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격성 (聖靈의 人格性)
우리는 이제 다음에 성령의 인격성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기로 하자.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서 먼저 알지 못하고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도 오해하기가 쉽고, 또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주시는바 큰 은혜에 대해서도 잘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 그릇된 광신적이고 불건전한 열성과 거짓 불에 대한 열망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 그 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본체)를 알아보고자 하기 전에 성령의 역사( 열매 )부터 알고자 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독자 여러분 중의 대부분은 이런 문제는 너무 어려운 추상적인 문제요 비실용적인 것이라고 흥미없이 생각 할른지 모른다. 만일에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여러분을 섭섭히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음을 나는 지금까지 너무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말씀을 흥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늘 새로워 지는데 그것은 바로 위대한 성경 교사였던 브룩스 박사(James H·Brooks)의 설교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이 배운바 있었고 들어 왔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때에 나는 큰 흥미를 가지고 그 설교를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설교를 듣고난 그때까지도 나는 이렇게 혼자 반문했다. 『브룩스 박사는 성령이 인격적이라는 자기의 견해를 잘 증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은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파송하는 하나의 거룩한 감화 감동의 힘만으로 본다고 잘못된 점이 무엇이며 성령을 인격적으로 본다는 것과 무슨 큰 차이가 있단 말인가? 』라고.
그러나 이렇게 의심하는 나도 후일에 와서는 성령을 하나의『거룩한 능력』으로 보는 것과 『인격』으로 보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에 따라서 또 내 자신의 체험과 다른 분들의 체험에 비추어 보아서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이 교리는 하나의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가장 필요한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교훈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령을 인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건실하고도 원숙(圓熟)한 신앙 체험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로만 알고 성령으로는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개념(槪念)을 가질 수도 없고 또 완전한 신앙 체험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럼,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교리는 왜 중요한 것인가를 이제 몇 가지로 말하고자 한다.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
1.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교리를 깨닫는 것은 먼저 예배를 옳게 드리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만일에 우리가 성령은 거룩한 인격이심을 알지 못한 채 많은 사람이 범하는 과오 그대로 한 개의 힘이거나 감화(感化) 정도로 본다면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성령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며 또한 마땅히 사랑하여야 할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성령을 사랑치 못하게 될 것임과 동시에 마땅히 믿어야하고 의지해야 하고 순종해야 할 그 분을 순종치 못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제 『여러분은 성령께 예배를 드립니까?』고 묻는 다면 아마도 예의 없이 여러분은 말하기를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이 천지간 만물들아 복 주시는 주 여호와 전능 성부 성자 성신 찬송 하고 찬송 하세』라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찬양하지 않느냐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는것과 그 뜻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 찬양의 힘을 느낀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성령의 위격(位格)을 인정한다는 것과 실제로 그 원리 밑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다.
2. 성령의 인격성을 아는 것은 실제적인 신앙 생활 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흔히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만일에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성령을 어떤 감화와 능력으로만 이해한다면 여러분의 계속적인 관심은『어떻게 하면 나는 성령을 더 많이 소유해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을까?』에 머물고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순수한 성경적인 입장에서 성령을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인격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관심은 곧 『내가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붙잡아 쓰실만한 도구가 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야망과 욕망에 따라 내가 하나님을 부린다는 것과 내가 그 분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과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부린다는 이 생각이야말로 저 아프리카의 미개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이용하여 인생의 행복을 도모하려는 토속의 미신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즉 성령께서 나를 붙잡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 진리야말로 고상한 기독교의 거룩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성령은 우리가 소유하여 이용할 수 있는 능력과 감화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성령을 소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가 순 성격적인 견지에서 성령을『인격』으로 이해한다면『성령이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많이 사용하실 수 있을까?』라고 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어떤 감화와 힘이라고만 생각 한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자부심(自負心)과 교만과 자랑으로 나타나게 된다.
만일에 여러분이 성령은 우리가 소유하여 이용할 수 있는 어떤 감화로만 생각하고 또 나아가서는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나는 성도로서 가장 높은 소위 최고급(最高級)에 속한 자인 듯이 행세를 부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교회안에서 그 같은 사실을 보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님은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지금껏 집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가 끝날 무렵,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이제 선생님께 한 말씀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묻기 전에 나 자신이 "성령의 사랑"이란 것을 먼저 선생님께서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그녀는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이 태도를 보았을 때 나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고 온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만일에 여러분이 성경이 가르친 그대로 성령은 거룩하시고 엄위하신『인격』이심을 깨닫고 또 그가 오셔서 우리의 심령에 거하시사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를 버리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하여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몇 가지 증명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증거를 말한다면,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성령에 대하여 뚜렷한 인격성을 다음 같이 말하고 있다. 즉 그 인격성이란 먼저 그는 지.정.의 (知.情.意)의 소유자란 점이다.
알고 느끼고 뜻하는 존재는 곧 인격적이시다.
때때로 성령은 한 인격자이시라고 여러분이 말하신다면 흔히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성령은 우리와 같이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四肢)를 가진 것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육체(肉體)를 구성하는 것 뿐이요, 우리의 인격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격성을 이루는 요소는 곧 지.정.의(知.情.意)이다. 육체를 가졌거나 안 가졌거나를 물을 것 없이 생각하고, 알고, 느끼고,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存在)라면 그를 인격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만일에 우리의 이 땅위의 생활이 주님의 재림 전에 끝이 난다면 우리는 얼마 동안 육체를 벗어버리게 될 것이다. 즉 고린도 후서 5장 8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육체를 떠난 그 때라도 우리는 여전히 인격적인 존재인 것이다. 다시 거듭 말하거니와 인격적이란 것은 생각하고, 느끼고, 뜻하는 지.정.의(知.情.意)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이러한 인격성에 대해서 성경은 명확히 말하고 있다.
첫째로 고전 11장 11절에 보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성령은 이렇게 모든 것을 아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10절 참조)
다른 말로 말한다면 성령은 단순히 우리의 마음을 밝혀서 성령의 빛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진리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빛만이 아니다.
성령은 몸소 하나님의 것을 알고 또 그가 아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인격이시다.
둘째로,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느니라』고 했다.
이 성경이 말하는 근본 뜻은 성령은 우리가 소유해서 우리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거룩한 힘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를 자기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거룩한 인격이시라는 점을 밝히는 말씀이다.
이 진리야말로 성령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진리 중의 하나다. 만일에 우리가 성령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영교를 계속코자 할진대 우리는 마음 속에 이 진리를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진실 된 많은 신자들의 잘못은 진실로 이 근본 문제에 있어 방황하고 있는데서 온다. 많은 신자들은 자기의 뜻대로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어떤 거룩한 힘을 얻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중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는 나는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룩한 능력을 조금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이 그 거룩한 힘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만일에 사용한다면 무서운 악을 저지를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뜻대로 즉 나의 어리석고 무지한 뜻을 따라 마음대로 성령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지 못함을 감사하는 동시에 오히려 성령께서 자기의 무한히 지혜로우신 뜻대로 나를 붙들어 사용하실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심을 기뻐한다.
셋째로 로마서 8장 27절을 보면『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 하심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이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성령의 생각』이라는 말씀이다.
이『생각』이라는 헬라 원어는 "프로네마(Phronema)인데 이 말은 지.정.의(知.情.意)의 세 방면을 다 포함한 말이다.
이 "프로네마"라는 단어는 바로 8장 7절에도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다 같은 단어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8장 7절)』라고 한 이 말은 우리의 육신의 생각만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혹은 지적 생활까지라도 그것이 육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그 것은 여지없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이다.
넷째로 우리는 로마15장 30절에서『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고 하신 말씀을 본다.
이 구절에서 여러분이 특별히 주의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점은 바로『성령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표현이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바는 성령은 맹목적인 단순한 감화와 힘으로서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그는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인격이라는 점이다.
우리 중에 이『성령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목사들 중에서도 이『성령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한 경험을 가진 이가 과연 몇 분이나 될는지 나는 의심을 금할 수 없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성령의 사랑』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본 일이 있는가? 과연 여러분은 성령께 그의 사랑을 감사해 본 일이 있는가?
여러분은 매일 성부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여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즉 자기의 독생자를 죄악 세상에 보내어 갈보리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그 사랑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안다.
그와 동시에 또한 여러분은 성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우러러 그의 크신 사랑 즉 이 세상에 오시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사랑에 매일 무릎을 꿇고 감사할 줄 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여태까지 성령을 우러러 무릎을 꿇고 그의 크신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여 본 일이 과연 있는가?
우리의 구원은 진실로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과 똑 같이 또한 성령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나의 멸망상태를 보시고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서 내 대신으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멸망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만일에 또 예수께서 아버지를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시어서 그의 생명을 버리사 나를 위하여 속량하신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속을 이루신 성자 예수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여전히 멸망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또 성령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즉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을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시어서 멸망의 상태에 빠져 있는 나를 찾아 건지시고 또 매일 매 시간 끊임없이 나를 붙드시고 또 내가 그를 듣지 않고 배반했을 때도 내 뒤를 쫓으시며 내가 그를 탄식 시켰을 때도 나를 버리시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붙드사 마침내 나로 하여금 내 자신의 멸망상태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동시에 주 예수를 나의 구주로 받게 하기까지 진실로 오래도록 참으시고 견디시는 피곤을 모르시는 성령의 그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멸망의 자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