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함이란?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하여 그 기술을 자신의 몸에 습득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탁구를 처음 치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하여 탁구를 잘 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차력을 하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하여 남들이 놀라는 신기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나의 생각과 삶과 나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점령하고 원하시는데로 인도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술취하는 것과 비교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다시말해서 술취한 모습과 성령의 충만한 모습이 같다는 말입니다. 다만 술 취하면 추한 모습이 나타나고 성령 충만하면 거룩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기름이나 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이 성령을 기름이나 물로 표현하여 그 것을 그릇에 담듯이 담는 것으로 말함으로 성도들에게 혼란을 가져오는데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때로 우리를 뜨겁게 하시고,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물과 기름은 아닙니다.
이는 아마 죤 번연이 쓴 천로역전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죤 번연은 성령의 충만한 삶, 즉 성령의 인도하심의 삶을 계속하여 기름을 제공하여 불이 껴지지 않게 하심에 비유하여 설명했는데, 이를 그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존 번연이 글을 쓴 보람이 어떤 사람들의 무지로 인하여 허무하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우리 주변에 하나님보다 우대한 종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안수하면 성령을 받게 되고, 자신이 안수하면 방언이 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방언은 성령께서 당신의 복음을 위하여 당신께서 필요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기도하였기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인도하심 속에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자기 마음대로 주관하고 역사하도록 지배하는 대단한 가짜 능력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충만에 대한 좋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제게 직장을 다니는 딸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4살 때에 하루는 저의 손을 잡고 동네 가게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딸이 과자를 사 주기를 원하여서 가는 줄 알고 그 아이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뜻 밖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는 가게를 10M 정도 남겨 놓고 제 손을 놓더니 가게 앞에서 놀고 있는 7살 먹은 남자 아이 뒤로 가서는 발로 그 아이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딸을 때리려고 "에이씨!"하면서 주먹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딸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도 아빠 있다" 였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 아이는 나를 보더니 주먹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 딸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제 딸이 하는 말이 그 오빠가 자기를 늘 놀리고 발로 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있는 참에 그 아이를 혼내 준 것입니다. 그 남자아이는 제 딸을 때리려고 일어섰다가 "나도 아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저를 보고는 제 딸을 때리지를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힘없이 맞았던 딸이 갑자기 남자아이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바로 자신 옆에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에게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저의 딸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자아이를 혼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모습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가 어둠의 영을 담대하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며, 사단을 향하여 묶음을 풀고 나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초능력자로 만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성령님이 우리에게서 떠나가시면 우리는 힘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내게서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일어난 것도 성령이 떠나간 것입니다.(창6:1-3)
그러나 두번째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처음 받은 것이 성령의 회복입니다(마3:13-17). 그는 사람으로 아담이 잃었던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돌려 받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요단강에서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시는지 알겠습니까?
그것이 "임마누엘"의 역사입니다. 떠났던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역사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술취한 자에게 여러가지 악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듯이 성령의 충만한 사람에게 9가지 삶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한 말씀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 즉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떠난 자리에 사단이 들어와서 악한 존재가 되게 하였던 사람들을 거룩한 성령이 다시 오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로 변화 시켜 가시는 작업이 "성화"인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적 표현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단의 어두운 세력 아래 있던 우리를 다시 부르사 하나님의 세력 아래 온전히 두시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하시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바로 알고 승리하면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거짓된 성령의 충만함에 속아 잘못된 삶과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