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되려면

제자가 되려면

(누가복음 14장 25절~35절)

요사이 교회에서는 신학교에 들어가려는 신학생 지원자들이 부지기수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그런데 ‘왜 신학교에 가려 하는가?’ 라는 진지한 질문과 성찰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교회가 커지고 화려해지며 승용차를 사주는 등 교회 목회자가 되면 삶에 대해 안전한 것 같아서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직자는 교회를 돌봐야 할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진 교회를 세우며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닮기 위해서 신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겠는가?

오늘의 크리스챤 인구는 1,000만명이 되었다. 목회자 수가 많아진 것처럼 교인들의 수 또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교인들이 주님을 따르는 것 또한 주님을 닮기 위함이 아니라면 교회는 교회 구실을 못하게 된다. 오늘 날 성도들이 주님을 따르므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교인들의 관심사가 다른데 있는 것 같다. 성도들이 주님을 따르는 자 속에 있지만 사실상 들여다보면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뒤섞여 가는 이들도 있고 교양인, 문화인이라는 말을 들으려 교회에 다니는 이들도 있고 교회의 독특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좋아 교회에 기웃거리는 이들도 있고 먹고 사는 수단으로 교회에 나오는 이들도 있고 외롭고 고독하니 친교 속에 들어오려고 교회에 다니는 이들도 있다.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이들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쉬운 길, 재미있는 길이 아닐 때도 예수를 따를 것인가? 교회를 들여다보면 교인들은 많은데 신자는 적다. 또 신자들 중에도 제자를 찾기가 어렵다.

제자란 따르는 자다. 제자란 섬기는 자다. 제자란 배우는 자다. 제자란 닮아가는 자다. 바로 이러한 제자가 보이지 않기에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단체가 되어 간다. 모임은 있는데 복음의 광채를 발하지 못한다. 다른 말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인 것이다. 제자의 삶을 살려는 각오와 결단이 없이 대충 웃고 기뻐하고 교인들 틈에 섞여 그리스도인인 척 하기에 맛을 낼 수 없는 소금이 된 것이다. 맛이 없는 소금은 버려진다. 길가에 버려져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광이 밟히지 않고 교회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려면 예수의 참 제자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 즉 이 일을 위해 제자가 되려는 결단과 선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는 제자가 되려면 그 선택을 몇 가지가 된다.

1. 사람의 정에 얽히는 것을 뛰어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눅14:26)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하였다.

여기 제자가 되려면 “미워하라”고 한다. 그것도 부모, 처자,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고 한다. 심지어 자기 목숨마저도 미워하라고 한다. 도대체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주님의 정신인데 미워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정이란 것이 주님 따르는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더욱이 혈육을 나눈 가족의 정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더 질기고 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라고 하면서 부모의 정, 가족의 정, 아내의 정에 얽히다 보면 주님을 따르기 어렵다. 이 세상 부귀 영화 등 모든 것을 뛰어넘어 주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따르고 싶은데 아내가 만류한다. 형제가 만류한다. 나를 기르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아내가, 나를 믿어주는 형님이 정을 담아 호소한다. 그러면 마음은 흔들리고 붙잡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놓아버리게 만든다. 정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도 보류하게 만들고 섬김과 희생의 삶을 보류하게 만든다. 마16:21~24에서 예수님은 정으로 다가오는 유혹을 이기셨다. 십자가의 길을 만류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셨다. 그러므로 제자가 되려면 가족들의 정에 얽매인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에 인질이 되어 아무 것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는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 ‘너를 행복하게, 나를 행복하게’하는 사역은 순교자를 낼 수 없다. 정을 넘어 거룩한 생을 살지 못하게 한다. 이제 크리스챤이라면 뛰어넘으라. 정에 매이는 것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사람의 일로 말하는 자, 그 자가 가족이든, 형제 친척이든, 자기 자신이든 주님을 어기게 한다면 그를 미워하고 나가야 한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 순경은 주 목사를 출옥시킨다. 따뜻한 집에 돌아가 사랑스런 아내의 돌봄을 받게 되면 마음이 약해져서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주 목사를 사모님이 미워한다. 주님을 따르는 목사가 자기 육신의 평안함을 바라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주의 종답게 불사각오 정신으로 신앙에 승리하라고 남편 주 목사를 감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렇게 누구든지 주를 따르므로 주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정에 얽매이는 것을 뛰어넘는 선택이 요구된다. 목숨마저도 제자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미워하는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내 생명의 안전을 구걸하기 위해 예수를 외면한다면 그 목숨을 미워하라. 주님을 쫓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인간적인 정을 단연코 미워하라.

2. 수치와 저주, 아픔의 고통을 뛰어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눅14:27)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제자가 되려면 주를 쫓아야 한다. 주를 쫓을 때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남의 십자가가 아니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자기 십자가다. 십자가 없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 없이는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주님이 못 박히신 자리다. 십자가는 이 땅에서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사형 방법이다. 십자가에는 수치와 조롱, 저주와 아픔의 모든 고통이 담겨 있다. 내가 나의 십자가,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이 모든 아픔을 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질 때 만이다.

사람들은 수치와 저주를 싫어한다. 아픔의 고통이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의 길은 십자가 없이 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따를 때 억울하고 분하게 당해야 하는 고통의 크기를 피하지 아니하고 아픔을 뛰어넘어 인생의 고통보다 더 소중한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것이 제자다. 어떠한 고통으로 가로막아도 피하지 않는다. 그 아픔을 짊어지고서라도 한다. 어떠한 괴로움의 아픔도 주님을 쫓아가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제자의 영광이 훨씬 더 큰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제자는 수치와 저주를 뛰어넘어 예수를 놓지 않는 자다. 어디서든지 예수를 선택하는 자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통을 뛰어넘는 선택을 하지 못하면 제자가 아니다. 정말 ‘No pain, No glory. No Cross, No Crown’을 외치며 십자가의 짐을 받아들여야 제자인 것이다.

3.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뛰어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눅14:33)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람은 무엇인가 더 가지려는 재미로 세상을 산다. 돈도, 땅도, 집도 가지는 기쁨으로 일을 한다. 사람에겐 남보다 더 가진 것을 자랑하고 가진 것으로 인해 자기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그 소유욕을 버려야 한다. 제자가 되려면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소유에 집착하고 관심을 두는 순간 그것은 탐심이 되고 우상 숭배가 된다. 권세를 더 갖고 싶고 명예를 더 갖고 싶으며 인기와 물질을 더 갖고 싶어서 매달리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고 붙잡으려 가는 자가 무슨 예수의 제자인가? 다 버려야 한다.

더러운 것을 버리고 재물과 토지, 집을 버리고 세상 욕심을 버리고 나의 소유를 버린다는 것은 예수가 더 행복의 조건이요 예수가 더 붙잡아야 할 분이라는 선택이다. 주님이 더 귀하고 주님이 더 가치가 있고 주님이 더 기쁨이 된다는 말이다. 주님이 더 소중하기에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가 지금 돈을 버는 일에 손해가 생겼어도 ‘I'm OK’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4:17~20을 보라. 예수님을 따르게 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2의 길을 간다. 그때 그들은 버렸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아갔고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간다. 제자가 되기 위해 버리는 선택을 단호하게 하였다. 머뭇거리거나 주춤하지 않았다.

원종수 권사, 그는 미국 암 전문의 박사로 연봉을 더 많이 받는 곳으로 초빙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새벽 기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재물을 내려놓았다.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주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갖는가?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로막는 인간의 정을 미워하고 거절하는가?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로막는 자기 고통의 몫을 수용하고 짊어지는가?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로막는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가?

이제 내가 예수의 제자인가 아닌가는 당신 자신이 안다. 정 때문에 미워할 것을 미워하지 못하고 고통 때문에 짊어질 것을 짊어지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나는 신자라도 세상과 벗하며 세상을 따르는 세속인이다. 정말 예수가 좋아서 예수께로 온 당신은 제자인가 아닌가? 30년, 50년 제자를 기르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머물며 맴맴 돌았을 뿐 제자로서의 선택을 유보한 체 산 것은 아닌가?

제자가 되려면 분명해야 한다. 제자의 길은 대충 대충으로 걷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제자가 되어가기는 깊은 헤아림과 계산을 통해 철저히 수지 계산을 하고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확실한 선택을 하는 일이다. 망대를 세우는 것처럼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결단하고 제자가 되자. 제자의 길을 걸으라. 제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제자의 영광에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