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 강해 2

제 4장

신부 생활(결혼) 룻기3:-4:

 

룻기서는 가난하고 남편을 잃은 여인,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는 이방여인이 부유한 유대인 보아스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보아스는 우리의 구속자이신 신랑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룻은 성도 즉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요, 곧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형이다.

나오미는 2장에서 성령을 상징했는데 3장에서는 전도자의 상징이다. 어떻게 룻이 결혼준비를 하여 신부의 자격을 가지고 생활하며 기다리는지 생각해 보자.

I. 결혼준비{신부준비}(3:1-5)

1. 중보자를 잘 만나야 한다{3:1-2}‘중매장이를 잘 만나야’

나오미{전도자}가 룻에게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이할 청혼방법을 가르쳐 준다. 나오미는 어떻게 하면 룻을 잘 결혼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중매장이라고 하였다}.

1). 안식할 곳을 구하여 신부로 복되게 해야 한다(1절).

안식할 곳이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사는 가정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네게 좋은 남편을 구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네가 복되지 않겠느냐?

지금처럼 이렇게 보잘것 없고 우울한 상태에서 생활할 것이 아니라 너는 이제 풍족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참된 중매장이는 성도의 안식할 곳을 구하여 신부로 복되게 해야 한다. 영적으로 참된 안식의 곳은 천국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천국을 얻게 하여 안식과 평화{롬14:17}, 복된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보아스를 잘 소개해야 한다{2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면서도 보아스 자신에 관해서는 룻이 아직 못랐다. 그리스도인이 룻과 같이 세상 모양을 버리고 베들레헴 교회에 찾아 왔으나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 보아스를 구원자로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보아스가 어떤 분인지 무엇을 해주실 분인지 어디 계시는 분인지도 잘 못랐다. 그러나 중매장이{나오미}의 말씀을 통해 보아스{그리스도}는 우리의 친족이어서 기업을 무를 자인 것을 소개받고 있는 것이다{마16:21}.

중매장이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소개하여 예수를 알게 하여야 한다{고전1:17-18}. 참된 전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만날 수 있도록 전략을 일러주었다{2-3}

팔레스틴의 기후는 낮에는 덥고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때 낮에 타작한 곡식을 풍로로 까분다고 한다.

일이 끝난 다음에 종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주인은 타작마당의 곡식 사이에 누워서 하늘을 지붕삼고 추수의 고마움과 기쁨으로 남아 곡식을 지킨다고 한다. 나오미는 이 때에 룻을 보아스와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나오미가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가 누워 자는 자리로 가서 그의 발에 접근해 눕도록 지도한 것은 예의의 벗어나고 이것은 불륜의 관계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의 풍속을 생각하면 이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 이 관습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율법이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이었다{신25:5-10, 창24:, 28:29}.

주의 종들은 말씀을 따라 지혜롭게 저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혼인 잔치집에 참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신부의 자격 (결혼준비 방법}

신부는 아름다워야 한다. 또 아름답지 못한 신부는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면에서 여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1). 목욕하라{회개}(3상, 히9:14, 요일1:7, 9, 약4:8)

(1). 아름답기 위한 근본적인 작업이다.

전신을 아름답게 단장하기 위함이다. 제일 먼저 목욕{회개}하지 않으면 진정한 신부 단장이 될 수 없다.

(2). 특히 목욕은 미루었던 때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기회이다.

성도의 미루어 오던 쌓이고 쌓인 죄를 그의 피로 씻는 것을 뜻한다. 이 일이 없이는 화장도 무의미하다.

(3). 목욕은 숨은 부분, 숨은 죄, 알지 못하던 감추인 부분까지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므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죄까지 청산함을 의미한다. 옷으로 가리웠던 부분, 부끄러운 부분까지 정결하게 씻어 아름답게 하는 때가 목욕할 때다.

2). 기름을 바르고{성령}(3상, 요7:38-39, 사32:15-17).

(1). 보다 적극적인 단장이다.

목욕이 기초화장이라면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본격적인 화장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데 신령한 신부인 성도는 성령의 기름을 발라서 심령을 윤택하게 해야 한다.

(2). 인간 냄새를 제하고 자기의 악취를 가려주는 것을 말한다.

서구 사람들이 향수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의 겨드랑이 냄새{노린내}를 감추고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3). 화장은 신랑 남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신랑을 위한 화장이어야 하고 기름을 발라 그를 유쾌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부의 화장--기름 바르는 것은 성령의 기름에 충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3). 의복을 입으라{그리스도의 옷}(3하, 롬13:14, 마22:11-12, 눅14:21, 갈3:27}.

(1).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기 위함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목욕도 했고(계3:17-18} 기름도 발랐으나 옷을 입지 못하여 부끄러운 교회를 면치 못했다. 옷을 사야 한다. 그리고 사서 입어야 한다(계3:15-20}.

(2).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 앞에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히4:16}.

옷이 날개라고 새 옷, 근사한 옷을 입으면 뽐내며 자랑하고 싶고 당당히 사람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 앞에 당당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성도가 입어야 할 옷

채색옷(선택받은 자의 옷:창37:3}, 예수 그리스도의 옷(구원의 옷:롬13:14, 갈3:27), 빛의 갑옷(도덕의 옷:롬13:12, 엡5:8-9), 새 사람의 옷{예수의 품격의 옷:골3:12}, 하나님의 전신갑주{전투의 옷:엡6:11-12}, 흰옷(성결의 옷:계7:9},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신부의 옷:계19:8}.

4). 단장하고 때를 기다리는 룻:서두르지 않고 시모의 지시대로 지켜 때를 기다리며 날이 저물기를 고대하는 룻의 아름다운 모습{3하-5}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3절} 눕는 곳을 몰래 잘 보았다가{4} 발치에 누우라{4하} 정말 정확하고 말씀 그대로의 순종이다. 대강 순종한 것이 아니라 나오미의 지시에 인내하며 정확히 순종하였다. 蕑

II. 신부의 생활{3:6-13}

1. 순종하는 생활(6절, 약4:7, 마7:21, 벧전3:5)

룻이 시모님의 명령대로 순종함과 같이 성도의 생활도 순종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룻은 다시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일편단심으로 나오미에게 봉사해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6절 초두에 {타작마당에 내려가서....}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시모님께 순종하려는 의무를 보여준다. 그것은 시모를 사랑함과 시모와 죽은 남편을 위하여 과감한 행동으로 자기 희생을 함으로써 모든 일을 성취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일에 신속하게 순종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되지만 그 명령을 하달하신 하나님께도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삼상 15:22절에 {순종이 제사도다 낫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순종하는 단체이다. 교회 안에 순종이 없다면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다. 룻이 시모님의 말씀에 순종함 같이 신부된 성도의 생활은 성령님의 지시에, 주의 종 말씀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2. 모험적 생활이다{7-8절}

룻은 한 여인으로서 가장 힘든 모험을 했다. 룻이 시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기 의무를 보아스에게 말하기 위하여 보아스가 깨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유대풍습에 곡식 타작마당에서 일을 하다가 늦어 밤이 되면 옷을 입은 채 타작마당 한쪽에서 자는 수가 있다. 수확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당시의 한 생활양식이었다.

또 주인이 자는 발 곁에서 종이 자다가 몸을 덮을 필요가 있으면 주인의 이불을 끌어 덮는 것은 보통으로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아스가 잠든 후에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다는 이 행동은 풍습이 다른 이방여인이요, 또 정숙한 여인으로서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룻이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 시모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려는 순종심 때문이었고

(2). 믿음으로써 모험을 시도한 것이었으며

(3). 보아스의 인격을 믿은 것이었다.

신앙 생활은 어느 정도 모험이 있어야 한다. 항상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가는 식이 되면 신앙의 단맛을 모르게 된다. 성령말씀과 비추어 보고 그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올 때 {주여 믿습니다}하고 모험을 하면 체험적 은혜를 받 을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때때로 모험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성도를 찾아 보호해 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바른 신앙의 모험에는 반드시 성공과 축복이 따르게 된다{8절}.

3. 헌신하는 생활이다{9절}

룻은 시모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가서 옷을 입은 채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다. 그리고 보아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보아스가 밤중에 깨어보니 누군가가 그의 발치에 누워있는 것을 알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때 룻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며

1).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2). 당신의 옷자락로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3).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나는 당신의 시녀입니다}라는 것은 자기는 보아스의 종이라는 뜻이다. 종은 주인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자이다{헌신}.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했는데 이것은 일생을 보아스에게 맡기겠다는 상징적 의사 표현이다.

옛날 중동지방에서는 상징적인 인사로 청혼하는 풍속이 있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란 나의 인생을 당신에게 맡기오니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호해 달라고 하는 뜻이다.

룻이 이런 담대한 모험적 행동을 한 이유는 그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느 지파에 속한 자가 너무 가난해서 조상 때부터 받은 기업의 땅을 팔아 버린 경우에는 그의 가까운 친척이 돈을 주고 그 땅을 물려옴으로써 그 지파의 땅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레25:25-28} 율법이 제정되었다.

보아스가 룻의 유일한 상속자가 된 것과 같이 영적으로 나의 유일한 구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파산당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늘의 기업을 찾아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그 대가를 내어 주신 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업을 무른 자이다. 가까운 우리의 근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엔 우리를 구원할 인물이 없고 방법도 없다. 그러므로 일편단심 주님만 신뢰해야 한다. 우리의 헌신은 일시적인 헌신이 아니고 계속적인 헌신이어야 한다.

4. 헛된 영화를 따르지 않는 생활이다{10절}

룻은 그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그를 극진히 사랑했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절개를 지켜 청년 남자들에게 뜻을 두지 아니하고 죽은 남편 이름을 계대하기 위하여 율법을 좇아 죽은 남편의 기업상속을 무를 조건으로 보아스와 결혼을 하려고 뜻을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결혼은 자기의 젊은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곧 헛된 영화를 따르지 않는 생활로 일관한 것이다.

룻은 이 세상의 헛된 영화를 따르지 않는 성도의 모형이다.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선행을 행한 성도의 모형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세상의 영화를 택하기 전에 오직 주님만 표준하여 신앙하고 의지하며 소망하고 사랑하며 전진하면 나중에 은혜인 예수께서 천사장의 나팔로 앞서간 성도들과 함께 구름타고 재림하실 때 신부된 성도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처음 은혜 즉 현재 우리가 심령상으로 받는 은혜보다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은혜는 언약이요, 소망이지만 장래의 은혜는 언약과 소망이 사실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5. 의인이 증거하는 생활이다{11절}

현숙한 여자란 히브리어 뜻에 덕에 힘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남을 위하여 유익하게 행하는 힘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잠언 31장에 보면 현숙한 여자는

(1). 부지런히 생업에 힘쓰는 여자

(2).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여자

(3). 가족을 도우는 여자

(4). 말에 있어서 늘 착한 여자

(5). 여호와를 늘 경외하는 여자

보아스가 룻을 신부로 맞이하게 된 것도 룻의 아름다운 행실을 온 성읍 백성들이 찬양한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훌륭한 미덕은 거기에 합당한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런 미덕은 남자와 여자를 가장 현명하고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룻의 선행은 감추면 감출수록 주위의 사람들이 더욱 그녀의 선행을 높이 평가했다. 놀라우리만큼 겸손했던 룻의 덕행은 결국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의인에게 증거를 받는 사람은 계 17:8에 성도의 의로운 행실을 하는 자로 의로운 행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성도의 예복이다.

6. 은밀한 영교의 생활이다{12-13}

13절 초반에 보면 {이 밤에 여기서 머물라} 후반에 보면 {아침까지 있으라}고 하였다. 여기 밤은 영적으로 세상이다. 아침은 주님의 재림이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과부}란 벙어리된 자란 뜻이다. 보아스는 벙어리된 자를 위하여 입을 열 것이며 자기의 뜻을 말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말하겠다는 것이다.

그 밤에 룻은 새로운 사실을 보아스로부터 듣고 아침까지 깨어 있어야 했다. 이것은 은밀한 영교이다. 성도는 이 세상이 끝나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은밀한 영교가 부단히 계속되어야 한다.

III. 신부의 기다림(3:14-18}.

{기다림의 시간}

1. 새벽까지 기다려야 한다{14절}

13절 초두에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고 했고 13절 후반에 아침까지 누울지니라고 했다. 보아스는 같은 명령을 두번이나 말하였다. 어두운 밤에 룻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룻의 입장도 보아스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순종과 동시에 신뢰로써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 세계에 오실 날을 기다리는 생활이다. 우주의 역사는 이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역사의 중심이요 기원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말씀이 되어 인간 세계를 찾아오셔서 친히 그 백성을 위로하실 날을 기다리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 신약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인과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그 때를 기다리는 교훈이다.

13절에 {이 밤에 여기 머무르라}했다. 이 밤은 세상이요 여기는 현재적으로 타작 마당이다. 타작마당은 교회이다. 보아스와 함께 있는 타작마당은 영교의 밀실인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 밤에 여기 머무르라는 것은 캄캄한 죄악 세상에 공존하는 교회에 머무르라는 의미이다. 현대를 가리켜 죄악으로 타락된 캄캄한 밤이라고 한다.

(기다림의 자세)

2. 은밀히 교통함으로 기다려야 한다{14하-15}蕑

보아스와 밤새 같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게 한 것이다. 둘 사이는 결백한 사이요 또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해도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면

1). 의심을 일으키게 되고

2). 이 일을 모반하는 사람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 그리하면 결과적으로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고 사악한 사람이 개가를 올리게 됨으로 이 일에 대하여 비밀을 지킬 것을 부탁한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 선한 양심을 지켜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 부득이한 일로 오해를 받을만한 일을 했더라도 그것을 비밀로 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악도 피해야 하지만 추문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주님과 성도와의 교제는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이와 같은 비밀스런 영교의 생활은

1). 고요히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2). 깊은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생활이다.

3). 그리하면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된다.

룻이 집으로 돌아갈 때 곡식을 선물로 주었다. 이 곡식은 보리 6되였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이 청한 결과를 나오미에게 결정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주님과 가까이 하고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자는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아니한다. 반드시 무엇을 받을 터인데 그것은 풍성한 생명의 은혜이다{눅11:9-13}

(기다림의 목적)

3. 주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16-18}

구약성경에는 {내 딸아 네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공동번역에는 {시어머니께로 오자 시어머니는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다}고 되어 있다.

룻이 돌아왔을 때 나오미는 룻에게 오늘밤에 보아스의 사람이 되었느냐 되지 아니했느냐를 물은 것이다. 네가 옛 남편 기룐의 사람이냐? 보아스의 사람이야?를 물은 것이다.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네가 누구의 사람이냐? 옛 주인에게 속한 사람이냐? 새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냐?}를 물으신다.

룻은 보아스가 자기에게 말한 것을 시모님께 다 아뢰었다. “그가 이 보리를 여섯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17}.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의 완전한 소유가 되기를 고대하고 원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기를 고대하고 원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의 완전한 소유가 되기를 고대하고 기다려야 한다{사43:1-4, 출14:19, 수3:15-17, 단3:25-27, 사46:1-3}.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은 지금 옛 주인에게 속한 사람인가? 새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가? 완전히 그리스도의 소유가 될 때에야 룻이 보아스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완전한 소유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방법)

4. 가만히 앉아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18절}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룻은 이제 자기가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결과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불안과 공포와 의심을 다 버리고 그 일을 하나님의 성터에다 맡기고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새벽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은밀히 교통함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시험을 받아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기다림의 결과)

5. 일이 성취되기까지 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18절}

나오미가 말하기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문제의 결과가 성취되는 날이 오는데 그 결과는 반드시 축복을 가지고 온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보아스는 인격자로서 무엇이든지 끝까지 성실하게 그 성취가 완전하도록 하는 인격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기도하여 얻은 바 약속을, 조용하게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믿음으로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기도의 응답은 수일 후에 이루어지기도 하고 수개월 후에 혹은 사후에 성취되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록 기도의 응답이 더디다고 해도 원망하지 말고 일이 성취되기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일편단심 초지일관의 정신으로 기다려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취하여 가정의 환란의 불씨가 되었다.

이렇게 끝까지 일이 성취되기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는 것이다. 신앙 생활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마24:13}.

 

제 5장

구속생활(룻 4:1-22}

4장은 보아스와 룻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결혼을 통하여 다윗과 그의 후손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 이 결혼은 신령한 면에서 그리스도와 이방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보아스가 가장 가까운 혈족으로 회의에서 확증적으로 룻을 회복시켜 결혼을 하게 된다. 룻은 오벳이라는 아이를 낳고 그가 자라서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다.

I. 구속의 회의(4:1-8}

1. 회의의 증인들{1-2}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곳으 공명 정확하고 거리낌없이 증인들 앞에 내세우기 위하여 성문에 회의를 열었고 엘리멜렉의 최근친자와 성중 장로 열명을 초청한 것이다.

1). 보아스는 성문으로 나갔다{1상}

이방여인 룻을 아내로 맞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보는 곳에 담대히 나갔다. 행 26:2에 바울은 외치기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한구석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치욕을 받으며 죽으셨다고 했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기 위하여 유일한 방법인 이 방법을 택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수치를 기꺼이 당하셨다.

보아스가 성문 위에서 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은 공명정대하고 정확하게 많은 증인들 앞에서 룻의 구속의 기업을 무르려고 한 것이다.

룻의 구속의 기업문제가 일반사람들이 모이는 성문 위에서 널리 공개된 것은 취소할 수 없게 인을 친 것이다.

2). 엘리멜렉의 근족자를 초청했다{1하}

하나님께서 보아스에게 은총을 베풀어 보아스가 그것을 제안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을 그 때를 맞추어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그 앞으로 지나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그를 불러 초청하였다.

그는 기업을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 기업무를 자는 여러가지 의무가 있는데

(1). 근족은 형제의 살인을 보수할 의무가 있었다{민35:, 신19:, 수20:}

(2). 근족은 그의 형제가 가난해서 그 가족의 명의로 된 기업을 팔았으면 형제가 판 것을 되사야 했다{레5:25-28}

(3). 근족은 그 형제를 이을 자를 양육할 책임이 있을 뿐더러 후사를 낳아줄 책임도 있었다{신25:5-10}.

3). 존경받는 장로 10인도 참석하였다{2절}

보아스는 그 회의에 성중 백성과 장로들을 초청하여 정당한 율법에 의한 차서와 공식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

4:2절에 보면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장로 십인은 필요한 증인이 되었다.

그가 성중 백성과 장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절차를 행한 것은 소위 권모술수에 능하며 교회를 위한다는 금일의 교권주의자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본다.

2. 회의의 내용(3-6}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사라는 것이었다. 근친자는 이기주의자였기 때문에 실패하고 미망인이 된 나오미의 소유지라면 헐값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겠다고 대답하였다.

1). 보아스의 질문{3상-4}

보아스는 존경받는 장로 10인과 증인들 앞에서 엘리멜렉의 근족자에게 질문을 했다.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사라 이 소유지의 관리자는 모압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인데 우선권은 네게 있다}.

무르려면 무르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면 그 외는 없다고 했다. 보아스의 질문을 받은 근족자는 처음에는 {내가 무르리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돌아온 나오미가 그 소유지를 팔 때는 헐값으로 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기주의자였다.

2). 보아스는 5절에 그에게서 밭을 사는 날에는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그 젊은 과부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근족자의 의무-율법의 의무}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이요, 또 이 나라의 관습이니 이러한 의무를 행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때 기업을 무를 근족자는 사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다. 그 이유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아스는 당신이 기업을 무르게 될 때는 이방여인인 룻과 결혼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근족이 과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과부는 그의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권한이 있었다{신25:5-10}.

이 수치를 당한 후로는 신을 벗기운 자 의무를 행하지 않은 자라는 수치스런 이름이 붙어 다니게 된다. 그러니까 이 친족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 두려워 무르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

3).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6절}

구속의 기업을 상속하려면 희생과 손해가 없이는 할 수 없다. 여기 기업을 무를 자는 근족으로서 룻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룻을 자기 아내로 맞이해야 하는 것은 의무였다. 그러므로 한번 약속은 해로운 일이라도 행해야 했다. 그러나 이익보다 손해가 된다고 하여 그는 거절하였다. 의무를 손해가 된다고 하여 거절한 것은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는 목전에 있는 적은 이익을 위하여 장래의 큰 축복을 버렸다. 에서는 눈 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장자의 기업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

6절하 {내가 무르지 못하겠노라} 구역에는 {내가 능히 속하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 룻을 속할 자는 보아스 뿐이다. 다른 사람이 속할 수 없다. 인생을 죄악에서 구속할 자는 지금 이후로 아무도 없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3. 구속자의 표기(7-8}

신을 벗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유대의 풍습으로서 그 소유권을 양도하는 의식이다. 신 25:9에 보면 {아우가 죽은 형에 대하여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그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아 모욕함으로써 그 친족의 관계됨을 주는 증거를 삼을 것이라}고 하였다.

신을 벗는 이 예식은 룻기가 기록될 때쯤에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예식 대신에 소유의 상징으로 땅에 발을 딛는 관습이 통용되기도 했다.

1). 유대의 율법과 풍습{7}

유대의 율법에 남편의 형제가 자손을 얻지 못한 채 죽으면 아우가 형수와 결혼하여 자손을 계승하게 하였다. 만일 결혼하기를 거절하면 그의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집을 {신을 벗기운 자의 집}이라고 칭하게 했다. 그가 그의 의무를 수행하면 그 형제의 신을 신고 그 의무를 무시할 때는 그 미망인에 의해 신을 벗기우므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고 할 때는 교환을 하게 된다. 그 자신이 먼저 신을 벗어서 그 미망인에 대한 권리를 교환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역시 망신을 내포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기업 무를 자도 신을 벗어서 교환을 선언했다.

2). 기업 무를 자는 그의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었다. 그가 소유해야 할 존재를 보아스에게 양보한 것이다{8절}.

사람은 자기 소유지를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신을 신고 밟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소유지에 들어갈 때는 그 소유자의 신을 신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신, 맞지 않는 신을 신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친척이 근족으로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보아스에게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었다. 그는 기업 무른 자로 나오미의 땅 위를 소유자로서 걸을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포기 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신을 벗어줄 때 보아스에게 그의 모든 권한을 양도한 것이 되었다. 이와같이 자의로 신을 벗지 않는다면 과부가 침을 뱉을 수 있었다. 이제 권리의 이전은 완성되었다.

3). 여기 신이 계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신이 고대의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었을까?

(1). 신은 거듭과 방황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애굽을 신속히 떠날 준비를 갖추고 유월절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출 12:11에 나온다. 신을 신고 음식을 먹는 것은 극도로 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는 반쯤 누워서 먹었다.

(2). 신은 소유를 상징했다.

사람은 신을 신고 땅을 밟는다. 그런데 출 3장 57절에 보면{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거룩한 땅에서는 신을 벗어야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은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이다{수5:15}.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에돔에 대한 그의 소유를 신을 던진다는 것으로 표현하셨다{시60:8, 시105:9}.

II. 구속의 증거{4:9-10}

1. 희생적 구속{9-10}

보아스는 유력한 인물이며 부자였다. 베들레헴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방여인이고 뒤떨어진 만국에 천대받는 족속의 가난한 자를 신부로 삼았다.

그것은 희생이 뒤따랐다. 그는 자기 명예와 재산을 포기하면서 룻을 속량했다. 주님은 피와 살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 죄인을 구속하셨다.

보아스는 다른 사람들이 능히 하지 못하는 일을 했으며 남이 하기를 원치 아니하는 일을 보아스는 하겠다고 증언하였다. 이것은 희생을 지불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10절에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구역에는 {룻을 취하여 나의 아내로 삼아}라고 말씀했다.

룻은 모압 여인이니 이스라엘 족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이다. 그런데 이제는 당당하게 이스라엘 족속 중 유력한 보아스가 그의 기업을 속하여 주었을 뿐 아니라 룻을 취하여 자기 아내를 삼았다는 것은 룻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요 큰 영광이다.

1). 본문에 산다{Purchases}는 말에 주의하라

나오미의 집안 재산을 사서 도로 물러 주었고 룻의 신분을 사서 신부의 자력을 얻게 한 것이다.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의 아내가 되기에 합당하도록 대가를 지불함으로 보아스아와 대등한 자리에까지 그 신분이 회복된 것이다.

2). 노예에서 해방되고 신부 자격을 취득하여 보아스와 결혼함

이는 완전한 회복이다. 하나님의 형상만 회복된 것이 아니고 더하여 주와 하나가 된 것이다.

3). 지불한 대가는 십자가의 보혈이다{고전6:19}

영원한 당신의 아내를 삼으시려고 우리 위해 귀중한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2. 확증적 구속{11절}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구속된 사실의 증인이 되었다. 장로들은 성중의 연장자들로서 재판권이 있는 이들이었다.

성문에 있던 사람들이 증인이 되겠다고 말을 하고 보아스를 축복했다. 보아스는 결혼의 모든 절차를 정당하게 그리고 질서있게 행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치루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증인이 되겠다고 했는데 증인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을 목도했을 뿐 아니라 그 목도한 것을 기꺼이 인정하는 사람을 말한다{요15:27}.

보아스가 룻의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양도받아 장로들과 백성 앞에서 증거가 된 것같이 예수께서 갈보리에서 뭇 사람이 보는 앞에서 피흘려 생명까지 대속해 주셨다.

보아스가 룻을 구속하여 아내삼은 것같이 예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사 주님의 신부로 삼으셨다. 주님과 함께 높고 험한 인생길을 힘차게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원한다.

1). 보아스는 권력있는 사람이었다.

보아스의 당시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 것임을 잘 볼 수 있다. 그의 말에 장로들이 고분고분 하였고 그가 룻과 결혼하게 되자 장로들의 특별 축사를 받았다.

2).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던 사람었다.

그는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나오미의 근친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율법을 누구보다 존중하여 주의 법대로 일을 치르는 정직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을만 했다.

3). 정정당당히 기업을 물러 주고 결혼함

한 구석에서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정당하게 절차 거쳐 무를 것은 무르고 속할 것은 속해 준 것이다.

3. 영원한 구속{11-12}

베들러헴 백성과 장로들이 룻에게 장가들려고 한 보아스에게 축복한 이 말은 자기들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여 예언케 하신 것으로 놀라운 축복을 빈 것이다.

1). 라헬과 레아같게{창29:31-35}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아내로서 12지파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번식을 원하는 축복이었다.

2). 유명 유력하게{막5:2}

여기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으니 유명해졌다.

3). 베레스의 집과 같게{민26:19-22}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로서 유다의 자부 다말의 소생이다{창38:}. 베레스는 보아스의 7대조며 다윗의 10대조이니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가 되었다. 보아스는 축복의 집이 되었다.

III. 구속의 축복{4:13-17}

1. 아들을 얻었다{13절}

룻이 아들을 낳음으로 어머니가 되고 나오미는 조모가 되었다. 아들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돌아온 자가 받는 선물이다{시127:3}.

유대인의 사상에서 여자가 시집가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죽은 목숨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였던 여인을 불쌍히 여겨 아들을 허락하셨다.

아마 룻이 잉태하기 곤란한 형편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이 잉태하게 하셨다{창30:12}. 그러므로 그것은 축복이다{대상2:37, 11:47, 20:7, 23:1}.

2. 여인들의 즐거운 찬송이 있었다{14절}

나오미가 외롭고 가난하게 고국에 돌아왔을 때 나오미를 돌아볼 자가 없었다. 모압 여인 자부 룻 외에는 나오미와 함께 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베들레헴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찾아와 복을 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룻은 이제 이삭을 주으러 밭에 나가지 아니해도 되었다. 시모님의 봉양을 위하여 그렇게 고통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여인들이 찾아와 찬송을 불렀다. 찬송을 부르는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 축복을 받았다{14-17}

1).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다{14절}

그 아이의 이름은 룻이 낳은 어린 아이를 가리킨다. 이 아이가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하기를 원했다.

2). 소망의 회복을 축복했다{15절}

나오미가 슬픔에 빠질 때 그 아이가 나오미에게 생명을 회복시킨 것이다. 유대인의 국민적 소망은 메시야이다. 룻이 낳은 아들의 후손을 인하여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하였으니 그의 소망이 회복되었다.

3). 노년에 봉양자로 축복했다{15절}

룻이 낳은 이 아이가 그 가문의 손자요 후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룻이 나오미를 참으로 사랑한 사람의 보증이 된 것이다. 나오미 자신은 아이가 없었다. 그러나 룻의 이 행위는 일곱 아들보다 더 사랑의 행위를 한 것이 었다.

4). 이름을 오벳이라고 지어 주었다(17절).

오벳이란 섬기는 자 혹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이다. 유능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할머니를 잘 봉양할 것이라고 축복하였다.

IV. 구속의 혈통{족보}(4:18-22)

다윗의 족보가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구속의 혈통이다. 베레스 이하 다윗까지 10대인데 이것은 영광스런 메시야 족보이다.

1. 베레스{마1:3}

다말이 시부 유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나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 족보의 첫머리에 올려져 있다. 죄인도 하나님 안에서는 구속의 족보 머리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는다.

2. 보아스{마1:5}

라합은 이방 기생이었으나 보아스를 낳아 그리스도 조상 할머니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영화롭게 높여 주신다.

3. 오벳{마1:5}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다윗의 증조부가 되는 오벳을 낳았다.

다말, 라합, 룻은 불륜의 여인이었고 이방인이었고 죄인이었는데 영광스럽게 그리스도의 영생의 족보에 빛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지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된 것, 다윗의 조상이 된 것,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오미가 기업을 되찾게 된 것도, 그 품에 오벳을 안게 된 것도, 다시 마라가 아니라 나오미로서 계속 살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고전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