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기적

감사의 기적(살전 5:18)

「그 아홉의 변명」이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인 나병이 나았음에도 그 아홉명은 왜 감사하지 않고 그냥 가 버렸을까? 그리고 저들이 변명을 한다면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누군가 쓴 글입니다.

첫째 사람은 항상 의심자였기 때문에 그냥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고 전문가인 의사에게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 본 후에 믿겠다고 해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은 신중론자입니다. 나병이 낫긴 나았지만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당분간 좀 두고보겠다는 것이죠. 셋째 사람은 회의론자입니다. 나병을 낫고 보니 나병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또 쉽게 낫는 병이 아닌데 나았으므로 다시 생각합니다. 혹시 나의 그 병이 원래 정말 나병이었나? 혹시 나병이 아닌 피부병 정도는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에 이르러서 그냥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람은 자연치유론자입니다. 감기도 때가 되면 낫는 법이고, 나병도 때가 돼서 나은 것이지 무슨 능력으로 나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사람은 물질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병이 낫자마자 병 발생하기 이전의 밭과 재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사람은 의처증환자입니다. 나병 걸리기 전의 사랑하는 아내, 아름다운 아내가 아직까지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수절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급히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사람은 불신론자입니다. 자신의 나병이 낫는데에 예수님께서 한 일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수도 안했고 안찰도 안했으며 한 것이라고는 그저 말만 했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사람은 범신론자이거나 다신론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나병 나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또 이런 것은 타종교나 랍비들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홉째 사람은 외모론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병이 낫긴 나았지만 낫고 보니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추해서, 이 모습 이대로 갈 수 없어 빨리 가서 목욕하고 새 옷 갈아입고 와서 인사하겠다고 해서 그냥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아홉 사람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저들이 그냥 가 버린 이유가 다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저들이 감사하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음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것이 항상 문제를 푸는 열쇠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들을 보면, 가난 때문에 감사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만일 믿음만 있다면, 가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며,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고, 슬픔 가운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고 즉시 돌아와 감사한 한 명의 나병환자에게 있는 것을 예수님은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메튜 헨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도둑 맞고서 이런 일기를 썼다고 알려집니다. 도둑을 맞고 보니 지금까지 한번도 도둑맞지 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기에 감사합니다. 도둑들이 가방은 가져갔지만 내 생명은 가져가지 않았기에 감사합니다. 도둑들이 여러 가지 가져갔지만 다행히 그것이 많지 않아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도둑을 맞았기에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감사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범사에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면 삶의 지평이 넓어지게 됨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실 생황의 예를 들어보면, 요즘 머리카락이 빠져서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머리카락이 많은 사람은 머리숱이 많아서 감사하고, 따뜻해서 감사하고, 머리카락으로 모양을 낼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는 감사할 것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비누, 샴푸, 물 등을 절감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래서 경제적이므로 감사하고, 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몇 개 빠졌는가 신경 쓰여서 힘든데 완전히 다 빠져 셀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다 빠져 대머리가 되고 나면 머리카락이 몇 개빠지고 있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게 되어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갔던 청교도들은 이렇게 감사했다고 알려집니다. 180톤 밖에 안되는 작은 배이지만 그 배라도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항해 중에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에 감사합니다.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기에 감사합니다.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죽지 않고 모두 구출되었음에 감사합니다.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지점을 못얻어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를 얻어 착륙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고통스러운 3개월반의 항해 중 한 사람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신앙에는 3단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3단계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1단계 - 받는 단계 / 하나님의 사랑, 구원, 축복.. 구하고 받는 단계(범사에 받는 단계)

2단계 - 감사 단계 / 받은 사랑, 받은 축복.. - 하나님께 감사하는 단계(범사에 감사 단계)

3단계 - 영광 단계 / 앞으로 어떻게 살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며(범사에 영광 단계)

항상 만취되어 귀가하는 남편을 둔 한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결혼 후 남편이 만취 상태로 퇴근하는 것을 10년이 넘도록 힘들어하던 한 여집사님이 어느 날 범사에 감사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는 힘들어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도 남편은 만취 상태로 귀가합니다. 힘들지만 다른 날과는 달리 남편을 자리에 잘 눕혀 놓고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일단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은 해 놓았으나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는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하다 보니 감사할 것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만취하나 병들지 않아 감사합니다. 날마다 만취하나 사고나지 않아 감사합니다. 날마다 만취하나 죽지 않아 내가 과부 되지 않아 감사합니다. 날마다 만취되어도 남의 집으로 안가고 내 집 잘 찾아 들어오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술만 취하지 딴 여자와 바람나지 않아 감사합니다. 날마다 만취해도 출근은 잘하고 월급도 꼬박꼬박 잘 갖다주니 감사합니다. 내가 주일마다 교회 갈 때 하루종일 잠만 자주니 감사합니다." 남편이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떠보니 아내가 웃으면서 중얼거리며 있기에 조금 들어보니 다 자기에 대한 기도이면서도 감사기도 드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내가 너무했구나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깨자마자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그렇게 속썩였는데도 감사기도 합니까? 내가 졌소이다! 이제 나도 당신 따라 교회에 나가리다." 그때 아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종합적으로 감사합니다!"

한 비누 회사 사장님의 감사 이야기입니다. 회사 이름은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 공장 위치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공장 사장 이름은 할레이 프록터. 그는 훌륭한 신앙인이었고 정말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직원의 실수로 기계를 잘못 작동하여 엉뚱한 비누를 생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사장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일단 범사에 감사 기도를 드리고 대책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직원은 이미 사표를 내고 퇴사했고, 사장은 그 사건을 분석하다가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제품은 정말 다 버려야 하는가? 비누는 비누인데 비누가 가볍군! 그런데 만일 물에 뜨는 비누를 만들면? 비누란 꼭 물에 가라 앉아야만 한다는 법이 있는가? 만일 떠도 좋다면?" 이렇게 생각하다가 만든 것이 아이보리 비누였고 그 결과 대박 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축복입니다. 절망을 이겨내고 기적을 가져오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