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 3

제9장 :사회적 생활{벧전2:13-3:12}

 

1. 신자의 국가 시민생활{벧전2:13-17}

 

1)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하라{13절}

 

이것은 땅 위에 있는 정치제도에 순복하라는 말이다. {순복하다}{hupotasso}는 군사적인 용어로 {하열에 앉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상관 아래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는 말은 땅위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롬13:1-2}.

 

여기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당시의 통치자는 기독신자의 원수 폭군 바로 황제가 다스리던 때였다. 그러므로 칼빈은 󰡔이것은 무슨 정부이든 막론하고 순복하라는 의미와 근사하다}고 했다. 계속 말하기를 {비록 부패한 정권이라도 무정부보다는 좋다}고 하였다.

 

2)누구에게 순복할 것인간가? {위정자들에게 }{14절}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복하되, 먼저 최고 통치자인 왕에게 순복하라고 했다.

 

또한 왕이 대신하여 파송한 지방 장관들에게도 순복하라고 했다.

 

지방의 관리들도 하나님의 사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 권위가 성립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인격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고 국가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세운 직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치가 혹시 서툰점이 있더라도 그 직위와 치리자로서의 그 자신은 존경을 받음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3)어떻게 순복할 것인가 ?

 

진정한 의미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인이다 {요8:36, 갈5:13}. 그들은 사탄의 지배로부터 자유하며 율법의 정죄와 하나님의 정죄,임무의 무거운 짐 그리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하다.

 

그러나 신자가 죄에서 해방된 것은 의에 속하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러므로 땅위의 모든 옳은 법규와 제도를 선히 지키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의의 빛을 발휘해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권자들이 그리스도의 뜻에 거스리는 일을 신자들에게 명령할 땐 그 명령을 단연 거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매우 심할 것은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자유인으로서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2]각 사람의 지위를 귀중시하고 순복한다{17}

 

신자는 모든 사람을 자기 보다 낫게 여겨 대접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하나님이 내신 제도와 관계를 귀히 보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공경해야 할 것이다.

 

공경한다{timao}는 말은 {가치를 인정한다}는 어원에서 부터 {영예를 가지다, 존경하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여기서 이 단어는 명령문으로 강조점을 주고 있다.

 

4)순복할 목적이 무엇인가? {15절}{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다}고 했다.

 

이 말은 신자들이 모든 정치 제도에 순복하는 선행을 불신자들이 보고 진리를 모르고 비방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에 계셨을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셨고, 또 오해를 받지 않으시려고 세금을 바친 것은 인간이 세운 모던 제도에 순복한 본이 라하겠다.

 

2. 신자의 직장 생활{벧전2:18-25}

 

1)고용인으로서의 생활{18-21}

 

[1]사환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순복함으로 그들을 혹시나 기분 상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그들의 주인에게 처세해야 한다.

 

[2]선하고 관용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복하라.

 

(1)선하다{agathos}라는 말은 {친절하다, 너그럽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특히 여기서는 행실이 올바르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2)관용하다{epieikes}는 말은 공평하고 온유하다는 뜻이다.

 

(3)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스코리오스{Skolios}라는 원어는 {꾸부러진, 비꿀어진}이라는 뜻이고, 완고하고 약하고 불공평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로 발전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타입의 주인들에게 순복하게 될 때 우리들의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3]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일이다.

 

(1)애매히 {adikos}라는 말은 {불공평하게, 부당하게,아무런 과오없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 받는다는 뜻은 용납한다는 뜻인데, 근본적인뜻은 {-에 의하여 반감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수난을 더 참아야 한다.

 

(2)매를 맞고{Kolaphidzo}는 원래 {주먹으로 얻어맞다. 손으로 때려 눕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의미는 꼭 주먹으로 치는 것만의 뜻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난폭한 대우를 받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마26:67}.

 

(3)참으면, 문자적 의미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떠났는데도 아직 뒤에 머물고 남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견디다, 인내하다}는 뜻이 있다.

 

[4]그렇게 할 이유

 

(1)모든 억울함은 장차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청산되기 때문에 참으라는 것이다.

 

(2)그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선한 행실의 본을 보여 회개케 하려는 까닭이다.

 

(3)오직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다.

 

2)예수 그리스도의 모본{22-25}.

 

[1]주님은 무죄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애매히 고난을 당하셨다{19-22}.

 

그리스도는 불법적으로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셨다는데, 그는 전혀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22절}

 

[2]인내하셨다{23절, 요9:28, 행23:4, 고전4:12, 마5:38-48}.

 

그는 욕을 당하셨으나 욕으로 갚지 않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고 의롭고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게 다 맡기셨다.

 

[3]죄악과 저주와 사망 속에서 구원하시려고 친히 채찍을 맞으셨다{24절}.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상함을 받음으로 우리의 영적인 상처가 나음을 받게 되는 것이다.

 

[4]십자가에 참혹하게 못박히셨다{24절}.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시킴으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셨다. 이는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고 함이다.

 

[5]목자되시는 주님께 돌아오게 하셨다{25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내자요, 보호자요, 파수꾼이요, 공급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의 손에 내어 맡길 때만이 이러한 돌봄을 받게 된다.

 

3. 신자의 가정 생활{벧전3:1-7}

 

1)아내들의 본분{1-6절}

 

[1]순복하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1절}.

 

이와 같이란 말은

(1)곧 권세자에게 순복하듯이 {벧전2:13-17},

 

(2)또 하인이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복하듯이 {벧전2:18-25}.

 

(3)아내된 자들은 자기 남편에게 손복하라는 것이다.

 

{칼빈}{오직 거룩한 생활만이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편의 마음이 덜 종교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테이어}{베드로는 아내들이 비록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로 말미암아그들의 남편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2]정결한 아내가 되어야 한다{2절}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남편을 경외하고 남편을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다. 경외하다는 (포베타이 φοβεται}]는

 

(1)관심을 기울이다.

 

(2)명예롭게 하다.

 

(3)먼저 대접하다.

 

(4)두려움을 갖고 존경하다.

 

(5)찬양는다.

 

(6)사랑하고 흠모하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남편을 경외할 줄 모르는 여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결한 {hagnos}이란 말은 {순결한, 자비한, 점잖은, 소박한, 수줍어하는}등 여러가지의미로 쓰인다.

 

[3]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가 단장하는 것이 옳음을 교훈하되 외모로 하지 말고 중심에 온유 안정된 심령으로 할 것을 교훈하는 말씀이다{3-5,딤전2:9-10,잠25:24}.

 

이 말씀은 여자의 적당한 의복단장을 금하라는 말이 아니고 다만 지나친 사치를 금하라는 것이요, 적당한 화장과 옷단장은 전도상 필요하다.

 

{머리를 꾸미고 }꾸민다{emplokes}:{금을 차고}{chrusios}{아름다운 옷을 입은} {himation}것으로 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사치를 금하는 말이다.

 

단장하되 마음에 숨은 사람으로 온유하고 안정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였다.

 

{마음에 숨은 사람}이란 속사람, 중생한 사람을 말하며 {온유하고}라는 말은 질투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관대하고 온화함을 뜻하는 것으로서 곧 탄력성 내구성이 있는 유화의 덕성이다. {안정한}이란 요란하고 원하지 않는 평온의 미덕으로서 가정 평화에 좋은 덕성이다.

 

[4]남편을 가정의 주인으로 섬겨야 행복한 가정이 된다 {6절, 갈3:7}

 

주{Kurios}라는 말은 존경과 경의를 표시할 때 쓰는 말이다.

 

테이어{Thayer}는 말하기를 {그에게 속해 있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하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주 곧 주인을 칭하는 말이다 }

 

실제로 사라는 그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주, {Lord}라고 불렀다{창18:21}.

 

복종했다는 뜻은 조마조마하게 무서워 한다거나 늘 쩔쩔맨다거나 꿈짝 못하고 벌벌떠는 등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하므로 복종했다는 말이다.

 

2)남편들의 본분{7절}

 

[1]지식을 따라 동거하라{엡5:25-33, 창2:24}

 

지직{gnosis}이라는 말은 지성, 이해 등를 의미한다. 아내의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채워주어야 한다.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는 말은

 

박윤선 박사는:남자가 마땅히 그 아내의 천연적인 신체구조와 기질과 인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동거하라}는 말이라고 함

 

김재준 박사는 :아내의 몸이나 마음에 대하여 무지하게 굴지 말고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연약한 것을 알아 동정있는 지식을 따라서 옳게 대접하는 것}이라고 함.

 

구로사끼 고오끼치:{여성의 천성 아내의 특질 부부생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고 또 아내를 취급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이라고 했다.

 

{동거하라}그러나 {분방하거나 별거하지 말라}{고전7:5}. 사탄이 분방할 때 시험하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위해 합의상 잠깐 떨어져 있고 그 후에는 합하라.

 

[2]아내를 귀히 여기라{7절}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릴 자인 것으로 지식을 가지고 동거하라는 것이다. 구원의 동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직권 등은 아니지만 인권 동등이란 의미에서 남녀는 동등인 것이다.

 

즉 아내에게 합당한 존경을 베풀고 그의 권위를 유지시켜 주며 그의 인권을 보호해 주고 그의 행실을 기뻐하며 그에게 충분한 생계비를 지급하며 아내를 신뢰하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남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인을 자기만큼이나 사랑하고 그 생명을 축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3]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라{7절} 그 이유는 ?

 

(1)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보호할 이유}

 

(2)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서로 사랑할 이유}.

 

(3)사랑하는 방법.

 

{1}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2}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같이.

 

{3}흠과 점이 없도록 도와주라.

 

{4}자기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보호하라.

 

{5}양육하고 보호하고 귀하게 여기며.

 

{6}안심하게 해주어야 한다.

 

3)부부간에 지켜야 할 예의를 서로 지키라

 

(1)친가의 결점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피는 물보다 더 진하기 때문이다}.

 

(2)과거의 잘못을 들추어 내어 말하지 말라{부부싸움 할 때 특히}

 

(3)상대의 약점을 정면으로 꼬집어 내지 말라{신체적, 교육적, 인격적}

 

(4)부부간의 일을 공개하지 말라.

 

(5)서로 고마움을 잊지 말라.

 

(6)서로 사랑하며 힘써야 한다.

 

(7)상대를 믿되 더욱 관심과 사랑을 쏟으라.

 

4. 형제에 대한 생활{벧전 3:8-9}.

 

1)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

 

마음을 같이 하여{homophron}라는 말은 {의도나 목적에 있어 마음이 같이 동의하는 }이라는 뜻이다.

 

테이어는 이것를 {서로 조와를 이루는 마음의 태도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엡4:3}{요17:21, 마18:20}.

 

2)체휼해야 된다.

 

체휼하며 {Sumpathes}는 {어려움{Paseho}을 함께 하다{sum-}라는 뜻이다.

 

즉 다른 사람과 같이 고난과 감정을 나눈다는 뜻인데, 현대어로 {동정하다}라는 말이겠다{히4:15, 롬12:15}.

 

마치 두개의 포크가 서로 겹쳐 식탁 위에 놓여 있을 때 하나를 집으면 다른 하나 가 흔들리게 되듯이 형제들의 마음의 줄이 울리면 우리도 함께 울려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3)형제를 사랑해야 한다{8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형제를 사랑하며}이 말은 헬라어로는 한 단어{Philadelphos}이다. 즉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듯 사람들을 형제와 같이 사랑하라는 뜻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으니 어느 편이든 한편 가지고는 사랑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요13:34-35}.

 

4)남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8절}

 

불쌍히 여긴다{eusplagchno}말은 속마음으로 좋아하고 친절하고 자애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긴다,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 된 것이다.

 

죄인을 불쌍히 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시다. 죄에 빠진 인류를 불쌍히 보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죽음에 까지 내어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김이 없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에게 죄지은 자를 불쌍히 봐주어야 하는 것이다{참고:카네기 부인 저, 남편을 성공케 하는 방법}

 

5)겸손해야 된다 {8절}

 

겸손하며 {tapeinophron}라는 말은 {바닥에서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인데 마음을 항상 낮게 갖는다는 말이겠다. 즉 자기 자신을 겸허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빌2:3}.

 

오늘날 세속적인 작가들은 이 낱말{tapeinophron}을 겁많고 무기력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이해다. 기독교인의 생활에서는 겸손을 그들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할 때 최선의 덕으로 생각하고 있다.

 

6)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9절}{마5:38-42, 롬12:7, 살전5:15}

 

[1]문자적으로 는 {악을 대항해서 악으로}라는 뜻이다. 즉 사람이 자기에게 악한 일을 행하였을찌라도 그만한 악으로 다시 보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2]갚지 말고 :{apodidomi}의 일반적의 뜻은 {되돌려주다,회서하다,갚다,보복하다}는 등 여러가지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3]도리어 복을 빌라:이 말은 {eulogeo}{좋은{eu}접두사와 {말하라{logos}}는 동사의 복합어이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하라}라는 뜻인데 신약성경는 {축복하라, 칭송과 영광을 돌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대로 돌려 갚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축복해 줘야 한다.

 

7)결과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함{시34:12-16}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마련하신 복의 기업을 상속받는다는 것이다.

 

{칼빈}:{요컨대 베드로는 우리가 묵묵히 손해보는 것을 견디어 나간다면 그 인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축복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손해를 참고 견딘 것에 대한 축복은 잠깐 동안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고 말한다.}

 

6. 악행자들에 대한 생활{의무}{벧전3:10-12}

 

사회에서 의롭게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10절 상반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이란 뜻은 {삶의 염려를 하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하는 자는}이란 말이다.

 

1)혀를 금하여 악한 말과 궤휼을 말하지 말자

 

여기 {혀를 금하여}란 말을 삼가야 된다는 뜻이다 {약3:7-8}. 그러므로 시14:3에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다{잠17:28}.

 

그리고 악한 말을 그치며 :악한 {kakos}이란 말은 저주하고 비방하는 뜻으로 여기에 사용되고 있다.

 

또 그 입술으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궤휼{dolos}은 속이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진실해야 된다는 것이다.

 

2)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고 했다{11절}

 

11절의 말씀은 회개한 성도의 적극적인 행동 방향을 지시하는 말이다.

 

선과 악은 상반되고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려면 당연히 악을 떠나야 되는 것이다.

 

시5:4,살전5:22에 악은 그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갈6:9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다.

 

3)가는 곳마다 살펴서 화목을 구하라{11절}

 

11절 하반에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했다. 여기 {구하여}란 말은 열심히 찾으라는 것이고 {좇으라}는 것은 강하게 추구한다는 말이다. 적극적으로 화평을 구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불행한 자는 두말할 것 없이 불평을 품고 있는 자인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꽃이 없는 나무엔 열매가 없고 화목이 없는 사람에겐 복이 없다}고 했다

{마5:9}.

 

주님은 우리에게 화목을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화 평을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구하고 {Zefeo}찾아야 한다. 곧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성인 것이다.

 

4)주의 얼굴 앞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절}

 

말에 진실하고 악에서 떠나 선행하고 화 평을 누리고 살려면 주의 얼굴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얼굴엔{사랑}과 {진노}의 양면이 있다. 또한 악인에 관해서는 진노의 얼굴로 대한다는 말씀이다.

 

이런 얼굴을 가지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