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첫주 설교 모음

할렐루야!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시겠다는 그 약속 그대로 오셨습니다.

첫성탄을 맞이하기전에

마리아와 요셉의 심령을, 그들의 수고와 전적인 헌신에 감사 할 뿐입니다.

그동안 메시야의 오심을 생명을 다하여 전하였던 예언자들

그들과 함께 이번 대림절은 감격과 감사로 점철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제목: 수태고지

마태복음 1:26-38

마리아는 우리 모든 기독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적 계시요, 형식 계시입니다. 이 마리아는 하나님께로 부터 지음 받은 피조물이지만 일반 피조물들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영혼의 작용도 있고, 이성의 작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성은 육체와 불가 분리입니다. 마리아는 영혼과 인격을 가진 존재인고로 꿈이 있습니다. 꿈은 이성의 잠재력입니다. 그러나 꿈처럼 모든 것이 실현이 되지는 않습니다.

꿈은 뭐냐? 소원이요, 욕망입니다. 마리아가 만일 나무나 짐승이라면 이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꿈도 일반적 지식 여하에 따라서 자기의 꿈이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현재 높고 낮음에 따라서 꿈이 달라질 수가 있다 그 말이지요. 요셉과 정혼한 처녀라면 그는 어떤 꿈을 가졌겠느냐? 천사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마리아도 한 인간인고로 한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천국의 축소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단어 속에 하나님의 많은 의사가 들어 있습니다. 만일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가진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마리아 처녀가 ‘나는 꿈이 없소이다’ 하는 말을 못할 겁니다.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로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이런 처녀로서 어떤 꿈이 있을까요? 내가 결혼해 가지고 아들을 몇을 낳고, 딸을 몇을 낳고, 잘 먹고 잘 살고, 양지 바른 곳에다가 아담하게 양옥 집 짓고, 마당에는 정원수와 꽃을 심고, 그런 꿈이 있을까요? 만일 마리아 아닌 다른 처녀가 요셉을 채어 가는 처녀가 있다면 그 처녀는 그런 꿈을 꿀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요셉은 목수니까 아담한 곳에 집을 지을 수 있다 그 말이요.

우리 인간들은 그런 보편적인 꿈을 많이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이야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어요. 이제 그런 것처럼 마리아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면 마리아의 일반적인, 보편적인 그 꿈에다 안수 축복을 해 주면 되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일반적인, 보편적인 꿈, 그것 다 내버려야 합니다. 아무 짝도 못씁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가 가진 꿈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자도 되고, 마귀 노릇하는 그런 사자도 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이지요. 우리 인간 속에는 미혹이 다분히 들어 있어요. ‘마리아 너에게 이미 있는 그 꿈을 실현시켜 준 다더냐? 아니면 바꾸라고 하더냐?’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 나오는 성도들을 향해서 ‘네가 가진 꿈이 무엇이냐? 하나님께 부르짓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도 안 믿으며 우상을 섬기는 저 사람들 중에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해서 소원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누가 들어준 거요? 마귀 말은 아주 달콤해요. ‘네 꿈이 세상에서 100% 실현될 수 있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마귀 말은 그래요. 하나님이 실현 안 시켜 준다 그게 아니고 ‘너의 기존적인 그런 꿈을 하나님께서 실현시켜 준다’는 겁니다. 이게 마귀란 말이요. 오늘 날 타락되고 속화(俗化)된 기독교가 각자 속에 기존적으로 이미 있는 꿈을 실현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을 하고, 애원을 하고, 소원을 하고 있어요.

교파를 초월해서 기독교 대 집회를 열 때에 그런 일반 보편적인, 불신 세계에서도 가지고 있는 그 꿈,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그 꿈을 실현시켜 달라고 그러지요? 이런 것을 얼마든지 공공연하게 들을 수가 있어요. 참 그게 큰 일이야! 이게 기독교 속화(俗化)야! 교역자들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바로 가르치는데 교인들이 그런다면야 그거는 고쳐질 가능성도 있지만 교역자가 그렇게 될 때에는 볼장 다 본 거요. 교회가, 교역자가 그렇게 돌아갈 때에는, 지도자가 그렇게 돌아갈 때에는 그건 볼장 다 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지금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모르는 건 아니에요.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다’ 하고 말을 하지요? 이렇게 되면 마리아도 인간인지라 걱정일 수밖에 없지요. 제일 먼저 걱정인 것은 마리아 자기 자신에게 대한 걱정이라기 보다도 요셉에게 대한, 요셉을 염두에 두고 걱정을 안할 수가 없는 거지요.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 - ‘네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는다.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아!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 천사가 얘기 해준 대로 아기가 잉태되는 시간을 안다면야 요셉에게 몸을 맡기겠는데 언제 잉태되는지도 모르니 요셉을 만나기 전에 잉태되면은 꿈이 다 깨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수십 년간 가졌던 그 꿈, 이십 여년 동안 가졌던 그 꿈, 산산 조각이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네가 잉태한다’ 하는 천사의 말을 이미 귀로는 들었지만 천사의 그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잉태가 되어진 거냐? 그건 아니고 영접을 해야 만이 잉태가 되는 거지요. 영접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 말을 영접하면 마리아 자기의 꿈은 다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 깨지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문제가 된단 말이요. 처녀가 아기를 배었으면 ‘누구의 자식이냐? 성(性)이 무엇이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제의 말들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꿈은 깨지고,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문제가 올 것입니다. 아예 약혼 이전인 원점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문제는 간단하겠지만 문제는 후유증이 굉장히 큽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요셉에게 알려지면 파혼되고, 부모에게 쫓겨나고, 돌에 맞아 죽고, 어디를 간들 아이 밴 마리아를 누가 환영을 하겠느냐?

돼지 새끼 낳으면 사람들은 환영을 하지요? 주인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하지만 처녀가 아기를 낳으면 버림을 받지요. 요셉이 가만 있겠습니까? 분명히 7인의 공회의 재판에 회부해 가지고 재판 결과에 따라서 돌에 맞아 죽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이 되니 자기 앞에는 죽음밖에 없는 겁니다. 딴 도리가 없어요. 말씀이 잉태되면 그 기존 꿈을 가지느냐, 아니면 말씀을 받느냐? 성도들도 가만 보면 한 주일, 두 주일 까먹는 것도 그게 기존 꿈이 있어서 까먹는 거에요. 그 꿈을 실현시키려고. 오늘 날 교회가 현재적 성도 마리아에게 기존 지식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고 하니까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그런 장면이 보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잉태하는 자가 썩 드뭅니다. 오늘 날 처녀들(교인들), 교회의 교훈이 자기 기존적 마음에, 즉 자기 꿈에 안 맞으면 교회에 안 나간단 말이요. 그러니 말씀에 대한 잉태성이 없는 거지요.

세상에는 네 가지 불신이 있다고 그러지요? 노인의 건강을 아마 믿지 못하는 모양이지요? 사실 그래요. 또 부자의 재물, 순식간에 날아갈 수도 있지요. 또 과부, 성경에도 보면 젊은 과부에 대해 나오지요? 참 조심해야 되겠어요.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처녀의 신앙. 노인의 건강, 부자의 재물, 과부의 정조라고 그럴까? 그 다음에는 처녀의 신앙. 그럼에도 마리아는 참 귀중한 인물이지요? 계시 목적에서 보면야 하나님의 주권 섭리이지만 인간 편에서 보면 마리아 같은 신앙을 가진 자가 참으로 드뭅니다. 세상 꿈을 가진 자들은 다 로마로 올라가지요.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아기 낳는다는 소식을 전해 주고, 전해받은 대로 아기 낳고, 이런게 뭐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마태 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마리아의 그 신앙이 족보를 타고 올라가요. 왜 그러냐? 옳은 신앙을 더듬어 찾느라고! 그래서 그 족보가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마리아의 그 신앙 사상이 족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해요. 그래야 만이 생명 잉태가 받아지는 거고, 받는 겁니다. 그래야 만이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성스러운 그런 참 신앙의 조상들의 그 신앙 노선을 따라서 올라간단 말이요. 오르락 내리락해요. 참 놀라운 신앙이요. 그럴 때에 참 메시야가 잉태되는 거지요. 또 메시야가 잉태되는 사람은 그런 신앙을 갖고 있어요. 참 귀하지요.

마리아가 바보가 아니지요? 평가력이 있고 가치 판단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 속의 기존적인 꿈이냐? 기존적인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그러는 거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냐?’ 마리아가 시집간 여자 같으면 그건 별 문제겠지요. 그런데 처녀이기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기존적인 그 꿈을 실현시킬 것이냐?’ 우리가 생각을 해 볼 수있는 일들이지요? 천사의 말을 영접하면 인간 보기에는 고생 길이지요. 그리고 사실 마리아에게 잉태되는 그 잉태의 방편도 마리아는 모릅니다. 요셉을 통해서 시킬지, 아니면 천사가 유형성을 가지고 와서 시킬지. 마리아 자기는 지금 잉태가 되었는지, 아닌지 하는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달수가 지나가니 무형성의 메시야가 유형성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성장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 마리아는 자기 태중에 메시야가 자라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나 5~6개월을 지나서 잉태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메시야인 줄은 모르지요? 알리가 없지요. 그래서 가만히 끊고자 한 그 사실이 나오지요? 그러나 마리아 자신은 남자를 전혀 가까이한 일도 없고, 누구와 동침한 사실도 전혀 없습니다. 어떤 고약스런 남자가 무슨 약을 먹이고 자기 모르게 접촉이 되었더라면 모르지만 그런 사실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마리아는 잉태된 아기가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더욱 더 확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묻는다 할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하면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참 그게 믿어지겠어요? 생리학 박사가 그걸 믿어 주겠습니까? 의학 박사가 믿어 주겠습니까? 세상 어떤 사람이 믿어 주겠어요? 마리아에게 대한 그 사실을! 그런데 마리아는 ‘너희들이 믿어 주던 안 믿어 주던 난 처녀다! 부모가 안 믿어 주어도 좋고, 제사장이 안 믿어 주어도 좋고, 요셉이 안 믿어 주어도 좋고, 온 세상이 안 믿어 주어도 좋다.’ 하지만 천사가 전해 준 그 사실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내 속에 메시야가 있으니까 나를 죽이는 자는 메시야를 죽이는 자다. 어느 누가 메시야를 죽이겠느냐? 어느 누가 마리아 나를 해할 수 있단 말인가?’ 마리아는 메시야가 주는 위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매장 돼도 좋다. 요셉에게 보복을 받아도 좋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든든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런 중에 하나님의 특별 활동으로 꿈을 통해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메시야란 걸 요셉에게 알게 했지요? 요셉이 그걸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지금까지는 마리아 혼자였는데 이제는 두 사람이 된 겁니다. 요셉이 그 사실을 알기 전에는 마리아 처녀를 굉장히 괘씸하게 생각했는데, 아주 대적같이 생각을 했는데, 그런데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의 특별 활동의 꿈으로 요셉에게 알려주니 대적 같았던 마리아가 호응자가 된 겁니다.

마리아를 70인의 공회에 넘겨주어 돌에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요셉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므로써 마리아에게 메시야가 잉태됐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이요.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의학적, 과학적 증명이 안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요셉이 믿어 주니, 알아주니 그 감격이 굉장하겠지요? 그런데 이 마리아는 요셉에게 대한 감격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감격성이 굉장히 큽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이제는 여기서 오해받고 고생할 것이 아니라 나의 집에 가서 살자’ 하고 요셉이라는 보호자가 생겼단 말이요. 이렇게 되면 유대 법도 마리아에게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꿈이 깨어질 줄 알았지만 꿈이 성립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오해를 벗기 위해 무슨 방법을 쓰지 않았어도 꿈이 성립된 것입니다. 요셉이 변호하고, 요셉이 변명하고, 요셉이 보호하고, 그런 자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마리아의 울타리가 됐단 말이요. 마리아에게 메시야가 잉태된 것을 알고 마리아는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엔조이 부부가 아니고 성모(聖母)로서 존경성으로 나간단 말이요.

천사가 전해 준 이 말씀을 잉태하고 복종해서 자체화시키고, 인격화시키고, 무형의 메시야를 유형적으로 성장시켜 놓고, 생활로, 실천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이제는 출산이니 그 후에는 양육입니다. 양육하려면 영양을 풍부하게 섭취를 해야 되겠지요? 젖이 뭐냐? 식물을 섭취해서 지상 최고의 영양가를 주는 것이 젖입니다. 이것이 메시야를 기르는 것입니다. 진액을 쏟아서, 정력을 쏟아서, 에너지를 쏟아서 메시야를 길러 내는 거지요. 참 신령한 젖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성전으로 올라가니까 시므온이 알게 되고, 점점점 그 소문이 불어나니까 마리아에게 점점 불행일까요? 또 자기가 가진 꿈에 대해서 불행일까요? 또 세례 요한이 알고, 열 두 제자들이 생기고,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주님을 믿고 있느냐? 참! 그...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단 말이요. 그런데 오늘 날 쥐어주고, 보여주고 해도 모른다 그 말이요. 마리아의 영광은 가면 갈 수록 크고, 높아지고, 온 세계가 다 알게 되는 거지요. 심지어 절의 중들도 마리아를 알고 있습니다. 명동 거리에 맥주 홀이나 나이트 클럽이나 보면은 ‘예수 탄생! 메리 크리스마스!’ 지옥 갈 자들도 다 알고 있고, 지옥 직행 열차를 탄 사람도 마리아를 선전하고 지나갑니다.

기독교 협의회에서는 어느 교파에다가 돈을 주어가지고 마리아가 낳은 메시야를 돈을 주면서 선전케 합니다. 참 이거! 막대한 돈을 들여서. 불신 세계에서 먼저 전도하고 들어갑니다. 처녀인지 총각인지 택시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한 마디씩 내 뱉고 지나가지요. 거리거리마다, 라디오 소리사마다 징글벨 소리이고, TV가, 온 세계가 다 마리아가 낳은 예수를 또 선전하고 하지만은, 그렇게도 선전은 잘하는데 기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씀을 잉태치 못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단 말이요.

그 먼 나라에서 메시야 소식을 어떻게 듣고 왔는지, 동방 박사도 오고, 양 치는 목자들도 오고, 천군 천사들이 오고, 이렇게 메시야를 선전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우리 성도들의 계약물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계약입니다. 문제는 말씀 잉태가 문제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그렇게 성립이 된다는 것. 그것이 아니면 신앙이 성립이 안됩니다. 신앙 성립을 우리가 거기서도 볼 수가 있어요, 알겠지요?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인간을 만드실 때에 영육 결합체로, 그리고 이성을 가진 자로 지으셔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유리하게 판단을 가질 수 있고, 평가력도 가질 수 있는 우리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향하신, 저희들을 위한 분명한 뜻이 계셔서 저희들을 지으시고, 불러 주시고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역사 속에서 오신 주님! 역사 속에서 사건 적으로 일어난 그 주님의 역사, 아버지 하나님!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인 줄 압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제 저희들 어찌하든지 신앙인으로 바로 잡아주시고, 어떤 환난, 사건, 역사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영원한 궁극적인, 아주 거대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꿈을 가진 자들로 이 세상에서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 날 불신 세상은 각자마다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꿈들입니다. 그 꿈이 제 아무리 오래 간댔자 자기 살아 생전에 백년 안쪽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제 저희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궁극적인 이 꿈, 절대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 꿈의 지시대로 따라서 사는 복된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 아 멘 -

예수의 수태고지

성 경: 눅1:26-30

세례요한의 수태고지가 있은 후 여섯 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 왔습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의 이름은 하나님의 능력을 뜻합니다.

그 천사가 보내어진 곳이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인데

그곳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않은 무명의 장소였으며,

어떠한 예언자도 나타난 적이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곳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어 오신 것입니다.

천사가 찾아간 사람은 약혼한 여자였습니다.

그때 그 여자는 은총으로 충만했으나 천사의 전언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왜 그같은 갈릴리의 무명 처녀를 하나님은 택하시어 그 처럼 큰

은총을 허락 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읽어도 알 수 있는데,

그녀의 겸손과 충성과 순종 그리고 조용함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바 마리아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한다>는 자세를 가진 여인입니다.

아마도 세계의 어떤 창조물도 마리아와 같은 영광 즉 , 주님의

어머니로 선택된 영광을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여인들 가운데서 복받은 여인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미리암(Miriam)의 라틴어 번역

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름인데, 동시에 고귀한 이름입니다.

모세의 누이 동생이 미리암인데 그같은 이름을 히브리 여인들이

가진다는 것은 그 이름의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리아에게 아름다운 이름 <예수>가 고지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주시고, 해명하시고,그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좋은 이름이며, 구세주의 사역에 가장 적당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그의 사역을 말하는데, 영원한 그리스도의 개인적

인 이름이며, 여러가지 사실로 볼 때 가장 정당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지표입니다.

그 이름 밖에는 싸움과 불행이 가득 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 안에는 모든 종류의 행복과 평강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의 교회생활에,세상에, 고난의 시기에, 죽음의

때에 적용되는 이름입니다.

세계가 소멸하는 순간에 그 이름의 중재에 의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완전한 신앙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의 이름에 대한 소망과 믿음만이 확실한 피난처요,

흔들리지 않는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에게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 이름에 의지하여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 세상의 빛 예수

성경 : 요 1:1-14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

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1:9-10).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우주의 상

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러한 원래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매 빛이 생겼고

그 빛이 창세기 1장2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질서있는

창조의 새 아침에 시작된 것입니다.

첫째로, 빛으로 시작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첫번째 말씀은 [빛이 있으라]였습니다. 이 빛이 생

겼을 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원상태는 물러가고 아름답고 보기에 좋

은 질서의 세계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빛으로부털 시작되

었습니다. 모든 만물의 모태는 바로 빛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빛이 없이는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 줄 압니다. 그 빛 안

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의 빛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셨습

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표현하였는데, 여기에

서 우리는 하나니미리 창조의 기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조 그것은

좋은 것이요 또한 기쁨입니다. 생명의 탄생, 그것은 무엇보다도 큰 희

열과 벅찬 감격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의 아침을 기

뻐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후에 엿새동안 그 빛 안에서 만물이 차례대로 창조되었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막 지은 바 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창

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 그것은 가장 고귀한 인격적 존재

요 자유의 존재이며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 최고의 걸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빛 가운데 거하면서 영원한 생명

을 가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에덴 동산의 행복을 향유하며 하나님과

의 대화의 관계를 가지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원상태였습니다. 빛 가운데 생명을 누리는 존재 하나

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둘째로,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입니다.

사단은 에덴 동산의 행복한 마음껏 누리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그대

로 놓아두지를 않았습니다. 사단은 그들을 그럴듯한 구실로 유혹했습

니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시험한 것입니

다.그런데 인간은 불행하게도 이 자유를 남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바르게 누려야 할 자유를 사단의 속

임수에 넘어가 그만 잘못 사용하고만 것입니다.

빛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고 생명이 충만하고 기쁨으로 가득 찼던 에덴

동산에 다시 창조이전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엄습해 왔습니다.

빛을 잃었습니다. 빛의 상실은 다시금 어둠을 불러들인격이 되고 말

았습니다. 어둠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안에는 기쁨도 없습니다. 이

어둠은 생명이 변하여 죽음이 되는 인간 최대의 불행을 초래했던 것입

니다.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에서 단절되

어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물론 사단의 종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

의 종이 된 것입니다. 죄와 사망은 어둠으로 요약됩니다. 어둠의 결국

은 죄와 사망으로 곧 지옥으로 이어집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죄를 지으면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사람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어둠의 결국은 지옥행입니다. 지옥은 유황불 연못으로

표현되며 영원히 울부짖는 고통의 장소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인류역사 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전지 전능하신 분

입니다(롬8:28)인간의 불행과 비극을 그대로 보고만 계실 수가 없었습

니다. 빛을 잃고 헤매이는 모습을 그냥 놓아 두실 수 없었던 것입니

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을 가장 사랑하셨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 크시고 또 어떠한 악조

건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의 세력을 추방하는 최

선의 방법으로 빛을 사용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주의 원상

태인 혼돈,공허,흑암을 [빛이 있으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몰아내신 것

처럼 참 빛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사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즉 빛으로 흑암의 세력을 꺾으시는 시적 방법을 쓰

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참 빛으로 오셨다고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8장은 12절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

리라]고 밝히고 천명하셨듯이 예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참 빛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

하였고 영접도 아니했다고 요한복음1장 10-11절은 기록하고 있습니

다.그것은 그만큼 어두움의 권세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어두움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흑암의

세력은 빛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어두움은 언제나 빛 앞에서 속수

무책인 법입니다. 동쪽에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는 칠흙같은 어둠

의 밤이 맥없이 물러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이

망할 것 같아도 빛되신 예수님이 계시는 동안에는 그 빛 때문에 새

소망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2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 고 했습니다. 빛은 결국 그를 영접하는

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빛을 맞아 영접하는 자에기는 지나간 날의 어

둠의 세력을 몰아내주시고 영원한 세력을 몰아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

비이며 기쁜 소식이며 또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전6

하는 복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더럽고 어두운 과거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과거를 청산해 주시고

깨끗하게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그의 영광 가운데 거룩한 주의 백성

으로 살게 해주십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1:4) 라고 했듯이 빛

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고 빛이 없는 곳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살기

를 원하십니까?빛으로 오십시오. 활기차고 생명이 넘치는 삶을 원하

십니까? 참 빛이신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삶에 활

기가 돋고 생명이 넘치는 새로운 삶이 전개될 것입니다.

빛은 열이 있습니다. 아무리 춥고 얼음으로 빙산으리 이룬 것이라고

할지라도 빛이 임하기만 하면 추위는 물러가고 얼음은 녹습니다. 아무

리 사람의 마음이 냉정하고 사랑이 식었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사랑이

임하는 곳에는 따뜻한 훈풍이 불어서 거기에 과이 피고 잎이 돋는 7

생의 봄이옵니다. 열은 추위를 몰아내고 얼음을 녹이고 따뜻한 생명

의 바람을 불게 할 뿐더러 뜨거운 열은 기계를 돌리고 바위산을 깨뜨

리는 힘으로 변합니다. 능력을 잃었습니까? 짜증과 무기력으로 할 수

없이 삶을 이어간다면 참 빛 예수를 의지하십시오. 새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빛은 광명입니다. 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합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

을 보게 해줍니다. 또 역사의 미래를 밝혀 줍니다. 빛이 있는 곳에 밝

은 사회 깨끗한 인간 아름다운 가정의 환한 꽃이 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를 비판하고 인생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바라봅니

다. 옳은 말일 수도 있스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

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환한 미래, 하나님의 나라의 노래를 볼 뿐 입

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

희에게 비춰 주시는 (계22:5)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밤이 없는 곳, 등불과 햇빛이 필요없는 곳 그러한 천국을 바라보며 오

늘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살아갑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는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가 있습니다. 왜 예

수님을 참 빛이라 부르는가 하면 역사상 종종 인류에게 빛을 던져 준

위인들이 있어서 그들이 빛인 줄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얼마 전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자 세례요한

이 있었습니다. 저가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와서 뒤에 오실 참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은 요한이 자기들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빛인

줄 착각을 한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요1:8)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만이 모든 불의와 불법과 죄악의 어

두운 세력을 몰아내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생명과 승리의 주님으로 우

리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빛 되신 주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메시야가 오시는 날

미 5:1-15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이니라”(5:2)

1.메시야 탄생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5:2중)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오실 것을 예언하시고 그 나라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은 회복되어 복의 기관이 될 것입니다(7-9).

앗수르 사람이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궁궐을 밟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서 그들을 칼로 쳐서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할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게 되면 모든 대적 자들을 물리치고 그들 가운데서 구원할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가 오므로 인해서 그들에게 회복을 주십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어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은 것입니다.

이슬은 복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또한 풀위에 내리는 단비 같을 것입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에 있어서 수풀의 짐승 중 사자 같을 것입니다.

사자는 파괴의 상징입니다.

파멸과 심판의 상징입니다.

2. 두가지 사역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5:4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마지막에 두가지 사역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가정이나 사회나 어디에서나 두 가지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복의 기관이 사역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받아 들이기만 하면 예수믿는 성도들을 통해서 복을 받습니다.

또 한가지 사역은 심판자의 사역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어부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게 됩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를 심판하는 심판자의 사역도 감당해야 합니다.

복의 기관은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합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곤고한 사람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의 말을 들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의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웃에 복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자가 있는가 살펴야 합니다.

또한 불의한 자들을 말씀으로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3.버려야 할 것

1).인간적 수단을 포기

“그날에 이르러는 내가 너의 말을 너의 중에서 멸절하여 너의 병거를 훼파하며”(5:10)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고 헌신 자가 되고 순결한 생활을 유지하는 그날이 되는데 그날에는 외국 동맹군을 신뢰하는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인간적으로 의지하던 것을 버려야 됩니다.

빨리 버릴수록 하나님께서 속히 성결케 하시고 온전케 하시고 헌신을 받으십니다.

인간적인 것을 가득히 채워놓고 무엇을 구해 봐야 하나님이 허락을 안하십니다.

대개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땅짚고 헤엄치려고 할 때입니다.

자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 낭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교만하니까 준비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가 실패합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준비 안하면 망신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준비한 것칸큼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2).거짓 신

“내가 또 복술을 너의 손에서 끊으리니”(5:12상)

그날에는 또한 복술과 거짓 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이름만 하나님의 백성이지 실제로 그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대고 사람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논해 주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젖먹는 애기가 엄마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한다고 엄마를 뿌리칠 때의 그 엄마의 심정과 같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하고 연민과 긍휼의 정은 더할 나위 없이 뜨겁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우리는 교만하게 되고 교만할 때 우리는 실패하게 됩니다.

실패의 원인을 잘 살펴봅시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더 의지할 때 실패가 오는 법입니다.

이전보다 배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김시다.

제 목:메시야가 오는 날

:::::::::::::::

: 미가서 강해 :

: 5:2-9 :

:::::::::::::::

1.본문개요

메시야의 출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2.설교개요

제 목:메시야가 오는 날

중심내용:인류의 구원을 위해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다.

서론

1.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실 때 동방의 박사들은 먼 곳에서 별을 따라 유대

땅을 방문했다.그러나 정작 유대 땅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

다.

2.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따라 이스라엘에 이르렀을 때,그들은 더이상 별을 보지

않았다.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했던 별과 이별하고 나름대로의

길을 떠났다.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장소를 찾지못했다.도리어 예루살렘을 발

칵 뒤집는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3.본문에는 수 백년후에 되어질 일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I.메시야는 작은 곳으로 오신다(2).

A.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1.그곳은 유대땅의 고을 중에서도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하였다.

2.그곳은 옛 부터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역사의 고을이다.국경지역이

었다.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3.물량화된 세대는 언제나 큰 것을 좋아한다.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대도시가 아닌 가장 작을 시골동리에 오신다.

1)큰 것 좋아하는 현대인의 유혹이 이 땅의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다.

2)큰 것만이 마치 성공의 척도인 것처럼 가치관이 지극히 혼돈돼 있다.

B.작은 것은 아름답다.

1.큰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하나님은 큰 자만을 쓰시는 것은 아니다.다윗은 어

린 소년 때 부름을 받았다.요셉도 소년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하나님은

작은 것,약한 것을 들어 써 크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신다.

2.성경은 오히려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 자들이 손해본 경우를 증거한다.

예)소돔성을 향해 간 롯

3.문제는 크냐 작으냐가 아니다.생명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가가 중요하다.반

드시 작아야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4.하나님은 외모와 상관없이 중심을 중요시 한다는 말씀이다.

II.메시야는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3-4).

A.그는 곧 하나님이시다.

1.여호와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세상에 보여질 것이다.

2.그의 모든 능력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3.택한자들이 모여들어 메시야를 통해 생명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4.그의 능력은 온 우주에 미칠 것이다.

B.메시야는 유일한 소망이다.

1.소망은 오직 메시야 뿐이다.만일 우리가 다른 것에서 위안이나 소망을 찾으

려 한다면 결국 실망뿐이다.

2.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치밀하고 용의주도 하시다.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

시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불러주신다.그것이 때로는 환난일수도 있고 때

로는 기쁨과 영광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3.하나님의 주권은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내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손

길은 스며있다.하나님을 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또한 하나님은 어떠한 환

경에서도 나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이다.

III.메시야는 우리의 평강이 되신다(5-6).

A.보혜사의 평강이다.

1.원수들의 침입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2.이스라엘의 역사는 치열한 생존의 싸움이었다.그래서 때로는 포로가 되기도

했다.

3.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워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도록 했다.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지도자가 되지는 못했다.

4.쉴새없는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형성된 그들의 인사는 "평강"이다.우리가 "

샬롬" 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이러한 사연이 담겨있다.

B.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

1.메시야갸 왔기 때문에 성령이 주어졌다.

2.많은 사람들이 삶의 참 평안을 얻으려 한다.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그러나 참 평안에 이르는 길은 멀기만 하다.

3.돈으로,명예로,스포츠로,오락으로,권력으로 평안을 얻으려 한다.그러나 이

것도 평안과는 거리가 멀다.

4.오직 한 길이 있다. "예수 안에 참 평안"이 있을 뿐이다.

VI.메시야는 남은 자를 보호하신다(7-9).

A.남은 자가 있다.

1.남은 자의 사상은 하나님의 구속역사 이해에 중요한 핵심이다.

2.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의 가정에 의로운 자손 "아벨"을 주셨다.그러나 아벨

이 죽은 후 "셋"을 주어 아벨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셨다.

3.야곱의 남은 자란 그의 신앙의 맥을 잊는 후손들을 말한다.

4.그들은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신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다.

신본주의란 무엇인가?

B.성도는 이 땅의 남은 자다.

1.우리 모두 남은 자가 되자.

2.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본주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제목:메시야가 오는 날

미가5:2-9

중심내용:인류의 구원을 위해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다.

1.본문개요

메시야의 출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서론

1.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실 때 동방의 박사들은 먼 곳에서 별을 따라 유대 땅을 방문했다. 그러나 정작 유대 땅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2.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따라 이스라엘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더이상 별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했던 별과 이별하고 나름대로의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장소를 찾지못했다. 도리어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는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3.본문에는 수 백년후에 되어질 일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I.메시야는 작은 곳으로 오신다(2).

A.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1.그곳은 유대땅의 고을 중에서도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하였다.

2.그곳은 옛 부터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역사의 고을이다. 국경지역이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3.물량화된 세대는 언제나 큰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대도시가 아닌 가장 작을 시골동리에 오신다.

1)큰 것 좋아하는 현대인의 유혹이 이 땅의 교회를 세속화 시키고 있다.

2)큰 것만이 마치 성공의 척도인 것처럼 가치관이 지극히 혼돈돼 있다.

B.작은 것은 아름답다.

1.큰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큰 자만을 쓰시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 때 부름을 받았다. 요셉도 소년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하나님은 작은 것, 약한 것을 들어 써 크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신다.

2.성경은 오히려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 자들이 손해본 경우를 증거한다.

예)소돔성을 향해 간 롯

3.문제는 크냐 작으냐가 아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가가 중요하다. 반드시 작아야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4.하나님은 외모와 상관없이 중심을 중요시 한다는 말씀이다.

II.메시야는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3-4).

A.그는 곧 하나님이시다.

1.여호와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세상에 보여질 것이다.

2.그의 모든 능력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3.택한자들이 모여들어 메시야를 통해 생명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4.그의 능력은 온 우주에 미칠 것이다.

B.메시야는 유일한 소망이다.

1.소망은 오직 메시야 뿐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것에서 위안이나 소망을 찾으려 한다면 결국 실망 뿐이다.

2.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치밀하고 용의주도 하시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불러주신다. 그것이 때로는 환난일수도 있고 때로는 기쁨과 영광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3.하나님의 주권은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손길은 스며있다.하나님을 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나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이다.

III.메시야는 우리의 평강이 되신다(5-6).

A.보혜사의 평강이다.

1.원수들의 침입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2.이스라엘의 역사는 치열한 생존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포로가 되기도 했다.

3.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워 방황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지도자가 되지는 못했다.

4.쉴새없는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형성된 그들의 인사는 “평강”이다. 우리가 “샬롬” 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이러한 사연이 담겨있다.

B.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

1.메시야갸 왔기 때문에 성령이 주어졌다.

2.많은 사람들이 삶의 참 평안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러나 참 평안에 이르는 길은 멀기만 하다.

3.돈으로, 명예로, 스포츠로, 오락으로, 권력으로 평안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도 평안과는 거리가 멀다.

4.오직 한 길이 있다. “예수 안에 참 평안”이 있을 뿐이다.

VI.메시야는 남은 자를 보호하신다(7-9).

A.남은 자가 있다.

1.남은 자의 사상은 하나님의 구속역사 이해에 중요한 핵심이다.

2.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의 가정에 의로운 자손 “아벨”을 주셨다. 그러나 아벨이 죽은 후 “셋”을 주어 아벨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셨다.

3.야곱의 남은 자란 그의 신앙의 맥을 잊는 후손들을 말한다.

4.그들은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신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다.

신본주의란 무엇인가?

B.성도는 이 땅의 남은 자다.

1.우리 모두 남은 자가 되자.

2.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본주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제목: 요셉의 성탄준비

성경: 마1:18-25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소명속에 사명이 있고,사명속에 엄청난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명을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큰 기쁨과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할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할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입니다.

내가 살아 있고 여건이 허락되니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준비되고 있고,내가 존재하고 있다

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도 연극 무대로 말하면 주연적인

사람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있고,조연적으로 쓰임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눈 마리아와 오늘 말씀을 나눌 요셉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정말로 은혜와 복이 있는 여인으로서 구세주 예수의 출

산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여인이 됩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

는 주연적인 역활이죠.

그런데 요셉은 직접 쓰임을 받지는 않지만,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이 엄청난 성업을 돕는 조연으로 아주 잘 쓰임을 받고 있는 모

습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 못지 않은 믿음과 신앙으로 요셉이 마리아를 도왔기에 마리

아가 자신의 역활을 감당할 수가 있었음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

다.

비록 조연적인 역할을 감당해 나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의 첫 성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 감격과 기

쁨을 동일하게 누리는 영광을 가졌다는 면에서는 마리아와 동일했습

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어떤 역활을 담당하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

이 되어지는 것이요,그 영광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바울-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고전3장에서 분열하

고 파가 나누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이 곳 열대의 지방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꿈꿀 수 없지만,복

되고 귀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또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주님

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의 역활을 감당하며 첫 성탄

일을 기다렸던 요셉의 신앙을 생각하며 본 받기 원합니다.

1.요셉의 신앙은 의로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룬 삶이었습니다.

마1:18-19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롭다고 하는 뜻은 하나님앞에서 늘 정당하게 살려

고하는 모습,즉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

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의를 추구하고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혼한 여인 마리아가 동거도 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설명)

정혼-약혼의 의미가 아니다. 우리로 말하면 결혼식이나 마찬가지인

데 결혼지참금을 신부집에 주어야 하는데 마련되지 못하면 일단 정

혼을 하고서 나중에 지참금을 주고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신랑,신부이다.

여기서도 '남편''아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몸에 태

기를 느꼈을 때, 정혼자인 요셉에게 사건의 전모을 이야기 하지 않

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문제는 마리아를 통해서 들었건 주변사람들로 부터 소문으로 들었

건 요셉이 마리아를 믿어 주고,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

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잉태된 분이 구제주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알

고 자신이 조용히 이혼을 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업에 자신이 끼어든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두려웠

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하기를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의롭지 못하게 생각되는 문제가 있으면 날

카롭게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정혼한 남편의 입장에서 동거도 하지 아니한 처녀아내에게 임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선 먼저는 의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라

고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 납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믿어 주었고,오히려 그녀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성업을 돕기 위해서는 본인이 이혼해 주어야 하겠다고 하

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한 가운데 진행하려고 하였습니

다.

요셉의 모습가운데 우리는 의로움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사

랑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내 아내가 메시야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떠들어 대지도 않았습

니다. 또한 믿지 못하고 부정하게 남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폭로하

지도 않았습니다.왜냐면,그렇게 되면 어찌 됐든지 마리아에게 큰

피해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령

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잘못되어서 마리아

가 죽음의 심판대에 내 보내 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러내지 아니하는 사랑으로 마리아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꾸 드러내고 떠들고 요란한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조용히 덮어 주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되 역사속에는 언제나 이 의로움과 사랑의 속성이 같

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어쩐지 창백하기만 하고,가까이 할 수 없는 차

가운 분위기만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에 의가 빠지 사랑은 감상적이고,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습니다.

십자가의 역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의 속성이 교차하는 곳

입니다. 의로움이 있기에 죄에 대한 진노와 그 댓가인 죽음이 있습

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기에 용서가 있고,속죄와 구원이 있는 것입

니다.

여러분! 늘 삶 가운데서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십시오.그러나 모든

것을 덮고 내가 감당하려고 하며 상대를 감싸주는 사랑을 잊지 마십

시오.

2.신중한 기도와 말씀의 응답이 있었던 삶이었습니다.

저는 20절의 말씀속에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그는 바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반사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

습니다.

그는 우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 이것은 기도를 포함하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리아로 부터 분명히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리

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말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감히 자신이 메시야 잉태하는 사건에 끼어

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래서 조용히 율법에 나온대로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바로 실천에 옳기기 보다는 생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

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은 행동은 늘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기도를 거쳐서 나오지 않는 말은 늘 큰 문제를 일으키기가 쉽습니

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급합니다. 생각도 않해보고,기도도 않해보고

하나님의 응답도 떨어지기 전에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번에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 해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그리고 주어지는 다

음 한해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응답을 받고서

맞이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들 나오시기 바랍니다.

자칫 년말의 분위기에 들떠서 다니면 않됩니다.

더욱 조용한 가운데 기도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제 목: 어둠을 밝히는 빛

구약본문: 이사야서 42:5-9

신약본문: 요한복음 1:1-18

우리는 이 민족의 통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나뉘어진 세계를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화해하시고, 또 인

간들 사이에 있는 모든 차별을 없애고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

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단되어 서로 싸우고 증오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이미 역사

하고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 민족의 통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통일이란 결국 빛에 의한 통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른 통일이기에 거기에는 빛

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가져

오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런 통일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통일이 오히려 어

둠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통일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분단이라는 어두운 역사 속에 살고 있기에 이제 이 역사를 벗

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빛의 역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빛

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의 통일은 하나

님의 빛에 의한 구원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은 하나님

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의 역사라면,

분단의 어둠을 몰아내는 통일은 분명히 빛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의 빛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통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

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

기지 못하였다"고 하였고,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시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나는 세

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둠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본문에 나타난대로 보면, 그것은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범위를 좁히면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빛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였습니

다.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빛으로 영접하려 하지 않았습니

다. 오히려 박해하고 반대하고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

빛이셨지만 그의 빛은 감취어져 있었기에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

다. 예수님의 빛은 그의 교훈과 기적을 통해 서서히 나타나기는 했지만,

어둠에 속하였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대했던 빛은 강력하고 화려하고 모든 세상을 한꺼번

에 살라버릴 수 잇는 불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은

가물가물하는 등잔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는 하나

님의 빛이었던 것입니다. 이 빛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마침내 모든

어둠의 근원인 마귀의 권세를 깨치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참빛이심을 모든 세상

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패배한 마귀는 아직도 철수하지

않은채 세상 끝날까지 발악을 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역사

는 점진적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 빛의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어움의

세력들은 마땅히 물러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빛의 역사를 훼방하고 핍박하고

계속 이 땅에 불의의 역사를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방법은 결코 폭력적이거나 강력한 물리적

인 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빛의 강

력한 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

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이야말로 어둠을 몰아내는 강력한 빛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5:13). 빛이 역사는 결코 파괴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강력한 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군중의 다수의 힘을 이용

하여 그의 목적을 성취하려 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랑은 결코 다수의 힘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희생을 주저하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빛의 역사는 성취되는 것입니다. 빛되신 하나님이 어둠에 덮인 이

세상을 빛으로 바꾸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케 하시는 사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결국 사랑에 의해서만 어둠의 역사는 빛의 역사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우리의 분단된 조국은 여러 가지 어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남한은 거

듭된 독재정권에 의하여 혼란을 겪었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므

로 해서 경제적인 불의가 이 나라를 좀 먹고 있으며, 오염된 자연으로 인

하여 위기에 처아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사회는 폐쇄된 사회로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상과 이념의 노예로 국민의 모든 권리를 제약하

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통일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저들의

이념인 주체사상(主體思想)입니다. 북한 사회는 주체사상에 의해서 일인

독재가 정당화 되고, 모든 국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특히 인간 중심주의 사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왕국을 추

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이 북한의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의한 통일에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체사상이 어떻게 빛

의 역사에 장애가 되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체사상은 철저하게 사람 위주의 철학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

이말합니다. "주체사상은 사람 위주의 철학이다. 주체사상은 모든 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여 사람의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혀 준다." "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세계의 중심에 계시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가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 가운

데서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는 근로인민대중을 말

하고 그 인민대중을 대표하는 것이 수령입니다. "수령은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수뇌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다" 따라서 이 수령에게 모든 사람은 충

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령이 혁명과 건설에서 최고의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인민대중은 마땅히 수령에

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결국 수령을 신의 위치에 올려 놓고 있는 것입니

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론과 흡사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서응로 교

회가 이루어지고 그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 또한 교회의 사명은 이 땅

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론과 주체사상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은 정치사상이 아닌 정

치 종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스스로가 북한의 메시아로 군림

하고 있는 것이며, 세계의 메시아가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적 그리스도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들은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

중심이기 때문에 자연 신을 부정함과 동시에 주체사상에 의하여 스스로가

종교가 되었기에 다른 종교를 용납하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

과 같이 말합니다. " 사람들은, 이른바 신이라는 것은 사람 자신이 만들

어 낸 환상적인 의식이고, 그것을 믿는 한 병적인 정신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이다. 사람

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 된

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당과

혁명적 인민들은 종교의 허위성과 반동을 폭로, 규탄하는 투쟁을 계속 힘

있게 벌여나가야 한다."이런 사상과 정책 밑에서 교회가 발붙일 자리가 없

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요즈음 몇걔의 교회당이 지어지고 가정교

회를 인정하는 것은,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함과 동시에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미

약하게 시작된 이 교회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알의 작은 겨자씨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런 어둠의 세력에 맞서 통일을 이룩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

리는 이미 공산주의 사회가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역사의 현

장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뜻에 반대하여 세워진 공산

주의 사회가 더 이상 나갈 진로가 막혀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 섭리하시는 세계 속에서 그 뜻을 거스려 나가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입니다. 어둠은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둠이 아무

리 발악을 하여도 결국 빛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

은 빛에 의하여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

다. 통일은 정치가들의 즉흥적인 쇼나 제수추어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을 막고 있는 것은 북한만이 아닙니다. 남한의 정권도 바로 통일을

막고 잇는 어둠의 세력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어둠의 세

력을 통합하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어둠의 세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통일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통일을 원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

보다도 우리가 가진 빛을 더욱 밝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빛

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제는 이 빛을 밝히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사명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빛을 밝힐 수가 있겠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그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게서 자신

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우리가 본받을 때 우리의 빛이 밝아질

것입니다. 요한 일서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

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3:16)라고 하셨습니

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

는 사랑이 아니면 어디서도 빛을 발할 수는 없습니다. 주체사상이 아무리

강력한 이념이라 할지라도 자기 몸을 내어던져 사랑을 실천하는 자 앞에서

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교인들이 많아

짐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숫자와 상관이 없습니다.

지극히 적은 수라도 사랑을 몸소 실천할 때 거기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하였기에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에 대하여 무관심하여 왔습니

다. 사랑의 힘을 발휘하여 오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가 큰

사랑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고아들

을 가정으로 입양하고, 노인들을 양노원으로 몰아낼 것이 아니라 가정으

로 모셔드리는 사랑의 실천을 우리가 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현실의 문제를 영적으로만 풀려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만 했지 밥을 아울러 주지 못하였습니

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영적으만 했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는 인

색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물질을 나누어

주는데는 언제나 인색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기독교의 약점을

파고 들어온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겠습니까? 기독교가 외면하여 버린 소외

된 민중들을 선동하여 착취와 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해보고자 한 것입

니다. 그러므로 이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바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헌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통일의 무기는 없습니다.

만약에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저들에게 우리가 가진 재산을 나누어

주고, 우리가 가진 땅을 나누어 주며, 저들을 우리의 직장에 받아들여 일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동독의

실업자가 늘고 그들의 생활이 더욱 곤경에 처하였다는 보도를 듣습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어

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삶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

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빛에 의하여 통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된 우리

가 우리의 빛을 사랑으로 더욱 밝혀야 한다는 사명이 우리에게 무겁게 메

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실천 없이는 통일은 어려

울 것입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사상과 이념이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될 때 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

체 사상이나 자본가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빛에 의한 통일

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은혜와 복이 함게한 마리아

성경: 눅1:26-56

어느덧 빠른 세월에 밀려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되었습니다.

한 해가 끝나간다고 하는 쓸쓸함과 허무감이 무겁게 내려앉는 마감

의 달을 그래도 축제적으로 맞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

주님 오신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2월의 끝에 성탄일의 축제가 있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라

고 생각이 됩니다.

무덤을 내다보게 되는 개인적인 생의 마지막 순간들,그리고 인류

역사의 종말을 고하게 되는 순간에라도 무한한 희망과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 주님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연구의 결론데로 역사의 마지막 지평선에 떠

오르는 희망의 구세주 모습이 바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에 귀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한 여인이 있으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인 것입니다.

그 여인자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하여 아주 특별한 경륜을 입고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에

무한한 은혜와 행복이 있었던 여인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최

초로 하는 말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였습니다.

30절에도 보니까,'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

었느니라.'고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친족이었던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 마리아를 보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말하기를 42절에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직접 노래하며 말하기를 48절에, '보라 이제 후로

는 만세에 나를 복이있다 일컬으리로다.'고 했습니다.

과연 은혜가 있고 복이 있었던 여인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 자체가 천주교에서 말하

는 것처럼 숭배받고 높임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우리 주님의 이 세상에 오심에 직접적으로 쓰임을 받는 존재

가 되었다고 하는데에 은혜가 있었고 복이 있었던 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귀하고 가치있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될 때가 가장 행복

한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가

장 은혜롭고 복된 것이라는 사실을 받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편에서 보면

완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보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은혜와

복이 임할 수 있는 내면의 어떤 퀄리티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생

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바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때 무조건적으로 한 것이 아

니라, 뭔가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했던 내면의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스스로 표현하기를,'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속에 있

는 그 충성스러움을 보신 것입니다.

다윗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나의 보는 것은 사

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인간,즉 그 존재자체를 보신다

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영적이고 근본적인 바탕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을 쌓고,지위를 얻었어도 그 사람됨의 본바탕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사람같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까지 사람 노릇 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많고,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겉모양만 종교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갈 뿐 본바탕의 변화없이 아주

추하게 믿음생활하다가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는 거기에 필요한 은혜도 권세도 능력도

필요한 건강과 재능도 다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사전

에 인간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쓰임받기에 합

당하게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책임입니다.

이 12월에 다시 한 번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마리아 처럼 내 생

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도록 쓰여지는 그릇이 될 수 있

기를 간구하고 기도하는 순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1.우선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

에 합당한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

의 멧세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멧세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

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

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

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

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

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

님으로서 예수를 섬기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끝에 가도 겸손하신 그런 성품

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겸손을 말합

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주 겸손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 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 버

립니다.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

니다. 꼭 김일성이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

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

제자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교권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않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

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활만을 감

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

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

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예화>

대권 광고- 경제기적 이룰 사람은 누구밖에 없습니다.

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는 누구밖에 할 수없고,통일의 주도는 누구밖에

못합니다.

정말 유치한 광고들입니다. 국민들을 유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좀 이런 광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편 누구가 된다해도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를 뽑아 주신다면 못지않

게 열심히 뜻을 받들어 해 보겠습니다. 말이라도 서로 그렇게 했으

면 좋겠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는 말씀이

정말 맞다고 생각됩니다.

2.마리아에게는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눅1:31-34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대답이 37절에 나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더니,마리아가 대답하기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녀는 메시야가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메시야가 처

녀의 몸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

문에 그 말씀을 좇아 자신에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그 사실도 믿

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엘리사벳이 4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

루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기에 베드로처럼 '그리마옵소서!'하면서 아들 예수를 만

류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승천하신 후에도 성령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마

가 다락방에서 120문도 속에 끼어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는 가운

데 성령충만한 역사를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의 생에 깊은 추진력을 준 것이라고 한다면 능력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뿐 아니라,좀 믿고 살아보려고 해도 믿

을 수없게 되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면 이것처럼 불행한 사실

이 없습니다.

(예) 교회까지 오는데, 신호등을 믿을 수없다면?

내 눈을 믿을 수없다면,

다른 운전자들이나 차를 믿을 수없다면,

브레이크 파열로 반대차선으로 뛰어들어온다면?

그러나 믿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다른 것은 못믿

고 살아도,말씀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없으니까요!'

(예)가정도,부부도, 신앙이 있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

에서 서로를 믿고 가정식구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처리하신다는 것을 믿으니까,그 사람들을 믿

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시대를 살아가면서,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만은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믿을 수가 있고,환경을 믿을 수가 있고,역사를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죽음까지라도의 순종의 내면을 말하는 것

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

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

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끊어 버리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몸을 내어주는 순종과

헌신인 것입니다.

잘 아시는데로 듣고 믿은 말씀은 순종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사람들이 행복과 은혜를 따먹는 일에는 아주 관심이 많지만 순종하

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사르밧 과부,-그릇을 빌려오라. 기름이 넘쳐났습니다.

가나혼인 잔치-빈통에 물을 채우고 갖다가 연회장에 주라.

문둥병자들-

여리고의 성 -

요단강-

4.기쁨과 감사의 찬양

46절부터

제목 :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성경 : 요 1:1-5

1. 요한복음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은 예수가 어떤 분인신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언제부터 계셨으며 어떤 모습으로 계셨으며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만물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이 세상에는 어떤 모습

으로 오셨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설명되어진 말씀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이제 1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

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태초란 말은 창세기 1장 1절에서도 태초란 말씀이 나옵니다만 그

태초와는 다른 말씀입니다.

창세기 1:1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합니

다.이때에 태초는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를 포함한 이 세상의 시작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공간이 만들어진 때와 세상의 시간이 시작된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있는 태초에 창세기 1장에 있는 태초와는 다르게

시간이란 개념을 초월한 의미로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태초란 만물이 있기 이전의 영원이라

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사도요한은 예수를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Origen이란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구속의 뜻을 성육신을 통해서 세상에 결

정적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에 그를 말씀이라 했다"고 합니다.

또 신학자 Calvin은 성육신하여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는 하나님

의 뜻의 결정적 표현이시기 때문에 말씀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요 말씀으로서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기 때문에 그를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고 말씀해 주는 예수는 이 세상 만물이 생겨

나기전에 벌써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고 말씀해 주는 예수는 이 세상 만물이 생겨

나기전에 벌써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

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말씀으로써의 역할을 하신 예수는

만물이 있기전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그것

이 무슨말이냐 하게 되면 말씀으로써의 역할을 하신 예수는 비인격체

가 아니라 분명한 인격을 가진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는

신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중요한 진리를 보여준 말씀이 됩니다.

1.절에 있는 말씀을 종합하면

예수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분명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라는 말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말씀의 역할을 한 분이라는 말입

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예수께서 말씀하신것 이 모든 것은 하

나님의 뜻을 말해준 것입니다. 예수는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전

달해 준 것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라 그분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

요 그분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오묘한 뜻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깊은 진리입니다.

2) 이제 2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유대 문학에서는 반복을 통한 강조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 2절의 말씀은 1절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말씀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다음

으로

3) 3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는 된 것이 없느니라"

헬라의 자연처학자들의 주장은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 성서와 전혀 다

른 주장을 했습니다. 예를들면,

Thales (탈레스)같은 이는 모든 만물은 물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했습

니다.

아낙시벤스(Anaximens)는 모든 만물은 공기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팔메니데스(Parmenides)는 빛과 어두움에서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주

장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 진화론자들은 원숭이가 점점 발전하고 진하해

서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이나 공기나 빛이나 어두움이 이 오묘한 우주만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모든 만물은 그 하나라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적은 미생물이라도 그들이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에 오묘하고

신기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마리의 개미가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면서 사계절을 살아가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도 놀

라운 하나님의 솜씨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면

아직도 나무의 잎이 가을이 되면 낙엽이 왜 지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인 우리 개인을 살펴 보십시오. 이상하게도 비슷한 사람은 있으

나 똑같이 생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수만 수천 가구의 아파트 열

쇠가 다 다르듯이 사람의 모습도 다릅니다. 사람의 뇌가 어떻게 만들

어져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살펴보십시오. 거기에도 신비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원숭이가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도 동물원에 있

는 원숭이는 계속 변해서 사람이 되어야 하게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이론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분

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되었으니 지은것이 하나도 그가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과거,현재,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

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 세상의 시작은 예수님에 의해서 된 것이고

그뿐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그가 만드시고 다스

리신다고 본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말미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만물이 예수를 통해서

다 만들어졌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지으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생명은 누구로부터 얻은 것이며 이 세상을 살 때에 누구

의 도움과 보존 아래 사는 것이며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누구의 인도함

을 받아 어디로 갈 것입니까? 여러분들의 생명의 주인은 여러분이 아

니라 예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사람을 중심해서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만물을 섭리하시고 만

물을 보존하시는 인격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올일연동안에도 여러가지 계획을 가지시고 출발하셨을 것

입니다.

어떤 가정은 올한해동안도 정말로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아쉬움없는 물질적 축복을 받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자녀들이 참으로 걱정거리가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축

복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정말로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기쁨과 희망만

이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하는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온 가족이 일년동안을 살 때에 죄짓지 않는 가정이 되기

를 위하여 기도했을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죄짓지 않고 자녀들도 죄짓지 않아서 세상의 법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이 해

를 출발한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이웃관계나 형제간의 정다운 삶을 놓고 기도한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올 일년을 살 때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삶을 일

찍 포기하지 말고 승리가 올 때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극복하게 해달라

고 기도하면서 이 한해를 출발한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 여러

가지 소원을 가지고 이해를 출발했을 줄 압니다.

분명히 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그 모든 소원을 누가 들으시고 누가 인도해 주십니까?

여러분들은 직접 창조하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러분들의 소원을 들어주심을 반드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지으신 그분은 여러분들의 삶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지켜야 할 것

은 믿음안에서 예수의 말씀을 이탈하지 마시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서 살아가시면 됩니다.

세상의 법을 따라 살지 않으면 세상에서도 범법자가 되며 처벌받게

됩니다. 예수의 말씀의 법을 지켜나갈 때 하늘나라의 계획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법을 어기고 탈선하고 살 때에는 준비된 축복이 여러

분들의 것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이제 끝으로 4절과 5절의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하신 예수는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영접

하는 자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의 말씀을 따

라 사는 자는 그 육신에 생명력이 넘치고 그의 생각이나 사상이 건전

하고 열정적이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이 되고 그의 영혼은 날로 은혜가

넘치는 싱그러운 영혼이 되어 감사와 찬송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예수를 통해서 얻는 생명은 그냥 살아가는 보통생명이 아닙니다.살아

서 움직이는 생명, 해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생명, 죽음을 몰아내는

생명, 어두움을 몰아내는 생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생명,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생명,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생명, 약한 자를 강한

자로 바꾸는 생명, 질병을 건강으로 바꾸는 생명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태양 빛이 비

추이는 곳마다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은 달빛이나 별

빛 또는 등불이나 횃불이 아닙니다.반사의 빛이나 사람이 만든 빛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태양광선과 같은 빛을 말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빛,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는 빛, 인체에 해로운 것

은 죽이고 유익한 것에게는 생명력을 넘치게 하는 빛 예수는 바로 이

러한 생명력이 넘치는 빛이 되십니다.

이 생명과 빛되신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자에게는 매사에 기적이 일

어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생명력과 빛디신 예수를 따르

고 순종하는 자에게 화가 복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죽음이 생명

이 되며,지옥이 천국이 되고, 질병이 건강이 되며,저주가 축복으로 변

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빛되신 주. 생명이 되신 주를 영접하시고 믿고 따르므로

약속된 축복을 이 한해에도 넘치게 받는 이 나라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

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원문대로 보면 이 말씀은 빛이 외부에서 비추는 것이 아니라 "빛이

어두움 안에서 비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생명이

되시고 빛이 되신 예수께서 이 죄악된 어두움의 세상안에 들어오셨다

는 말입니다.

생명을 전해주는 말씀의 빛이 구약시대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추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비추었고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세상속에서 계속 비추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엔 아직도 이 생명의 빛디신 예수를 깨닫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한 이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마음의

어두움 영혼의 어두움 육신의 어더움을 비추고 계십니다. 이 생명의

빛을 거절하는 자는 계속적으로 죄악과 절망과 실패와 원망과 한숨과

지옥의 어두운 그림자속에서 신음하면서 살 것이지만 생명이요 빛이신

예수를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약속된 축복이 함께 하심을 믿

으시기 바랍니다.

2. 간절히 바라기는

이 시간을 올 한해동안 살아갈 때에 빛되신 예수를 믿고 따를 것인가?

부인하고 따르지 않을 것인가?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올한해의 성공과 실패 저주와 축복은 지금 이 시간에 어

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이미 판가름이 난 것입니다.

진실로 바라기는

여러분중에 말씀의 빛되신 예수를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하고 믿고 따

르지 못하는 이가 한 분도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구세주가 세상에 오심

성경 : 마 1:18-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것은 주께서 선지자

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함이라](마 1:18-23).

= 서론 =

성탄절은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나라와 종족을 초월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의 말씀을 가지고 구세주가 세상에 오신 이유와 배경에 대해 알아

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천사가 와서 요셉에게 들려준 소식은 두 가지 예언의 말씀이었습니

다. 첫째는 22,23절에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신 예수님이 나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한 예언이 이루어진 상태를 예언한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시대순, 즉 이사야의 예언부

터 다루고자 합니다.

1. 이사야의 예언 - 소망의 예언

본문에 인용한 예언의 말슴은 이사야 7장 14-16절로써 [그러므로 주

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이사야에서 두번( 7:14,8:8), 본문

에 한 번 나타날 뿐 다른 곳에서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과연 임마누엘은 누구일까요? 그분은 어떤 분일까요?

그 대답은 이사야 9장 6,7절에서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

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

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

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즉 이사야로부터 수세기가 지나 천사가 한 여인의 꿈 속에 나타난 그

예언의 궁극적인 성취가 임박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

스도의 탄생은 옛날 이사야의 예언 속에 담겨 있는 그 광대한 가치를

성취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하여 장차 태어나실 분은 어떤 분일까요?

첫째로 기묘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이하고 묘한 자

라는 뜻으로서 주님의 가르침과 사역, 탄생과 죽음, 부활과 승천 이

모든 일들이 기묘하게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갖 피를 잘 내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잠언의 지혜와 동

일시하고 있습니다.

셋쩨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

님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전능하신 하

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넷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씀은 영원한 보호자라는 뜻입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

한 자라](계 1:8) 는 말씀대로 주님은 태초부터 계신 분으로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 분입니다.

다섯째로 평강의 왕으로 묘사된 것은 주님께서 참된 평화를 가져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을 때 주님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

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는 위와 같은 이

름을 가진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며, 임마누엘은 그의 백성

가운데로 요셔서 낮아진 상태에서 그들과 고락을 함께 나눈다는 뜻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전진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인간

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인간 세계에 무슨 낙이 있으며 무슨

소망이 있기에 이 세상에 오시려고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단순합니다. 바로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고통많고 슬픔많

은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이러한 천사의 선포를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며 마리아

는 그 말씀을 듣고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들도 그 사실을 듣고 믿었기에 온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

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들보다 더욱 믿기가 쉽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수세기에 걸쳐 실행되어 온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널리 전파해야 될 것입니다.

2.천사의 예언 - 성취의 예언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성경은 한날 목수에 불과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며 곧고 진실한 사

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셉의 약혼녀인 마리아는 옛부터

내려오는 히브리인의 아름다운 풍습에 따라 요셉과 앞날을 약속한 여

인이었습니다.이러한 약혼기에 거룩하고 신비한 이적이 생긴 것입니

다. 그것은 마리아가 잉태를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26-38절에 보면 마리아가 잉태하기 전 가브리엘 천사장

의 수태고지가 있었고, 또한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을 가만히 끊고자

할 때에 천사가 현몽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는 사실을 알려

줌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현몽하여 전해 준 천사의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라는 이름은 그 당시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란 구원자를 의미하는 히브리 이름인 여호수아의 헬라어 이름입니

다. 천사는 바로 그 이름을 아이에게 주라고 한 것입니다.

2)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백성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한마리도 압작

당하고 유린당한 백성이요 참목자를 잃은 어린양들이었습니다.

3)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외적인 것과 싸우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마음

의 죄에서 발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근본

적인 문제의 해결자로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아기에게 주라고 한

이유는 오직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은 이루어

져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그 백성과 함께 하셨으며,

또한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

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

입니다.

= 결론 =

오늘날 아니, 지나간 세대와 오는 세대에 있어서 이름만큼 수없이 불

려지고,흠없고, 찬양받을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는 이렇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

사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심으로 임마누엘에 대한 소망은 완전하게 성

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영원한 통치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인

간 예수를 통하여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사 왕국을 건설하시고 영원토

록 그 왕국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함으로 성탄의 기쁨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

성경: 마1:18-25

(서론)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인간인

우리에게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깊은 의

미가 있습니다.평범한 가정을 택하시셔서 요셉과 마리아의 정혼과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것은 우리의 기쁨이요 소망이 됩

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우리의 모든 생활에 더욱 큰 보람과 기쁨

을 안겨줄 것을 확신합니다.

제1.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 나셨습니다.

1)요셉과 마리아은 평범한 사람입니다.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왕

자나 귀족도 아니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가정에 예수님은 오

셨습니다.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구주로 누구나 모실 수 있다는 것

을 하나님은 알게 하시기 위하여 요셉과 마리아 가정을 택하신 것

입니다.

2)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예수님을 태어나셨습니다.처녀가 아

기를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역사에 없던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일을 알려주셨고 마리아에

게 믿음을 갖도록 믿음을 도와 주셔서 처녀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

로 예수님을 갖도록 하였습니다.여러분의 몸은 마리아처럼 예수그

리스도를 모시기를 바랍니까?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영과 마음과 능력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3)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을 범한 것이요 요

셉에게는 큰 고통과 충격이었습니다.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

라 마리아를 망하게 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정혼을 파혼하고 관계

를 끊고져 하였으나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마리아의 잉태

는 성령으로된 것을 알려주고 마리아를 데려올 것을 명령함으로

아기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서 자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예수

님은 잉태의 순간부터 고난과 위기의 생을 살았고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안전하

고 오히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하시는 큰일을 평범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4)성령과 말씀으로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성령충만 말씀충만하

고 예수의 모습이 여러분의 영에 있을 때 하나님의 기적은 시작됩

니다.

5)하나님이 인간의 육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예수님은

영으로나 인격으로나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심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6)요셉과 마리아의 믿음은 아기 예수를 받아들일 만한 믿음이었

습니다.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희

생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믿음이 필요합니다.마리

아아와 요셉은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하였고 많은 사람을 복되게 하

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여러분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마시고 많은 영혼 구원

하시길 바랍니다.

제2.이름을 미리 예수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1)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마리아에게

도 요셉에게도 똑같은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우연의 일치가 아니

라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게하는 증거입니다.마리아에게는 생시에

환상으로 천사가 나타나 잉태될 것을 고하고 아기의 이름을 예수

라 하라고 하였고 요셉에게는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예수

라고 이름지라고 분부하였습니다.

2)예수란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자기백성

을 죄에서 사해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제물이되셨습니다.십자가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십니다.원죄 자범죄를 용서받고 죄성과 악성

을 물리치고,죄의 사람인 옛사람을 죽일려면 예수님의 보혈의 강

에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3)예수란 이름은 사적,가정적인 이름이고 그리스도란 공적,직무

적인 이름입니다.예수는 인성을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을 상징하기

도 합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편에서 인간됨을 보면 완전한 인간이십니다.그러므로 하나

님과 인간을 조화하고 하나되게 하고 화목하게 하실 주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4)성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죄로부터 악

으로부터 저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사망으

로부터,사단으로부터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오직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성도가 받은

구원은 중생,성화,영화구원입니다.구원의 내용은영생과,축복과,사

랑과,소망입니다.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간구원이 여러분의 것

이되시길 바랍니다.

제4.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에 사자를 보내셔서 이사야의

글에 나오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

려주셨습니다.

1)요셉은 은밀히 마리아의 잉태를 비밀을 지키고 자신과의 관계

만 끊고져 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잉태가 성령으

로된 것을 말하고 마리아를 데려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이름을

예수라하라고 하고 성서적인 근거로 이사야의 글을 알려주어 임마

누엘이란 이름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2)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게심을 의미합니다.죄인인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태어나 인간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은 하

나님이시며 예수님과 함께함은 하나님과 함께함이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신 행위입니다.하나님은 조물주로 육체

가 아니시나 육체를 가진 인간을 구원키 위해 인간의 육의 몸을

입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

의 형체를 임으시고 죄인을 구언하시기 위해 죄인의 모습을 갖기

까지 낮추신 것입니다.

4)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호의 와 사

랑을 거부하는 것으로 죄가 됩니다.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지 아

니한 것을 이유로 심판하십니다.모든 죄를 다 간과하시되 하나님

의 호의를 거부한 죄는 사하시지 아니하십니다.

5)임마누엘은 인간의 근본적인 축복입니다.마귀의 자녀가 하나님

의 자녀로 하나님과 함께함,죄인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

님과 함께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되는 것,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목자예수의 양이되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축복을 받음,예수와 하

나가 되어 하나님과 하나됨이 완전히 이루어져 천국을 이룸이 예

수안에서 약속된 것이요 성취되는 것입니다.

6)임마누엘이 성취되시길 빕니다.죄인인 나,부족한 나,외로운

나,무의미한 나,무지한 나,버림받은 나에게 임마누엘 예수가 계심

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제4,요셉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려와 아

기 예수를 모신 예수님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1)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요셉도 마리

아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2)요셉의 가정에는 환난도 풍파도 옵니다.아기예수의 일로 어려

움도 옴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는 완전합니다.헤롯왕으로부터,

경제적인 가난으로부터,세상의 저주로부터 보호를 받는 길은 예수

님을 잘 모시는 길뿐입니다.

3)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은 예수님을 위한 가정이 되었습니다.그

들의 인생의 의의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르고 그분의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결국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었습니다.

4)요셉과 마리아는 쫓기고 쫓기는 외로운 부부였으나 만민의 존

경을 받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명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

를 모신 것은 아니나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요셉과 마리아를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5)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생을 살고 온인

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일에 믿거름과 같은 인생을 마쳤습니

다.요셉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바 없으나 일찍 죽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복음 사업에 일생을 바쳤습니다.마리아 숭배는 잘못된

것입니다.

6)예수그리스도를 모시면 생활 전반에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

야 합니다.심령에 가정에 사업에 교회에 천국이 예수님을 영접함

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영혼도,마음도,생활도,건강도 구원이

이르길 바랍니다.사상도,생각도,말도 행동도 예수님의 나타남이

이루어져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여러분의 생활 전반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결론)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나에게 구원이됩니다.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약속이요 실현입니다.임마누엘의 복이 최선의 축복이요 가

장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의 해결입니다.여러분의 가정에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 태어난 예수그리스도를 잘 모시고 행복과 번영과

전이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