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 들의 위대한 믿음

동방박사들의 위대한 믿음 (마 2:1-12)


이 시간에 “동방박사들의 위대한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다 그러면 대개 온갖 불가능한 역경을 극복하고 나올 때 믿음이 좋다고 말합니다. 오늘 저는 타인이 보기에는 하늘의 별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불확실해 보였지만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에 자기 인생과 자기 재산과 시간과 생명까지도 바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난 몇 사람을 소개할까합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성탄절이 오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한 이야기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사복음서에서 마태가 유일하게 마태복음에서 동방박사를 부각시킨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맞이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에 있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함을 통해서 당시 하나님을 섬기기에 최고의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깨닫게 하고 부끄럽게 하여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참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예수을 찾았습니다.

그럼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1. 동방박사들은 성경도 없었습니다.


성경만 있으면 예수님 찾기는 쉽습니다. 성경에는 태어날 곳 베들레헴, 피난 가실 곳 애굽, 자라실 곳 나사렛, 활동하실 곳 갈릴리, 죽으실 곳 예루살렘 영문 밖,,, 다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야 서기관들을 통해 왕이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즉 그들은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전으로 조상적부터 내려온 민24:17 한 구절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는 말씀을 희미하게 나마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학자들 중에는 이 동방박사들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바벨론에서 석방될 때 믿음 좋은 사람들은 다 고국에 돌아오고 대부분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곳에 정착했는데 수백 년이 지난 그들에 종교교육은 심히 열악했던 것입니다. 당시 형편이 그러했듯이 구술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성경 몇 마디 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성경 한 구절 붙잡고 믿음 지키며 메시아 왕을 기다리고 그 한 말씀 붙잡고 아기 예수님께로까지 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66권 모두 갖추고 있고 매일 다양한 형태로 말씀을 듣고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예수님을 얼마나 찾고 있는지 심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2. 동방박사들의 인도자는 하늘의 별 뿐이었습니다.

2절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그들은 천문학자들로서 별을 연구하다가 이상한별을 보고 그들은 왕으로 나신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별을 따라 나섰습니다. 별이 어디로 인도할지 아니면 별이 계속 인도할지 어디론가 사라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실재로 오다가 별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아기로 나신 왕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유대까지는 최소한 2천리 이상 떨어진 곳인데 별 외에는 인도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성경 박사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가득했습니다. 랍비가 선생인데 당시 랍비는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랍비들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했고 사람들도 참 선지자가 나타나도 인도 받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의 종 없이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죠.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한 것처럼 양에게는 목자가 절대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저도 성경의 뜻 하나 알기 위해 10년도 더 갈망한 적도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래도 낙심치 아니하고 아기 예수를 찾고 또 찾았던 것입니다.

3. 동방박사들이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들이 살던 동방은 베들레헴에서 수 천리 떨어진 곳입니다. 길도 없고 고속도로도 아니고 험한 광야였습니다. 물도 없고 식량 구하기도 어렵고 교통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낙타를 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목적지도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밤에는 별을 연구하고 낮에는 연구한 것을 토대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산으로 인도하면 산으로 강으로 인도하면 강으로 혹은 바다로 혹은 들로 혹은 잘못하여 곁길로 빠진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별이 인도하는 대로 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이스라엘까지 적어도 수개월 혹은 두 살 아래라 한 것을 볼 때 1년 이상 여행해야 하는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동방박사의 이름에 대해 의견이 부분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가스팔, 메키울, 발다살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처음에 이상한 별을 발견하고 출발하였을 때 처음에 4명이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알타반 박사는 도중에 무슨 일로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일행을 찾아 아무리 헤매어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예수님을 찾아 헤매다가 30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겨우 찾았는데 벤허 영화에서도 보지만 그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모했으면 일생을 찾았을까요? 그가 출발할 때는 청년이었지만 주님을 만났을 때는 백발이 허연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보세요.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얼마나 됩니까?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지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훤히 보이는 가까운 곳입니다. 내리막 길이니 걸어서 한 시간 남잣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가 났을까 확인조차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동방박사들을 생각한다면 멀어서 교회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곳에서 수고하며 교회를 찾는 사람에게 더 큰 상을 주십니다. 동방박사들에게서 배우십시다.

4.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역시 쉬운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당시 왕에게 드리는 값진 예물입니다. 보통 사람이 준비하기 힘든 값비싼 예물입니다. 보통 정성이 아니고 이런 예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경제인도 아니고 선비이니 부자라고도 추측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 예물은 네 박사의 통털어 준비한 전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별 연구에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죠.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복 주시면 다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과 대화하는 신령한 믿음을 가졌다 해도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 그냥 되는 것이 있나요?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이지요. 특히 정성을 드려야 하는 일에는 우리의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렵도록 놔두십니다.

저는 동방박사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영성을 제 영혼에서 느끼는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얼마나 기도하고 또 기도했고 얼마나 믿고 또 믿고 얼마나 사모하고 또 사모하면서 이 일을 진행해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는 절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5. 동방박사들을 온갖 시험을 끝까지 이겼습니다.

그들의 어려움은 베들레헴까지가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만나고도 계속 되었습니다. 먼저는 겸손의 시험입니다. 그토록 찾던 메시아가 그 낮고 천한 마구간 말구유에 누웠으니 어찌 경배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기의 부모는 천한 목수 요셉과 마리아가 아닙니까? 우리가 찾고 찾던 그 아이가 저 아이란 말인가? 회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왕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극진히 경배했습니다.

다음은 헤롯의 시험입니다. 7-8절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러나 실상은 아기 예수를 발견해 주면 죽이려는 음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셨습니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왕명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 왕명은 현실이고 하나님의 지시는 꿈속에 된 일입니다. 왕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를 찾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 무수한 체험을 하였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현실보다 더 신실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시험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뭐가 두렵습니까? 헤롯왕처럼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버리면 자기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십시다. 주님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먼 곳에서 말씀 하나 붙잡고 별을 따라 그 멀고 험한 곳을 지나 베들레헴에 찾아온 동방박사처럼 위대한 믿음을 가져 아기 예수님께 영광 돌리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