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5:1~5
<장로에 대하여>
지난 6월 26일 주일에 우리 교회에 장로 두분, 권사 세분, 집사 여덟 분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주일설교 본문이 자연스럽게 베드로전서 5장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데, 4장 끝부분의 주제인 고난에 대한 설교를 한 번 더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5장으로 들어섰습니다. 5장은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하면서, 시작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한 주 늦었지만, 우리 온고을 교회의 직분자들이 오늘 설교를 통하여 명실상부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장로라는 말은 히브리어 ‘자켄’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자켄’은 수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
니 장로라면, 수염을 기른, 나이가 지긋하고 덕망이 높은 분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
엘 열두지파의 지도자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주로 목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이후 장로
를 행정장로, 목회 장로로 구분하는 직제를 장로교회에서 도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목사
는 목회 장로이고, 엊그제 직분을 받으신 두 분 장로님은 행정 장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편의상 구분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로 호칭합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오늘 저는 우리 교회 창립 3주년을 맞이해서 장로, 권사, 집사 직분을 받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목
사인 저를 포함하여 ‘장로’의 범주에 넣고, 설교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교회를 이끌어나가는 동력입니다. 교회를 이끌어나가
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은 어떻게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대단히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장로의 정체성>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장로의 정체성입니다.
장로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1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1절을 유심히 보면, 장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입니다. “함께 장로 된 자요”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장로가 되었습니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실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장로가 되었습니다.
장로직분을 교회가 인정했습니다. 교회가 인정했다는 말씀은 주님이 허락하시고, 인정해 주셨다
는 말씀입니다.
장로님들의 살아온 과거가, 교회 안, 교회 밖에서 ‘주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장로 된 자”입니
다.
누구와 함께 장로가 되었습니까? “사도 베드로와 함께”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수석제자요, 신약 성경 베드로 전서와 후서를 쓴 베드로와 함께 장로가 되었습니다.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대단한 자리입니다.
둘째는 현재입니다. 현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1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이것이 장로들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 말씀 속에 장로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드러납니
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장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예수님의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보다 더한 고난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고난을 왜 받아야 했습니까?
흔히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법에 걸리지 않으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세상 법으로 보면 여러분이나 저나 다 의인입니다. 만약 의인이 아니라면 감옥에 들어가 있겠지
요? 지금 햇볕 아래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다 의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으로 심판을 받더라도 의인입니까?
한국 사람들 개념 속에는 ‘천벌’이 있습니다. ‘천벌을 받을 놈!’ 무슨 뜻입니까?
‘네가 세상 법으로는 심판을 받지 않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벌을 받을 것이다.’ 그 벌이 ‘천벌’입
니다. 세상 법으로는 의인으로 당당하게 살았지만, 천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어떻게 할 것
이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법을 적용할 때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지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 깨끗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합니
까?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 길을 가려면, 먼저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았
으면, 소리 내어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서 가라” 그
러면 의인이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로 죄 값을 대신 치르면 의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거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값을 치르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의인이 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만약에 십자가가 없다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로 고민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시인 윤동주는 나무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와했다.
양심에 털 난 사람들은, 얼굴 가죽 두꺼운 사람들은, 수천만 원, 수억 원을 꿀꺽하고도 ‘으시딱딱’
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시인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들은, 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만
보아도 부끄러워집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할렐루야~
“장로(목사, 권사, 집사)님, 예수님 당한 고난의 증인이십니다”
이것이 장로의 현재 모습이어야 합니다. “고난의 증인이 됩시다.”
그렇다면, 장로의 미래 모습은 무엇입니까? ···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나타날 영광” 무엇입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날,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확정판결
을 받고, 그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는 영광입니다.
1절 말씀 안에 이렇게 깊고 풍성한 은혜가 들어있습니다. 같이 한 번 더 읽겠습니다.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장로의 사명>
1절 말씀에서 장로의 정체성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장로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왜 세웁니까? 어떤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까?
2절과 3절에서 언급합니다.
(2~3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
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매우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적절하게 섞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3가지입니다. 또 하라는 것도 3가지입니다.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1.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
3.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목사, 장로의 기본 사명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것입니다. 목양하는 일입니다.
지난 26일에 집사로 안수 받으신 분들은, ‘아이고 나도 아직 잘 모르는데’ 하실 겁니다.
그래서 보다 전문적인 목사, 장로가 교회에는 있어야 합니다.
장로, 권사로 직분을 받으신 분들은 최소한, 자기만의 문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내 신앙에만 매달려 있으면 안 됩니다. 같이 예배하는 다른 성도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신앙이 성숙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박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에는 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 영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는 사
람이 장로, 목사입니다.
목사에게, 장로에게, 맡겨진 양 무리, 누구의 양 무리입니까? ··· 하나님의 양 무리입니다. 간혹 이
것을 착각하는 목사, 장로가 있습니다.
또 이 일은 어떻게 감당하라고요? ··· 자원함으로 하라.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당시, “나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겠습니다. 나는 장로가 되겠습
니다.” 하는 것은 지금과 달리 각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 장로들은 대부분 순교했습니
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발각되었다 하면, 사자 밥이
됩니다. 로마 시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원형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어야 했습니
다.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을때, 만주에서, 상해에서, 하얼삔에서는 독립군을 모았습니다.
피 끓는 젊은이들이 독립군에 지원하면, 세 가지를 질문했다고 합니다. 첫째, 총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둘째,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셋째는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베드로 당시 장로가 된다는 것은, “사자의 밥이 될 각오가 되어 있느냐?” 이것이 필수 조건이었습
니다. 순교할 각오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러 신학대학에 가면, 역시 몇 가지 각오를 다짐합니다. 순
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설교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사 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최근에는 여기
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굶어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아닙니다.
‘먹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같이 밥 먹자고 하는 성도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
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사를 먹사라고도 합니다. 저도 성도님들이 밥 먹자고 하면 아무
리 바빠도 응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야 “양 무리의 본이 된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합니까?
1. 억지로 하지 말라
2.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라
3. 맡은 양 무리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
하나님이 맡겨 주시는 양 무리를 다스리는데,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히, 목사들은 ‘소명’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영어로
‘콜링’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 콜링이라고 합니다. 소명 없이는 목사가 되지 못합니다. 장로도 그렇습니
다. 하나님의 콜링을 받은 신앙인이 장로로 세워집니다.
소명을 받고, 목사로, 장로로 나서더라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말아라.
세 번째로 자기 교회 성도들, 양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장하는 자세’가 어떤 자세입니까?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주인인 것
처럼 해서는 안 됩니까? 내것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양 무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양무리입니다. 교회 교인들은 목사의 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인,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그 양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 받아서 목양하는
직책이 장로, 목사입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면? 어떻게 된다요?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리고 교회 안의 젊은 성도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
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