 하나님을 찬송하던 것을 그치게 하고 {유다족속-찬송}.
(2). 하나님의 기쁨과 희락을 빼앗아 버리고{나오미-기쁨, 쾌락, 즐거움}.
(3). 하나님을 왕으로 삼던 자로 이방신을 섬기게 함{엘리멜렉-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4).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 버린다{말론-병고, 기룐-낭비}.
2). 베들레헴을 떠났기에{요6:30-40, 신11:10-12}
(1).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인데 말씀의 집이며 말씀을 떠나지 말라{마4:4}는 의미이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남방으로 약 8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고원지대로서 이곳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신11:10-12}.
(2). 이 땅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면 축복이 임하고 돌보지 아니하면 흉년이 드는 곳이다{레26:18-20}
(3). 베들레험을 떠나는 성도는 심령이 메말랐다. 사랑이 없는 성도, 말씀이 없는 성도는 믿음에서 떠남, 주님을 배반하는 성도 , 성령충만치 못한 성도, 성소를 등진 자는 망한다.
3). 모압으로 갔기 때문에(세상){딤후 4:10}‘데마 세상으로 감’
(1). 음란의 씨들로 구성된 나라이다{창19:36-38}‘롯의 딸들’
(2). 그리고 우상숭배가 심한 이방나라이다{민21:29}‘그모스 우상’
(3). 선민을 괴롭게 한 백성이다{민22:1-15:5, 렘48:26-27, 대상19:1-6}
(4). 교만한 땅이다(사16:6-7}
(5).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신23:3, 느13:1}
(6). 멸망할 땅이다{렘48:42, 겔25:8-11}
(7). 이 세상과 같다{딤후4:10, 요1서2:15-17}
4). 우상숭배 때문에 {사2:16-17, 삿3:7, 삿2:10, 골3:5}
(1). 바알신이란? 소유주란 뜻인데,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섬긴 신으로서 태양신 혹은 최고의 남(男)신이라고 하는 우상이다.
(2). 아세라신이란? 아스다롯을 숭배하기 위하여 만든 커다란 목상이다. 아스다롯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女)신이었다.
(3). 이 두 가지 우상은 주로 풍년을 들게 하는 농사의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참신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타락해졌다.
(4).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출20:1-7}
우상숭배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 더 의지하고 높이고 자랑하는 것, 더 무서워하는 것이다.
5).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룻1:1, 삿2:10, 롬10:17}
(1).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나 또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목도한 지도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섬겼다.
그러나 10절에 보면 {그 세대 사람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라고 한다.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다.
(2).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다
이것을 보면 인생은 올바른 영적 교훈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됨을 알 수 있다{신6:6-7 시78:5-8}.
(3). 이렇게 베들레헴이 흉년을 만나게 된 것은
A. 베들레헴 사람들이 사사들의 지도에 불복하여 우상을 섬겼고,
B. 사사들이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
6). 환난을 당할 때 기도하지 않음{고전10:12-13, 약1:5-13, 시50:13}
(1). 스스로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고 하였다. 그런데 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더욱 고생하게 되었다{인본주의였기 때문이다}
(2). 시험과 문제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라는 적신호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지시로 알아야 한다{약1:5-13}.
(3).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피할 길을 마련해 놓으시지 않고는 우리로 시험당하도록 허락지 않으심을 확신해야 한다{고전10:13}.
*. 역경은 양자 택일케 한다. 이것으로 거듭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할 수 있다. 시험 당할 때 주께 매어달리는 자와 주를 떠난 자의 두 가지 경우가 있겠다.
7). 엘리멜렉의 불신앙 때문에 {히11:6, 요11:39-40, 약2:26}
(1). 하나님은 불신앙을 가장 미워하신다. 기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불신앙이다{요11:39-40}.
(2). 엘리멜렉이이란{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는 인간을 왕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고자 했던 것이다.
(3).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2:26}이라는 말씀대로 그는 껍데기만의 신자였다. 기근과 함께 그의 신앙도 약화되어 타락되고 말았다.
2. 타락의 단계
1). 생각을 빼앗긴 단계
(1). 모압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자주 침범한 이방신의 나라였다.
모압은 식량이 풍부하다는 것 밖에는 택한 백성이 살만한 곳이 못되는 고장이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성도가 사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요1서2:15-17}.
(2). 역경이 올 때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전7:14, 약5:13}.
형통한 날에도 주를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도 주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전7:1, 약5:13}.
(3). 주의 은혜를 잊을 때 생각을 빼앗긴다{빌4:4-10}.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의 종에서 구원받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인도함을 받았으나 그들은 광야에서 애굽을 다시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주의 은혜를 조그마한 어려움 때문에 잊어버리므로 타락된 삶을 살고 말았다}.
A. 과거-에벤에셀
B. 현재-임마누엘궁극적--여호와닛시
C. 미래-여호와 이레
2). 차차로 시작하여 아차가 되는 단계
(1). 우거한다는 말은 임시로 살짝 붙어 살다가 돌아오고자 했다는 말이다.
곧 돌아올 심산으로 간 것이었다. 결코 모압에 물들지 않고 살짝 붙어서 양식이나 먹다가 오려고 했다는 말이니 바로 이것이 올무{Trap}이다.
(2). 사람이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고 두 주인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약1:7-8, 눅16:13}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면 올무에 빠지게 되거니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고 하였다. 우리가 타락된 동기는 바로 두 마음과 두 주인을 섬기는데 있다.
(3). 사탄의 고등 술책이 바로 이것이다{개구리 죽이는 방법}
하루 이틀 교회 빠지다가 내가 꼭 다시 나가리라 하지만 결코 정반대로 한번이 두번 세번 네번.... 타락케 된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더니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더니 사망을 낳더라”{약1:15}고 하였다.
3). 완전히 정착하여 세속화 되는 단계
(1). 그들은 모압에 물들기 시작하여 세상과 타협하기시작한 것이다.
연약한 인간들이라 당초의 결심이 누그러져서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2). 10년이나 계속 살면서 모압에 물들대로 물들었고 속화될대로 속화되어 이방인과 피를 섞게 된 것이다{고후6:14, 창24:}.
(3). 처음에는 부득이, 다음에는 습관이 되어서, 그 다음에는 인이 박혀서 어쩔 수 없는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과 같다.
성도여 타협하지 말라!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
3. 타락의 결과
1). 믿음이 죽음{남편이 죽음}
(1). 믿고 살던 남편이 죽은 것은 믿음이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2:26}. 결국 슬픔과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다.
(2). 정신적인 지주, 육체적인 지주를 잃어버린 것이다.
믿음이 죽은 성도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지주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방탕할 수 밖에 없다.
(3). 믿음이 죽으면 막다른 골목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린 자가 다다르는 막다른 골목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경멸히 여기는 자를 경멸히 여기는 것이다”{삼상2:3}.
2). 소망이 끊어짐{아들들이 죽음}
(1). 장래를 바라보던 두 아들이 죽었으니 소망이 끊어진 것이다.
(2). 남은 것은 이제 이방여인인 두 자부들로 큰 부담과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3). 경도가 끊어져 다시 자녀 생산의 희망도 사라진 것은 완전한 소망이 끊어짐을 의미한다.
3). 사랑을 잃게 됨{여자들, 과부 셋만 남음}
(1). 사랑을 받을만한 남편들을 모두 잃어 버린다.
그들은 결국 믿음, 소망, 사랑{신망애} 모두를 잃게 된 것이다.
(2). 이것이 그들 일가가 모압으로 내려온 결산으로 적자 인생이다.
풍족하게 나갔다가 탕자처럼 거지가 다 된 셈이다.
(3).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는데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고전13:1-13, 갈5:22}.
사랑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고 성령받은 결과가 사랑인 것을 명심하고 사랑의 성도가 되어 서로 사랑하자. 이웃사랑, 원수까지 사랑하자.
결과
{동네 못된 남자들만 찾아옴}-마귀만 찾아옴
이렇게 믿음이 죽고 소망이 끊어지고 지고 사랑을 잃으면 마귀가 계속 찾아와 또 간음하도록 유혹한다{약4:4}.
II. 나오미 가정의 회복의 비결){룻1:6-14}
1. 나오미의 회개{재기}(6절)‘실패하고 돌아온 성도’
1).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지적 요소}(6절)
(1). 말씀은 Good News{반가운 소식, 기쁜 소식}이다.
회개화 재기의 용기는 바로 이 말씀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나오미는 내 고향 내 집을 깊이 생각하며 탕자처럼 그리워하던 차에 기쁜소식, 자기 나라에도 풍년이 들었다는 기별을 듣게 된 것이다.
(2). 나오미는 10년 만에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다.
인간이란 자기의 분깃을 다 없이 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는 법이다{눅15:16-17}.
(3). 나오미는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였다{살전2:1-4}
나오미는 기쁜소식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희망의 속삭임, 기쁨의 좋은 소식도 달게 받지 않고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잠25:25}.
2). 듣고 깨달음{정적 요소}(13, 20절)
(1). 말씀을 듣고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기가 지금 처해있는 땅이 어떤 곳인가? 부터 반성해야 한다.
(2).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것임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13, 20절).
나오미는 자기의 고향{하나님의 나라}을 등진 것을 깨달았고 자기의 우맹을 솔직히 시인하여 여호와께서 자기를 치신 것임을 깨달은 자였다.
(3). 징계가 하나님이 허락한 사랑의 매인 것을 깨달았다.
징계를 달게 받은 것이다{히12:5-7}. 원망없이 자기를 반성하여 새로운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 자기가 깨어진 것이다.
3). 자각 후 일어남{의지적 요소}(6절)
(1). 용감하게 결단성있게 일어났다.
지성인은 부끄러워서 회개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오미는 용감히 모압 땅에서 일어난 것이다.
(2). 탕자처럼 진정한 회개를 하였다.
(눅15:17)에 “제 정신이 들어 깊이 생각함”, (눅15:18-19)에 “결정적인 내적 새 열심”, {눅15:20-21}에 “결심대로 행동을 취함”
(3). 이제는 모압을 등지고 하나님의 나라로 방향을 잡고 돌아선 것이고 힘있게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2. 오르바의 작별{9-14}‘타락된 성도’
1). 오르바는 타락한 성도의 모형
(1).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춤으로”{1:14} 나오미에 대한 진실한 애정과 헤어지기를 싫어하는 심정을 나타내면서도 애정어린 작별을 고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2). 오르바는 나오미를 사랑했으나 자기 친정과 나라를 떠날만큼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다.
(3).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는 있지만 재물 많은 부자 청년처럼(눅18:22-23) 근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가 버린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
결국 오르바가 받은 영향은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였다.
2). 세속적인 성도의 모형
(1). 그녀는 나오미를 따라가 유대 땅에서도 역시 육체적인 안락과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려고 했던 것이다.
(2). 그러다가 결국 이를 알아차린 나오미가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도저히 육체적 행복의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하자 옛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3). 그리하여 그는 자기 고향 땅에서 다시 재가하여 인간적인 쾌락을 누리기 위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중생치 못한 성도의 모형
(1). 근본적으로 그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망의 모압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2). 이것이 육체적 쾌락과 소망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여호와와 그의 백성과 그 백성들의 땅만을 바라보는 거듭난 룻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3). 오르바는 바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은 믿음에 파선한 자였다{딤전1:13}
3. 룻의 축복받은 신앙{15-18}‘구원받은 성도’
1).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16상}
룻은 나오미와 함께 동행하려 한다. 나의 조국과 나의 친정을 멀리 떠난다 해도 어머니와 함께 즐거이 가려 했다.
2).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16중}
룻은 나오미와 함께 동고동락의 결심을 하였다. 오막살이 초가집에 거하든 돌베개 베고 자는 숙소에 거하든 어머니 계시는 곳에 함께 동거하려 했다.
3).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16중}
룻은 덕망높고 선한 어머니를 보고 그의 백성도 슬기로우며 이해심이 많을 것을 알고 자기도 그 백성 중에 하나가 되면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4).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하}
나는 이제 헛되고 거짓된 모압의 신을 버리고 어머니의 믿음에 따라 살아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받들고 그만 믿고 그만 섬기며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겠나이다.
5).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17상}
룻은 기꺼이 나오미와 함께 죽으려 한다.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죽는 것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어머니가 나이 많음으로 먼저 죽더라도 자기 자신도 나오미처럼 그 집에 살다가 그 집에서 죽으려 했다.
6). 거기서 장사될 것이라{17중}
룻은 나오미와 같은 무덤에 묻혀 그 곁에 눕기를 원한다. 그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묻히기를 원하였고 다시 저 세상에서 살아난 후에도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였다.
7).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7}
룻은 나오미를 따르려는 결심을 확고한 맹세로 나타냈다. 룻은 나오미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의무만 남아 있을 뿐이다.
*. 룻의 신앙
(1). 꺽을 수 없는 확신에 넘치는 신앙{16}
(2). 동행{성령임재}, 동숙{성령내재}, 동착{성령인도}하는 신앙
(3). 말씀에 굳게 선 하나님 중심 신앙{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자 함}
III. 다시 베들레험으로 올라가는 나오미
{룻1:19-21}
1. 나오미의 곤고한 모습
1). 불쌍하게 변모된 나오미{19}
{이가 나오미냐?} 사람들이 놀라며 몰라볼 정도로 변한 것이다. 거지꼴이 분명한 나오미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놀라는 동네 사람들의 말이다.
2). 나오미{쾌락}가 마라{곤고한 자}가 된 것이다{20절}
나오미는 모압에서 기쁨을 더 얻고자 했지만 도리어 그의 고백처럼 곤고한 자, 쓴물을 마신 자가 되고 만 것이다.
3). 풍성한 부자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21절}.
풍성하게 나갔다가 빈손 들고 돌아왔을 뿐 아니라 자부의 빚까지 안고 돌아온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요10:10}.
2. 베들레헴 사람들의 영접하는 모습
1). 온 성이 돌아온 것을 기뻐 환영함{19절}
온성이 나오미의 돌아옴{회개}를 기뻐하며 떠들게 되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천사들과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됨을 나타낸다{눅15:4-10}.
2). 나오미로 다시 인정해 줌{19절}
사실 나오미는 그의 고백처럼 마라라고 함이 마땅하고도 마땅하다{21절}. 그러나 아버지가 탕자의 고백대로 품꾼의 하나로가 아니라 다시 아들로 불러주고 우대해 주셨던 것처럼 그도 나오미로 다시 인정하며 불러주었다.
3). 내 모습 이대로 솔직히 돌아온 나오미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탕자의 고백처럼 나오미의 고백이 아름다운 것은 쓸데 없는 변명, 핑계, 책임 전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이대로 돌아왔기에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다시 회복된 삶을 허락한 것이다.
3. 나오미가 돌아온 때{시기}(22절)‘시기를 잘 선택했다’.
1). ]추수 때{세상 끝날,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 재림 때}
(1). 나오미가 돌아온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가 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마13:39},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고토에 돌아와서 민족적으로 회개할 때{롬11:26-29} 주의 재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2). 1948년에 유대인들이 고토에 돌아와 나라를 독립하고 지금 재건과 번영이 한창이니 곧 (보리추수 때로서} 마지막 때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이삭줍는 시대{지구 종말, 주의 재림 임박함}
하나님이 다루시는 복음의 3시대
(1). 씨뿌리는 시대---오순절부터 {이른 비--봄비}
(2). 거두어들이는 시대---20세기말{늦은 비--가을비}
(3). 이삭줍는 시대---바로 지금{재림이 급박한 현실}
*. 이삭줍는 시대의 특징
A.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이다.
B. 익은 곡식은 묶어서 벌써 창고에 들인 후이고 과부와 고아들이 이삭을 줍게 되는데 이는 교회의 성숙과 세계교회의 마지막 부흥을 암시한다.
C. 주의 재림을 독촉하는 방법은 떨어진 이삭을 빨리 줍는 일이니 길가와 논두렁에 버려진 이삭이 얼마나 많은가? 이 긴박한 시대를 이삭줍는 일에 힘쓰라.
3). 10년만에 돌아옴
나오미가 이방인 룻의 도움으로 집안을 재건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으로 자기 나라를 재건하고 메시야{보아스의 나타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10년만이라도 돌아온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10이라는 숫자는 시험의 수이다. 하나님이 시험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돌아오라{벧후3:8-10}.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1).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위하고
(2). 믿는 자 준비시키기 위함인 줄 알아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라.
제 3장
은혜받는 비결과 생활과 결과 {룻2:1-23}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본장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에 대한 상징적인 뜻을 생각해 보자.
보아스{예수님의 모형}, 룻{성도의 모형}, 나오미{본장에서 성령의 모형}, 보아스에 속한 밭{교회를 상징}, 이삭{복음이요, 생명의 양식}, 거두는자, 베는 자는 교역자, 사명자를 상징하고 소년들{9절}은 천사를 상징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생계가 어려웠다. 그래서 며느리 룻은 밭에 나아가 보리 이삭을 주워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우연히도 보아스의 밭에 가서 보리 이삭을 줍게 되고 보아스로부터 친절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룻을 결혼시키려고 생각하게 된다.
I. 은혜받는 비결{룻2:1-7}.
1.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입으면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은 베들레헴에 오는 날부터 다른 곳에는 마음이 쏠리지 않고 오직 보리밭에만 그 마음이 끌리어진 것이다. 밭은 교회요, 보리 이삭은 복음이요 생명의 양식이다.
성도가 참되게 회개하고 돌아오면 보리밭 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께만 마음이 쏠리고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룻이 밭에 나가서 이삭을 줍게 될 때....
(1). 걸인과 같이 가혹하게 취급을 받게도 될 것이며
(2). 사나운 밭 임자를 만나면 인격적 모욕과 학대를 받을 가능성도 있고
(3). 낮에는 중동지방의 뜨거운 태양볕 때문에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고 저녁에는 배고픔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나로 밭에 가게 해달라는 강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은혜받는 첫 비결은 무엇보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시119:100-110}.
2). 교회를 사모해야 한다{시84:1-10}.
3). 갑절의 능력을 사모해야 한다{왕하2:1-10}.
2. 시어머니{나오미=성령님 상징}의 허락을 받았다{2:2}
양식 때문에 기갈을 느낀 룻은 밭으로 달려가지 않고 시모님께 물었다.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라고 했다.
영적으로 나오미는 성령의 상징이다.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먼저 성령님께 물어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룻은 나오미에게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의 이 말 속에는 지금 자기의 형편으로는 안내자도 없고 동행자도 없으며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때 나오미는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였다. 그는 시어머니의 허락이 있은 후 성실하게 밭에 가서 일하려고 하니 성령님이 또한 그를 인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보다, 말씀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그리하면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1). 겸손해야 한다.
(2). 성실과 열심을 품어야 한다.
(3). 오직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3. 성령의 인도로 보아스에 속한 밭으로 갔기 때문이다{3절}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레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라고 하였다.
1). 보아스는 어떤 사람인가? {주님의 형}
1절에 유력한 자라고 하였다. 그 뜻은 {그 안에 힘이 있다}인데 보아스는 훌륭한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클레란} 교수는
(1). 종교적인 사람이다{2:4}. (2). 관대한 사람이다{2:15-16}
(3). 책임감의 사람이다{3:12, 4:10}. (4). 열정의 사람이다{2:9}
(5). 예의의 사람이다{2:14}라고 했다.
(1). 그는 부자였다{밭이 많은 사람이다}.
주님은 본래 큰 부자이다{고후8:9}.
(2).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이다{2:20}.
우리 인간의 본래를 되찾아 주실 분이다.
(3).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경할만한 위대한 사람이다{2:1}.
유력한 자로서 뛰어나고 거룩하고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2).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란 무엇인가? {교회의 모형}
보아스에게 속한 밭은 진리에 속한 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밭이다. 밭은 교회이다. 이 밭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님을 통하여 세워진 참된 교회인 것이다.
이 밭에 가야만 은혜를 받는다. 이삭을 줍기 위해서는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즉 교회에 가서 이삭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해지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만 찾아가야 한다. 그것은 살 길이요, 생명의 양식을 얻는 것이요, 복을 받는 길이다.
(1). 보아스가 주인이 되듯 주님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2). 밭은 일하는 곳이므로 열심으로 일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3). 가난한 자가 이삭을 얻어 생명과 축복을 받는 것처럼 영육간의 축복받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3). 보아스에 속한 밭에 어떻게 갔나{우연히}
이삭을 주우러 나갔다가 우연히 보아스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에는 우연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연히}가 있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농장으로 이끄셨던 것이다.
요6:37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란다{엡5:18-22}.
(1). 성령을 소멸치 말라--하라는 명령을 안할 때
(2).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하지 말라는 명령을 할 때
(3). 성령 충만을 받으라{겔47:1-12)--발목 무릎 어깨 머리까지 물에 잠기게 됨.
A. 전진이 있다{3-5}.
B.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달해 준다{6-10}.
C. 어느 하나라도 쓸모없는 것이 없다{12}.
D.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다{12}.
4. 참 목자의 뒤를 따라야 한다{3상}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여기 {베는 자}는 참 목자인 사명자 목사를 상징한다.
보아스의 밭에 갔다고 하여 누구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이삭을 줍는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저곳 적당히 왔다갔다 하면서 생각없이 이삭을 줍고 있었다.
그러나 룻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베는 자}의 뒤를 바짝 따르면서 이삭을 열심히 주웠다. 7절에 보면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고 말했다.
신자가 올바르게 교회 생활하려면 참 목자의 뒤를 바짝 따르면서 이삭을 주워야 한다. 엘리사 선지는 선생 엘리야의 뒤를 최후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비장한 결심과 각오로 끈기있게 따라가 소원대로 갑절의 영감을 받았다{왕하2:12}‘길갈, 벧엘, 여기리고, 요단’.
1). 참 목자는 정문으로 들어온 자이다{요10:1-8}
2). 양을 잘 인도, 보호하는 자이다{요10:16, 시23:1-6}.
3). 풍성히 생명을 얻게 하는 자이다{요10:10}.
5. 보아스를 만나는데 있다{2:4-6}.
4절 이하에 보면 보아스의 신앙 인격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의 믿음과 덕이다.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의 축복을 빌었다. 일꾼들도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변을 했다.
5절에 보면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람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라고 했다. 보아스는 보리 베는 자들의 후미에서 이삭줍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금방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보아스는 룻이 떨어진 이삭을 열심히 줍는 동안에 먼저 이국인으로서의 그의 단정하고 우아하고 얌전한 몸가짐이 주목되었다.
6절에 보면 사환이 말한다. 그 젊은 여인은 모압 여인으로서 그 엄한 시모 나오미를 집에까지 모시고 왔었던 자라고 했다.
우리가 먼저 은혜의 깊은 자리에 들어가면 예수를 만나게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남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변화산상 성회에 마지막 예수님만 남았더라고 함}.
1). 이방인 여자로서 회개하였기에
2). 시어머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3). 룻이 아름답고 근면하며 성실한 여인이었기에
6. 열심과 인내로 이삭을 주워야 한다{7절}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는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계속하여 이삭을 줍는다고 하였다. 룻의 열심과 인내를 보여준다. 열심이 중도에서 흐지부지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밭고랑의 한 가운데 있는 쟁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신앙 생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처음과 나중이 열심과 인내로 일관되어야 한다.
처음 믿을 때부터 숨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충성에 금이 가지 말아야 한다. 변질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다{고전16:24}.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다{롬12:11-12}.
1). 성실해야 한다{롬12:8-12}.
2). 열심을 내자(계3:29, 롬12:11).
3). 끝까지 인내하자{마24:12}.
7. 은밀한 기도 생활이 있어야 한다{7절}
7절에 보면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쉬었다고 했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낮에 룻은 들판에 세워둔 조그만 오두막집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는데 그 시간은 주운 보리 이삭을 세밀히 조사하여 꺼풀과 쭉정이와 깜부기는 제외하고 알곡만 내 소유로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자기 자신과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은밀하고 묵상하는 교통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성도의 신앙 생활은 열심히 일하는 중에도 은밀한 기도 생활과 깊은 기도 생활이 있어야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힘을 얻어 계속 일할 수 있고 계속해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1). 골방기도가 필요하다{마6:5-7}.
2). 은밀한 기도가 필요하다.
3). 성령 안에서 무시로 깨어 기도해야 한다{엡6:17}.
II. 무슨 은혜를 받았나{룻2:8}
1. 권고의 은혜를 받았다{2:8, 9}
보아스에게 권고의 은혜를 받았다. 8절에 보니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다.
1).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행4:12, 갈1:9, 고후11:4}
영적으로 보아스에게 속하지 않은 다른 밭은 주님께 속하지 않는 밭으로서 이단과 속화된 교회를 의미한다. 이단이란 무엇인가? 머리는 같되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이단이란
(1). 다른 주를 전하고{고후11:4}
(2).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갈1:9}
(3). 다른 영 즉 마귀의 영을 받으면{고후11:4} 이단이다.
진리의 밭은 현재적으로는 딱딱하고 고독해 보인다. 소득이 적은 것 같이 보인다. 일정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사는 옥에 갇히고 그 가족들은 사택에서 쫓겨나야 했다.
2. 나를 떠나지 말라{요15:5, 행4:1, 요14:6}
예수 그리스도는 참 생명이요, 참 길이요, 참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예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갔으므로 멸망하였고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므로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되었다{딤후4:7-8}.
3). 나와 함께 있으라{마18:20, 사43:1-3}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므로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하고 병아리는 어미닭과 함께 있어야 하고 양은 목자곁에 있어야 하듯 죄인은 구주와 함께 있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고 내 이름으로 두 세사람이 모인 그 곳에 나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마실지니라{9}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여기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보호를 받는 은혜}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팔레스틴의 보리추수기는 더위가 심하고 비가 오지 아니할 때라서 물이 귀하고 특히 생수가 대단히 귀한 때이다{삼하23:14-15, 대하11:17-18}.
요한복음 4장에 보면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이 나온다. 이 여인은 이성으로도 물질로도 거짓 종교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늘 목말라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의 생수를 마심으로 영원한 만족을 누리게 되었다.
2.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2:10-13}.
룻이 권고를 잘 받아들이자 보아스는 위로의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였다. 성도가
(1). 성령을 통하여
(2).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3). 자기의 양심을 통하여 권고를 잘 받은 사람이 되면 주님께서 위로의 은사를 베풀어 주신다.
1). 룻은 겸손함으로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0절}
룻이 보아스의 친절한 지도를 받고 감사한 것은 단지 예의를 갖춘 정도가 아니었다. 자기는 도무지 그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인 것을 깨닫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사례한 것이다{대하24:17, 출18:7, 마2:11, 삼하1:2-16, 삼하14:2-4, 삼하15:5-6}.
그러므로 여기 룻이 땅에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겸손과 얌전한 순종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에게 겸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마11:29, 잠15:33}.
2). 남편이 죽은 후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1절}
역사적으로 룻의 육적 남편이 죽었다. 영적으로는 우리가 주님께 위로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남편과 같은 세상 생각이 죽어야 한다.
여자는 남편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또 공경하고 다스림을 받으며 남편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남편으로 알고 사랑하고 의지하여 다스림을 받으면 주님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30대에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버렸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장 고상하게 여겨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자기의 육체를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로 살아갔다.
그 때에 남이 알지 못하는 신비의 세계에서 주님이 주시는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세월이라는 남편{약4:4}을 죽일 때 주님의 위로가 오는 것이다.
3). 시부모님께 효도함으로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1절}
성경에 보면 창 47:12에 요셉이 부모에게 효도했으며, 삼상 22:3에 다윗이 부모에게 효도했으며, 왕상 2:19에 솔로몬이 효도했으며, 왕상 19:20에 엘리사가 효도했으며, 눅 2:51, 요 19:25-26에 주께서 부모에게 효도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보아스는 룻이 그 남편이 죽은 후에 시모에게 행한 모든 선행에 대하여 들었다고 하였다.
자부된 자가 그 남편의 생전에는 시부모를 공경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에는 그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런데 룻은 그 남편이 죽은 후에도 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시모님을 계속해서 봉양하였던 것이다.
이 효성은 온 베들레헴 성읍 사람에게까지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사람이 한 두번 선을 행하기는 쉬워도 계속해서 선을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도 믿음으로 잘 감당하게 된다.
4). 부모와 조국을 떠나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옴으로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1절}
창 12:1에 보면 아브라함은 일찌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잔뼈가 굵어진 본토와 친척과 정든 아비집을 떠났다{히11:8}.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과 시어머니의 백성을 사모하여 부모와 조국을 떠나는 신앙의 용단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신앙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세상 풍속과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주님께 위로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집의 풍속을 버리고 시댁의 풍속을 좇아야 대우를 받을 수 있다{시45:10-11}. 처녀 때에 가졌던 습관을 다 버리고 시부모와 신랑집에 맞도록 생활해야만 위로를 받고 화목한 가운데 살 수 있다.
이와같이 성도도 이 세상의 모든 옛 풍속과 생활를 잊어버리고 주님의 마음과 사상에 맞는 심정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큰 위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5).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옴으로써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2절}.
태양 밑에서 그늘이 필요한 것같이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심령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늘 그늘이 필요하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여러 종류의 그늘을 의지하며 그 아래서 살게 된다.
(1).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의 그늘이 있다.
(2). 인간 상호간의 그늘이 있다.
(3). 국가의 그늘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적 그늘은 시간적으로 보아 기한이 있고 공간적으로 보아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기도 한다.
이 그늘은 아침에 무성하다가 저녁에 말라버리는 요나의 박덩굴 같은 그늘이다. {시121:5}에 {여호와께서 네 우편의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하였다.
그런 이 위로는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 찾아 들어감으로써 진정한 위로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마2:3, 시91:1}.
6). 상을 주심으로 위로하신다{12하}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했다.
창 15:1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위로를 받았고 모세도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광야의 40년 훈련을 통과했고 바울도 의의 면류관의 상을 바라보며 위로받으며 승리할 수가 있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히11:6}.
다윗도 시 23편에서 원수 앞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발랐다고 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위로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환난당하고 있는 서머나교회에 약속해 주고 있는 것이다{계2:10}.
7). 룻은 은혜를 사모함으로 위로의 은혜를 받았다{13절}
룻은 12절에서 보아스의 축복대로 하나님의 축복받기를 사모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는 증거이다. 이런 성도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영적 생명에 부요해지기를 원하는 자이다.
죽은 고기는 흐르는 물과 함께 떠내려 가지만 산 고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냉대를 받으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께 인정받고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3. 특별 배려의 은혜를 받았다{2:14-16}
보아스는 룻을 초대하여 식사에 동참하게 하였다. 여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과부로서 그 식사에 초대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1). 식탁에 초대받은 은혜{14상, 계3:20}.
떡을 먹으며, 초에 찍어 먹으며, 볶은 곡식을 먹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고 하였다.
(1). 떡을 먹으라:보아스가 룻에게 준 떡은 영적으로 요13:1-11에 예수께서 성만찬 예식에서 제자들에게 떼어주신 떡과 같은 뜻이다.
예수께서 떡을 떼어주실 때 그 떡은 예수의 살을 의미한다. 예수의 고난의 떡이다. 다시 말하면 여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찢어진 살조각을 상징하는 떡인 것이다.
(2).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초는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인기가 좋은 신포도주이다. 이것은 특별히 시원하고 기운을 회복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초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문 열고 영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와 새 힘, 새 용기, 새 소망 가운데 살게 됨을 나타낸다.
(3). 볶은 곡식을 먹게 되었다. 이 볶은 곡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보통 말씀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불같은 능려의 말씀이다.
로뎀나무에 앉아 실망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구운 떡으로 위로와 힘을 주어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아침{아크라티스마}:마른떡 한 조각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정도
점심{아리스톤}:역시 집으로 가지 않고 일하는 자리에서 간단히 차림.
저녁{테이프논}:성대히 차린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즐긴다.
(4). 주님 식탁에 참여한 자는 먹고도 남는 은혜가 있다{14절}
벳새다 광야에서 주님의 식탁에 초청받은 5,000명은 주님이 축사하실 때 보리떡 5,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은혜와 축복이 있었다(요10:10에 주님은 풍성히 주려고 왔다고 했다).
2). 보너스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16절)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라고 하는 특별보너스의 축복을 주었다. 이것은 룻이 주운 이삭을 많게 하려는 것이다.
보아스는 룻이 열심히 일하여 줍는 이삭 외에 더 풍성히 가져가도록 특별히 자기 소년들에게 이삭을 조금 뽑아 놓아 룻이 마음놓고 주워 가도록 한 것이다.
3). 책망하지 말며 꾸짖지 말라고 하였다{16절}
약 1:1-6에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주시고 또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아무리 구하여도 꾸짖지 않고 허락하기를 원하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이것은 외로운 자를 돌아보시는 주님의 사랑이요, 가치없는 인간을 대우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요, 때를 따라 낙심치 않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다. 주님께 할렐루야 감사 찬송할지어다.
III. 은혜 받은 결과{룻2:17-23}
1. 소득이 풍성해졌다{17절}
룻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저녁 때까지 부지런히 이삭을 주웠다. 그리고 주운 것을 타작하니 한 에바쯤 되었다고 했다. 한 에바는 11킬로인데 약 20되 정도라고 한다. 소득이 많았다{잠12:27}.
눅 5장에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생활에 익숙한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자기의 기술과 뜻에 의지하여 수고할 때는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고 깊은데로 가서 은혜 체험이 있는 후에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고 두 배가 만선이 되는 풍성한 소득이 있었다{신7:12-13}.
2. 확실한 증거의 열매가 있게 되었다{18상}
룻은 하루 일이 끝난 후 보아스의 종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시모님께 자기가 주운 곡식을 보여 드렸다.
룻은 시모에게 보여 줄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것은 보아스 밭에서 일하여 주운 곡식 한 에바였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받는 확실한 증거의 열매가 있어야겠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확실한 은혜가 있는가? 받은 증거가 있나? 한 에바가 있는가?
3. 여유있는 생일활 이루어졌다{18하}
룻은 좋은 음식으로 시모님을 대접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일터에서 받은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남겨가지고 돌아와서 그 시모님을 대접하였다.
룻이 받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이유는 하루종일 이삭줍는 중노동을 감당하기 위하여였다. 그리고 그 음식 중 얼마를 남겨둔 것은 먹으면서도 시모를 생각한 효심에서였다.
룻은 자기도 배불리 먹고 시모님도 잘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육체는 강건하여{요3서2절} 여유있는 영적 평안의 생활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4. 칭찬받는 삶을 살게 된다{19상}
너를 알아준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다. 룻은 이방여자요 이삭줍는 미천한 여자이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쳐다보지도 않을 존재인데 그녀를 알아주며 동정한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나오미는 축원했다.
이 말은 축복과 함께 뜨거운 감사의 표현이다. 이 말의 이면의 뜻은 나오미가 룻을 칭잔하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착한 종이 될지언정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지 말자{불법, 불순종, 불만, 불의}
5. 성령의 지시를 받게 된다{20-23}.
1). 보아스에 대하여 증거{20절, 요14:26}.
그가 룻과 자기의 구원자이며 죽은 자들의 구원자임을 힘있게 증거하였으니 이같은 증거를 전적으로 믿고 순종한 룻의 축복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 성령의 지시{21절, 요16:13}
룻의 장래를 위한 나오미의 계략을 보라. 벌써 앞날을 훤히 내다보면서 룻의 앞으로의 행동을 지시하였다.
{요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3). 나오미(성령 }의 3 가지 지시내용{21-23}
(1). 다른 밭으로 가지 말 것{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할 것--주 안에서의 생활
(2). 보아스의 소녀들과 함께 가까이 지낼 것
교회 생활--성도의 교제 생활
(3). 그리고 밀 추수 때까지 그리하라
세상 끝날까지(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